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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구릅/일상들 ( life )

① 경복궁- ( 2024.04.28 )

by the road of Wind. 2024. 4. 29.

경복궁

- ( 2024.04.28 )

 

최근 갑작스런 왕숙천 자전거 라이딩으로 허리를 삐끗하여 한 일주일 정도 쉬었고, 그 후 상계동 불암산 철쭉제 다녀오면서 감기에 걸려 한 일주일간 집에만 있다가 오늘은 몸 상태가 호전되는 것 같아 경복궁을 산책하여 보았습니다. 경복궁도 오랜만에 가보게 됩니다. 나는 우리나라 최고의 궁전인 경복궁을 가게되면 경복궁 근정전과 왕들이 연회를 즐겼던 연못 경회루, 그리고 건청궁 앞의 연못 향원정을 꼭 둘러보게 됩니다. 그리고, 명성황후 시해 장소인 건청궁과 민속박물관 옆에 있는 '추억의 거리' 를 꼭 둘러보고 집에 돌아오게 됩니다. 나는 이들 중 어느 것 하나가 빠지면 경복궁 관람의 의미가 색바랜 듯한 느낌을 갖게 되곤 합니다. 

 

오늘은 많은 외국인 관람객들이 한복을 입고 맵시를 뽐내며 다니고 있었습니다. 이들로 인하여 경복궁은 아름다운 궁녀(?)들로 화사한 궁전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한복이 이렇게 아름다운 옷이구나 하고 감탄하게 됩니다. 흑인이 입어도 멋있고, 백인이 입어도 멋 있습니다. 한복, 김치 등 음식, 아름다운 청자 등 도자기, 우리 한옥의 건축미 등은 우리 조상들이 물려준 위대한 문화 유산이라고 생각됩니다.   

 

오늘은  어린이날,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손자들 만날 생각에 이발도 하여 상쾌한 기분으로 시내 고궁을 관람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날씨가 초여름 날씨로 무척 더웠습니다. 사람들이 햇볕을 피하여 그늘 아래를 걷고, 그늘 아래 밴취에서 앉아 쉬기도 하였습니다. 생각컨데 올 여름은 아주 무더운 한해가 될 것 같습니다. 기상 이변이 상상하지 못할 재앙으로 다가오는 시대가 된 것 같습니다.  최근 중동 사막에 폭우가 쏟아져 물 난리가 나는 이상 현상이 예사롭지 않은 것입니다.   

 

봄도 잠깐이요, 곧 무더운 여름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푹푹 찌는 무더위에 밤낮으로 고생할 일이 걱정됩니다. 그러므로 지금 처럼 날씨 좋을 때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여 아름다운 자연을 구경하여야 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 경복궁 배치도

1. 근정전, 2. 수정전, 3. 경희루, 4. 사정전, 5. 강녕전, 6. 교태전, 아미산 굴뚝, 7. 동궁, 8. 소주방, 9. 자경전, 자경전 십장생 굴뚝, 10. 향원전, 건청궁, 11. 집옥재, 12. 태원전.

 

* 경복궁 대문:  

남- 광화문, 동- 건춘문, 서- 영추문, 북- 신무문, 계무문, 광무문

 

 

※ 경복궁 관람정보: 

 

 관람시간: 

 

- 3월~5월, 9월~10월: 09:00 ~18:00 (입장마감; 17:00) 

- 6월~8월: 09:00 ~18:30 (입장마감; 17:30)

- 11월~2월: 09:00 ~17:00 (입장마감; 16:00) 

 

( * 매주 화요일 쉽니다. )

 

 관람요금: 

 

* 내국인:

- 성인 (만 25세~64세): 3,000원 / 단체: 2,400원 (단체 10인 이상 )

- 성인 (만 65세이상): 무료. 

- 소인 (만 24세이하): 무료. 

 

* 외국인:

- 성인 (만 19세~64세): 3,000원 / 단체: 2,400원 (단체 10인 이상 )

- 소인 (만 7세 ~ 18세): 1,500원 / 단체: 12,00원 (단체 10인 이상 ) 

- 성인 (만 65세이상): 무료. 

- 소인 (만 6세이하): 무료. 

 

* 4대궁 및 중요 통합관람권: 10,000원. (구입일로 부터 3개월 사용) 

* 판매처: 4대궁 및 종묘 매표소.

 

* 무료해설 관람: - 시작하는 곳: 경복궁 안내실 앞 (홍례문 안쪽) / - 소요시간: 1시간 ~ 1시간 30분.

 

* 경복궁관리소: 02-3700-3900~1.

 

* 수문장 교대의식 10:00, 14:00/ 파수의식 11:00, 13:00  ( 문의;  한국문화재재단 02-3210-1645. )

 

 

              경복궁 주차장

 

- 승용차: 기본 2시간 3,000원, 초과 10분당 800원.

- 중.대형차:  기본 2시간 5,000원, 초과 10분당 800원.

* 회전시간 10분 무료.

* 장애인, 국가유공자: 80%감면, 다자녀가족: 3자녀: 50% 감면,  2자녀: 30% 감면,

 

* 유인운영: 06:00 - 23:00

* 소형차량이 지상주차장 이용시 중대형차 금액을 적용합니다.

 

* 주차문의: 1688-1054 / 070-7119-2792 (야간)

 

 

 산   책 : 걸음수 8,195 steps, 거리 5.65 km, 소모열량 298 kcal, 소요시간 01:27 hrs, 속도 3.6 km/h, 기온 26℃.

 코   스  (5호선) 광화문역 -  광화문광장 -  광화문 - 흥례문 - 근정전 -> 수정전 - 경회루 - 향원정 - 건청궁 - 국립민속박물관 - '추억의 거리' - 국립민속박물관 입구 - 건춘문 - 광화문광장 - 광화문역.  

 

 

세종문화회관

윤동주 시인의 서시를 읽는 여성...

 

* 이 세상에서 책 읽는 사람이 제일 아름다운 사람일 것이다. 지금은 미모 지상주의 시대인 것 같다. 타인에게 잘 보이게 하려는 것이며, 그것이 자신에게 이익이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러나 남이 알아주던 말던 자신의 내면의 마음 밭을 일구려면 책을 많이 읽고 자신을 성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많은 책은 내가 그 내용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거나 동의 하지 못할 지라도 그것 자체로 내 자신의 가장 소중한 마음 밭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토질이 좋아져야 거기에 심은 곡식이 좋은 열매를 맺게 된다. 

 

 

서시 (序詩)
                    운동주 (1917-1945)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시인 윤동주 (1917-1945): 중국 길림성 회룡면 명동촌 출생. 연희전문대 졸업. 일본 릿코대학 문학부 입학. 그러나 피어보지 못한 꽃 같은 젊은 시인은 해방을 불과 6개월 앞두고 후쿠오까 형무소에서 28의 젊은 나이에 옥사하였다.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의 詩>.

 

한글을 서소재로 한 조형물, '서울의 미소'

 

 

한글을 소재로한 이 작품은 한글을 창제하고 지켜온 역사를 되짚어 볼 소 있수 있는 한글가온길 이야기 도보 여행길의 중심부에 위치한다. 한글가온길의 '가온'은  '가운데', '중심'을 뜻하는 순 우리말로 한글이 창제된 경복궁, 한글을 지켜온 한글학회 주시경 선생의 집터 등이 있는 종로구 새문안로 3길과 세종로 23길 일대 ( 세종대왕 광화문광장 - 경복궁 - 세종문화회관 - 한글학회 - 한글발전연구소 주시경 집터)로 한글 이야기가 가득한 한글의 중심거리다.  '서울의 미소'는 웃는 입 모양과 웃음을 묘사하는 의성어 '하하하'를 소재로 한 작품으로 자음 'ㅎ'이 가지고 있는 기하학적 조형요소를 입체적으로 구성하여 한글의 우수한 조형미를 부각시켰다. 거대한 스마일 이미지는 웃음을 시각적으로 형상화 함으로써 밝은 서울, 행복한 서울 시민의 표정을 상징하고 있으며, 길게 이어진 'ㅎ'의 행렬은 미래를 함께 향해 나아가는 서울 공동체를 표상하기도 한다. 'ㅎ'의 원통 내부에는 단청에서 보여지는 다양한 색채를 부여 함으로써 전통적인 가치를 토데로 다양성에 기초한 새로운 문화의 흐름을 주조하는 서울 시민의 문화의식을 나타내고자 한다.  

한글가온길 이야기 도보 여행:


세종이야기 전시관 - 광화문 광장 - 경복궁 - 세종로공원 - 세종문화회관 - 세종 예술의 정원(서울의 미소) - 한글10마당(구세군회관) - 한글학회- 한글이야기 안내판 - 도렴녹지공원 - 주시경집 터(용비어천가)  

 

광화문 광장에서

광화문 광장...시원한 여름의 모습이다.

 

" 그대가 밀어올린 꽃줄기 끝에서
그대가 피는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떨리는지 "   - 교보문고 빌딜 플래카드 

 

새종문화회관

 

광화문 광장

 

세종대왕 상

 

주자소도

 

'시간의 정원'

 

광화문 책마당...와! 산멍, 책멍

 

그런데요, 무더운 여름에 그늘이 없이 비스듬이 눕거나 앉고 기댈 수 있는 비닐 자리는 만들어져 있지만 햇볕을 피할 수 없어 너무 아쉽고, 파라솔 또는 넓은 휘장 등으로 빨리 이를 해소 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산멍, 책멍은 무더위에 동화 속의 이야기 처럼 들린다.  왜 기획자들은 이런 것도 생각 못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마음의 평화 행복한 세상"

 

광화문 

마음과 세상을 밝히는 연등회...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국가무형문화재 연등회 

* 2024 연등행렬: 2024. 5. 11 오후 7:00 - 9:30, 흥인지문 - 종로 - 조계사.

 

앗, 광화문...수문장들이 보이고 있다.

 

광화문(光化門): 경복궁의 남쪽 정문이다. 光化(광화)의 의미는  ‘임금의 큰 덕(德)이 온 나라를 비춘다’는 뜻이라고 한다. 1395년(태조 4) 에 경복궁이 건설될 때 함께 세워졌다. 광화문이라는 이름은 그냥 정문(正門)으로 부르다 세종때 붙여진 것이다. 광화문은 1592년 임진왜란 때 경복궁이 불타면서 같이 무너졌다. 이후 273년간 공터로 있다가 흥선 대원군이 경복궁을 다시 복원하면서 1865년 재건되었다. 현판 글씨는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무관 임태영의 글씨라고 한다.광화문의 천장에는 주작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후 광화문은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 청사를 지으면서 그 위치가 현재 건춘문 위의 국립민속박물관 터로 옮겨졌고, 한국 전쟁때 목조부분이 불에 타 없어졌다. 이후 광화문은 2006년 문화재청 주도의 경복궁 복원사업 일환으로 해체하여 고종 중기 모습으로 2010년 현재 위치에 다시  세워졌다. 

 

 

수문장 교대 의식을 기다리는 사람들

 

광화문에서 바라보는 흥례문

 

경복궁 흥례문


흥례문(興禮門): 광화문과 근정문 사이에 있는 남쪽 문이다. 본래 홍례문(弘禮門)이었으나, 중건할 때 청나라 건륭제(乾隆帝)(1711~1799)의 이름인 홍력(弘曆)을 피하고자 흥례문으로 바뀌었다. 지금의 흥례문은 조선총독부 건물이었던 옛 중앙청을 철거한 다음 2001년에 복원한 것이다.

 

경복궁 안내도

경복궁(景福宮): 경복궁은 1395년 창건된  조선왕조의 법궁(法宮, 왕이 거처하는 궁궐가운데 으뜸이 되는 궁권)이다. 위로는 백악산에 기대어 터를 잡았고 정문인 광화문 앞으로 종치와 경제의 중심인 육조거리(지금의 세종대로)가 있었다. 정도전(鄭道傳)이 지은 '경복(景福)' 이란 이름에는 새 왕조가 큰 복을 누려 번영할 것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선조25년(1592) 임진왜란으로 전소되어 270여년 복구되지 못하다가 고종 4년(1867) 흥선대원군 주도로 중건되었다. 당시 경복궁에는 당시 왕과 대신들이 업무를 보던 외전과 궐내각사들, 왕과 왕비 및 궁인들의 생활을 위한 전각들, 휴식을 위한 정원등 500여동의 건물이 조성되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 의도적으로 훼손되었고, 1915년에는 조선물산공진회를 개최한다는 구실로 90% 이상의 전각이 헐렸다. 1990년 부터 본격적인 복원사업을 추진해 옛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하고 경복궁의 본래모습으로 복원하고 있다.

 

영제교(永濟橋)  

영제교: 흥례문과 근정문 사이에 영제교(永濟橋)가 있다. 태조 4년(1395) 경복궁을 건설할 때 이 다리도 만들었고, 영제교라는 이름은 세종 8년(1426)에 부터이다. 경회루 연못에서 흘러나와 근정문과 흥례문 사이를 지나 동십자각 옆의 수구(水口)로 나아가 삼청동천과 합류하는 물이 이 영제교를 통과한다. 궁궐 안 어구(御溝)를 금천(禁川)이라 하고 그 위에 놓은 다리를 대개 금천교(禁川橋)라 한다. 조선은 궁마다 별칭을 두었으니 경복궁의 금천교는 영제교(永濟橋), 창덕궁의 금천교는 금천교(錦川橋), 창경궁의 금천교는 옥천교(玉川橋)이다.

 

수로

근정문(勤政門)
 
근정문: 경복궁의 중심 건물인 근정전의 남문으로 좌우에 행각이 둘러싸고 있다. 조선시대 태조 4년(1395) 경복궁을 세울 때 함께 지었으나 임진왜란으로 불에 타 버렸다. 지금 있는 건물은 고종 4년(1867) 경복궁을 다시 지으면서 새로 만든 것이다.

 

근정전


근정전(勤政殿): 조선시대 법궁인 경복궁의 중심 건물이다. 신하들이 임금에게 새해 인사를 드리거나 국가의식을 거행하고 외국 사신을 맞이하던 곳이다. 태조 4년(1395)에 지었으며, 정종과 세종을 비롯한 조선 전기의 여러 왕들이 이곳에서 즉위식을 하기도 하였다. ‘근정’이란 이름은 '천하의 일은 부지런하면 잘 다스려진다' 는 의미로 정도전이 지었다. 지금의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고종 4년(1867) 다시 지은 것이다. 건물 내부는 임금의 자리인 어좌가 있다. 어좌 뒤에는 ‘일월오악도’ 병풍을 놓았고, 위는 화려한 장식으로 꾸몄다. 근정전에서 근정문에 이르는 길 좌우에는 문무백관들의 지위를 표시하는 품계석이 차례로 놓여 있다. 근정전은 조선 왕궁의 위엄을 갖춘 웅장한 궁궐 건축물이다.

 

근정전의 품계석((品階石): 품계석은 조선시대 문무백관 벼슬의 높고 낮음에 따라 궁궐의 정전 앞마당에 정렬한 24개의 돌이다. 조선시대에는 벼슬의 높고 낮음에 따라 정1품에서 종9픔까지 30품계로 나누었다. 나라의 조회나 하례, 국왕탄신, 혼례 등 중요한 행사시에 문무백관들은 자신의 벼슬 품계석 앞에 정렬했다. 정전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동쪽인 오른쪽에는 문관(文官), 서쪽인 왼쪽에는 무관(武官)이 정렬했다.

 

근정전의 어좌

 

사정문

 

사정전

 

사정전: 사정전은 왕의 집무실인 편전(便殿)으로 최고 통치자인 왕이 공식적인 업무를 처리하던 곳이다. 이곳에는 매일 신하가 왕을 배알하던 약식 조회인 상참(常參)을 비롯하여 경연(經筵), 윤대(輪對) 등 일상적인 국정 운영이 이루어졌다. 현재의 사정전은 고종4년(1867)에 중건한 것이다.

 

만춘전

 

사정전

안지문

향오문

강녕전(康寧殿)

 

강녕전: 강녕전은 왕의 일상생활 공간인 침전으로 연침(燕寢) , 연거지소(燕居之所)라고도 한다. 이곳에서 왕은 독서와 휴식 등 일상생활 뿐 아니라 신료들과 편히 만나 국정 현안을 의논하기도 하였다. 임진왜란으로 전소되었다가 고종 2년(1865)에 중건되었다. 1917년 화제로 창덕궁 희정당이 소실되자 희정당 중건을 위해 옮겨졌다. 지금의 강녕전은  1995년에 복원한 것이다. 

 

 

연생전

 

경성전

왕과 왕비의 침전에 있는 우물,어정(御井)

 

어정에 대한 기록은 태종 때에 처음 등장힌다. 기록을 보면 경복궁에는 모두 24 곳에 우물이 있었는데, 음식 짓는 수라간 우물, 빨래하는 세답방 우물 등이 있었으나 대부분 매몰되었다. 임금에게 올릴 물 어수는 반드시 어정에서 길어야 했으며 수부는 궁중에서 어정의 물을 길어 어수를 바치던 주방(酒房)의 종이다. 태종 때에는 어수 바치는 것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내시를 벌주었다고 한다. 강녕전 서쪽에 있는 왕의 어정은 두터운 돌 뚜껑을 씌운 것으로 보아 평소에 식용수로 쓰였을 지는 의문이라고 한다. 

 

흠경각

양의문

교태전(交泰殿)...왕과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과 강녕전에는 지붕의 방수를 목적으로 하는 지붕의 용마루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교태전:  교태전은 왕비의 침전이다. 이곳에서 왕비는 내명부의 수장으로서 궐 안의 살림살이를 총 지휘했다. 세종22년(1440)경에 건립되었으나 임진왜란으로 전소되었다가 고종2년(1865)에  중건되었다. 1917년 화재로 창덕궁 대조전이 소실되자 대조전 중건을 위해 옮겼다. 현재의 교태전은 1995년에 복원한 것이다.  

 

교태전 내부

 

함원전

 

자시문

 

경회루 측면...풍악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경회루 (慶會樓):

왕실의 큰 연회를 베풀거나 외국 사신을 접대하던 곳으로 1867년 재건되었다. 높은 2층 누마루에 올라 서쪽으로 인왕산, 동쪽으로 궁궐의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하며, 주위의 넓은 연못에는 뱃노리를 했다고 한다. 7 X 5칸, 바닥면적 933㎡ (282평)로 현존 목조 건물 가운데 가장 큰 규모다. 2층 마루는 3겹으로 구성되었는데, 중심 3칸은 천지인(天地人) 을, 그 바깥 12칸은 1년 12달을, 가장 바깥의 24기둥은 24절기를 의미하는 등 동양적 우주관을 건축으로 상징했다. 중건 당시에 경회루(慶會樓) 연못에 2마리 청동 용을 넣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실제로 1997년 준설공사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아름다운 건축물 경회루...

 

근정전 방향

 

근정전으로 들어가 본다.

근정전 측면

근정문 방향

수정전


수정전궐내각사: 왕실과 밀접하게 관련있는 관청을 궁궐안에 설치해 궐내각사(闕內各司)라 불렀다. 비설인 승정원, 서작 편찬을 맡앗던 홍문관, 의료기관인 내의원 등 크고 작은 관청들이 근정전 서쪽에 있었다. 세종 때 한글 창제의 무대가 된 집현전은 지금의 수정전 자리에 있었다. 1867년 중건된 이곳은 왕의 출입이 빈번하여 관청으로는 드물게 정면에 월대를 두었다. 수정전은 일상 집무공간으로 사용하다가 1894년 갑오개혁 때 내각 본부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관람객들이 더위를 피해 시원한 나뭇 그늘에 앉아있다. 

 

 

풍기대(風旗臺), 보물제847호

풍기대(風旗臺): 풍기대는 대 위에 구멍을 뚫어 깃대를 꽂고 그 깃대에 기를 달아 바람의 방향과 속도를 가늠했던 기상 관측기구이다. 18세기 유물로 추정하며, 탁자 모양의 돌 위에  긴 팔각기둥을 세우고 넝쿨무늬를 정교하게 새겼다. 본 풍기대는 경복궁 흥복전권역 복원공사 구역에 위치하고 있어, 공사기간 동안 불가피하게 이곳으로 임시 이전하여습니다.   

 

 

하향정(荷香亭):

하향정은 경회루 연지(蓮池) 북쪽에 있는 정자로, 1959년 지어졌다. 하향정은 일반 정자에서는 보기드문 육각형의 형태이며 규모는 적지만 건축 기법이 섬세하고, 익공(翼工) 형식의 조선 후기 궁궐 건축 양식을 따랐다.

 

북악산

 

교태전 방향

 

흥복전 방향

 

왕의 후궁들이 살던 공간인 빈궁(嬪宮)이다. 궁궐 내 여성 내명부에 적절한 소임을 주고 독립된 건물 채인 각 전殿에 배속시키는 본부 역할을 했으며, 외국 사신을 만나는 편전으로도 활용됐다. 신정왕후 조대비趙大妃(1808~1890)가 이 곳에서 승하하였다. 

 

예성문

영지문...함화당, 집경당 출입문.

향원정(香遠亭) & 향원지

향원정: 경복궁 북쪽 후원 영역에 조성된 정자이다. 연못인 향원지와 함께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광을 지니고 있다. 
 

집옥재(集玉齋) 

집옥재: 집옥재는 경복궁 북문인 신무문과 건청궁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고종28년(1891) 창덕궁 함녕전의 별당이었던 집옥재, 협길당 등을 이건한 것으로 서재와 외국 사신 접견소로 사용되었다. 집옥재는 양 옆을 벽돌로 쌓아 전통 양식에 중국풍을 일부 가미하여 만든 건물로 좌,우에는 팔우정과 협길당이 하나의 복도로 연결되어 있다. 

 

 

필성문..

 

추수부용루

 

정시각

연금당

 

사시향루

옥호루

 

곤녕합(坤寧閤)

공녕합은 명성황후가 일상 생활 공간으로 사용하던 건물로 1895년 10월 8일 명성황후가 일본인 자객에 의해 시해된 을미사변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7년간 왕실 의사로서 왕지를 모신 미국인 앨러스 벙커( Annie Ellers Bunker) 여사는 명성황후에 대해 성품이 부드럽고 친절하며 조선 여성의 미를 갖춘 미인이라고 회상하였다. 1895년 2월 청일전쟁 이후, 일본이 만주까지 침략하자 조선 왕실은 러시아와 손을 잡고 일본을 국내에서 철수시키려 하였다. 이에 일본 군부는 왕실을 압박하는 비상사태를 만들기 위해 10월 8일 새벽에 민간인 복장을 한 일본 장교들이 건달들을 끌고 건청궁에 난입하여 왕비를 시해하였다. 폭도들은 왕비의 시신을 건청궁 동쪽 언덕 녹산 자락에서 태우고 남은 뼈를 그 자리에 묻었다. 이후 왕실에서 이를 거두어 경운궁(현 덕수궁)에 시신을 안치하고 국장을 지냈다.     

 

명성황후의 비극적인 최후를 생각할 수록 일제의 악랄함이 떠오르게 된다.  

초양문

 

장안당

건청궁 

건청궁 (乾淸宮)

경복궁 중건사업이 끝난 이듬해인 1873년, 고종은 경복궁 북쪽 동산정원인 녹산(鹿山)과 향원정(香遠亭) 사이에 건청궁을 건립케 하고 명성황후와 기거하였다. 건청궁의 건축양식은 궁궐의 침전 양식과는 달리 양반가옥 살림집을 응용하여 사랑채(장안당), 안채(곤녕합), 부속건물(복수당), 행각 등으로 구성되었는데 그 규모는 양반가옥 상한선인 99칸의 2.5배 되는 250칸이다. 건청궁이 건립된지 3년이 지난 1876년, 경복궁에 큰불이 나자 고종은 창덕궁으로 생활공간을 옮겼으며, 1885년에 다시 건청궁으로 돌아와 1896년 아관파천 때 러시아공관으로 피신 할 때까지 10여년간 줄곧 이곳에서 지냈다. 한편 건청궁은 1887년 미국의 에디슨 전기회사에서 발전기를 설치하여 우리나라 최초로 전등이 가설된 곳이며, 1895년 을미사변 때 명성황후가 곤녕합에서 일본인 자객에게 시해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일제시대에 들어와 경복궁의 건물들이 차례로 파괴되면서 건청궁은 1909년에 철거되어 이 자리에 조선총독부 미술관이 지어졌으며, 한동안 국립 현대미술관으로 사용되다가 1998년에 철거되었다. 문화재청은 건청궁을 원래 모습으로 복원하여 2007년 10월 부터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다.    

 

 

취향교 & 향원정 출입문

취향교(醉香橋)

취향교는 건청궁 영역과 연못 안에 있는 향원정을 연결하기 위한 둥근 나무다리이다. 원래 향원정 북쪽에 있었으나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자 1953년 향원정 남쪽으로 옮겨 세웠다. 2017년 벌굴조사를 거쳐 취향교 원래 위치를 확인한 후 남쪽 다리는 철거하고, 사진 등을 참고하여 2019년 복원하였다. 

 

취향교 & 향원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