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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구릅/내 마음의 편린

결혼 기념일 - 2022.12.09

by the road of Wind. 2022. 12. 9.

결혼 기념일


기나긴 세월이었다.
강산이 네번이나 변했다. 

그 겨울 마지막 달에
우리는 서로 평생을 기약했었다.

곡절 많은 수많은 밤과 낮,
때론 웃고, 때론 울고 하면서 
보낸 세월이다.

그 동안 아이 둘을 낳아 길러
귀여운 손자가 둘이다. 

이젠 그리운 부모님들도 모두 
우리 곁을 떠나시고 없다. 

세상은 차례대로 가고 오고 한다.
남은 것은 우리 차례 일 것이다. 

집사람은 가난한 시골벽촌의 
남편 만나 궁색한 살림에 고생 많았다.

형제들 많은 집안 장손의 박봉에

쪼들려 살아가는 형편인데,   
도시 생활 물정 전혀 모르는 
시골 부모, 형제들은 공동경제로
여기며 도움에 불만족이었으니
그 스트레스가 얼마나 많았겠는가?

딸 가진 부모들이여,
형제 많은 가난한 집에 딸 보내면
어려움에  딸 고생시키는 일이

필연적으로 많을 것임을  
부디 알아야 하나이다.   

남편은 직장 일에만 전념이고,
가정사는 모두 집사람 몫으로 돌아가니
어떻게 그 세월을 견뎌냈을까 
이제야 후회의 심정에 미안함 뿐이다.   

옷 한번, 화장품 한번 제대로 
사쓰지 못하며 가정을 지켜낸
집사람에게 나는 찬사를 보내는 바이다. 

다사다난 했던 70여년의 성상(星霜)을 보내고
이제 남은 여생(餘生)을 바라 보내면서
생각느니 모든 게 꿈 같다.

부디 우리 내외 모두 건강하여
남은 인생 길, 함께 손 잡고
어깨 나란히 평화로운 길  
오손도손 걸어가고 싶은 소원 뿐이다.   



- 2022.12.09



♣ 나는 이 맘 때가 되면 언젠가  남양주 도곡리 갑산(564m) 하산시 보았던 다산 정약용 선생의 '회혼(回婚)' 이란 시가 생각난다. 그 때 나는 그 시를 읽으며 너무 감동을 받았다. 다산 선생의 결혼 60주년에 쓴 시는 20년의 유배생활의 감회와 함께 절절한 부부애, 가족사랑을 느끼게 하는 절창(絶唱)같은 아우성으로 내게 다가왔다. 마음 뭉클하였던 감동, 지금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 다산 선생께서는 회혼 3일전에 '회혼' 시를 쓰시고, 회혼일에 뜻밖에 돌아가셨다.

 

2011.08.25 갑산 하산시

 

回婚 (회혼), - 결혼 60 주년  

                                         -  정약용

 

六十風輪轉眼翩 (육십풍륜전안번     - 육십 년 풍상의 세월 눈 깜빡할 사이 흘러가

穠桃春色似新婚 (농도춘색사신혼     - 복사꽃 활짝 핀 봄 결혼하던 그 해 같네

生離死別催人老 (생리사별최인로)      - 살아 이별이나 죽어 이별이 늙을 수록 재촉하나
戚短歡長感主恩 (척단환장 감주은)     - 슬픔 짧고 즐거움은 길었으니 임금님 은혜 감사해라 

此夜 蘭詞聲 更好 (차야란사성갱호)    - 오늘 밤 목란사*  소리 더욱 좋을씨고

舊時霞帔墨猶痕 (구시하피묵유흔)      - 그 옛날 붉은 치마에 유묵 아직 남아있네

剖而復合眞吾象 (부이복합진오상)      - 쪼개졌다 다시 합한 것 그게 바로 우리 운명 
留取雙瓢付子孫 (유취쌍표부자손)      - 한 쌍의 표주박 남겨 자손들에게 맡겨주노라

 

* 목란사(木蘭辭): 중국 장편 서사시로, 작자는 알려지지 않았다. 중국 남북조 시대의 북위에서 지어졌으며, 목란이란 어린아이가 늙어버린 아버지를 대신해 남장차림으로 전쟁터에 나간 지 10년 만에 공을 세우고 금의환향 한다. 그에 이르러서야 사람들은 목란이 여자임을 알게 되었다는 내용을 시화한 것이다.  

  

 다산 선생 (1762~1836)은 15세 때인 1776년 부인 홍씨와 결혼해 만 60년을 회로하였으며, 결혼후 20여년 유배생활로 떨어져 살았다. 이 시는 회혼일 3일 전에 이를 기념하기 위하는 마음으로 지었으나, 뜻밖에 회혼일 아침에 세상을 떠났으며, 이 시가 그의 생애 마지막 글이자 시가 되었다. 향년 73세를 누리시다가 이 세상을 떠나가셨다. 부인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느껴지는 시이다. 자식 사랑 또한 가없이 느껴진다. 다산이 강진에서 10년째 귀양 살이를 할때 병석에 누운 아내가 시집올 때 입었던 치마를 보내왔다. 아내의 마음을 헤아린 다산은 치마를 잘라 첩(帖) 몇 권을 만들고 두 아들에 대한 당부를 적어 보냈다. 노을처럼 빛 바랜 붉은 치마에 썼다 해서 ‘하피첩(霞被帖)’이라고 했다고 한다. 다산은 문집에 하피첩을 만든 사연을  ‘형제가 이 글을 보면 감회가 일 것이고 두 어버이의 은혜를 뭉클하게 느낄 것이다.’ 라고 썼다. 가슴 뭉클하다. 부부의 따뜻하고 깊은 사랑과 자식애는 후세에 언제나 귀감이 될 것이다. 인생의 아름다운 마침이고 결말이다. 다산 선생을 마음으로 우러러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 다산의 회혼 시를 다시보면서 참으로 많은 감회를 느끼고 인생에 대하여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