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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구릅/일상들 ( life )

② 북한강철교. 두물머리, 세미원- ( 2024.07.14 )

by the road of Wind. 2024. 7. 16.

 북한강철교. 두물머리, 세미원

- ( 2024.07.14 )

 

《  숲풀로 양수리(수변생태공원) ~ 두물경  》 

 

 

두물머리 물레길 탐방안내

 

제4길 두물머리 나루길
북한강을 건너던 두 나루:

평해로를 최단 거리로 이어주는 돌떼미나루와 고랭이나루:  

평해로는 남양주시 조안면에서 양평군 양서면으로 이어집니다. 두 면의 경계를 북한강이 가로막으며 흐르기 때문에 강을 건너기 위해 나루가 두 군데 있었지요. 바로 고랭이나루와 용진나루입니다. 두 너루 모두 조선 후기나 일제 강점기 지도에 표기가 되어 있어 유서가 깊은 나루들이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후기 지리지인 <대동지지>에는 고랭이나루 보다 북한강 상류 쪽에 위치한 용진나루를 정식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고장 어르신들의 말씀을 들어보면 고랭이나루를 주로 이용했다 합니다. 그렇다면 관원의 행차처럼 인원이 많거나 건너야할 물류의 규모가 클 때는 용진나루를 이용하였지만, 일반 여행객들은 고랭이나루를 이용했다는 뜻일 겁니다. 고랭이나루는 평해로를 최단거리로 이어주는 나루 였으니 단순히 강을 건너기 위한 목적이라면 구태여 가까운 나루를 놔두고 상당한 거리를 돌아가는 용진나루를 이용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지요. 고랭이나루는 조안면 고랭이마을과 양서면 돌떼미마을을 잇는 나루였으므로 남양주쪽에서는 고랭이나루라 부르고, 양평 쪽에서는 돌떼미나루라 불렀습니다. 간혹 돌떼미나루를 두물머리나루와 혼동하는 경우가 있는데, 둘다 양수리에 있는 나루이기에 그런가 봅니다. 하지만 두물머리 나루는 광주시 우천리로 건너던 나루였지요.  1920년대 후반부터는 고랭이나루에 승합차를 실을 수 있는 나룻배도 다녔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이때는 용진나루보다 고랭이나루로 통행하는 경우가 보편화 되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북한강에 다리가 놓이면서 두 나루는 자취를 감추게 되었습니다. 현재 용진나루에는 양수대교가, 고랭이나루 자리에는 6번 국도 경강로가 통과하는 신양수대교가 놓여 있지요.  ( 평해길 안내 경기옛길센터 031.231.8524 ) 

 

북한강철교

 

포토존

숲풀로

 

양수대교

 

* 양수리 일대는 강물의 수위와 주거지와의 차이가 아주 작다. 그러므로 홍수 피해를 걱정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지금 껏 홍수 걱정한 경우가 없었다고 한다. 북한강, 남한강 지류를 댐으로 잘 관리하므로서 양수리 일대는 홍수에 아주 안전하다고 한다.

 

'수풀로 양수리'  

위치: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양수리 552-6 일대
- 면적: 67,154 m2.
조성시기: 2003년 11월 ~ 2004년 6월
- 조성배경: 아파트 건설 예정지였던 곳을 지역주민, 기업, 정부가 '환경보전' 이라는 공익 시련을 위하여 환경생태공원을 조성.
- 조성효과: 그 결과 아파트 건설시 예상되엇던 하루 약 1,594톤 (154세대 기준)의 생활 하수 발생을 예방. 자연형 계류및 생태연못 좃ㅇ을 통한 생태계의건전성과 지속가능성 확보.

- 환경부 한강유역청. 환경보존협회  

 

그림정원

cafe 리노

수풀로 양수리 100M ->, 
<< 1.7km 세미원  , 운길산역 3.5km >>

 

양수대교

 

양수리 송어횟집 031-771-5872

<- 2,248m 두물머리,  -> 양수역 1,562m ->

 

제4길 두물머리나루길
돌떼미장의 후신, 양수리전통시장:  

양평의 명소, 양수리전통시장의 유래:

양수리전통시장은 양평군 양서면 양수리에 있는 상설전통시장입니다. 1일과 6일로 긑나는 날에는 오일장도 서지요. '조선시대'니 일제강점기 까지는 양수리에 시장이 섰던 기록이 없으므로 해방 이후에 장이 생긴 것으로 보입니다. 양수리는 근교 농업지역으로  우명한 곳이었는데, "양수리 무, 소내 배추"라는 말도 잇을 정도로 무가 유명하였고, 파 농사도 잘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민들이 농산물을 내다팔고 대신 생필품을 구입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장이 열리게 되었을 것입니다. 1970년대 까지는 우시장도 섰던 큰 장이었기 때문에 놀이하는 사람들이 자주 와 공연을 했습니다. 장소팔, 고춘자 같은 만담꾼이나 곡마단도 왔고 활동사진도 틀어 주곤  했지요. 음력 칠월 보름경에는 우시장 앞에서 '백중장'도 섰는데, 이 때는 씨름, 줄다리기 등이 행해지며 인산인해를 이루곤 했답니다. 현재의 양수리 전통시장은 물난리에 한동안 폐쇄되었던 장이 1992년에 다시 개설된 것인데, 이때 예전 2,7장에서 1,6장으로 장날이 변경되었습니다. 시장은 양수대교에서 이어지는 큰길가에 있는 공터와 골목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이곳에 석장리(石墻里), 곧 돌떼미마을이었으므로 이곳 어른들은 돌떼미장이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애초에 공터를 중심으로 하나 둘씩 장사꾼들이 모이며 오일장이 형성되었다가 골목으로 상설점포들이 들어서며 상설시장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상설시장은 공터 인근에 있는 두개의 골목에 위치하며 골목별로 북한강시장, 남한강시장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고, 100여개의 점포로 이루어져있습니다. 평해길 안내 경기옛길 센터 031.231.8524. 양평군 031.770.2455

 

한강물환경생태관

한강물환경생태관 입구

운길산역 2.7km ->, <- 2.5km 세미원, -> 1.8km 세미원, -> 1.5km 남한강전망대

신양수대교

 

신양수대교 이정표

<- 갈대쉼터, -> 생태환경공원, 다온광장, 소원쉼터, 물안개쉼터, 느티나무쉼터

 

<- 400m 강물정원, <- 450m 두물경, -> 100m  강변정원

 

두물머리나루길

<<  세미원   ||  운길산역 >>

제4길 총 15.2km

신원역-- (0.5km)--몽양 여운형 생가 --(3.9km)--양수역 --(1.1km)--세미원--현위치, (5.2km)--운길산역.

 

 

신양수대교

두물경

 

두물경

남한강, 북한강이 하나된

두물머리 겨레의 기적이 숨쉬는 '우리의 한강'

 

두물머리 역사

두물머리(兩水里_양수리)는 금강산에서 흘러내린 북한강과 강원도 금대봉 기슭 검룡소에서 발원한 남한강두물이 합쳐지는 곳이라는 의미이며 한자로는 '兩水里'(양수리)를 쓰는데, 이곳은 양수리에서도 나루터를 중심으로 한 장소를 가리킨다.예전에는 이곳의 나루터가 남한강 최상류의 물길이 있는 강원도 정선군 충청북도 단양군, 그리고 물길의 종착지인 서울 뚝섬 미포나루를 이어주던 마지막 정착지인 탓에 매우 번창하였다. 그러다가 팔당댐이 건설되면서 육로가 신설되자 쇠퇴하기 시작하여, 1973년 팔당댐이 완공되고 일대가 그린밸트로 지정되자 어로행위 및 선박 건조가 금지되면서 나루터 기능이 정지되었다.  

 

남한강 북한강 하나된 두물머리

겨레의 기적이 숨쉬는 우리의 한강

두물경

 

족자섬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 흐르는 한강 줄기를 예전에는 족잣여울이라고 불렀으며, 족자섬이란 족잣여울에 있는 섬이란 뜻이다. 원래 이 섬은 바위로 이루어진 산이기도 했다한다. 지금은 나무로 우거져 있다. 그래서 이 섬을 떠드렁산이라고도 불른다. 

 

 

앗, 연밭

연꽃이 피어나고 있어요..

제4길 두물머리 나루길
두물머리공원과 두물머리나루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된 대표 생태여행지두물머리.  

두물머리는 북한강과 남한강 두 강물이 합수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르 한자로 표기한 것이 양수리지요. 두물머리 강변에는 공원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팔당호와 어우러진 경관이 아름다워 드라마와 사진 촬영장소로 자주 이용되며, 주말과 휴일에는 관광객으로 분비는 곳입니다. 또한 양수리전통시장 맞은 편으로 공원에 이르기 까지 산책로가잘 조성되어 있으며, 여름이면 산책로 주변에 있는 연못에 연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장관을 이룹니다. 강변의 공원마당 가운데는 큰 느티나무가 넓은 그늘을 드리우며 서있고, 두물머리 나루비가 세워져 있는 이곳이 예전 나루터였음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그옆으로 한강을 오르내리던 황포돛단배가 재현되어 강에 떠있어 당장이라도 배를 타고 팔당호를 떠나니고 싶은 충동이 절로 일어납니다. 두물머리는 광주시 남종면 우천리나 분원리로 건너다니던 나루였는데, 광주시의 경안장이 소시장으로 유명했을 때는 사람을 태우는 작은 나룻배 외에도 열마리 이상의 소를 실어 나를 수 있는 커다란 나룻배도 있었답니다. 더 옛날에는 세곡선과 장삿배가 정박하는 남한강물길의 정류장이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팔당호에 수몰되었지만  예전에는 나루 근처에 쏘갈바위가 있었지요. 곡물을 싣고가던 배가 부딫혀 파손되어 '삼백가마를 먹은 바위' 라고 부르기도 한 악명 높은 바위랍니다. 두물머리나루는 팔당댐의 건설로 우천리가 수몰되어 소내섬이 된 후에도 귀여리나 분원리로 건너다니기 위해 이용되다가 1990년대 쯤 폐쇄되었습니다.     - 평해길 안내 경기옛길센터 031.231.8524. 

 

DUMUL MEORI 

두물머리 역사공원
1.잔디마당, 2.휴게쉼터, 3. 전망대, 4. 수변산책로 

 

족자섬 방향

 

두물머리나루터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 ( 두물머리 나루터 ) 

옛날 서해에 살던 이무기가 하늘로 올라가 용이되고 싶었다.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까지 물을 타고 가면 하늘에 오를 수 있을 거라고 여긴 이무기는 한강을 거슬러 강원도 금대봉 기슭 검룡소까지 갔다. 그러나 물은 거기서 끊겼고 이무기는 끝내 용이 되지 못하고 말았다고 한다. 이 두물머리 나루터는 그 검룡소에서 시작한 남한강과 금강산에서 흘러 내린 북한강이 만나 하나되는 곳이다.    

 

두물머리 소원나무:

" 두물머리에는 예로부터 사람들이 소원을 비는 도당할매와 도당할배라 불리는 느티나무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도당할매 나무는 강물에 수몰되었고, 현재는 400여년된 도당할배 나무만 남아 그 아래에서 마을의 안녕을 위한 도당제를 지내왔습니다. 어느날 부터 두물머리에는 새로운 느티나무 두그루가 자랐는데 어떤 이가 말하기를 도당할매와 도당할배의 후손이라 하였습니다. 그 후, 사람들은 그 나무를 두물머리 소원나무라 부르며 소원을 빌고 있습니다.  " 

 

 


이 그림은 겸재 정선의 양수리 족자섬 앞의 큰 여울, 족잣여울로도 불리던 독백탄(獨柏灘) 그림을 재구성 한 것으로 원본은 간송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습니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물머리를 맞대는 가운데 강줄기를 갈라놓는 긴 섬 위로 수종사(水鐘寺)가 자리한 운길산이 보입니다. 강으로 이어지는 산자락은 현재의 조안면 능내리이며 그 앞의 섬이 바로 족자섬입니다. 이 족자섬 사이를 지나는 여울목이 족잣여울, 즉 독백탄(獨栢灘)인 것입니다.

겸재 정선의 독백탄(獨栢灘)

 

양평 방향 남한강 

두물머리 포토죤

" 이곳은 두 개의 물이 하나로 만나듯, 아름다운 자연과 나 자신을 하나로 모아, 투영해 주는 두물머리 포토죤입니다. 두물머리는 남한강과 북한강이 얼싸안으며 흐르는 곳으로 아침 물안개와 일몰의 풍경등 수려한 경치를 자랑하는 곳입니다. 두물머리 포토죤에서는 수묵화처럼 아름답게 펼쳐진 두물머리를 배경으로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가족, 연인, 친구들과 함께 액자형 포토죤에서 자유로운 포즈로 사진을 찍으면서 낭만과 행복이 가득한 추억을 만들어 보세요. "

 

<- 두물경, <- 다온광장, <- 두물머리 갈대쉼터,  ↙ 두물머리 소원쉼터,  - > 두물머리 물안개쉼터,

-> 두물머리 느티나무쉼터,

 

 

두물머리 물안개 쉼터:

" 당신과 나, 우리의 만남이 아름다운 물안개 되어 피어오릅니다. "  
" 이 곳은 두물머리 물안개쉼터입니다.  두물머리는 아침 물안개가 특별히 아름다운 곳으로 드라마와 CF 촬영지. 두물머리 사진 작가들의  촬영명소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두물머리 물안개쉼터에서 잔잔한 강물 위로 피어오르는 물안개 풍경을 감삼해 보세요." 

 

두물머리의 상징, 두물머리 느티나무

두물머리 돛단배

두물머리 사진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돛단배이다. 길이 16m, 너비 3m, 돛대높이 8m 크기의 전통 돛단배이며,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11호 조선장 기능 보유자인 김귀성 장인이 원형대로 복원한 것이다. 돛 색깔이 누렇다 하여 황포돛배라고도 불린다. 한강을 왕래하며 땔감, 식량 등을 수송하는데 쓰여졌으나 현재는 교통수단의 발달로 이 돛단배의 목적지는 사라졌다. 주로 정박되어 있는 돛단배이지만 두물머리만의 수려한 느낌을 잘 담고 있다. 

 

수령 400년의 보호수, 두물머리 느티나무

두물머리 이야기  

두물머리 느티나무는 세 그루의 느티나무가 마치 한 그루처럼 보이는 두물머리의 상징입니다. 두물머이레는 원래 도당할아버지와 도당할머니로 부르는 두 나무가 나란히 서 있었으나  1972년 팔당댐이 완공되며 도당할머니 나무는 수몰되어 남아있지 않다고 합니다. 전해오는 얘기에 의하면 이 나무에는 큰 구렁이가 살고있었는데 한국전쟁등 큰 국란이 있기 전에는 밖으로 나와 국란을 예고했다고 하여, 일제 강점기에는 군인이  이 나무로 총을 만들고자 베려하였으나 베려한 사람의 손이 갑자기 부러지는 바람에 나무를 베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마을의 안녕과 가정의 평온을 위하여 매년 음력 9월 2일에는 나무에 도당제라는 제를 올리고 있읍니다. -   < 참고문헌: 양평군지 >

 

두강승유도(斗江勝遊圖):   

조선후기 이건필( 1830~? ) 작....남한강과 북한강이 합처져서 흐르는 두물머리를 배를 타고 유람하며 그린 풍경화이다. 
개인 소장. 

 

포토존

두물머리 느티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