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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구릅/나의 산행

인왕산(338.2m), 윤동주문학관- ( 2024.02.04 )

by the road of Wind. 2024. 2. 6.

인왕산 (338.2m), 윤동주문학관

- ( 2024.02.04 )

 

서울 도심의 인왕산을 등산해 보았습니다. 인왕산은 리틀 북한산입니다. 서울 한양도성 길을 따라 인왕산 정상까지 가는 길은 주변의 경치가 너무 수려합니다. 서울 도심은 물론, 북한산, 안산, 북악산, 남산 등 360도 파노라마를 감상하는 듯 합니다. 그리고, 하산은 창의문(자하문) 고개, 윤동주 문학관 방향으로 내려갔습니다. 하산 길도 주변의 경치가 너무 아름답습니다. 높지 않은 산이지만 암봉으로 이루어져 있어 산행의 묘미도 그지 없습니다.      

 

인왕산은 아시다시피 서울의 내사산(內四山)  하나입니다. 서울의 내사산이란 동서남북으로 낙산(洛山), 인왕산仁王山), 남산(南山),북악산(北岳山)을 말합니다. 서울도성(성곽)은 이 내사산을 연결하여 축성되었습니다. 오늘 산행길은 인왕산을 따라 흐르는 서울 한양도성 성곽 길을 따라 산행하여 보았습니다. 

 

 인왕산(338.2m): 서울 서대문에 위치한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산이다. 풍수지리적 측면에서 보면 조산(祖山) 북한산 주산(主山) 인왕산이 서로 연결되며 좌청룡 낙산, 우청룡 인왕산의 형국을 이룬다고 한다. 옛날엔 이 산에 호랑이가  많이 살았다 한다. 태조 5년에는 경복궁 내전까지 들이닥쳤다고 하며, 연산군 11년엔 종묘에까지 나타나 피해를 주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인왕산은 북한산의 축소판같다. 인왕산의 바위가 그렇고, 특히 인왕산의 소나무들은 보통의 자태가 아니다. 또한 인왕산의 기묘한 형태의 암석, 암벽이 이색적이며, 어떤 암석은 샤마니즘적 무속적인 냄새를 풍기도 하다. 인왕산 곳곳에는 선바위, 해골바위, 범바위, 치마바위, 기차바위, 모자바위, 매바위, 여인바위, 코끼리바위 등 특이한 바위들이 많다. 특히 인왕산 국사당 부근에는 일명 자식없는 여인들이 자식을 기원하는 치성을 하는 기자암(祈子岩)로도 불리는 선바위라는 유명한 바위도 있고 무속인들의 기도처이기도 하다. 원래 태조 이성계를 모신 국사당은 남산에 있었으나 일제(日帝)가 남산에 신사를 세우면서 인왕산 선바위 아래에다가 옮겨놓은 것이다. 선바위는 그밖에 정도전 무학대사의 논쟁의 중심에 서기도 한 일화로도 유명하다. 조선왕조 태조 이성계가 한양을 수도로 정하고 성곽을 쌓을 때 선바위를 성곽 안에 두느냐, 밖에 두느냐 하는 것으로 논쟁을 벌였는데, 성곽 안에 두면 불교가 융창하고, 성 밖에 두면 유교가 융창하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 선바위는 성곽 밖에 있다. 해골바위 같은 기묘하게 생긴 바위는 보는 것만 해도 어떤 이상하고 기묘한 느낌을 받는다. 아무튼 우백호 인왕산은 특이한 산임에 틀림없다

 

서울 성곽의 4대문은 동.서,남.북 방향에 하나씩 두었으며, 4대문 사이 사이에 4소문을 두어 비상시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유교를 중시한 태조는 (仁).의(義).예(禮).지(智)4대 덕목4대문 이름에 하나씩 담았다. 흥인지문(興仁之門): 인(仁) / 돈의문(敦義門): 의(義) / 숭례문(崇禮門): 예(禮) / 숙정문: 지(智) 의 뜻이 각각 들어 있다.그리고, 4대문의 한가운데에는 <보신각(普信閣): 신(信)>을 세워 유교의 마지막 덕목인 신(信)의 상징으로 삼았다. 즉, 출입할 때 문 이름을 보거나 종소리를 들으며 사람이 늘 지켜야 할 다섯 가지 도리 (오상.五常)를 새기도록 한 것이다.

 한양도성:

 

1. 길이: 18.627 km.

2. 연결: 내사산內四山): 백악산 (북악산) (342.5m) -인왕산 (339.8m) - 목멱산(남산) (270.8m) - 낙타산(낙산)(125m) 

3. 축성년도: 1396년 (태조4년), 

4. 축성기간: 98일, 

5. 동원인력: 118,000명 (1,2월 농한기), 79,400명 (8,9월 농한기).  < 전국적 동원 >.

 

  내사산(內四山): : 백악산(북악산, 342m) / : 낙타산(낙산, 125m) / : 목멱산(남산, 262m)) / ; 인왕산(338.2m)

  외사산(外四山): : 삼각산(북한산)(835.5m)/ : 용마산 (348.5m)/ : 관악산 (632.2m)/ ; 덕양산 (124.6m)

  사대문(四大門): : 숙정문(북대문) / 서: 돈의문(서대문-멸실) / : 숭례문(남대문) / : 흥인지문(동대문).

  사소문(四小門): 북서; 창의문(자하문, 북소문)/ 남서: 소의문(서소문-멸실)/ 북동: 혜화문(동소문)/ 남동: 광희문(남소문). 

 

 인왕산 산행 코스:

 

1코스 : 사직터널- 서울도성 길 - 정상

2코스 : 사직공원 입구- 약수터- 정상

3코스 : 독립문역- 인왕사 일주문- 국사당- 선바위-  능선길- 범바위-  정상

4코스 상명여대앞 홍지문 - 기차바위- 정상

5코스 : 사직공원- 북악스카이웨이- 국사당- 달팽이바위- 인왕산약수- 해골바위- 정상

6코스 : 홍제역- 현대아파트- 능선길- 기차바위- 정상

 

 

▶ 산   책 : 걸음수 8,333 steps, 거리 5,74 km, 소모열량 325.3 kcal, 소요시간 01:34 hrs, 속도 3.6 km/h, 기온 11℃. 
▶ 코   스 : 광화문역 - 사직동교회 - 양의문 교회 - 인왕산 입구 - 서울한양도성 길 -  인왕산 정상 -  서울한양도성 길 - 윤동주문학관. 

 

 

▶ 인왕산 들머리 가는 길:

 

세종문화회관

 

5호선 광화문역 8번 출구 앞

 

인왕산 들머리 가는 길

 

스페이스 본 아파트, 경희궁의 아침 아파트 

 

축구회관

 

사직교회 가는 길

 

사직교회

 

언덕 너머에 경희궁이 있다.  이곳은 재개발을 기다리고 있다. 아주 오래된 일이지만 아직도 옛 모습이다. 입지는 최고라고 말할 수 잇을 것이다. 재개발 추진도 인플레이션에 따른 공사비 상승 등 경제여건이 어려워 상당히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이 건물은 보경사란 조그만 사찰이다. 

보경사라는 말만 들어도 경북 포항시 북구 송라면 소재 보경사가 생각난다. 이 사찰은 향로봉(932.4m) 아래 내연폭포 등 주변 경치가 수려하기로 소문나 있다. 언젠가 내가 지방에서 공부할 때 한번 가본 일이 있다. 그 당시 나는 내 인생에서 어떤 것도 이루어지 않고 앞날이 불투명하여 괴롭고 힘든 시절이었다. 아주 오래된 일이다.  

 

양의문 교회

 

서울 한양도성 순성길

-> 1.6km 인왕산 정상, <- 900m 돈의문 터

 

서울 도성 성곽...오른쪽 성곽 외곽을 따라 인왕산 들머리 가는 길

↖ 예수교 대한성결교회 총회본부

 

서울 도성길 진입 전 편의점

 

종로문화체육센터

 

<- 700m 서대문독립공원
↗ 1000m 인왕산 도시자연공원, 750m 선바위, 1.5km 무악재하늘다리, ↙250m 종로문화체육센터

 

 

 

서울한양도성

시대: 1396년(태조 5)

한양도성은 조선왕조 도읍지인 한성부의 경계를 표시하고 왕조의 권위를 드러내며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조된 성이다. 1396년(태조5)백악(북악산).낙타(낙산).목멱(남산).인왕내사산(內四山) 능선을 따라 쌓은 이후 여러 차례 고쳤다. 평군 높이 약 5~8m, 전체 길이 약 18.6km에 이르며, 현존하는 전세계 도성 중 가장 오래도록 (1396~1910, 514년) 그 역할을 했던 건축물이다. 
한양도성의 성벽에는 낡거나 부서진 것을 고친 역사가 남아 있으며, 성벽 돌에 새겨진 글자들과 시기별로 다른 돌의 모양을 통해 축성 시기와 축성 기술의 발달 과정을 알 수 있다. 한양도성에는 사대문(흥인지문. 돈의문. 숭례문. 숙겅문)과 사소문(혜화문. 쇠의문. 광희문. 창의문)을 두었는데, 이 중 돈의문과 소의문은 없어졌다. 현재까지 한양도성 전체 구간이 정비되어 옛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다.         

 

 

인왕산  안내도

 

올라온 길을 뒤돌아보다.

 

가파른 계단

 

오른 쪽 봉우리가 인왕산이다.

 

인왕산 성곽 초소 이야기:

1968년 북한의 무장공비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한 '1.21사태' 이후, 청와대 경비를 목적으로 1970년 부터 2006년 까지 북악산(백악산)과 인왕산 등에 30개소 이상의 경계 시설물(경계초소, 소초 등)을 설치하였다.  인왕산은 '1.21사태' 이후청와대 경비를 위해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었으나 1993년 '김영삼 정부' 출범 후 인왕산 탐방로가 제한적으로 개방 되었고, 2002년 '노무현 정부' 출범 후 성벽 주변의 철조망 등을 철거하면서 개방의 폭을 넓혀 갔다. 2018년 부터 "인왕산을 시민의 품으로 환원" 하겠다는 취지로 인왕산 전구간에 대한 경계시설물(경계초소, 고가초소, 철조망, 실내사격연습장 등)을 대대적으로 정비하였다. 항양도성 성벽에 설치한 경계초소 20개소 중 17개소를 철거하고 성벽  복원 공사를 시작하여 2019년 10월에 공사를 완료하였으며,  3개소(52T, 63-IT, 64-2T)는 훼철과 복원의 역사를 보여주는 스토리텔링을 위해 남겨두었다.   

 

인왕산 선바위 방향

 

북악산 방향

 

-> 인왕산 선바위, 국사당, 인왕사 등 으로 하산 하는 길

 

인왕산 동영상

 

 

위치 안내판:  인왕산 120-인왕산-08

 

경복궁 방향

 

마치 북한산 정상, 만경대 가는 암벽 길 같다.

 

현위치 A5, 산악사고 119

↑ 인왕산 정상 0.45km, ↓ 인왕산 길 0.63km

 

인왕산 동영상

 

 

 

안산(295.9m), 그리고 무악재 방향의 홍제동

 

인왕산(338.2m) 정상을 향하는 서울도성이 아름답다.

 

인왕산 약수터 갈림길:
< 0.4km 인왕산 정상, < 1.9km 창의(자하)문, 사직공원 1.5km >, 무악재하늘다리(안산) 1.1km >, 인왕천약수터 0.2km >

 

철계단

 

남산(262m)  &  N서울타워(236.7m) 방향

 

인왕산 등산객이 꽤 많다.

 

옥개석:


이 돌은 한양도성의 일부로 성곽의 최상단에 놓이는 옥개석이다. 옥개석은 여장 위에 올려진 지붕돌로, 빗물이 채성으로 흘러드는 것을 방지하고 유사시 지붕돌을 밀어 성 위로 올라오는 적병을 떨어뜨리는 역할을 했다.

 

 

인왕산 정상 동영상

 

인왕산 정상 338.2m

-> 2.5km 돈의문 터, <- 1.8km 창의문

 

인왕산 정상 동영상

 

인왕산 정상석....위에 삼각점

 

멀리 북한산 향로봉, 문수봉

바로 앞의 기차바위, 청운동으로 내려가는 서울도성, 북악산

 

북악산 방향

 

경도 126도 57' 25" 2000, 위도 37도 34' 55" 6994
                 종로구 경계점
<- 서대문구                  종로구 ->

서울특별시 종로구 옥인동 산3-39번지

 

멀리 북한산 영봉들...

왼쪽 부터 족두리봉, 향로봉, 뾰족한 비봉, 긴 능선 우중간 문수봉, 뒤편의 뾰족한 인수봉, 그 완쪽 북한산 정상백운대( 836.5m) 오른쪽 고개 보국문, 그리고 칼바위.... 

 

 

인왕산 정상 동영상

 

 

 

● 하산 길:

 

청운동 창의문, 윤동주문학관 가는 하산 길 계단

 

암벽 얼음...

 

 

↙1.6km 무악재하늘다리(안산), <- 260m 기차바위, ↗ 창의문(자하문) 1.4km

 

현위치 A2
↓ 인왕산 정상 0.2km, ↑ 자하문 1.45km

 

인왕산 하산길 동영상

 

기차바위 그리고 멀리 국립공원 북한산(727m)이 아름답다.

 

기차바위, 홍제동 가는 길 계단...

 

홍제동 방향

 

 

 

인왕산 하산길 동영상

 

한양도성 부부소나무

 

뿌리가 다른 나무의 가지가 서로 이어져 마치 한 나무처럼 자라는 현상을 "연리지(連理枝)"라고 합니다. 한 나무가 죽어도 다른 마무에서 영양을 공급하여 살아나도록 도와주는 연리지는 예로부터 귀하고 상서로운 것으로 여겼습니다. 연리는 두 몸이 한 몸이 된다하여 부부의 영원한 사랑을 비유합니다. 

 

한양도성 병품 삼아

인왕산 순성길에 푸른 옷 입고 한 몸 된 연리지

깊고 깊은 사랑은 아름답습니다

 

위치 안내판 120-인왕산-14

 

인왕산 등산로:

인왕산은 정상의 높이가 338.2m인 서울 시내의 산으로 우측으로 경복궁과 시내 중심가가 한눈에 보이는 암산이다. 1993년에 개방되어 많은 등산객이 찾는 멋진 바위산이다. 주변에 약수터도 많고 기차바위, 치마바위, 매바위, 이슬바위, 모자바위, 선바위 등 기이한 모습의 바위들이 즐비하다.

 

 

 

 

 

인왕산 하산길 동영상

 

 

<- 500m 윤동주문학관, <- 450m 청운도서관, -> 950m 한양도성(인왕산정상), ↘ 50m 청운공원,

90m 인왕산자락길 950

 

序詩亭 서시정

 

서시 (序詩)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1941. 11. 20  尹東柱 (윤동주)

♣ 시인 윤동주 (1917-1945): 중국 길림성 회룡면 명동촌 출생. 연희전문대 졸업. 일본 릿코대학 문학부 입학. 그러나 피어보지 못한 꽃 같은 젊은 시인은 해방을 불과 6개월 앞두고 후쿠오까 형무소에서 28의 젊은 나이에 옥사하였다.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의 詩>.

 

청운문학도서관:

운영시간: 화-금 10:00-21:00, 토-일: 10:00- 19:00

휴관일: 매주 월요일. 1월1일, 설연휴,추석연휴

 

<- 윤동주문학관,  수성동계곡 ->

 

청운벽산빌리지

 

앗, 윤동주문학관

 

윤동주문학관 관람안내:

- 관람시간: 10:00 ~ 18:00 (입장마감: 17:30)
- 정기휴관: 매주 월요일, 1월1일, 설날, 추석당일.
- 예약문의: 02-2148-4175 (단체관람시 예약 바람)


- 버스: 자하문 고개, 윤동주 문학관 정류소 ( 지선 1020, 7022, 7212 번 버스 ).
-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 경복궁역 버스정류장 또는 5호선 광화문역 2번 출구 KT광화문지사 버스정류장 이용.
- 주소 : 서울시 종로구 창의문로 119 (청운동) , 02-2149-4175 ( http://www.jfac.or.kr )

 

윤동주문학관:

종로, 청운 수도가압장, 그리고 시인 윤동주:

시인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 문과 재학시절, 종로구 누상동에 있는 소설가 김송(金松, 1909-1988)의 집에서 문우 정병욱과 함께 하숙 생활을 했다. 당시 시인은 종종 이곳 인왕산에 올라 시정(詩情)을 다듬곤 하였다. <별을 헤는 밤>, <자화상>, 그리고 <또 다른 고향>....지금까지도 사랑받는 그의 대표작들을 이 시기에 썼다. 그런 인연으로 종로구는 2012년, 인왕산 자락에 버려져 있던 청운수도가압장과 물탱크를 개조해 윤동주 문학관을 만들었다. '가압장은 느려지는 물줄기를 다시 힘차게 흐르도록 도와주는 곳이다. 세상사에 지쳐 타협하면서 비겁해지는 우리 영혼에 윤동주의 시는 아름다운 자극을 준다. 그리하여 영혼의 물길을 정비해 새롭게 흐르도록 만든다. 윤동주문학관은 우리 영혼의 가압장이다.  - < 종로문화재단 >

 

 

 

전시실은 제1 전시실, 제2 전시실, 제3 전시실 세 곳으로 나뉘어져 있다. 젊은 윤동주 시인이 수감되었던 후쿠오카의 형무소를 재현한 듯한 음침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 제1전시실 (시인채)     : 시인의 유품을 통해 이야기를 담아 전시 (친필 원고, 생애 사진, 서명 등 영인본 총 133점)
- 제2전시실 (열린 우물) : 물탱크의 윗부분을 개방하여 중정(中庭) 조성 (물의 흔적, 하늘과 바람과 별... 감상)
- 제3전시실 (닫힌 우물) : 물탱크를 원형 그대로 보존하여 윤동주 시인의 일생과 시 세계를 담은 동영상 상영


시인채(제1전시실)....우물목판 원본

 

自畵像자화상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우물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 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追憶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一九三九. 九 

 

윤동주시인 사진

 

시인 윤동주:


1917-  12월 30일 중국 길림성 회룡면 명동촌 출생.

1925-  명동소학교 입학

1936-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대한 항의표시로 숭실중하교를 자퇴 용정 광명학교 중학부 4학년 편입.

1938-  법대, 의대를 원하는 부친과의 대립 끝에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 송몽규, 강처중고 함께 연히전문 기숙사 생활 시작.

1940-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한 정병욱과 교류함.

1941-  정병욱과 함께 종로구 누상동 소설가 김송의 집에서 하숙을 시작. 연희전문학교 졸업 기념으로 19편의 시를 묶어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란 제목으로 시집을 내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함.

1942-  부친의 권유로 일본 유학을 결심하고 히라누마(平沼)로 창씨. 고국에서 마지막 작품 <참회록>을 씀. 4월 릿코대학 문학부 영문학과에 입학.

1943-  여름방학중인 7월 10일 송몽규가 교토 시가모 경찰서에 독립운동 혐의로 검거. 나흘 후 귀향길에 오르려 차표를 사놓고 짐까지 부쳐놓은 윤동주도 같은 혐의로 검거.

1944-  윤동주와 송몽규는 교토지방재판소에서 치안유지법 제 5조 위반(독립운동)죄로 징역 2년을 언도 받고 후쿠오까 형무소로 이송.

1945-  2월 16일 오전 3시 36분, 후쿠오까 형무소에서 옥사. 북간도 용정동산의 중앙교회 묘지에 윤동주 유해 안장. 3월 7일 후쿠오까형무소에서 송몽규 옥사.

1948-  유고 31편을 모아 <하늘과 바람과 별의 詩> 란 제목으로 정음사에서 시집 출간.

 

 

윤동주가 머물렀던 곳:

 

1917-1936 명동촌 -> 1935 평양 -> 명동촌 -> 1938 서울 -> 1942 동경 -> 1942 쿄토 -> 1944 후쿠오카 

-> (유해이동-> 명동촌.  

 

<< 제2전시실

 

제2전시실 '열린 우물'

 

물탱크의 지붕을 개방하여 만들어진 '열린 우물'에는 아무런 전시물이 없지만 윤동주의 

시에서 자주 등장하는 자연을 몸소 느낄 수 있는 공간입니다. 이곳에 서서 고개를 들면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이 보입니다. 열린우물 안에는 봄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고, 억새가 

자라며, 눈이 쌓이기도 합니다. 날씨와 계절, 그리고 여러분의 마음 가짐에 따라 달라지는 

이 특별한 공간 '열린 우물'에서 윤동주 시인의 저정적인 시상을 함께 떠올려 보세요.

 .  

 

제3전시실 '닫힌 우물'

 

이곳은 물탱크의 원형 그대로를 보존하여 조성된 닫힌 우물입니다. 천장에 있는 작은 

창에서 한 줄기 빛이 들어오는 모습과 소리의 울림은 이 공간을 더욱 신성하게 만듭니다.

물때가 그대로 남겨진 거친 벽면, 두써운 철문, 그리고 열린우물을 거쳐 오는 반듯한 길.

이 길이 모두 윤동주 시인의 생을 마감한 후쿠오카 형무소를 연상케 합니다. '닫힌 우물'

에서 시인의 외로웠던 삶에 잠시나마 가까워지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닫힌 우물에서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오늘은 청명 하늘이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들는 앞날의 아름다운

푸른 광명을 볼 수 있다.

 

" 하지만 소년 윤동주가 가장 좋아한 것은...문학 "

 

닫힌 우물(제3전시실) 영상물...

" 그가 수감된 곳은 후쿠로카 형무소, 일본에서 한반도에 가장 가까운 형무소였다. "

 

" 그곳에서 19개월간 

윤종주는 가혹한 노동에 시달린다 "

 

" 동주랑 나는 매일 주사를 강제로 맞고 잇어요. 

무슨 약물인지 알 수 없는 주사입니다. "  - 송몽규 (함께 수감되었던 사촌, 훗날 옥사) - 

 

1945년 2월 16일 새벽 3시 36분

윤동주, 외마디 긴 비명을 남기고 절명

 

그 해 8월 15일,

조국은 광복을 맞이했다.

 

 

새로운 길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문들레가 되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一九三九. 五. 一.

 

 

- 2012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국무총리상 (서울 종로구 윤동주문학관) , 국토해양부. 

- 2013 한국 최고의 현대건축 20선 선정, 한국의 건축전문가 100인 참여 (서울 종로구 윤동주문학관), 동아일보.

- 2014 서울 특별시 건축대상 (서울 종로구 윤동주문학관) , 서울특별시.

- 2015 대서울 아름다운 건물찾기 공모전, 시민이 뽑은 아름다운 건물(서울 종로구 윤동주문학관) , 서울특별시.

 

자하문고개.윤동주문학관 버스 정류장  &  도로 건너 창의문.

(지선 1020, 7022, 7212 번 버스)

 

- 1020번: < 정릉 - 자하문고개.윤동주문학관 - 경복궁역 - 종로1가 - kt 광화문지사(회차)>, 배차간격: 9분.
- 7022번: < 구산동 - 역촌역 - 불광역- 자하문고개.윤동주문학관- 경복궁역 - 서울역버스환승센터(회차)>, 배차간격: 11분.
- 7212번: < 은평차고지 - 수색역 - 응암역 - 역촌역 - 불광역- 자하문고개.윤동주문학관 - 경복궁역 - 종로1,2,3,4,5,6가 - 약수역 - 신당역 - 청구역 -  신금호역 - 극동그린아파트(회차)>, 배차간격 12분.

 

 

정종수 경사 순직비 &  최규식 경무관 동상

 

우리들의 영웅  당신을 기억합니다. 

대한민국은 가장 빛나던 그날의 희생을 기억합니다. 

 

1.21 사태:


1968년 1월 21일, 북한 민족보위성 정찰국 소속의 무장공비들이 정와대를 습격하여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할 목적으로 서울에 침투한 사건이다.

  북한 무장공비 이동경로:


고랑포 (1월17일 출정) - 임진강 - 파평산 - 삼봉산 (1월19일 나뭇꾼 향제들과 조우) - 노고산 - 비봉 - 자하문 고개 .   

  신고와 수색, 점점 가까워지는 적들:

1968년 1월 19일 오후 2시경파주군 법원리 초리골의 야산에서 무장공비 31명과 마주친 나무꾼 형제가 경찰서에 처음 신고하였다. 정부는 즉각적인 경계 태세를 갖추고 수색에 돌입하였지만 무장공비들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노고산, 북한산 비봉을 거쳐 청와대 뒤편에 있는 북악산까지 내려왔다. 

  이곳만은 절대로 통과할 수 없다:

1월 21일 밤 9시 40분경자하문까지 내려온 무장공비들은 이곳에 설치된 검문소에서 정종수 경사 등 종로경찰서 경찰관 9명에게 검문을 받았다. 무장 공비들이 "우리는 방첩부대원/ 시아이시(CIC)대원이다. 특수훈련을 마치고 복귀 중이니 방해하지 말고 비켜라." 하며 검문소를 막무가내로 통과하려 하자 수상함을 느낀 정종수 경사는 이들을 막아섰다. 

  청와대를 사수하라!

최규식 서장은 무전 보고를 받자마자 기동 타격대와 함께 현장으로 달려가 무장 공비들을 가로막았다. 최규식 서장과 정종수 경사가 무장공비와 탱탱하게 대치하던 중, 1813버스가 자하문 고갯길로 올라왔다. 무장공비들이 이를 국군 지원 병력이 오는 것으로 오인하여 버스를 향해 수류탄을 던지고 총기를 난사하며 산으로 흩어져 도망쳤다. 무장공비가 썬 총에 맞은 최규식 서장은 "청와대를 사수하라!" 라는 마지막 명령을 남긴 채 그자리에서 순직하였다. 공비대열을 막고있던 정종수 경사도 총상을 입고 치료 받던 중에 숨을 거뒀다. 

  그날 밤의 치열한 사투가 남긴 것:

산으로 도망친 무장공비 31명을 소탕하는 작전을 대대적으로 벌여 31명 무장공비 중 30명이 사살되거나 생포되었다. 우리도 1.21사태로 민간인 7명이 사망하고 군 장병 75명이 사망하거나 다치는 피해를 입었다. 1.21사태를 계기로 정부는 주민등록제도를 도입하였고, 고등학교 정식 과목으로 교련을 채택하였다. 그리고 향토예비군과 육군3사관학교를 창설하였으며, 전시 비상사태에 대비하기 위한 을지연습을 실시하는 등 국가안보체계를 굳건히 다졌다. 

  경찰 영웅은 우리 가슴 속에

최규식 서장과 정종수 경사가 무장공비들의 습격을 막아낸 장소는 청와대로 부터 직선거리로 불과 약 300M 떨어진 곳이었다. 이들이 무장공비를 막지 못했다면 '제2의 한국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최규식, 정종수 두 경찰관의 사명감과 헌신의 초석 위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서 있는 것이다. 국가 수호의 상징과도 같은 경찰 영웅들이 우리 가슴 속에 영원히 기억되길 바란다.   
     
 


최규식 경무관, 정종수 경사:

최규식 경무관은 1931년 9월 9일 강원도 춘천에서 출생, 1961년 경찰에 투신하여 1967년 10월부터 종로경찰서장으로 재직하였다. 서장 재직중이던 1968년 1월 21일 북한 무장공비 김신조등 31명청와대를 기습 공격하기 위해 파주지역에서 남하 중이란 첩보를 접수하고, 이를 막기 위해 경찰관들을 현장에 배치하고 지휘하였다. 무장 공비 일행이 청와대 바로 옆 (현재 청운실버센터 앞) 에 이르렀을 때 최규식 서장이 그들을 검문하며 막아섰고, 검문을 통과할 수 없었던 공비들이 외투 속에 감추고 있던 기관단총을 난사하고 수류탄을 투척하면서 격렬한 총격전이 전개되었다. 당시 최규식 서장은 가슴과 복부에 관통상을 입고서도 "청와대를 사수하라"는 마지막 명령을 내리면서 현장에서 순직하였고, 이러한 헌신과 희생으로 공비들의 청와대 쪽 진행을 완전히 저지할 수 있었다. 그는 특정 지역을 관할하는 치안 책임자로서 마지막 순간까지도 투철한 사명감으로 임무를 완수하였고 이에 정부는 경무관으로 추서하고 태극무공훈장을 수여 하였다.

정종수 경사는 1935년 7월 17일 경상북도 상주 출생으로 1960년 경찰에 투신하여 종로경찰서 재직중이던 1968년 1.21사태시 최규식 경무관과 함께 무장 공비와 교전중 순직하였다. 이에 정부는 경사로 추서하고 화랑무공훈장을 수여하였다.

이러한 까닭에 무장공비의 침투를 몸을 던져 저지한 곳에 표석을 마련하고, 청와대로 가는 길이 바라보이는 이곳 자하문 고개에는 동상과 추모비를 세워 드높은 애국 충절을 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