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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구릅/일상들 ( life )

① 여주 신륵사, 영월루- ( 2023.12.02 )

by the road of Wind. 2023. 12. 3.

여주 신륵사, 영월루

- ( 2023.12.02 )

 

- 《  신륵사  》: 

 

경강선 전철 여주역에 내려 역 앞 버스 정류장에서 신륵사행 버스를 타고 여주의 유명한 고찰 신륵사를 탐방해 보았습니다. 내가 신륵사를 특별히 좋아하는 것은 신륵사 남한강변 바위 위에 서있는 강월헌에서의 남한강 경치가 너무 빼어나서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곳이 남한강 경치의 제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겨울이 시작되는 이 시점에 남한강을 한번 조망해 보고 싶었습니다. 신륵사는 절의 위치도 명당 같았습니다. 오늘은 절 경내 뿐 아니라 절 뒷편의 봉미산도 조금 올라보았습니다. 신륵사 구경을 마친 후에는 남한강변을 따라 여주대교로 나와 강 건너 영월루에 올라보았습니다. 

아, 영월루에서 바라보는 저 아름다운 남한강 경치는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영월루는 여주의 명소입니다. 여주 땅에 가서 영월루를 돌아보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영월루를 구경하고 나서 나는 여주여중.세종고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 내려가 여기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여주역으로 돌아갔습니다. 오늘 여주 일원의 산책은 만점을 주고 싶습니다. 남한강 때문에 나의 겨울 산책은 너무 환상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신륵사(神勒寺): 경기도 여주시 봉미산에 위치한 절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의 사찰로서 신라 시대 때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신륵사는 산이 아니라 남한강이 보이는 강변에 세워져 있다. 조계종 제2교구 본사 용주사의 말사이다. 신라 진평왕 때 원효가 아홉 마리의 용이 승천한 연못을 메우고 창건했다는 전설이 있다.  "신륵(神勒)" 이라는 절 이름은 신력과 굴레에서 신륵(神勒)이라는 이름이 나왔다고 전해지고있디. 신륵사는 고려의 고승 나옹이 머물러 절이 크게 확장되었으며, 나옹은 1376년(우왕 2)에 신륵사에서 사망하였다. 절에는 나옹과 나옹의 제자인 무학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기도하다. 조선 시대에는 1440년(세종 22)에 중수하였으며, 1473년(성종 4)에 세종의 능영릉을 여주로 이장하면서 영릉의 원찰로 신륵사가 지정되었다. 신륵사에는 다층석탑(보물 225호) · 다층전탑(보물 226호) · 보제존자석종(普濟尊者石鐘: 보물 228호) · 보제존자석종비(普濟尊者石鐘碑: 보물 229호) · 대장각기비(大藏閣記碑: 보물 230호)·보제존자석등(보물 231호) · 조사당(組師堂: 보물 180호) 등의 문화재가 많다. 

 

 

 산   행 : 걸음수 8,609 steps, 거리 5.6 km, 소모열량 287 kcal, 소요시간 01:31 hrs, 속도 3.6 km/h, 기온 -1 (맑음)

 코   스 :  여주역 - (버스 점프) -   신륵사관광지( 신륵사 입구)  - 신륵사 구경 - 여주대교 - 영월루 - 영월여고 버스정류장.

 

 

▶ 여주 가는 길:

초월읍 지나면서

 

곤지암...소머리 국밥으로 유명한 곳...

 

온천의 명소, 이천...

 

세종대왕역 인근 벌판....여주쌀은 유명한 것이외다!

 

경강선 종점역, 여주역

 

여주 관광안내소

 

 

※ < 여주역 -> 신륵사 >  버스 시간표:

 

시간 버스 번호 시간  버스번호 시간  버스번호
오전 8:40 130(하동 경유) 오후 1:10 992 / 911-5 오후 4:40 988-2
9:20 911-5 1:20 995 5:40 987-3
10:00 971-3(신륵사 사거리 회차)  1:35 988-3 5:50 992
10:30 911-1 / 995 1:40 987-3 6:00 983-1
11:10 988-2 / 991 2:20 911-1    
11:20 987-3 3:00 981    
11:50 981 3:10 991 / 130    
12:20 130 4:20 175(세종초 경유)    
    4;30 995    

 

 

여주 성당

 

여주 세종시장

 

신륵사 버스 정류장 하차

 

<<  강천, 북내  <<  신륵사  >> 여주

 

여주 시내 버스 시간표

 

911-5여주역 (오전 9:20, 12:20) - (하동, 시농협,신륵사, 천송2통) - 천송1통
---- 회차지 출발, 천송1통 (9:45,12:40) -> 여주역.
981 여주역 (오전 11:50, 오후 3:00) - (세종병원,여주성당,터미널,여흥동사무소,여성회관,신륵사,천송1통,신남리,당우리,여강중고,운촌,중암,고개앞)- 도전1리.
----회차지 출발, 도전1리 (오후 1:00, 4:10) -> 여주역.
981-3: 여주역 (오전 9:00) - (세종병원,여주성당,터미널,여흥동사무소,여성회관,신륵사,천송1통,가정리,신접리,,중암)- 돌산.
---- ( 회차지 출발 정보 없음)
981-4여주역 (오전 7:20) - ( 세종병원,여주성당,터미널,여흥동사무소,여성회관,신륵사,천송1통,신남리,당우리,여강중고,숫말,운촌,윗말, 중암,고개앞)- 도전1리
----회차지 출발, 도전1리 (오후 8:20) -> 여주역.
981-5여주역 (오전 8:20) - ( 세종병원,여주성당,터미널,여흥동사무소,여성회관,신륵사,천송1통,신남리,당우리,여강중고, 중암,고개앞)- 도전1리
----회차지 출발, 도전리1리 (오전 9:20) -> 여주역.
987-2: 여주역(오전7:10) - ( 세종병원,여주성당,터미널,여흥동사무소,여성회관,신륵사,천송1통,가정,지내,신접, 여강중고, 당우리, 덕산리입구,와룡,내룡,석우,주암,일신,무왕,망미,지평,송현)용문.
----회차지 출발, 용문 (오전 8:50) -> 여주역.
987-3여주역(오전11:20) - ( 세종병원,여주성당,터미널,여흥동사무소,여성회관,신륵사,천송1통,가정,지내,신접, 여강중고, 당우리, 덕산리입구,와룡,내룡,석우,주암,일신,무왕,망미,지평,송현)- 용문.
----회차지 출발, 용문 (오후 1:00, 3:20, 7:10) -> 여주역.
988-2: 여주역(오전11:10, 오후 4:40) - ( 세종병원,여주성당,터미널,여흥동사무소,여성회관,신륵사,천송1통,신남,당우리, 덕산리마을회관,,와룡,용산말, 석우,주암,서원,단석,양동역)- 양동.
----회차지 출발, 양동 (오전 12:20) -> 여주역.
988-3여주역(오후 1:35,6:20) - ( 세종병원,여주성당,터미널,여흥동사무소,여성회관,신륵사,천송1통,신남,당우리, 와룡,상교,고달,주암,서원,단석,쌍학)- 양동.
----회차지 출발, 양동 (오후 2:45, 7:30) -> 여주역.
989-3여주역(오후 8:10) - ( 세종병원,여주성당,터미널,여흥동사무소,여성회관,신륵사,천송1통,당우리, 와룡,내룡,내우,주암,서원,단석,쌍학리)- 양동.
----회차지 출발, 양동 (오후 9:00) -> 여주역.
989-5여주역(오전6:50) - ( 세종병원,여주성당,터미널,여흥동사무소,여성회관,신륵사,천송1통,당우리, 신남, 와룡,내룡,석우,주암,서원,단석,쌍학리)- 양동.
----회차지 출발, 양동 (오전 7:50) -> 여주역.
991여주역(오전11:10, 오후 3:10,8:00) - ( 세종병원,여주성당,터미널,여흥동사무소,여성회관,신륵사,천송1통,가정,이호,간매,강천중)- 강천1리.
----회차지 출발, 강천1리 (오전 12:00, 오후 4:00, 8:40) -> 여주역.
992여주역(오전8:25, 오후 1:10,5:50) - ( 하동,여주성당,터미널,여흥동사무소,신륵사,가정1리,이호,목아박물관,가야,적금,굴암)- 강천1리.
----회차지 출발, 강천1리 (오전 9:20, 오후 2:00, 6:40) -> 여주역.
992-1여주역(오전6:30) - ( 세종병원,여주성당,터미널,여흥동사무소,여성회관,신륵사,천송1리, 가정,이호,목아박물관,이호2리,설경주,간매, 강천중,설마니,강천1리)- 다리골)- 강천1리.
----회차지 출발, 강천1리 (오전 7:10) -> 여주역.
995여주역(오전 7:10,10:30, 오후 1:20,4:30,7:30) - ( 세종병원,여주성당,터미널,여흥동사무소,여성회관,신륵사,천송1리, 가정리,간골,걸은)- 걸은리3리.
----회차지 출발, 길은리3리 (오전 7:50, 11:20, 오후 2:05, 5:15, 8:10) -> 여주역.
130여주역(오전 6:00,8:40,12:20, 오후 3;10,6:50) - ( 하동,여주성당,터미널,여흥동사무소,신륵사,가정1리,이호,목아박물관,설경주,간매,강천중,온천,부평리,가마섬,운무실,도전리1리,도전2리)- 도전5리.
----회차지 출발, 도전5리 (오전 7:15, 10:00, 오후 1:40, 4:30, 8:00) -> 여주역.


신륵사관광지 솟을삼문

 

신륵사관광지 주차장 .... 주차료 무료.

 

여주시 종합관광안내소

 

<< 도자세상, 복합문화공간

 

신륵사,  P 신륵사관광지 무료 주차장

 

↑ 여주박물관 입구,  박물관 cafe Tong

 

신륵사관광단지 

 

에이스호텔

 

강진도예 등 도자가게가 많다. 

 

신륵사 가는 길

 

여주 KCC 스위첸아파트 방향

 

옥천 모텔, 식당

 

↑ 신륵사,  -> 10m 구르미 cafe -> 황포돛배 선착장

 

여주시관광안내도

 

세종대왕릉 / 신륵사 / 고달사지 / 여주시립폰박물관 / 황학산 수목원 / 금은모래유원지&캠핑장
명성황후 생가 / 파사성 / 여주박물관 / 목아박물관 / 이포보 /  강천보

- 여주관광안내소: (031) 887- 2868

 

경기공예창작센터

 

도자세상,  ↑ 경기공예창작센터

1. 여주세계도자관, 2. 반달카페, 3. 도예랑,  4.리빙샵, 5. 아트샵, 6. 갤러리삽, 7. 브랜드삽, 8. 경기도예창작센터, 9. 여주도자문화센터, 10. 한글나라, 11. 야외 공연장, 12. 물의 화랑광장, 13. 옹기전, 14. 전통가마, 15. 강변공원

 

 

여주도예창작지원센터

 

여주도자문화센터

 

여주도자나날센터

 

황포돛배  -> 200m 선착장

 

여주전통가마

 

 

영월공원 물레방아 동영상

 

경기둘레길  

경기둘레길 34코스, 한강문화관 >,  < 경기둘레길 33코스, 강찬면사무소

 

경기둘레길 여주 33.34코스

 

- 33코스: 거리 11.2km, 소요시간 3시간 45분:
(시점) 강천면사무소 - 가야1리 마을회관 - 목아박물관 - 차본 본사 앞 - (종점 11.2km신륵사 (현위치).


- 34코스: 거리 6.6km, 소요시간 2시간 15분:
(시점)  신륵사(현위치) - 영월근린공원 - 금은모래캠핑장 - 금은모래강변공원 - (종점 6.6km) 한강문화관.

 

원호장군 전승비

 

원호장군(1533~1592)은 원주 원씨로 여주에서 태어난 조선 중기 무신이다. 그가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에 머물고 있던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그는 분연히 일어나 패주하는 관병과 민병 등 300여명을 규합하여 신륵사 판대숲 일대에서 도강을 기도하는 왜병 섬멸하고, 구미포(龜尾浦)에 집결한 왜적을 새벽에 기습하여 몰살시키는 등 대승을 거두었다. 이같은 여강일대에서의 전투는 무인지경으로 북진하던 왜적을 육전(陸戰)에서  격파한 최초의 대승이었으며 국위를 선양하고 실추된 국민의 사기를 진작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 후 그는 여주목사겸 경기, 강원 양도 방어사로 임명되었고 강원도로 전임하여 금화에서 분전하다 전사하였다, 후에 좌의정에 추증(追贈)되었고, 시호(諡號)충장(忠壯)이다.

 

 

신륵사:

 

신륵사 일주문

 

신륵사여주8경

 

신라 진평왕 시절, 원효대사의 꿈에 한 노인이 홀연히 나타나 한 장소를 보여주며 그곳에 절을 세우면 대대로 흥할 것이라 일러주었다.  

꿈에 일러 준 곳은 마을의 연못 이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이 말하길 그곳엔 용이 살고 있어 쉽사리 절을 짓기가 어렵다고 하였다.

사람들의 말대로 연못을 메우는 일이 어려워지자 원효대사는 그 앞에서 기도와 정성을 드리기 시작했다.

기도를 드린지 칠 일째가 되자 연못에서 아홉 마리의 용이 하늘로 승천하였고, 그 후 연못을 메워 세운 사찰이 지금까지 1400여 년을 이어온 신륵사라 전해진다.

창건 이야기도 전설처럼 전해지지만 그 이름의 유래에도 신비한 이야기가 서려있다. 어느날 마암에서 재앙을 끼치는 여마가 나타나 인근 마을엔 난리가 났다.

그 때 나옹선사가 나타나 신기한(神_신) 굴레(勒_륵)로 그 여마를 다스리고 물리쳤다. 이 일화로 신륵(神勒)이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이야기와 

건넛마을에 나타난 사나운 여마를 인당대사가 고삐를 잡아 순하게 했다는 이야기 등이 전해진다. 

다른 절들이 산 속에 있는데 반해 신륵사남한강을 옆에 끼고 봉미산 기슭에 자리하니 그 풍광이 예로 부터 자자하였다. 조선시대 학자 김수온은 "여주는 산이 맑고 물이 아름다워 낙토라 불리는데 신륵사에 이 낙토가 한복판에 있다." 라는 말을 남기기도 하였다. 

여주의 빼어난 경관을 일컬어 여주 8경이라 하는데 그 중 1경으로 신륵사에 우려 퍼지는 저녁 종소리라는 뜻의 '신륵오종'을 꼽는다.

여주 8경은 이외에도 제2경, 마암 앞 강가에 고기잡이 배의 등불 '마암어등'
제3경 학동의 저녁밥 짓는 연기 '학동오연'
제4경 강가에서 귀가하는 돛단배의 모습 '연탄귀범'

제5경, 양섬에 기러기떼 내리는 모습 '양도낙안'
제6경, 오학리 강변 숲이 강에 비치는 전경 '팔수장림'
제7경 세종 영릉효종 영릉에서 두견새 우는 소리 '이릉두견'
제8경 파사성에 내리는 소나기 '파사과후'

지금에 와서는 여주 8경 중에  볼 수 없는 모습들도 많다. 하지만 신륵사의 저녁 풍경만은 전설과 역사를 간직한 채 1400여 년을 한결같이 이어져오고 있다.    
  

여강길 종합안내

 

 01 코스 옛나루터길  ( 총길이 17.5km, 소요시간 5-6시간  ):
▶여주역 (0km)- 여주종합터미널(1.4km)- 영월루(3km) - 강변유원지(4.7km) - 금은모래강변공원(5.8km) -  강천보(7.2km) - 부라우나루터(8.3km) - 우만리 나루터(10.5km) - 흔암리선사주거지(12.5km)-  아홉사리과거길(14km)- 도리마을 (17.5km)


 02 코스 세물머리길 ( 총길이 21.0km, 소요시간 7-8시간  ):    
▶영월루(0km) - 신선바위 (1.4km) - 청미천 (2.7km) -삼합교 (5.3km) - 삼합2리마을회관  (7.3km) - 소너미고개  (8.2km) - 남한강대교  (9.2km) - 개치나루터  (9.7km) - 흥원창  (12.1km) - 섬강교  (14km) - 자산  (16.5km) - 해돋이산길  (18.7km) - 강천마을 (21km) 

03 코스 바위늪구비길  ( 총길이 13.7km, 소요시간 4-5시간  )
▶강천마을  (0km)-  비위늪구비  (0.6km)- 남한교밑 (3.5km)-  가야1리 마을회관, 대순진리회 (6km)-  목아박물관 (8km)-  금당교  (10.6km)- 신륵사  (13.7km).

04 코스 5일장터길 ( 총길이 13.0km, 소요시간 5-6시간 )
▶신륵사 (0km)- 여주도서관 (0.8km)-  연인교 (1.2km)-  여주시청 (2.4km)-  여주5일장 (2.8km)-  대로사 (3.6km)-  세종산림욕장  (5.5km)- 효종대왕릉  (6.7km)- 세종대왕릉 (7.4km)- 번도5리마을 (9.6km)-  세종왕릉역  (13km).
05 코스 황학산길 ( 총길이 6.5km, 소요시간 3시간): 
▶여주역 (0km)- 세종초등학교 (1.0km)- 황학산산림욕장 (3.2km)- 자영쉼터 (3.9km)- 황학산정상 (5.0km)- 약수터 (5.4km)- 명성황후생가 6.5km). 

 06 코스 왕터쌀길  ( 총길이 10.2km, 소요시간 3-4시간  ): 
▶세종대왕역사문화관 (0km)- 세종산림욕장 (0.6km)- 입암 (1.5km) - 여주문화관 (3.4km) - 양화나루 (7.6km) - 청보리밭(9.3km) - 상백2리마을회관 (10.2km).


 07 코스 부처울습지길 ( 총길이 9.3km, 소요시간 3-4시간  ):    
▶상백2리마을회관 (0km) - 상백2리선착장 (0.6km) - 부처울습지 (1.2km) - 상백교 (1.8km) - 계신리마을회관  (3.3km) - 삼신당  (6km) - 이포나루터  (6.5km) - 이포보홍보관  (7.5km) - 당남리섬 입구 (9.3km) 

 

08 코스 파사성길  ( 총길이 5.4km, 소요시간2-3시간  )
▶당남리섬입구  (0km)-  파사성도보현수교  (0.9km)- 파사성 정상 (2.3km)-  수호사 (2.8km)-  신내천 (3.3km)-  느네마을  (4.4km)-   당남리섬입구  (5.47km).


09 코스 너른들길 ( 총길이 11.8km, 소요시간 4-5시간): 
▶당남리섬입구 ( 0km)- 당남리섬 (0.4km)-  피넛교 (1.5km)-  이포보오토캠핑장 (2.4km)-  여주저류지 (5.2km)-  후포교 (9.0km)-  어랑진나루터  (11km)- 천남공원  (11.8km)


10 코스 천년도자기길 (총길이 7.2km, 소요시간 3-4시간): 
▶천남공원 (0km)- 싸리등산로입구 (1.4km)- 싸리산팔각정 (2.9km)- 현암강변공원 (3.9km)- 오학동행정복지센터 (5.4km)- 여주대교 (6.6km)- 여주박물관 ( 7km)- 여주시종합관광안내소 (7.2km). 


10-1 코스 싸리산길  (총길이 3.2km/ 왕복 6.4km, 소요시간 1시간 30분)
▶ 싸리산주차장 (0km)- 생태등산로갈림길 (0.5km)- 고령토광산 (1.7km)- 싸리산정상 (1.8km)- 하림리입구 (3.2km)



여주문화관광안내....무료관람

 

봉미산 신륵사 

 

여주신륵사사적비(驪州神勒寺事蹟碑),  인류화합공생기원비(人類和合共生祈願碑), 및 공적비(功績碑) 등...

 

특히 2009년 제30차 한일불교문화교류대회여주 신륵사에서 열린 가운데 일본 불교계가 이 자리에서 세계평화기원대법회 봉행과 함께 한국민에게 고통을 준 과거사를 반성하고 참회하는 내용을 새긴 ‘인류화합공생기원비’ 제막식을 가졌다고 한다. 지구상의 모든 나라와 사람들은 서로 싸우지 말고 공생(共生)하는 길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유물전시관1,2  &  탬플스테이전용관

 

-> 불교용품점.

 

<- 신륵사 템플스테이, -> 매점, 찻집

 

신륵사 동영상

 

불이문

 

동지기도: 
-- 일시: 12월 22일 10시  
-- 장소: 관음전/  동참금:  3만원
-- 동참문의: 총무실031) 885- 2505 

 

어릴 때 무서워 했던 불이문 금강역사 불화 

 

여주 금은모래강변공원 방향

 

신륵사 동영상

 

신륵사

 

불이문 방향

 

여주 썬밸리호텔 방향

 

신륵사 전경

 

기와불사....기와 한장 1만원

 

<- 극락보전, 조사당, 명부전, 관음전
↑   강월헌, 대장각기비, 다층석탑

 

세심정

 

공사안내:
신륵사 조사당 주변정비공사 (범종각 이전 및 재설치)
공사기간: 2023.09.01 ~ 2024.02.28
발주자: 대한불교 조계종 신륵사

 

 

여주 신륵사 구룡루:  

거의 대부분의 사찰에는 주불전을 보호하고 사세를 안정시키는 전위 누각이 주불전의 맞은편에 자리하고 있다. 이 누각은 사찰에서 행하는 모든 제반 의식의 집전 장소로서 기능적 역할을 하는 곳으로 신륵사에서는 구룡루가 여기에 해당된다고 한다.

 

구룡루(九龍樓)는 1858년 김병기의 지원으로 중창된 건물이다. 앞면 3칸, 옆면 2칸의 규모인데 본래는 1층 앞부분이 트여 있었으나 지금은 벽으로 막아 2층만 사용하도록 되어 있다. 보통의 사찰 누각이 누대 밑으로 출입문이 나 있으므로 공간을 충분히 두는 데 비하여 이 구룡루는 누대 밑의 공간이 아주 낮다. 그것은 신륵사 중심으로의 출입이 강가 쪽의 정면이 아니라 범종루와 극락보전 오른쪽이므로 출입문으로서의 기능보다는 의식 집행의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강조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구룡루 명칭 유래는 석가부처님이 탄생하실 때 성수를 뿜어 부처님을 목욕시켰다는 아홉 마리 용에 대한 이야기와, 신륵사 창건 설화에 등장하는 아홉 마리 용의 승천과 관계있을 것으로 보인다. 누각 앞뒤로 '구룡루(九龍樓)' 와 '봉미산신륵사(鳳尾山神勒寺)' 편액이 각각 걸려 있다.

 

 

현판: ' 九龍樓 ' (구룡루)  

 

적묵당

 

적묵당, 극락보전, 구룡루

 

구룡루

 

범종각 ....이전 공사 중.

 

구룡루 측면에서 바라보는 전탑과 보호수 ...

 

극락보전, 다층석탑(보물 제225호), 은행나무, 심검당

 

현판:  ' 鳳尾山神勒寺'( 봉미산 신륵사)

 

심검당

 

구룡루에서 바라보는 다층전탑, 강월헌, 보호수 은행나무 방향

 

극락보전 & 다층석탑

 

신륵사 극락보전:

신륵사는 신라 진평왕 때 건립되었고, 나옹선사가 이곳에서 세상을 더난 후 고려 우왕2년 (1376)에 크게 중창된 유서 깊은 절이다.  영릉이 여주로 이장된 예종 1년(1469) 부터 왕실에서 신륵사를 영릉의 원찰로 삼았고, 성종3년(1472)부터 대규모 중창이 이루어졌다. 극락보전은 숙종4년(1678)에 다시 크게 지어진 후에 정조 21년(1797) 중수되었다. 절의 중앙에 있는 법당인 극락보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지어진 다포계 팔작집이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 128호.

 

 

심검당

 

구룡루

 

심검당

 


신륵사 다층석탑: (보물 제255호):  

신륵사 극락보전 앞에 있는 탑으로, 기단(基壇)을 2단으로 마련한 후, 그 위로 여러 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이다.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의 일반적인 석탑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각 부분의 세부적인 조형방법은 전혀 달라서, 기단에서부터 탑신부까지 전부 한 장씩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  바닥돌 윗면에는 연꽃을 돌려 새겼다. 아래층 기단의 네 모서리에 새겨진 기둥조각은 형식적이나, 특이하게도 물결무늬를 돋을새김해 두어 눈길을 끈다. 아래층 기단의 맨윗돌을 두껍게 얹어놓아 탑의 안정감을 높이고 있으며, 위층 기단의 모서리에 꽃 모양을 새긴 기둥을 두고 각 면마다 용무늬를 깊이 판 모습은 능숙한 석공의 솜씨를 드러낸다. 탑신부의 각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얇은 한 단이며, 네 귀퉁이에서 가볍게 치켜올려져 있다. 8층 몸돌 위에 지붕돌 하나와 몸돌 일부분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층수가 더 많았을 것으로 보이지만 8층 탑신의 아래까지만 옛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각 부분 아래에 괴임을 둔 점으로 보아 고려시대 석탑 양식을 일부분 남기고 있으나, 세부적인 조각양식 등에서 고려 양식을 벗어나려는 여러가지 표현이 돋보인다. 하얀 대리석이 주는 질감은 탑을 한층 우아하게 보이게끔 하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서울 원각사지 십층석탑(국보)과 돌의 재질, 조각양식이 비슷하다. 신륵사는 조선 성종 3년(1472)에 대규모로 새 단장을 하였는데, 이 탑도 이 때에 함께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 < 문화재청 > 

 

 

극락보전

 

구룡루 

 

명부전

 

조사당 (組師堂: 보물 180호) 

조사당 내부에는 나옹 화상의 영정과 독존(獨尊), 그리고 좌우에 지공무학대사의 영정을 봉안해두고 있다고 한다. 

 

 

극락보전 측면

 

관음전

 

명부전

 

조사당

 

보호수...향나무,  수령 600년 (1982년 기준), 나무높이 7m, 나무둘레 2.2m, 지정일자 1982년 10월 15일 - 여주시

 

봉미산 가는 길

 

보제존자석종(普濟尊者石鐘: 보물 228호), 보제존자석종 앞 석등(보물 제231호), 보제존자석종비(普濟尊者石鐘碑: 보물 229호). 

 

 

봉미산 하산 동영상

 

봉미산에서 바라보는 남한강 

 

 

신륵사 대장각기비 동영상

 

구룡루 중수비(九龍樓重修碑) &  대장각기비(大藏閣記碑: 보물 230호)

 

구룡루 중수비(九龍樓重修碑)가 구룡루(九龍樓) 옆에 있지 않고 대장각기비각(大藏閣記碑閣) 앞 모서리에 위치해 있다. 그 연유는 알 수 없다고 한다.

 

 

第二三0號 寶物 神勒寺大藏閣記碑 (제230호 보물 신륵사대장각기비)

여주 신륵사 대장각기비 (驪州 神勒寺 大藏閣記碑):   보물 제230호

여주 신륵사 대장각기비는 고려말 신륵사에 대장각(大藏閣)을 만든 후 그 내력을 새긴 것이다. 이색(李穡)이 공민황과 그 부모의 명복을 빌고자 보세존자 나옹 화상의 제자들과 함께 발원하여 <고려대장경>을 인쇄하고, 이를 보관하기 위해 이곳에 2층의 대장각을 지었다. 비문은 예문관 제학이었던 이숭인(李崇仁)이 짓고, 글씨는 집현관 제학 이었던 권주(權鑄)가 썼다. 뒷면에는 대장경 인쇄와 대장각 건립에 참여했던 승려와 신도들의 명단이 적혀있다. 길쭉하게 사가형의 바닥돌 위에 받침돌을 놓고, 그 위로 비의 몸체를 세운 후 지붕들을 얹은 형태로 되어있으며, 몸체의 양옆에 있는 돌기둥이 몸체를 단단하게 지탱하고 있다. 이렇게 비의 몸체 양 옆에 돌기둥을 세우는 형식은 고려 후기에 이르러 나타나는 양식이다. 비가 세워진 시기1383년(우왕 9)이다. 통일신라 시대 이래 유행했던 거북 모양의 비 받침과 용의 머리가 새겨진 비 머리는 고려 후기로 오면서 사가형 받침과 지붕 모양이 머릿돌로 간략하게 되었는데,  이 비가 그러한 변화 양상을 보여주기 때문에 고려말 비석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 대장각(大藏閣) : 불경을 만들어 보관하던 곳.     

 

여주봉미산 신륵사 구룡루 중수비(驪州鳳尾山神勒寺九龍樓重修碑) 내용:

옛날부터 신륵사는 경치가 뛰어난 이름 있는 절이라고 칭하였다. 일찍이 나옹(懶翁)스님목은 이색(李穡)이 교유하던 곳으로 당시에 호계(虎溪)라고 일컬었다. 절의 남쪽에 구룡루가 있는데 누각 아래에 물이 모여 연못이 되었고 옛날에 아홉 마리의 용이 살았다고 하여 누각의 이름이 된 것이다.
누각이 오래 되어 숙종15(1689)년에 수리를 했다가 60년이 지나 지금 영조25(1749)년서까래와 기와를 바꾸고 치장하여 옻칠과 색칠을 하여 환하게 면목을 일신하게 되었으니 누각이 흥하고 쇠하는 것도 또한 때가 있는 것인가? 스님들이 돌을 새겨 후대에 보이기 위하여 나에게 그 일을 기록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나는 도은(陶隱) 이숭인이 지은 옛 비석에서 우리 선조 정간공(靖簡公 權僖)이 그 부인을 위해 금잔을 시주한 사실을 보았고 처마에는 양촌(陽村) 권근(權近)이 남긴 글이 있어 지금까지 사람들의 눈과 귀에 빛나고 있으니 이 일에 있어 내가 참여하는 것은 행운이다. 한마디 말이 없을 수 있겠는가?
맹자는 “오백년 만에는 반드시 세상에 이름을 떨치는 어진 사람이 나온다.”라고 하였는데 유학과 불교가 같은 도는 아니지만 드러나고 감추어지는 것은 진실로 같은 이치이다. 나는 불교는 나지도 죽지도 않고 윤회가 끝이 없다고 들었다. 조사(나옹)가 입적한지 거의 오백년인데 이제 누각에 글을 새기고 치장하는 것이 또한 오늘이니 바로 왕수인이 문을 열어보는 때인 것이다. 장차 불진을 세워 몽둥이로 때리며 이 누각에 앉아 가장 높은 경지의 대승을 설법하여 백가지 천가지의 기이한 광경을 나타내면 가릉(迦陵)의 훌륭한 소리가 온 세상에 두루 퍼질 것이다.
용이 신령이 된 것이 명백하여 혹은 뛰어 오르고 혹은 가라앉아 변화를 측량할 수는 없지만 깊은 연못에서 흰 옷 입은 아홉 노인이 은혜로운 구름과 빗속에서 참선하지 않는다고 어찌 알 수 있겠는가? 나는 목은선생의 남기신 덕행에 받들어 인사하고 눈을 씻고 먼저 보았다. 시에 “조사의 등불은 사라지지 않는다.”라고 하였으니 이에 누각은 오래 보존되어 훼손되지 않을 것이며 신령과 귀신이 보호하여 귀부(龜趺 : 비석 받침대)도 우뚝하게 서서 닳아 마멸되지 않으리라.
영조27(1751)년 5월 5일 통훈대부 전 행 사간원 헌납 권신(權賮)은 기록하고 진산 후손 강주팔(姜柱八)이 쓰다.



강월헌 & 삼층석탑

 

 

다층전탑(多層塼塔; 보물 226호):

 

여주 신륵사 다층전탑은 아래로 한강이 보이고 멀리 평야를 마주하고 있는 바위 위에 세워져 있다. 전탑이란 흙으로 구은 벽돌로 쌓은 탑을 이르며, 우리나라에서는 경기도와 경상북도 안동 지역에서 몇 기가 남아있다. 이 탑은 2단으로 기단을 쌓고, 다시 3단의 계단을 쌓은 후 여러 층의 탑신(塔身)을 쌓아 올린 탑이나, 기단과 계단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탑신부는 흙벽돌로 6층까지 쌓아 올렸는데, 그 위에 다시 몸돌 하나가 올라가 있어 7층으로 보이기도 한다. 통일 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전탑과 달리 몸돌에 비하여 지붕돌이 매우 얇아 전체적 인상이 독특하다. 지붕돌 밑면의 받침은 1~3층이 2단, 4층 이상은 1단으로 되어 있으며, 지붕돌 위로도 1층은 4단, 2층 이상은 2단씩의 받침을 두었는데 이 또한 특이한 형태다. 꼭대기에 있는 머리 장식은 얇다. 지금 탑의 원래의 모습으로 보기는 어렵다. 탑의 부쪽으로는 수리할 때 세운 비가 전해 오는데, 그 비에 1726년 (조선 영조 2)에 고쳐 지었다고 적혀있기 때문이다. 현재 이 탑이 세워진 연대를 확실히 알 수 없으나 벽돌의 문양 등을 근거로 고려 시대로 보는 견해가 많다.     

   

다층전탑에서 바라보는 남한강

 

신륵사 전경

 

심검당...

보호수...은행나무, 나무나이 600년(1982년 기준), 나무높이 22m, 나무둘레 3m, 3.5m, 

지정일자 1982년 10월 15일 - 여주시 

 

 

다층전탑 앞 보호수 은행나무 동영상

 

포토존

 

 

신륵사 동영상

 

앗, 강월헌

 

 

신륵사 강월헌(江月軒):

나옹화상의 화장터에 건립된 석탑과 인접해 건립된 6각형의 정자이다. 강월헌나옹화상의 당호로 그를 추념하기 위해 건립했던 정자로 생각된다. 이 정자는 본래 석탑과 거의 붙어 있었으나. 1972년 대홍수시 파괴되는 바람에 현재의 위치에 콘크리트로 건립했다. 이 정자는 신륵사를 감아 흐르는 여강의 암반 위에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에서 바라보는 백사장 강물 그리고 멀리 보이는 여주평야 등은 가히 일품이라 하겠다.   - < 여주시 >

 

 

 

신륵사 강월헌 동영상

 

아, 강월헌....강과 달이 만나는 곳

 

아, 남한강....이 남한강의 아름다움을 보고싶어 신륵사를 찾은 것이다.

 

 

여주 신륵사 삼층석탑:

여주 신륵사 삼층석탑은 화강암을 깎아만든 삼층탑으로, 신륵사 다층석탑 근처 강변의 암반에 세워져 있다. 불교에서 탑은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무덤 양식에서 기원한 것이다. 탑을 지탱하고 있는 아랫부분인 기단부는 넓적한 한장의 돌로 만들어져 있고, 그 위에 사각형의 상대중석과 갑석을 올려 놓았다. 상대중석의 각 면에는 기둥 모양의 우주(隅柱)* 와 탱주** 를 새겼고, 그 위를 덮고 있는 갑석에는 연꽃무늬가 아래로 향하게 새겨져 있다. 기단부 위의 탑신부는 3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층과 2층의 탑신에 해당하는 돌의 네모퉁이에는 기둥모양의 우주가 조각되어 있으나 심하게 닳은 편이다. 그 위에 건물의 지붕에 해당하는 옥개석이 올려져 있는데, 기울기가 비교적 원만한 편이고 그 아랫부분에 새겨진 받침은 3단이나 4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 3층 탑신석은 없어진 상태이다. 탑의 맨 꼭대기를 장식하는 구조물인 상륜부도 모두 없어졌다. 고려말 나옹 화상을 화장한 장소에 이 탑을 세웠다는 기록이 남아있어 그 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탑 은 조각이 부드럽고 탑신부의 짜임새가 간결하여 고려 후기 탑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 우주(隅柱): 건물의 모퉁이에 세운 기둥.
** 탱주: 버팀 기둥. 

 

 

강월헌 동영상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 靑山兮要我以無語 -  청산혜요아이무어 )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 蒼空兮要我以無垢 - 창공혜요아이무구)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 聊無愛而無憎兮 - 료무애이무증혜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 如水如風而終我  - 여수여풍이종아 )          

 

- < 나옹선사 >

 ▒ 나옹선사(懶翁禪師) (1262-1342): 고려 말기의 고승/ 공민왕의 왕사/  본명은 원혜(元慧), 휘는 혜근(慧勤), 호는 나옹(懶翁)/ 경북 영덕군 창수면 갈천리에서 출생/ 20세 때 친구의 죽음을 보고, 출가해 공덕산 묘적암(妙寂庵)의 요연(了然)선사에게서 득도/ 1348년(충목왕 4) 원나라에 가서 연경(燕京)의 고려사찰인 법원사(法源寺)에서 인도 승려 지공(指空)의 가르침을 받음/ 조선 태조 왕사로서 한양천도의 주요 인물인 무학대사가 그의 제자였다. 나옹, 지공, 무학, 세분의 부도와 비석이 회암사터의 뒤쪽에 현존/ 그가 입적한 남한강변 여주 신륵사에서 입적 사리를 봉안한 부도와 비문이 남아 있다.

 

 

 

신륵사 삼층석탑 동영상

 

아, 남한강 황포돛배...

 

 

 

강월헌 남한강변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