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섬유원지 ~ 덕소) 라이딩 - ( 2018.05.30 )
(뚝섬유원지 ~ 덕소) 라이딩 - ( 2018.05.30 )
남양주 덕소 삼패지구
distance: 19.10 km.
riding time: 01:28 hrs.
average speed: 12.9 km/hr.
max speed : 37.8 km/hr.
calories burned: 417 kcal.
riding course: 뚝섬유원지- 잠실대교- 잠실철교 - 천호대교- 광진교- 구리토평지구 한강공원- 강동대교- 왕숙천- 미음나루- 수석동- 덕소 삼패지구 한강공원- 덕소역.
오늘 오후 집 근처 뚝섬유원지에서 구리 토평지구, 왕숙천을 지나 남양주 덕소역까지 한강변을 따라 라이딩을 해보았다. 날씨는 완전 여름을 방불케 했다. 주변의 모든 풍경이 여름의 그것이다. 하늘의 흰 구름도, 검푸른듯한 한강물도, 길가에 피어있는 여름꽃들도 지금이 여름이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의 오래된 청마(靑馬)가 속도가 나지 않고 무언가 정비를 해야하는 시점에 왔는지 힘이 들어 탈 수가 없어, 우리 작은 아들 자전거 적토마(赤兎馬)를 끌로 나갔다. 뒷 타이어 튜브 바람이 조금 빠져 소형 휴대용 펌프로 바람을 넣으려니 귀찮고 힘이 든다. 그렇지만 자전거를 끌어보니 힘이 들지 않고 부드럽게 잘 나간다. 그동안 자전거 가벼운 것만 생각하고 전철의 계단이동이 쉽다고 나의 청마를 끌고 다닌 것이 후회된다.
가벼운 바람에 노란 금계국의 꽃 봉우리들이 흔들리고, 강물 위에는 잔 물결이 인다. 자전거도 부드럽게 나가고 너무 기분 좋게 라이딩을 하였다. 특히 토평지구, 삼패지구를 지날 때의 드넓은 공간에 어떤 해방감을 느낀다. 삼패지구의 자작너무 숲은 그 백색의 표피를 하고 일렬로 도열해 있는 것 같았다. 삼패공원에는 내가 좋아하는 분 다산의 형제에 대한 안타까운 시비도 있다. 읽을 때 마다 감동적이다.
마지막으로 덕소역 근처의 삼익아파트 상가건물 슈퍼에서 캔 맥주 한잔을 사서 어린이 놀이터 그늘 벤치에 앉아 목을 축인다. 너무 시원하다. 부모들을 따라나온 조그만 어린이들이 조잘조잘 이야기 하며 잘도 놀고 있다. 오늘은 평일이지만 덕소역에 사정을 하여 전철로 집까지 이동하였다. 오늘 자전거 라이딩 베스트! 지금 한강은 여름 꽃들의 잔치가 한창이다. 아름답다. 한강의 공원마다 꿈 속 같은 풍경이다.
뚝섬유원지~잠실대교:
뚝섬유원지 분수광장...하늘의 하얀 구름이 여름 분위기를 말해준다...
잠실운동장 방향....
엇, 이 양반 여기 꽃들은 어디에 갔다 놓았나?
나무 그늘 아래 한가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장미원을 지나면서...
장미는 왜 붉은가? 왜 가시를 숨기고 있는가? 그것이 알고 싶다.
롯데월드타워와 하늘의 구름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금계국....흐드러지게 피어나는 여름꽃....
잠실대교~구리시계(市界):
광진교 아래를 지나 광진정보도서관, 워커힐호텔 방향으로 달려간다...광진정보도서관은 한강 상류 경치를 보며 독서를 할 수 있는 우리나라 유일의 전망 도서관이다.
이 코스를 달릴 때 언제나 쉬어가는 전망대이다..아스라한 한강의 상류 경치를 바라보는것 만으로 나는 내 마음이 너무 좋아지는 곳이다. 언젠가 우리 손자를 자전거 테워 같이 달려보고팠던 곳이다. 우리 손자,손녀가 그립다....
내가 젊었었던 한때를 살았던 강동구 암사동 지역...부억에서 방으로 들어가는 단독 코너에서 살았는데 그 때 생각하면 마음이 아련해 진다. 우리 집사람이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 가슴이 아파온다. 나는 우리 집사람에게 크게 빚진 사람이다. 어떻게 내 생애 동안 우리 집사람을 위하고 행복하게 해줄까 하는 것이 나의 남은 인생의 의미이다. 거창한 것도 아니고 나의 부족함으로 힘들게 했던 부분에 대한 집사람에 대한 나의 도리이다.
서울과 구리의 경계선.....'안녕히 가세요'의 뜻의 헤어질 때 쓰는 각국의 말이 쓰여져 있다. "さようなら", " good bye" 등 글씨도 보인다. 이별은 언제나 애절하다. 아쉬움과 언제 만나게 되나 하는 미련이 남아 애잔한 마음이 되게 한다.
토평지구 한강공원:
구리 토평지구 한강공원으로 넘어간다...경계를 넘는다는 것은 언제나 기대가 큰 기분을 갖게한다. 금게국은 왜 이렇게도 아름다우냐?
광진교, 천호대교 방향...잠실의 롯데월드타워는 언제나 위용을 자랑한다. 우리의 국력을 상징하는 듯 하다. 일본이란 날에서 힘들게 돈 벌어 우리나라에 기업을 일으켜 일자리를 만들고 나라의 경제에 큰 힘이 되어준 경제보국의 롯데 창업주에게 늘 존경심을 갖게된다. 이런 사람이 진정한 애국자이다.
강변북로 아래에서 커피 한잔을 하려한다. 강동구 고덕지구 방향의 아스라한 경치가 너무 좋다...하늘의 구름이 내 마음 같다. 어디론가 가고 싶다.
토막나루.... 구리시 아천동 43-4....나무토막을 엮어 만든 배가 드나드는 곳이라 유래되었으며, 한강 맞은편의 암사 천호동으로 가는 소규모 나루터로 1960년대 제방건설로 사라졌다. 나루에는 나룻배가 있어서 강 주변 마을 사람들이 이 나룻배로 강을 건너 장 보러 가기, 관청 일 보기, 학교 다니기, 농사 짓기, 물건 싣기 등을 하며, 사공이 없을 때는 양쪽 강기슭에 튼튼한 쇠밧줄을 걸어서 그 줄을 잡아당기며 나룻배를 움직이기도 하였다. - <구리시>
<公無渡河歌_공무도하가>
임은 물을 건너지 마오
임은 기어코 물을 건너다가
물에 빠져 죽으셨네
임은 장차 어이하리오
公無渡河_공무도하 公竟渡河_공경도하
墮河而死_타하이사 將奈公何_장내공하
*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 우리나라 시가 사상 가장 오래된 것이다. 고조선 시대 뱃사공 곽리자고(藿里子高)의 아내인 여옥(麗玉)이 지은 노래라고 한다.
이 시가(詩歌)를 보고 있으면 너무 슬픈 마음이 든다. 한강을 한번 더 바라보게 된다. 마누라 말을 듣지 않고 끝내 강을 건너다 익사한 사내에 대한 한 여인의 원망이 담겨있는 것 같다. 하늘과 같은 지아비가 죽었는데 어찌 원통하지 않으랴. 일이 이지경이 되었는데 남편이여 어찌할꼬? 우리 식구는 어떻게 하란 말이오? 그러나 당신은 가엾소...그런 여인의 탄식이 들리는 듯 하다.
구리시교통상황...금계국은 왜 이리도 사람을 힘들게 하는가?
너무 아름다운 길이다...꿈 속같은 꽃 길이다...
구리암사대교....
<- 한다리마을입구 삼거리, <- 장자호수공원, ↖ 구리둘레길2코스, ↘ 구리둘레길 1코스...
참나무
알프레드 테니슨
젊거나 늙거나
저기 저 참나무같이
네 삶을 살아라
봄에는 싱싱한
황금빛으로 빛나며
여름에는 무성하고
그리고, 그러고 나서
가을이 오면 다시
더욱 더 맑은
황금빛이 되고
마침내 나뭇잎 모두 떨어지면
보라, 줄기와 가지로
나목이 되어 선
저 발가벗은 힘을.
The Oak
Alfred Tennyson
Live thy Life
young and old,
like you oak,
Bright in spring,
living gold;
Summer-rich
Then; and then
Autumn-changed
Soberer-hued
Gold again.
All his leaves
Fall'n at length
Look, he stands,
Trunk and bough
Naked strength.
○ 알프레드 테니슨 (1809~1892):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 계관 시인이다. 아름다운 조사와 운율을 담은 작품들로 세계적으로 사랑받았다. 1884년 남작 서임. 시집: <시집 Poems>, <공주 The Princess> , < 인 메모리엄AHH, In Memoriam A.H.H>, <갈라진 벽에 핀 꽃 Flower in the crannied wall>, <모래톱을 넘어서 Crossing the Bar> 등 다수.
구리 토평한강공원 입구의 대형 태극기....맑은 하늘 아래 펄럭이는 태극기...이런 태극기는 잘 볼 수 없다.
흘러가는구름 하나에도 의미를 느끼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세종포천고속도로 건설 현장..... 세종특별자치시~경기도 포천시 간의 고속도로이다. 구리~포천 구간인 구리포천고속도로가 2012.6.30일에 착공되었으며 2017.6.30일 전 구간이 개통되었다. 민간투자사업이다. 세종시~구리 구간 중 안성~성남 구간은 2022년 완공 예정이고, 세종~안성 구간은 2025년에 완공 예정이다.
경비행기도 보이네?
왕숙천 을 향하여...
꽃이여, 꽃이여....
갈퀴나물꽃?
보리피리 - 한하운
보리 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ㄹ 닐리리.
보리 피리 불며
꽃 청산
어릴 때 그리워
피ㄹ 닐리리.
보리 피리 불며
인환(人篻)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
피ㄹ 닐리리.
보리 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幾山河)
눈물의 언덕을
피ㄹ 닐리리.
* 인환(人篻): 사람이 살고 있는 세계.
* 기산하(幾山河) : 무수한 산하.
○ 한하운(韓何雲)(1919~1975): 시인/ 함남 함주에서 출생/ 본명은 태영(泰永)/ 중국 베이징(北京)대학 농학원을 졸업/ 함남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다가 나병의 재발로 사직하고 고향에서 치료하다가 1948년에 월남/ 1949년 제1시집 《한하운 시초(詩抄)》를 간행하여 나병시인으로서 알려짐. 이어 제2시집 《보리피리》를 간행하고, 1956년《한하운시전집》을 출간하였다. 1958년 자서전 《나의 슬픈 반생기》, 1960년 자작시 해설집 《황토(黃土) 길》을 냈다. 자신의 천형(天刑)의 병고(病苦)를 구슬프게 읊은 그의 시는 애조 띤 가락으로 하여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렸다.
토평지구여, 안녕히...
미음나루:
강동대교 방향 ...왕숙천, 미음나루 방향으로 달린다...
강동대교..
다리 아래로 조금 보이는 곳이 미음나루이다...
왼쪽 미음나루...중간 덕소...오른쪽 하남시 미사리 인근....
구리타워...그리고 왕숙천변 둔치...
왕숙천을 건너다......
왕숙천 상류 방향...구리 도농방향...다산신도시 아파트 건설중...
미음나루를 향하여 ...
하남지구 아파트들...
미음나루....이곳은 구리시 음식특화구역이다..
초대...한정식 031-555-7318...
미음나루에서 오는 길...
이야기 안내판.....
미음나루 이야기..
미음나루는 경기도 남양주시 수석동 외마음에 있는 나루터로, 남양주시와 하남시 미사리를 이어주는 한강나루입니다. 미음나루는 나루터 중 광나루에 버금가는곳으로 지금도 나루터 흔적이 남아 있지만 콘크리트로 둑을 쌓아놓은 상태입이다.
'동국여지승람'과 '신동국여지승람'을 살펴보면 '음진의 주위 동쪽 70리에 있어 광주로 통한다'고 나와있는데, 미음진은 평구역(삼패동에 있던 역)에 이어 관주를 잇는 나루터로 남북교통의 요지였읍니다.
조선시대 하남 일대 한강변 곳곳에는 나루가 있었는데 군량미나 둔전세를 하역하여 남한산성으로 운반하던 포구였읍니다. 가장 대표적인 도미진(渡米津) 은 흔히 두미나루.두미진이락도 하였는데, 현재의 배알미동 팔당댐 부근으로 사명소로와 평해대로를 이어주었읍니다. 도미진 하류에 미호진(渼湖津)이 있었는데 흔히 미음나루, 둔지나루라고도 불리었읍니다.
미음나루는 석실서원으로 가는 길에 있는 중요한 교통의 요지로 주위에는 김창협이 살았다는 삼각주산이 있읍니다. 따라서 한강을 따라 내려오던 배들이 미음나루에서 석실서원에 필요한 물건을 내린 것으로 보입니다. 이 주변은 겸재선생이 '삼주삼신각' 이나 '석실서원'을 그린 것 처럼 주위에 풍광이 뛰어나기로 유명하며, 특히 석실서원 앞에 있는 한강을 미호(渼湖) 리고 하여 한가이 마치 호수같이 보인다고 하여 아름다움을 극찬하였읍니다.
토방 라이브 cafe..
경기도 음식문화거리...갤러리가든, 쥬얼리 cafe, 조림방, 오동나무집, 버드나무집,
여기서 부터 비탈을 올라 산길의 자전거도로를 따라 고개를 넘어가야 한다.
뒤돌아 본다...
cafe 어나쥬얼리...기든 갤러리....오동나무집...제주밥상...
강마을부동산 031-555-7704...
해피동산 고추장 삼겹살 화로구이....
고개가 보인다....-> 자연과 함께하는 구리성서교회...
고개마루에 있는 이야기 안내판...조선 초기 문신 조말생의 이야기 이다...
○ 조말생(趙末生) (1370~1447): 조선의 문신. 자(字)는 근초(謹初)·평중(平仲), 본관은 양주(楊州)이다. 시호는 문강(文剛)이다. 1401년 태종 때 조선 개국의 인재 발탁의 과거에 문과 장원 급제하여 화려하게 등장하였으며, 태종, 세종 두 임금을 도우며 35년간 정사를 본 인물이다. 태종의 사람으로 각별한 총애를 받았으며 세종 때 예문관 대제학을 거쳐 판중추원사에 이르렀다. 병조판서도 역임한 문무겸비의 명신(名臣)이였다. 두 임금 사이를 조율하고 상황을 주시하면서 권력을 유지한 능수능란하고 현명한 인물이란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세종 때 민간의 노비소송을 봐주고 뇌물로 노비 24명을 받은 혐의의 장오죄(贓汚罪)인 오늘날의 교수형에 처하는 중대한 뇌물수수죄를 범하였으나 신하들의 상소에도 불구 세종은 이를 허하지 않고 귀양을 보냈다. 국법의 엄중함에도 결국 2년후 세종은 조말생을 다시 원상회복 시키고 60세가 넘은 나이에 외직(外職)인 평안도 접경 지역의 오랑캐를 공략하려는 북별의 정책에 이바지 하도록 관찰사로 임명하였으며 그 후 죽을 때까지 사직을 허하지 않았다. 종죄인도 국익을 생각하고 살리는 세종의 지혜를 더시 보게된다. 그러면서도 정승에는 결코 올리지 않았다. 뇌물죄에 대한 정치인의 책임을 끝까지 물은 것이라 볼 수 있다. 유능한 명신이었고 국가에 크게 이바지 하기도 하였으나, 부패정치인이란 큰 오명을 남기기도 한 사람이다. 원래 조말생 묘역은 지금의 금곡동에서1938년 신도비도 같이 옮겨왔다고 한다. 이 신도비는 남양주시 향토유적 제3호로 1756년(영조 32)에 건립되었다고 한다. 석실마을의 석실이란 명칭은 이 마을이 조선시대 석실서원이 있던 곳이라 유래했다고 하는데, 안동 김씨인 김상용, 김상헌의 학식과 충절을 기리기 위해 후학들이 세운 서원이라고 한다. 석실서원은 경기 일원의 유림 근거지였으나 조선후기 대원군이 서원 철폐정책시 폐허화 되었다.
내리막길...남양주 수석동으로 내려가는 고갯길이다..
남양주 수석동...
수석리 토성....경기도 기념물 제94호/ 경기도 남양주 수석동:
이 토성은 한강을 건너는 나루를 지키기 위해 알맞도록 한강 북쪽 산봉우리 위에 축조된 백제시대의 유적이다. 해발 100m 쯤의 구릉 위에 타원형을 이룬 작은 규모의 토루는 둘레가 145m에 불과하다. 성벽은 지금도 바깥쪽 높이가 7~8m나 되어 우리나라 초기에 쌓여진 성터들과 일반적인 형태가 같다. 이곳에서 멀지않은 한강변 구릉지대에는 비슷한 양식의 성터가 많이 분포되어 있어, 백제초기의 중심적 취락이 잇었음을 알려준다. 성벽은 백제 성터에서 흔히 보는 판축의 방법으로 이루어진 듯 하며, 성의 안팎에는 삼국시대의 그릇조각들이 발견되고 있다. 이 성터는 백제가 한강 유역을 빼앗긴 다음에는 고구려와 신라에서도 사용했을 듯하나, 신라의 통일 이후에 폐기되어 오늘에 이르는 것으로 보인다.
보호수...느티나무, 수령 210년, 수고 19m...
삼패지구 한강공원:
미음나루와 수석동의 경계가 되는 저 낮은 산을 넘어왔다.
하남 방향...
여기 자전거길은 조용하고 거칠 것이 없다...
여기 다리가 놓이므로 왕래가 쉽고 장마등 물이 불어나도 지장이 없다..
넓은 삼패지구....야구장....한강가의 꽃들..
삼패야구장......
자작나무 숲 길..
꽃양귀비...
삼패한강공원...
다산 정약용 선생의 시 한편....
가을날 약전 형님을 생각하며 (秋日憶舍兄 _추일억사형)
- 정약용 (1762~1836)
아득히 먼 신지도 섬도 眇眇薪支苫 -묘묘신지점
분명히 이 세상에 있겠지 分明在世間 _ 분명재세간
수평으로 장보고의 바다와 이어졌고 平連弓福海 _ 평련궁복해
대각선으로 고금도와 마주했네 斜對鄧龍山 _ 사대등용산
달은 지는데 소식은 없고 落月無消息 _ 낙월무소식
뜬 구름만 저절로 오고 가네 浮雲自往還 - 부운자주환
어느 해에 서울 집에 모여 앉아 他年九京下 - 타년구경하
형제끼리 기쁜 얼굴 마주하리 兄弟各歡顔 - 형제각환안
*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선생과 둘째 형 손암(巽庵) 정약전(丁若銓) 사이의 형제애를 보여주는 시다. 두 사람이 함께 유배를 갔다. 정약용이 형님이 보고 싶어 읊은 ‘추일억사형(秋日憶舍兄)’이란 시는 얼마나 애절한가? 두 형제가 오손도손 만나기를 희구하고 있다. 동생 약용은 강진으로, 형 약전은 나주로 유배되는 신세에서 서로를 그리워 하고 있다.
○ 다산 정약용 (1762~1836):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실학자. 다산은 16세에 풍산 홍씨와 결혼하여 6남3녀를 낳았다. 그러나, 4남 2녀가 요절하고 2남 1녀만 장성할 수 있었다. 27세의 꽃다운 며느리를 앞세우기도 하였다. 1801년 신유사옥으로 형제 중 3째 정약종은 참수당하고, 2째 정약전과 정약용 다산은 유배 당한다. 유배 당시 다산은 40세였다. 장남은 18세, 차남은 15세, 딸은 8세 였다. 이들은 폐족(廢族)이 되어 벼슬길에 나아갈 수 없는 거의 멸문지가(滅門之家)가 되었다. 다산에게는 이러한 수난은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다산은 유배지에서 나마 이러한 역경을 극복하고 학문에 전념하였으며, 18년 후 1818년 9월에 유배에서 풀려나 향리에 돌아오게 되었다. 이런 것을 볼 때 인간은 어떠한 어려움에 처하여도 마음을 굳게먹고 성실성을 유지하며 참고 또 참으며 인내하면 결국엔 좋은 결과를 볼 수 있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팔당댐 위 능내리에는 정약용 선생의 생가와 묘소가 있다. 실학박물관과 다산공원 등 아름다운 곳으로 마현정다산마을이 있다.
남양주시 한강공원 삼패지구...
어린이 놀이터...
붉은 색의 꽃양귀비...
앗, 고래다...
덕소 삼익아파트...저 단지를 통과하여 덕소역으로 나갔다..
덕소역....오늘의 라이딩을 마침니다...한강은 바람이 시원하고, 꽃들이 만발해 있었읍니다. 모든 것은 계절이 있고, 한 때를 자랑하게 되어있나봅니다. 우리 인간도 청춘을 자랑하게 됩니다. 청춘이 한 때 입니다.
"오늘은 당신의 남아있는 인생이 시작되는 첫날입니다." - <영화 아메리카 뷰티 >
나는 이 말을 믿으려 합니다. 이 말이 새로운 도전이 되며 자극이 됩니다. 사실 우리는 새로운 인생을 매일 시작하고 살아가는 것이겠지요? 우리는 눈 뜨면 무엇이든 해야합니다. 움직여야 살아있는 것입니다. 어느 사업가는 세상은 넓고 할일은 많다고 했읍니다. 나는 이제 크게 움직이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작은 몸짓으로나마 어떤 형태이든 활동을 하려합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무가치하게 보일지라도 나에게는 큰 보람을 주는 것입니다. 타인의 눈을 의식하지 않으려 합니다. 지금까지 나의 삶은 타인의 눈에 맞추어 살아왔읍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닙니다. 내가 하고싶은 것이면 무엇이든 해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