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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구릅/일상들 ( life )

② 여주 신륵사, 남한강 출렁다리, 영월루- ( 2025.10.17 )

by the road of wind 2025. 10. 23.

 여주 신륵사, 남한강 출렁다리, 영월루

- ( 2025.10.17 )

 

《  남한강 출렁다리, 영월루  》

 

 여주 남한강 출렁다리:

 

2021년 2월에 착공하여 2024년 말에 준공되었다. 총 길이 515m, 폭 2.5m, 높이 35m에 이르는 현수교다. 경기도 지역균형발전사업비를 포함해 총 332억원이 투입됐다. 출렁다리를 잇는 두 개의 주탑 주변으로 야간 조명이 설치돼 신륵사 관광단지 공원에 설치될 ‘빛의 숲’과 함께 남한강의 아름다운 야경을 즐길 수 있는 명소가 될 전망이다.  바닥이 깨지는 효과, 갑자기 투명해지는 효과 등을 연출할 수 있는 미디어글라스3군데 설치돼 출렁다리를 건너는 관광객들의 흥미를 유도한다. 남한강 출렁다리는  남한강 아름다운 경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여주 남한강 출렁다리 5월 1일 부터 개통하였다. 

여주 남한강 출렁다리 운영:


신륵사와 금은모래캠핑장을 연결하여, 남한강을 가로지르는 여주의 대표 관광지 낮에는 아름다운 강변 풍경, 밤에는 미디어 파사드로 환상적인 빛의 예술과 화려한 야경을 선사합니다.


운영안내:


동절기(11월 ~ 2월) : 10:00 ~ 17:00 / 하절기(3월 ~ 10월) : 9:00 ~ 18:00


※ 폭우, 폭설, 폭염 등 기후 환경에 따라 잠시 통행이 중단될 수 있습니다.


※ 입장료는 무료입니다.

주의사항
- 음식물 반입 및 쓰레기 무단투기 금지
- 반려동물 출입금지 전용 보관함 사용 시 입장 가능
- 자전거, 전동기구 등 이륜차 통행금지
- 뛰거나 난간에 올라가는 행위 금지
- 하이힐, 휠리스 등 바닥에 빠질 수 있는 신발 착용 금지
- 음주, 흡연, 취사, 취식 금지
- 휴대폰, 자동차 열쇠 등 소지품 분실 주의
- 심신 미약자는 안전을 위해 출입 제한

문의 : 031-881-9754

 

 

조포나루터,  위령비  

> 조포(潮浦)나루:

이곳은 삼국시대부터 서울 마포나루 광나루, 여주 이포나루와 함께 한강 4대 나루로 불리던 조포나루 충주에서 서울까지 수운 이용이 번성할 시기에는 이곳 신륵사 하류에 보제원(普濟院)이 설치되어 통행자의 숙박을 제공 하기도 하였다. 1963년 10월 23일 안양흥안국민학교 학생이 신륵사 수학여행차 이 나루를 건너다 도선이 침몰되는 대참변이 일어나 49명이 익사한 후 1964년 현재의 여주대교가 개통되어 유서깊은 이 나루는 자연이 폐쇄되었다.   

( * 남한강을 끼고 있는 여주는 예로부터 중부내륙 한양을 이어주는 수상 교통의 중심지였다. 예부터 이곳에는 한때 12개의 나루가 번성하기도 했다. 서울 광나루, 마포나루와 더불어 여주의 조포나루, 이포나루는 조선의 4대 나루로 인정받을 만큼 중요했다. 고려시대에 새나루(단현동),조포나루(천송동), 여주나루(홍문동), 이호나루(강천면 이호리), 조선시대에 우만나루(우만동), 양화나루(능서면 내양리), 창남나루(점동면 대오마을), 흔암나루(점동면 흔암리), 천남나루(대신면 천남리), 찬우물나루(흥천면 상백리)가 들어섰다. )

> 위령비:

서기 1963년 10월 23일 경기도 안양시에 소재한 흥안국민학교(현. 안양남초등학교) 5,6학년 학생, 교사, 학부모 총 158명이 여주 신륵사 수학여행을 마치고 이곳 조포나룻터에서 나룻배를 타고 귀가 하던 중 배가 기울며 침몰하여 학생, 학부모, 선생님 49인이 희생되는 대참사가 있었다. 이에 안양남초등학교 총동문회에서는 고인의 명복을 빌며 영혼을 위로하는 비를 세우게 되었다. 고히잠드소서.   - 서기 2006년 4우러 15일 안양남초등학교총동문회.
 

 

여주 남한강 출렁다리

 

경기둘레길 여주 33.34코스

 

- 33코스: 거리 11.2km, 소요시간 3시간 45분:
(시점) 강천면사무소 - 가야1리 마을회관 - 목아박물관 - 차본 본사 앞 - (종점 11.2km신륵사 (현위치).


- 34코스: 거리 6.6km, 소요시간 2시간 15분:
(시점)  신륵사(현위치) - 영월근린공원 - 금은모래캠핑장 - 금은모래강변공원 - (종점 6.6km) 한강문화관.

 

<- 황포돛배선착장

 

 

남한강 출렁다리 승강기

 

여주 남한강 출렁다리

 

 

왼쪽 산 위 영월루 여주대교 방향...아래 황포돛배 타는 곳

 

출렁다리 중간 부분 쉼터 

 

 

썬밸리호텔, 금은모래캠핑장 방향

 

금~토 입장마감 20:30, 운영시간 09:00 - 21:00

 

영월루 방향

 

 

Riv Table

 

Riv Table 뒤편 길을 따라 영월루를 오른다.

 

규휼비, 영세 불망비 

김홍복 청덕애민영세불망비: 조선 숙종 22년(1696.10) 여주 목사로 부임한 김홍복(1649-1698)의 청렴한 덕과 선정을 잊지 않기 위하여 세운 비이다. 
기동보린사(畿東保隣社) 창립기념비: 1727년 흥천면 외사리의 이민응(1580-1642)과 아들 재정이 빈민 구제를 위해 기동보린사를 창립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1940년 여주군수 김수명이 세운 비이다.
이헌직 영세불망비: 조선 고종 27년(1890.3) 경기관찰사로 부임한 이헌직이 조세를  경 선정을 베풀어 이를 잊지 않기 위하여 1891년 세운 비이다. 
이주정 애민선정비: 조선 숙종 32년(1706.7) 여주 목사로 부임한 이주정(1639-1692)이 백성을 사랑하고 선정을 베풀어 이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이다. 
김명진 애민선정비: 조선 고종 20년(1883.11) 여주목사로 부임한 김명진(1840-?)이 백성을 사랑하고 선정을 베풀어 이를 기리기 위하여 1888년 세운 비이다. 
홍우경 애민선정비: 조선 고종 24년(1887.6) 여주목사로 부임한 홍우경이 백성을 사랑하고 선정을 베풀어 이를 기리기 위하여 1888년 세운 비이다.
김병기 구휼비: 조선 철종 7년(1856.4) 여주 목의 가옥 1,000여호가 불에 탄 대화재 당시 난민을 구제한 찬동령 부사 김병기(1818-1875)의 공덕을 기리고자 1860년 세운 비이다. 
김희화 애민선정비: 조선 순조 20년(1820.4) 여주목사로 부임한 김희화가 백성을 ㅅ가랑하고 선정을 베풀어 이를 기리기 위하여 1822년 세운 비이다.
- 순상 선정비: 조선 순조 22년(1822) 순찰사의 선정을 잊지 않기 위하여 세운 비이다. 비선 앞면의마모가 심해서 누구의 선정비인지 판독이 어려운 상태이다. 
이세유 창덕선정비: 조선 숙종 34년(1708.1) 여주 목사로 부임한 이세유(1645-1711)의 청렴한 덕과 선정을 기리기 위하여 1709년 세운 비이다.  
남선 인명구민비: 조선 인조 25년(1647.4) 여주 목사로 부임한 남선(1582-1654 )의 선정을 잊지 않기 위하여 1648년 비를 세웠으나 마모되어 1943년 10대 손 종우가 다시 세운 비이다. 
- 이진휴 영세불망비: 조선 숙종 23년(1697.4) 여주 목사)로 부임한 이진휴(1657-1710)의 선정을 잊지 않기 위하여 1697년 세운 비이다. 

규휼비, 영세 불망비 

한회일 거사비(去思碑): 조선 인조 13년(1635.1) 여주 목사로 부임한  한회일(1580-1642)의 선정을 기리기 위하여 1636년 세운 비이다.  
- 장조이 열녀비(烈女碑):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시 청군에 붙잡히기 전 '마암'에서 강으로 투신 자결한 정조이의 절개를 기리기 위하여 1637년 정려를 내려 세운 비이다. 장조이는 여주 관아의 관리 윤응빙의 아내로 조이(召史)는 과부를 나타내는 이두(吏䕱)이다. 
- 영의정 홍순목 만세충망비: 조선 고종9년(1872..10) 영의저으로 임명된 홍순목(1816-1884)이 고향(금사면) 여주에 선정을 베풀어 이를 잊지 않기 위하여 1884년 세운 비이다.  
이문원 선정비: 조선 정조 원년(1777.7), 정조 10년(1786.7) 두 차례에 걸쳐 여주 목사로 부임한 이문원(1740-1794)의 선정을 잊지 않기 위하여 1788년 세운 비이다. 
김덕함 애민비:  조선 인조 6년(1828.8) 여주목사로 부임한 김덕함(1562-1636)이 청렴결백으로 백성을 사랑하여 이를 기리기 위하여 1630년 세운 비이다. 
박태규 선정 불망비: 조선 숙종 36년(1710.4) 여주 목사로 부임한 박태규의 선정을 잊지 않기 하여 1714년 세운 비이다.   
- 홍만식 영세불망비: 조선 고종 12년(1875.7) 여주 목사로 부임한 홍만식(1842-1905)이 선정을 베풀어 이를 기리기 위하여 1877년에 세운 비이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음독자살하여 순국하였다. (父 영의정 홍순복, 第 초대우국총판 홍영식).

앗, 영월루

 

영월루에서 바라보는 남한강 출렁다리

 

여주 시내 방향

 

여주 세종대교 방향

 

 

영월루 迎月樓:

영월루는 원래 군청의 정문으로 18세기 말 건물로 추정된다. 현재의 영월루는 1925년에 군청을 옮기면서 지금 있는 자리에 누각으로 다시 세운 것이다. 이 누각은 2층 누각으로 핲면이 3칸, 옆면이 2칸 규모로 되어있다. 지붕은 팔작지붕* 이다. 낮은 기단과 기다란 몸체, 처져 올라간 지붕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누각 바로 아래에는 커다란 괴암이 절벽을 이루고 있다. 바위 위에는 '마암(馬巖)' 이라는 글자가 힘있는 필치로 새겨져 있다, 누각에서 바라보는 전망도 아름답다. 

팔작지붕; 합각지붕 (위 절반은 박공으로 되어있고, 아래 절반은 네모꼴로 된 지붕)
마암: 여주 팔경 중 하나로 여주 옛 지명인 '황려(黃麗)'와 여흥 민씨의 시조 탄생 관련 이야기가 전해지는 바위로 여주의 대표적인 자연 경관 유적임.  

 

여주 하리 삼층석탑 (보물 제92호)   &  여주 창리 삼층석탑 (보물 제91호)  

 

여주 하리 삼층석탑:


- 이 석탑은 1958년 석탑을 하리의 옛절터에서 옮겨왔으며, 하층기단의 구성은 통식(通式)에 속하여 갑석은 상면에 현저한 경사를 이루었고, 그 중심에 삼층기단 중석을 받치기 위한 높직한 2단의 받침이 있습니다. 각층 옥신에는 우주형이 얕게 조각 되어있고 초층 옥신은 특히 높은 편으로, 옥개석의 각층 받침은 4단이고 추녀밑은 아랫면과 수평을 이루다가 전각에 이르러 반전된 모습을 보이는데, 상륜부는 완전히 소실되어 하나도 남은 것이 없습니다.  조성시기는 고려시대일 것으로 보입니다. 


여주 창리 삼층석탑:


- 이 석탑은 본래 여주읍 내 과수원의 옛 절터에 있었던 것을, 1958년 한강변에 위치한 영월루(迎月樓) 아래의 공원 산중턱으로 옮겨져, 여주 하리 3층석탑(보물 제92호)과 나란히 세웠는데, 탑신부는 기단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1층 몸돌만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고 나머지는 지붕돌과 탑몸돌이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지붕돌의 아래쪽에는 각각 3단의 받침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하층 기단의 각 면에 안상(眼象)이 새겨져 있고, 갑석 위에는 연꽃이 조각되어 있으며, 낙수면의 경사가 급하고 추녀는 수평을 이루다가 끝 부분에서야 반전되었으나 대체적으로 둔중한 느낌을 줍니다. 1층 탑몸돌 윗면의 사리를 모셔두는 사리공에서 동제여래입상이 발견되었는데,  탑의 양식으로 보아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 마암

< 2025.04.18 사진 >

 

여주 마암


마암(馬巖) 여주 지명의 유래가 되는 황마(黃馬) 여마(驪馬)가 이곳에서 솟아났다 하여 마암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이러한 이유로 고려시대 여주 지명이 황려(黃麗)라 불렀다고 한다. 즉 여주의 지명 골내근면-황효-황려-여흥-여주로 변천되었는데, 황려 지명은 이 마암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여주 출신 대문호 이규보의 한시중 "두마리 말이 기이하게 물가에서 나왔다 하여, 이 때문에 고을 이름이 황려라 하네" 라고 적은 내용이 있어 그 역사성이 매우 높은 유적이다. 또한 여주의 대표적 성씨 여흥 민씨의 시조가 탄생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여주시를 대표하는 자연경관 유적이다. 그리고 이규보, 이색, 서거정, 최숙정, 김상헌, 정약용, 김창협 등 당대의 시인묵객들이 찾아와 시와 풍류를 즐기던 명소였다. 현재 마암이 시작되는 평평한 바위면에 '馬巖'이라 큰 글씨가, 위쪽에 여주목사를 역임한 '이인응(李寅 應)과 '시월( 十月)' 일각(一刻)이, 오른쪽에 여주군수를 지낸 '申鉉泰(신현태)"라 새겨진 글씨가 새겨져 있다. 

 

ARIRANG - 해는 동해에서 뜬다....박찬감, 2001. 8

 

메세지 2000 ....연제동, 2001

 

쉼.....김성회, 2001. 8

 

상동사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