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구릅/일상들 ( life )

② 용문산 용문사. 1000년 고목 은행나무- ( 2026.07.11 )

by the road of wind 2026. 7. 13.

 용문산 용문사. 1000년 고목 은행나무

- ( 2026.07.11 )

 

해탈교

 

사천왕문

 

coffee & 전통차

 

템플스테이

 

범종각

 

용문사 천년 은행나무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천연기념물 제30호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의 나이 약 1,100살 이상으로 추정되며, 높이가 42m이고, 뿌리 부분의 둘레는 약 15.2m이다. 우리나라 은행나무 가운데 가장 높고 오래되었다. 나무 줄기 아래쪽에 혹처럼 큰 돌기(突起)* 가 나있는 것이 특징이다. 나이가 많은 나무 임에도 불구하고 매년 약 350kg 정도의 열매를 맺는다. 용문사 은행나무가 오래된 만큼 여러 전설이 전해진다.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땅에 꽂았더니 뿌리를 내려 나무가 되었다고 하며, 신라 마지막 태자였던 마의태자가 나라를 잃은 슬픔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는 길에 심었다고도 한다. 나라에 재앙이 있으면 용문사 은행나무가 소리를 내어 그것을 일렀다고 전한다.  조선 고종이 세상을 떠났을 때 큰 가지 하나가 부러져 떨어졌다고 한다. 정미의병 때(1907) 일본군이 용문사에 불을 질렀으나 용문사 은행나무만 타지 않았다. 오랜 세월 속에서도 불타지 않고 살아남아 용문사 입구를 지키고 있다하여 '천왕목 天王木'  이라고 불린다. 

* 돌기 突起: 도드라져 나온 부분.

 

용문사(龍門寺): 

신라 신덕왕 2년(913) 대경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며, 일설에는 경순왕(927~935재위)이 친히 행차하여 창사 하였다고 한다. 고려 우왕 4년(1378) 지천대사가 개풍 경천사의 대장경을 옮겨 봉안하였고 조선 태조 4년(1395) 조안화상이 중창하였다. 세종 29년(1447) 수양대군이 모후 소헌왕후 심씨를 위하여 보전을 다시 지었고 세조 3년(1457) 왕명으로 중수하였다. 성종 11년(1480) 처안스님이 중수한 뒤 고종 30년(1893) 봉성 대사가 중창하였으나, 순종원년(1907) 의병의 근거지로 사용되자 일본군이 불태웠다. 1909년 취운스님이 큰방을 중건한 뒤 1938년 태욱스님이 대웅전, 어실각, 노전, 칠성각, 기념각, 요사등을 중건하였으며, 1982년부터 지금까지 대웅전, 삼성각, 범종각, 지장전, 관음전, 요사채, 일주문, 다원 등을 새로 중건하고 불사리탑, 미륵불을 조성하였다. 경내에는 권근이 지은 보물 제531호 정지국사부도 및 비와 지방유형문화재 제172호 금동관음보살좌상, 천연기념물 제 30호 은행나무가 있다.  

 

용문사 안내도

01 대웅전, 02 지장전, 03 금동관음보살좌상 (보물 제1790호), 04 개금불사전, 05 삼층사리탑, 06 종무소, 07 심검당, 공양간, 08 취모검당, 09 다선향실, 10 설선당, 11 미소전, 12 칠성각, 13 산령각, 14 범종루, 15 템플스테이 달심원, 16 템플스테이 휴월당, 17템플스테이 선월당, 18템플스테이 수월당,  19   템플스테이 빛채움당, 템플스테이 사무실,  20 부도전, 21 사천왕문, 22 정지국사부도 (보물제531호),  23  정지국사비 (보물제531호), 24 은행나무 (천연기념물 제30호), 25 용문산 등산로 입구, 26 전통찻집 미르, 27 용유정, 28 물소리길, 29 석조약사여래좌상  

 

양평 의병전투지 - 용문사

1907년 후기 의병 당시 양평의병의 근거지였던 곳이다. 일제가 광무황제를 강제 퇴위 시키고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 시키면서 의병의 대일항전은 더욱 격화되었다. 이즈음 양평의병은 용문산의 용문사를 비롯하여 상원사, 사나사를 근거지로 삼아 활동하였다. 권득수 의병장은 의병을 모집하여 용문사에 식량과 무기를 비축해 놓고 항일활동을 펼쳤다. 조인환 의병장은 용문사를 근거지로 삼아 인근 지역의 관아와 파출소, 우편소 등을 습격하여 일제에게 큰 피해를 입혔다. 양평의병이 활발하게 항일전을 전개하자, 일제는 의병을 탄압하기 위해 군대를 퍄견하였다. 양평의병은 1907년 8월 24일 일본군 보병 제52연대 제9중대와 용문사에서 격전을 벌였다. 이 때 용문사는 일본군에 의해 소실되었다가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복원되었다. 

 

용문사 천년 고목 은행나무 앞에 노란 은행잎 모양의 종이(소원지)를 걸어두는 행위는 애니미즘(정령 숭배·수목 신앙)과 불교의 기복 신앙이 융합된 형태라고 한다. 우리나라 민간 신앙의 전통이 사찰이라는 불교적 공간과 결합하여 나타난 독특한 종교 문화적 현상이라고 한다. 과학이 최고조로 발달한 오늘날에도 이런 기복신앙이 보이는 것은 우리 인간의 정신 세계는 복잡 오묘하여 이해할 수 없는 것 같다. 

 

 

은행나무 돌기

 

↖ 등산로, ↖ 마당바위, ↖ 용각바위

 

" 자비무적 "

 

삼층사리탑

 

종무소

 

대웅전

 

지장전

 

 

용문산 등산로 입구

 

용문산 권역 등산 안내도...(현위치)

 

1코스:  용문산관광지 - 마당바위 - 능선길 - 정상 ( 4.4km, 왕복 6시간 )
2코스:  상원사 - 장군봉 -  정상 ( 2.7km, 왕복 6시간 )
3코스:  새수골 - 백운봉 -  장군봉 -  정상  (5.3km, 왕복 6시간 )
4코스:  사나사 -  장군봉 -  정상  ( 4.5km, 왕복 8시간 )
5코스:  쉬자파크 - 두리봉 - 백운봉 -  장군봉 -  정상  ( 7.2km, 왕복 9시간 )

 

용문산의 유래:


"용이 드나드는 산", "용이 머무르는 산", 용문산의 원래 이름은 미지산(彌智山)이라고 전해온다. "미지"는 미리(彌里) 의 옛 형태이고, 미리는 경성과 제주지방의  "용"의 방언이며 "용"의 옛말인 "미르"와도 음운이 비슷하여 "용"과 연관이 있다. 즉 미지산이나 용문산이나 뜻에서 별차이가 없으며 언제부터 "미지산"에서 "용문산"으로 바뀌어 불렀는지 정확치 않으나 조선 태조 이성계가 용이 몸에 날개를 달고 드나든 산이라 하여 "용문산"이라 칭했다는 설화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가섭봉의 유래:


"석가봉", "아난봉"과 같이 "용문산 불교3봉"인 가섭봉은 부처님에게 염화시중의 미소를 보낸 "마하가섭"의 "가섭존자"를 칭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1봉인 가섭봉(1157m)에 이어 석문(1127m), 장군봉(1056m), 백운봉(940m), 함왕봉(887m), 도일봉(864m), 중미산(801m) 순으로 펼쳐져 있다. 1831년 정초 때 초의선사가 영문산을 여행하여 남긴 일기에서 수월암(새수골)에서 하루를 자고, 가섭봉에 올라 가서 운필암과 상원암을 거쳐 용문사에 이르렀다" 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19세기에 용문산 정상이 가섭봉으로 통칭 되었음을 알 수 있다.    

 

-> 용문산 3.0km, -> 마당바위 1.9km

 

▶ 되돌아 가는 길:

기념품 샵 수리 중...천정에 물이 새는가?

 

龍門八景  용문팔경    (其一) (기일)  

龍門寺曉鐘  (용문사효종)   
용문사 새벽 종소리  

北寺長鳴祭佛鐘 (북사장명제불종) :  북쪽 절에는 예불 올리는 종소리 길게 울리어
醒來萬像曙光濃 (성래만상서광농) :  잠깨어 보니 만가지 형상은 새벽빛이 짙구나
疎星点点風廻樹 (소성점점풍회수) :  별들은 여기저기 보이고 바람은 나무숲을 감돌고 
宿霧沉沉月在峰 (숙무침침월재봉) :  새벽안개 자욱한데 산봉우리에 달만 걸쳐있네    

謙齋 梁昌錫 作   野隱 洪正杓 解譯  (겸재 양창석 작  야은 홍정표 해역)
楊平郡 龍門面 謹竪  (양평군 용문면 근수)

 

어떤 분쟁으로 솔바람 문이 닫혀있다.

 

산나물홍보관

龍門山寺次僧軸韻  ( 용문산사차승축운 )
용문사에서 스님의 시축에 차운하여 쓰다

                                月沙 李廷龜 作 (월사 이연귀 작)  

槎牙水石路高低 차아수석로고저       - 물 속 바위는 들쑥날쑥 길은 오르락 내리락
群壑生陰日欲西 군학생음일욕서       - 골짜기마다 그늘지고 해는 서쪽으로 지려하네
花暝小庵春寂 화명소암춘적적       - 꽃이 희미한 작은 암자에 봄은 고요하여
慾尋眞境使人迷 욕심진경사인미        - 선경을 찾는 사람 갈 곳을 몰라하네 
  
                              常山 申載錫 (상산 신재석)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개천 물에 시원한 여름 한 때...

 

答雄上人餉龍門山 (답웅상인향용문산)
蔬兼以蠟燭見遺 (소겸이랍촉견유)  
        容齋 李荇 作 (용재 이행 작)

 

 上人分餉意如何 (상인분향의여하)
 慙愧吾生食有魚 (참괴오생식유어)
永夜小齋明燭坐 (영야소재명촉좌)
却思歸采故山蔬(각사귀채고산소)

 

웅상인이 용문산 나물과 
밀랍 초를 선물한 데에 답례하다.

 

스님이 산나물을
나누어준 뜻은 무엇일까
고기 반찬을 먹는
내가 부끄럽구나
긴긴 밤 서재에서 촛불
밝히고 앉아 있으니
다시 돌아가 고향산
나물을 캐고 싶구나
     
    
   

* 이행(李荇) (1478~1534):  호는 용재(容齋). 조선전기 우찬성, 이조판서, 우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후손이 편찬한 용재시선( 容齋 詩選)으로 용재집(容齋集)이 있다.

 

龍門僧惟善餉軟蔬謝奇  (용문승유선향연소사기)
용문산 승려 유선이 연한 나물을 보내주어 감사하며 시를 보내다                 
                                            墓齋 金安國 (묘재 김안국)

山蔬香軟擅龍門  산소향연천용문  -  유명한 용문산 나물 향기롭고 연하며
遠香深知厚意存  원향심지후의존  -  멀리서 보내주시니 후한 뜻을 깊이 알겠네
方丈膏梁何足羨  방장고량하족선  -  주지스님이 보낸 음식 부러울 것 없이 족하며
一簞裹罷負榮喧  일단과파부영선  -  한 바구니 싸온 음식 다 먹고 나니 부귀영화 부럽지 않네

 

潤筆菴 (윤필암
                      錦溪 李根元 (금계 이근원)

高歌更上一層山(고가갱상일층산)    큰 소리로 노래 부르며 오르고 올라
渺渺千巖萬樹間(묘묘천암만수간)    아득한 숲속 사이에 바위들 솟아있네
日晏天晴人氣定(일안천청인기정)    해는 늦어 하늘은 맑고 인적 드문데
鳥啼花落春心閑(조제화락춘심한)    새 울고 꽃이 지는 봄 정취 한가롭네
 

龍門八景詩 (용문팔경시)
                           謙齋 梁昌錫 作詩  (겸제 양창석 작시)  

龍門寺曉鐘(용문사효종):  용문사 새벽 종소리

其一 (기일)
北寺長鳴祭佛鐘   북사장명제불종    - 북쪽 절에는 예불 올리는 종소리 길게 울리어
醒來萬像曙光濃   성래만상서광농    - 잠깨어 보니 만 가지 형상은 새벽빛이 짙구나.
疎星点点風廻樹   소성점점풍회수    - 별빛은 여기저기 보이고 바람은 나무 숲을 감돌고
宿霧沈沈月在峰   숙무침침월재봉    - 새벽 안개 자욱한데 산봉우리에 달만 걸쳐 있네.

鳥溪十二灘(조계십이탄):  조계골 열두 여울


其二 (기이)
渡渡淸流十二灘   도도청류십이탄    - 맑게 흐르는 열두 여울 넘고 또 건느니,
層岩絶壁鳥聲歡   층암절벽조성환    - 층암 절벽 위에 새소리 마냥 즐겁구나.
山脫俗容皆石骨   산탈속용개석골    - 산은 헐벗어 돌뼈만 앙상한데
花爲客寵盡紅顔   화위객총진홍안    - 꽃은 지나는 길손에 사랑 받아 참으로 붉구나.

潤筆庵歸雲(윤필암귀운):   윤필암 돌아가는 구름


其三 (기삼)
袈娑峰下細雲歸  가사봉하세운귀  - 가사봉(袈裟峯) 아래 실구름이 돌아가고,
占雨早喜欲農飛 점우조희욕농비   - 가뭄에 때 맞춰 비내리니 농부는 기뻐 날을 듯 하네.
一字度山過去後  일자도산과거후  - 능선길 따라 산에 오르니 예나 지금이나 변함 없고
 古庵歷歷夕陽輝 고암력력석양휘  - 옛 암자만 석양빛에 역력하구나.

鳳凰臺淸風(봉황대청풍):  봉황대의 맑은 바람


其四 (기사)
鳥啼古木恨臺空 조제고목한대공  - 새는 고목에서 노래하는데 누대는 텅 비어 있고
花發層巖蘸水紅 화발층암잠수홍  - 층층바위 위에 꽃은 피어 물에 밝게 비치네.
滿檻淸風吹不盡 만함청풍취불진  - 맑은 바람 난간에 가득한데 바람 그칠 줄 모르며,
幾人到此灑胸中 기인도차쇄흉중  - 몇 사람이나 이곳에 올라와 가슴 속을 씻었을까?

七寶山晴嵐(칠보산청람):  칠보산의 아지랑이


其五 (기오)
七寶從巃十里南  칠보종롱십리남  - 칠보산의 높고 험준한 봉우리 남으로 십 리나 뻗은 것이
勢如天畔走驚驂 세여천반주경참   - 기세는 하늘 둑과 같고 곁말이 놀라 달아나는 듯하구나.
雲歸歷歷嵐生岫  운귀역역람생수  - 산봉우리에 구름이 돌아간 자리는 아지랑이 일고
一朶碧似芙蓉藍 일타벽사부용람   - 한 송이 연꽃처럼 아름다운 산은 쪽빛 같이 푸르구나.

中原山瀑布(중원산폭포):  중원산 폭포


其六 (기육)
百尺斷崖掛白紅  백척단애괘백홍  - 높고 높은 낭떠러지에 흰 무지개 걸쳐 있고,
雷鳴千古一山空  뢰명천고일산공  - 우뢰 같은 폭포소리 수천 년 허공을 울리네.
歸雲恒宿層岩畔 귀운항숙층암반   - 돌아가는 구름은 항상 층층바위 둑에서 쉬어가고
積水長春大대中 적수장춘대대중   - 쌓인 물은 큰 물방아 찧 듯이 길게 흐르네.

黑川漁笛聲(흑천어적성):  흑천의 어부 피리소리


其七 (기칠)
山晴野遠繞長川  산청야원요장천  - 맑은 산과 들을 멀리서 휘감아 길게 흐르는 물
漁笛聲中日似年  어적성중일사년  - 고기 잡는 피리소리 해마다 같구나.
吹盡滄浪人不見 취진창랑인불견  - 창랑가 불기 다하자 사람은 보이지 않고
白鷗飛下夕陽天 백구비하석양천  - 흰 갈매기만 석양 하늘에 날아 내리네.

白雲峯落照(백운봉낙조):  백운봉의 저녁 노을


其八 (기팔)
落照吐紅染白雲 낙조토홍염백운  - 저녁 햇빛 붉게 토하여 흰 구름을 물들이고,
萬鱗況惚畵龍燻 만린황홀화용훈  - 수많은 비늘이 황홀한 용의 그림자처럼 불타듯 하네.
靑山到影忙歸客 청산도영망귀객  - 푸른산 그림자 이르니 돌아가는 길손 갈 길이 바쁘며
蕭寺暮磬祭釋君 소사모경제석군  - 해 저문 쓸쓸한 절에 부처님 예불 경쇠 소리 들린다.

 

回龍門寺途中遇雪有作 (회용문사도중우설유작)
용문산을 돌아오던 중에 눈을 만나 글을 짓다.  

                                   -  龍門趙昱 (용문조욱)  

春風吹雪欲沾衣 (춘풍취설욕점의)
强策羸驂上翠微 (강책리참상침의)
絶壑層雲迷舊路 (​절학층운미구로)
細尋淸磬認禪扉 (세심청경인선비)  

 봄바람이 눈을뿌려 옷깃을 적시는데
 야윈말을 채찍질하며 산허리에 오르네
 깊은 골짝 층층구름 옛길 희미하고
 맑은 풍경소리 찾아가니 절 문이 보이는구나.​  

○ 조욱(趙昱)(1498~1557):  조선의 유학자. 자는 경양, 호는 용문. 조선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였으나 벼슬에 오르지 않고 용문산으로 들어가 성리학을 연구하였다. 그의 높은 학식과 인격이 세상에 알려지자 '용문 선생'이라 불리었다. 명종 때 현사로 뽑혀 선무항 내 섬주부직을 받았고, 장수 현감을 지냈다. 당시의 저명한 학자인 이황·서경덕과도 가깝게 지냈다. 시, 그림에도 뛰어났으며 죽은 후 이조참의에 추증되었다. 저서로 《용문집》이 있다. 운계서원(雲溪書院)에 제향되었다.
 

용문관광단지 버스 정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