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용산 전쟁기념관, 삼각지 대구탕골목
- ( 2024.01.27 )
- 《 전쟁기념관-1 》:
용산 전쟁기념관을 가보았습니다. 경내 들어서면 맨 먼저 형제가 부둥켜 앉고 있는 모습의 '형제의 상'이라는 동상이 마음을 뭉클하게 합니다. 그리고 총검 두 자루가 하늘 높이 우뚝한 모습의 '6.25 전쟁 조형물' 에서는 동족상잔의 처절한 6.25 전쟁에 관한 느낌이 눈에 확 들어오게됩니다. 전쟁기념관 야외의 '광개토대왕릉비'를 바라보면 옛날의 우리나라 국토의 광할함과 긍지가 넘쳐납니다. 전쟁기념관 우측에 전시되어 있는 6.25전쟁에 사용된 각종 탱크와 비행기, 그리고 미사일 등을 관람하게 됩니다. 거대한 B52기 폭격기는 낙동강 전투에서 그 많은 폭탄을 투하하여 북한군을 저지하는 상상이 떠오릅니다. 또한 많은 종류의 전차들과 미사일을 바라보면서 북한의 핵무장이 공포스럽게 생각되기도 합니다. 또한 방금 일어난 교전상태를 보고있는 듯한 참수리 357호에 눈길이 갑니다. 2002년 6월 29일 제2연평해전에서 북한 함정의 기습공격으로 침몰한 고속정 ‘참수리 357'호의 측면의 수많은 총탄의 흔적을 보면서, 그 당시의 위급한 상황을 상상하게 됩니다. 전사 6명, 부상 18명이 발생했던, 그날의 긴박하고 힘들었을 승조원들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전쟁기념관 내부로 들어가면 6.25 전쟁의 경과를 소상히 전시헤 놓고 있습니다. 전쟁의 발생과 비극적인 전개, 그리고 안타까운 피난민들의 고난, 인명손실, 전국토의 폐허 등이 눈에 그려졌습니다. 또한 즉각적인 전쟁 개입이 이루어지게 한 미국 정부의 역할이 지대하였음을 느꼈습니다. 만약 유엔군의 지원이 늦었더라면 풍전등화의 우리나라는 전쟁에 패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세계사적으로 볼 때 전쟁 후의 수많은 양민 학살 등 그 후에 일어날 상황은 생각조차 하기 싫은 것입니다. 세계 최초로 결성 투입된 UN군과 치열한 전투에서 산화하신 수많은 젊은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뭉쿨해졌습니다. 백척간두 풍전등화 같은 처지의 우리나라를 구한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의 탁월한 전략을 칭송할 뿐이었습니다.
6.25전쟁에서 잘 알지도 못한 이역만리 극동의 어느 나라에 오직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UN군으로 참전하여 불꽃처럼 죽어간 동맹국들의 젊은이들을 생각하면 깊은 슬픔을 느끼게 됩니다.
지금 북한은 가공할 핵무기로 무장하여 같은 민족인 우리나라를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좁은 국토에 핵전쟁이 일어나면 우리 민족은 갈 곳도 없이 모두 멸절 당 할 것입니다. 핵무기는 민족 앞에 커다란 재앙입니다. 무서운 일입니다.
우리나라의 초.중.고교 학생들과 일반 시민들이 전쟁기념관에 들러 많은 것을 보고 배우며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하였습니다.
▶ 전쟁기념관 :
1F: 전쟁역사실 1, 2 / 6.25전쟁 참전 대형장비 전시실
2F: 6.25전쟁실 1,2 / 6.25전쟁 지도실 / 호국추모실 / 기획전시실 / 문화아카데미 / 역사체험교육실
3F: 유엔실 / 도서자료실 / 기증실 / 시네마영상관 / 해외병실 / 국군발전실
▶ 전쟁기념관 관람안내:
- 관람시간: 09:30 ~ 18:00 (입장마감 17:00, 폐관시작 17:40)
- 정기휴일: 매주 월요일 (월요일이 포함된 연휴때는 연휴 다음날 휴관)
- 관람요금: 무료 (일부 특별기획전 별도)
※ 주차요금: * 입차후 30분 이내 무료.
1. 일반권:
- 소형 (일반, 관람): 기본 2시간 이내 4,000원, 초과시 30분당 1,500원. 1일최대 35,000원 (입차시간부터 24시간 이내)
- 대형 (일반, 관람 ): 기본 2시간 이내 12,,000원, 초과시 30분당 4,000원. 1일최대 60,000원 (입차시간부터 24시간 이내)
2. 할인:
※ 주차료의 50% 할인 대상자 (정기권, 일일권 할인 제외):
- 장애인 : 복지카드 소지자(본인 탑승시 적용)
- 경차 : 1,000cc 이하
- 저공해 1,2종 차량(전기, 수소, 하이브리드)
* 전기차 충전 시 주차요금 동일 적용
- 다둥이(2자녀 이상) 행복카드 소지자
※ 유료 특별전(대관) 관람:
- 소형 (일반, 관람차량): 기본 3시간 이내 4,000원, 초과 30분당 1,500원.
- 대형 (일반, 관람): 기본 3시간 이내 12,,000원, 초과 30분당 4,000원.
* 유료특별전(대관) 관람 (1시간 할인 적용)
3. 정기권:
- 소형 일반차량 1개월: 150,000원
- 대형 일반차량 1개월: 300,000원
* 매일 1일 부터 말일까지 (일할계산 불가)
주소: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로 29 (용산동1가 8번지)
주차관리: 02-709-3162 / 3163
전쟁기념관 안내
1. 전시실 입구, 2. 전시실, 3. 어린이박물관, 4. 야외전시장, 5. 참수리호(357호정), 6. 전사자명비 (회랑), 7. 평화의 광장, 8. 6.25전쟁 참전국 기념비, 9. 광개토대왕릉비, 10. 평화의 종, 11. 6.25 상징조형물, 12. 형제의 상, 13. 평화의 시계탑, 14. 뮤지엄카페, 15. 조형물 "비싱", 16. 뮤지엄웨딩홀.
기타: 승용차주차장, 버스주차장, 식당, 매점, 수유실, 안내소, 카페, 장애인경사로, 현금지급기, 보관함/뮤실물센터, 유모차/휠체어 무료대여, 기념품점, 지하철타는 곳, 버스 타는 곳.
6.25 전쟁조형물
형제의 상
형제의 상:
6.25 전쟁 당시 각각 한국군과 인민군이 되어 적으로 만나게 된 형제의 비극을 작품으로 재현한 것이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형인 박규철 소위는 한국군 제8사단 16연대 소속으로, 동생인 박용철 하전사는 북한군 제8사단 제83연대 소속으로 참전하게 되엇다. 원주 치악고개 전투에서 만난 형제는 서로를 알아보고, 서로에게 겨눈 총을 거두고 얼싸안았다. '동족 상잔의 비극'이라는 6.25전쟁의 성격을 상징하는 조형물로, 한 덩어리가 되어 서로 안고있는 형제의 모습에서 화해, 사랑, 용서의 의미를 엿볼 수 있다. 하구의 반구형 돔은 전국에서 수집한 화강석 조각을 고분처럼 쌓아 올린 것으로 수많은 순국선열의 희생을 상징한다. 동,서쪽으로 갈라진 돔이 위로 올라갈 수록 아물어지는 형태는 분단의 상처가 치유되어 통일이 되길 바라는 소망을 표현한 것이다. 돔의 내부에는 한민족의 정신과 국난 극복을 주제로 한 모자이크 벽화가 그려져 있다. 갈라진 틈을 메우고 있는 스테인드글라스는 우리 민족의 피와 땀, 슬픔과 환희를 표현한 것이다. 천장에는 통일된 한민족의 결속을 상징하는 서로 연결된 여러개의 쇠줄이, 바닥에는 당시 전투부대를 파병한 유엔 16개국의 지도 조형판이 설치되어있다.
모과나무
비상대피체험관
6.25 전쟁조형물 Korean War Monuments:
- 6.25 탑:
청동검과 생명나무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것으로서 청동검은 유구한 역사와 상무정신을 표현하고 생명수는 한민족의 화평과 번영을 상징함.
- 석그릇:
6.25탑을 받치는 그릇모양의 기단부로 겨레의 정신과 민족통일의 염원을 담아가는 그릇을 의미함.
- 호국군상:
전쟁을 극복했던 각게각층의 38인을 조각하여 6.25전쟁의 고난과 고통의 상처를 표현하고 선열들의 숭고한 희생정신과 호국정신을 상징함.
- 석벽:
우리민족의 삶의 터전인 한반도를 뜻하며 선사시대 바위그림을 재구성하여 민족의 번영과 풍요를 기원함.
- 참전국 기념비:
참전 21개국의 상징물을 조각하여 세움으로 참전국 전사상자를 추모함.
전쟁기념관 동영상
전쟁기념관
전쟁기념관
6.25 전쟁 조형물을 세우는 뜻:
1950년 6월 25일 미명 북한의 불법남침으로 일어난 골육상잔의 비극은 400여만명의 인명 살상과 1,000여만명의 이산가족 그리고 230억불로 추산되는 전국토의 큰 재산 손실을 입혔다.
우리 대한민국의 국군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민족의 평화를 이룩하기 위해서 21개국의 유엔군과 더불어 목숨을 바쳐 싸웠으니 3년 1개월 2일의 그 전쟁은 1953년 7월 정전협정으로 휴전을 맞게 되었다.
그 뒤 반세기가 지나는 동안 병기는 황폐한 땅을 일구는 보습이 되고 포연은 공장의 굴뚝 연기로 변하고 포성은 사랑의 종소리로 바뀌어 이 땅에 복지와 평화의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다.
이에 우리는 이 전쟁의 비극을 되새겨 전쟁으로 희생된 분에게 향불을 피우고 우리 후손들에게는 영원한 평화를 다짐하는 전쟁조형물을 이곳에 세워 통일의 그 날을 기약하고저 한다.
2003년 7월 27일
8.25 전쟁 5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6.25전쟁 50주년 기념사업단
자유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FREEDOM IS NOT FREE
▶ 6.25 전쟁 연표:
1950. 6. 25 - 북한군 남침.
1950. 6. 26 - 유엔안보리, 북한군 침공중지 결의
1950. 8. 1 - 미 제8군사령관 낙동강방어선으로 철수 명령.
1950. 8. 5 - 인민군 8월 공세 시작.
1950. 8. 16 - B-29 폭격기 융단폭격 시작.
1950. 8. 31~ 9. 8 - 인민군의 9월 공세.
1950. 9. 15 - 인천상륙작전.
1950. 9. 28 - 수도 서울 탈환.
1950. 10. 1 - 국군, 38도선 돌파 북진.
1950. 10. 25 - 중공군, 제1차 공세 개시
1950. 10. 26 - 국군, 압록강 초산 도달
1950. 11. 21 - 미 제10군단, 두만강 해산 진입
1950. 12. 15~24 - 흥남철수 단행
1951. 1. 4 - 후퇴
1951. 3. 15 - 국군, 서울 재탈환 및 북진
1951. 4. 12 - 맥아더원수 해임, 리지웨이 유엔사령관 임명.
1951. 6. 23 - 말리크 소련 유엔대표, 휴전회담 제의.
1951. 7. 10 - 개성에서 휴전회담 개시
1951. 10. 25 - 휴전회담장 판문점으로 이동
1951. 10. 28 - 군사분계선 설정 합의
1951. 12. 18 - 쌍방 포로명단 교환
1953. 4. 20~26 - 부상병 포로 교환
1953. 6. 8 - 포로 송환문제 타결
1953. 6. 18 - 이승만 대통령, 전격적 반공포로 석방
1953. 7. 27 - 휴전협정 조인.
겨울철 물 뺀 연못과 제2연평해전의 참수리 357호
광개토대왕릉비:
414년 고구려19대 왕인 광개토대왕(374~413, 재위 391~413))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아들 장수왕(394-491,재위 413~491)이 세운 비이다. 고구려의 수도였던 국내성에 세워진 것으로 현존하는 우리나라 비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이다. 비문에는 고구려 건국설화 등 고구려의 역사와 광개토대왕의 업적 등이 적혀있다. 광개토대왕이 한반도에 침입한 왜군을 여러차례 격파했다는 내용도 담겨있다. 1면 9행의 신묘년조(辛卯年條)는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식민지로 경영했다는 임나본부설의 근거로 잘못 해석되기도 하였다. 이 비석은 자료가 부족한 한국 고대사의 비밀을 밝히는 열쇠가 되는 유물로서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크다. 특히 고조선, 고구려, 발해를 자국의 역사로 편입하려는 중국의 동북공정이 잘 못 된 것임을 역사적으로 증명해 주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광개토대왕릉비
번역문 1면
옛적 시조 추모왕이 나라를 세웠는데 (왕은) 북부여에서 태어났으며, 천제(天帝)의 아들이었고 어머니는 하백의 따님이었다. 알을 깨고 세상에 나왔는데, 태어나면서부터 성스런 ...이었다. ㅁㅁㅁㅁㅁ 길을 떠나 남쪽으로 내려가는데, 부여의 엄리대수(奄利大水)를 거쳐 가게 되었다. 왕이 나룻가에서 “나는 천제의 아들이며 하백의 딸을 어머니로 한 추모왕이다. 나를 위하여 갈대를 연결하고 거북이 무리를 짓게 하여라.” 라고 하었다. 말이 끝나자 마자 갈대가 연결되고 거북떼가 물 위로 떠올랐다. 그리하여 강물을 건너가서, 비류곡(沸流谷) 홀본(忽本) 서쪽 산상(山上)에 성을 쌓고 도읍을 세웠다. 왕이 왕 위에 싫증을 내니, (하늘님이) 황룡을 보내어 내려와서 왕을 맞았다. (이에) 왕은 홀본 동쪽 언덕에서 용의 머리를 디디고 서서 딛고 하늘로 올라갔다. 유명을 이어받은 세자 유류왕(儒留王)은 도(道)로써 나라를 잘 다스렸고, 대주류왕(大朱留王)은 왕업을 계승하여 발전시키었다. 17세손에 이르러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이 18세에 왕위에 올라 칭호를 영락대왕(永樂大王)이라 하였다. 태왕(太王)의 은택이 하늘까지 미쳤고 위무(威武)는 사해(四海)에 떨쳤다. (나쁜 무릴를) 쓸어 없애니, 백성이 각각 생업에 힘쓰고 편안히 살게 되었다. 나라는 부강하고 백성은 유족해 졌으며, 오곡이 풍성하게 익어갔다.
(그런데) 하늘이 이 백성을 어여삐여기지 아니하여 39세에 세상을 버리고 떠나시니, 갑인년 9월 29일 을유(乙酉)에 산릉(山陵)으로 모시었다. 이에 비를 세워 그 공훈을 기록하여 후세에 전한다, 패려(稗麗)가 고구려인에 대한 (노략질을 그치지 않으므로) 영락 5년 을미에 왕이 친히 군사를 이끌고 사서 토벌하였다. 부산(富山), 부산(負山)을 지나 염수(鹽水)에 이르러 그 3개 부락 600~700 영(營)을 격파하니, 노획한 소․말․양의 수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었다. 이에 왕이 행차를 돌려 양평도(襄平道)를 지나 동으로 ㅁ성(ㅁ城)․역성(力城)․북풍(北豊, 오비ㅁ(五備ㅁ)로 오면서 영토를 시찰하고, 수렵을 한 후에 돌아왔다. 백잔․신라는 옛부터 고구려 속민으로 조공을 해왔다. ..... (중략)... 영락(永樂) 6년(396년) 병신(丙申)에 왕이 친히 군을 이끌고 백잔국을 토벌하였다. 고구려 군이 ㅁㅁㅁ하여 영팔성, 구모로성, 각모로성, 간저리성, ㅁㅁ성, 각미성, 모로성, 미사성, ㅁ사조성, 아단성, 고리성, ㅁ리성, 잠진성, 오리성, 구모성, 고모야라성, 혈ㅁㅁㅁ성, ㅁ이야라성, 전성, 어리성, ㅁㅁ성, 두노성, ㅁㅁㅁ
광개토대왕릉비
번역문 2면
리성․미추성․야리성․태산한성․소가성․돈발성․ ㅁㅁㅁ성․루매성․산나성․나단성․세성․모루성․우루성․소회성․연루성․석지리성․암문ㅁ성․임성․ㅁㅁㅁㅁㅁㅁㅁ리성․취추성․ㅁ발성․고모루성․윤노성․관노성․삼양성․증ㅁ성․ㅁㅁ노성․구천성․...등을 공취(攻取)하고, 그 수도를 ...하였다. 백잔이 의에 복종치 않고 감히 나와 싸우니 왕이 크게 노하여 아리수(阿利水)를 건너 정병(精兵)을 보내어 그 수도에 육박하였다. (백잔군이 퇴각하니...) 곧 그 성을 포위하였다. 이에 백잔주((百)殘主)가 곤핍해져, 남녀 생구(生口) 1천 명과 세포(細布) 천 필을 바치면서 왕에게 항복하고, 이제부터 영구히 고구려왕의 노객(奴客)이 되겠다고 맹세하였다. 태왕은 (백잔주가 저지른) 앞의 잘못을 은혜로서 용서하고 뒤에 순종해 온 그 정성을 기특히 여겼다. 이에 58성 700촌을 획득하고백잔주의 아우와 대신 10인을데리고 수도로 개선하였다. 영락 8년 (398년) 무술(戊戌)에 한 부대의 군사를 파견하여 백신(帛愼:息愼,肅愼) 토곡(土谷)을 관찰, 순하였으며 그 때에 ( 이 지역에 살던 저항적인) 모ㅁ라성 가태라곡의 남녀 삼백여 인을 잡아왔다. 이 후로(백신은 고구려 조정에) 조공(朝貢을 하고 ( 그 내부의 일을) 보고하며 (고구려의) 명(命)을 받았다. 영락 9년(399년) 기해(己亥)에 배잔이 맹서를 어기고 왜(倭)와 화통하였다. (이에) 왕이 평양으로 해차하여 내려갔다. 그 때 신라왕이 사신을 보내어 아뢰기를 “왜인이 그 국경에 가득 차 성지(城池)를 부수고 노객(老客)으로 하여금 왜의 민으로 삼으려 하니 이에 왕께 귀의하여 구원을 요청합니다” 라고 하였다. 태왕은 은혜롭고 자애로워 신라왕의 충성을 갸륵히 여겨, 신라 사신을 보내면서 (고구려측의) 계책을 (알려주어) 돌아가서 고하게 하였다. 10년(400년) 경자(庚子)에 왕이 보병과 기병 도합 5만 명을 보내어 신라를 구원하게 하였다. (고구려군이) 남거성을 거쳐 신라(新羅城: 國都)에 이르니, 그곳에 왜인이 가득하였다. 관군이 막 도착하니 왜적이 퇴각하였다. (고구려군이) 그 뒤를 급히 추격하여 임나가라(任那加羅)의 종발성에 이르니 성이 곧 항복하였다. 안라인 수병(安羅人守兵)...신라성 ㅁ성...하였고, 왜구가 크게 무너졌다. (이하 77자 중 거의 대부분이 알 수 없음)
광개토대왕릉비
번역문 3면
ㅁㅁㅁㅁ안라인수병(安羅人戍兵). 옛적에는 신라 매금(寐錦)이 몸소 고구려에 와서 보고를 하며 청명(廳命)을 한 일이 없었는데, 국강상광개토경호태왕대(國岡上廣開土境好太王代)에 이르러 (이번의 원정으로 신라를 도와 왜구를 격퇴하니) 신라 매금이 ...하여 (스스로 와서) 조공(朝貢)하였다. 14년 (404년) 삽진(甲辰)에 왜(倭)가 법도를 지키지 않고 대방(帶方) 지역에 침입하였다. ...석성(石城) (을 공격하고) ..., 연선(連船: 水軍을 동원하였다는 뜻인 듯) ... (이에 왕이 군대를 끌고) 평양을 거쳐 (... 로 나아가) 서로 맞부딪치게 되었다. 왕의 군대가 적의 길을 끊고 막아 좌우로 공격하니, 왜구가 궤멸하였다. (왜구를) 참살한 것이 무수히 많았다. 17년(407년) 정미(丁未)에 왕의 명령으로 보군과 마군을 합쳐 도합 5만명을 퍄견하여 ... 합전(合戰)하여 모조리 살상하여 분쇄하였다. 노획한 (적병의) 갑옷이 만여 벌이며, 그 밖에 군수물자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또 사구성․ 루성․ ㅁ주성․ ㅁ성, ㅁㅁㅁㅁㅁㅁ성을 파하였다. 20년(410년) 경술(庚戌) 동부여는 옛적에 추모왕의 속민(屬民)이었는데, 중간에 배반하여 (고구려에) 조공을 하지 않게 되었다. 왕이 친히 군대를 끌고 가 토벌하였다. 고구려군이 여성(餘城: 동부여의 왕성)에 도달하자, 동부영의 온 나라가 놀라 두려워하여 (투항하였다). 왕의 은덕이 동부여의 모든 곳에 두루 미치게 되었다. 이에 개선을 하였다. 이 때에 왕의 교화를 사모하여 개선군을 따라 함께 온 자는 미구루압로, 비사마압로, 타사루압로, 숙사사압로․ ㅁㅁㅁ압로이였다. 무릇 공파한 성이 64개, 촌이 1,400이었다. (왕릉을 지키는) 수묘인 연호(烟戶) (의 그 출신지와 호수는 다음과 같이 한다.) 매구여(賣勾余) 민은 국연(國烟)이 2가, 간연(看烟)이 3가(家), 동해고(東海賈)는 국연이 3가 간연이 5가., 돈성(敦城)의 민은 4가가 다 간연. 우성(于城)의 1가는 간연으로, 비리성(碑利城)의 2가는 국연, 평양성(平穰城) 민은 국연 1가, 간연 10가. 자련의 2가는 간연. 배루인은 국연 1가, 간연 43가. 양곡 2가는 간연. 양성 2가는 간연. 안부련(安夫連)의 22가는 간연. 개곡(改谷)의 3가는 간연. 신성(新城)의 3가는 간연. 남소성(南蘇城)의 1가는 국연. 새로 약취해 온 한(韓)과 예(穢) (의 연호는 다음과 같다.) 사수성(沙水城)은 1가는 국연, 간연 1가. 모루성(牟婁城)의 2가는 간연. 두비압잠(豆比鴨岑) 한(韓)의 5가는 간연. 구모객두(勾牟客頭)의 2가는 간연. 구저한(求底韓)의 1가는 간연. 사조성(舍조城)의 한예(韓穢)는 국연 3가, 간연 21가. 고모야라성(古模耶羅城)의 1가는 간연. 견고성(莫古城)은 국연 1가 간연 3가. 객현한(客賢韓)의 1가는간연. 아단성(阿旦城)과 잡진성(雜珍城)은 합하여 10가가 간연. 파노성(巴奴城)의 한(韓)은 9가가 간연. 구모로성(臼模盧城)의 4가는 간연. 각모로성(各模盧城)의 2가는 간연. 모수성(牟水城)의 3가는 간연. 간저리성(幹저利城)은 국연 1가, 간연 3가. 미추성(彌鄒城)은 국연 1가. 간연이 7가.
광개토대왕릉비
번역문 4면
야리성(也利城)은 3가가 간연., 두노성(豆奴城)은 국연이 1가, 간연이 2가. 오리성(奧利城) 국연이 1가, 간연이 8가., 수추성(模鄒城)은 국연이 2가 간연이 5가. 백잔남거한(百殘南居韓)은 국연이 1가, 간연이 5가., 태산한성(太山韓城)의 6가는 간연. 농매성(農賣城)은 국연이 1가, 간연이 7가, 윤노성(閏奴城)은 국연이 2가, 간연이 22가. 고모루성(古牟婁城)은 국연이 2가, 간연이 8가. 전성(전城)은 국연이 1가 간연이 8가. 미성(味城)은 6가가 간연. 취자성(就咨城)은 5가가 간연. 삼양성(三穰城)은 24가가 간연. 산나(散那城)은 1가가 국연, 나단성(那旦城)은 1가가 간연, 구모성(勾牟城)은 1가가 간연. 어리성(於利城)의 8가는 간연. 비리성(比利城)의 3가는 간연. 세성(細城)의 3가는 간연. 국강상광개토경호태왕이 살아계실 때 교(敎)를 내려 말하기를, '선조 왕들이 다만 원근에 사는 에 사는 구민(舊民)들만 데려다가 무덤을 지키며 소제를 맞게 하였는데, 나는 구민(舊民)들이 점점 몰ㅇ락하게 될 것이 염려된다. 만일 내가 죽은 뒤 나의 무덤을 편안히 수묘하는 일에는, 내가 모소 다니며 약취해 온 한인(韓人) 예인(穢人) 들만을 데려다가 무덤을 수호.소제하게 하라'고 하였다. 왕의 말씀이 이와 같았으므로 그에 따라 한(韓)과 예(穢)의 220가를 데려다가 수묘케 하였다. 그런데 그들 한인과 예인들이 수묘의 예법을 잘 모를 것이 염려되어, 다시 구민 110가를 더 데려왔다. 신.구 수묘호를 합쳐, 국연이 30가이고 간연이 300가로서, 도합 330가이다. 선조 왕들 이래로 능묘에 석비(石碑)를 세우지 않았기 때문에 수묘인 연호들이 섞갈리게 되었다. 오직 국강상광개토경호태왕께서 선조 왕들을 위해 묘상(墓上)에 비를 세우고 그 연호를 새겨 기록하여 착오가 없게 하라고 명하였다. 또한 왕께서 규정을 제정하시어, '수묘인을 이제부터 다시 서로 팔아넘기지 못하며, 비록 부유한 자가 있을 지라도 또한 함부로 사들이지 못할 것이니, 만약 이 법령을 위반하는 자가 잇으면, 판 자는 형벌을 받을 것이고, 산 자는 자신이 수묘하도록 하라'고 하였다.
고구려전성기의 강역
고구려는 주몽이 이끈 부여족의 한 갈래가 기원전 37년에 압록강 유역을 중심으로 세운 고대 국가로 668년에 멸망하였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확보한 나라로 광계토왕, 장수왕, 문자명왕 때 전성기를 맞이하여 동북아시아 최강국으로 자리매김하였다. 고구려의 제19대 왕인 광개토대왕(374~413, 재위 391~413)은 대외적인 정복 활동을 강력하게 추진하였다. '영락(永樂)' 이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해 중국과 대등한 입장을 과시 하기도 하였다. 장수왕(394~491, 재위 413~491)은 427년에 압록강변의 국내성에서 대동강변의 평양성으로 수도를 옮기고 남진정책을 추진하였다. 장수왕의 활약으로 서쪽으로는 요하(遼河), 북쪽으로는 개원(開原), 동쪽으로는 북간도 혼춘(琿春, 남쪽으로는 아산만에서 죽령에 이르는 넓은 영토를 차지하게 되었다.
한국평화의 종
한반도에 진정한 자유와 평화가 깃들기를 염원하는 뜻으로 2013년 정전 60주년에 '한국평화의 종 기념비'를' 세웠다. 설계자는 디자이너 아놀드 슈왈츠만( Sir Arnold Schwartzman) 경이다.
분수대 원형에 세겨진 얼굴상은 전쟁기념관을 방문한 관람객들을 촬여하여 조각한 작품임.
- 작가 김한철. 2003년 3월.
귀요미들....
USAF ..B-52D 폭격기(스트라토포트레스)
B-52D 폭격기(스트라토포트레스):
미국 보잉사가 핵폭객기로 개발해 1955년 배치된 장거리 아음속(음속 이하) 제트 전략 폭격기이다. 이후 기체를 개조해 108발의 재래식 폭탄을 탑재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융단 폭격이 가능해 졌다. 특히 베트남 전쟁 당시 라인베이커2 작전에서 1만 5천여톤의 폭탄을 투여하였고, 후방의 50구경 4연장 기관총으로 MIG-21 2대를 격추시키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하였다. B-52는 A~H형(8종)으로 구분되며, 총 744대가 생산되었다. A~F형은 2013년까지 모두 퇴역했지만, H형은 1961년 부터 생산된 102대중 70여대가 여전히 운용되고 있다.
- 길이X폭X높이: 47.7mX56.4mX14.7m
- 중량: 83,250kg
- 최대속도: 1.027km/h, 순항속도: 847km/h,
- 항속거리: 6,120km, 상승한도: 14,082m
B-52 조종실
T-103훈련기
천안함 357호
제2연평해전 총탄의 흔적
전쟁기념관 동영상
M4BA2C 패튼전차
M48A5KW 패튼전차
M4A3E8 셔먼 전차
C-46 수송기(코만도)
C-118G 수송기(플라잉 박스카)
AN-2 수송기(콜트)
C-123J 수송기(프로바이더)
F-86D 요격기 (세이버 독)
F-5A 전투기(프리덤 파이터)
F-4C 전폭기(팬텀 2)
S-2 트래커 해상 초계기
L/60K 40mm 2연장 함포
MGM-52 미사일(렌스)
황룡 로켓
현무-1 미사일
MIM-14 미사일(나이키 허큘리스)
한국형 수직발사장치 (KVLS), 홍상어대잠미사일
MIM-23 미사일(호크)
M125A1 박격포 장갑차
LVTP-7 상륙장갑차
KM900 차륜형 장갑차
M113A1 장갑차
M577 지휘용 장갑차
M110 8인치 자주곡사포
T66 4.5인치 다연장로켓 발사기
M50 스콜피온 자주포
M107 175mm 자주평사포
XK9 한국형 자주포 시제품
M167 벌컨 대공포
59식 전차
K1 한국형 전차 시제품
63식 수륙양용 경전차
'카테고리 구릅 > 일상들 ( life )' 카테고리의 다른 글
③ 용산 삼각지 대구탕골목 - ( 2024.01.27 ) (0) | 2024.01.30 |
---|---|
② 용산 전쟁기념관, 삼각지 대구탕골목 - ( 2024.01.27 ) (0) | 2024.01.29 |
팔당 한강변- ( 2024.01.22 ) (0) | 2024.01.22 |
경인운하, 서해5도수산물복합센터 동백수산 - ( 2024.01.13 ) (0) | 2024.01.13 |
올림픽공원- ( 2024.01.12 ) (0) | 2024.0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