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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구릅/일상들 ( life )

② 소양강 호반 ( 소양강 처녀, 스카이워크 등) - ( 2024.05.02 )

by the road of Wind. 2024. 5. 4.

소양강 호반( 소양강 처녀상, 스카이워크 등) 

- ( 2024.05.02 )

 

소양2교 앞 정류소 하차.

 

소양2교 입구:

<- 3.1km 춘천역, <- 공지천 3.1km, -> 신매대교 4.2km, -> 춘천댐 11.4km, <- 0.2km 소양강스카이워크, -> 춘천인형극장 3.2km, ↙ 소양강변길

 

프랭크 포니 브릿지Frank Forney Bridge

1950.11.29  작전 중 전사한 미군 대령 프랭크 포니를 기념하여
In Memory Of  COL FRANK H FORNEY   USA  
CO19 ENCR COMBAT GROUP    KILLED IN ACTION   29 NOV. 1950.

- 계급: 대령 (Colonel)
- 성명;  Frank Hartman Forney (프랭크 하트만 포니)
- 출생년일: 1906. 1. 21.
- 전사일.지역: 1950. 11. 29 (북한)
- 주요경력: 세계2차대전 참전, 미 24보병사단 19전투공병 단장.

 소양2교의 역사 (60~90):  소양2교 신축공사 (1차): 1964. 5. 25 ~ 1967. 4. 27

Forney Bridge (목교)가 노후화 되어 콘크리트 재질의 교량으로 미8군 1103 야공단 관급자재/운반지원을 받아 1차 신축됨. 길이 492m, 폭 12m의 2차선 교량으로 이때 교량의 명칭이  Forney Bridge 에서 소양2교로 개칭되었으며, 최초 현판내용을 비석으로  제작 현 교량 북단 우측면에 위치시켰다.   

▶ 소양2교의 역사 (60~90):  소양2교 신축공사 (2차): 1993. 12. 30 ~ 1997. 12. 31

교통량 증가, 교량 통과 급수증가 요구에 의해 2차 신축공사가 진행되었고, 2차 신축 교량은 길이 510m, 폭 35m, 높이 12m로 상,하행 3차선 2개 교량으로 건설되어 2차 ( ( 1차 1995.. 10. 27, 2차 1997. 12. 30)에  걸쳐 개통되었고, 1996년에는 아름다운 콘크리트 구조물로 선정되었으며, 춘천에 8경 중 하나로 춘천의 대표적인 구조물이다. 
 

앗, 소양강 처녀 상, 소양강스카이워크, 소양강 쏘가리 모형

 

소양2교

 

 

소양강 처녀 상 동영상

 

춘천 자전거 여행자의 쉼터

 

아름다운 소양강 처녀, 춘천호반 

 

소양강 처녀상  

소양강처녀상 건립취지문

<소양강처녀상>은 작사가 반야월 선생께서 1968년 해질녘 소양강의 아름다움을 노랫말로 표현하고, 이호 선생께서 작곡하여 국민적 애창곡으로 승화시킨 가요 "소양강처녀" 노래 발상지에 대한 관광명소화 사업의 일환으로 건립하게 되었습니다. 전국 공모를 통해 접수된 작품을 사계 전문가와 시민대표로 구성한 심사위원회에서 18세 소녀의 청순함과 애틋한 기다림을 현대적 감각으로 표현한 남상인 조각가의 작품을 선정하였습니다. 2010년 춘천세계레져총회 및 경기대회가 유치된 뜻깊은 해에 제막하는 <소양강처녀상>이 30만 춘천시민과 더블어 이곳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어 관광레져중심도시로 거듭나는데 기여하고 새로운 명소로 각광받기를 기대합니다.    

- 2005년 11월 8일 춘천시장.   
 

소양강 처녀 노래비


소양강 처녀
                반야월 작사, 이호 작곡

 해 저문 소양강에 황혼이 지면
 외로운 갈대밭에 슬피 우는 두견새야
 열여덟 딸기 같은 어린 내 순정
 너마저 몰라주면 나는 나는 어쩌나
 아 ~ 그리워서 애만 태우는 소양강 처녀

동백꽃 피고 지는 계절이 오면 
돌아와 주신다고 맹서하고 떠나셨죠
이렇게 기다리다 멍든 가슴에
떠나고 안 오시면 나는 나는 어쩌나
아 ~ 그리워서 애만 태우는 소양강 처녀  

달뜨는 소양강에 조각배 띄워
사랑의 소야곡을 불러주던 님이시여
풋가슴 언저리에 아롱진 눈물
얼룩져 번져나면 나는나는 어쩌나
아~ 그리워서 가슴 태우는 소양걍 처녀

황재국 쓰다.

 

* 국민애창곡 "소양강 처녀" 의 탄생은 반야월 선생이 지난 1967년 3월 소양1교 상류강변 호수장 여관에 보름간 머무르면서 석양을 등지고 쪽배를 노젓는 소녀와 춘천시 상중도 ‘고산’ 에서 천렵 중 갑작스런 소나기에 젖은 소녀를 보고 영감을 얻어 국민 애창곡이 만들어 지게 되었다고 한다. 소양강처녀상은 국민 애창곡을 상징하는 동상으로, 받침돌 5m, 처녀상 7m로 총 12m 의 높이에 이른다. 

 

소양강 쏘가리 모형


작품명; 자연의 생명 ( 소양강 쏘가리 )
작가: 박종재
설치일: 2006. 08. 30
재질; 스테인리스 스틸 ( 높이 18m, 무게 22.7 t)
좌대: 페교각 ( 1940년 전후 일제가 대륙침략을 위한 에너지원으로 화천댐을 건설할 당시 춘천역에서 화천까지 건설자재를 운반하던 케이블가가 교각의 일부임 )  

- 춘천시장.

 

오리보트. 모터보트 

 

 

소양강 스카이워크

모타보트 코스 및 요금표:

 

A코스:  4 km (3인기준) /  B코스:  8 km (4인기준) /   C코스:  12 km (4인기준) /  D코스:  16 km (4인기준) /

E코스:  20 km (4인기준) /

 

SKY WALK

 

소양강 스카이워크전체 길이174m이고, 바닥이 투명유리 된 구간이 156m국내 최장 최장 스카이워크 시설입니다. 바닥은 투명 특수 강화유리 3장을 깔아 안전성을 더했고, 일몰 후에는 오색 조명등으로 환상적인 장면을 연출합니다. 
춘천시 관광안내번호: 033-240-1695.

 

 

소양강 스카이워크 이용안내:

 시설현황
위치: 춘천시 영서로 2663, 소양강처녀상 하류 150m 지점 ~ 쏘가리상.
시설: 스카이워크 교량 156m (폭 4m, 높이 6.5m, 주탑 31m)
이용시간: 하절기(4~10월) 10:00 ~ 21:00 / 절기(11~3월) 10:00 ~ 18:00  
  (* 종료시간 전에는 퇴장하여 주시기 바람니다.  매표는 종료시간 30분 전까지 가능합니다.)
휴장 및 개장 지연: 눈, 비, 결빙, 강풍주의보 발령 및 시설 개.보수 시.

  입장료: 2,000원 (춘천사랑상품권 제공), 카드결제가능
- 춘천닭갈비, 막국수, 전통시장, 스카이워크 주변 상가 등 시용 가능.   

 

  무료 입장객 해당사항: 무료 입장객도 티켓 발권후 입장 가능


- 경로(신분증 소지자):  만65세 이상 ( 59년생 부터 )
- 유아: 미취학 아동
- 장애인(복지카드소지자): 1~3급 동반 1인 무료, 4~6급: 본인 무료
- 국가유공자 (국가우공자증 소지자)
- 춘천시민 (신분증소지자): 본인무료


  주의사항:
- 반드시 덧신을 신고 들어가시기 바람니다.
- 시설 이용중 안전수칙 미준수 및 본인의 부주의로 발생한 안전사고에 대하여 본 시설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 소양걍스카이워크는 전구간이 절대금연이며, 화기취급을 금합니다. ( CCTV ).
- 음료 및 각종 음식물 반입을 금합니다. 
- 애완동물, 유모차, 인라인스케이트, 등산용 스틱 등의 출입을 금합니다.

문의전화: 033-240-1695~6
- 춘천도시공사 

 

 

소양강 스카이 워크 동영상

 

경로( 만65세 이상) 무료

나는 항상 이 사실을 잊어먹고 공짜인데도 스카이워크를 들어가지 않는다. 딱 한번 들어가본 적이 있다. 

 

sbs 드라마 스페셜, 스워치

" 세상을 바꿔라 "

 

춘천 서면 방향...

중도- 연도교- 상중도

 

봉의산 방향

북한강 순환자전거길

↑ 춘천역 1km

춘천대교

겨울연가   冬季戀歌,  冬のソナタ.....배우 배용준 최지우

이곳 의암호변에는 일본인에서 한류를 일으킨 유명한 드라마, '겨울연가(戀歌)' 촬영지 팻발이 여러곳 설치되어 있습니다.  겨울연가는 2002년 방영된 KBS 2TV 드라마인데, 배용준, 최지우 등이 연기하여 아주 유명하게된 작품으로, 일본 지상파 방송 NHK에서도 방영되어 일본에서 배용준을 일약 한류스타로 만들어준 작품입니다. 한 때는 춘천하면 겨울연가, 배우 배용준, 최지우를 떠올릴 정도였습니다. 지금도 일본의 노년층에서는 겨울연가를 기억하고 있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북한강

 

결의문  

" 우리 춘천은 근대 국난 극복사의 중심에 서서 크고 작은 빛으로 등불이 되었습니다. 구한말 항일의병의 발원지로 그 핏줄은 이어졌고 6.25 전쟁 때에는 소양강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오늘의 조국을 일으키는데 우리의 몫을 다했습니다. 이는 오직 조국 수호의 일념으로 민.군.관이 함께 흘린 피와 땀의 결과였습니다. 그러나 분단의 고통은 남아있고 해야할 일 또한 많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조국을 위해 장렬히 산화하신 여기 님들의 고귀한 뜻을 되새기며 우리 춘천이 세계속에 우뚝 설 수 있도록 오늘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를 스스로의 가슴에 묻고 다짐할 때입니다.  "

 

손바닥 편지
                 이화주  

"어제 집에 가서 숙제 안 하고 뭐했니?"
"원교 엄마가 놀러오라고 하셔ㅆ어요"
"그럼 저녁에는 뭐 했니?"
"아빠랑 개구리 구워 먹었어요"
선생님은 아무 말도 안 하셨지만
자꾸자꾸 미안해서
살며시 다가가
선생님 손바닥에 편지를 썼다.
우리 선생님 방긋 웃으시더니
내 손바닥에 간질간질 답장을 써주셨다.
"선생님도 너 좋아해"  

○ 이화주: 1948년 가평 출생. 춘천교육대학 졸업. 강원아동문학회 회장 역임. 한국아동문하인 이사. 횡성유현초등학교 교장. 1982년 <아동문학평론> 등단.

 

호반아파트

 

대한민국춘천특전동지회

 

근화동 전적지


이곳은 6.25전쟁 초기 6사단 7연대본부 근무소대와 19연대 1대대 장병들이 북한강의 샛강 여울인 가래목과 소양강을 도섭해 춘천시 서쪽으로 공격해 오는 적을 격멸한 장소이다. 당시는 의암댐이 건설되기 전이라 중도섬 일대의 지형이 현재와 크게 달랐다. 붕어섬, 아래 중도섬, 윗중도섬, 고구마섬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고 그 동쪽으로 북한강의 작은 샛강이 흘렀다. 또 근화동, 소양동 제방 뚝 아래 강변 일대는 넓은 모래밭이 펼쳐져 있었으며, 소양걍 수심도 얕아서 몇몇 곳에서는 도섭을 할 수가 있었다. 1950년 6월 25일 적이 기습 남침을 해오자 춘천을 방어하는 6사단 7연대는 대부분의 병력을 소양강 북쪽 전선에 투입했기 때문에 소양강 남단을 방어할 능력이 부족하였다, 그래서 7연대 본부 근무중대 1개소대를 차출하여 춘천역 부근에서 소양교 밑까지 제방 뚝을 따라 배치하였다. 6월 25일 11:00시경, 옥산포 일대에서 전투가 치열하게 전개될 때 적 일부가 가래목 여울(북한강의 샛강)을 건너 근화동으로 침투를 시도하였다. 이 때 막 배치가 완료된 7연대 근무소대가 적을 발견하고 치열한 사격을 가해 대부분을 격멸했지만 5~6명이 춘천시내로 침투하였다. 그러나 춘천시민과 경찰의 협조로 모두 사살되었다. 6월 26일 아침 6사단 예비인 19연대 1대대가 증원되어 근화동 일대에 배치됨으로써 취약한 방어선이 보강되었다. 이 날 적은 14:00경 옥산포 및 마전리 일대에 전개한 후 소양교 방향으로  공격해 왔으나 16포병대대의 집중적인 포화를 받고 격퇴되었다. 이에 적은 공격 방향을 근화동 일대로 정하고 가래목 여울을 건너오기 시작했다. 적은 19연대 1대대가 증원된 것을 모르고 이 접근로를 선택한 것 같다. 약 1개 대대의 적이 가래목(현 수몰지역) 일대에서 전개해 근화동 방향으로 접근해 왔다. 이를 목격한 19연대 1대대가 기관총, 박격포, 대전차포 등 각종 공용화기를 총 동원해 맹렬히 사격을 하고 16포병 대대가 집중 포격을 퍼붓자 엄폐물이라고는 모래 언덕 밖에 없는 가래목 일대는 살육장으로 변했다. 특히 포병이 수발신관과 시한관을 혼합해서 사격하자 땅 위에 터지는 포탄과 하늘에서 터지는 파편 때문에 적은 무더기로 쓰러져 죽었고 15:00시경이 되자 살아 움직이는 적은 거의 없고 다리를 절뚝 거리며 도망가는 몇 명만 보일 뿐이었다. 적 수백명을 격멸한 통쾌한 승리였다. 그 후 19연대 1대대는 홍천 방면의 전황이 위험하여 18:00시경 홍천으로 이동하였고 7연대본부 일부 병력이 방어진지를 인수하였다. 그리고 6월 27일 12:00시경 적 전차가 소양강을 건너 춘천 시내로 진입하자 근화동 일대에 배치되었던 병력들은 어쩔 수 없이 남춘천을 거쳐 원창고개로 철수하였다. 소양동과 근화동 일대 제방 뚝에 배치되었던 국군장병들, 그들은 해일처럼 밀려오는 적들을 막아낸 방파제나 다름없었다. 만약 적들이 남침 초기 가래목 여울을 건너 춘천시내에 돌입했다면 춘천전투에서 승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적의 피로 물들었던 강변, 그 모든 것을 덮어버리고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이름 모를 영웅들을 기리자. 그리고 그들의 뜻을 이어가자.   2010.6.25.

 

                                                                       

월남전참전기념탑

 

춘천시민들의 호국의지를 상징하는 이 기념탑은 춘천북방 오음리에서 현지 월남전 전투 적응 훈련을 받고 춘천역 광장에 집결하여 춘천시민들과 학생 그리고 가족들의 환송을 받으며 전장(戰場)을 향해 출발했던 역사의 현장을 영원히 기념하기 위해 2017년 10월 14일 세워진 춘천시 월남전참전용사들의 기념탑이다. 이 탑에는 1964년 7월 18일 부터 1973년 3월 23일까지 총병력 32만 5,517명이 참전하여 4,601명이 전사하였고 그중 장렬히 산화한 춘천 출신 약 40여명의 영웅들의 혼이 담겨 있으며,  철수 후에도 고엽제의 후유증으로 투병하는 참전 전우들의 아픔들도 스며있다.  한편으로 월남전 파병으로 인해 많은 외화유입으로 국가발전의 원동력인 경제발전의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음은 물론 대한민국이 지금의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도약하게 되는 경제성장의 상징용어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 계ㅒ기를 만들었고, 특히 전투장비 현대화와 월남전 전장경험에서 얻은 전투력 향상의 효과로 한국군 전력 증강의 밑거름이 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을 길이 남기고자 기념탑을 건립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국가와 민족 번영의 큰 힘이 되엇던 월남전 참전의 역사적 의의와 사실들을 묵묵히 대변해 줄 월남전참전기념탑은 참전 전우들의 혼을 담아 춘천 전우들의 소호신(守護神)이 되어 영원히 이 자리에 서 있을 것이다. 

 

6.25전쟁 참전국 국기

 

 6.25전쟁 경과 요약:

1) 1950.06.25 ~09.14:  북한군 기습남침, 낙동강선으로 후퇴.
-  1950.06.25 일 새벽 38선에서 북한군 기습공격. 3일만에 서울을 빼았겼다. 06.28 유엔군 참전 결의 및 07.01 미 지상군 선발대 부산 도착함. 07.05 미 스미스부대 오산 죽미령에서 최초전투. 그러나 전쟁 개전 한 달여만에 낙동강선 까지 후퇴하게 되었다. 이후 40여일 (08.01~ 09.14) 동안 낙동강 방어선을 필사적으로 사수하여 인천상륙작전의 반격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 6.25 전쟁 당시 군사력 비교:

- 육군: 한국군: 9만6,140명, 북한군 19만 1,680명 ( 1.99배 북한군 우세 )
- 해군: 한국군: 7,115명, 북한군 19만 4,700명 ( 0.66배 한국군 우세 )
- 공군: 한국군: 1,897명, 북한군 2,000명 ( 105배 북한군 우세 )
< 합계: 한국군 105,152명, 북한군 198,380 ( 1.89배 북한군 우세 ) >

전차: 한국군 ( 없음)  , 북한군 242대  ( 북한군 절대 우세 )
- 장갑차: 한국군 27대, 북한군 54대 ( 2.0배 북한군 우세 )
- 야포: 한국군 91문, 북한군 552문 ( 6.07배 북한군 우세 )
- 대전차포: 한국군 140문, 북한군 550문 ( 3.93배 북한군 우세 )
- 박격포: 한국군 960문, 북한군 1,728문 ( 1.80배 북한군 우세 )

* 낙동강방어선:  진동- 남지- 영산 - 창녕 - 대구- 영천 - 안강 - 포항 을 잇는 낙동강을 경계로 하는 경상남.북도 일부.  

2)  1950.09.15~ 10.24인천상륙작전과 압록강으로 북진.
- 09.15일 멕아더장군 인천상륙작전 성공. 09.23 김일성의 북한군 총 후퇴 명령 하달. 국군과 UN군은  낙동강 전선에서의 반격으로 전세를 역전시키고, 09.28 서울 탈환, 그 후 보름만에 38도선을 회복하였다. 10.01 38선을 돌파한 아군은 한달이 되지 않아 10.26 압록강 인근의 초산까지 진격하여 통일을 눈 앞에 두었다. 

3) 1950.10,.25 ~ 1951.07.09중공군 개입과 후퇴.
- 국군이 압록강(초산)까지 진격하고 있을 무렵 (10.26), 이미 25만여명의 중공군은 압록강을 건너와 국군과 UN군에 대한 기습을 노리고 있었다. 10.25 시작된 중공군의 대규모 공세는 이듬해 5월까지 5차례에 걸쳐 실시되었다. 국군과 UN군은 12월 초 중공군 2차공세로 평양철수 (12.04) 및  한달만에 다시 서울을 적에게 내오주고 (01.04 후퇴), 평택과 삼척을 잇는 37도 선까지 후퇴하였다가 서울을 재탈환(03.15)하고, 이후 부터 38선을 중심으로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계속하였다. 

4) 1951.07.10~ 1953.07.27:  휴전협상과 휴전선 일대 고지 쟁탈전.
- 유엔군과 공산군은 1951.07.10 휴전협정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2년간이나 계속된 휴전협상 기간동안 남북한은 한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현재의 휴전선 일대에서 치열한 고지쟁탈전을 계속하였다. 전쟁개시 3년만인 1953.07.27에 정전협정이 조인되면서 남북한은 휴전선으로 분단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6.25 전쟁 사상자 현황:

 

* 한국군 및 유엔군:
전사: 한국군 13만 7,899명, 유엔군 4만670명 (합계 17만 8,,569명)
부상: 한국군 45만 742명, 유엔군 10만 4,280명.  (합계 55만 5,022명)
실종.포로: 한국군 3만 2,838명, 유엔군 9,931명.  (합계 4만 1,769명).

 

* 북한군 및 중공군:
전사: 북한군 52만명, 중공군 11만6,000명 (합계 63만6,000명 )
부상: 북한군 12만명, 중공군 22만명 (합계 34만명 )
실종.포로: 북한군 12만명, 중공군2만9,000명 (합계 14만9,000명 )


 유엔군(16개국)  참전 현황:  ( * 참전자 : 연인원 )

-미국: 참전군 1,789,000명, 전사자 36,940명, 부상자 92,134명, 실종자 3,737명, 포로 4,439명.  
-영국: 참전군 56,000명, 전사자 1,078명, 부상자 2,674명, 실종자 170명, 포로 997명.  

-캐나다:  참전군 25,687명, 전사자 312명, 부상자1212명, 실종자 1명, 포로 3명. 

-터키:  참전군 14,936명, 전사자 741명, 부상자 2068명, 실종자 163명, 포로 244명

-오스트레일리아: 참전군 8407명, 전사자 339명, 부상자 1216명, 실종자 3명, 포로 26명.  

-필리핀:  참전군 7420명, 전사자 112명, 부상자 229명, 실종자 16명, 포로 41명. 
-태국:  참전군 6326명, 전사자 129명, 부상자 1139명, 실종자 5명, 포로 ?명. 

-에티오피아제국:  참전군 6037명, 전사자 122명, 부상자 536명, 실종자 ?명, 포로?명. 
-네델란드:  참전군 5322명, 전사자 120명, 부상자 645명, 실종자 ?명, 포로 3명. 
-콜롬비아:  참전군 5100명, 전사자 163명, 부상자 448명, 실종자 ?명, 포로 28명. 

-그리스왕국:  참전군 4992명, 전사자 188명, 부상자 459명, 실종자 ?명, 포로?명. 
-뉴질랜드: 참전군 3794명, 전사자 23명, 부상자 79명, 실종자 1명, 포로 ?명. 

- 벨기에:  참전군 3498명, 전사자 104명, 부상자 336명, 실종자 ?명, 포로 1명. 
-프랑스:  참전군 3421명, 전사자 262명, 부상자 1008명, 실종자 7명, 포로 12명. 
-남아프리카 연방:  참전군 826명, 전사자 34명, 부상자 ?명, 실종자 ?명, 포로 9명. 
-룩셈부르크:  참전군 83명, 전사자 2명, 부상자 15명, 실종자 ?명, 포로 ?명. 
< 합계:  참전군 195만 4,486 명, 전사자 4만670명, 부상자 10만 4,280명, 실종 및 포로: 9,931명 >

의료지원국:
스웨덴 1,124명 (적십자병원), 인도 627명 (제60야전병원) , 덴마크 630명 (병원선), 노르웨이 623명 (이동외과병원),

이탈리아 128명(,제68적십자병원),  독일 117명 (적십자병원)    < 합계: 3,249명 > 

 

춘천시 월남전 참전 기념탑

Monument to the Soldiers of the Vietnam War

"  이 탑은 월남전에 참전한 춘천시 출신 참전유공자들을 기리기 위해 2017년 10월 14일 건립되었다. 1964년부터 1973년까지 월남전에 연인원 324,864명이 참전하고 5,099명이 전사하였으며, 전사자 중 약 40여명은 춘천시 출신이다. 국군의 월남전 참전은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해외 파병이었으며, 국군의 현대화와 국가경제발전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 탑을 통해 참전유공자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고 후손들의 나라 사랑 정신을 함양하고자 한다.  "
 

육이오참전학도병기념탑

 

" 우리는 학도다. 1950년 6월 25일 북괴는 휴일의 새벽을 틈타 무자비한 기습남침으로 민족상잔의 최대비극을 남겼다. 그 때 젊은 학생인 우리는 교복도 벗지 못한채 참전하게 되니, 일명 군번 없는 병사요, 무명용사요, 학도병이었다. 서툰 종을 잡고 왜 싸워야 하는지 모르는 전쟁에 목숨을 걸었고, 포탄이 작렬하는 사지(死地)에서 탄약을 나르고 죽어갔다. 또 두려움과 비탄의 백성을 위해 가두선전, 전황보도로 위안했으며, 또 학도 의용경찰로 난민구호와 부상병 후송등 어느 것 하나 가리지 않고 구구일념 하나로 헌신하였다. 6.25때 현지 참전한 우두벌, 소양강 전투에서는 4일 3야 치열한 격전으로 적의 작전과 치명적인 사기를 꺾고 대군을 괴멸했으며, 적의 군단장, 사단장이 해임되는 승전을 올럈던 것이다. 오늘 그날의 싸움을 <춘천대첩>이라 명명하고 있는 데 그만큼 소양강 전투는 한국전사에 큰 획을 긋고, 빛나는 전공으로 남아있다. 그 후 홍천-충주-문경 전투에 필사의 항전과 승전으로 전진할 때 1950년 10월 9일 국군 제6사단과 지원부대인 제16야전 포병대대에 또 군문하여 화천-원산-압록강-초산(28일)까지 북진, <교가>보다 <전투가>인 "전우의 시체를 넘고넘어 앞으로 앞으로 - " 를 외치며 가슴 뭉쿨한 기쁨을 맛보았다. 그러나 누가 알았으랴 중공군의 인해전술이 있을 줄...우리는 밀려오는 중공군을 저지하여 격전에 격전을 거듭하여 싸웠다. 배움의 학도였던 우리는 위난시 솔선하여 민족의 선봉에 섰고 젊음을 바쳣다. 이제 노병이 되어 버린 학도병들은 조국의 산하에 충혼이 되어 누워있고 호국의 신으로 살아있다. 오늘의 대한민국과 이 땅에 평화가 잇음도 그런 자랑스럽고 용맹한 선배들의 피와 헌신과 눈물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제 늦게나마 그 위혼들을 기리는 자리에 불현 듯 목이 메여 오는 것은 그날에 참전한 500여명의 기록을 밝혀야 함에도 전란으로 인한 소실과 소재파악 불능으로 밝히지 못함의 아쉬움 때문이다. 오늘 이탑을 세우게 됨은 그날의 당당하고 장한 선후배들의 용기있는 활동이 후세에 귀감이 되며 전쟁의 아픔을 일깨워주는 안보교육장으로 그얼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이 탑은 춘천시 재향군인회 주관으로 동문 동창들의 협력과 추천시 및ㅊ춘천보훈지청 보조로 여가에 건립을 한다.  2004년 6월 30일 건립추진위원.  "                
 

무공탑


" 6.25한국전쟁 및 월남전에 참전하여 혁혁한 전공을 세운 무공 수훈자들의 숭고한 애국애족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고, 시민들에게 국가 안보의 중요성을 고취시키며 민족정기 선양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하여 2003년 10월 2일 무공수훈자회 강원도지부 회원들과 춘천시민들의 정성어린 성금으로 춘천대첩의 승전 격전지였던 춘천시 소양강변 평화공원에 이 탑을 세웠다. 이 탑에 서려있는 무공수훈용사들의 피와 땀 그리고 고귀한 민족혼은 나라와 겨례를 지키는 등불이 되어 우리들 마음 속에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다.  "  

 

춘천대첩기념평화공원


의암호반을 따라 걷다보면 춘천대첩기념 평화공원에서 많은 전쟁기념비를 만나게 됩니다. 6.25참전 학도병 기념탑, 춘천 월남전 참전 기념탑, 6.25 참전국 국기 등이  설치되어 펄럭이고 있습니다. 춘천은 우리나라의 국토의 거의 중앙부에 위치한 요충지로,  6.25전쟁 발발시 개전 초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입니다. 춘천이 뚫리면 홍천, 이천, 수원, 충주 등으로 적들이 진격하게 되어 수도 서울은 완전히 고립되어, 포위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이곳을 지날 때마다 젊은 용사들의 희생에 숙연한 마음으로 옷깃을 여미게 됩니다. 자신의 귀중한 몸으로 적들의 총포탄을 막아서서, 적들로 부터 조국을 지켜낸 것입니다. 전쟁에서 피흘려 산화한 전쟁 용사들 때문에 우리가 지금 평화와 번영을 누리고 있습니다. 조국을 지키기 위해 적과 용감히 싸워 희생된 군경, 학도의용군, 기타 무명용사들에 대한 추념의 마음을 우리 국민 모두가 깊이 간직하여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소양강변 동영상

춘천대교

 

새희망교회

 

봉의산  

레고랜드 모형 

 

춘천역 2번 출구

 

소양강변길 안내도

 

<소양강병길> 춘천역에서 시작해 소양강을 따라 걸으며 춘천의 풍광과 사람들을 가까이 만나게 되는 길이다. 춘천역 뒷편 출구로 나가 강뚝으로 오라서 걷다가 춘천대첩을 기리는 평화공원 등 강변으로 이어지는 풍경과 문화유적, 시장 등을 만난다. 인근에 당간 지주가 있고, 강변에는 스카이워크 소양강처녀상이 있다. 노래 '소양강 처녀'의 발상지에서 소양강의 정취를 마음껏 즐길 수 있다. 이어서 소양2교를 건너 소양1교로 들면 춘천의 어제와 오늘이 한눈에 보인다.  춘천의 진산인 봉의산이 있고 선인들의 시와 노래가 흐르던 소양정도 있다. 정자 주변에는 춘천을 거쳐간 관리들의 공적을 기리는 비석들들이 밀집해 있고 기생 진개심의 절개를 기리는 진개심비 등 문화제들이 있다. 다시 내려와 번개시장으로 향하면 그곳에서는 진한 삶의 냄새가 풍긴다. 새벽시장이었던 이곳은 멀리 서면에서 농산물을 싣고와 팔아서 자녀들을 키웠다는 박사마을 사람람들과 인연이깊다. 춘천의 다양한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것이다.

 

* 주요코스 춘천역 2번출구 - 소양강 스카이워크(1.5km) - 소양2교 (2.3km) - 소양1교 (3.5km) - 번개시장사거리 (4km) - 춘천역 광장 (6km). 

 

* 주요관광지: 

-관광지: 소양강스카이워크, 소양강처녀상, 소양정, 꿈자람물정원, 번개시장.

-음식점: 이비가짬뽕, 소양강닭갈비막국수, 남촌막국수, 춘천막국수.

 

 

경춘선 철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