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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구릅/나의 밥한끼

파주 반구정, 반구정나루터집, 임진각, 화석정 - (2013-06-30)

by the road of Wind. 2013. 7. 2.

파주 반구정, 반구정나루터집, 임진각, 화석정  

- (2013-06-30)

 

평소 '자유로(自由路)' 하면 독일의 아우토반을 연상하며 시원하고 아름다운 스피디한 길이라고 연상되곤 하여서 늘 '자유로'를 한번 달려보고 싶었다. 그리고 임진강을 바라보며 휴전선 근처의 경치를 감상하며 드라이브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합류 지점을 바라 볼 수 있는 오두산 통일전망대 주변을 둘러보고 싶었다. 한강, 임진강 하류의 분단의 현장에서 철조망 사이로 아스라히 바라보이는 풍경을 바라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 희망이 오늘 일부 실현되었다. 우리집은 평일엔 큰아이 가족 3명과, 우리내외 그리고 우리 막내아들 이렇게 지내다 공휴일이나 주말이 되면 큰아이는 어린 손자와 함께 저희 집으로 돌아가고, 작은 아이와 우리 내외만 남게된다. 자식 자랑은 팔불출의 하나 라고는 하지만 나는 우리 작은 아들 자랑을 좀 하고 싶다. 우리 작은 아이는 마음씨가 참 착해서 무엇이든 부모에게 해 드릴려고 노력하는 성격이다. 그제도 우리 내외에게 각각 용돈을 주더니 오늘은 파주 쪽으로 여름철 보양식 장어를 먹으러 가자고 한다. 파주 사목리에 반구정 장어집 이 있는데 유명하다고 한다. 인터넷에 조회를 해보니 많은 사람들의 평가가 좋았다. 그리하여 기대를 많이하면서 낮 12시 반경 집을 출발하였다. 강변 북로는 의외로 막히지 않았다. 희한한 일이다. 그 많던 차들은 도대체 어디를 갔을까? 다들 일찍 출발을 한 것인가? 의아해 하며 좋아하며 강변 북로를 달린다. 자유로를 달리다 당동 IC 를 내려서서 죄회전 하여 조금가니 반구정 이다. 식사가 급하니 통일동산은 지나쳐 버렸다. 한 50분 정도 걸려 도착한 '반구정 나루터집'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사목리 208-3/ tel 031-952-3472, 031-953-2472) 의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이렇게 큰 식당은 처음보겠다. 입구에 들어서니 대기표를 준다. 1시간 20분정도 기다려야 자리가 나겠다는 것이다. 아들은 저가 기다리고 있을 터이니 우리들은 어디 시원한 곳에 계시다 전화 드리면 그때 오시라고한다. 그래서 바로 담장이 붙어있는 조선 시대 청백리의 표상인 황희 정승의 유적지를 둘러보기로 하였다.  

 

황희 정승 유적지:

 

황희 정승 유적지는 조용하고 깨끗하게 단장되어 있었다. 유적지에는 방촌기념관, 월헌사(月軒祠), 앙지대(仰止臺), 방촌 황희 (厖村 黃喜) 선생상 등이 있었다. 먼저 기념관에 들어서니 황희 정승의 유록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러한 훌륭한 분의 행적을 보니 가슴이 훈훈하여 온다. 최근 신문에 오르내리는 관료들의 온갖 부패상과 대비되어 더욱 감명을 주게된다. 경내를 두루 둘러보며 경내 강변의 조금 높은 곳에 있는 정자 두 곳이 있어 오르니 한강이 유유히 흐르고 강변엔 철조망이 견고히 설치되어 있고 곳곳에 군 초소가 있어 삼엄함과 어떤 비극을 느끼게 하였다. 민족의 아픔이 가시처럼 마음을 아리게 하는 것 같았다. 강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온다. 옛날 반구정이 있었던 앙지대에서 아들의 전화를 기다리며 더위를 피하며 한강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묘한 감정이 강처럼 흐르는 것 같다.   

 

황희

(黃喜) (1363~1452): 조선시대 대표적 정치인/ 개성 가조리서 출생/ 호는 방촌(厖村)/ 1376년 (우왕 2) 음직으로 복안궁녹사 (福安宮錄事)가 되었다. 1383년 진사에 합격, 1389년 ( 창왕 1) 문과에 급제, 이듬해에 성균관학관 (成均館學官)이 되었다/ 고려가 망하자 두문동에 은거하였으나 조정의 요청과 동료들의 추천으로 태조3년 (1394년) 성균관학관으로 세자우정자 (世子右正字)를 겸임하고 그후 경기도 도사에 이른다. 1400년 (정종 2)에 형조, 예조, 이조의 정랑을 거쳐 1404년 우사간대부 (右司諫大夫)가 되었다. 1408년 민무휼 등의 횡포를 제거하고 병조, 예조, 이조의 판서가 되었다. 1418년 충녕대군 세자 책봉에 반대하다 서인(庶人) 이 되고, 파주 교하로 유배되었다가 다시 전북 남원으로 이배되었으나, 1422년 세종 4년 풀려나 좌참찬에 기용되고 예조판서, 우의정 등을 역임하다 1427년 좌의정에 올랐다. 그 후 1449년 벼슬에서 물러날 때까지 19년간 영의저에 재임하였다. 영의정 재임시 농사의 개량, 예법의 개정, 천첩소생의 천역(賤役) 면제 등 업적으로 세종의 신망과 재상으로서의 명성을 높였다/ 저서: 방촌집 (厖村集).   

 

앙지대라는 정자에서 시원하게 앉아 한참을 쉬고 있으니 아들로 부터  전화가 와서 '반구정 나루터' 식당으로 가서 건물 바료 옆의 나무 그늘 아래 많은 평상이 있는 곳에 앉았다. 장어 (간장 구이) 2인분과 매기매운탕(小) 를 시켰다. 조금 기다리니 토실토실한 장어구이와 매운탕이 나왔다. 양이 상생각보다 많았다. 장어 양념이 나에게는 조금 약했으나 집사람과 아들은 좋다고 한다. 양이 충분하여 나중에 보니 매운탕은 2/3정도가 남았다. 매운탕도 살아있는 매기로 만들어서 살이 부드럽고 좋았다. 음식을 먹어 보니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리나 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어마어마한 식당에 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니 돈은 얼마나 벌어 들일까? 궁금하기도 하다. 정말 대단하다. 배부른 우리들은 다음 행선지로 임진각을 향했다.  

 

● 임진각: 임진각에 에 도착하니 여기도 사람들이 아주 많이 와 있었다. 어린이들이 물장구 칠 수 있는 곳도 있었고, '평화의 종' 앞 광장에서 KBS방송국에서 나와 무슨 생방송을 하는 것 같았다. 안숙선 명창도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6.25 기념으로 분단의 현장에서 무슨 행사가 벌어진 모양이다. '경의선 장단역 증기기관차'가 있는 곳으로 가서 총탄의 흔적으로 얼룩진 기차를 보았다. 임진강철교는 분단의 아품을 앉고 그자리에 그대로 서있었다. 이 다리를 보면 왠지 마음이 숙연해진다. 민족의 비극이 임진강 주변에 연기처럼 그윽한 것 같았다.1953년 한국전쟁포로 12,773명의 교환을 위해 가설된 '자유의 다리'도 걸어 보았다. 포로들은 철교까지 차량으로 와서 이 자유의 다리를 걸어서 넘어 왔다고 한다. '망배단'을 지나 '임진각'에 올라 주위를 바라보니 산하가 애잔하고 슬프게 느껴진다. 다음 행선지는 임진강을 가장 잘 조망 할 수 있다는 율곡 이이 선생의 율곡리 '화석정'으로 향했다.

 

● 화석정 (花石停):

 

화석정(花石亭):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율곡리에 있는 정자로 팔작지붕 겹처마로 되어있다. 임진강이 내려다보이는 경치 좋은 곳으로 율곡 이이 선생이 제자들과 학문을 논하는 등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율곡리는 이이의 고향이며, 당시에는 서원도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화석정만 남아 있다. 화석정의 현판 글은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로 강직한 이미지가 보인다. 이이의 팔세 때 지었다는 '팔세부시(八歲賦詩)'는 이율곡의 천재성을 보여주는 시이다. 1443년(세종 25년) 고려말 대유학자인 야은 길재(冶隱 吉再)의 유지(遺趾)에 이이의 5대 조부인 강평공(康平公)이명신(李明晨)이 정자를 건립하였다. 1950년 한국 전쟁 때 또다시 불타 없어진 것을 1966년 파주의 유림들이 성금을 모아 다시 복원하였다. 

 

 

율곡의 화석정시(花石亭詩) 혹은 팔세부시(八歲賦詩)

:

 

 

 

 

 

숲 속의 정자에 가을이 벌써 깊어가니,나그네 생각'이 끝없이 일어나네.멀리 보이는 저 물빛은 푸른하늘에 이어지고 서리맞은 단풍은 햇볕을 향해 붉구나.

 

산은 외롭게 생긴 둥근 달을 토해 내고, 강은 만리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머금었네. 변방에서 날아오는 기러기는 머물 곳이 어디인가, 울음소리 저무는 구름 속으로 사라지네.

 

林亭秋已晩 (임정추이만) 

騷客意無窮 (소객의무궁) 
遠水連天碧 (원수연천벽)

霜楓向日紅 (상풍향일홍)

 
山吐孤輪月 (산토고륜월) 
江含萬里風 (강함만리풍) 
塞鴻何處去 (새홍하처거) 
聲斷暮雲中 (성단모운중)


 

화석정에서 임진강을 굽어보니 강물이 유구해 보였다. 세세토록 흘러가는 강이다. 강가에는 많은 사람들이 시대를 따라 강을 바라보며 각자의 생각을 되뇌며 한 때를 보내게 된다. 강은 기쁨의 강도 되고 비극의 강도 된다. 우리의 임진강은 비극의 강이다. 분단의 아픔이 해소되고 통일이 되는 날 그 비극은 새로운 탄생을 하여 기쁨의 강물로 변할 것이다.  

 

화석정을 구경하고

미산리

를 거쳐

법원읍

근처

초리골

을 구경하고 갈까하였는데 시간이 늦어 원점 회귀 드라이브를 하기로 일정을 바꿔 자유로를 타고 되돌아 왔다. 시간 부족이 아쉬웠다. 오늘 밥 잘 먹고 구경 한번 잘 했네...    

 

 

 

 

 

파주 반구정 가는 길:

 

 

 

 

 

 

 

 

 

 

 

파주 반구정 황희 정승 유적지:

 

 

 

 

 

 

 

 

 

 

 

 

 

 

 

 

 

 

 

 

 

 

 

 

 

 

 

 

 

 

 

 

 

 

 

 

 

 

 

 

'반구정 나루터집' 식사:

 

 

 

 

 

 

 

 

 

 

 

 

 

 

 

 

 

 

 

 

 

 

 

임진각에서:

 

 

 

 

 

 

 

 

 

 

 

 

 

 

 

 

 

 

 

 

 

 

 

 

 

 

 

 

 

 

 

 

 

 

 

 

 

율곡리 화석정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