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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구릅/일상들 ( life )

덕수궁 - ( 2017.06.18 )

by the road of Wind. 2017. 6. 19.

덕수궁 - ( 2017.06.18 )



지나번 경희궁, 그리고 경복궁을 관람한 후 서울의 고궁 (4대궁- 경복궁,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을 차례로 다녀보고픈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 오후 서울시청 앞 정동의 덕수궁을 다녀왔다.  현재의 덕수궁은 전각이 많지않은 규모의 궁궐이다. 그러나 시내 중심가에 있고, 편리한 교통 등으로 외국인 등 많은 사람들이 관람하는 궁궐이다. 덕수궁궐을 관람하게 되면 그동안 모르고 지내오던 역사에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그러면서 격변의 근대사의 우리나라의 어려운 처지를 느낄 수도 있었다. 힘없는 나라는 망하고, 백성은 고초를 당한다는 역사적 사실을 직감할 수 있었다. 국제정치에서는 모든 국가의 생존은 오로지 힘이다. 부국강병책이야 말로 최선의 정책이다. 역사가 증명해 준 것이다. 덕수궁을 거닐며 국란과 관련한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덕수궁은 조선시대를 통틀어 크게 두 차례 궁궐로 사용되었다. 덕수궁이 처음 궁궐로 사용 된 것은 임진왜란 때 피난 갔다 돌아온 선조가 머물 궁궐이 마땅치 않아 월산대군의 집이었던 이곳을 임시 궁궐(정릉동 행궁)로 삼으면서 부터이다. 이후 광해군이 창덕궁으로 옮겨가면서 정릉동 행궁에 새 이름을 붙여 경운궁이라고 불렀다. 경운궁이 다시 궁궐로 사용된 것은 조선 말기 러시아 공사관에 있던 고종이 이곳으로 옮겨 오면서부터이다.  조선 말기 정국은 몹시 혼란스러웠다. 개화 이후 물밀듯 들어온 서구 열강들이 조선에 대한 이권 다툼이 치열했기 때문이다. 고종은 러시아공사관에서 돌아와 조선의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새로 환구단을 지어 하늘에 제사를 지낸 뒤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대한제국 선포는 조선이 자주 독립국임을 대외에 분명히 밝혀 정국을 주도해 나가고자 한 고종의 선택이자 강력한 의지였다. 대한제국의 위상에 맞게 경운궁 전각들을 다시 세워 일으킨 것도 이과 같은 맥락이다. 고종 당시의 궁궐은 현재 정동과 시청 앞 일대를 아우르는 규모로 현재 궁역의 3배 가까이 이르렀다. 그러나 고종의 의지와 시도는 일제에 의해 좌절되고, 고종은 결국 강압에 의해 왕위에서 물러났다. 이때부터 경운궁은 ‘덕수궁’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고종에게 왕위를 물려받은 순종이 창덕궁으로 옮겨가면서 고종에게 장수를 비는 뜻으로 ‘덕수’라는 궁호 (공덕을 칭송하여 올리는 칭호)를 올린 것이 그대로 궁궐 이름이 되었다. 고종은 승하할 때까지 덕수궁에서 지냈으며, 덕수궁은 고종 승하 이후 빠르게 해체, 축소되었다. 개화 이후 서구 열강의 외교관이나 선교사들이 정동 일대로 모여들면서 덕수궁도 빠른 속도로 근대 문물을 받아들였다. 덕수궁과 주변의 정동에는 지금도 개화 이후 외국 선교사들에 의해 건립된 교회와 학교, 외국 공관의 자취가 뚜렷이 남아 있다. 덕수궁이 다른 궁궐들과 달리 서양식 건축을 궐 안에 들인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고종 당시의 궁궐 면모에는 크게 못 미치지만, 덕수궁에는 저마다 사연을 안은 유서 깊은 전각들이 오순도순 자리하고 있다. 석어당에서 석조전에 이르는 뒤쪽에는 도심의 번잡함을 잊게 하는 호젓한 산책로도 있다. 파란만장한 근대사의 자취를 기억하는 덕수궁은 서울에서 손꼽히는 산책로인 정동길과 더불어 도심의 직장인과 연인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 ( 문화재청 )



덕수궁 연표:


1932년 (태조1) 조선개국
 

1500년대 (임시행궁):
1592 (선조25) 임진왜란 발발.

1593 (선조26) 의주까지 피난 갔던 선조가 한양으로 돌아와 옛 월산대군의 저택을 임시행궁으로 삼고, '정릉동 행궁'이라 부름.

1595 (선조28) 궁역의 동쪽과 서쪽에 문을 세움 
 

1600년대 (법궁):

1608 (선조 41) 선조 석어당(추정)에서 승하. 다음날 광해군 즉조당(추정)에서 즉위.

1611 (광해 3)  광해군 창덕궁으로 옮김. 정릉동 행궁을 ‘경운궁(慶運宮)’이라 칭함. 12월 광해군 다시 경운궁으로 옮김.

1615(광해 7)  광해군 창덕궁으로 다시 옮김.

1618(광해 10) 인목대비의 를 폐위하고 석어당에 유폐.  

1623 (인조 1) 인조, 반정에 성공한 뒤 즉조당(추정)에서 즉위, 창덕궁으로 옮김.


1800 - 1900년대 :(대한제국의 멸망)
1876 (고종13) 강화도 조약 체결, 문호개방 시작.

1896 (고종33) 고종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

1897 (고종34) 고종 러시아공사관에서 경운궁으로돌아옴.

1897 (광무 1)  대한제국 선포. 고종 황제 즉위. 연호를 광무(光武)라 정함. 

1904 (광무 8)  러일전쟁 발발함. 대화재로 중화전, 석어당, 즉조당, 함녕전 등 전각 소실.

1905 (광무 9)  증명전에서 을사늑약 체결.

1906 (광무10)  대안문(大安門) 수리하고 대한문(大漢門)으로 개칭.

1907 (융희 1) 순종 창덕궁으로 옮김. 경운궁을 덕수궁으로 부르기 시작.
1910 (융희 4)  석조전 완공.

1919 고종,함녕전에서 승하함.

1938  석조전 서관 완공. 이왕가미술관(李王家美術館)으로 개관.

1945  광복

1946  석조전에서 미소공동위원회 열림.


2011 증명전 개관.

2014 석조전 대한제국역사관 개관.



* 덕수궁 관람정보:


- 관람시간: 09:00-21:00

- 입장시간: 09:00-20:00

- 휴궁일   : 매주 화요일.

- 관람요금: 개인(만24-64세) 1,000원/ 단체(10인이상) 800원/ 만24세이하 밑 만 24세이상: 무료. 통함관람권 10,000원 <4대궁(경복궁,창덕궁과 후원, 창경궁, 덕수궁) 과 종묘 관람 가능>





대한문(大漢門)....덕수궁의 정문 ...오후3:20분인데 수문장 교대시간이 있다고 한다.

대한(大漢)’은 ‘한양이 창대해 진다’는 뜻이고, 한양(漢陽)한수(漢水), 곧 한강(漢江)에서 유래한 것으로, ‘한(漢)’은 ‘하늘’, ‘한수(漢水)’는 ‘은하수(銀河水)’를 뜻한다. 현판글씨는 특진관(特進官) 남정철(南廷哲)이 쓴 것이라한다. 


남정철(南廷哲, 1840~1916) : 자는 치상(穉祥), 호는 하산(霞山), 본관은 의령(宜寧). 조선 후기 학자 유신환(兪莘煥, 1801~1859)의 문인이다. 1894년 특진관(特進官 : 궁내부에서 왕실 일을 보좌하던 벼슬)이 되었고, 1909년(융희 3) 나이 많은 문신들을 예우하기 위해 만든 기구인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1910년 국권이 피탈되자 일본 작위인 남작(男爵)을 받았다.   




대한문을 뒤돌아 보다...



대한문을 측면에서 뒤돌아보다.


대한문 오른쪽의 '돌담길' ....음료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


수로...


덕수궁 뜨락...무성한 숲이 있어 좋았다.


덕홍전, 함녕전 방향..


덕홍전, 함녕전 행랑채...


함녕전 출입문..


함녕전...


함녕전 :1897년 건립되었으며, 내전의 주요 전각으로, 고종의 편전이자 침전으로 사용되었다. 1904년 4월 함녕전 온돌 수리 공사 중 일어난 화재로 함녕전은 물론 덕수궁 내 주요 전각들이 모두  소실되었고 함녕전은 같은 해 12월에 중건되었다. 1919년 1월 21일 고종께서 이곳에서 승하하였다. 보물 제820호.



덕홍전 방향..


함녕전 오른쪽 방향의 행랑..


함녕전 내부...


덕홍전...



덕흥전: 함녕전을 고종의 침전으로 사용할 때 일반 빈객들을 접견하기 위하여 1906년 건립한 후 1911년에 개조하였다. 덕홍전은 주로 황제가 외국 사신이나, 대신들을 만나던 접견실로 쓰였다고 알려져 있다. 건물은 겹처마 팔작지붕의 단층 건물이다. 이 건물 주위에는 행각들이 있었으나 지금은 남행각 일부만 함녕전 남행각에 연접되어있다.



중화문 가는 길에...  덕홍전 왼쪽...푸른 지붕의 정광헌이 보인다. 


측면의 중화전...덕수궁의 정전이다.


오른쪽의 중화문으로 다가 가본다. 나무 그늘밑 쉼터 의자가 많이 보인다.



중화문....중화전의 정문...


중화문 왼쪽편에 광명문... 원래 함녕전의 정문이었으나 지금은 석조전 맞은편 숲에 따로 서있다.



광명문 앞에서 바라본 석조전 및 앞 뜨락.....왼쪽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중화전 방향...


중화문 곁릉 지나다..


덕수궁의 정전...중화전...앞에 품계석이 도열해 있다. 



중화전...


○ 중화전: 덕수궁의 중심 건물로 임금님이 하례(賀禮)를 받거나 국가 행사를 거행하던 곳이다. 광무 6년(1902)에 지었으나 1904년 불에 타 버려 지금 있는 건물은 1906년에 다시 지은 것들이다.




中和殿_중화전 현판 글씨..

중화전 임금님 용상...


중화문 방향...


함녕전, 대한문 방향..


중화전을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면서 바라본 덕홍전함녕전..


중화전 우측면에서 바라본 석어당...2층 건물이다.



석어당...


석어당:  창건 연대 미상. 1904년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같은 해에  중건하였다. 덕수궁의 유일한 중층의 목조 건물로 선조가 임진왜란 중 의주로 갔다가 환도한 후 이곳에서 거처하였고, 1608년 2월 선조가  승하한 곳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또한 인목왕후가 광해군에 의해 유폐되었던  곳이기도 하며, 인조반정이 성공한 뒤 광해군을 석어당 뜰 아래 꿇어 앉히고 광해군의 죄를 문책한 곳 이기도하다. 단청을 하지 않은 "백골집"으로 아래층은 정면 8칸, 측면 4칸이며 위층은 정면 6칸, 측면 1칸으로  겹처마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석어당 왼쪽의  즉조당..


석어당 측면...



준명당...



즉조당...


중간의 준명당..현대식 석조전, 준명당, 즉조당이 나란히 있다. 


현대식 건물인 석조전...



중화전 뒷 모습...


석조전...


 
덕수궁 석조전 은 1910년에 완성된 대한제국의 대표적인 서양식 건물입니다. 고종[광무황제]에 의해  황제국이 선포된 후 대한제국 황궁의 정전으로 만들어졌으며, 엄격한 비례와 좌우대칭이 돋보이는  신고전주의양식으로 내부에는 접견실과 대식당, 침실, 서재 등을 갖춘 근대 건축물입니다. 대한제국 황실의 품격이 살아 있는 석조전 대한제국역사관은 ‘지층-1층-2층’의 총 3개의 층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지층은 시종들의 공간으로 사용이 되던 곳을 대한제국의 근대 개혁과 신물문의 도입, 석조전 복원 기록을 담은 전시실로 되어있습니다. 1층은 접견실과 대식당 등 대한제국 황실의 공적인  업무를 보던 공간으로 재현실과 대한제국의 정치, 외교 의례 등에 관한 전시실로 되어 있으며, 2층은 황실 소개와 함께 대한제국 황실의 사적인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 문화재청 >


석조전의 주요 연혁:


1910년 : - 경운궁[현 덕수궁] 석조전 준공
1911년~1922년:-  영친왕 방문시 임시 숙소
1933~1945년:-  덕수궁미술관과 이왕가미술관
1946~1947년:- 미소공동위원회 회의장
1955~2004년:-  국립박물관, 궁중유물전시관 등




석조전 앞에서 바라본 준명당과 즉조당 ...


석조전에서 바라본 중화전 방향..


멋스런 나무..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석조전과 국립현대미술관 연결 통로...↑ 후원, -> 덕수궁사무실, <- 미술관 사무실,


다시 2층 건물 석어당 방향...정관헌을 찾아간다... 



정관헌 출입문..


정관헌...


정광헌은 러시아 건축가 사바찐이 설계했으며 '조용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공간'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정세 속에서 잠시나마 여유를 가지고 생각에 잠겼을 고종의 모습이 짐작되는 곳이다. 한식과 양식을 절충해 설게한 건물이다. 지금은 여기 잠시 앉았다 갈 수도 있다. 일반인들도 잠시 잠깐이라도 덕수궁 정관헌에서 세상을 조용히 바라볼 수 있으며 좋을 것이다.


정관헌 내부...


정관헌에서 덕홍전, 함년전을 바라본다..


정광헌을 다시 나와서 후문 방향으로 걸어간다..



덕수궁 평면도 중 돈덕전 부분...1907~1910년 추정....복원공사가 한창인 것 같다. 후문 오른쪽이다..



후문 앞의 석조전..


덕수궁 후문 (평성문) 을 나서다....정동제일교회방향...


구세군 성전 방향....내가 가는 방향이다..


고풍스런 구세군 중앙회관 건물...


구세군 서울제일교회..


덕수초교 수영장..


덕수초교 내부 교정.....


담장이 둘러쳐진 커다란 공터 건너편에 구러시아공사관정동공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