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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구릅/일상들 ( life )

② 경복궁- ( 2026.05.24 )

by the road of wind 2026. 5. 27.

 경복궁

- ( 2026.05.24 )

 

《  건청궁, 국립민속박물관 주변 》

 

향원정(香遠亭):

1873년 고종이 건청궁을 지을 때 옛 후원인 서현정 일대를 새롭게 조성하였는데 연못 한가운데 인공의 섬을 만들고 그 위에 육각형 정자를 지어서 ‘향기가 멀리 퍼져나간다’는 향원정(香遠亭)이라 불렀다. 원래 조선시대의 정자에는 창호를 두지 않고 사방이 개방되어 있는 것이 보통인데, 이 향원정은 사방에 창호를 달아서 바람을 막을 수 있게 해 놓고 있다. 당시 선진국이라 생각했던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취향교(醉香橋):

취향교는 건청궁 영역과 연못 안에 있는 향원정을 연결하기 위한 둥근 나무다리이다. 원래 향원정 북쪽에 있었으나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자 1953년 향원정 남쪽으로 옮겨 세웠다. 2017년 벌굴조사를 거쳐 취향교 원래 위치를 확인한 후 남쪽 다리는 철거하고, 사진 등을 참고하여 2019년 복원하였다. 

 

열상진원 샘


이 샘은 경복궁 창건(1395) 당시부터 있던 왕궁의 샘으로 옛날부터 물이 맑고 차서 음료수로 이용하였다. 글을 새긴 우물 뚜껑은 경복궁 중건(1868) 때 만든 것이다. 샘에서 솟아난 물이 두번 직각으로 꺾여서 연못으로 잔잔히 흘러들도록 만들었는데 이것은 향원지(香遠池)에 드러워진 정자와 꽃나무의 그림자가 물결에 흔들리지 않고 고요히 비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꺾어지는 수로는 둥근 돌로 통로를 만들어 흐르는 물이 더욱 생기를 띠게 한다.
 

집옥재(集玉齋)   

집옥재는 경복궁 북문인 신무문과 건청궁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고종28년(1891) 창덕궁 함녕전의 별당이었던 집옥재, 협길당 등을 이건한 것으로 서재와 외국 사신 접견소로 사용되었다. 집옥재는 양 옆을 벽돌로 쌓아 전통 양식에 중국풍을 일부 가미하여 만든 건물로 좌,우에는 팔우정과 협길당이 하나의 복도로 연결되어 있다. 

 

추수부용루

 

장안당

 

장안당

 

함광문

 

옥일루

 

곤녕합(坤寧閤):

곤녕합은 명성황후가 일상 생활 공간으로 사용하던 건물로 1895년 10월 8일 명성황후가 일본인 자객에 의해 시해된 을미사변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7년간 왕실 의사로서 왕지를 모신 미국인 앨러스 벙커( Annie Ellers Bunker) 여사는 명성황후에 대해 성품이 부드럽고 친절하며 조선 여성의 미를 갖춘 미인이라고 회상하였다. 1895년 2월 청일전쟁 이후, 일본이 만주까지 침략하자 조선 왕실은 러시아와 손을 잡고 일본을 국내에서 철수시키려 하였다. 이에 일본 군부는 왕실을 압박하는 비상사태를 만들기 위해 10월 8일 새벽에 민간인 복장을 한 일본 장교들이 건달들을 끌고 건청궁에 난입하여 왕비를 시해하였다. 폭도들은 왕비의 시신을 건청궁 동쪽 언덕 녹산 자락에서 태우고 남은 뼈를 그 자리에 묻었다. 이후 왕실에서 이를 거두어 경운궁(현 덕수궁)에 시신을 안치하고 국장을 지냈다.     

 

 

건청궁 (乾淸宮)

경복궁 중건사업이 끝난 이듬해인 1873년, 고종은 경복궁 북쪽 동산정원인 녹산(鹿山)과 향원정(香遠亭) 사이에 건청궁을 건립케 하고 명성황후와 기거하였다. 건청궁의 건축양식은 궁궐의 침전 양식과는 달리 양반가옥 살림집을 응용하여 사랑채(장안당), 안채(곤녕합), 부속건물(복수당), 행각 등으로 구성되었는데 그 규모는 양반가옥 상한선인 99칸의 2.5배 되는 250칸이다. 건청궁이 건립된지 3년이 지난 1876년, 경복궁에 큰불이 나자 고종은 창덕궁으로 생활공간을 옮겼으며, 1885년에 다시 건청궁으로 돌아와 1896년 아관파천 때 러시아공관으로 피신 할 때까지 10여년간 줄곧 이곳에서 지냈다. 한편 건청궁은 1887년 미국의 에디슨 전기회사에서 발전기를 설치하여 우리나라 최초로 전등이 가설된 곳이며, 1895년 을미사변 때 명성황후가 곤녕합에서 일본인 자객에게 시해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일제시대에 들어와 경복궁의 건물들이 차례로 파괴되면서 건청궁은 1909년에 철거되어 이 자리에 조선총독부 미술관이 지어졌으며, 한동안 국립 현대미술관으로 사용되다가 1998년에 철거되었다. 문화재청은 건청궁을 원래 모습으로 복원하여 2007년 10월 부터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다.    

 

취향교(醉香橋):

취향교는 건청궁 영역과 연못 안에 있는 향원정을 연결하기 위한 둥근 나무다리이다. 원래 향원정 북쪽에 있었으나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자 1953년 향원정 남쪽으로 옮겨 세웠다. 2017년 벌굴조사를 거쳐 취향교 원래 위치를 확인한 후 남쪽 다리는 철거하고, 사진 등을 참고하여 2019년 복원하였다. 

 

 

 

국립민속박물관:

 

출입문....재입장 불가

 

 

 

 

=== < ▼ 2024.04.28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내부 >===

송액영신(送厄迎新)...나쁜 액을 쫒아내고, 밝은 새해를 맞이한다는 의미이다. 보통 설 직후 대보름에 날리는 액막이 연 날리기 등에 쓴다.

봄농사...쟁기

화전과 두견주

 

꽃놀이와 봄소풍

봄소풍 가방과 도시락 등

봄나물과 약초

푸른 모시치마, 모시 저고리

가을걷이

추석

배틀

상달 고사

김장

 

 

=== < ▲ 2024.04.28 사진: end >===

 

오촌댁

 

오촌댁(梧村宅):  1984년 남병혁 기증. 원소지: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원구1리

조선후기 이 지방의 중산층 가옥 형태를 잘 보여주는 가옥으로,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원구1리에 있던 것을 남병혁씨로 부터 기증받아 옮긴 것이다. '오촌댁(梧村宅)'이라는 명칭은 영양남씨(英陽南氏) 남용진(1887~1912)이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오촌리 출신의 재령이씨(載寧李氏) 와 혼인하면서 붙여진 택호에서 비롯되었다. 건물이전을 위한 해체 과정에서 "道光貳拾捌季戊申三月二日申時立柱上樑同日時(도광이십팔년무신삼월이일신시입주상량동일시)"라고 적힌 상량문이 발견되어, 건립 연대는 1948년임을 알 수 있다. 가옥의 중앙에 마다이 있는 口자 형태로, 지붕의 용마루가 끊어지지 않고 연결되어 안채와 사랑채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거주공간으로 네개의 방(안방,상방,사랑방,문간방)을 비롯해, 안마루(안대청), 정지(부엌), 물건을 넣어두는 도장방(방에 부속된 수장공간)과 고방(창고방)이 있다. 외부출입은 뒤쪽을 제외한 세 방향이 다 가능하며 뒷마당에는 장독대를. 오른쪽 마당에는 디딜방앗간과 우물, 화정실을 배치했다.

 

물레방아

 

 

 7080 추억의거리:

  

7080 추억의거리  


01. 북촌국민학교, 02. 현대문구, 03. 근대화수퍼, 04. 꾸러기만화, 05. 만나분식, 06. 화개이발관, 07. 풍년상회, 08. 약속다방, 09. 스타의상실, 10. 서울사장, 11. 종합전파사, 12. 장수탕

 

근대화슈퍼 & 현대문구사

 

꾸러기 만화

 

화개이발관

 

 

약속다방

 

풍년쌀상회, 풍년참기름집

 

한일칼라 서울사장, 스타의상실

 

스타의상실, 종합전파사

 

약속다방

전축 라듸오, TV, 전기재료 종합전파사

 

한일칼라 서울사장

 

장수탕

 

7080 추억의 거리

옛 국민학교 (현 초등학교)

 

연자방아

 

문인석

 

효자각

 

국립민속박물관 안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