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창덕궁, 후원, 창경궁
- ( 2021.11.28 )
《 후원(後苑) 》:
아, 내가 얼마나 평소에 가보고 싶었던 후원(後苑), 일명 비원(秘苑)을 관람해 보겠습니다. '왕의 정원'이라는 비원은 얼마나 아름답고, 유토피아인지 보려합니다. 누구도 범접하지 못한 조선 왕들의 비밀 휴식 공간인 비원은 어떠한 곳일까? 너무나도 궁금증이 컸었습니다. 후원 관람코스는 북학산 줄기의 매봉산 골짜기 3곳과 산 중간의 둘레길을 따라 빙 한바퀴 도는 코스인데, 반 산책, 반 등.하산 하여 약 1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였습니다.
창덕궁 후원 (昌德宮 後苑):
창덕궁 후원은 태종 때 창덕궁 창건 당시 조성되었으며, 창덕궁 뿐만 아니라 창경궁의 후원(後苑)이기도 하였다. 임진왜란 때 대부분 정자가 불타버리고, 1623년 인조 때 부터 개수.증축되어 현재의 모습을 이루었다. 창덕궁 후원은 자연지형을 그대로 살리면서 골짜기 마다 정원을 조성하여, 인위적인 손질을 치소화하면서도 자연을 더 크게 완성 시킨 절묘한 솜씨를 자랑한다. 4개의 골짜기에 각각 부용지(芙蓉池), 애련지(愛蓮池), 관람지(觀欖池), 옥류천(玉溜川) 정원이 펼쳐진다. 4개의 정원은 안으로 들어갈수록 크고 개방된 곳에서 작고 은밀한 곳으로, 인공적인 곳에서 자연적인 곳으로 점진적으로 변하며 결국은 큰 자연인 뒷산 매봉으로 연결된다. 세계 대부분의 궁궐 정원은 보고 즐기기 위한 관람용인데 비해, 창덕궁 후원은 여러 복합적인 기능을 수용한 정원이었다. 시를 짓고, 학문을 논하며 사색에 잠기던 곳이었고 때론 연회를 열고 활쏘기 놀이를 즐기던 곳이었다. 왕이 참관한 가운데 군사훈련도 행해졌고, 왕과 왕비가 백성들의 생업인 농사를 짓고 누에를 치기도 했다.
후원 입구
창경궁 & 후원 매표소
○ 관람요금:
- 후원관람: 내.외국인 만19세 이상 5,000원/ 만7세~만18세 2,500원 ( 경로,우대,단체 할인 없음)
- 통합관람권: 10,000원 (유효기간 3개월)으로 4대궁( 창덕궁 (후원 포함), 경복궁, 창경궁, 덕수궁)과 종묘 관람 가능.
○ 후원 관람시간:
: 10:00, 11:00, 12:00 ( 해설사 운영 없는 타임 ), 13:00, 14:00, 15:00, 16:00(3월~10월), 16:30(6월~8월)
망춘문(望春門)
아, 아직도 단풍은 화려하구나!!
영화당
서향각(書香閣), 가운데 주합루(宙合樓), 주합루 앞의 어수문(魚水門)
그리고, 오른쪽의 영화당
부용지(芙蓉池)
부용정(芙蓉亭)
○ 부용정: 창덕궁 후원의 첫 번째 중심 정원으로, 휴식뿐 아니라 학문과 교육을 하던 비교적 공개된 장소였다. 300평(약 1000㎡) 넓이의 사각형 연못인 부용지를 중심으로 여러 건물을 지었다. 주합루 일원의 규장각(奎章閣)과 서향각(書香閣) 등은 왕실 도서관 용도로 쓰였고, 영화당(暎花堂)에서는 왕이 입회하는 특별한 과거시험을 치르기도 했다. 영화당은 동쪽으로 춘당대 마당을, 서쪽으로 부용지를 마주하며 앞뒤에 툇마루를 둔 특이한 건물이다. 연꽃이 활짝 핀 모양의 부용정은 연못에 피어 있는 한송이 꽃의 형상을 하고 있다. 행사가 치러지던 영화당은 연못에 면해 있으며, 학문을 연마하던 주합루는 높은 곳에서 연못을 내려다보고 있다. 하나하나의 건물도 각각 특색 있고 아름답지만, 서로 어우러지면서 풍경이 되는 절묘한 경관이다. 현재는 어수문을 중심으로 생울타리인 취병을 재현하여 지역을 구분하고 있다.
영화당
취병 (翠倂):
취병은 조선시대 독특한 조경 기법의 하나로 푸른 병풍처럼 만든 울타리이다. 내부가 보이는 것을 막아주는 가림막 역할과 공간을 분리하는 담의 기능읋 하면서 그 공간을 깊고 아늑하게 만들어 생기가 나게 하는 아름다운이 있다. 주합루의 취병은 1820년대 그려진 <동궐도 (국보 제249-1호)>의 그림을 토대로 하여 <임원십육지관병법>에 기록되어 있는 제작 기법대로 대나무들을 짜고 신우대를 심어 재현한 것이다.
어수문(魚水門)
주합루(宙合樓)
부용지와 주합루 ( 芙蓉池. 宙合樓 ):
후원의 첫번째 중심지로서, 휴식 뿐만 아니라 학문과 교육을 담당하던 비교적 공개된 장소였다. 주합류( 宙合樓) 일원의 규장각(奎章閣)과 서향각(書香閣) 등은 왕실 도서관 용도였고, 영화당(暎花堂)에서는 때로 왕이 입회하는 특별한 과거가 치러지기도 했다. 개인적 휴식을 위한 부용정은 연못에 앞발을 담그고, 행사를 위한 영화당은 연못에 면해 잇으며, 학문을 연마하던 주합루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고 있다. 하나하나의 건물들도 각각 특색있고 아름답지만, 서로 어우러 지면서 서로에게 풍경이 되는 절묘한 경관을 이룬다.
<- 연경당, <- 오류천, -> 낙선재, -> 나가는 길
담장 넘어 창경궁의 식물원이보인다.
보수 중인 의두합(倚斗閤)
의두합은 애련지 남쪽 언덕에 있는 건물로 효명세자가 순조를 대리하여 대리청정을 하던 시기에 혼자서 독서를 하거나 휴식을 위한 공간이다.
영춘문(永春門)
불로문(不老門), 애련지(愛蓮池):
1692년(숙종 18)에 연못 가운데 섬을 쌓고 정자를 지었다고 하는데, 지금 그 섬은 없고 정자는 연못 북쪽 끝에 걸쳐 있다. 연꽃을 특히 좋아했던 숙종이 이 정자에 ‘애련(愛蓮)’이라는 이름을 붙여, 연못은 애련지愛蓮池)가 되었다. 숙종은 " 내 연꽃을 사랑함은 더러운 곳에 처하여도 맑고 깨끗하여 은연히 군자의 덕을 지녔기 때문이다" 라고 새 정자의 이름을 지은 까닭을 밝혀 놓았다. 애련지 서쪽 연경당 사이에 또 하나의 연못이 있는데, 원래 이곳에 어수당이라는 건물이 있었다 하나 지금은 없어졌다. 1827년(순조 27) 효명세자는 애련지 남쪽에 의두합을 비롯한 몇 개의 건물을 짓고 담장을 쌓았다. 현재 ‘기오헌(奇傲軒)’이라는 현판이 붙은 의두합은 8칸 의 단출한 서재로, 단청도 없는 매우 소박한 건물이다. 바로 옆의 운경거(韻磬居)로 추정되는 건물은 궐 안에서 가장 작은 한 칸 반짜리 건물이다.
애련지(愛蓮池) & 애련정(愛蓮亭)
연경당, 선향재, 농수정 등 일원
장락문(長樂門)
수인문(修仁門)
왼쪽 벽에 붙은 조그만 문, 통벽문(通壁門), 그리고 안채 내당(內堂)
정추문(正秋門)
선향재(善香齋)
연경당(演慶堂)
○ 연경당, 선향재: 연경당과 선향재는 사대부 살림집을 본뜬 조선 후기 접견실이다. 연경당은 효명세자가 아버지 순조에게 존호(尊號)를 올리는 의례를 행하기 위해 1828년(순조 28)경에 창건했다. 지금의 연경당은 고종이 1865년쯤에 새로 지은 것으로 추정한다. 사대부 살림집을 본떠 왕의 사랑채와 왕비의 안채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단청을 하지 않았다. 사랑채와 안채가 분리되어 있지만 내부는 연결되어있는 점도 유사하다. 그러나 일반 민가가 99칸으로 규모가 제한된 데 비해, 연경당은 120여 칸이어서 차이가 난다. 서재인 선향재(善香齋)는 청나라풍 벽돌을 사용하였고 동판을 씌운 지붕에 도르래식 차양을 설치하여 이국적인 느낌이 든다. 후원 높은 곳에 있는 농수정(濃繡亭)은 마치 매가 날개를 편 것같이 날렵한 모습이다. 안채 뒤편에는 음식을 준비하던 반빗간이 있다. 고종 이후 연경당은 외국 공사들을 접견하고 연회를 베푸는 등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용되었다.
선향재(善香齋)
농수정(濃繡亭)
1837년(헌종 3) 이후 만들어진 정자로 추정된다. '농수(濃繡)'는 '짙음을 수놓다' 라는 뜻으로, 연경당 구석에 자리하여 녹음에 둘러싸여 있다. 정자 이름과 같이 이곳에 앉아 있으면 고요한 가운데 새 우는 소리만이 간혹 들리고, 외부에서는 이곳에 사람이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외진 곳에 있다.
낮은 고개를 넘어 또 다른 계곡으로 내려간다.
폄우사(砭愚榭):
폄우(砭愚)의 뜻은 '어리석음(愚_우)에 돌침을 놓아 깨우치게 한다 (砭_폄)'는 것이다. '왕이 스스로 어리석음을 깨우쳐 마음을 다잡으라' 는 뜻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사(榭)’는 ‘높은 터에 지은 정자’란 뜻이다. 현재 남아있는 궁궐 전각 중 ‘사(榭)’를 사용하는 건물은 폄우사가 유일하다고 한다. 현판의 글씨는 1903년(광무 7년)에 창덕궁 후원의 감독직을 맡았던 동농 김가진이 썼다.
승재정(勝在亭)
빼어난 경치(勝)가 있다는 뜻의 정자
존덕정(尊德亭)
존덕정과 정조의 교시:
존덕정 안 북쪽의 벽에 '萬川明月主人翁自序_만천명월주인옹자서' 라는 제목으로 빽빽하게 쓴 현판이 있는데 정조가 집권 말기인 1798년에 직접 지은 글이다. " 세상의 모든 시내는 달을 품고 있지만 하늘에 떠 있는 달은 유일하니, 그 달은 곧 임금인 너이고 시내는 곧 너희 신하들이다. 따라서 시내가 달을 따르는 것이 우주의 이치 "라는 강력한 내용이다. 평생 왕권정치의 강화를 위해 노력해 했던 정조의 준엄한 꾸짖음을 듣는 듯하다. 천장 중앙에는 쌍룡이 여의주를 희롱하는 그림을 그렸는데 이 역시 왕권의 지엄함을 상징하는 것이다.
옥류천 가는 오르막 길
취규정(聚奎亭)
창덕궁 후원 옥류천 가기 전 산마루턱에 있는 정자. '취규'란 별(인재)이 모인다 뜻이라고 한다.
↑ 옥류천
취한정(翠寒亭)
임금이 옥류천 우물에서 약수를 마시고 돌아갈 때 잠시 쉴 수 있도록 만든 정자이다. 지금은 취한정 주변에 느티나무가 무성하지만 예전에는 소나무가 울창했다. 그래서 여름에도 시원했으며 심지어는 서늘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런 의미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옥류천 일원 | 玉流川:
옥류천이란 후원의 북쪽 깊은 골짜기에 흐르는 시내를 뜻한다. 1936년, 거대한 바위인 소요암을 다듬고 그 위에 홈을 파서 휘도는 물길을 끌어들였고 이 물길을 아래로 내려뜨려 작은 폭포가 되게 하고 이 폭포가 떨어진 곳에서 옥류천은 시작된다. 구불구불한 물길 위에 술잔을 띄우고 시를 짓는 놀이인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이 이곳에서 벌어지기도 했다. 바위에 새겨진 세글자 '玉流川'은 인조의 친필이고, 오언절구(五言絶句: 한 구(절)가 다섯 글자로 된 시)는 일대 경치를 읊은 숙종의 시이다. 소요정(逍遙亭), 태극정(太極亭), 농산정(籠山亭), 취한정(翠寒亭) 등 작은 정자가 곳곳에 있는, 매우 단아하고 아기자기한 정원이다. 옆에 작은 논이 있는 청의정(淸猗亭)은 현재 궁궐에 남아 있는 유일한 초가집이다.
숙종(肅宗)의 오언절구(五言絶句):
飛流三百尺(비류삼백척): - 폭포수 삼백척을 날아 흘러
遙落九天來(요락구천래): - 아득히 구천에서 내려오누나
看是白虹起(간시백홍기): - 보고 있노라니 흰 무지개 일어나고
飜成萬壑雷(번성만학뢰): - 일만 골짜기에 우뢰 소리 가득하다
소요정(逍遙亭):
‘소요(逍遙)’ 뜻은 ‘구속없이 천천히 거닐다’라는 뜻이다. 장자의 '소요유(逍遙遊)'에서 이름을 따왔다.
옥류천(玉流川)
옥류천은 창덕궁 후원 안에서 발원하여 창경궁을 통과하는 하천으로, 청계천에 직접 합류하는 창경궁의 금천이다.
태극정(太極亭)
'태극(太極)'은 음양 사상과 결합해 만물을 생성시키는 우주의 근원이다. 1636년(인조 14년)에 지었다. 첫 이름은 운영정(雲影亭)이었는데 나중에 태극정으로 바꾸었다.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면서도 살아남아 오늘에 이른다고 한다.
욱류천에서 언덕을 올라와 매봉산 능선을 타고 돌다 내려간다.
태정문(兌正門)
연경당 안채에 있는 서행각(西行閣)의 가운데 문이다. ‘태정(兌正)’이란 ‘곧고 바르다’는 뜻이다.
후원 나가는 길:
다시 장락문(長樂門)
애린정
창경궁 쪽에서 바라보는 승재정, 펌우사, 존덕정
앗, 후원 입구....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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