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 ( 2025.09.27 )
● 덕수궁:
덕수궁은 조선시대를 통틀어 크게 두 차례 궁궐로 사용되었다. 덕수궁이 처음 궁궐로 사용 된 것은 임진왜란 때 피난 갔다 돌아온 선조가 머물 궁궐이 마땅치 않아 월산대군의 집이었던 이곳을 임시 궁궐(정릉동 행궁)로 삼으면서 부터이다. 이후 광해군이 창덕궁으로 옮겨가면서 정릉동 행궁에 새 이름을 붙여 경운궁이라고 불렀다. 경운궁이 다시 궁궐로 사용된 것은 조선 말기 러시아 공사관에 있던 고종이 이곳으로 옮겨 오면서부터이다. 조선 말기 정국은 몹시 혼란스러웠다. 개화 이후 물밀듯 들어온 서구 열강들이 조선에 대한 이권 다툼이 치열했기 때문이다. 고종은 러시아공사관에서 돌아와 조선의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새로 환구단을 지어 하늘에 제사를 지낸 뒤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대한제국 선포는 조선이 자주 독립국임을 대외에 분명히 밝혀 정국을 주도해 나가고자 한 고종의 선택이자 강력한 의지였다. 대한제국의 위상에 맞게 경운궁 전각들을 다시 세워 일으킨 것도 이과 같은 맥락이다. 고종 당시의 궁궐은 현재 정동과 시청 앞 일대를 아우르는 규모로 현재 궁역의 3배 가까이 이르렀다. 그러나 고종의 의지와 시도는 일제에 의해 좌절되고, 고종은 결국 강압에 의해 왕위에서 물러났다. 이때부터 경운궁은 ‘덕수궁’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고종에게 왕위를 물려받은 순종이 창덕궁으로 옮겨가면서 고종에게 장수를 비는 뜻으로 ‘덕수’라는 궁호 (공덕을 칭송하여 올리는 칭호)를 올린 것이 그대로 궁궐 이름이 되었다. 고종은 승하할 때까지 덕수궁에서 지냈으며, 덕수궁은 고종 승하 이후 빠르게 해체, 축소되었다. 개화 이후 서구 열강의 외교관이나 선교사들이 정동 일대로 모여들면서 덕수궁도 빠른 속도로 근대 문물을 받아들였다. 덕수궁과 주변의 정동에는 지금도 개화 이후 외국 선교사들에 의해 건립된 교회와 학교, 외국 공관의 자취가 뚜렷이 남아 있다. 덕수궁이 다른 궁궐들과 달리 서양식 건축을 궐 안에 들인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고종 당시의 궁궐 면모에는 크게 못 미치지만, 덕수궁에는 저마다 사연을 안은 유서 깊은 전각들이 오순도순 자리하고 있다. 석어당에서 석조전에 이르는 뒤쪽에는 도심의 번잡함을 잊게 하는 호젓한 산책로도 있다. 파란만장한 근대사의 자취를 기억하는 덕수궁은 서울에서 손꼽히는 산책로인 정동길과 더불어 도심의 직장인과 연인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 ( 문화재청 )
덕수궁 연표:
1932년 (태조1) 조선개국
1500년대 (임시행궁):
1592 (선조25) - 임진왜란 발발.
1593 (선조26) - 의주로 피난갔던 선조가 한양에 돌아와 옛 월산대군의 저택을 임시행궁으로 삼고, '정릉동 행궁'이라 부름.
1595 (선조28) - 궁역의 동쪽과 서쪽에 문을 세움
1600년대 (법궁):
1608 (선조 41) - 선조 석어당(추정)에서 승하. 다음날 광해군 즉조당(추정)에서 즉위.
1611 (광해 3) - 광해군 창덕궁으로 옮김. 정릉동 행궁을 ‘경운궁(慶運宮)’이라 칭함. 12월 광해군 다시 경운궁으로 옮김.
1615 (광해 7) - 광해군 창덕궁으로 다시 옮김.
1618 (광해 10) - 인목대비의 를 폐위하고 석어당에 유폐.
1623 (인조 1) - 인조, 반정에 성공한 뒤 즉조당(추정)에서 즉위, 창덕궁으로 옮김.
1800 - 1900년대 (대한제국의 멸망):
1876 (고종13) - 강화도 조약 체결, 문호개방 시작.
1896 (고종33) - 고종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
1897 (고종34) - 고종 러시아공사관에서 경운궁으로돌아옴.
1897 (광무 1) - 대한제국 선포. 고종 황제 즉위. 연호를 광무(光武)라 정함.
1904 (광무 8) - 러일전쟁 발발함. 대화재로 중화전, 석어당, 즉조당, 함녕전 등 전각 소실.
1905 (광무 9) - 증명전에서 을사늑약 체결.
1906 (광무10) - 대안문(大安門) 수리하고 대한문(大漢門)으로 개칭.
1907 (융희 1) - 순종 창덕궁으로 옮김. 경운궁을 덕수궁으로 부르기 시작.
1910 (융희 4) - 석조전 완공.
1919 - 고종,함녕전에서 승하함.
1938 - 석조전 서관 완공. 이왕가미술관(李王家美術館)으로 개관.
1945 - 광복
1946 - 석조전에서 미소공동위원회 열림.
2011 - 증명전 개관.
2014 - 석조전 대한제국역사관 개관.
▶ 산 책 : 걸음수 2,185 steps, 거리 1.42 km, 소모열량 88 kcal, 소요시간 00:27 hrs, 속도 3.1 km/h, 기온 27℃
▶ 코 스 : 덕수궁 일원.

서울시청

뉴산내들여행사...관광의 계절이 돌아오고 있다.

앗, 태극기...

덕수궁 돌담길

프레지던트호텔....호텔 지하와 명동지하상가가 곧장 연결되고 있다.

대한문(大漢門).... 덕수궁의 정문
‘대한(大漢)’은 ‘ 한양이 창대해 진다 ’는 뜻이고, 한양(漢陽)은 한수(漢水), 곧 한강(漢江)에서 유래한 것으로, ‘한(漢)’은 ‘ '하늘’, ‘한수(漢水)’는 ‘은하수(銀河水)’를 뜻한다. 현판글씨는 특진관(特進官) 남정철(南廷哲)이 쓴 것이라한다.
* 남정철(南廷哲, 1840~1916) : 자는 치상(穉祥), 호는 하산(霞山), 본관은 의령(宜寧). 조선 후기 학자 유신환(兪莘煥, 1801~1859)의 문인이다. 1894년 특진관(特進官 : 궁내부에서 왕실 일을 보좌하던 벼슬)이 되었고, 1909년(융희 3) 나이 많은 문신들을 예우하기 위해 만든 기구인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1910년 국권이 피탈되자 일본 작위인 남작(男爵)을 받았다.

덕수궁 관람 안내:
매주 월요일은 휴궁일입니다.
▶ 관람시간:
- 매표 및 입장시간: 09:00 ~ 20:00.
- 관람시간: 09:00 ~ 21:00. ( 야간개방: 오후 21시까지 )
▶ 관람 요금:
- 일반권 ( 만 25세~만64세 ): 개인 1,000원, 단체 (10인이상) 800원.
- 점심시간관람권: 3,000원 ( 3개월 10회, 11:30-13:30 )
- 상시관람권: 관람시간내 10,000원 (1개월)
- 통합관람권: 6,000원 (4대궁 및 종묘)
- 시간제관람권:
. 30,000원 ( 12개월, (12:00 - 13:00, 덕수궁.창경궁)
. 100,000원 ( 12개월, (12:00 - 13:00 ) ( 덕수궁, 창경궁, 경복궁, 14개능 , 동반1인 무료)
- 무료 ( 내국인 ):
만 24세 이하, 만 65세 이상 / 한복착용자 / 문화재위원,전문위원 / 독립유공자 / 군복을 입은 현역군인/ 참전유공자 / 고엽제후유증환자/ 병역전문가 / 국가유공자.그 배우자(3급) / 특수임무유공자 / 장애인.보호자 1인(3급이상) / 5.18민주유공자 / 즁요뮤형문화재보유자.전수교육조교 / 차상위계층 / 학생을 인솔한 보육시설,유치원,조.중.고 교원 / 기초생활수급자 / 관광객을 인솔한 관광통역.문화관광해설사/ 다둥이 / 문화유산국민신탁 회원 / 임산부(동반1인)/ 문화가 있는 날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하마비(下馬碑)...모두 말에서 내려주십시오

시내 중심가에 있어 덕수궁 방문객들이 많다.

대한문 일원


덕수궁
덕수궁 터에는 원산군(1454~1488)의 후손을 비롯한 왕족들과 고관들의 저택들이 있었다. 임진왜란으로 서울의 모든 궁궐이 불타 없어지자 선조는 이 집들을 수용하여 임시로 거처하는 행궁으로 사용하다가, 광해군이 1611년 재건한 창덕궁으로 어가를 옮기면서 별궁인 경운궁(慶運宮)이 되었다. 이후 19세기 중엽까지는 궁궐로서 큰 역할이 없다가 1897년 고종이 황제로 즉위하면서 경운궁을 대한제국의 궁궐로 삼았고 많은 전각들을 새로 세워 궁궐의 격식을 갖추어 나갔다. 또한 근대화를 향한 고종의 의지에 따라 궁 안에 여러 서양식 건물을 세웠다. 그러나 1880년대 정릉동 일대는 각국의 외교사절의 공관과 선교사들의 주택이 밀집해 있어 경운궁의 궁역을 확장하기가 어려웠다. 결국 기존의 미국, 영국, 러시아 영사관 사이로 궁역을 확장하다 보니 대지의 모양이 불규칙하게 된 것이다. 1907년 고종이 퇴위하면서 선황제 거처가 되어 궁의 이름을 덕수궁으로 바꾸었으며, 태평로를 확장하면서 궁역이 축소되었다. 고종이 승하한 후에는 북쪽 선원전과 서쪽 증명전 일대도 매각되어 원래 넓이의 1/3만 남게 되었다. 1933년에는 중심 부분과 몇 개의 양관(洋館) 만 남고 대부분의 전각들이 철거된 후에 공원으로 조성되어 일반에 개방되었다. 현재는 중심부인 중화전 일원과 정광헌 및 석조전과 같은 양관들만 남아있다. 덕수궁은 임진왜란 및 구한말이라는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으뜸 궁궐로서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고자 했던 상징적 공간이었다. 또한 전통 규범 속에 서양식 건축을 수용한 근대적 궁궐이며, 주변 상황의 공간적 맥락에 맞추어 조성한 도시적 궁궐이었다.

<- 함녕전, 덕흥전, ↑ 찻집, <- 정관헌,


광명문

광명문:
광명문은 고종이 기거하던 함녕전으로 들어가는 문으로 대한제국 시기에 건립되었다. 1919년 고종이 함녕전에서 승하하자, 국장 때 고종의 관(재궁 梓宮)이 광명문을 통해 나갔다. 일제강점기에 덕수궁이 크게 훼손되면서 광명문 좌우에 있던 행각이 철거되었고, 1930년대 광명문도 중화문의 서남쪽으로 옮겨졌다. 나중에는 광명문 안에 물시계인 자격루와 홍천사명 동종을 보관하기도 하였다. 덕수궁 권역의 복원을 진행하면서 2018년 12월, 광명문은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게 되었다.



함녕전과 덕홍전 | 咸寧殿. 德弘殿
함녕전은 고종이 거처하던 침전으로 1919년에서 승하하셨다. 1904년에 화재로 소실된 후에 다시 지어졌다. 대청마루 양 옆으로 온돌방을 드렸고, 사방 툇간에 방을 두른 전형적인 침전건물이다. 함년전 뒤편에는 계단식 정원을 꾸몄고, 전돌로 만든 유현문(唯賢門)과 정식적인 굴뚝들을 설치했다.
덕홍전은 고위 관료와 외교사절들을 접견하던 곳으로 1911년에 건립한 전통 양식의 건축물이지만, 내부는 천장에 샹들리에를 설치하는 등 서양풍으로 장식했다.



고종의 침전인 함녕전의 어좌...일월오악도가 선명하다.



덕홍전





중화전




중화문 측면

중화전 행각:
1902년 덕수궁의 중심 건물(정전)인 중화전을 건립하였을 때 중화전은 128칸의 행각으로 둘러쌓여 있었다. 1904년 덕수궁 대화재로 중화전을 비롯한 많ㅇ은 전각들이 불탄 후 다시 지으면서 행각 역시 108칸의 규모로 새로 지었다. 1910년 국권을 상실한 후 일제 강점기에 덕수궁 내 여러 전각들이 훼손되었는데, 중화전 행각도 이때 대부분 철거된 것으로 보인다. 현존하는 행각은 1905년 중건된 행각의 일부가 남겨진 모습니다.

중화전 일원
중화전과 그 앞마당은 국기 행사를 치르는 상징적인 공간이다. 중화전 앞에는 2단으로 된 월대가 있고 마당에는 넓적한 돌을 깔았으며 벼슬의 등급을 나타내는 품계석과 임금이 다니는 어도(御道)를 설치하는 등 전통 궁궐의 격식을 갖추었다. 1902년에 임시 정전으로 쓰던 즉조당(卽阼堂) 남쪽에 행각을 두르고 중화전을 지어 궁궐의 중심 영역으로 삼았다. 중화전은 원래 중층 건물이었으나, 1904년에 큰 화재가 나 건물들이 모두 불에 탔다. 이에, 1906년 단층으로 규모를 줄여 다시 세운 것이 지금의 중화전이다. 중화문과 행각도 함께 다시 세웠는데. 현재 행각은 동남쪽 모퉁이의 일부만 남아 있다.

중화문



중화전의 앞마당은 국가 행사를 치르는 상징적인 공간이다. 중화전 앞에는 2단으로 된 월대가 있고 마당에는 넓적한 돌을 깔았으며, 벼슬의 등급을 나타내는 품계석과 임금이 다니는 어도(御道)를 설치하는 등 전통 궁궐의 격식을 갖추었다.
덕수궁 중화전 품계석(品階石): 품계석은 좌우에 각각 12개씩 모두 24개가 놓여져 있으며, 조선의 품계는 모두 18계로 나누어져 있다. 품계석은 좌우로 12개씩 나뉘는데, 좌(左)에는 문신(동반)이 우(右)에는 무신(서반)이 서게 된다. 그리고 1품과 3품은 정종(正從)으로 나누어서 1품에서 3품까지의 품계석은 좌우 각각 6개씩 모두 12개가 된다. 4품에서 9품까지는 정종 구분없이 품계석을 세워 좌우 각각 6개씩 모두 12개가 된다. 이렇게 해서 품계석은 모두 24개가 된다. 품계석을 36개가 아닌 24개로 한정한 것은 조선이 농경사회에 근간을 둔 국가이기 때문이며, 24라는 숫자는 곧 24절기를 뜻하고, 24절기는 농경사회의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년의 절기이다.

답도의 화려하고 정교한 용 무늬


중화전 임금님 용상


석어당:
창건 연대 미상. 1904년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같은 해에 중건하였다. 덕수궁의 유일한 중층의 목조 건물로 선조가 임진왜란 중 의주로 갔다가 환도한 후 이곳에서 거처하였고, 1608년 2월 선조가 승하한 곳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또한 인목왕후가 광해군에 의해 유폐되었던 곳이기도 하며, 인조반정이 성공한 뒤 광해군을 석어당 뜰 아래 꿇어 앉히고 광해군의 죄를 문책한 곳 이기도하다. 단청을 하지 않은 "백골집"으로 아래층은 정면 8칸, 측면 4칸이며 위층은 정면 6칸, 측면 1칸으로 겹처마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준명당 & 즉조당
준명당 (浚眀堂): 이 건물은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1904년 화재 때에 소실되었으며, 같은 해에 건물을 다시 짓고, 1905년 8월 현판을 걸어 중건하였습니다. 목조 건물로 즉조당과는 복도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고종께서 신하나 외국 사신을 접견하던 곳으로, 함녕전이 지어지기 전까지 고종의 침전으로 쓰였다고 합니다. 이 건물은 높은 기단 위에 세워졌고, 정면 6칸, 측면 5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또한 좌우 툇간에는 쪽마루가 있습니다. 이후 1916년 4월에는 덕혜옹주 교육을 위한 유치원으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즉조당 (卽阼堂): 준명당과 복도로 연결되어 있는 이 건물은 15대 광해군과 16대 인조가 즉위한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897년 고종의 경운궁[덕수궁]으로 환궁한 직후 정전으로 이용하였으며, 이때 즉조전의 이름을 태극전, 중화전으로 불렀습니다. 이후 1902년 새로운 정전이 세워지자 다시 즉조당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1904년 덕수궁 대화재 때에 소실되었던 즉조당은 그 해에 석어당, 준명당과 함께 건물을 다시 짓고, 1905년 9월 현판을 걸어 완전히 중건하였습니다. 이 곳은 고종의 후비인 순헌황귀비가 1907년부터 1911년 7월 승하할 때까지 생활하던 공간이기도 하며, 건물은 정면 7칸, 측면 3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습니다.





정관헌

정관헌 내부

함녕전, 덕흥전 방향


정광헌은 러시아 건축가 사바찐이 설계했으며 '조용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공간'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정세 속에서 잠시나마 여유를 가지고 생각에 잠겼을 고종의 모습이 짐작되는 곳이다. 한식과 양식을 절충해 설계한 건물이다. 지금은 여기 잠시 앉았다 갈 수도 있다. 일반인들도 잠시 잠깐이라도 덕수궁 정관헌에서 세상을 조용히 바라볼 수 있으며 좋을 것이다.


석어당 후면

즉조당, 준명당 앞 뜰

중화전 후면 방향

석조전 대한제국역사관
○ 석조전: 덕수궁 석조전 은 1910년에 완성된 대한제국의 대표적인 서양식 건물입니다. 고종[광무황제]에 의해 황제국이 선포된 후 대한제국 황궁의 정전으로 만들어졌으며, 엄격한 비례와 좌우대칭이 돋보이는 신고전주의양식으로 내부에는 접견실과 대식당, 침실, 서재 등을 갖춘 근대 건축물입니다. 대한제국 황실의 품격이 살아 있는 석조전 대한제국역사관은 ‘지층-1층-2층’의 총 3개의 층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지층은 시종들의 공간으로 사용이 되던 곳을 대한제국의 근대 개혁과 신물문의 도입, 석조전 복원 기록을 담은 전시실로 되어있습니다. 1층은 접견실과 대식당 등 대한제국 황실의 공적인 업무를 보던 공간으로 재현실과 대한제국의 정치, 외교 의례 등에 관한 전시실로 되어 있으며, 2층은 황실 소개와 함께 대한제국 황실의 사적인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 문화재청 >
석조전의 주요 연혁:
1910년 : 경운궁[현 덕수궁] 석조전 준공
1911년~1922년: 영친왕 방문시 임시 숙소
1933~1945년: 덕수궁미술관과 이왕가미술관
1946~1947년: 미소공동위원회 회의장
1955~2004년: 국립박물관, 궁중유물전시관 등


덕수궁 석조전 대한제국역사관 관람(해설) 안내
- 참여방법: 인터넷 사전예약 (궁능유적본부 홈페이지)
- 관람 방법: 해설자 인솔 관람 (제한관람)
- 관람소요시간: 일반해설: 약 40-45분 / 심화해설: 약 65분-70분
석조전 1.2층
관람해설시간:
화요일(6회) : 09:30, 11:00, 13:00, 14:30, 15:10, 16:30
수-금요일(8회) : 09:30, 10:30, 11:00, 13:00, 13:30, 14:30, 15:10, 16:30
토-일요일(11회) : 09:30, 10:30, 11:00, 11:30,13:00, 13:30, 14:00, 14:30, 15:10, 15:30, 16:30
공휴일(4회) : 09:30, 13:00, 14:30, 16:30
관람자 유의사항:
- 예약은 관람일 7일전 오전 10시 부터 궁능유적본부 홈페이지에서 접수.
- 65세 이상과 외국인은 5명까지 석조전 안내데스크 선착순 접수, 입장 가능 / 신분증 제시 필요 (09:30과 16:30 회차는 현장접수 없음).
- 관람 5분 전 부터 입장가능, 시간 경과시 입장 불가.
- 미취학 아동 및 초등학교 4학년 이하 단체 참여 불가.

분수대 & 앙부일구
앙부일구 (仰釜日晷, 해시계 ): 1434년(세종 16)에 제작된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해시계이다.

국립현대미술관

광복80주년 기념
향수, 고향을 그리다. 2025. 8.14 - 11.9

향수 (鄕愁)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 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 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 해설피: 해질 무렵
** 성근: 여러 모양의 별들이 섞여 빛나는 모습.







돈덕전
돈덕전은 고종 즉위 40주년 칭경예식* 에 맞추어 서양식 연회를 위해 신축한 건물이다. 고종은 칭경예식을 국제 행사로 성대하게 거행하여, 서양열강을 대상으로 대한제국의 위상을 높이고, 아울러 중립국가 승인을 요처알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 시도는 콜레라의 창궐과 러일전쟁의 시작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화려한 유럽풍 외관의 벽돌로 지어진 돈덕전은 1층은 폐현실, 2층은 침실이 자리하였으며, 각국 어ㅚ교사절의 폐현 및 연회장, 국빈급 외국인의 숙소로 활용하였다. 또한 순종의 즉위식과 고종의 생신을 축하하기 위한 오찬 장소로도 사용되었다. 돈덕전은 고종 이후 방치되었다가 덕수궁의 권력이 점차 축소되고 공원화되기 시작하면서 1933년 이전에 훼철된 것으로 보인다.



회화나무: 콩과
회화나무는 상서로운 나무라 하여 궁궐 주변에 많이 심었다. 조서니대 선비들도 이 나무를 좋아하여 마을 주변에 많이 심었기 때문에 '학자 나무'라고도 한다. 정동 주변은 조선 중후기 학자들이 많이 살던 곳이어서 크고 오래된 회화나무가 많다. 돈덕전이 들어서기전 부터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 회화나무는 1670년경에 식재된 것으로 추정된다.










덕수궁 돌담길

정동제일교회

정동제일교회:
격변의 시대, 청년들의 교육과 독립운동의 중심지
정동제일교회는 배재학당의 교장이었던 아펜젤러가 1885년 설립한 한국 최초의 개신교 교회입니다. 이곳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 서재필 박사, 한국 최초의 여의사 박에스더, 주시경 선생 등 한국 개화기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들이 예배를 보며 미래를 준비했습니다. 정동제일교회 예배당에는 1918년 한국 최초의 파이프 오르간이 설치되었고, 3.1운동 당시에 오르간 뒤에서 비밀리에 독립선언서를 등사하는 등 일제강점기 항일 활동의 거점이 되었습니다. 또한 최초의 서양식 결혼식이 열렸으며, 1920년 이화여고생이었던 유관순의 장례식이 거행된 역사적 장소이기도 합니다. - 서울중구





덕수궁 돌담길



다시 대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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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 구리 장자호수공원, 토평한강시민공원 코스모스 축제- ( 2025.09.26 ) (0) | 2025.10.05 |
| ① 구리 장자호수공원, 토평한강시민공원 코스모스 축제- ( 2025.09.26 ) (0) | 2025.10.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