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구릅/my cycle life

하남 위례강변길, 덕풍천, 광주향교 라이딩- ( 2022.05.29 )

by the road of Wind. 2022. 5. 29.

하남 위례강변길, 덕풍천, 광주향교 라이딩

- ( 2022.05.29 )

 

하남 위례 강변길을 라이딩 해보았습니다. 그리고, 당정뜰 수변공원 강변길을 따라 달리다, 덕풍천 하류에 접어들고, 그리고  덕풍천을 따라 광주향교를 끝으로 라이딩을 마쳤습니다. 강동대교, 미사대교를 지날 때는 주말 휴일에 수도권 고속도로 싱황이 많이 어려우리라 생각되었고, 집 가까운 곳에서 한강변을 이렇게 편하게 달려본다는 게 너무 좋은 것 아닌가 생각해 보기도 했습니다. 광주향교에서는 아들의 픽업을 받았습니다. 

 

○ distance: 17.2 km. 

 riding time: 01:06 hrs. ( total time: 1:28 hrs )

○ aver speed: 14.5 km/hr.
○ max speed: 30.5 km/hr.

○ calories burned: 398 kcal.

 Temp: 29 ℃.

○ riding course:  고덕천 - 고덕천교 - 강동대교 - 가래여울마을 강변쉼터 - 하남 선동교차로 - 선동 둔치 자전거로 - 미사대교 - 하남 당정뜰 강변길 - 덕풍천 - 덕풍1교 - 덕산교 - 교산교 - 광주향교.   

 

 

▶ 고덕천 -> 강동대교:

고덕천

 

 

고덕천 하류, 고덕천교

 

 

서울 강동구 강일지역

 

 

현수교의 다리(교상)가 곧 이어질 것 같다.

 

현수교는 주탑에 이어지는

수 많은 선들에 의해 교량 상판이 지지되는 긴 다리로서

미국 센프란시스코의 금문교를 떠올리게 된다. 

교량의 길이가 400m 이상일 경우 건설시 경제적인 잇점이 확실하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현수교에는 울산대교, 남해대교, 영종대교 등이 있다고 한다. 

 

 

↖ 산책로, ↗ 자전거로

 

 

비단길이다. 새로 포장된 도로

 

 

강동대교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

 

 

▶ 강동대교 -> 미사대교:

 

 

가래여울마을 한강변 동영상

 

 

 

구리 '미음나루 음식문화특화거리'  방향

 

 

강동도시텃밭, 주말농장

 

 

등나무집, 가래여울마을 음식점들

 

 

가래여울마을 강변쉼터

 

 

 

가래여울마을 강변 편의점

 

 

-> 가래여울전통마을

 

 

가래여울마을 주말농장

 

 

주말농장

 

 

여기부터 하남시

" 살기좋은 도시, 하남 " 

 

 

하남시 선동 교차로

 

 

한강

 

 

하남 선동지구 둔치 자전거로, 산책로

 

 

잉어산란지

 

 

미사대교 ( 서울양양고속도로 )

 

 

▶ 미사대교 -> 당정뜰 입구:

 

강 건너, 남양주시 덕소지역

 

 

↑ 일방통행

 

 

한강 공공선 선착장

 

 

한강감시제3초소 

 

 

한국의 아름다운 하천 100선

 

한강은 자연형 하천으로 복원하여 사람과 동.식물, 자연이 공존하는 하천으로 28,875개소 하천 중 "한국의 아름다운 하천 100선"에 선정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한강을 아름답게 가꾸고 보전합시다. - 2009 하남시장.

 

※ 미사리 조정경기장 또는 한강변 산책시 대중교통 이용 방법

 

  - ( 한강변: 미사동차고지 하차,  미사리조정경기장: 경정장 후문 하차 )

 

'미사동차고지' 버스 정류장:

1-4번 버스 (일반):
- 주요노선:  < 차산리 - 마석역- 평내호평역 - 아차울마을 - 워커힐입구 -천호역 - 강동역(중) - 미사역 - 경정장후문 -  > 미사동차고지 >,
-  배차간격 10~20분.

 3-1번 버스 (마을):
- 주요 노선: < 한솔리치빌2.3단지 - 미사역 - 경정장 후문 - 미사동차고지 >
- 배차간격: 50~60분.

 

 

 

 

<- 위례강변길 (나무고아원) 1.5KM

-> 위례사랑길 (팔당댐) 10.3KM,  -> 위례강변길 (경정공원) 2.9KM

 

미사동(渼沙洞):  오랜 세월 퇴적물이 쌓여 한강 가운데 형성된 커다란 섬으로, 사면이 아름답고 고운 모래밭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 모래가 마치 물결 치는 것 같이 아름답다하여 미사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미사리선사유적(사적 제 269호)/ 규모 55.575m2/ 선정일 1979.10.25/ 하남시 미사동 557번지 일대 )

하남시 미사동 일대에 위치한 미사리 유적은 1960년대 초 처음으로 학계에 알려진 이래 여러차례 조사를 거쳤고, 1980년대 서울대를 비롯한 서울소재 4개 대학의 연합발굴단에 의해서 본격적인 발굴이 이루어지기게 되었다. 미사리 유적은 대개 신석기시대. 원삼국시대. 한성백제시대로 나눌 수 있는데 전체적인 유구는 약 466개 정도이다. 가장 이른시기 신석기시대 유물로는 토기류(빗살무늬토기)와 석기류(화살촉, 돌도끼, 그물추)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청동기시대 유구로는 37기에 달하는 움집터와 34기의 소형 저장공, 노지 등이 조사되었고, 유물은 토기류와 석기류가 출포되었으며, 토기류 외에 토제품으로는 어망추와 방추차가 발견되었다. 석기류는 마제석검, 반월형석도, 석부, 석촉등이 출토되었고, 그밖에 석제 방추차와 장신구로 사용된 상아색의 관옥, 곡옥 퍄편도 발견되었다. 원삼국시대 유구는 수혈주거지와 고상식 건물 저장공 등이 있다. 주거지내부의 시설로는 화덕이 발견되었다. 화덕의 등장은 주거지의 구조와 난방 및 조리에 획기적인 발전으로 보인다. 백제시대의 유구는 최상층에서 확인되엇는데 주거지와 저장공, 고상식 건물 등이다. 특히 이 유적지에서는 백제시대에 경작하던 밭이 국내 최초로 확인되었다. 이 밭은 층위를 달리하여 상층 밭고ㅓ 하층 밭으로 되어 있는데, 상층 밭은 약 3000여평 정도의 대규모 밭이며, 밭의 사용시기는 대략 6세기경으로 추정되고 있고, 하층밭은 그ㅗ다 앞선 시기의 것으로 약 1700여평이며 4~5세기경 또는 그 이전에 사용되었던 밭으로 추정되고 있다. 백제시대의 유물은 토기류와 철기류 등이 있는데, 주로 토기류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미사리 선사유적지는 하남시 뿐만아니라 국가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

 

 

 

 

하남 위례강변길 동영상

 

 

 

 

 

 

▶ 당정뜰 -> 덕풍천 하류:

당정뜰 수변공원 강변길

 

 

강 건너 예봉산 방향

 

 

덕소 지역, 그리고 조조봉, 적갑산

 

 

당정.신장 수변 공원 강변 동영상

 

 

아, 걷고 싶은 길,  달리고픈 자전거 길

 

 

 멀리 하남유니온 타워

 

                        건강한 자연환경, 뱀 한 마리

 

 

당정뜰의 옛모습

 

예전의 당정섬은 넓게 펼쳐진 백사장을 따라 주민들의 일터이자 쉼터였습니다. 무분별한 개발로 과거의 모습은 살아졌지만, 모두의 바람대로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는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습니다. 예전처럼 우리의 밥상을 푸짐하게 하거나 뱃놀이를 할 수는 없겠지만 시민들의 마음과 건강을 책임지는 당정뜰이 돨 수 있도록 함께 가꾸고 아껴주시기 바람니다.  - 하남시.    

 

 

 

하남 당정.신장수변공원 동영상

 

 

덕풍천 하류

 

▶ 덕풍천하류 -> 광주향교:

 

덕풍천

 

덕풍천: 하남시 상사창동의 남한산성 북문(전승문) 밖 동림사지에서 발원하는 하천으로 고골계곡을 지나, 법화천 등이 합류하고, 하사창동, 교산동, 춘궁동, 덕풍동, 신장동 등을 거치는 약 8.5km 길이의 하천이다. 덕풍천은 덕풍동을 지난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개천은 비교적 짧은 하천이지만 홍수때 유수량이 많아 관개수로도 많이 이용되었다.

 

 

 

 

당정.신장 친수공원

 

 

"당정뜰"

 

당정뜰

백사장 너머 머나먼 길 땅콩밭 일구고
싸리가지 한 짐 베어와 빗자루를 만들던 곳.
오늘은 꿩을 잡아 요리해 먹을까
꿩알이라도 주울 수 있을까 헤메던 곳.
농한기 한가한 날 돗자리 깔고 도마뱀과 친구하며 노닐던 곳.
아침에 소몰고 가서 풀 먹이고
마른 소똥으로 불쏘시개하던 곳.
여름이면 멱을 감고
겨울이면 얼음질 하던 곳.
소라며 조개며 피래미 모래무지
밥상 위에 푸짐하게 해 주던 곳.
각종 야생동물의 놀이터요, 나의 정원이었던 곳....
당정리섬.
언젠가 인간에 의해 흔적도 없어졌다가
어느새 자연에 의해 흔적을 남기고 있다.
이제는 나의 정원도 그 어떤 사람의 정원도 아닌,
인간이 파괴하고 자연이 만들어 낸 자연의 정원, 자연의 뜰
나는 그고을 '당정뜰'이라 부르고 싶다.

명칭공모 수상자 박수자님의 글.

 

 

 

하남유니온타워 & 덕풍천교

 

 

덕풍천, ↑ 광주향교

 

천주교 하남성당 & 천현초등학교

 

아쁠사, 내 미러리스 카메라 셔터가 고장 나버렸네! 

전자제품의 고장은 순식간이다. 

 

 

광주향교 방향

 

 

중부고속도로 '만남의 광장' 방향

 

 

 

덕풍천 & 하남 객산

 

 

▶ 광주향교:

 

'향교의 수호목'
보호수 은행나무, 나무나이 약500년  
이 나무는 수나무로 향교 주위에 4그루의 암나무를 거느리고 있다.



 

 

광주향교 |  廣州鄕校


향교는 성현에게 제사를 올리고 지방민을 교육.교화하고자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현재는 교육은 하지 않고 제사만 올리고 있다. 광주향교를 처음 지은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조선 숙종 29년(1703)에  고읍(古邑) 서쪽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향교의 가장 뒤쪽에는 제사 공간인 대성전과 동무.서무가 있으며 그 앞으로 교육 공간 명륜당과 동재.서재가 있어 전형적인 전학후묘(前學後廟) 구성으로 배치되어 있다.  대성전은 앞면 3칸, 옆면 4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려고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에만 공포가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안쪽에는 공자를 비롯한 중국과 우리나라 성현의 위폐를 모셨다. 명륜당은 앞면 5칸. 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명륜당은 학생들이 모여 공부하는 강당이고, 동재.서재는 학생들의 기숙사이다.

 

 

 

광주향교  


공자 (BC 551~ BC 479)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정치가, 사상가, 교육자이다.  예수, 석가, 소크라테스와 함께 세계 4대 성인 중 한 사람이다

탄생: 노나라 시대 산동성 추읍(郰邑)에서 아버지 숙량홀이 64세에 세째 아내 안씨와의 사이에 늦둥이로 태어나다. 공자의 어머니는 아들을 얻기 위해 니구산(尼丘山)에 가서 신령님께 기도를 올리고 공자를 낳았다고 한다. 그런 까닭에 공자의 이름의 니구산의 구(丘) 자에서 따왔다고 하는 설이 있다. 
- 성장: 공자 3세 아버지 타계하고, 어머니 슬하에서 성장함. 공자는 성장하면서 15세 이전 학문에 열중하고, 어릴 때 부터 예(禮)에 뛰어났다고 한다. 
결혼생활: 공자 19세에 어머니 권유로 노나라 거주 송나라 사람 계관씨의 딸과 결혼함. 결혼후 1년만에 아들을 얻었으나 부인에 대하여는 별로 알려진 게 없다. 
교육활동: 공자 나이 24세에 어머니 돌아가심. 그 후 자기집을 서당으로 젊을 때부터 교육활동을 하여 수십년 동안 무려 3,000명이 넘는 제자를 양성함. 제자 중 특히 안연, 자공, 자로, 자장, 자하 등이 유명하다. 
- 관리생활: 나이 50세에 고향의 관리가 되다. 이듬해 노나라 정공의 제나라와의 화해조약 행차시 대동함. 54세에 재상의 실권을 득함. 그 후 정공이 제나라에서 보내온 여자들 때문에 정사를 돌보지 않자 관직을 사임함.
생의 마감: 56세에 모국인 노나라를 떠나 약 14년 동안 천하를 주유하며 인(仁)에 기초한 정치를 펼치려 했으나 실패하여 유가 경전을 정리, 편찬하는 데 전념하고, 제자 양성에 힘썼다. 공자 나이 68세에 아들을 먼저 떠나보냄. 제자 중 70세에 도(道)의 계승자로 여기던 안연이 타계하고, 71세에 재아, 72세에 가장 믿었던 자로 마저 세상을 떠남. 그후 공자는 73세에 타계함. 
- 공자의 사상:  공자는 인(仁)을 인간의 최고의 도(道)와 덕(德)임을 주창하였다. 공자는 인을 근본으로 예를 실천하는 사람이 군자라고 설파앴다. 《논어》는 그의 제자들이 스승이 죽은 후 편찬한 것으로 공자의 사상이 집대성 되어있다. 
 

▶ 공자 년표:

BC551년 (1세): 노나라 창평향 추읍에서 출생
BC549년 (3세): 아버지 숙량흘 여의다. 
BC537년 (15세): 배움에 뜻을 두다. 
BC535년 (17세): 이 무렵 어머니 안씨를 여의다.  
BC533년 (19세): 송나라 견관씨와 결혼하다.
BC532년 (20세): 아들 공리가 태어나다. 계씨의 창고지기가 되다.
BC531년 (21세): 가축사육하는 일을 맡다. 
BC525년 (27세): 노나라에 온 담자에게서 고대 관제를 배우다. 
BC522년 (30세): 자립하다. -<논어>
BC518년 (34세): 노나라 대부 맹희자가 아들 맹의자와 남궁경숙에게 공자를 스승으로 삼아 예를 배우라로 유언하여 공자에 입문함.
BC516년 (36세): 제나라 경공이 정치를 묻다. 
BC516년 (36세): 소악(韶樂)을 듣고 음악에 심취하다.
BC515년 (37세): 제나라에서 노나라로 돌아오다.  
BC512년 (40세): 의혹되지 아니하다 -<논어>  
BC509년 (43세): 노나라 정공 즉위하다.
BC502년 (50세): 천명을 알다. -<논어>  
BC501년 (51세): 정공9년 노나라 정공이 중도(中都)으; 제(帝)로 삼다. 중도의 제에서 사공(司空), 대사구(大司寇)로 승진하다.
BC500년 (52세): 정공10년. 노정공과 제경공의 협곡회담에 참여하다. 제경공으로 부터 노나라 따을 돌려받다. 
BC497년 (55세): 정공13년. 제나라로 부터 여악(女樂)받고 정사를 돌보지 않자 위나라로 떠나다. 
BC497년 (55세): 위나라에서 10개월을 머물다 진나라로 가는 도중 광(匡)에서 포위되는 재난을 당하다. 
BC492년 (60세): 귀가 순하게 되다. - <논어>
BC490년 (62세): 섭나라의 섭공과 정치를 이야기하다.
BC489년 (63세): 초나라로 가는 도중 진나라와 채나라 사이에서 식량이 떨어져 곤경에 처하다.
BC484년 (68세):  노나라의 계강자가 예를 갖추어 공자를 부르니 14년만에(BC497-484)만에 노나라에 돌아오다.  
BC483년 (69세): 악(樂)을 바로 잡다. 아들 공공리가 50세로 죽다. 
BC482년 (70세): 마음이 하는 대로 따라도 정도를 지나치지 않게 되다. - <논어>. 노나라가 공자를 정치에 쓰지 않자 제자를 가르치고 문헌을 정리하는일에 힘쓰다. 제자 안희 죽다. 
BC481년 (71세): 춘추를 짓다.
BC480년 (72세): 위나라 정변으로 제자 자로 죽다. 자로의 시체를 소금에 절였다는 말을 듣다.
BC479년 (73세): 애공 16년 하(夏) 사월에 공자 세상을 떠나다. 노나라 도성 북쪽 사수(泗水) 강 언덕에 묻히다. 

 

 

 

 

광주향교사적비

 

 

명륜당

 

공자 어록 》:  

○ 成事라 不說하며 遂事라 不諫하며 旣往이라 不咎로다.  ( 성사 불설 수사 불간 기왕 불구 )
이미 이루어진 일은 말하지 않으며, 끝난 일은 간하지 않으며, 지난 일은 탓하지 않는다.

○ 子曰 不仁者는 不可以久處約이며 不可以長處樂이니 仁者는 安仁하고 知者는 利仁이니라.
( 불인자 불가이구처약 불가이장처락 인자 안인 지자 이인 )
- 어질지 못한 사람은 역경에 오래 있지 못하며 행복도 오래 누리지 못한다.
그리고 어진 사람은 仁(인)을 편안하게 여기고 지혜로운 사람은 인을 이롭게 생각한다.

○ 子曰 德不孤라 必有隣이니라. ( 덕불고 필유린 )
- 덕이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으며 반드시 이웃이 있다.

○ 子曰 人之生也 直하니 罔之生也는 幸而免이니라. ( 인지생야 직 망지생야 행이면 )
인간의 삶은 원래 정직한 것이다, 정직하지 않으면서도 살 수 있는 것은 요행히 화를 면하고
있는 것이다.

○ 子 絶四러시니 毋意毋必毋固毋我러시다. ( 자 절사 무의무필무고무아 )
- 공자께서 네 가지를 근절 하셨으니 자의대로 하는 일이 없었고, 집착하지 아니하고, 
고집을 안부리고, 자기만을 내 세우는일 (생각하는 일) 은 없으셨다.

○ 過猶不及이니라. ( 과유불급 )
-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과 같다.

○ 子曰 不患人之不己知오 患不知人也니라. ( 불환인지불기지 환부지인야 )
-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지 못함을 탓하라.

○ 子曰 人無遠慮면 必有近憂니라. ( 인무원려 필유근우 )
- 사람이 먼 앞날을 걱정하지 않으면 반드시 가까운 시일에 근심이 생긴다.

○ 子曰 躬自厚而薄責於人이면 則遠怨矣니라. ( 궁자후이박책어인 즉원원의 )
자신을 꾸짖기는 엄하게 하고 남을 책망하길 가볍게 하면 남의 원망하는 소리를 멀리할 수 있다

○ 子曰 年四十而見惡焉이면 其終也已니라. ( 연사십이견오언 기종야이 )
- 나이 사십이 되어서도 남에게 미움을 받는다면 그것은 끝장이 난 것이다.

○ 子貢이 問曰 有一言而可以終身行之者乎이까 子曰 其恕乎인저 己所不欲을 勿施於人이니라. 
( 자공 문왈 유일언이가이종신행지자호 기서호 기소불욕 물시어인 )
자공이 한마디의 말로 평생토록 행할 만한 것이 있습니까 묻자 그것은 오직 서(용서) 이니라.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말 것이니라.

○ 子曰 君子는 求諸己오 小人은 求諸人이니라. ( 군자 구저기 소인 구저인 )
- 군자는 모든 책임의 소재를 자신에서 구하나 소인은 남에게서 구한다.

 

 

 

 

공자님의 좋은 말씀에 감명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