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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구릅/일상들 ( life )

인천 차이나타운, 자유공원- ( 2025.03.24 )

by the road of Wind. 2025. 3. 27.

 

인천 차이나타운, 자유공원

- ( 2025.03.24 )

 

오늘은 등산 스틱 AS 받으려 인천 서운일반산업단지 내에 있는 코베아 서비스센타에 들렸다가 인천에 와서 그냥 집에 돌아가기 아쉬워 인천 2호선 계산역으로 버스를 타고 가서 부평역에서 1호선으로 환승하여 인천역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역 앞에 있는 인천 차이나타운 자유공원을 구경하여 보았다. 집에 늦게 들어가지 않으려고 간단한 동선으로 걸어보았습니다.  

 

 인천 차이나타운:

 

인천 차이나타운은 인천역 앞 자유공원 (응봉산) 주변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1884년 최초 조계지가 설정될 당시 현재의 1패루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왔기 때문에 무역업을 하기 가장 좋은 조건인 무역항 인근에 자리를 잡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1884년 당시 조성된 조계지 경계 계단을 중심으로 오른쪽은 일본 조계지, 왼쪽은 중국 조계지로 구획하였다. 그 구획선을 따라 건물의 양식도 판이하게 다르다. 일본 조계지 쪽으로는 일본 양식의 은행건물, (구)창고건물 등이 있으며 이를 활용한 박물관 전시관 등이 자리 잡고 있다. 반면에 조계지 경계 계단의 좌측에 위치한 청국 조계지 구역은 중국 느낌이 물씬 난다. 과거 청국영사관 터 인천 화교협회 건물이 자리 잡고 있으며, 뒷편에는 구 영사관의 회의청 중화회관이 위치해 있다. 또한 언제나 대만 국기가 나부끼는 화교학교가 있고, 중국음식점, 중국빵집, 만두집, 잡화점, 의선당 등이 위치한 중화가가 자리잡고 있다. 청국 조계지 내에는 또한 3개의 패루 한중문화회관, 중국어마을 문화체험관, 그리고 짜장면 박물관 등이 위치해 있다. 이 구역에는 화교들도 많이 거주하고 있다. 이렇듯 인천 차이나타운 130년을 살아온 화교들의 이야기가 있고, 건물 등의 흔적도 여전히 남아 있으며, 현재까지도 과거의 공간을 활용하고 해당 공간에서 거주하며 생업을 이어가고 있는 이른바 생태박물관이다.

 

 산   책:  걸음수 4,105 steps, 거리 2.82 km, 소모열량 135 kcal, 소요시간 00:44 hrs, 속도 3.7 km/h, 기온: 14℃.

 코   스: (1호선) 인천역 - 인천 차이나타운 - 자유공원 (한미수교100주년탑- 맥아더장군 상) - 각국조계지 - 생활사전시관 -  옛 조선은행 -  차이나타운 입구 - 인천역.

 

▶ 코베아 AS센터:

1호선 부개역 2번 출구 앞 정류소에서 302번 버스 승차

 

부개역 정류장에 들어오는 302번 버스

 

인천 서운일반산업단지 입구에 내려 찾아간 비젼 코베아 AS 고객센터

 

고객대기장소

 

인천 차이나 타운 & 자유공원:

 

앗, 인천역

인천역....한국철도 탄생역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는 1897년 3월 22일 인천에서 착공하여 1899년 9월 18일 노량진-인천역 까지 8KM가 개통된 경인철도이다. 도보로 12시간 걸리던 서울과 인천 간을 1시간 30분으로 줄이면서 서울과 인천이 1일 생활권으로 변하는 계기가 되었다. 최초의 기관차 모갈1호: 모갈1호는 철도 개통시 사용된 열차를 견인한 증기기관차로 미국 브룩스회사에서 총 4대가 제작된 후 반제품으로 운송하여 1899년 인천에서 조립되었다. " 

 

인천 차이나타운 입구....'중화가'  패루 ( 1패루 ):   

 

옛날에는 여기까지 바다물이 들어왔으며, 중국에서 청국 군인들과 함께 들어온 화교들이 무역상을 하기 위하여 이곳에 둥지를 잡아 오늘날 화교들이 밀집한 인천 차이나타운이 형성되었다. 

 

중화원....내가 점심으로 짜장면 먹으러 자주 가는 곳. 이 집 짜장면, 싸고 맛 좋고.....

 

개항동행정복지센터

 

경성흑백사진관

 

앗, 차이나타운 붉은 색이 요란하다. 중국인들은 붉은 색을 좋아한다고 한다.

 

향래객, 공화춘 등등 무수한 중화요리 집들....

 

공갈빵. 월병...

 

연경, 공화춘 등등 

 

청빈

 

연경대반점

 

자유공원 오르는 계단

 

차이나타운 황제의 계단

 

차이나타운에서 조성한 관광체험형 계단으로서 중국의 절경을 체험하며 복을 얻어가는 시민 체험형 계단

 

1F - 왕의 길
2F - 황제의 알형
3F - 무릉도원의 여행
4F - 만리장성의 여정
5F - 도화원의 복숭아

즐거운이 가득한 차이나타운에서 황실의 기운과 복을 얻어가시길 기원합니다. 

 

As a tourist experience-type staircase built in ChiaTown, it is a citizen-participating staircase where you can experience Chinese attaractions and get good fortune.

1f - King's Road
2f - Meeting the emperor
3f - Jouney of the fantasy valley
4f - Journey of the Gteat Wall
5f - Peach in Flower garden

We hope thal you will receive the impoerial energt and good foutune im ChiaTown, which is full of joy.

 

중국제과담

 

옛날짜장

 

 

중화기독교  인천교회

 

선린문 방향

 

선린문

 

 

삼국지 벽화 거리

 

자유공원 가는 계단 길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탑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탑

 

매점

 

인천광역시 중구 관광안내도...개항장문화지구 / 차이나타운 / 송월동동화마을 / 자유공원

 

자유공원 안내

 

앗, 맥아더 장군 동상

 

맥아더장군동상건립문


정의에는 국경이 없고 투쟁에는 산도 물도 거침이 없다. 이러한 정의로써 이러한 투쟁을 감행하여 자유세계의 노선 위에 승리를 가져오고 그리하여 만인의 감격과  찬양을 한 몸에 두른 이가 있으니 그가 바로 여기 이 동상의 주인공 다그라스 맥아더 장군이다. 그는 1880년 1월 26일 아-더 맥아더 장군의 둘때 아들로 미국에서 태어나서 소위로 출발하여 오성장군의 칭호를 받음에 이르기 까지 무릇 반세기에 걸쳐 가지가지 혁혁한 무공을 세운 이로서 일본의 항복을 받음과 동시에 점령군 총사령관으로 패전 일본에 주재케 되었다. 일본이 이같이 항복함으로써 한국은 해방되었으나 불행히 국토가 비참하게 양단되었으며 설상가상으로 1950년 6월 25일 공산도배가 북으로 부터 대한민국을 침입하였을 때 즉시 미국 정부는 한국 구원을 결정하고 맥아더 장군에게 공산침략 항전에 참가한 모든 군대를 지휘하도록 명령하였다. 그의 탁월한 천재가 발휘된 것은 바로 이곳 인천에서 였다. 그 호매한 식견으로 안출된 거의 기적적인 인천상륙작전을 1950년 9월15일에 장군의 진두지휘 아래 결행하여 그 결과로 전세가 일전하여 자유의 승리와 대한민국의 구원을 가져왔었으니 이것은 영원히 기념할 일이며 이것은 영원히 기념할 사람인 것이다. 그리하여 감격에 넘치는 우리 국민의 명의와 의연으로 각계각층 대표를 망라한 맥아더 장군 동상 건립위원회가 김경승 교수의 손에 의하여 비져진 장군의 용자가 영겁을 통하여 이 거룩한 지역을 부감하도록 이 동상을 세운 것이다. 장군과 그 휘하 용감한 유엔군 장병들이 우리와 자유를 위하여 이곳에서 취한 행동을 우리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공산주의의 유독한 침투에 대한 최후의 투쟁에 승리를 거둘 때 까지 전쟁에는 승리에 대신 할 것은 없다 라고 한 분이 역시 장군이었다는 사실을 영원히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1957년 9월 15일 맥아더장군 동상건립위원회     

 

인천상륙 자전 지휘 중인 맥아더 장군 부조물

(좌측) 기존 부조물,  (우측) 신규 부조물  관련사진

(좌측) 기존 부조물은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맥아더 장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57년 9월 국민들이 모은 성금으로 동상과 함께 설치되었으나 인천상륙작전이 아닌 1944년 필리핀 레이테만 상륙작전의 사진을 참고하여 만들어졌다는 것이 전문가들에 의해 제기 되었습니다. 이에, 인천광역시는 관계기관 및 시의회, 군사.역사.미술 등  전문가로 구성된 '맥아더 장군 부조물 검증 자문위원회'를 구성하여 부조물 정비 방향을 논의 후 기존 부조물도 거의 70년간 인천시민과 함께 한 역사적 가치가 있어 존치하고, 동일 크기의 신규 부조물울 설치하기로 하였습니다. 

(우측) 신규 부조물은 '미국 맥아더 기념관'에서 인천상륙작전 당시 맥아더 장군이 마운트 맥킨리 함상에서 상륙작전을 지켜보는 사진과 해병대원들이 적색해안(월미도)와 만석동 사이의 해안에서 방파제를 넘어 상륙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제공 받아 참고하여 제작하였습니다.     

 

맥아더 장군은 낙동강의 조그만 국토 만이 점령당하지 않은 백척간두의 우리나라를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여 구해낸 위대한 전략가이자 영웅이다.   

 

이 기념물은 1950년 6월 25일 부터 1953년 7월 27일까지 한국전쟁에 참전한 모든 미 해군 장병들을 기리기 위해 헌정되었습니다. 이들은 공산주의 침략에 맞서기 위해 다른 미군 병사들, 대한민국, 유엔 깃발 아래 뭉친 21개국의 병력과 함께 싸웠습니다.  2000년 6월 22일 미국 해군 기념재단.

    

미해군기념재단 헌정비.   맥아더장군과 상륙작전 광경이 부조되어 있다.  

 " ...the most masterly and audacious startegic stroke in all history...

...모든 역사에서 가장 위대하고 담대한 전략적 타격...
...dedicated honor all U.S army personnel who served in the korean war, june 25, 1950 to july 27, 1953."  

...모든 역사에서 가장 위대하고 담대한 전략적 타격...1950.6.25~1953.7.27 근무한 미해병에 대한 존경으로 헌납하다...  

placed june 22, 2000 by the united states navy memorial foundation,  washington D.C.   
워싱턴 D.C. 소재 미해군기념재단이 2000.6.22 설치함.

 

 

인천시민헌장

 

인천제일교회

 

인천시민애집...문이 닫혀있다.

 

근대건축문화자산 재생사업 1호.....개항장 이음 1977

 

-> 각국조계표시석

 

각국조계석  (General Foreign Settlement Board Stone) 

조계란 영토의 일정한 범위를 한정하여 외국인의 거주를 허가한 지역으로 거류지라고도 부른다. 인천에는 1883년 일본전관조계를 시작으로 같은 해 12월 청국전관조계, 1884년 10월에 각국공동조계가 설치되었다. 조계석은 조계의 경계를 나타내 주는 표지석으로 각 조계의 경계 지점에 세웠던 것이다. 이 각국조계석에는 '각국지계(各國地界)' 와 '조선지계(朝鮮地界)'라는 명문이 있어 인천의 각국조계와 조선인의 마을에 맞닿는 개항장의 외곽 지점 어딘가에 서 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2007년 제물포구락부 보수 공사 중에 발견되어 현재 인천시립박물관이 보관하고 있디.  

 

 

각국조계석

 

인천시민애집

송학동 구 인천시장 관사


중구 응봉산 기슭에 있는 옛 시장관사는 1883년 인천 개항 후 한세기의 역사적 흔적을 간직한 곳이다. 이곳은 인천항이 내려다 보이는 수려한 경관과 장원으로 이름이 나 있다.  송정동 옛 시장관사는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었다. 1900년 쯤에는 일본인 사업가의 일본식 저택으로사용되었다.  그리고 광복 후애는 동양장이라는 서구식 레스토랑과 송학장이라는 사교클럽으로 활용되었다. 또한 1965년 인천시에서 부지를 매입하여 한옥 건물을 신축하고 1966년 부터는 35년간 인천 시장공관으로 사용하였다. 이곳에서 총 17명의 시장이 생활했다. 2001년 부터는 인천 역사 자료를 모으는 역사자료관으로 20여년 활용되었다. 2021년에는 인천직할시 승격 40주년을 기념하면서  재단장 하여 시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탄생하였다.  

 

제물포구락부

월미도 방향 인천항

 

자유공원 방향

공자는 인류의 위대한 스승이다.

子曰(자왈),

學而時習之, 不亦說呼 -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有朋自遠方來, 不亦樂呼 -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呼 - (인불지이불온, 불역군자호)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니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섭섭해하지 않으니 어찌 군자가 아니랴. "

- < 공자, 논어 학이편 제1장 >
 

공자 (BC 551~BC479) 의 일생

공자 <이름은 구(丘), 자는 중니(仲尼). 노나라 출생(魯國出笙) >는 中國春秋(중국춘추)시대의 위대한 정치가, 교육가이며 儒家(유가)의 創始者(창시자)이다. 공자는 일생에 걸쳐 많은 고전 명작 古詩(고시), 禮樂(예악), 春秋(춘추), 易經(역경) 등을 整理(정리) 출판하여 중화 민족 역사에 탁월한 공헌을 하였다. 그의 주요 사상과 언행은 論語集(논어집)에 기재되어 있다. 공자는 중국봉건사회의 철학, 교육, 문학, 예술 등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을 뿐 아니라, 그의 유가사상은 중화민족문화를 대표함과 아울러 인류 역사상 중요한 유산으로 전 세계에 영향을 주고 있다.

 

청.일 조계지 경계 계단  

이 지역은 1883년 일본 조계를 시작으로 1884년 청국 조계가 설정되는 경계지역으로, 만국공원(현 자유공원)으로 연결되어 계단과 조경이 마련된 공간이다. 약 130년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이 조계지 경계계단은 중앙에 석초 계단이 형성되어 있고 양단을 중심으로 급한 경사인 점을 감안하여 계단참을 두고 있다. 이곳에 조경 식대 공간을 마련하여 인천항 경관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자유공원의 서남쪽  가파른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이 계단을 중심으로 청국과 일본의 건물들이 확연하게 서로 다른 양식들로 번화하게 들어서 있다. 청.일 조계지 경계 계단은 계단 자체의 가치보다 역사성 및 장소작 측면의 가치가 높다. 

 

중국상품도매센터

 

관동교회

 

인천중구청

 

인천 구 일본제18은행

 

인천 제18은행 지점은 제18은행이 1890년 해외에서 세운 최초의 은행지점이다. 일본이 중국을 상대로 한 면직물 중계무역이 번창하자 수출입과 통관업무의 중심지였던 인천에 지점을 개설한 것이다. 이후 1936년 조선식산은행 인천지머에 그 업무를 인계하였으며, 1954년 상공은행과 신탁은행의 합병으로 발족한 한국흥업은행 지점으로도 사용되었다. 현재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1903년에 신축된 단층 건물로 기단부와 기둥은 돌을 사용했으나 벽체는 벽돌을 쌓은 후에 시멘트와 모래 반죽으로 마감하여 석조 건물처럼 보이게 한 절충주의 양식 건물이다. 정면 출입구의 상부와 좌우 기둥은 정교하게 석재로 장식하였다.      

 

인천 구 일본제58은행

일본 오사카에 본점을 둔 일본 제58은행은 인천 전환국(典圓局)에서 주조되는 신화폐와 구화폐의 교환을 목적으로 1892년 인천에 지점을 설치하였다, 이어 1893년 부산, 1895년 서울에 지점을 설치하였고 양국에서 송금한 상품 대금의 결재와 무역 금융에도 주력하였다. 후에 야스다(安田) 은행으로 개편되었으며, 광복 후 조흥은행 인천지머, 대한적십자 경기도지사 사옥으로 사용되었다가 현재는 인천광역시 요식업조합이 사용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프랑스 벽돌조 2층 건축물로 1층은 석조 기단으로 되어있고, 2층은  발코니와 아랫방을 밝게하기 위하여 설치한 돌출창으로 되어있는 것이 특징이다. 내부 일부는 개보수로 변경되었으나 오르내림식의 창문을 비롯하여 벽체와 기둥은 아직까지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감리교회 발상지 내리 교회와 최초의 서구식 초등교육기관 영화학당

 

최초의 서양식 호텔

최초의 서양식 주택 세창양행 숙사

인천 청관에서 탄생한 짜장면 음식점 공화춘

인천 최초의 상설 영화관 표관

최초의 우편배달부  

우리나라의 우편 제도는 1884년 11월 18일 서울과 인천 간에 우편물이 교환되기 시작하면서 그 막이 올랐다. 본 조형물은 근대 사진자료에 남아있는 우체부와 우체통(1912년식)의 모습에 기초하여 제작되었다. 

인천 구 일본제1은행:  

1883년 인천 개항 후 일본제1은행 부산지점의 인천출장소로 개설된 근대적 금융기관이다. 1888년 인천지점으로 승격되었고, 초기에는 해관통관세를 취급하였다. 1911년 조선은행 인천지점으로, 1950년 한국은행 인천지점으로 사용되었다. 이후 조달청 인천사무소, 법원 등기소 등으로 활용되다가 2010년 인천개항박물관으로 개관하였다. 1899년 신축된 지상 1층 건물로 석재 기단부와 수평  줄눈의 안정되고 견고한 외관을 지니고 있다. 돌출된 출입문을 중심으로 좌우대칭으로 구성된 석조건축물이다. 현관 상부는 아치 구조이며 지붕에는 중앙 돔과 작은 천장을 설치하였다. 처마 부분에는 동그란 구멍이 뚫린 석조 난간을 올렸다.     

생활사전시관 ...우리나라 최초의 태극기

 

차이나타운 입구

한중원

본 한중원은 한.중 문화교류 활성화 및 관광객 휴식을 위해 중국 4대 정원 중 출정원과 유원의 시설양식을 주제로 조성한 쉼터로 중국의 전통 수목인 대나무, 장미, 모란 등을 식재하여 중국의 정취를 느낄 수 있도록 조성하였다.

2008. 4. 인천광역시 중구청장

 

천주교 해안성당

 

인천 선린동 공화춘

 

공화춘의 전신은 산동회관으로 중국인 전용 주거지인 청국 조계지에서 음식점과 호텔의 혼합형 숙식업소로 시작하였다. 1911년 산동성 출신의 화교 우희광(于希光)이 지금의 위치로 이전하여 개업하였다가 이듬해 중화민국의 수립을 기념하여 '공화국의 봄'이라는 의미의 공화춘으로 개명하였다. 일제강점기 아래 인천과 서울의 상류층들이 이용하는 경인지역 최고급 요리점으로 70여 년간 그 명성을 이어왔고, 6.25전쟁 이후에는 짜장면 등 대중 음식을 보급하였다. 공화춘은 화강암 석축 위에 벽돌을 쌓아올린 2층 벽돌조 건물로 화교의 생활 모습을 보여주는 근대 문화유산이다. 연안 부두 신축으로 인천역 일대 상가가 쇠락하면서 1983년 영업을 중단하였고 2012년 부터 짜장면박물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공화춘

짜장면 박물관

 

인천역 앞 차이나타운 입구 코너에 있는 벤댕이골목

 

오, 인천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