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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구릅/나의 산행

아차산(295.7m) - ( 2024.01. 29 )

by the road of Wind. 2024. 1. 30.

아차산 (295.7m)

- ( 2024.01. 29 )

 

점심 먹고 나니 시간이 많이 흘러버렸습니다. 날씨는 풀려 그다지 춥지는 않고, 어디를 조금 가보아야 합니다. 집에서 비교적 가까운 아차산을 등산해 보았습니다. 아차산은 낮은 산이지만 보루로 능선길이 이어지면서 걷기에 아주 좋은 산입니다. 그리고 주변의 한강 풍경이 너무 아름다운 산입니다. 옛날 삼국시대 각축지역인 이 산은 군사요충지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보루가 산재해 있습니다. 산길도 아주 잘 정비되어 있어 운동화 신고 편하게 걸을 수 있는 낮은 산입니다. 바보 온달평강공주에 관한 사랑 이야기가 훈훈하게 전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아차산(峨嵯山) (286m): 서울시 중랑구 면목동, 광진구와 경기도 구리시에 걸쳐있는 산이다. 아차산은 인근 용마산과 더불어 역사적으로 삼국시대 전략요충지였다. 그래서 이 산들 봉우리마다 있는 보루는 무려 13개나 된다. 아차산에 홍련봉보루 까지 합하여 1~6보루, 용마산에 1~ 7보루가 있다. 인근 망우산에도 1~3보루가 있다. 말하자면 한강 상류를 바라보는 서울 동부의 방어에 필요한 전초 군사시설인 셈이다. 그리고 아차산 정상에는 아차산성 (서적 제234호)이 있다. 아차산 동남쪽 계곡을 둘러싼 포곡식 산성이다. 성벽의 둘레는 약 1 km이며, 높이도 약 10m에 이른다. 아차산성(아단산성)은 '삼국사기'에 의하면 백제에 의하여 처음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한성백제시기에 아차산성에는 고구려 광개토왕장수왕의 공격이 있었고, 백제의 개로왕이 끌려와 죽은 장소이기도 하다. 신라가 아차산성을 차지한 이후에는 북한산성으로 불리었으며. 고구려 온달이 신라와 전투를 벌리다 전사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또한 아차산 하면 온달장군이 먼저 연상되며, 평강공주와의 사랑이 생각나는 것이다. 산 아래 구리시에서는 아치울에서 해마다 온달장군 추모제가 열린다. 아차산 중턱에는 대성암 (범굴암)이라는 절이 있으며 의상대사가 수련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법당 뒤에는 쌀바위란 바위와 천연동굴이 있다. 이 절은 아차산 중간 산책길로 평평하게 절 까지 산책할 수 있으며 주변의 많은 주민들이 찾고 있으며 한강 상류와 강동구, 송파구, 남한산성 일대를 바라보는 경치가 그만이다. 바로옆 범종각 아래에는 운동기구들이 잘 가추어져 있는 운동 장소도 마련되어 있다.     

  

 온달(溫達) (?~590): 살림이 구차하여 구걸로 모친을 봉양했고 남루한 옷차림으로 거리를 다녀서 '바보 온달'로 더 잘알려져 있다. 자기를 찾아 온 평원왕(平原王)의 딸 평강공주(平岡公主)와 혼인하고, 학문과 무예를 닦아 익혀 사냥대회서 급제하여 고구려 장수가 된다. 북주(北周, 557~581)의 무제(武帝)가 요동을 거쳐 고구려에 침입하자 선봉으로 승리하며  전공을 올리고 대형(大兄) 작위를 받았다. 영양왕(嬰陽王) 1년 (590) 신라(新羅)와의 싸움에서 한강 이북의 고토를 수복하고자 출전하였으나 지금의 아차산성인 아단산성(阿旦山城)에서 적병이 쏜 화살을 맞고 장렬히 전사했다. '온달전설'은 평민의 신분으로 공주를 아내로 맞이하여 입지전적 출세를 하여 국가적인 큰 공을 쌓은 점이 민초들의 가슴에 남아 전설로 전하여 온 곳이다.

 

 

▶ 걷 기 : 걸음수 15.263 steps, 거리 8.98 km, 소모열량 515 kcal, 소요시간 02:33 hrs, 속도 3.5 km/h, 온도: 4 ℃ (흐림)

▶ 코 스 : 5호선 광나루역 -  아차산 입구 -  낙타고개 -  고려정 - 해맞이 광장 - 아차산1보루 - 아차산5보루- 아차산 정상(아차산3보루) - 아차산4보루 (반환점)- 범굴사 - 아차산 입구 - 광나루역.

 

 

↑ 아차산 가는 길

 

길 가다 뒤돌아 보는 풍경

 

광진숲나루

 

 

온달과 평강 공주 이야기

 

평강공주는 어려서 부터 울기를 잘 하였다. 아버지인 평원왕이 " 자꾸 우니 바보온달에게 시집 보내야 겠다" 고 딸을 놀리곤 하였다. 공주는 16세가 되어 온달에게 시집을 가겠다고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서 궁궐을 나섰다.
온달을 찾아가서 함께 살게 된 평강공주는 온달이 사온 말을 열심히 먹이고 보살펴 날마다 살찌고 건강하게 만들었다. 평강공주는 온달이 이 말을 타고 멋진 장군이 되기를 바랐다. 

 

 

 

<- 아차산 배수지 체육공원

 

아차산, 워커힐 갈림길

 

아차산어울림광장

 

아차산종합안내도

 

온달장군과 평강공주

 

아차산 입구

 

아차산의 역사 유적:  

아차산 (해발 295.7m)은 인근에서 가장 높은 지대로 남쪽으로 한강 이남 지역, 북쪽으로 북한산과 도봉산 일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이같은 입지적 조건으로 삼국시대에 치열한 격전지가 되었으며, 아차산성과 아차산 일대 보루군은 아사산이 갖고 잇는 역사적 중요성을 대표하는 유적이다. 아차산성(사적 지정일 1973.5.25)은 아차산 정상부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는 능선의 중앙부에 위치한다. 백제 책계왕 원년 (서기 286년) 고구려를 대비하기 위해 수리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으로 보아 그 이전에 백제가 쌓은 성으로 추정된다. 백제와 고구려, 신라는 한강 유역을 차지하기 위해 아차산성을 중심으로 치열하게 싸웠다. 이곳에서 백제 개로왕이 고구려 군에 의하여 처형 당하고, 고구려 온달장군이 전사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1997년 부터 2018년까지 진행된 부분적인 발굴조사 결과 축조방식과 유물울 통해 신라가 쌓은 <북한산성> 임이 확인되었다. 전체적인 발굴 조사가 이루어질 경우 아차산성에 대한 보다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아차산 일대 보루군 (사적 지정일 2004.10.27)은 고구려가 475년 백제의 수도 한성을 함락시킨 후 한강 유역으로의 진출 확보 및 한강 이남 지역 공략을 위한 전진기지로 활용하기 위해 아차산, 용마산, 망우산 일대에 쌓은 군사시설이다. 보루는 둘레 100~300m 내외의 작은 규모의 성곽을 이르는 말로 10~100여명의 소규모 부대를 주둔 시킬 수 있다. 1990년대 부터 아차산 일원에서 20여개의 고구려 보루가 확인되었고 이 중 17개소가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아차산 종합 안내  

아차산 정상 길:   관리사무소 (시점) ~ 용마산정상 (종점), ( 3.6km, 2시간10분 )
아차산성 길:   워커힐아파트 (시점) ~낙타고개 (종점), ( 0.8km,  50분 )
고구려정 길:   영화사 입구 (시점) ~ 고구려정 (종점), ( 0.7km, 30분 )
해맞이 길:   기원정사 (시점) ~ 긴고랑정상 (종점), ( 0.7km,  30분 )
긴고랑 길:   긴고랑 공원 (시점) ~ 긴고랑 정상 (종점), ( 1.4km,  1시간10분 )
용마산 2보루길:   대순진리회 (시점) ~ 용마산정 (종점), ( 1.1km,  60분 )
팔각정 길:  뻥튀기 공원 (시점) ~ 용마산 정 (종점), ( 0.4km,  40분 )
용마산 정상길:  중랑구청 ~ 용마산 정.  (  0.9km,  50분 )
아차산 둘레길:  평강교 ~ 뻥튀기 공원.  (  3.7km,  1시간 30분 )
서울둘레길 코스(아차산구간): 광진교 ~ 용마산4보루. ( 4.3km, 2시간 30분 ) 

 

아차산

 

아차산 관리사무소

 

아차산 일대 보루군


지정번호: 사적 제455호/ 시대: 삼국시대
소재지: 서울특별시 광진구.노원.중랑구, 경기도 구리시 일대

아차산은 서울을 둘러싼 다섯 봉우리 중 하나로 용마봉과 망우산 등 주변의 산지를 포함하고 있다. 이 산 좌,우의 중랑천과 왕숙천을 중심으로 너른 평야가 펼쳐져 있다. 1994년 아차산 일원에서 20여개의 보루가 조사되었으며, 발굴된 유적을 바탕으로 이 중 17개가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보루들은 아차산의 능선을 따라 축조되었는데, 보루 간의 간격은 500m 내외다. 보루는 외곽의 성벽과 내부의 시설물로 구성되는데, 둘레는 대개 300m 안팎이다. 보루의 내부에는 쪽구들이 있는 건물들과 저수시설, 배수시설의 흔적이 있다. 일부 보루에는 간이대장간과 방앗간 등의 흔적도 보인다. 이 보루들에서는 다량의 고구려 토기류와 철기류가 출토되었고, 홍련봉 1보루에서는 연화문와당과 기와류가 출토되기도 하였다. 고구려군은 475년 백제의 한성을 함락하고 몽촌토성과 그 이남에 주둔하였다. 이차산 일대 이 보루들은 500년경 고구려군이 한강 방어선을 구축하기 위하여 세운 것으로 551년 백제의 공격으로 물러갈 때까지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보루들을 통해 고구려 국경지대 요새의 구조와 성격, 방어체계와 군사편제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이는 삼국이 한강을 둘러싸고 치열하게 다투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중요한 자료다.     

* 참고: ( 오른쪽 그림: 아차산보루 분포도 설명 )  

- (아차산 초입): 홍련봉 1보루, 홍련봉2보루
- (아차산 능선): 아차산1보루, 아차산5보루, 아차산2보루, 아차산3보루,아차산4보루  
- (용마산 능선): 용마산 7보루, 용마산5보루, 용마산 3보루, 용마산 4보루
- (망우산 능선); 망우산 5보루, 망우산2보루, 망우산 3보루

서울둘레길  .... 총계 12.3km, 시간 5시간 10분

- 화랑대역 ~ 중랑캠핑숲:  3.4km, 1시;간 19분 
- 중랑캠핑숲 ~ 망우묘지공원:  1.6km, 37분 
망우묘지공원 ~ 깔딱고개 쉼터:  2.7km, 1시간 4분 
- 깔딱고개 쉼터 ~ 광나루역:  4.6km, 2시간 10분.

 

아차산 문화유산 지도

 

▶ 아차산의 역사:

아차산은 서울특별시 광진구와 경기도 구리시 사이에 자리한 해발 295.7m 의 산이다. 용마산(해발 348.5m),  망우산(해발 282m)과 연결되어 있으며, 이 중 가장 남쪽에 있기 때문에 정상에 서서 둘러보면 한강과 그 주변 지역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아차산 주변은 한강을 따라 다른 지역으로 쉽게 이동할 수 있는 곳이었므로 삼국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 까지 정치적. 군사적으로 중요하게 여겨졌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백제.신라가 아차산 일대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벌였고, 고려시대에는 현재의 서울 일대를 관할하는 남경유수부(南京留守府)가 설치되었다. 조선시대에는 한양의 관문으로 수많은 사람과 물자가 드나드는 곳이었으며, 한국 전쟁 때는 UN군과 북한.중국군이 전투를 벌였던 전쟁터였다. 
아차산 일대가 오랜 기간 중시된 만큼 아차산에는 다양한 문화유산과 인물의 자취가 남아있다. 삼국 간의 치열한 항쟁의 흔적인 '아차산 일대 보루군(사적)', 신라 북한산주(北漢山州)의 중심지였던 '아차산성(사적)'은 아차산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이다. 아차산과 관련된 인물로는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전사한 백제 개로왕(재위 455~475), 신라와의 전쟁 때 생을 마감한 고구려 장수 온달(? ~590), 고려 말 고인이자 안렴사(按廉使: 고려시대 최고의 지방관직)로서 아차산 아래에 묘소를 만들었던 조운흠(1332~1404), 광나루의 옜 모습을 그린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화가 겸재 정선(1676~1759), 현재의 워커힐 자리에 별장을 세웠던 이승만(1875~1965) 전 대통령 등이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산 능선과 경사면에 조성된 다양한 무덤들을 통해 볼 때, 아차산 일대는 예로부터 이곳을 터전으로 삼은 평범한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간직한 일상의 공간이기도 하다. 지금도 아차산은 특별한 기억과 일상의 평범함이 함께하는 공간이다. 

▶ 아차산 문화유산:

사진:   아차산 4보루 /  아차산 5보루에서 본 한강 / 아차산성 서북벽, 아차산성 망대지 일대   
 

아차산 동행숲길 데크

 

아차산성

지정번호: 사적 제234호 / 시대: 삼국시대
소재지: 서울특별시 광진구 광장동 5-11 외

아차산성은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는 아단성(阿旦城) 또는 아차성(峨嵯城)이다. <삼국사기>에 이 성을 286년(백제 책계왕 28)에 수리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쌓은 것으로 보인다. 396년에는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이 성을 빼앗았으며, 475년에는 백제 개로왕이 이 성 아래에서 죽었다는 기록이 있다. 1997년과 1999년에 성벽과 성 내부에 대한 조사가 부분적으로 이루어졌다. 아차산성은 부정 육각형의 포곡식 산성으로  둘레는 1km가 조금 넘는다. 성벽은 높이 7m 가량으,로 추정되는데 안팎 모두 잘 다듬은 돌로 쌓았다. 성벽 바깥 쪽 기저부는 별도의 보강 성벽을 쌓은 후 흙으로 다져서 덮었다. 해발 203m의 북쪽 모서리 가장 높은 곳에는 장대가 설되어 있고, 동.서.남쪽에 문지가 남아있다. 계단상 지형을 이루고 있는 성 내부에서 여러개의 건물 터와 연못, 우물, 배수구 등이 확인되었다. 기록에 따르면 아차산성은 백제가 수도 한성을 방어하기 위해 쌓았으나 나중에 고구려와 신라가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남아잇는 성벽과 시설물들은 7세기 이후 신라가 축조한 것이다. 이 산성은 한강 유역을 둘러싼 삼국의 각축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야외무대

 

아차산 둘레길 입구

 

cafe

 

아차산동행숲길 입.출구

 

낙타고개 가는 길

 

낙타고개 갈림길...<- 아차산 정상 방향, ↑ 구리 고구려대장간 마을 방향, -> 아차산성 방향

 

고구려의 기상이 서린 
아차산과 고구려

서울과 구리시에 걸쳐있는 아차산은 해발 3백미터 남짓 되는 야트막한 산으로 산세가 험하지 않아 구리와 인근 시민이 가벼운 산행을 위해 자주 찾는 곳이며 40분 정도의 등산로를 오르면 한강서울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전망이 일품이다. 이 일대에는 삼국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보루 20여개가 있는데, 발굴 조사결과 고구려 군사유작지로서의 중요성이 인정되어 2004년에는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그 외에도 온달석탑, 대성암 등이 자리 잡고 있다.    

 

 

<- 2.9km 서울둘레길(깔딱고개), <- 1.13km 아차산 정상, <- 0.25km 해맞이광장, <- 2.7km 용마산 정상, 

↙ 0.7km 관리사무소, -> 아차산성 0.3km 

 

앗, 고구려정

 

광진구 방향, 한강 건너 잠실 방향

 

아차산성 방향

 

 

 구리 둘레길, 아차산 생태문화길:

아차산생태문화길(약 2.2KM, 1시간 10분 소요)
고구려대장간마을-> 고구려역사박물관-> 고구려정-> 두꺼비바위-> 큰바위얼굴-> 고구려대장간마을.
고구려 역사문화길: (약 4.5KM, 2시간 10분 소요)
고구려대장간마을->  고구려역사박물관-> 고구려정-> 아차산 1,5,6,3,4보루-> 헬기장, 용마산5보루-> 아차울마을.
근현대사 묘역길:  (약 5.0KM, 2시간 30분 소요)
정각사입구-> 형제약수터-> 사색의 길-> 팔각정-> 동화천약수터-> 관룡탑-> 한다리마을(백교저수지)

▶ 어우름, 머무름 구리둘레길:  (전체코스 총 30KM, 총 12시간)

제1코스약 7.9KM, 4시간 코스.
고구려대장간마을-> 범굴사-> 아차산보루군-> 관룡탑-> 망우역사문화공원-> 딸기원입구.
제2코스약 7.8KM, 3시간 30분 코스.
딸기원 입구-> 국군구리병원-> 구룡산-> 갈매마을(갈매역)-> 별내역-> 사노나들목.
제3코스약 7.8KM, 2시간 30분 코스.
사노나들목 -> 구리왕숙체육공원-> 동창보( -> 동구릉) -> 구리농수산물도매시장-> 왕숙교-> (->구리역)->  왕숙천 생태습지-> 구리자원화수시설(구리타워)
0 제4코스; 약 6.5KM, 2시간 코스.
구리자원회수시설(구리타워)-> 강동대교-> 구리한강시민공원-> (-장자호수공원) -> 구리암사대교-> (-> 아천생태습지) -> 고구려대장간마을.

 

<- 60m 한강전망대, -> 415m 아차산성, -> 940m 구리둘레길 1코스 (고구려대장간마을)

 

아차산 유래:


옛날에 삼청동에 점을 잘 친다는 사람이 있어서 임금이 그 사람을 불렀다. "네가 점을 잘 친다고 하니 한번 봐라." 하고 통 속에 쥐 한마리를 감춰놓고 " 이 안에 있는 쥐가 한마리가 몇 마리냐?" 하고 물었다. 이에 그 점쟁이는 세마리가 들었다고 대답했다. "나쁜 놈!" 한 마리인데 세 마리가 들었다하니 이놈을 죽여버려라." 하고 임금이 말했다. 여러 장정이 달려들어서 그 점쟁이를 붙잡아 나간 후 임금이 이상해서 쥐를 잡아 배를 갈라보니 새끼가 두 마리 있었다. 그래서 임금은 사람을 급히 보내 죽이지 말라고 했는데, 이 사람이 죽이지 말라고 달려가면서 손을 들어 표시하는 것을 본 백정이 빨리 죽이라는 것인 줄 알고 죽여버렸다. 그래서 아차라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 구리시  

 

구리 둘레길.....

 

=== 구리둘레길 1코스

=== 구리둘레길 2코스

=== 구리둘레길 3코스

=== 등산로

 

해맞이광장 오르는 계단

 

 

고구려정 /  아산병원 / 울림픽대교 / 제2롯데월드 / 잠실철교 / 대모산 / 테크노마트 / 잠실대교 / 청계산 / 우면산 / 잠실올림픽 주경기장 / 한국종합무역센터 / 한강 / 관악산 / 건국대학교 / 어린이대공원

 

꿈과 희망

새천년 소망 기원과 해맞이 기념

2000. 1.1  07:46

광진구

 

한강 상류 방향

 

멀리 남한산성 방향

 

아차산에서 바라본 한강

강동대교 / 구리암사대교/ 강변북로/ 중부고속도로/ 고덕산/ 예봉산/ 암사동선사주거지/ 예빈산/ 하남시 / 한강 / 검단산 /

광나루한강공원/ 올림픽대로 / 남한산(남한산성)

 

아차산 1보루

 

1보루( 해발 250m )에서는 남쪽과 남동쪽으로 어차산성과 풍납토성, 몽촌토성 자리를 한눈에 볼 수 있고, 북동쪽으로는 아차산 5보루를 볼 수 있다. 아직 발굴조사되지 않았으나 고구려 토기가 여러 조각 발견되었고, 성벽으로 추정되는 석축이 동쪽과 남쪽 일부에 노출되어 있다. 발굴조사된 다른 보루처럼 지면 아래에는 고구려 군사들의 생활시설인 여러 개의 건물지와 온돌, 배수로와 석축 성벽이 남아 잇을 것이다.   

 

 

앗, 드디어 능선 길로 접어 들었다. 이곳에서 길게 능선이 어진다.

 

워커힐호텔 방향, 강 건너 강동구, 암사동선사유적지 방향 

 

구리암사대교 & 고덕대교(가칭)

 

용마산 방향

 

아차산5보루 방향

 

용마산 능선, 아차산 능선 사이 긴고랑 방향

 

아차산5보루...출입제한

 

↗ 아차산2보루, 아차산3보루, <- 아차산1보루, ↓ 범굴사, 아차산3층석탑

 

 

아차산은 잠들지 않는다
                                   오덕교

대륙의 자랑인가 곤륜산에서 발원한 땅 기운
흙-내는 백두대간 관류하여
남녘 하늘아래
소나무 청청한 "아차산" 잠들지 않는다
구름따라 바람따라 나무잎들도
두물머리 합수하는 한강 물 바라보며
아차산은 "고구려" 역사 생각키운다
새로운 서울 하늘 꿈을 그린다
마음은 빨강 노랑 파랑 등 불노초 꽃잎
영겁을 영원토록 회귀하지 않듯이--
하여 한강 물은 제 곬으로 흐른다

no. 07 현 위치로 부터 관리사무소까지 1400m

관리사무소-- 해맞이광장--현위치-- 아차산정상(295.7m), 아차산3보루-- 용마산정상(348.5m), 용마산3보루.

 

아차산 전망대1

 

용마산 정상 방향

 

아차산.용마산 등산로 안내

 

긴고랑 방향 ( * 고랑- 계곡의 방언 )

 

서울둘레길(광나루역) 2.6km ->,  아차산성 1.14km ->

- 서울시 테마산책길 -
<- 2.0km 서울둘레길(깔딱고개쉼터) 
<- 0.87km 전망이 좋은 숲길(아차산능선),  해맞이광장 0.55km > 

 

 

바위

        - 유치환 -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愛憐)에 물들지 않고
희로(喜怒)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깍이는 대로
억 년(億年) 비정(非情)의 함묵(緘默)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아차산 전망대2

 

아차산3보루,  국가지정문화제 사적 제455호 아차산일대보루군

둘레 450미터, 면적 6500평방미터 크기로 주변 보류 중 규모가 가장 크지만 일부 구역만 발굴 조사되었다. 지형상 평지와 비탈면 경계지점에 석축성벽을 쌓고 성벽 안쪽에 생활시설을 만들었다. 건물지, 배수시설, 저장고, 단야시설 등이 확인되었다. 다른 보루에서는 확인됮 않았던 디딜방아의 불씨로 추정되는 것이 발견되어 아차산3보루가 아차산 일대 병사들의 식량지원처로 기능했을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접시, 몸통긴항아리 등 토기 약 400개, 무기, 마구, 농기구 등 철기도 약 185개 확인 되었다. 

 

 

한강 건너 강동구 암사동, 고덕동 일대

 

 

 

"아차산 정상 해발 295.7m

 

아차산은 주변의 용마봉(해발 348m), 망우현(해발 282m)을 함께 부르는 표현이었지만, 요즈음은 주변의 산지와 구분하여 아차산, 용마산, 망우산으로 나누어 부르기도 하여 이곳 아차산3보루 지점을 '아차산 정상'이라 말하기도 한다. 아차산3보루는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455호로 지정된 아차산 일대 보루군 17개 중 한 개이며 일부 구역이 발굴조사되었을 뿐 문화재구역 대부분이 조사되지 않았다. 지면 아래에는 삼국시대 군사들의 생활시설인 여러개의 건물지와 온돌, 배수로와 석축, 성벽이 남아있을 것이다. 

 

아차산 등산로

 

119 현위치 H14, 고도 289m

 

아차산 문화유산 지도

 

아차산 4보루 출토유물:

심발형토기  /   장동호  /   양이부장동옹 /  사이부대옹
뚜껑 /  명문접시  /  구절판 /  호
연통 /  철제투구 /  마구 (재갈) /  마구 (등자)
낫 / 호미 / 도끼 / 쇠스랑


아차산4보루

 

아차산4보루

 

고구려는 삼국시대의 전략적 요충지였던 한강유역에 20여개의 보루를 만들어 남진정책의 전초기지로 활용하였다. 아차산 일대 보루는 475년 고구려 (장수왕 63)가 한강 유역에 진출 후 551년 신라와 백제에 의해 물러날 때까지 사용되었다. 아차산4보루도 토기 형태와 목탄의 연대측정 결과, 5세기 후반부터 6세기 중반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아차산4보루는 크게 성벽과 건물터로 구성되어 있다. 둘레 249미터의 성벽은, 지형의 경사면을 이용하여 바깥면을 돌로 쌓음과 동시에 안쪽 경사면을 뒷채움돌과 흙으로 다져 매우는 식으로 만들었고, 욉 감시와 침입하는 적을 방어가 유리한 곳에 치(雉)를 설치하였다. 독특한 구조의 남쪽 이중치는 출입구로 추정되며, 고구려 성 쌓기의 전형적인 퇴물림(들여쌓기) 형식이 잘 나타나 있다. 성벽 안쪽의 건물터는 병사들의 생활에 필요한 온돌과 배수로, 저수조 등이 배치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항아리, 명문(名文)접시. 시루 등의 그릇과 투구.찰갑.창.도끼.화살촉 등의 무기, 낫.쇠스랑 등의 농기구, 재갈. 등자와 같은 말갖춤이 발견되었다.    

 

 

 

용마산 방향

 

건물지:

이 유적지 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잇는 1호 건물지이다. 건물지 안에는 온돌 2기와 초석이 남아있고, 온돌 아궁이 주변에서 명문(銘文)토기와 철제 투구등이 출토되어 지위가 높은 인물이 머물렀을  곳으로 추정된다.  

 

한강 상류 방향

 

저수조

저수공간 430X300X 깊이 230cm, 350X310X깊이 240cm


산성이나 보루에서는 물을 저장하기 위한 저수조가 반드시 필요하다. 장기적으로 적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식수를 확보해 두는 것은 군사들의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곳 아차산 4보루에서도 저수조 2개가 발견되었다. 깊이 3.5m 정도 수직으로 바닥을 파내고 바닥과 벽면에는 입자가 고운 회색 뻘흙을 발라 방수층을 만들었다. 지금은 저수조를 메우고 그 자리에 흙을 돋우어 위치를 표시하였다. 

 

유규배치도, 출토유물 , 치

 

유구배치도: 보루는 성벽과 건물지로 구분되고 건물지에는 저수조, 오놀, 배수로 등이 있고, 성벽 안쪽에는 나무 기둥을 줄지어 박은 흔적이 있다.  

출토유물: 토기와 칠기류가 출토되었다. 토기류 26개 기종 약 753점이 건물지 내부 온돌 주변에서 출토되엇으며, 모두 고구려 토기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종류는 항아리, 완, 시루, 뚜껑, 접시 등 고구려 중기의 대표적인 기종을 망라하고 있으며, 바닥은 편평하고 입구의 끝은 밖으로 밀리듯 꺾여있고, 넓은 띠 모양의 손잡이가 특징이다. 칠기류는 화살촉, 철못, 도끼, 끌, 낮, 호미, 숫돌 등 340점이 출토되었고, 1호 건물지 온돌에서는 철제투구가 출토되었다.    

: 성벽에 접근하는 적을 옆에서 공격할 수 있도록 성벽 일부를 돌출시켜 만들었다. 치와 치 사이이 간격은 각 치의 양쪽 성벽이 사정거리 안에 들어 올 수 있도록 했다. 치는 외적을 방어하는 성벽의 대표적인 시설로서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성에서 확인되고 있으며, 이 곳 아차산4보루에는 5개가 설치되었다. 

 

아차산4보루 현장 설명....봄, 가을  매주 토.일요일

 

아차산4보루 치

 

▶ 하산 하는 길:

 

아차산4보루에서... 

 

아차산 정상, 아차산3보루에서

 

범굴사(옛 대성사) 방향

 

범굴사 위 바위 전망 포인트 

 

 

지금은 그리움의 덧문을 닫을 시간 

                                                      -류시화-


세상을 잊기 위해 나는
산으로 가는데
물은 산 아래
세상으로 내려간다
버릴 것이 있다는 듯
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있다는 듯
나만 홀로 산으로 가는데

채울 것이 있다는 듯
채워야 할 빈 자리가 있다는 듯
물은 자꾸만
산 아래 세상으로 흘러간다

지금은 그리움의 덧문을 닫을 시간
눈을 감고
내 안에 앉아
빈 자리에 그 반짝이는 물 출렁이는 걸
바라봐야 할 시간

 

 

아차산2보루

밧줄 잡고 바위 타기...위험하지는 않다.

 

워커힐 호텔 방향

 

앗, 범굴사 (옛 대성암)

 

범굴사 종각

 

운동 쉼터

 

대성암 쌀바위

지금의 대성암 자리는 삼국시대 신라의 유명한 승려인 의상대사가 도를 닦던 곳이었다. 의상대사가 이곳에서 수도하고 있는데 먾은 사람이 대사의 가르침을 받으려고 찾아왔으며, 수도 자리 뒤의 바위구엄에서는 쌀이 나와 많은 사람에게 공양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밥을 짓는 사람이 하늘이 내려준 이 천공미를 좀 더 많이 얻고자 욕심내 바위구멍을 더 크게 넓히려 하자 쌀이 하나도 나오지 않고 쌀뜨물과 타버린 쌀이 수삼일 동안 나오다가 멎었다. 그리고 그 뒤로는 다시는 쌀이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 구리시. 

 

범굴사 삼성각, 대웅전

 

종각

 

대웅전 뒷편 쌀바위

 

대성암 연혁


이  寺庵사암은 약 1,300여년 전 (AD 670년경) 신라 문무왕 때 義湘大師의상대사 창건이며 조선초에는 無學大師무학대사 중창이라 하나 憑據빙거를 찾기 어렵다. 서기 1921년 (불기 2465년) 故고 安寶光안보광 和尙화상이 관음기도 후 서몽을 받고 이 산을 찾아와 石窟석굴을 발견하고 梵窟寺범굴사라는 암가문을 확인 폐허된 사찰을 인수하니 법당과 굴사를 재창건하고 관음대성의 계시를 받았다 하여 사명을 大聖庵대성암으로 개칭하였다. 법당 뒷편 石天井석천정에는 암혈이 있어 전설에 의상대사 在寺時재사시 쌀이 나와 공양미로 썼다하고 그 아래 돌확에 우물이 있어 寺用水사용수로 쓴다. 서기 1950년 6.25 동란 서울 수복시 아군의 포화로 전파된 것을 중건하였고 그 후 서기 1978년 ~1981년 까지 대웅전을 비롯하여 굴사와 삼성각과 종각을 재신축하였다. 서기 1992년 1월 16일 원인불명의 심야화재로 全寺宇전사우가 완전 소실된 것을 제가불자들의 정성어린 시주와 원력의 뒷받침으로 서기 1992년 2월~ 서기 1996년 6월까지 완전 재중창을 하여 옛 성지의 몀모를 갖주게 되었다. 불기 2540년 (서기 1996년) 아차산 대성암 주지 釋德庵석덕암 합장

 

 

 

범굴사(대성암)에서 바라보는 한강 상류 경치

 

<-구리둘레길 1코스(아차산 4보루), -> 구리둘레길 1코스(한강전망대)

 

등산로 안내

 

<- 대성암, -> 온달샘

 

< 645m 큰바위얼굴, -> 270m 범굴사 (소나무 숲 쉼터) 

 

-> 대성암(법굴사), -> 아차산5보루, ↑ 아차산1보루, <- 아차산성

 

한강전망대

 

 

자투리텃밭

 

광나루역 원점 회귀 

 

서서갈비... 해장국, 나주곰탕 등. 입맛 다시게 하는게 한 둘이 아니구나. 그러나 집에 들어가야 한다. 길 거리에서 돈 쓰면 안된다. 외식 밥값이 너무 올라버렸다. 서민들이 나들이에 외식하기 버겁다는 생각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