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소요산 공주봉, 자재암 - ( 2019.10.17 )
- < 소요산 자재암 >:
자재암(自在庵)
○자재암(自在庵): 654년(신라 무열왕 1년) 원효 스님이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그 후의 연혁은 알 수 없으나, 전하는 바에 의하면 고려시대에 들어와서 974년(광종 25년) 각규대사(覺圭大師)가 태조의 명으로 중창하고 소요사라 했다. 그리고 1153년(의종 7년)에는 화재로 소실된 것을 이듬해 각령(覺玲)이 대웅전과 요사만을 복구하여 명맥만 이어왔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사찰에 대한 구체적인 연혁이 전하지는 않으나 '세종실록(世宗實錄)' 지리지 경기 양주도호부 소요사(逍遙寺) 조에 태조의 원당으로 하고 밭 1백 50결을 하사했다고 적고 있다. 그리고 범우고(梵宇攷)에 있는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 1435~1493년)의 시에 소요사가 언급되고 있으나 페허가 되었다고 했다. 이로보아 조선 초까지만 해도 자재암은 태조의 원당으로 왕실의 비호를 받아오다가 어느 시기엔가 폐허가 되다시피 하여 겨우 명맥만 유지해 온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조선후기 들어서는 1872년(고종 9년) 원공(元空)과 제암(濟庵) 스님이 퇴락한 자재암을 중창하고 영원사(靈源寺)라 하였다. 원공(元空)과 제암(濟庵) 스님은 같은 꿈을 꾸고 만나 영산전, 만월보전, 독성각, 산신각, 별원(別院) 등 모두 44칸을 중창 하였다고 한다. 1907년에는 화재로 만월보전을 제외하고 모두 소실되었다. 그 후 1909년 성파(性坡)스님과 제암 스님이 다시 중창하고 절 이름을 자재암으로 고쳤다. 근세에 들어 한국전쟁 당시 다시 소실된 것을 1961년 진정(眞精) 스님이 대웅전을, 1968년 성각(性覺) 스님이 요사채를, 1977년에는 삼성각을, 1982년에는 일주문을 각각 지었다. 이어 1984년에는 동두천 시내에 부설 연화유치원(현)이 개원하였고, 1983~1985년에 오래된 건물을 헐고 새로운 중창을 하여 지금의 사격을 갖추었다. - < 자재암 연혁 >
소요산 등산로 지도...
백팔번뇌계단...
계단 곁의 멋진 소나무...
○ 놓치기 쉬운 소요산 명소....
* 관음봉: 원효대사가 수도하던 중 관음보살을 친견하였다는 설화로 관음봉이라 불린다.
* 속리교: 원효폭포 가기 전 우측에 위치한 대리석 교량으로 속세와의 인연을 끊는다는 의미의 교량.
* 세심교: 원효대를 지나면 대리석 기둥을 여러개 놓은 다리가 있는데 마음을 씻는다(정하게 한다)는 의미의 다리.
* 극락교: 소요교라고도 불리며 자재암을 잇는 다리로 부처님의 공간으로 들어간다는 의미의 다리.
* 원효폭포: 일주문을 지나면 좌측에 아담한 폭포가 보이는데 원효대사가 원효대에서 고행 수도중 자주 내려와 휴식을 취하던 곳.
* 추담선사부도: 자재암에서 입적한 추담선사(1898-1978)의 공적을 기린 공덕비와 사리탑이 있다.
* 독성암: 자재암 맞은편에 우뚝 솟은 기암으로 옥녀봉, 옥로봉, 원효암, 약수암 등으로 불린다.
* 옥류폭포: 천연암굴인 나한전 오른쪽에 우물처럼 깊게패인 협곡으로 쏟아지는 물줄기가 한여름에 시원함과 경치를 자랑한다.
○ 백팔계단과 해탈문...
* 108계단: 중생의 눈,귀,코,혀,몸, 뜻(마음) 등의 감각기관이 감관의 대상을 접할 때 저마다 좋다, 나쁘다, 그저 그렇다는 세가지가 서로 같지 않아서 18가지 번놔를 일으킵니다. 또 괴로움, 즐거움, 그저그런 것과 관련지어 18가지 번뇌를 갖게 된다. 이들을 합한 36가지 번뇌가 다시 각각 과거,현재,미래의 3세 때문에 108가지 번뇌가 되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특별한 의미를 두어 목환자를 꿰어 만든 108 염주나 사찰에 가면 '108계단'을 만들어 일심을 잃지않도록 하고, 또 잃더라도 빠리 되찾는 것이 백팔번뇌를 끊는 길이라고 합니다. 백팔번뇌와 불교의 윤화와 불교의 가르침을 형상화한 해탈문을 통해 세속의 백팔번뇌에서 벗어남 해탈의 경지에 오르길 바라는 염원을 담았읍니다. (* 해탈문은 현재 나무가 썩어 내려앉아 철거한 상태다....)
원효대...이곳은 원효 스님이 정진중에 지친 심신을 달래기 위해 머물며 좌정하고 수도하던 장소로 원효대로 불리운 곳.
오늘이
가장
행복한 날입니다. - 자재암.
나옹선사의 선시 ...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 靑山兮要我以無語 - 청산혜요아이무어 )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 蒼空兮要我以無垢 - 창공혜요아이무구)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 聊無愛而無憎兮 - 료무애이무증혜)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 如水如風而終我 _ 여수여풍이종아 )
▒ 나옹선사(懶翁禪師) (1262-1342): 고려 말기의 고승/ 공민왕의 왕사/ 본명은 원혜(元慧), 휘는 혜근(慧勤), 호는 나옹(懶翁)/ 경북 영덕군 창수면 갈천리에서 출생/ 20세 때 친구의 죽음을 보고, 출가해 공덕산 묘적암(妙寂庵)의 요연(了然)선사에게서 득도/ 1348년(충목왕 4) 원나라에 가서 연경(燕京)의 고려사찰인 법원사(法源寺)에서 인도 승려 지공(指空)의 가르침을 받음/ 조선 태조 왕사로서 한양천도의 주요 인물인 무학대사가 그의 제자였다. 나옹, 지공, 무학, 세분의 부도와 비석이 회암사터의 뒤쪽에 현존/ 그가 입적한 남한강변 여주 신륵사에서 입적 사리를 봉안한 부도와 비문이 남아 있다.
수행정진 중 ...외인 출입금지...-> 자재암...
자재암 전경...
불교용품 판매...
나한전....
청량폭포...
원효스님은 폭포가 있고, 암벽 사이 가파르고 좁은 공간에 어떻게 이런 절을 지었을까? 궁금하다. 옛날에는 이런 곳에 들어오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소요산역 근처의 민간이 사는 곳에서 이곳까지 얼마나 먼 거리인가? 그 당시에 도로는 제대로 있었겠는가? 생각할 수록 대단하다.
<- 0.67km 하백운대, -> 일주문 0.4km...
하백운대, 선녀탕 가는 길..
자재암 하산 길:
삶은 단 한순간도 제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다. - 자재암.
악조건에서 삶아있는 불굴의 소나무....
삶은 소유물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영원한 것이 어디 있는가?
모두가 한때일 뿐이다.
그러나 그 한때를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삶은 놀라운 신비요, 아름다움이다.
- 법정스님 <버리고 떠나기>에서.
나무 한 그루를 배는 순간
우리 안의 생명의 일부가 동시에 스러져 간다.
우리 모두는 하나로써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 자재암.
원효대...
용서
용서는 가장 큰 수행이다.
남을 용서함으로써
나 자신이 용서 받는다.
날마다 새로운 날이다.
묵은 수렁에 갇혀
새 날을 등지면 안된다.
맺힌 것을 풀고 자유로워지면
세상 문도 활짝 열린다.
- 법정스님 -
아, 아름다운 자연이다...바위가 좋고, 숲이 좋다. 그리고 그 사이에 깃드는 산새들이 좋다. 새들의 지저귐은 우리를 힐링하는 음악이다.
자재암 일주문을 나서며....우리는 한 곳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 어디론가 떠나가야 한다.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내가 가야할 곳이다.
누가 쌓은 탑일까?
말없는 돌탑을 바라보며 우리는 우리 자신의 염원을 챙겨보아야 한다. 진실로 원하면 반드시 이루어 질 것임을 믿어야 한다.
매표소도 통과한다...
홍조 띤 단풍잎...
원효대사와 요석공주.....
소요산 곳곳에는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이야기가 스며있다. 신라29대 무열왕녀(요석공주)가 원효대사를 사모하여 공주궁을 짓고 설총을 길렀다는 주초의 흔적이 남아있고, 정상인 의상대 옆에는 원효대사가 요석공주를 두고 이름을 지었다는 공주봉도 있다. 특히 자재암은 신라 중기 원효대사가 개산(開山)하였으며, 고려 광종 25년(974년) 곽규대사가 왕명을 받아 정사를 세웠으나 고려 익종 7년(1153년)에 소실되었고 이후 여러차례 소실과 재건을 되풀이 하다 한국전쟁 때 소실된 것을 1961년에 재건 하였다. 소요산에는 이밖에도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행궁지(行宮址)도 남아있다. - 동두천시.
야생동물 보호구역...
소요산 입구의 물방울 형상...
굳 바이, 소요산 그리고 자재암....
소요산 자재암 승차장....
※ 소요산역 앞에서 출발하는 자재암의 셔틀버스 는 평일 오전: 08:30, 09:00, 09:30 에 운행하고, 법회일: 08:00, 08:30. 09:00,
09:30, 10:00, 10:30, 11:00 에 운행한다.
소요산명품한우축산물판매장 식당...031-866-8820 / 경기 동두천시 상봉암동 137-10......
여기애서 한우국밥과 지평막걸리 한병을 마시고 집에 돌아왔다. 이 집엔 주중인데도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음식 맛도 좋고 메뉴도 다양하여 하산시 식사하기 좋은 곳이다. 시원한 막걸리 한잔에 오늘의 피로가 풀리는 것 같다. 등산시 체력 소모가 많고, 목이 마르고, 속이 비어있을 경우는 국밥과 막걸리가 최상이다. 한잔 하고 배부르면 조그만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소고기국밥 (7,000원), 지평막걸리 (4,000원)....
1호선 소요산역...
'카테고리 구릅 > 나의 산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② 용문산 용문사, 마당바위 - ( 2019.10.25 ) (0) | 2019.10.26 |
---|---|
① 용문산 용문사, 마당바위 - ( 2019.10.25 ) (0) | 2019.10.25 |
② 소요산 공주봉, 자재암 - ( 2019.10.17 ) (0) | 2019.10.18 |
① 소요산 공주봉, 자재암 - ( 2019.10.17 ) (0) | 2019.10.17 |
② 남산 (270.8m) - ( 2019.10.15 ) (0) | 2019.10.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