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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구릅/여행(旅行)

① 동해 설악산, 화진포 여행 - ( 2017.09.03-04 )

by the road of Wind. 2017. 9. 4.

① 동해 설악산, 화진포 여행 - ( 2017.09.03-04 )


- 화진포 일원...



동해안으로 초간단 1박2일 여행을 다녀왔다. 가을 단풍철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 것이기 때문에 추석전 서둘러 한번 다녀온 것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보람있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푸른 물감이 떨어질 듯한 하늘, 화려하고 수려한 푸른 산들, 깨끗하고 조용한 백사장의 해변, 짙푸른 망망한 바다, 분비지 않은 분위기가 너무 좋았으며.... 그리고 평소에 그렇게 가보고 싶었던 고성  화진포 호수와 그곳에 있는 화진포의 성 (김일성 별장), 이승만 초대대통령 별장, 이기붕 부통령 별장 등을 구경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관개토대왕릉이 있는 화진포 해수욕장 앞 바다위의 작은 섬도 보았다. 우리나라 역사의 큰 획을 그은 분들이기 때문에 더욱 호기심이 발동하고 보람도 컸다. 그러나 별장 구경에 신경을 쏟아  화진포호반 산책과 구경은 제대로 하지 못했다. 시간은 늦고, 몸이 너무 피곤하여서 아주 먼 옛날 한번 가보았기  때문에 고성 통일전망대 가는 것도 생략하고, 몸을 쉬기 위하여 서둘러 속초 척산온천장으로 갔다. 온천를 한후 저녁을 먹고 숙소로 갔다. 숙소는 설악산소공원이 가까운 설악동 모텔이었는데 내가 체크인 할 시간엔 어두움이 내렸는데 인적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조용했다. 모텔 앞에 파킹된 차가 내 차 하나 밖에 없었다. 다음 날 아침에 보니 차들이 조금 있었으나, 요즈음이 비수기임을 실감했다. 설악동 모텔 부근은 무서울 정도로 정적이 감도는데 풀벌레 소리만 요란하다. 가을이 문턱까지 당도 했음을 알리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다 나도 모르게 깊은 잠에 골아 떨어지고 말았다. 1일차는 그렇게 지나갔다. 그리고, 다음날은 아침 6:30분에 피곤한 몸으로 겨우 기상하여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어제 저녁 잠들기 전 침대에서 생각하기를 내일 아침 정말 꼭두새벽에 나 혼자 설악산 계곡을 한 2시간 정도 산책을 해 볼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엄습해 왔다. 재작년 10월 이곳에 왔을 때 소공원 산책로에 아침 일찍 혼자 등산 나갔는데 실종되어 흔적을 찾지 못한다며 이곳을 등산하는 사람들이 혹시 발견하여 연락하면 후사하겠다는 플래카드가 걸려있었던 것이 기억나서 솔직히 어두움이 가시지 않은 숲이 우거진 깊은 산길을 혼자 가는 것이 왠지 무서워 졌다. 무엇보다 사람이 무서운 것이다. 홀로 가는 사람을 어디선가 노리다 달려드는 넘이 있으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래서 포기하고 잠들고 말았다. 우리나라도 지금은 안전지대가 아니다고 생각한다. 여성, 노약자들은 조심하여야 한다. 그런데 아침 소공원 산책하면서는 후회되었다. 죽든 살던 가는 것인데 하고.....      



                                      권금성에서


< 1 일차 >:


원래, 1일차 첫째날서울양양고속도로로 양양IC에 내려 낙산사, 의상대, 낙산해수욕장을 구경하고 점심후  화진포로 가서 동해안을 마음가는대로  구경하며 쉬기도 하다 척산온천으로 가서 온천을 하고 저녁후 숙소로 갈 예정이었으나, 전날 내가 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나이를 먹다보니 운전하는 도중 몸이 흔들리는 것 같고 정상 컨디션이 아니어서 불안하었다.  그래서 양양 낙산사등 일정을 취소하고 속초에서 점심부터 먹고 쉬며 컨디션을 회복하고 일정을 진행하고 무리 하지 않기로 하였다. 사실 서울양양 고속도로는 서울부터 일직선으로 아주 잘 만들어져있었다. 그런데 터널이 너무 많아 집중력이 높아져 내 같은 사람은 눈이 피곤하고 정신 집중이 떨어졌다. 태백산맥을  넘자니 얼마나 많은 터널이 필요하겠는가?


그래서 서울양양고속도로를 양양IC에서 내려서서 다시 동해고속도로를 타고 속초로 간 후, 점심은 영랑호 근처 '봉포머구리집'에서 속초 물회를 먹었는데 정말 대단하였다. 식당이 중소기업 수준이었다. 식당 직원에게 물어보니 식당 사장이 근처 봉포리에서 삼십몇년을 머구리로 일하던 분이라고 한다. 머구리란 잠수부를 말한다. 물 밑에서전복, 해삼 등 각종 해산물을  맨손으로  캐내는 힘든 잠수부 일을 하던 분이 참 성공하였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곳 속초물회는 유명하다고 하는데, 직접 맛 보니 참 먹을만 했다. 맛 있고 양도 많았다. 물회의 관건은 싱싱한 회와 초장 맛에 있다. 초장은 옛날 막걸리로 만든 시골 가정식 식초 맛을 내면 최고다. 지금은 그런 식초가 있겠는가? 재작년 속초 외옹치해변 유명하다고 하는 '항아리물회집' 에서 물회를 잘먹었는데, 그 때는 전복해삼물회가 모두 떨어져 먹을 수 없어 매우 서운했었다. 그런데, 오늘 이 집에서  전복해삼물회 맛도 보았다. 역시 물회는 전복, 해삼이 최고다. 오돌오돌 씹히는 맛이 일품이었다. 봉포머구리집은 1,2 주차장이 있었는데 모두 만차인데도 식사하려는 차량은 계속 밀려들고 있었다. 주차가 문제였다. 음식점은 새로 지은 넓은 현대식 건물의 1.2층을 쓰는 데도 모두 수용을 못하는 것 같았다. 집 바로 앞은 영랑호 근처인 장사항의 동해바다가 펼쳐지는데, 그 푸른 수평선과 하얀 뭉게구름이 수채화를 그리는 듯 하고, 해변 분위기도 환상적이었다. 오른족 부분에는 모래사장도 있었다. 점심을 먹고난 후에는 해변 모래밭도 걸어볼 수 있었는데 방파제에 나가볼 수 도 있다.


점심을 먹고나서는 화진포로 향했다. 정말 화진포에 대한 기대가 컸었다. 특히 '화진포의 성(城)' 이라는 김일성 별장에 호기심이 더 갔다. 가는 도중에 멋진 해수욕장 같은 곳이 있어 들어가보니 삼포해수욕장이었다. 삼포해수욕장은 넓고 모래사장도 좋았다. 마침 근처 학교 학생들이 물 속에서 야외활동을 하고 있었다. 기온이 올라가서 그런지 수온이 차겁지 않는 것 같았다.   "삼포로 가는 길" 이란 유행가가 있지 않은가? 그 생각을 하고보니 정말 우연하게 이곳에 잘 와봤다는 생각이 든다.  


".....아 뜬 구름 하나 삼포로 가거든/ 정든 님 소식 좀 전해 주렴 나도 따라 삼포로 간다고/사랑도 이젠 소용 없네 삼포로 나는 가야지/ ...."


사진을 몇장 찍고 다시 길을 나선다. 아, 화진포에 당도했다. 주차장에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았다. 사람들은 차에서 내리자 마자 '화진포의 성',김일성 별장으로 향한다. 모두 호기심이 많은 것 같다. 오른쪽 산의 가파른 길을 조금 오르니 현대식 옛 건물 하나가 있었다. 김일성 별장이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별장의 규모가 소규모이다. 그러나 화진포 해수욕장 앞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멋진 곳이었다. 옛날 침대며, 거실이며, 호기심은 가는데 특히 미국 제니스사가 만든 1950년대의 제니스(zenith) 라디오가 인상적이었다, 그 당시에는 광장히 귀하고 비싼 물건이었으리라.  간단히 한번 둘러보고 이제는  순서대로 이기붕 부통령 별장으로 향했다. 이 분은 나이 먹고 연로한 이승만 대통령 최측근으로서 권력의 2인자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다 나중에 자기 자식의 권총에 맞아 숨진 분이다. 김일성 별장은 화진포 앞 바다를 바라보는 위치에 있었으나, 이 분의 별장은 호수를 바라보는 평지에 있었다. 원래는 조용한 성격이었는지 모른다. 이 집도 소규모로 잠간 보고 이승만 초대 대통령 별장으로 향했다. 어릴 때 많이 본 흰머리에 이마가 잘 생긴 인자한 할아버지 상은 어린 마음에 큰 바위 얼굴로 남아있다. 그런데 3.15 부정선거, 4.19 혁명으로 하와이로 쫒겨난 불행한 말년을 보낸 분으로 기억하고 있다. 우리 세대에게는 엄청난 카리스마의 정치인인데, 권력이 무엇인지 안됐으며, 실내에 걸려있는 우리나라의 초기 건국과정과 남북분단의 아픔, 6.25 전쟁 등의 침화를 읽어볼 수 있었다. 그리고 별장 위에 있는 기념관을 보고 차로 내려와 척산온천을 향했다. 이 아름다운 금수강산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 동포들은 서로 반목과 증오를 버리고 각자 경제를 번영시켜

세계인들이 부러워하게 잘 살았으면 한다. 최고 통치자들의 별장과 집기들을 보니 검소하고 오늘날 우리나라가 얼마나 번영하고 호화찬란하게 잘 살고 있는지 실감하게 되었다.



화진포: 강원도 고성군 화진포 호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석호(潟湖)로 바닷물과 민물이 교차하는 생태계의 중요한 통로 역할을 하고 있다. 호수 면적은 2.3 ㎢에 달하며, 약 16km에 이르는 호수 주변에는 울창한 송림이 병풍처럼 둘러쌓여있어 경관이 아름답고, 여름이면 호수둘레에 해당화가 많이 피어 화진포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강원도 지방기념물 10호)


* 화진포의 역사문화:


1) 화진포의 성 (김일성 별장)- 1938년 선교사 셔우드 홀 부부의 의뢰로 독일망면 건축가 베버가 건축하였으며 한국전쟁중 훼손된 건물을 2005년 3월 옛 모습으로 복원하여 전시,운영하고 있다. 김일성이 김정숙과 이곳을 사용한 것은 1984년 부터 2년간이다.

2) 이기붕 부통령 별장- 1920년 외국인 선교사들에 의하여 지어진 사택으로 해방이후 북한 공산당 간부 휴양소로 사용되어 오다가 휴전후 이기붕의 부인 박마리아가 개인별장으로 사용하였다. 1999년 7월 전시관으로 개수, 운영하고 있다. 

3) 이승만 초대 대통령별장- 1910년이승만은 미국 유학에서 돌아온뒤 선교사를 만나러 화진포에 왔다가 풍광에 반해 그후 국군이 6.25때 화진포를 되찾자 선교사 집이 있던 이자리에 별장을 짓고 낚시를 즐겼다고 한다. 이승만 대통령 화진포기념관은 별장 뒤에 폐가로 남아있던 건물을 개보수해 별자에 있던 일부 유품과 역사적인 자료를 추가로 기증받아 2007년 7월 개관되었다. 

 

* 화진포의 박물관:


4) 화진포 해양박물관- 서울 삼성동 코엑스 아쿠아리움 어류연구팀의 지원을 받아 구며진 화진포해양박물관은 동해안 최초이자 최대규모이며, 건물 형태도 배의 형상으로 눈길을 끌고있다. 어류박물관, 리오라마관 과 영상관, 해저터널 아쿠아리움, 패류박물관 등을 갖추고 있고 특히 180도 머리 위를 휘감는 해저터널은 해양박물관을 찾는 이들에게 신비와 감동을 전해주고 있다.   

5) 화진포 생태박물관- 광원도 고성지역의 최대 지정 관광지인 화진포국민관광지에 부지 1,354㎡, 연면적 1,487 , 지상 3층 규모로 2013년 6월 개관된 화진포 생태박물관은 층별 3개 전시관에서 화진포호수와 관련된 생태계를 관찰, 학습할 수 있다.


* 화진포의 자연:


6) 화진포 습지조성지 (갈대밭/침강지/조류관찰대)- 수려한 자연경관과 보전가치가 매우 높은 화진포호로 유입되는 오염물질을 자연친화적 처리방법으로 정화함으로써 자연과 사람이 공유하는 쾌적한 수변환경 조성을 위해 설치한 자연정화습지대로 갈대숲이 아름답고 조류와 호수를 한문에 조망할 수 있는 관찰대도 조성되어있다.

7) 화진포해수욕장-   화진포의 성 에서 송림사이로 내려다 보이는 수려한 풍치의 바닷가가 화진포해변이다.   수만년 동안 조개껍질과 바위가 부서져 만들어진 백사장은 수심이 얕고 해저가 청아해 여름 해수욕에도 인기가 있지만 인적이 드문 겨울 바다로 이곳을 찾는 이들도 많다.

8) 고인돌 유적- 화진포 일대에는 고인돌 외에 패총과 마제석기 등 청동기에서 철기시대에 이르는 선사유물이 곳곳에 산포되어 있다.

9) 금구도- 금구도는 신라시대에 수군기지로 사용하며 해안을 지키던 곳으로 청정한 동해에 한가로이 떠있는 금구도의 대나무 숲과 그 위를 나는 갈매기의 모습은 천하의 절경이라 할 수 있다. 일면 '거북섬'이라고도 불린다.


- < 고성군 > 


고성 8경, 아름운 강원 북부권:


제1경 건봉사 - 설악산 신흥사,백담사 등 9개의 말사를 거느렸던 천년 사찰로, 전국 4대 사찰 중 하나다. 신라 법흥왕(520년)때 창건되었다.

제2경 화진포 - 호수가에 해당확 만발해 붙여진 이름이다. 둘레 16km의 동해안 최대의 자연호수이다.

제3경 천학정 - 상하천광, 거울 속에 정자가 있다하여 천학정이라 불리며, 동해의 신비를 간직한 천혜의 해안절벽 위에 건립되었다.

제4경 청간정 - 청간정은 설악산 골짜기에서 흘러나온 청간천과 만경창파의 기암절벽 위에 팔각지붕의 누정으로 아담하게 건립되어있다.

제5경 울산바위- 해발 873m, 둘레가 4km인 사방 절벽인 바위 덩어리이다. 기암절벽의 그치를 보여주고 있다.

제6경 통일전망대- 북쪽면으로 금강산과 해금강을 한눈에 볼수 있다. 해발 70m의 고지에 전망대가 건립되어 있다.

제7경 송지호- 이름처럼 송림이 울창한 송지호는 자연호수와 죽도가 어우러진 경관이 수려하여 고성의 대표적인 관광지이다.

제8경 마산봉 설경- 마산봉은 백두대간 준령 위 진부령 인근에 있는 산이다. 동해안의 절경과 겨울 설경은 대자연의 위용을 느끼게 한다.




화진포


파도는 왜 밀려오는가?
구름은 왜 피어오르는가?


내 생의 첫날이 열리던 날도
그랬을 것이며,
내 젊음의 뒤안길에서
절망하고 있을 때도 그랬으리라.


화진포 해변
망망한 수평선
흐르는 뭉게구름을 보고 있노라니
또다시 나의 병이 도지는 것 같다.


푸른 바다,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만 보면
해삼, 멍게 한 접시에
씁쓰레한 소주 한잔 생각나 못살겠다.


내 몸  어디엔가 숨어있던
고독이란 놈이
그리움이란 놈까지 데리고와
술한잔 하자고 졸라대는 것이다.


화진포 해안 한쪽에 서있는
하트 모양 빨강 조형물은
왜 그리 힘들었던 젊음을 생각나게 하지?


붉은 해당화는 밤낮 부서지는
파도소리, 기다림에 지쳐
몸에 가시가 돋아 있다.


화진포,
이  좋은 곳에는 애초에 오지 말았어야 했다.


파도는 왜 밀려오는지,
흰구름은 왜 피어오르는지...


그림같은 화진포,
사람을 왜 이렇게 힘들게 하는지 모르겠다.




오늘 척산온천은 옛날 경험한 그 온천이 아닌 것 같았다. 주차장도 아주 넓고 이 지역에서는 제일 규모가  큰데, 샤워 물 줄기가 영 약하게 나왔다. 그렇다고 물이 아주  매끈매끈한 것도 아닌데 물 사용하는데 매우 답하였다. 어쨌든 설악산에 오면 여기에는 꼭 들르게 된다.


저녁을 먹어야 되는데 이 근처 곰치국 잘하는데가 없을까 온천 직원에게 물어보니 바로 근처 '황대구탕집'이 유명하단다. 오늘 저녁 먹은 황대구탕집 물곰탕은 과연 최고였다. 1인분에 23,000원인데 그날그날 가격이 변하는 생물이기 때문이란다. 현대식 멋진 신축건물에 음식도 최고였다. 나는 오늘 속초에서 이곳 향토음식 물회와 곰츼국을 최고의 명가들에서  맛 볼 수 있어 영광이다. 저녁을 먹은 후 설악동에 있는  모텔로 가서 1박을 하였다.



<  2일차  >:


2일차는 몸이 피곤하고 하여 여러 일정을 잡을 수 없었다. 숙소에 가까운 설악산소공원에 아침 일찍 차량을 가지고 들어가 가단히 사진이나 몇장 찍고나서, 터널 때문에 고속도로를 양양에서 타지 않고 많은 터널을 피할 수 있는 미시령 터널을 지나 백담사 입구 용대리로 진행하여 동홍천까지 가고, 그 후로 서울양양고속도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갈까 하였다. 2년전 10월 차량이 많아 설악동에서 소공원까지 편도  3km가 넘는 거리를 인파 속에서 걸어서 왕복한 경험과 권금성 케이블카는 사람이 많아 아예 꿈도 못 꾸던 상황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더우기 우리집 사람이 머리가 울렁울렁하여 케이블카를 과연 탈 수 있을지 걱정이어서 케이블카는 포기하였다.


그래서 아침 6:30분 기상하여 7시경 체크아웃 차를 몰고 설악산 소공원 입구 주차장으로 갔다. 그런데도 주차장은 차들이 만차가 되어가는 것 처럼 보였다. 차를 주차하고 설악산 입장 매표를 하고 공원으로 들어갔다. 그 때 집사람은 공원입구에서 내가 사진 찍고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으며, 나는 처음엔 사진만 몇장 찍고 곧 나오려던 생각이었으나, 오묘한 설악산을 보자마자 조금 과장하면 정신을 잃을 정도로 감탄하고 말았다. 2년전에 이곳에 와보았건만 그리고 우중에 주변 경치를 눈이 뚫어지라 보며 감상하였건만 오늘 다시 오니 마치 신천지에 처음 도착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산을 좋아하고 산 경치만 보면 가슴이 시원한 나는 감탄에 감탄을 연발한다. 고봉준령, 기암괴석, 울울창창한 숲, 드넓고 깨끗한 계곡과 계류...아, 역시 설악산이구나! 나는 급히 집사람을 불러 설악산을 보아라고 외치고 공원을 걸어들어갔다. 그런데 권금성 케이블카 건물 곁으로 가게됬다. 사람이 별로 없다. 어찌 된 일인가?  바로 곁의 식당 종업원에게  물으니 8:30분에 직원이 나오며, 그 때 매표를 하고 바로 권금성 운행을 시작한다고 한다. 케이블카는 5분 단위로 출발하니 줄이 좀 늦어져도 금방 가능하리라는 것이다. 집사람이 곧장 좇아왔다. 빨리 먼저 아침부터 해결하고 케이블카를 타자고 한다. 그래서 옆의 식당에서 산채더덕비빔밥과 황태해장국을 시켜 아주 잘 먹고 매표 대기장소에 가서 줄을 서니 2번째다. 이건 믿어지지 않는 상황이다. 첫번째 서 있는 사람들은 서울에서 새벽 3시에 출발하여 온 사람들이었다. 생각도 못한 권금성 케이블카를 타고 권금성에 올라 환상적인 설악의 경치를 바라볼 수 잇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권금성 케이블카를 탑승하여 설악산을 오른다. 주변의 경치는 위로 올라갈 수록 시야가 넓어지며 환상적이다. 정말 설악산은 빼어난 명산이구나!  설악산을 북한에 빼앗기지 않고 탈환하여 지키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권금성 탑승장에 내려 산길을 따라 권금성으로 오른다. 기묘한 아찔한 절벽 산봉우리와 높고 깊은 산세를 바라보니 정말 감탄이 나왔다. 군데군데 추락조심 위험 표시가 있다. 25년전 이곳에 와본 후로 처음인데 너무 감격 스럽다. 이번엔 권금성을 올라 구경도하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어서 화룡점정(畵龍點睛) 할 수 있었다. 집 사람도 머리가 어지러워 걱정했는데 잘 녀올 수 있었다. 오늘 강원도 여행은 힘들고 피곤하였지만 집 사람과 같이 오고가는 길이 너무 행복하였다. 보람을 느낀다. 강원도 그 중에서도 속초 설악산은 매번 올 때마다 감탄에 감탄을 연발하게 된다.



< 1일차 여행 >:


봉포머구리집:

 봉포머구리집...식당 건물과 찾는 사람들로 봐서 거의 중소기업 수준이다.



봉포 머구라잡 실내..



머구리 (잠수부)용 장비들..종웝원 이야기로는 이 집 주인이 봉포리에서 거의 30 몇년 정도를 잠수부로 일했다고 한다.


집 외관에 붙여 놓은 메뉴..미리 선택할 메뉴를 보여준다. 우리들은 전복해삼물회와 모듬물회를 시시켜 맛 보았다.


전복물회 20,000, 전복해삼물회 20,000, 광어물회 20,000, 성게알밥 13,000, 홍게비빔밥 12,000, 해삼물회 20,000, 모듬물회 13,000, 오징어물회 싯가, 멍게비빔밥 12,000, 회덮밥 12,000 등등..  



봉포머구리집 앞 해변...모래사장이 있었다.


2층에서 찍은 해변...




실내에 있는 메뉴판...

물회> 전복물회 20,000, 전복해삼물회 20,000, 광어물회 20,000, 해삼물회 20,000, 모듬물회 13,000, 오징어물회 싯가.

회> 모듬회 130,000, 세꼬시 50,000, 광어세꼬시 40,000, 문어숙회 싯가, 멍게,해삼 싯가. 



전복해삼물회...


모듬물회...


물회 밥상...노란 사리가 4개 나왔다. 우리는 공기밥 하나를 더 추가하였다. 오늘 점심으로 속초 향토음식 물회 잘 먹었음다...



화진포 가는 길 ( 삼포해수욕장 ):

삼포 해수욕장.....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삼포리 에 소재한다. 모래 백사장이 너무 좋다...


오션투유 리조트...(077-7688-8950/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삼포리 243-13)


어느  학교 학생들이 야외활동 나온 것 같다.


푸른 하늘, 파란 물결, 하얀 파도...



삼포해수욕장 오른쪽 경치..


".....아 뜬 구름 하나 삼포로 가거든/ 정든 님 소식 좀 전해 주렴 나도 따라 삼포로 간다고/사랑도 이젠 소용 없네 삼포로 나는 가야지/ ...."


-  < '삼포로 가는 길' 가사 중에서 >




삼포해수욕장 주차장 방향..



화진포:


화진포 호수 설명:

회진포는 바다와 접해 있는 호수로서 면적은 2.3km2, 둘레 16km의 동해안 최대의 자연석호로서 널리 알려져 있다. 호수 주변에는 울창한 송림이 병풍처럼 둘려 쌓여 자연 풍광이 아름답고, 바다의 기암괴석은 태고의 신비스러운 자태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얕은 수심과 쪽빛 바다, 수 천년 동안 조개껍질과 바위가 부셔져 만들어진 화진포의 백사장은 모래빛이 하얗고, 감촉이 부드러운 명사(鳴沙)로 연중 많은 피서객이 찾는 동해안 최고의 해수욕장으로 유명하다. 또한, 호수의 바닷물이 교차하여 연어, 숭어, 도미등 갖가지 담수어종이 풍부하게 서식하고 있다. 호수의 빼어난 경치에 심취하여 죽정(竹亭), 모연(暮煙), 풍암(風岩) ,귀범(歸帆), 장평(長坪), 낙안(落雁), 가평(加平), 야종(夜種)을 방랑시인 김삿갓은 화진팔경(花津八景)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회진포 소나무숲 산림욕장.. ..회진포의 성 (김일성 별장) ~ 응봉 (122m) 까지의 능선 길 1.28km.


'화진포의 성 (김일성 별장)'  있는 산...


화진포 주차장 방향...



이정표....-> 화진포의 성 (김일성 별장), <- 이기붕 별장, <- 생태박물관,


사랑의 열쇠...붉은 정열의 사랑도 식을 때가 있다. 영원한 것은 없다. 그러나 사랑만이 이 세상의 구원이다. 사랑이 없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되었을까? 시원한 파란 바다물을 바라보며 사랑을 생각해 본다.


화진포 해수욕장... 화진포 콘도...


푸른 빛깔의 동해바다... 눈이 시리다...파도는 왜 밀려오는가?


김일성 별장 방향...




김일성 별장:

화진포의 성, 김일성 별장 가는 길...

      

김일성 별장에 오르면서 바라 본 주차장 방향..


화진포의 성(城) (김일성 별장):


일본 강점기인 1937년 일본이 중일전쟁을 일으키면서 원산에 있는 외국인 휴양촌을 화진포에 강제 이주 시켰으며, 독일 건축가인 베버(H.Weber 가  1938년 건립하여 예배당으로 이용하였으며, 해안 절벽 위 송림 속에 우아하게 자리한 모습에서 "화진포의 성 (城)"으로 불리워 졌으며, 1948년 이후에는 북한이 귀빈 휴양소로 운영하였고, 당시 김일성과 그의 처 김정숙, 아들 김정일, 딸 김경희 등이 묵고간 적이 있어 지금까지 '김일성 별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음.


* '화진포의 성' 은 당시 선교사 셔우드 홀 부부에 의해 1938년 독일망명 건축가 베버가 건축하였으며, 6.25 전쟁중 훼손된 건물을 2005년 3월 옛모습으로 복원하였다.



김일성 별장 ㅇ르는 길...


앗, 동해 바다...


김일성 별장:


화진포의 성....소련군 제25군 정치사령관 리베데 소장 아들과 함께 찍은 김정일 (당시 6세 미만). 화살표 김정일.



화진포 해수욕장 방향..


화진포 소나무 살림욕장 종합안내판....


계단 오른 길...↑ 4.3km 거진 해맞이봉산림욕장,  ↑ 1.5km 응봉 (정상)..


김일성 별장 측면...


별장에서 바라보는 경치..왼쪽은 화진포 해수욕장...아, 아름답다...


실내에는 각종 게시물이 있는데...그 중 북한군 남침 경로....민족의 비극이다..남침에서 휴전까지 1950.6.25-1953.7.27.

그 당시 노란색의 일부만 남았을 때 국민들 마음은 어떠하였을까?  참담하였으며 앞으로 어떻게 할까? 노심초사하였을 것이다. 지금은 전쟁의 양상이 변하였다. 무기의 발달로 전후방이 따로 없다. 미사일로, 핵무기로 후방도 초토화 시킬 수 있다. 앞으로는 우주에서 레이져 광선 무기로

외과적인 살상 처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수소폭탄 다음으로 더 무지비한 가공할 신무기가 개발 될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거실?..


집무실 겸 침실...


바다에 면한 원형의 거실..


청정지역 화진포의 경치...푸른 소나무...



경치,삼매경이다...


미제 ZENITH 단파 라디오...


침대...


외부 경치 감상하는 관광객들...


김일성 별장에서 하산...



화진포 해변:


화진포 콘도 옆의 거북이 모형의 포토 죤..



광개토왕왕릉...

화진포 앞바다의 섬으로 보이는 거북이형상의 금구도가 광개토대왕릉 이라는 자료가 발견되어 학계에 비상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고구려 연대기에 따르면 광개토대왕 3년 (서기 394년) 8월경 화진포의 거북섬에 왕릉 축조를 시작했으며, 광개토왕 18년 8월에 화진포의 수릉 축조 현장을 대왕이 직접 방문하기도 했던 것으로 기록되어있다. 그리고, 광개토대왕이 서거한 이듬해인 장수왕2년 (서기 414년)9월 29일 화진포 거북섬에 광개토대왕의 시신을 안장하였다한다. 이곳에 광개토대왕 수비대가 왕릉을 지키고 있었고, 계림(신라)의 군사와 수비대의 잦은 분쟁이 있었던 것으로 기술하고 있으며, 문자명왕 2년에 이곳에서 광개토대왕의 망제(望祭)를 지냇다는 기록이 있다. ...(이하 생략)...  



 

멀리 거북섬이 보인다...광개토대왕 무덤이 있다는 섬이다.


김일성 별장 있는 산...산 중턱에 하얗게 건물이 바라 보인다.


국군화진포콘도 객실요금표:


65M2(호수쪽):

 현,군무원>주중 40,000 주말,휴일 65,000/ 예비역,기타회원> 주중 44,000, 주말,휴일 71,500/ 회원> 주중 49,000, 주말,휴일 107,000 
65M2(바다쪽):

 현역,군무원>주중 45,000 주말,휴일 70,000/ 예비역,기타회원> 주중 49,500, 주말,휴일 77,000/ 비회원> 주중 55,000, 주말,휴일 116,000

83M2(25):

현역,군무원>주중 55,000 주말,휴일 80,000/ 예비역,기타회원> 주중 60,500, 주말,휴일 88,000/ 회원> 주중 67,000, 주말,휴일 132,000 
109M2(33):

현역,군무원>주중 65,000 주말,휴일 90,000/ 예비역,기타회원> 주중 71,500, 주말,휴일 99,000/ 회원> 주중 79,000, 주말,휴일 149,000

138M2(42):

현역,군무원>주중 70,000 주말,휴일 110,000/ 예비역,기타회원> 주중 77,000, 주말,휴일 121,000/회원> 주중 85,000, 주말,휴일 182,000
 



이기붕 부통령 별장:


이기붕 부통령 별장:


1920년대 외국인 선교사들에 의하여 건축되어 사용된 건물로써 해방이후 북한 공산당의 간부휴양소로 사용되어 오다가 휴전이후 부통령이었던 이기붕씨의 부인 박마리아 여사가 개인별장으로 사용하다가 폐쇄되었으나 1999년 7월 역사안보전시관으로 개수하여 관람객에게 전시하고 있다.


이기붕 부통령 별장  ...


입구..


이기붕,  그 사람... 보이기는 선량해 보이는데...사람은 변한다. 권력을 잡으면...오만 무도하게...오늘날도 마찬 가지이다...


왜 처참하게 몰락했을까? 과잉충성, 권력남용, 국민무시, 법치무시, 사리사욕,...등등의 인간의 사악함이 원인이었을 것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왜?  인간 본성은 천면 만년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집무 책상....액자 속의 파안 대소 이기붕...이기붕 민의원의장 부통령 당선후 기자 회견 모습 (1980년 3월 18일). 이 3.15 부정선거가 이승만 대통령과 이기붕 등 그 추종 세력들의 말로의 시작이었다.  


이기붕(1896-1960): 1896.12.20 충북 괴산군 청천면 후평리에서 몰락한 양반가의 독자로 태어났다. 조선 태종의 차남 효령대군의 17대손이었으나 그의 증조부이자 조선 후기의 문신인 이회정이 임오군란에 연루되어 명성황후의 민씨 정권에 의해 유배되었다가 처형당한 후 그의 가계는 몰락하였다.  할아버지 20세 사망, 아버지 마저 30세에 사망하였고 그의 나이 10세였다. 그 후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성장했으며, 끼니를 때우지 못하는 가난으로 몸이 병약하였다 한다. 부인인 박마리아는 유학시절 신민회 집회에서 처음 만나, 1935년 이기붕이 귀국하여 재회하며 결혼했다. 미국에서 귀국한 이기붕은 가회상회 운영,  종로 국일관의 지배인, 종로 다방 등을 경영하기도 하였지만 실패하고 8.15 광복을 맞았다. 이런 사람이 이승만의 귀국으로 그의  비서가 되어 출세가도를 달리게 되었다. 그의 아내 박마리아의 덕분이다. 박마리아는 출세와 명예욕이 강했는데, 유창한 영어실력으로 프란체스카 여사와 친분을 다져서 별 볼일 없었던 남편을 정계에 들이는 데 성공했다. 이 덕분에 이기붕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대통령비서실장, 서울특별시장, 그리고 국민방위군 사건으로 사임한 신성모의 후임으로 국방장관으로 취임하여 승승장구 2인자로 올라섰다.  그리고 아들 이강석을 이승만의 양자로 입적시켜서 자신의 지위를 더욱 굳건히 하였다. 하지만 이기붕의 욕심은 과도하여 1956년 정부통령 선거에서 이승만의 러닝메이트로 부통령에 출마했으나 장면에게 패하였으며, 끝까지 부통령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다가, 1960년 정부통령 선거에서 자유당의 부통령 후보에 출마하며 3.15 부정선거를 획책하여 당선되었다. 당시 이승만은 86세로 대통령직 수행중 유고의 가능성이 컸으며, 만약 그렇게 되면 이기붕이  대통령직을 승계할 수 있었다. 숨겨진 야욕이 너무 컸다. 그러나 사필귀정이다. 결국 4.19 혁명이 발발하고 9일되던 날 4월 28일 새벽 5시, 당시 육군소위였던 장남 이강석이 쏜 권총에 맞아 가족들 모두가 절명하고 말았다. 권력야욕이 몰락으로 가는 지름길 임을 교훈으로 보인 사건이었다. 동서고금을 통해 이러한 일이 반복되고 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인간의 약점이다.



박마리아 여사의 미국 피버디대학교 석사학위 취득 기념사진 (1932년)



제니스 라디오?


단란했던 가족사진...제1공화국 시절의 가족....왼쪽 부터 장남 이강석, 이기붕, 부인 박마리아,  차남 이강욱



이기붕 (1896-1960):


<출생>
1896- 서울 출생
<학력>
연희전문학교 중퇴
미국 데이비드대학 문과 졸업
<경력>
뉴욕서 '허정'등과 '삼일신문' 발간
1934- 귀국, 이승만의 비서
1949.6-1951.5 - 제5대 서울시 시장
1951.5-1952.3 - 제3대 국방부 장관
1951. - 이범석과 자유당 창당
1952.9-1960.4 - 제 17대 대한체육회 회장
1954.6-1958.5 - 민의원 의장
1958.6 -1960.4 - 제4대 국회의장
1960. - 3.15 부정 선거에 항의하는 4.19혁명으로 부통령 사임
1960.4.28 - 경무대 피신 전가족 집단 자살
<가족사항>
배우자: 박마리아 (1906.3.26출생)
         . 미국 피바디대학교 석사 (1932년)
         . 이기붕과 결혼 (1935년)
         . 이화여자대학교 부총장 (1957년)
         . 대한 부인회 회장 (1957년)
장남: 이강석 (이승만 양자)
차남: 이강욱



 

박마리아 여사와 친구들이 함께 찍은 이화여대 졸업사진..



이기붕 전시관 게시판...



이기붕 별장을 나와서 이승만 대통령 별장으로 가려고 주차장으로 가는 길...

건너편 산 중턱에 하얗게 소나무에 가려진 김일성 별장...


광개토대왕릉이 있는 거북섬의 상징물...파란 수평선...푸른 하늘...



이승만 초대 대통령 별장:

주차장...


-> 이승만 초대대통령 별장......주차장에서 별장 오르는 길....


↑ 이승만대통령 기념관, ↑ 이승만대통령 별장...



별장에서 바라본 화진포호수....이승만대통령은 잔잔한 호수를 좋아하셨고, 김일성은 역동적인 바다를 좋아한 것 같다. 성격의 일단을 보는 것 같다.


아담한 이승만대통령 별장...


집무실... 북진통일(北進統一)이란 글씨가 보인다...분단의조국 앞에서 자나깨나 통일을 생각 했을 터이다.


프란체스카 여사와의 단란했던 시간...25세 연하의 미모가 탁월하다...기품이 있어보인다..


프란체스카 도너(Franziska Donner) 여사 (1900~1992): 오스트리아 출생. 이승만 대통령의 두 번째 아내이다. 사업가와의 이혼경험이 있었으며 25세 연하의 여성으로서, 1934년 제네바 국제 연맹 회의에 참석차 방문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표 이승만(李承晩)을 처음 만났고, 모친의 반대에도 재혼을 강행하여 같은 해 10월 8일 미국 뉴욕 클레어몬트 호텔에서 결혼했다. 1960년 이승만의 하야 이후 함께 하와이에 망명하였고, 이승만 사후에는 오스트리아로 가 있다가 1970년 대한민국 정부의 허가로 귀국하였다. 오스트리아 출신 대한민국의 1번째 영부인이다. 우리나라 이름은 이승만 대통령이 직접 지어준 이금순 또는 이부란(李富蘭)이다. 한때 이승만과 프란체스카 여사의 존재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한인 교포들과 독립운동가들은 그녀를  ‘호주댁’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또한 난한 집안 출신이며 평소에 싹싹한 박마리아를 편애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박마리아와 그녀의 남편 이기붕이 이승만의 최측근으로 발탁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는 박마리아 남편 이기붕의 권력을 강화하는 데 이용되며, 비극의 싹이 트기 시작하였다. 1992년 3월 19일 자정 무렵 서울 이화장에서 향년 9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제니스 미제 단파 라디오는 인기였는 것 같다.


다시 뱔장 밖으로...아름다운 화진포 호수가 푸른 물결로 평화롭게 하늘을 우러르고 있다.




이승만대통령 화진포기념관:


이승만 대통령 화진포 기념관은 이대통령 별장 바로 위에 위치해 있다.


기념관 건물의 유래...


본 건물은 1954년, 27평 규모로 신축하여 1960년대까지 이승만 대통령의 별장으로 사용했으나, 이후 건물을 방치하여 페허로 철거되었던 것을

새로 지어 육군 관사로 사용해 왔다. 그 후 1997년 7월, 육군에서는 현재의 위치에 본래의 모습대로 별장 건물을 복원하여 역사적 자료와 유품을 전시해 오다가 2007년 2월에 고성군과 육군복지단에서 본래의 별장터에 세워진 본 건물을 보수하고, 별장에 있던 일부유품과 이화장에서 역사적인 자료를 추가로 기증받아 2007년 8월 이승만 대통령 화진포 기념관으로 개관하였다.



대한민국 건국대통령 우남 이승만 박사  1875~1965.


진정한 한국인, 프란체스카 영부인...


이대통령 의상.


프란체스카 여사가 사용하시던 앞치마, 방석카바, 식탁보..



구미위원부의 설립과 독립외교활동...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통령 이승만...


신임장, 임시정부 문서.  국민의회 입회증서.


이승만의 한성감옥생활,....구국의 사명을 띤 이승만,....국제정치학자 이승만의 망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