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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구릅/일상들 ( life )

① 소요산 단풍, 자재암 - ( 2022.10.26 )

by the road of Wind. 2022. 10. 26.

  소요산 단풍, 자재암

- ( 2022.10.26 )

 

- < 소요산 입구 ~ 자재암 >:

 

 

아, 가을 단풍이 좋다고 하군요. 수도권의 가을 단풍은 어디가 좋을까요? 나는 주저함 없이 경기의 소금강(小金剛) 이라 일컬어지는 소요산(逍遙山)이라 말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올 가을 단풍이 다가기 전에 소요산을 다녀왔습니다. 

 

소요산 단풍은 화려했습니다. 잠깐 동안 있다 지고마는 단풍!  그 단풍의 붉은 색에 모든 산책객들의 얼굴도 붉게 물드는 것 같았습니다. 소요산 방문객은 평소와 달리 얼마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번 주말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운집 할 것 같습니다. 

 

처음의 나의 생각.... 자재암만 갔다올까? 아니면 공주봉에 올라 소요산 단풍의 전모를 바라보고 감탄하면서 내려와 자재암에 들렀다가 내려올까? 하면서 소요산 계곡길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자재암을 먼저 들렀다가, 평소에는 외면했던 하백운대를 향하고 말았습니다. 하백운대는 아주 젊은 날 두 번 가보았던 산인데, 아, 나는 오늘 계단 길에서 녹초가 되고 말았습니다. 가파른 계단 길 중간에서 포기하려다 겨우 올라보았습니다.

 

이 하백운대 등산로는 자재암에서 0.67km라는 거리만 보고 올라보자고 했는 데, 하백운대 거의 직전까지 온통 계단으로 이루어진 힘든 구간이었습니다. 하백운대(440m) - 중백운대(510m) - 상백운대(559m) -  나한대(571m) - 의상대(정상, 597m) - 공주봉(526m) 으로 이어지는 부채꼴 모양의 소요산 등산로 중 가장 험하고 힘이 드는 구간이었습니다. 나는 하백운대 올라본지가 너무 오래되어 이 점을 깜빡하고 말았습니다. 산길 중에서 이렇게 가파른 계단이 많은 곳도 처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하백운대에 올라본 기억은 소중하고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습니다. 소요산 단풍에 취하고, 소요산 입구의 먹거리 골목에 내려와 소고기국밥과 서울 막걸리에 시름을 달래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소요산 단풍, 너무 좋았습니다.  

 

 소요산(587m): 소요산은  경기도 동두천시 동북방 소요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하백운대(440m), 중백운대(510m), 상백운대(559m), 나한대(571m), 의상대(587m,정상), 공주봉(526m)의 여섯 봉우리가 부채꼴을 이루고 있으며 주봉은 상백운대(559m)이다. 서화담 양봉래 매월당이 자주 소요하였다 하여 소요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경관이 뛰어나서 "경기의 소금강"이라 일컬어지고 있다. 기암괴석의 암봉과 바위능선, 협곡을 이루는 계곡이 아름답다. 원효폭포 옥류폭포 청량폭포 선녀탕,  자연석굴 나한전과 금송굴이 있어 매력적이다. 원효대사가 창건한 자재암이 있다.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 중 하나이다. 소요산은 수도권 최고의 단풍 명산이다.

▶ 등산코스:

- 1코스 ( 5.71㎞,1시간30분 ) : 일주문 - 자재암 - 하백운대 - 중백운대 - 선녀탕 - 자재암 - 일주문 – 관광지원센터
- 2코스 ( 6.53㎞, 2시간 ) : 일주문 - 자재암- 하백운대 - 중백운대 - 상백운대 - 칼바위 - 선녀탕 - 자재암 - 일주문 - 관광지원센터
- 3코스 ( 7.04㎞, 3시간30분 ): 일주문-자재암-하백운대-중백운대-상백운대-칼바위-나한대-의상대- 샘터갈림길-구절터- 일주문-관광지원센터
4코스 ( 8.19㎞, 4시간 ): 일주문-자재암- 하백운대- 중백운대- 상백운대- 칼바위-나한대-의상대 -공주봉- 구절터- 일주문 - 관광지원센터

 

 

 자재암(自在庵): 654년(신라 무열왕 1년) 원효 스님이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그 후의 연혁은 알 수 없으나, 전하는 바에 의하면 고려시대에 들어와서 974년(광종 25년) 각규대사(覺圭大師)가 태조의 명으로 중창하고 소요사라 했다. 그리고 1153년(의종 7년)에는 화재로 소실된 것을 이듬해 각령(覺玲)이 대웅전과 요사만을 복구하여 명맥만 이어왔다. 조선 초까지만 해도 자재암은 태조의 원당으로 왕실의 비호를 받아오다가 어느 시기엔가 폐허가 되다시피 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후기 들어서는 1872년(고종 9년) 원공(元空)과 제암(濟庵) 스님이 퇴락한 자재암을 중창하고 영원사(靈源寺)라 하였다. 근세에 들어 한국전쟁 당시 다시 소실된 것을 1961년 진정(眞精) 스님이 대웅전을, 1968년 성각(性覺) 스님이 요사채를, 1977년에는 삼성각을, 1982년에는 일주문을 각각 지었다. 이어 1984년에는 동두천 시내에 부설 연화유치원(현)이 개원하였고, 1983~1985년에 오래된 건물을 헐고 새로운 중창을 하여 지금의 사격을 갖추었다. 자재암에는 원효 스님이 관음보살을 만나 자신의 수행력을 인증 받았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원효 스님이 요석공주와의 세속의 인연을 맺은 뒤 오로지 수행일념으로 이곳을 찾아 초막을 짓고 용맹정진 하던 때였다. - < 소요산 자재암 연혁 요약 >  

 원효대사(元曉大師, 617∼686년): 신라시대의 고승으로, 속성은 설씨(薛氏), 원효는 법명이며, 아명은 서당(誓幢)이다. 648년 황룡사에서 출가한 뒤 각종 불전을 섭렵하며 수행에 정진하였다. 일정한 스승을 모시고 경전을 공부하지 않고 타고난 총명으로 널리 전적(典籍)을 섭렵하여 한국불교사에 길이 남는 최대의 학자이자 사상가가 되었다. 34세에 의상(義湘)과 함께 당나라로 가던 중 해골에 괸 물을 마시고 "진리는 결코 밖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터득하고 의상과 헤어져서 돌아왔다. 이후 태종무열왕의 둘째딸인 요석공주와의 사이에서 설총을 낳았는데 이후 스스로 복성거사(卜性居士) 소성거사(小性居士)라고 칭하고 속인행세를 하였다. 현존하는 그의 저술은 20부 22권이 있으며 특히 그의<대승기신론>은 중국 고승들이 해동소(海東疏)라 하여 즐겨 인용하였고, <금강삼매경론>은 인도의 마명(馬鳴) 용수 등과 같은 고승이 아니고는 얻기 힘든 논(論)이라는 명칭을 받은 저작으로서 그의 세계관을 알 수 있는 큰 저술이다. 그는 학승으로서 높이 평가될 뿐만 아니라 민중 교화승으로서 당시 왕실 중심의 귀족화된 불교를 민중불교로 바꾸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또한 종파주위적인 방향으로 달리던 불교이론을 고차원적인 입장에서 회통시키려하였는데 그것을 오늘날 원효의 화쟁사상(和諍思想)이라 부르며, 이것은 그의 일심사상(一心思想) 또는 무애사상(無埃思想)과 함께 원효사상을 가장 특징적으로 나타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 < 소요산 자재암 연혁 >

 

 

 산   책 : 걸음수 12,991 steps, 거리 7.98 km, 소모열량 402 kcal, 소요시간 02:11 hrs, 속도 3.6 km/h, 기온 16℃.

 코   스 :  (1호선)  소요산역 - 매표소 - 일주문-  자재암-  하백운대 (반환점) -  자재암 - 소요산역 ( 원점회귀 )

 

 

자재암 가는 길:

 

팔팔한 형님들을 따라간다.

 

 

지사각(志士閣): 구한말의 홍덕문 지사에 대한 추모비

 

 

" 소요산 자재암 "

 

아름다운 동두천 6산:
소요산/ 마차산/ 칠봉산/ 해룡산/ 왕방산/ 국사봉.

관광문화 명소:
놀자숲/ 동두천자연휴양림/ 자유수호평화박물관/ 경기북부어린이박물관/ 소요 별&숲 테마파크/ 동두찬문화관광특구 캠프보산.

 

 

소담골

 

 

 

개여울
              김소월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홀로히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파릇한 풀포기가
돋아 나오고
잔물은 봄바람에 헤적일 때에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
그러한 약속이 있었겠지요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앉아서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심은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불타는 오리구이, 숯불오리구이 031-866-5583

 

 

앗, 야외공연장

 

 

 

소요산 단풍 동영상

 

 

소요산 매표소

 

매표소 (입장권/관람권):

개인어른 2,000원, 청소년(중.고생), 군경(사병): 600원, 어린이(초등): 300원.
단체어른 900원, 청소년(중.고생), 군경(사병): 500원, 어린이(초등): 200원.
경로 및 장애인무료.

 

 

 

소요산 동영상

 

 

소요산 자재암 일주문

 

 

逍遙山 自在庵 (소요산 자재암)

京畿小金剛 (경기소금강)

 

 

↖ 원효폭포, ↖ 원효굴, ↗ 공주봉, ↗ 자재암, ↗ 원효대

 

 

원효굴

 

 

원효폭포

 

 

원효폭포 동영상

 

 

속리교

 

 

 

소요산 개념도


일주문, 원효폭포, 사리탑, 전망대, 백운암, 자재암, 청량폭포, 금송굴, 구 절터, 하백운대(440m), 중백운대(510m), 상백운대(559m), 칼바위, 나한대,(571m), 의상대(587m), 공주봉(526m) 

 

 

동두천 소요산 등산코스:

 

1코스(초보자코스):  일주문- 자재암- 하백운대- 선녀탕- 자재암- 일주문
2코스(중급자코스):  일주문- 자재암- 하백운대- 중백운대- 상백운대- 칼바위- 선녀탕- 자재암- 일주문.
3코스(상급자코스):  일주문- 자재암- 하백운대- 중백운대- 상백운대- 칼바위- 나한대- 의상대- 공주봉- 구절터- 일주문.

 

 

 

어린 시절엔
예의 바르게 생활하라.
청년이 되면
정열을 자제하라.
어른이 되면
공평한 사람이 되라.
노인이 되면
좋은 조언자가 되라.
죽을 때
후회하지 않도록 하라.

- '숫타니파타' 중에서.

 

 

 

↖ 자재암, 하백운대 가는 길,  ↗ 공주봉, 의상대, 상백운대 가는 길

 

 

백팔계단

 

 

자재암 가는 길 동영상

 

 

↖ 공주봉 1.3km, <- 자재암 0.35km, <- 중백운대 1.4km,  ↘ 일주문 0.1km, 소요산역 2.4km

 

 

소요산 자재암 동영상

 

 

금강문

 

 

금강문(金剛門):

신광불매 만고휘유 입차문내 막존지해
神光不昧 萬古輝猷 入此門內 莫存知解

신비한 광명이 어둠을 깨치고 만고 오랫동안
그 빛을 발하니 불법의 문안으로 들어오려면
아는체하는 분별심을 버려라.

김시습이 자주 거닐던 산인 소요산은 경관이 빼어나고 휴양하기 좋은 장소이다. 하백운대, 중백운대, 상백운대를 비롯해 나한대, 의상대, 공주봉의 여섯 개의 봉우리가 말발굽 모양으로 능선을 이루고 있다. 자재암 이후로는 본격적으로 길이 가파르지만 능선으로 접어들면 경사가 완만해 무리한 산행은 아니다. 진달래 필 무렵인 4월 초부터 단풍이 지는 10월 말까지 특히 아름답다.

- 동두천시.

 

 

 

자재암 금강문, 원효대 동영상

 

 

                                                                    < 2019.10.17 사진 >

 

놓치기 쉬운 소요산 명소:

관음봉: 원효대사가 수도하던 중 관음보살을 친견하였다는 설화로 관음봉이라 불린다.
* 속리교: 원효폭포 가기 전 우측에 위치한 대리석 교량으로 속세와의 인연을 끊는다는 의미의 교량.
* 세심교: 원효대를 지나면 대리석 기둥을 여러개 놓은 다리가 있는데 마음을 씻는다(정하게 한다)는 의미의 다리.
극락교: 소요교라고도 불리며 자재암을 잇는 다리로 부처님의 공간으로 들어간다는 의미의 다리.
* 원효폭포: 일주문을 지나면 좌측에 아담한 폭포가 보이는데 원효대사가 원효대에서 고행 수도중 자주 내려와 휴식을 취하던 곳.
추담선사부도: 자재암에서 입적한 추담선사(1898-1978)의 공적을 기린 공덕비와 사리탑이 있다.
독성암: 자재암 맞은편에 우뚝 솟은 기암으로 옥녀봉, 옥로봉, 원효암, 약수암 등으로 불린다.
* 옥류폭포: 천연암굴인 나한전 오른쪽에 우물처럼 깊게패인 협곡으로 쏟아지는 물줄기가 한여름에 시원함과 경치를 자랑한다.

백팔계단:

중생의 눈,귀,코,혀,몸, 뜻(마음) 등의 감각기관이 감관의 대상을 접할 때 저마다 좋다, 나쁘다, 그저 그렇다는 세가지가 서로 같지 않아서 18가지 번놔를 일으킵니다. 또 괴로움, 즐거움, 그저그런 것과 관련지어 18가지 번뇌를 갖게 된다. 이들을 합한 36가지 번뇌가 다시 각각 과거,현재,미래의 3세 때문에 108가지 번뇌가 되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특별한 의미를 두어 목환자를 꿰어 만든 108 염주나 사찰에 가면 '108계단'을 만들어 일심을 잃지않도록 하고, 또 잃더라도 빠리 되찾는 것이 백팔번뇌를 끊는 길이라고 합니다. 백팔번뇌와 불교의 윤화와 불교의 가르침을 형상화한 해탈문을 통해 세속의 백팔번뇌에서 벗어남 해탈의 경지에 오르길 바라는 염원을 담았읍니다.  - 동두천시.

 

 

 

 

원효대

 

이곳은 원효 스님이 정진중에 지친 심신을 달래기 위해 머물며 좌정하고 수도하던 장소로 원효대로 불리운 곳.

 

 

 

 

아름다운 마무리는

비움이다

채움만을 위해 달려온 생각을 버리고

비움에 다가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마무리는

비움이고 그 비움이 가져다주는

충만으로 자신을 채운다.

 

<아름다운 마무리> - 법정스님.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곻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 가라하네.

 

- 나옹선사의 선시.

靑山兮要我以無語 -  청산혜요아이무어
蒼空兮要我以無垢 - 창공혜요아이무구
聊無愛而無憎兮 - 료무애이무증혜  
如水如風而終我  _ 여수여풍이종아  
  
 ▒ 나옹선사(懶翁禪師) (1262-1342): 고려 말기의 고승/ 공민왕의 왕사/  본명은 원혜(元慧), 휘는 혜근(慧勤), 호는 나옹(懶翁)/ 경북 영덕군 창수면 갈천리에서 출생/ 20세 때 친구의 죽음을 보고, 출가해 공덕산 묘적암(妙寂庵)의 요연(了然)선사에게서 득도/ 1348년(충목왕 4) 원나라에 가서 연경(燕京)의 고려사찰인 법원사(法源寺)에서 인도 승려 지공(指空)의 가르침을 받음/ 조선 태조 왕사로서 한양천도의 주요 인물인 무학대사가 그의 제자였다. 나옹, 지공, 무학, 세분의 부도와 비석이 회암사터의 뒤쪽에 현존/ 그가 입적한 남한강변 여주 신륵사에서 입적 사리를 봉안한 부도와 비문이 남아 있다.

 

 

 

추담선사 부도탑

 

 

" 수행공간입니다.

출입을 삼가해 주세요."

 

 

자재암 가는 길

 

 

험담은 세사람을 죽인다.

말하는 자.

듣는 자.

험담하는 자.

 

- 법구경 -

 

 

아무리 비 바람이 때린다 할지라도

반석은 흔들리지 않는 것 처럼

어진 사람은 뜻이 굳세어

비방과 칭찬에도 움직이지 않는다.

 

 

 

참회와 겸손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삶은 소유물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영원한 것이 어디 있는가.
모두가 한 때일 뿐,
그러나 그 한때를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잇어야 한다.
삶은 놀라운 신비요, 아름다움이다.

- 법정스님 < 버리고 떠나기>에서 -

 

 

 

소요산 자재암 동영상

 

 

앗, 자재암

 

 

 

소요산 자재암 동영상

 

 

자재암은 원효대사가 세운 절이다. 1907년 의병활동 하던 곳으로 일본군 공격으로 소실되고, 1950년 6.25전쟁으로 또 소실 되었다. 그 후 1971년 ~ 1977년 기간에  복원 되었다.

 

 

소요산 자재암 종무소

 

 

자재암

 

 

청량폭포

 

 

대웅전

 

 

삼성각

 

 

자재암 출입금지

 

나한전

 

 

소요산 자재암 나한전 불사 기념탑

 

 

 

순간순간을 사랑하고

순간순간 행복하세요.

그 순간이 모여

당신의

인생이 됩니다.

 

- 혜민스님.

 

 

 

원효샘


동양 삼국 불교계의 거인인 원효(元暁) 스님은 차(茶)의 달인으로도 차인들 사이에 널리 알려진 고승이다. 스님은 전국 곳곳에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절을 창건하였는데 원효스님이 지리를 잡은 절터에는 필연적으로 약수가 나오며 찻물로는 으뜸인 석간수(石間水) 가 솟아올랐다고 한다. 그 중 1천 3백여 년 전 수행하셨던 소요산 자재암의 원효샘 석간수는 찻물로 전국에서 손꼽히는 명수(名水)로 이름 나 있다. 신라 고려 때는 물론 조선중기 까지도 시인 묵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하는데, 특히 고려시대 시인인 백운 이규보는 이 물맛을 "젖처럼 맛있는 차가운 물"이라고 감탄하는 등 원효샘은 전국에서 유명한 차 문화의 유적지가 되었다.  

 

 

 

자재암의 유래

 

원효 성사께서 요석공주와의 인연이 있은 후 오로지 수행 일념으로 인적이 두절된 심산 유곡을 찾아 산자 수명한 아름다운 이 곳에 이르러 초막을 짓고 용맹정진하여 높은 수행을 쌓았다. 비가 내리는 어느날 심야에 약초를 캐다가 길을 잃은 아녀자로 화현한 관세음보살께서 원효 스님에게 하룻밤 쉬어 가기를 원했고 중생구제의 구실을 붙여 수도 일념의 심지를 시험하였으니 원효대사 이르기를 <심생즉종종법생>이요 <심멸즉종종법멸>이라 마음이 생한즉 옳고 그리고, 크고 작고, 깨끗하고 더럽고, 있고 없는 가지가지 모든 법이 없어지는 것이요, 마음이 멸한 즉 상대적 시비의 가지 가지 법이 없어지는 것이니, 나 원효에게는 자재무애(自在無碍)의 참된 수행의 힘이 있노라, 하는 법문에 그 여인은 미소를 지으며 유유히 사라졌다. 원효대사는 관세음보살의 화현임을 알았고 그 후 지극한 정성으로 더욱 깊은 수행을 쌓았으며 후학을 교계할 생각으로 정사를 지었다.  관세음 보살님을 친견하고 자재무애의 수행을 쌓았다는 뜻에서 정사를 이름하여 자재암이라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