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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구릅/나의 산행

② 북한산 영봉 ( 604m)  - ( 2018.04.10 )

by the road of Wind. 2018. 4. 11.

북한산 영봉 ( 604m) - ( 2018.04.10 )


< 하루재- 백운대탐방지원센터- 도선사- 봉황각, 손병희선생 묘소- 우이동 >



하루재:

하루재 이정표....<- 백운대 1.4km, <- 0.2km 인수대피소(경찰산악구조대),  ↘ 백운대탐방지원센터 0.7km, ↖ 영봉 0.2km, 육모정공원지킴터 2.8km. 


백운대 가는 길...


하루제 쉼터....


백운탐방지원센터 (도선사주차장) 가는 길....나는 이 길로 하산한다. 그리고 도선사를 구경해 볼 생각이다..


겨울을 이기고 나온 조그만 앙증맞은 노란 야생화....


<- 0.4km 하루재, <- 1.8km 백운대, -> 0.3km 백운탐방지원센터, ↖ 1.5km 백운대2공원지킴터..



백운탐방지원센터:

자연, 우리의 미래...


멧돼지는 산으로! 시범 프로젝트...


추진기간: 2016년3월- 12월(9개월)

대상지역: 북한국립공원 및 인근 6개 지구 (은평구, 서대문구, 종로구, 성북구, 강북구, 도봉구) 

현황조사: 서식현황, 행동권 분석, 인식조사

서식환경개선: 샛길차단, 유기견 관리, 먹이보호 등 





도선사:


삼각산 도선사...일주문...



도선사: 소재지: 서울시 강북구 삼양로 173길 504.


도선사 (대방중창기(大房重創記))에 의하면 신라말 도선국사가 삼ㄱ닥산의 산세가 절묘하고 풍광이 깨끗한 이곳에서 천년후 말세불법이 재흥하리라 예견하고 862년에 창건한 것ㅇ로 전해진다. 도선국사는 사찰을 창건하며 큰 바위를 반으로 잘라 그 한쪽 면에다 20여척에 달하는 관세음보살상을 주장자로 새겼다고 한다. 이후 한동안 기록이 전하지 않다가 조선 후기에 북한산성의 수호사찰이 된 기록이 전한다. 1864년에 김좌근(金佐根)의 시주로 가람을 정비하고 칠성각이 건립되었다. 이후 1880년에 칠성탱화와 신증탱화가 새롭게 조성되었다. 1887년 임준(任準)스님이 주석하며 마애관음보살상 앞에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오층석탑을 웠다. 1903년에는 고종의 명을 받아 관수(寬守)스님에 의해 삼신각이 신축되었다. 이듬해인 1904년 황제로 부터 정식으로 원찰로 인정받아 가람의 기틀을 이루었다. 그러나 1912년 6월 홍수로 서별당과 승료가 떠내려가는 피해를 입었으나, 이를 계기로 다시 중창을 하였다. 1926년에는 대방의 후불탱화가 조성되었다. 이후 한국불교의 정화운동을 주도한 청담대종사가 주석하면서 오늘날 호국참회도량의 면모를 갖추었다.







길은 사람이 존재하는 한 언제나 있고

그러므로 그 길은 영원하다.

인간의 깨달음 역시 마찬가지다.

완성이란 언제나 없다. 완성이란

죽음뿐이다. 그리고 그 죽음도 다만

탈바꿈에 지나지 않는다. 뜬 구름같은

우라의 삶, 끊임없이 나가고 잇을 뿐이다.


그 길에 어느때는 저토록 붉은

노을이 내리고 바가 내리고 인간의

외로운 발자국이 남겨지리라.

그 길은 나에게 젊음을 빼앗아갔다.

그러나 그 길은 더 많은 것을 나에게

바라고 또 주겠노라고 약속하고 있다.


- 청담 대종사 '마음' 에서 -



도선사 가는 길...노란 개나리...봄이구나!


信念無敵_신념무적....확고한 신념만 가지고 있으면 두려울 것이 없다.



도선사... 처음 청담기념관, 호국참회원,  오른쪽 범종각...


범종각..


적묵당....보수공사중..


호국참회원..


적묵당...


호국참화원...


대웅전...음 사월 초파일 석탄일을 위해 연등 걸이를 하고 있다. 온통 사찰이 연등으로 붉은 색이다....


다층석탑...





삼성각 옆에서 바라보는 연등...



삼성각 뒤에 녹음으로 범문을 하고 많은 어머니들이 기도하고 있다...



참회도장...


대웅전..





호국참회원 측면...


윤장대...


보리수,  명부전...


보리수...이 나무는 인도 가야산 원산으로, 피나무과에 속한 갈잎 큰키 나무로, 초 여름에 담황색 꽃이 피고 지름이 8mm가량의 열매를 맺는다. 이 열매로 염주를 만드는 까닭에 염주나무, 또는 부처님께서 보리수 아래서 고행 끝에 성불하신 인연으로, 불가에서는 이 나무를 각수(覺樹), 성수(聖樹)라 하며, 사원 근처에 심고 지성껏 가꾸어 부처님의 위대한 깨달음을 기려왔다. (수령 약 200년)


우이동 하산:


도선사에서 하산하면서 바라보는 우이동 방향...


천왕문...


하산 길...차도차 도로 곁에 타이어를 조각을 깐 인도가 있어 걷기가 좋았다.


붙임바위...


붙임바위는 아스팔트 도로가 개설되기 이전 오랜 옛날 부터 도선사를 찾던 신도 등 많은 사람들이 고갯길 중간에서 잠시 쉬어가던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 바위에 돌을 붙이고 마음 속 간직하고 있던 소원을 빌면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는 내력을 가지고 있다. 또한 나무아미타불 글자가 새겨져 있고 오랜 기간 돌을 붙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하산길..계곡도 좋다..



<- 우이동 버스 종점 가는 길...109번, 120번, 130번, 116번 ...


하얀 벚꽃.....

통곡의 벽, 만민의 기도처 02-990-0695.........여기가 예루살렘인가?  <- 할렐루야 기도원 02) 990-0695.  유료주차장 하루종일 5,000원...





<- 3.1km 백운대, -> 우이동종점 0.7km,  소귀천계곡입구, 대동문 2.7km


흐드러진 벚꽃....



북한산국립공원...


계류를 따라 인도도 계속된다...


폭포가 따로있나? 


앗, 태극기...태극기만 보아도 가슴이 뭉클해 지는 것 같다. 누가 이렇게 태극기를 걸어두었는가? 국경일에도 태극기를 잘 걸지 않는 세상인데...그 마음이 너무 감사하다. 나중에 보니 이곳은 봉황각이 있는 곳이다. 3.1독립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의 대표이신 손병희선생이 활약하시던...  3.1독립운동의 산실...



북한산국립공원...


북한산국립공원 우이분소 곁의 식당...둘레가든 02-905-5535....<- 백운대방향(도선사)..


북한산국립공원 우이분소

여기서 부터 등산용품 가게, 음식점 등이 길가에 포진하고있다..



봉황각, 손병희선생의 묘:


대도중흥, 중일변, 민족통일 특별기도...


봉황각 앞의 붉은 벽돌 건물(별관)은 원래 종로구 삼일대로 457(경운동)에 1921년에 지어진 <천도교중앙총부> 건물로, 1969년에 이곳으로 옮겨왓다. 이 건물을 경운도에 세우는 과정에서 3.1독립운동 자금이 마련되었으며, 따라서 이 별관 역시 3.1독립운도의 산실이다..  현재는 <의창수도원>으로 쓰이고 있다. "의암 손병희 선생의 정신을 밝힌다" 는 뜻이다.


<- 봉황각...

앗, 봉황각....앞에 보이는 기와집이다...


봉황각은 3.1독립운동의 산실이다. 1912년 의암 손병희 선생이 세운 것이다. 일제에 빼앗긴 국권을 찾기 위해 천도교 지도자를 훈련시킨 곳으로 의창수도원이라고도 부른다. 봉황각이란 이름은 천도교 교조 최제우가 남긴 시에 자주 나오는 ‘봉황’이라는 낱말을 딴 것이다. 현재 걸려있는 현판은 오세창이 썼다. 손병희 선생은 1910년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가 되자 천도교의 신앙생활을 심어주는 한편, 지도자들에게 역사의식을 심어주는 수련장으로 이 집을 지었다. 1919년 3·1운동의 구상도 이곳에서 했으며, 이곳을 거쳐간 지도자들이 3·1운동의 주체가 되었다. 봉황각과

부속 건물에는 그 당시 유물이 남아있고 이곳 앞쪽 약 50m 지점에 손병희 선생의 묘소가 있다.다.


조선독립숙의단...


손병희 선생 초상화...


손병희(孫秉熙) (1861~1922); 천도교(동학) 지도자,독립운동가이다. 최시형에게 받은 도호(道號)는 의암(義菴)이다. 충청북도 청원군에서 태어났다. 1882년 동학에 입도, 3년 뒤 최시형을 만나 그의 수제자가 되었다. 1894년 동학혁면 당시에는 북접통령으로 동학군을 이끌었다. 1897년 해월 최시형으로부터 도통을 이어받아 제3대 교주가 되었다. 한편 관에 자수한 최시형은 이듬해 혹세무민했다는 죄목으로 처형당함으로써 순도한다. 이후 손병희는 동학운동의 지도자만이 아닌 근대화 운동의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1904년에는 갑진개혁운동(문면개화운동)을 전개하였다. 1905년에 동학을 천도교로 선포하고 교육과 출판문화 운동으로 300만 교도를 이끌었다. 또한 수운, 해월, 스승님의 교리를 심화하여 법설(의암성사법설)을 저술 편찬하였다. 1906년 일본에서 귀국했다. 1910년 한일병탐 이후 봉황각을 중심으로 조국독립과 민중개몽을 위해 헌신하엿다. 1919년 3.1독립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의 대표로서 3·1 운동을 총 지휘했다. 기미독립선언서 낭독 후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병보석으로 출옥한 후 1922년 가족들이 보는 가운데 별세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 저서: 삼전론(三戰論), 명리전(明理傳), 수수명실록(授受明實錄), 대종정의설(大宗正義說) 등 다수.




내실..



손병희선생 묘소 있는 방향..



손병희 선생 묘소 가는 길..



의암 손병희 선생 묘...


다시 우이동으로:

한우소고기농장 ...정육식당 02-990-9365..


산촌...02-997-5085...


우이동 만남의 광장...


cafe base camp...



현충비....



6.25 현충비 현충시


내개는 어머니, 아버지 귀여운 동생들도 있노라,
어여뻐 사랑하는 소녀도 잇었노라.
내 청춘은 봉우리지어 가까운 내 사람들과 함께
이땅에 피어 살고 싶었나니
아름다운 저 하늘에 무수히 니르는
내 나라의 새들과 함께
나는 자라고 노래하고 싶었노라.
나는 그래서 더 용감히 싸웠노라.
그러다가 죽었노라.


- 모윤숙의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에서




북한산 전망 사진 찍는 곳...


등산용품가게들...


우이동공용주차장...

농협장학관...


경전철 우이역 2번 출구....


오늘 영봉 등산과 함께 여러가지 뜻있는 곳들을 보았다. 3.1운동의 산실 봉황각과 우이만남의 광장의 현충탑도 가슴을 뜨겁게 하였다. 이 조국을 지키기 위하여 무수한 사람들이 일제 치하에서, 6.25전쟁에서 목숨을 잃었다. 우리 후손들은 이러한 고결한 선조들의 희생을 헛되이 해서는 않될 것이다. 마음 속으로나마 무한 감사를 드려야 한다. 우리의 마음이 중요하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이러한 선혈들의 고귀한 정신을 잊지말고, 또한 역사적 사실을 잘 알아 우리나라를 더욱 사랑하고 부강하게 하는데 앞장 서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