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시장
흐릿한 날 시장 골목을 지난다.
약한 빗방울이 하나 둘씩 떨어진다.
객(客)은 없고 주인들만 가게 앞에 서성인다.
마른 명태는 입 벌리고 졸리는 듯 하고
시금치는 떠나온 두메 밭을 생각는 듯 하다.
시장 길에서는 늘 살아가는 문제를 생각하게 된다.
누구를 기다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른 기침이 골목으로 사라져간다.
아, 나는 아직 멀었구나. 무엇도
내게는 잘 할 수 있는 것이 없구나.
우리의 생은 운명의 커튼 뒤에서 보이지 않는 것,
나는 내 발길 앞의 젖은 땅만 보고 걷는다.
물건을 잔뜩 싣고 내 뒤를 따라오는
고물 자전거 탄 사람이 어이 하며
내 곁을 지나간다. 빠르게 사라져 간다.
구부정한 등 뒤에는 시간이 매달려 있다.
- ( 2020.0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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