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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구릅/my cycle life

춘천대교, 상중도 라이딩- ( 2021.10.09 )

by the road of Wind. 2021. 10. 9.

춘천대교, 상중도 라이딩

- ( 2021.10.09 )

 

 

 distance: 12.6 km.
○ riding time: 01:09 hrs ( 2:42~ 4:32 pm )

○ aver speed: 14.1km/hr.
○ max speed: 34.2 km/hr.

○ riding course:  춘천역 - 춘천대교 - 중도교 - 상중도 일원 - 중도교 - 의암호반 - 소양2교.

 

춘천역 일원을 라이딩 해 보았습니다. 춘천역에서 춘천 의암호 하중도로 건너는 춘천대교를 지나 의암호 상중도를 한 바퀴 돌아보았습니다. 상중도는 어쩌다 농가가 한채씩 보이는 목가적이고, 아름다운 섬입니다. 교회 1곳과 커피숍 1곳 그리고 구멍가게도 한 곳이 있었습니다. 옛날에는 상중도의 끝에 있는 낮은 야산 고산(98.6m) 곁에서 고구마섬으로 이어지는 철제 임시도로가 있어 고구마섬을 지나 춘천시 사농동으로 건너가서 소양2교를 지나 춘천역으로 가는 코스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 임시도로가 철거되어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상중도만 한바퀴돌고 춘천대교로 다시 나왔습니다. 상중도에 있는 'VIENNA COFFEE HOUSE'엔 연신 자동차들이 들락거렸습니다.  전망 좋고 조용한 의암호 상중도 유일한 커피 숍이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상중도를 돌아나가 춘천대교를 지난 후 춘천역 근처에서 의암호반 자전거길을 달려 소양2교까지 가보았습니다. 가는 도중 소양강변에 만들어져 있는 춘천대첩기념평화공원 소양걍 스카이워크, 그리고 그 유명한 소양걍처녀상도 보았습니다. 특히 춘천대첩기념평화공원에서는 6.25전쟁시 이곳 소양강 전투에서 탱크를 앞세워 파죽지세로 남침하는 적과 혈전을 벌여 진격을 지연시키므로, 한강방어선을 형성하고 UN군의 증원 시간 확보와 낙동강 방어선 구축을 가능케 하여 풍전등화와 같은 국가 존망의 위기에서 한국전의 판세를 결정적으로 바꾼 계기가 되었음을 알고 그 당시 전투에서 희생한 국군 장병들, 무명용사들의 숭고한 희생에 마음이 뭉클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소양강 처녀상을 지나 소양2교 직전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여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고 춘천역으로 되돌아가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오늘 라이딩은 모두 좋았는데, 마지막에 춘천닭갈비에 시장기를 달래지 못하여 너무 아쉬웠습니다. 아무리 좋은 라이딩이나 산책, 관광이라도 끝 마무리에 식사가 없으면 허전하게 됩니다.  

 

 

 

 

 

 

의암호:


- 강원도 춘천의 인공호수다. 
- 1967년 4만5000kw 수력발전용 의암댐 건설로 북한강, 소양강 물이 모여 만들어진 인공호수다.  

- 의암호 규모: 면적 17 ㎦ , 너비 5km, 길이 8km, 유역면적 7,709 , 저수용량 약 8,000만톤(ton).
- 의암호의 섬고슴도치섬(위도), 고구마섬, 상중도, 하중도. 붕어섬.
하중도: 춘천대교로 연결되며, 레고랜드코리아리조트 개발 중이다.

- 중도에서 신석기시대유적과 삼국시대 초기의 유적까지 다양한 시기의 유적이 다량 발견됐다.

- 상중도: 약간의 농가가 산재하고 있으며, 농경지로 이용되고 있다.
- 고슴도치섬(위도): 신매대교가 지나가고 있으며 개발이 중단되어 허허벌판의 상태로 있다. 

- 의암댐 위의 의암호에 의암스카이워크, 소양2교 아래 소양스카이워크가 있다.

 

 

 

 

● 춘천역 가는 길:

대성리역 지나는 길...

북한강 & 강건너 삼회리에서 화야산 가는 길, 큰골계곡, 하얀 첨탑 강남금식기도원, 

 

 

청평댐, 왼쪽은 호명산(632.4m)

 

 

청평역 지나며 바라보는 호명산 (632.4M). 호명산 왼쪽 능선상에 호명호수가 있다. 

 

 

상천역을 지나며...

 

가평 자라섬 입구 공용주차장. 가평읍 모습.

 

앞산경강교. 앞산 왼쪽 가평천, 오른쪽 북한강. 

 

경강교 & 중간 왼쪽 '앞산' 뒤편의 뾰족한 보납산 (432.5m)

 

 

굴봉산역 -> 백양역 가는 길,  월두봉 (162.4M)

 

 

백양역 -> 강촌역북한강 & 삼악산... 

 

 

강촌역을 지나며... 강촌의 모습, 삼악산 ( 정상 용화봉 654m )

 

김유정역 가는 길...아름다운 황금들녘. 중간에 삼악산.

 

 

김유정역, 그리고, 금병산 (652.2m)

 

 

● 춘천역 -> 춘천대교:

 

춘천역, 소양강변길 안내도

 

<소양강병길> 춘천역에서 시작해 소양강을 따라 걸으며 춘천의 풍광과 사람들을 가까이 만나게 되는 길이다. 춘천역 뒷편 출구로 나가 강뚝으로 오라서 걷다가 춘천대첩을 기리는 평화공원 등 강변으로 이어지는 풍경과 문화유적, 시장 등을 만난다. 인근에 당간 지주가 있고, 강변에는 스카이워크 소양강처녀상이 있다. 노래 '소양강 처녀'의 발상지에서 소양강의 정취를 마음껏 즐길 수 있다. 이어서 소양2교를 건너 소양1교로 들면 춘천의 어제와 오늘이 한눈에 보인다.  춘천의 진산인 봉의산이 있고 선인들의 시와 노래가 흐르던 소양정도 있다. 정자 주변에는 춘천을 거쳐간 관리들의 공적을 기리는 비석들들이 밀집해 있고 기생 진개심의 절개를 기리는 진개심비 등 문화제들이 있다. 다시 내려와 번개시장으로 향하면 그곳에서는 진한 삶의 냄새가 풍긴다. 새벽시장이었던 이곳은 멀리 서면에서 농산물을 싣고와 팔아서 자녀들을 키웠다는 박사마을 사람람들과 인연이깊다. 춘천의 다양한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것이다.

 

* 주요코스 춘천역 2번출구 - 소양강 스카이워크(1.5km) - 소양2교 (2.3km) - 소양1교 (3.5km) - 번개시장사거리 (4km) - 춘천역 광장 (6km). 

 

* 주요관광지: 

-관광지: 소양강스카이워크, 소양강처녀상, 소양정, 꿈자람물정원, 번개시장.

-음식점: 이비가짬뽕, 소양강닭갈비막국수, 남촌막국수, 춘천막국수.

 

 

 

ㅗ양강변길 안내도

춘천대교 가는 길

 

 

춘천호반

 

의암호

 

춘천시 신북읍 방향

 

 

춘천대교:

 

강원도 춘천시 중도에 추진중인 레고랜드와 도심을 연결할 진입교량인 춘천대교는 강원도가 국비와 지방비 등 약 850억원을 들여, 2015.11월 공사에 들어가 2017년 1월 길이 1058m, 폭 25m, 4차선사장교 형태로 완성한 후, 6개월 뒤 2017. 7. 18 개통하였다. 춘천대교 개통으로 중도근화동이 최단거리로 연결되므로서 도심에서 신사우동, 고구마섬 등으로 우회하지 않고 바로 중도에 닿을 수 있게 되었다. 춘천대교는 한국토목학회 주최로 열린 ‘2019년도 올해의 토목구조물상’ 행사에서 노량대교와 함께 금상을 타기도 하였다. 춘천대교는 DM엔지니어링이 설계하고 대림산업이 시공한 세계 최초의 UHPC보도사장교다.

 

 

당신은 이 세상 수많은 사람들 중의 한 사람에 불과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이 세상 모든 것이 될 수 있다.


To the world you may be just one person,
but to one person you may be the world.


- 브랜디 스나이더 (Brandi Snyder)


하중도상중도를 연결하는 중도교

 

 

춘천대교 끝 부분, 공사 중 ...오른쪽으로 상중도 가는 길이 있다. 

 

지나온 길

소양2교, 소양강, 봉의산 방향

 

중도교

 

봉의산(300.5m), 오른쪽 멀리 춘천 대룡산 (899m).

 

 

춘천대교 방향

 

 

상중도 유일의 커피 하우스. 차량이 많이 드나들고 있었다. 

Vienna Coffee House

비엔나커피하우스 ( 033-252-6134/ 강원 춘천시 상중도길 15-24) 1~3층.

 

 

 

<- 평안교회,  상중도 둘레길

 

수정매점 010-4142-9660

 

 

상중동의 끝에 있는 고산(98.6m). 차도는 여기까지이다.

옛날에는 여기에서 오른쪽 고구마섬으로 연결되는 철제 임시다리가 있어서 편리하였다.

공사가 끝난 지금 철수하고 말았다. 나는 왼쪽 길로 내려가 중도를 한바퀴 돌아보려 한다.

 

 

의암호 종합안내

 

 

지나온 길. 봉의산 방향

 

 

춘천 신매대교 방향

 

 

강 건너 고구마섬.

이곳에 설치되어 있던 옛날 철제 다리가 그리워진다.

 

 

건너온 자전거로

 

상중도 반대편으로 나왔다.

 

 

고산 아래 찻길 끝.

 

되돌아 나가는 길:

춘천 서면 방향

 

 

강 건너 산 아래 의암호 나무데크 자전거로가 보인다.

 

춘천호, 춘천댐, 신매대교 방향. 멀리 용화산 능선.

 

춘천시 서면, 에니메이션박물관

 

 

다시 중도교

 

춘천 시내 방향

 

다시 춘천대교

 

 

춘천역 인근 춘천 의암호반

 

 

춘천시  의암호 관공선 선착장

 

 

오늘날 우리들이 평화로운 삶을 누리는 것은 이 곳에서 이름없이 산화한 구국 용사들의 피의 값이구나 생각하니 머리가 숙여지고 마음이 멍멍해 진다. 또한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위해 이름도 모르는 남의 나라에 와 희생한 유엔 참전국 젊은 병사들의 희생에 안타까운 마음이 컸다. 이 땅에 다시는 6.25전쟁 같은 비극은 없어야 하겠다. 세계 도처에서 왜 전쟁을 하는 것이며, 왜 젊은이들이 피흘리며 희생하여야 하는지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모든 인간의 생명은 존귀하다. 한 국가가 전쟁의 참화를 막는 길은 유비무환의 강력한 국방력과 정신무장일 것이다. 

춘천대첩기념평화공원

 

건립취지문


50년 전 한국전쟁 개전 초기 춘천지구에서 국군 6사단을 중심으로 애국시민, 학생, 경찰이 하나가 되어 전차를 앞세우고 기습 남침하는 북괴군 6,600여명을 사살하고 전차 18대를 완파하는 등 파죽지세의 적 부대를 3일간 지연, 저지시킴으로서 수원방면으로 진출하여 국군 주력을 포위하려던 북괴군의 남침계획을 무산시켰다. 이에 따라 한강방어선을 형성하고 UN군의 증원 시간 확보와 낙동강 방어선 구축을 가능케 하여 풍전등화와 같은 국가 존망의 위기에서 조국을 구하였기에 '춘천대첩'으로 명명하고 이를 영원히 기리고자 한다. 

이 구국의 전승을 기념하여 1975년 9월 28일 춘천시 소양로 1가 65-10 대지 위에 '자유수호의 탑'을 건립하였으나 소양2교 확장공사가 시행됨에 따라 임시 철거하고 6.25 한국전쟁과 '춘천대첩' 50주년을 맞이하여 이 전승조형물을 세우고 <춘천대첩 기념평화공원>을 조성하게 되었다.

2000년 6월 26일
춘천시장  

 

 

 

 

6.25전쟁 경과 요약:

1) 1950.06.25 ~09.14:  북한군 기습남침, 낙동강선으로 후퇴.
-  1950.06.25 일 새벽 38선에서 북한군 기습공격. 3일만에 서울을 빼았겼다. 06.28 유엔군 참전 결의 및 07.01 미 지상군 선발대 부산 도착함. 07.05 미 스미스부대 오산 죽미령에서 최초전투. 그러나 전쟁 개전 한 달여만에 낙동강선 까지 후퇴하게 되었다. 이후 40여일 (08.01~ 09.14) 동안 낙동강 방어선을 필사적으로 사수하여 인천상륙작전의 반격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 6.25 전쟁 당시 군사력 비교:

- 육군: 한국군: 9만6,140명, 북한군 19만 1,680명 ( 1.99배 북한군 우세 )
- 해군: 한국군: 7,115명, 북한군 19만 4,700명 ( 0.66배 한국군 우세 )
- 공군: 한국군: 1,897명, 북한군 2,000명 ( 105배 북한군 우세 )
< 합계: 한국군 105,152명, 북한군 198,380 ( 1.89배 북한군 우세 ) >

전차: 한국군 ( 없음)  , 북한군 242대  ( 북한군 절대 우세 )
- 장갑차: 한국군 27대, 북한군 54대 ( 2.0배 북한군 우세 )
- 야포: 한국군 91문, 북한군 552문 ( 6.07배 북한군 우세 )
- 대전차포: 한국군 140문, 북한군 550문 ( 3.93배 북한군 우세 )
- 박격포: 한국군 960문, 북한군 1,728문 ( 1.80배 북한군 우세 )

* 낙동강방어선:  진동- 남지- 영산 - 창녕 - 대구- 영천 - 안강 - 포항 을 잇는 낙동강을 경계로 하는 경상남.북도 일부.  

2)  1950.09.15~ 10.24인천상륙작전과 압록강으로 북진.
- 09.15일 멕아더장군 인천상륙작전 성공. 09.23 김일성의 북한군 총 후퇴 명령 하달. 국군과 UN군은  낙동강 전선에서의 반격으로 전세를 역전시키고, 09.28 서울 탈환, 그 후 보름만에 38도선을 회복하였다. 10.01 38선을 돌파한 아군은 한달이 되지 않아 10.26 압록강 인근의 초산까지 진격하여 통일을 눈 앞에 두었다. 

3) 1950.10,.25 ~ 1951.07.09중공군 개입과 후퇴.
- 국군이 압록강(초산)까지 진격하고 있을 무렵 (10.26), 이미 25만여명의 중공군은 압록강을 건너와 국군과 UN군에 대한 기습을 노리고 있었다. 10.25 시작된 중공군의 대규모 공세는 이듬해 5월까지 5차례에 걸쳐 실시되었다. 국군과 UN군은 12월 초 중공군 2차공세로 평양철수 (12.04) 및  한달만에 다시 서울을 적에게 내오주고 (01.04 후퇴), 평택과 삼척을 잇는 37도 선까지 후퇴하였다가 서울을 재탈환(03.15)하고, 이후 부터 38선을 중심으로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계속하였다. 

4) 1951.07.10~ 1953.07.27:  휴전협상과 휴전선 일대 고지 쟁탈전.
- 유엔군과 공산군은 1951.07.10 휴전협정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2년간이나 계속된 휴전협상 기간동안 남북한은 한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현재의 휴전선 일대에서 치열한 고지쟁탈전을 계속하였다. 전쟁개시 3년만인 1953.07.27에 정전협정이 조인되면서 남북한은 휴전선으로 분단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6.25 전쟁 사상자 현황:

 

* 한국군 및 유엔군:
전사: 한국군 13만 7,899명, 유엔군 4만670명 (합계 17만 8,,569명)
부상: 한국군 45만 742명, 유엔군 10만 4,280명.  (합계 55만 5,022명)
실종.포로: 한국군 3만 2,838명, 유엔군 9,931명.  (합계 4만 1,769명).

 

* 북한군 및 중공군:
전사: 북한군 52만명, 중공군 11만6,000명 (합계 63만6,000명 )
부상: 북한군 12만명, 중공군 22만명 (합계 34만명 )
실종.포로: 북한군 12만명, 중공군2만9,000명 (합계 14만9,000명 )



유엔군(16개국)  참전 현황:  ( * 참전자 : 연인원 )

-미국: 참전군 1,789,000명, 전사자 36,940명, 부상자 92,134명, 실종자 3,737명, 포로 4,439명.  
-영국: 참전군 56,000명, 전사자 1,078명, 부상자 2,674명, 실종자 170명, 포로 997명.  

-캐나다:  참전군 25,687명, 전사자 312명, 부상자1212명, 실종자 1명, 포로 3명. 

-터키:  참전군 14,936명, 전사자 741명, 부상자 2068명, 실종자 163명, 포로 244명

-오스트레일리아: 참전군 8407명, 전사자 339명, 부상자 1216명, 실종자 3명, 포로 26명.  

-필리핀:  참전군 7420명, 전사자 112명, 부상자 229명, 실종자 16명, 포로 41명. 
-태국:  참전군 6326명, 전사자 129명, 부상자 1139명, 실종자 5명, 포로 ?명. 

-에티오피아제국:  참전군 6037명, 전사자 122명, 부상자 536명, 실종자 ?명, 포로?명. 
-네델란드:  참전군 5322명, 전사자 120명, 부상자 645명, 실종자 ?명, 포로 3명. 
-콜롬비아:  참전군 5100명, 전사자 163명, 부상자 448명, 실종자 ?명, 포로 28명. 

-그리스왕국:  참전군 4992명, 전사자 188명, 부상자 459명, 실종자 ?명, 포로?명. 
-뉴질랜드: 참전군 3794명, 전사자 23명, 부상자 79명, 실종자 1명, 포로 ?명. 

- 벨기에:  참전군 3498명, 전사자 104명, 부상자 336명, 실종자 ?명, 포로 1명. 
-프랑스:  참전군 3421명, 전사자 262명, 부상자 1008명, 실종자 7명, 포로 12명. 
-남아프리카 연방:  참전군 826명, 전사자 34명, 부상자 ?명, 실종자 ?명, 포로 9명. 
-룩셈부르크:  참전군 83명, 전사자 2명, 부상자 15명, 실종자 ?명, 포로 ?명. 
< 합계:  참전군 195만 4,486 명, 전사자 4만670명, 부상자 10만 4,280명, 실종 및 포로: 9,931명 >

의료지원국:
스웨덴 1,124명 (적십자병원), 인도 627명 (제60야전병원) , 덴마크 630명 (병원선), 노르웨이 623명 (이동외과병원),

이탈리아 128명(,제68적십자병원),  독일 117명 (적십자병원)  

< 합계: 3,249명 > 

 

 

 

육이오참전학도병기념탑

 

우리는 학도였다.

1950년 6월 25일 북괴는 휴일의 새벽을 틈타 무자비한 기습남침으로 민족상잔의 최대비극을 남겼다. 그 때 젊은 학생인 우리는 교복도 벗지 못한채 참전하게 되니, 일명 군번없는 용사요, 무명용사요, 학도병이었다. 서 툰 총을 잡고 왜 싸워야 하는지 모르는 전쟁에 목숨을 걸었고, 포탄이 작열하는 사지(死地)에서 탄약을 나르고 죽어갔다. 또 두려움과 비탄의 백성을 위해 가두선전, 전황보도로 위안했으며, 또 학도 의용경찰로 난민구호와 부상병 후송등 어느 것 하나 가리지 않고 구국일념 하나로 헌신하였다. 6.25에 현지 참전한 우두벌, 소양강 전투에서는 4일 3야 치열한 격전으로 적의 작전과 치명적인 사기를 꺾고 대군을 괴멸했으며, 적의 군단장, 사단장이 해임되는 승전을 올렸던 것이다.

 

오늘 그날의 싸움을 <춘천대첩>이라 명명하고 있는데 그 만큼 소양강의 전투는 한국전사에 큰 획을 긋고, 빛나는 전공으로 남아있다. 그 후 홍천-횡성-충주-문경 전투에 필사의 항전과 승전으로 전진할 때 1950년 10월 9일 국군 제6사단과 지원부대인 제16야전 포병부대에 또 군문하여 화천-원산-압록강 초산(28일)까지 북진, <교가>보다 <전우가>인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 를 외치며 가슴 뭉클한 기쁨을 맛보았다. 그러나 누가 알았으랴 중공군의 인해전술이 있을 줄...우리는 밀려오는 중공군을 저지하며 격전에 격전을 거듭하여 싸웠다. 배움의 학도였던 우리는 위난시 솔선하여 민족의 선봉에 섰고 젊음을 바쳤다. 이제 노병이 되어버린 학도병들은 조국의 산하에 충혼이 되어 누워있고 호국의 산으로 살아있다. 


오늘의 대한민국과 이 땅에 평화가 있음은  그런 자랑스럽고 용맹한 선배들의 피와 헌신과 눈물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제 늦게나마 그 위혼들을 기리는 자리에 불현듯 목이 메여 오는 것은 그날에 참전한 500여명의 기록을 밝혀야 함에도 전란으로 인한 소실과 소재 파악 불능으로 밝히지 못하는 아쉬움 때문이다. 오늘 이 탑을 세우게 됨은 그날의 당당하고 장한 선후배들의 용기있는 활동이 후세에 귀감이 되며 전쟁의 아픔을 일깨워주는 안보교육장으로 그 얼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이 탑은 춘천시 재향군인회 주관으로  동문 동창들의 협력과 춘천시 및 춘천보훈지청 보조로 여기에 건립을 한다.


2004년 6월 30일 건립추진위원.    

 

 

 

무공탑

 

" 6.25한국전쟁 및 월남전에 참전하여 혁혁한 전공을 세운 무공 수훈자들의 숭고한 애국애족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고, 시민들에게 국가 안보의 중요성을 고취시키며 민족정기 선양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하여 2003년 10월 2일 무공수훈자회 강원도지부 회원들과 춘천시민들의 정성어린 성금으로 춘천대첩의 승전 격전지였던 춘천시 소양강변 평화공원에 이 탑을 세웠다. 이 탑에 서려있는 무공수훈용사들의 피와 땀 그리고 고귀한 민족혼은 나라와 겨례를 지키는 등불이 되어 우리들 마음 속에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다.  "  

 

 

월남전참전기념탑

 

춘천시민들의 호국의지를 상징하는 이 기념탑은 춘천북방 오음리에서 현지 월남전 전투 적응 훈련을 받고 춘천역 광장에 집결하여 춘천시민들과 학생 그리고 가족들의 환송을 받으며 전장(戰場)을 향해 출발했던 역사의 현장을 영원히 기념하기 위해 2017년 10월 14일 세워진 춘천시 월남전참전용사들의 기념탑이다. 


이 탑에는 1964년 7월 18일 부터 1973년 3월 23일까지 총병력 32만 5,517명이 참전하여 4,601명이 전사하였고 그중 장렬히 산화한 춘천 출신 약 40여명의 영웅들의 혼이 담겨 있으며,  철수 후에도 고엽제의 후유증으로 투병하는 참전 전우들의 아픔들도 스며있다.  


한편으로 월남전 파병으로 인해 많은 외화유입으로 국가발전의 원동력인 경제발전의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음은 물론 대한민국이 지금의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도약하게 되는 경제성장의 상징용어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 계ㅒ기를 만들었고, 특히 전투장비 현대화와 월남전 전장경험에서 얻은 전투력 향상의 효과로 한국군 전력 증강의 밑거름이 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을 길이 남기고자 기념탑을 건립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국가와 민족 번영의 큰 힘이 되엇던 월남전 참전의 역사적 의의와 사실들을 묵묵히 대변해 줄 월남전참전기념탑은 참전 전우들의 혼을 담아 춘천 전우들의 소호신(守護神)이 되어 영원히 이 자리에 서 있을 것이다. 

 

 

 

 

겨울 동화
              이은무


- 엄마!
- 응
- 애기는 어디로 나왔어?
= 요기 엄마 배꼽으로
- 응 그랬구나

이토록 아름다운 거짓말처럼
한반도의 배꼽으로 나은 도시
춘천.
안개의 면사포를 썼다 벗었다
보일 듯 말 듯 무언가 유혹하는
소양강 처녀의 두다리 밑은
시리도록 맑고 투명한 빙어, 그 얼음 고기가
살고 있는 호수
깊은 겨울의 꿈

 

 

 

드라마 '겨울연가' 

유명한 KBS드라마, '겨울 연가' 의 주인공들... 배용준 & 최지우....청순미 넘치는 배우들이다.

 

 

소양강 스카이워크

 

 소양강스카이워크:  (033-240-1695/  강원 춘천시 영서로 2663 )

 

소양강 스카이워크는 국내 최장의 길이 174m사장교 형식의 교량으로 약간의 흔들림의 스릴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스카이워크 구조는 유리바닥은 수면에서 7.5m 높이며, 두께 1.2cm x 3장을 겹쳐서 만들어 전체 4cm 두께의 강화유리 바닥이며, 적용 설계 하중은 1㎡ 당 0.7 t 이며, 전체 구간에 68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설계 구조의 다리이다. 실제는 300명 정도의 인원만 출입을 허용한다고 한다.


스카이워크 전체 길이: 174m, 투명강화유리구간 156m. 국내최장 스카이워크이다. 
이용요금: 2,000원  (※ 소양강 스카이워크 입장권 발매시 춘천사랑상품권 (2,000원)을 드립니다)
이용시간:  하절기 10시~20:30, 동절기 10:00- 17:30 ( *매표는 종료시간 30분전까지 가능)
휴무일: 연중 무휴.
- 주차시설 : 없음.

 

 

 

 

봉의산 방향

 

소양강처녀 노래비

 

소양강 처녀
                      반야월 작사,  이호 작곡

 해 저문 소양강에 황혼이 지면
 외로운 갈대밭에 슬피 우는 두견새야
 열여덟 딸기 같은 어린 내 순정
 너마저 몰라주면 나는 나는 어쩌나
 아 ~ 그리워서 애만 태우는 소양강 처녀

동백꽃 피고 지는 계절이 오면 
돌아와 주신다고 맹서하고 떠나셨죠
이렇게 기다리다 멍든 가슴에
떠나고 안 오시면 나는 나는 어쩌나
아 ~ 그리워서 애만 태우는 소양강 처녀

 



앗, 소양강 처녀

 

 소양강처녀상 : 소양강 처녀상은 춘천시가 사업비 5억 5천만 원을 들여 춘천시 소양강 변에 건립한 동상으로 국민 애창곡으로 잘 알려진 명곡 와 소양강을 널리 알리기 위해 세워졌다. 현대적인 감각의 동상과 맑고 깨끗한 소양강, 주변 자연경관이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다. 최근에 생긴 스카이워크와 함께 춘천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고 있는 시설로 춘천시 근화동의 소양 2교 옆에서 만나볼 수 있다. ( 강원도 춘천시 영서로 2675 ) - 춘천시.

 

 

 

 

작품명; 자연의 생명 ( 소양강 쏘가리 )
작가: 박종재
설치일: 2006. 08. 30
재질; 스테인리스 스틸 ( 높이 18m, 무게 22.7 t)
좌대: 페교각 ( 1940년 전후 일제가 대륙침략을 위한 에너지원으로 화천댐을 건설할 당시 춘천역에서 화천까지 건설자재를 운반하던 케이블가가 교각의 일부임)  - 춘천시장.

 

 

소양강 소양2교

 

 

프랭크 포니 다리 기념비

 

FRANK FORNEY
BRIDGE
IN MEMORY OF
COL FRANK H. FORNEY
USA
CO 19 ENCR COMBAT GROUP
KILLED IN ACTION
29 NOV 1950

 

 

Forney Bridge...Elected by 62nd Enginer Construction BN.

 

6.25 전쟁 당시 춘천지역에서는 북한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치열한 전투가 있었다. 특히 소양강을 두고 밀고 밀리는 수많은 전투가 발생하였다. 1951.7.8~8.1 기간중 미군 62공병대대는 현 소양2교 위치에 병참전 유지 목적으로 목교를 건설하였고, 당시 62공병대대의 전 지휘관이었으며, 6.25 전쟁 중 전사한 Frank H. Forney 대령을 추모하기 위해  Forney Bidge 로 명명하였다. 이후 Forney Bidge 는 60년대 초까지 춘천시민의 주요 교통 수단으로 역할을 담당했으나 노후로 인해, 2차에 걸친 공사를 통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엇고, 1차 신축시부터 소양2교로 불리며 춘천시민의 편의, 경제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

2014.10.17 2공병여단장, 춘천시장    

 

 

소양2교 입구에서 빗방울이 떨어진다. 더 진행을 하지 못하고 춘천역으로 돌아갑니다.

소양2교

 

춘천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