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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구릅/일상들 ( life )

남한산성 행궁 - ( 2017.03.01 )

by the road of Wind. 2017. 3. 1.

남한산성 행궁 - ( 2017.03.01 )



행궁(行宮)이란 왕이 도성을 떠나 행행(行幸)할 때 임시로 머무는 곳으로, 전란시·능행시·휴양 등의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조선시대에는 수원행궁, 강화행궁, 전주행궁, 의주행궁, 양주행궁, 온양행궁 10여개 이상의 행궁이 있는데, 그 중 남한산성행궁은 전쟁이나 내란 등 유사시 후방의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한양 도성의 궁궐을 대신할 피난처로 사용하기 위하여 인조 3년(1625) 남한산성 수축과 함께 건립되었다. 실제로 약 10년 후인 1636년 병자호란이 발생하자,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하여 47일간(1636.12.14~1637.01.30) 항전하게 된다. 이후 숙종·영조·정조·철종·고종이 여주에 있던 효종릉(寧陵) 등의 능행길에 머물러 이용하였다. 남한산성행궁은 종묘(좌전) 사직(우실)을 두고 있는 유일한 행궁으로 일반적인 행궁에 머물지 않고 유사시 임시수도의 중요한 역할을 하던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국가사적480호이다. - < 남한산성 도립공원 >


어제 남한산성 동장대터 등산시 가보지 못 했던 남한산성 행궁을 가보았다. 어부인을 동행했다. 9:40분경 출발하여 10시 20분경 남문 주차장에 도착하니 차량이 거의 만차 상태이다. 우측의 주차 공간이 하나 잇어 간신히 주차를 하고 행궁을 답사하여 보았다.  남한 산성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더니 놀라보게 발전하는 것 같았다. 관광버스도 많은 사람들을 내리고 있었으며  지방에서도 더러 오는 것 같았다.


먼저 매표를 하고 행궁으로 다가가니 수문장이 옛날 복장을 하고 서 있었다. 경복궁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다. 경복궁 다음의 위엄이 풍겨지는 엄격한 곳 같다. 옛날 임금께서 이곳에 노심초사하며 전란 중에 기거하였을 것이다. 풍전등화 같은 조국의 운명 앞에 신하들과 얼마나 깊은 고뇌와 충격과 고통을 당하고 있었을까? 짐작이 간다. 병자호란 때 주화파와 주전파 신하들 간의 논쟁을 지켜보면서 어떤 생각에 잠겼을까?   




남한산성 소감


남한산성 당도하니 산천은 의구(依舊)한데
옛 사람 어디가고 산성(山城)만 남았는가?

근엄하게 보이는 행궁을 찾아보니
모든 것이 한 때라는 것을 알겠다.


병자호란, 20만 적군,
겹겹이 둘러싼 오랑케들 앞에서
중과부적(衆寡不敵)
통탄하던 산성 안 사람들...
그들의 흔적도 어디에 없구나.


3000명의 군사, 한달치 양식...
그것 가지고 어떻게 해 볼 것인가?
비극적 패전의 결과는 비참한데,
머나먼 북방 오랑케 땅에 끌려가서
종살이 첩살이 죽임을 당한 선조들
그 한(恨)을 어디에다 두고 갔을까?


치욕(恥辱)의 역사를 지켜봤을 소나무들,
이 겨울에도 푸르게 서 있구나.

나라가 선다는 것 그리 쉬운 일인가?
흥망성쇠(興亡盛衰)의 반복은 세계사가 보여주는데

이 땅에서 삶을 마친 가난했던 우리 선조들
지금 잘 살고 있는 후손들을 바라본다면
얼마나 감격에 젖을 것인가?


그런데,
작금(昨今)의 우리 사정은 침울하고.

역사의 현장 남한산성에 와서
느끼는 것은 많은데 할 말을 잊었다.
그저 후손들이 정신차리고
나라가 잘 되기만을 빌어 볼 뿐이다.


산천은 조용하고 무심한 것 같은데
잔디밭 어린이들의 웃음 소리가
내 등뒤에서 자꾸 나를 따라온다.


-  (  2017.03.01  )





 남한산성 행궁:


10:23분에 남문 주차장에 도착하니 벌써 차들이 꽉 차있네....간신히 우측에 한 자리가 있어 주차가 가능하였다. 남한산성도 9시 이전에 빨리 도착하여야 겠다는 생각이다.  

주차장 코너에 있는 입간판...청량산 방향의 음식점들이다...


-> 웃삼거리 지역....고구려, 장수촌, 다인주택, 밤나무집, 산성대가, 미래건설주택, 인계수석실, 산성갤러리, 백련회관, 월성관, 사랑방카페, 일송정, 도토리산장, 한마당, 만해기념관.



남한산성의 중심 거리인 '종로 로터리' ... 지방에서 왔을까? 일단의 관광객들이 내리고 있다.


수어장대 가 있는 청량산 기슭...앞의 초가는 남한산성 안내센터...뒤에 남한산성 행궁이 보인다... 

주차장의 차들....남문에서 계속 차들은 밀려드는데 어디에 추차할꼬?



남한장...이정표... -> 남한산성 행궁, 매표소.


남한산성 방문자센터....초가집이 정겹다...오랜만이다...반갑다...우리나라 초가집...



인화관 담벼락에 만남의 장소....


행궁 매표소...

왼쪽 웃삼거리 방향으로 가본다... 커다란 음식점 남한장이 니온다..무슨 요정 같군...


웃삼거리 풍경이다..

인화관(人和館) 정문...


인화관 (人和館)... 거창한 집인데 문은 잠그고 있다...한옥은 참으로 멋 스럽다. 세계적으로 이러한 건축 스타일이 어디 있겠는가?


인화관 너머로 멀리 동장대터 가 있는 500m고지 산 봉우리를 바라본다.



인화관을 측면에서 바라보는데 참 멋있다....추녀의 완만한 곡선을 어떻게 표현하여야 할가?


인화관(人和館): 남한산성 행궁 동쪽에 위치한 인화관은 사신 등 손님들이 머무는 객관(客館)이었다. 한양에 계신 왕을 위해 매월 2차례 예를 올리기도 하고, 중앙에서 관리가 오면 묵을수 있는 용도라고 한다. 인화관은 인조 2년(1624)에 세운 것을 순조 29년(1829)에 수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 뒤 빈터만 남은 것을 새롭게 복원을 추진하여 2015년에 완공되었다. 


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는 2016년 처음으로 경기도민을 대상으로 인화관에서 전통혼례식을 진행하였다. 경기도 거주 3년 이상인 부부는 누구나 참가 신청이 가능하며, 신청 접수 후 혼례 대상자를 선정하여 혼례식 진행, 축하공연, 사진촬영 및 앨범제작 등을 지원하였다.

 -  전통혼례 문의: 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 홈페이지 (http://nhss.ggcf.kr/), 문의 전화 (031-777-7525)



남문 주차장 방향을 바라보면서....





남한산성 행궁:


멀리애서 본 남한산성 행궁의 모습은 참 대단하다. 위엄이 있어보인다. 마치 경복궁이라도 가는 것 같다....


행궁은 임금이 궁 밖으로 행차할 때 임시로 머무르던 행궁(行宮 ) ( 별궁(別宮) 또는 이궁(離宮) ) 이 있다. 고려 및 조선 시대 역대 임금들은 본궁 이외에 전국에 행궁을 세우고 지방 순행시 처소로 사용하거나 전란 발생시 피난처로 사용하기도 했는데, 고려시대에 지리도참 사상으로 많은 행궁들이 세워졌다. 고려시대의 행궁으로는 문종 때의 좌우궁(左右宮), 예종 때의 용언궁(龍堰宮), 인종 때의 대화궁(大花宮), 의종 때의 수덕궁(壽德宮) 등이 있으며, 조선시대의 행궁으로는 세조 때의 온양행궁(溫陽行宮), 인조 때의 광주행궁(廣州行宮)•강화행궁(江華行宮), 숙종 때 남한산성의 행궁, 정조 때의 수원행궁(水原行宮) 등이 있다. 남한산성 행궁은 후금세력의 위협이 커지고 이괄의 난을 겪으면서 착수되었다. 1624년에 와서 인조 왕은 총융사(摠戎使) 이서(橷曙)에게 명하여 산성을 쌓도록 하고 광주부 읍치를 산성내로 옮기도록 했다. 이에 따라 광주부의 객사, 관아 등이 모두 성내로 이전되었으며 이 때 객사 뒤편에 행궁을 지었다. 1636년(인조 14)에 국호를 청(淸)으로 고친 후금(後榨)은 20만 대군을 이끌고 침략했으며 왕은 세자와 모든 관료를 거느리고 남한산성으로 피하여 행궁에 머물며 항전하였으나 추위와 굶주림으로 47일 만에 항복한 비극의 역사가 있었다. 10년 간 복원공사를 거쳐,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잠정 등재 되었고, 지난 2012.5.24 드디어 100년 만에 복원이 완료되어 일반인들에게 공개되기에 이르렀다.



양 두머리....산성마을 종로방향....



행궁 정문...., 아차, 매표를 잊었군...매표소로 다시 간다...


매표소...

관람시간 을 잘 숙지하여 일정을 짜야한다....



○관람요금 (개인) 어른: 2,000원, 청소년(7~8세) 1,000원/ (단체) 어른 1,600원, 청소년(7~8세) 800원.

○매표,관람시간:  하절기(4~10월) :  매표시간 9:30-17:30, 관람시간 10:00-18:00 /

                         동절기(11~3월) : 매표시간 9:30-16:30, 관람시간 10:00-17:00.

○매표회차1회: (평일) ---  (공휴일) 10:00 /  2: (평일) 11:00  (공휴일) 11:00 /  3: (평일) ---  (공휴일) 12:00 / 

                 4: (평일) 13:00  (공휴일) --- /  5: (평일) 14:00  (공휴일) 14:00  /  6: (평일) --- (공휴일) 15:00  /

                 7: (평일) 16:00  (공휴일) 16:00 .



매표소 곁의 남한산성 종각....


남한산성 종각천흥사의 동종..


남한산성의 천흥사 동종은 높이 170cm, 입지름 100cm로 몸체에 세겨진 명문  ‘ 聖居山天興寺銅鐘總和二十八年庚戌二月日'_성거산 천흥사 동종 총화 이십팔년 경술이월일’ 에 따르면 고려 현종1년(1010)에 주조된 것으로 원래는 태조4년(921)에 태조가 창건한 충청남도 천안시 성거읍 천흥리 천흥사에 있었다고 한다. 남한산성으로 언제 옮겼는지 알 수 없으나 조선시대 산성 내 시간을 알려주는 역할을 했으며 이후 일제강점기 이왕가박물관에 옮겨지고, 해방이후 덕수궁 미술관을 거쳐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엇다. 현재 종은 원래의 모양및 형태 그대로 재현 한 것으로 타종시 울림을 좋게하기 위하여 약 3배 정도 더 크게 제작하였다. 



다시 행궁 앞으로....

행궁 정문 한남루와 수문장...


漢南樓_한남루...남한산성 행궁의 정문이다...


한남루 (1892-1893) 경기도 박물관 소장:  1892-1893 사이 이폴리트 프랑뎅 (Hipplite Frandin) 에 의하여 찍은 남한산성 행궁 한남루 사진이다. 남한산성 한남루는 유수 홍억(洪憶)에 의해 정조 22년(1798)에 세워졌으며, 왕이 머무는 행궁의 하궐 앞에 자리한 외삼문 주 출입구이다



한남루를 들어서자 보이는 경치이다....정방형 연못이 있었다.


외삼문....오른쪽은 북행각...


한남루를 뒤돌아 보다....


외삼문 ....


오래된 빛바랜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옛 모습의 시설물들과 옛 사람들의 행색을 볼 수 있었다.



천흥사 동종....


단기 4248.4.23  放南漢山城 守禦將臺_방남한산성 수어장대.. 남한산성 수어장대 방문 기념 사진인 것 같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다산(多産)이다. 단란한 가족의 한 때이다....


1959년 산성리 청년일동 수어장대 방문 기념 사진...이중화 제공.


* 수어장대(守禦將臺)- 수어장대는 장수가 지휘와 관측을  위한 군사적 목적으로 인조2년(1624)에 지어졌다. 원래는 1층이었으나 1751년 유수 이기진이 영조의 명령으로 2층으로 지었다. 외부편액은 수어장대, 내부편액은 '무망루(無忘樓)'라고 제작 설치하였다. 잊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침괘정...일제강점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침괘정(枕戈停 ) - 침괘정은 정확하게 지어진 시기나 용도를 알 수 없으나 1751년 새롭게 고쳐쓰고 '침괘정'이라 이름을 붙엿다. 기록에 의하면 백제 온조왕이 사용하던 공간이라고도 하고, 화약을 찧는 돌절구를 보아 무기제작소 사무를 관장하는 곳이라고도 한다.   



숭렬전 ...일제강점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숭렬전( 崇烈殿)-  백제 시조 온조왕 ( BC 18~AD 28 )과 남한산성을 쌓을 때 책임자였던 총융사 이서를 모신 사당이다. 숭렬전은 1638년에 지었으며, 1795년 정조임금이 '숭렬전'이라 이름을 내려주었다. 신분이 다른 왕과 신하를 함께 모신 것은 특이한 일로 병자호란(1636년0시 인조임금의 굼과 관련이 있다. 매년 음력 2,8월에 제향을 지내고 있다.

 


현절사 ...1960년대. 


* 현절사(顯節祠)-  병자호란시 청나라에 항복하기를 끝까지 거부한 삼학사인 홍익한, 윤짖, 오달제 등의 우국 충절을 기리기 위해 지어진 사당이다. 매년 음력 3,9월에 제향을 지내고 있다.  



연무관......일제강점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연무관(演武館)- 남한산성과 함께 인조3년91625)에 군사 훈련을 하기 위하여 건립한 지휘소이다.  



수어장대......일제강점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남한산성 동문 전경.....일제강점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대남문 성외(城外).


남한산성 전경 ...일제강점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벌거숭이 산과 성곽이 인상적이다...


남한산성 전경..

남한산성 행궁 상궐 외관...1909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남한산성 북문 전경...1909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오래된 사진을 보며 감회에 젖어보다 다시 행궁을 답사한다..


외행전이 출입문 공간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남한산성 행궁 외행전...



외행전...외행전은 하궐의 중심 건물로 인조3년(1625)에 준공되었다. 정면 7칸, 측면 4칸으로 상궐 내행전과 동일한 전체 28칸의 건물이았다. 바닥면적이 142㎡로 내행전 167 ㎡ 보다 적고 내행전에 비해 6m정도 낮은 곳에 지었다. 병자호란 당시 병사들에게 음식물을 베푼 호궤를 이곳에서 행하였고, 한봉에서 청나라군이 홍이포를 쏘아 포환이 외행전 기둥을 맞혔다는 기록이 있다. 죄승당이 지어지기 전에는 광주부 유수 집무실로 사용되었다.  현재 외행전은 2010년에 중건 된 것으로, 건축 당시 통일 신라시대 유구가 확인되어 건물지와 기와를 쌓은 곳 일부를 보존하고 있다. 



내행전 오른 쪽 방향...일장각이 담 너머 보인다...


내행전의 뜨락을 바라본다...





좌승당...



내행전...

내행전...상궐 내행전은 왕이 잠을 자고 생활하던 공간이다. 정면 7칸 측면 4칸 전체 28칸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간운데 4칸은 대청으로 되어있고 좌우 2칸은 온돌방과 마루방이다. 내행전 위 공포는 새의 날개처럼 된 부재를 두개 겹쳐쌓은 이익공 형식으로 행궁내 건물 중 가장 격식이 높다.


임금님 용상...


내삼문...외행궁 방향  전면을 바라본다...


남행각...


행궁 최 상부 지점이다...오래된 나무 두 그루가 서있다.

재덕당...오른 족은 내행전 뒷면이다..


상처투성이 오레된 나무 한 그루...

재덕당...



좌승당 정면...


명위문...이위정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이위정...

행궁을 가장 위 부분에서 바라본다.. 

남문 쪽 방향...



이위정 측면에서 행궁을 바라보다...


다시 한남문으로,...


행궁 남쪽의 멋진 나무 한그루...


남문 방향...만해기념관 방향으로...


측면으로 본 한남한문...


행궁을 나서면서 바라본 종로 로터리 방향...왼쪽에 남한산성 종각....


남문 주차장 방향...메인 주차장이다...



점심식사...

  

  


'먹어야 산다'  음식점...음식점 간판하나 특이하다....진리의 말씀이다...우리는 살기 위하여 먹어야 한다. 아주 현실적인 말이다. 물 말아서라도 먹어야 한다 ...이 음식점 주차장 출입구 바로 앞에 있었다. 어디에서 점심먹지? 하다가 들어가서 옛날식 순두부 백반과 잔치국수를 시켜먹었는데, 맛이 베리 굳...아주 좋았다. 생각지 않게 잘 먹었다. 음식이 깔끔 정갈하며 한끼를 잘 해결할 수 있는 집이었다. 음식점 내부도 옛스런 한옥 분위기가 난다. 앞으로 등산이나 탐방후 식사와 막걸리 한잔 하고 싶다. ...안성 마춤의 집 같다. 음식값도 6000~7000원 이다.




다시 주차장...



주차장 입구 남한산성 도립공원 안내도...


다시 바라본 남한산성 종로 로터리 근처 잔디밭....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마치 상춘객들 같은 모습이다. 봄이 오는 것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