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창덕궁, 후원, 창경궁
- ( 2021.11.28 )
《 창덕궁 》:
최근 서울의 도심에 있는 경희궁, 경복궁, 덕수궁을 돌아보았는데, 오늘은 마지막 남은 창덕궁과 후원, 그리고 창경궁을 둘러보았습니다. 날씨도 아침까지는 영하의 날씨였으나, 오후 들면서 기온이 많이 올라가고 산책하기 알맞은 좋은 날씨였습니다. 이렇게 좋은 날씨에 그동안 한번도 가보지 못한 창덕궁의 후원을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옛날에는 후원의 경우 사전 예약으로 한정된 인원만 관람하도록 한 것 같았는데, 오늘은 직접 현장에서 티켓을 구매하여 해당 시간 회차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나는 15분 정도 기다려, 12시 정각 타임 ( 해설사의 해설이 없는 타임이었음 ) 에 자유로이 후원을 한바퀴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오전 11:48분 부터 시작한 창덕궁 관람은 후원을 거쳐 창경궁까지 관람을 마치고 창경궁 정문인 홍화문을 나오니 오후 2:46분이 되어 있었습니다. 후원에서 잠깐 쵸콜렛 빵 하나와 우유 한잔을 하였지만, 점심 시간이 많이 지나서 배고픔을 느끼며, 동대문역가는 버스와 전철을 타고 왕십리역으로 가서, 인근의 '왕십리곱창거리'를 찾아 맛있게 곱창과 막걸리 한잔 그리고 이른 저녁을 먹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정신없이 돌아다니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는데, 오늘 고궁 관람은 아주 좋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특히 왕의 정원인 후원(後苑)은 옛날엔 비원(秘苑, Sectret Garden)이라 하여 궁금중을 자아냈던 곳인데, 여기를 가보아서 너무 기분이 좋았습니다. 사전 예약제로 특별한 사람들만 갈 수 있는 비밀스런, 너무나 아름다운 이상향(Utopia) 같은 곳인가 하여 항상 호기심이 들었던 곳인데, 오늘 그 소원을 푼 것 같습니다. '왕의 정원'이니 얼마나 비밀스럽고, 화려하고, 아름답게 조성했을까 하고, 이 나이까지 특별한 사람들만 가는 곳으로 알고, '비원'에 대해 가졌던 궁금증과 기대가 너무 나 큰 것이었습니다. 오늘 현장 테켓과 관람회차가 임박해서 후원까지 가볼 기회를 얻었습니다. 왕의 정원인 후원(비원)은 일생동안 궁금해서라도 꼭 한번은 가보아야 마음이 풀릴 것 같은 곳입니다. 비원 관람은 매봉산 언저리 둘레길을 한바퀴 돌아 나오는 코스이기 때문에 시간도 상당히 걸렸습니다. 나의 경우는 1시간 10분이 소요되었습니다. 반 산책, 반 등.하산의 코스입니다.
○ 산 책: 걸음수 14,642 steps, 거리 8.8 km, 소모열량 531 Kcal, 소요시간 02:10 hrs, 속도 4.2 km/h.
○ 코 스: (3호선) 안국역 - 창덕궁 일원 - 후원 - 창경궁 일원.
▶ 창덕궁(昌德宮): 창덕궁은 북악산 왼쪽 봉우리인 응봉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조선의 궁궐이다. 1405년(태종5) 경복궁의 이궁으로 동쪽에 지어진 창덕궁은 이웃한 창경궁과 서로 다른 별개의 용도로 사용되었으나 하나의 궁역을 이루고 있어 조선 시대에는 이 두 궁궐을 형제궁궐이라 하여 ‘동궐’이라 불렀다. 1592년(선조25) 임진왜란으로 모든 궁궐이 소실되어 광해군 때에 재건된 창덕궁은 1867년 흥선대원군에 의해 경복궁이 중건되기 전까지 조선의 법궁(法宮) 역할을 하였다. 또한 조선의 궁궐 중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임금들이 거처했던 궁궐이다. 경복궁의 주요 건물들이 좌우대칭의 일직선상으로 왕의 권위를 상징한다면 창덕궁은 응봉자락의 지형에 따라 건물을 배치하여 한국 궁궐건축의 비정형적 조형미를 대표하고 있다. 더불어 비원으로 잘 알려진 후원은 각 권역마다 정자, 연못, 괴석이 어우러진 왕실의 후원이다. 현재 남아있는 조선의 궁궐 중 그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창덕궁은 자연과의 조화로운 배치와 한국의 정서가 담겨있다는 점에서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다. - 문화재청.
창덕궁 일원 개념도
● 창덕궁 일원:
종로구 계동 현대빌딩 앞, '제생원(濟生院) 터 ' 표시석.
현대 계동 본사 건물:
신화의 정주영 (1915~ 2001) 주요 연표:
- 1915년: 강원도 통천군 송전면 아산리 출생 (장남).
- 1934년; 19세 나이 상경, 쌀가게 '복흥상회' 점원으로 일함.
- 1838년: 쌀가게 인수, 경일상회(京日商會) 설립.
- 1946년: 현대자동차공업사 설립.
- 1947년: 현대토건사 설립.
- 1967년: 현대자동차(주) 설립.
- 1968년: 2월 현대건설 경부고속도로 건설 착공 (1970년 7월 준공), 11월 현대자동차 코티나 생산 개시.
- 1969년: 1월 현대그룹 화장 취임. 4월 현대콘크리트(주)와 동서산업(주) 설립.
- 1973년: 현대조선중공업(주) 설립.
- 1975년: 4월 현대미포조선소(주) 설립. 6월 현대건설 중동 진출(이란)
- 1976년: 2월 현대자동차 최초의 국산자동차 포니 생산.
- 1977년: 현대정공(주) 아산사회복지사업재단 설립. 10월 한라건설(주) 설립, 전경련회장 취임. (~1987년까지 재임)
- 1982년: 4월 서산간척지사업 착공 (1994년 8월 준공)
- 1983년: 2월 현대전자산업(주) 설립. 10월 계동 사옥 신축 본사 이전. 11월 금강기획(주) 설립.
- 1988년: 국민훈장 무궁화장 수상.
- 1992년: 대선출마 낙선.
- 1998년: 정주영, 6월 1차 소떼(500마리), 10월 2차 소떼(501마리) 방북. 10월 김정일과 1차면담(금강산관광합의). IOC훈장과 노르웨이 왕실훈장 수상.
- 1999년:현대그룹 49개 계열사의 대그룹 성장.
- 2001년: 3월 서울아산병원 폐렴으로 사망 (향년 87세). 사후, 만해상 평화상 수상.
- 2006년(사후): 타임(TIME)지 선정 아시아의 영웅.
- 2008년(사후): DMZ 평화상 대상 특별 추서.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 museum, restaurant & cafe
'관상감(觀象監) 터' 표시석
↖ 매표소
보호수 은행나무
1972년 보호수 지정 당시 수령 425년, 지금은 수령 474년이다.
매표소, 창덕궁 종합관람지원센터
▶ 관람정보:
○ 관람시간:
* 2월~5월, 9월~10월: 09:00 - 18:00/ 6월~8월: 09:00 - 18:30/ 11월~1월: 09:00 -17:30.
* 후원 관람시간: 10:00, 11:00, 12:00, 13:00, 14:00, 15:00, 16:00(3월~10월), 16:30(6월~8월)
* 매주 월요일은 휴궁. 입장은 관람마감 1시간 전 까지.
○ 관람요금:
- 전각관람: 내국인 만25세~만64세 3,000원/ 외국인 만19세~만64세 3,000원/ 단체(유료관람객 10인 이상) 2,400원.
- 후원관람 (후원은 전각관람과 함께 구매): 내.외국인 만19세 이상 5,000원/ 만7세~만18세 2,500원
( 경로,우대,단체할인 없음)
- 통합관람권: 10,000원 (유효기간 3개월)으로 4대궁( 창덕궁 (후원 포함), 경복궁, 창경궁, 덕수궁)과 종묘 관람 가능.
돈화문(敦化門)
○ 돈화문: 창덕궁의 정문으로, 1412년(태종 12)에 건립되었다. 창건 당시 창덕궁 앞에는 종묘가 자리 잡고 있어 궁의 진입로를 궁궐의 남서쪽에 세웠다. 2층 누각형 목조건물로 궁궐 대문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이며, 앞에 넓은 월대를 두어 궁궐 정문의 위엄을 갖추었다. 돈화문은 왕의 행차와 같은 의례가 있을 때 출입문으로 사용했고, 신하들은 서쪽의 금호문으로 드나들었다. 원래 돈화문 2층 누각에는 종과 북을 매달아 통행금지 시간에는 종을 울리고 해제 시간에는 북을 쳤다고 한다. 돈화문은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다가 1609년에 재건되었다.
창덕궁 (昌德宮):
조선조 3대 임금인 태종은 1405년에 제2의 왕궁으로 창덕궁(昌德宮)을 창건했다. 그럼으로써 수도 한양의 서쪽에는 경복궁이, 동쪽에는 창덕궁이 위치하여 균형잡힌 도시공간을 구성할 수 있었다. 임진왜란으로 서울의 모든 궁궐이 불탄 후 경복궁은 재건되지 않았고, 270여년 동안 창덕궁이 조선 왕조 제1의 정궁으로 역할 하였으며, 마지막 임금인 순종 때 까지 사용된 최후의 궁궐이기도 한다. 동쪽의 창경궁(昌慶宮)과 함께 하나의 궁궐로 사용되어 동권(東闕)이란 별칭을 갖고 있다. 중국을 비롯한 동양의 궁궐 예재는 남북 중심축을 따라 엄격하게 배치되는 것이 일반적이며 경복궁 역시 이 제도를 따랐다. 그러나 산자락에 자리잡은 창덕궁은 인위적이 제도를 벗어나 주변 자연 지형에 순응하고 변화를 거듭하면서 가장 한국적인 궁궐이 되었다. 왕실 생활에 편리하면서도 친근감을 주는 공간구성은 경희궁, 덕수궁 등 다른 궁궐 구성에 영향을 주었다. 1917년 대조전을 비롯한 내전들이 불타 없어지자 경복궁의 전각들을 헐어다 옮겨짓는 등 많은 건물들이 변형, 훼손, 철거되었다가, 1991년 부터 복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덕궁은 조선 궁궐의 원형을 비교적 충실히 지니고 있으며,동궐의 후원은 한국 전통 조경의 특성과 아름다움을 가장 후륭하게 구현한 예로 평가된다. 1997년 12월 유네스코(UNESCO)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제되었다.
* 궁궐 영역별:
1. 돈화문 일원, 2. 인정전 일원, 3. 선정전, 4. 희정당, 5. 대조전 일원, 6. 성정각 일원, 7. 궐내각사, 8. 선원전 일원, 9. 낙선재 일원, 10. 부용지와 주합루, 11. 애련지와 의두합, 12. 연경당, 13. 존덕정과 폄우사, 14. 옥류천 일원, 15. 신선원전 일원.
휠체어,유모차 이용 손님을 위한, 경사로 관람 동선 안내
진선문 방향
" 창덕궁 세계유산 "
창덕궁은 <세계문화유산 및 자연 유산의 보호에 관한 협약>에 따라 1997년 12월 6일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세계유산'이란 세계적으로 뛰어나고 보편적 가치가 있어 인류전체를 위하여 보호하여야 할 문화유산을 말하는데, 경희궁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것을 인류의 문화유산으로서 그 가치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았음을 의미한다. 조선의 3대 임금인 태종5년(1405년)에 경복궁의 이궁(離宮, 궁성 밖에 마련된 임금의 거처)으로 건립한 창덕궁은 조선시대 정통적인 건축으로 자연경관을 배경으로 한 건축과 조경의 예술적 가치가 뛰어나며 특히 왕궁의 정원인 후원(後苑)은 한국의 대표적인 전통 정원으로 손꼽힌다.
궐내각사 ↑, 인정전 ->, 후원 ->
◆ 궐내각사 일원:
내각(內閣)
궐내각사 (闕內各司)
왕실과 직접 관련이 있는 여러 관청들이 궁궐안에 설치되었고, 이를 궐내각사(闕內各司)라 부른다. 그 가운데 정치를 보좌하는 홍문관(弘文館, 玉堂), 건강을 보살피는 내의원(內醫院, 藥房), 정신문화를 담당하는 규장각(奎章閣, 內閣), 왕의 칙령과 교서를 보관하던 예문관(藝文館) 등이 중심 시설이었다. 대부분의 건물이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소멸되었다가 2005년에 복원되었다. 가운데 흐르는 금천을 경계와 경관 요소로 삼았고, 여러 관청들이 밀집되면서 미로와 같이 복잡하게 구성되었다.
미로같은 통로
규장각 (奎章閣)
운한문(雲漢門)
검서청(檢書廳)
책고(冊庫)
금천
정숙문(正肅門)
억석루(憶昔樓)
○ 억석루: 창덕궁 궐내각사 구역에 있는 내의원의 부속 건물, 약을 다루던 곳이다. 위치는 내의원보다 선원전 구역과 더 가깝다. 선원전 본채와 영의사 사이의 행각 서편에 있다. '억석(憶昔)' 뜻은 '옛날(昔)을 생각한다(億)'는 뜻이다. 영조는 내의원에다 신농(神農)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라고 하면서 '입심억석(入審憶昔)'이란 글자를 써서 하사했다고 한다. 신농은 중국 신화에 나오는 삼황오제 중 한 명으로, 다양한 풀들을 일일이 먹어가면서 약의 효능을 알아내고 이를 바탕으로 질병을 치료했다는 전설이 있다. 그래서 의약의 창시자로 추앙받았다. 즉, 신농을 생각하여 정성껏 약을 만들라는 의미이다.
오른쪽, 선원전. 전면에는 인정전이 보이고 있다.
왕의 초상화를 모셨던 곳, 창덕궁 선원전
창덕궁 안에는 두 곳의 선원전이 있다. 하나는 이곳 구선원전이고 다른 하나는 후원 쪽에 자리한 신선원전이다. 두 선원전은 조선 국왕들의 초상화를 모셨던 곳으로 구선원전은 숙종 대부터 고종 대에 걸쳐 운영되며 어진 차례로 추가될 때 마다 증축되었고, 신선원전은 일제강점기인 1921년에 세워져 덕수궁에서 옮겨온 어전들이 봉안되었다. 구선원전 내부에는 각 임금의 어전을 위한 여러개의 감실이 설치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 비어있다. 반면 신선원전에는 12개의 감실이 설립 당시 모습데로 남아있다. 국왕이 옮길 때마다 선원전의 어진들도 함께 옮겨 봉안되었기 때문에 고종 때에는 창덕궁과 경복궁, 경운궁(덕수궁) 세 궁궐에도 모두 선원전이 있었다.
보춘문(報春門)
양지당(養志堂)
약방(藥房)
◆ 인정전 일원:
진선문
진선문(進善門)
금천교
인정문(仁政門) & 숙창문(肅章門)
숙창문(肅章門)
인정문(仁政門)
인정전(仁政殿)
○ 인정전: 인정전은 창덕궁의 정전(正殿)으로서 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외국 사신의접견 등 중요한 국가적 의식을 치르던 곳이다. 앞쪽으로 의식을 치르는 마당인 조정(朝廷)이 펼쳐져 있고, 뒷쪽으로는 북한산의 응봉으로 이어져 있다. 2단의 월대 위에 웅장한 중층 궁궐전각으로 세워져 당당해 보이는데, 월대의 높이가 낮고 난간도 달지 않아 경복궁의 근정전에 비하면 소박한 모습이다. 인정전은 겉보기에는 2층이지만 실제로는 통층 건물로 화려하고 높은 천장을 볼 수 있다. 바닥에는 원래 흙을 구워 만든 전돌이 깔려 있었으나, 지금은 마루로 되어있다. 전등, 커튼, 유리 창문 등과 함께 1908년에 서양식으로 개조한 것이다. 인정문 밖 외행각(外行閣)에는 호위청과 상서원 등 여러 관청들을 두었다. 1405년(태종5)에 창덕궁 창건과 함께 건립되었으나 1418년(태종18) 박자청에 의해 다시 지어졌고,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10년(광해2)에 재건, 1803년(순조 3)에 소실된 것을 이듬해에 복원해 현재에 이른다. 외행각 일원은 1991년 이후에 복원했다.
임금님 용상
선정문(宣政門)
선정전(宣政殿)
○ 선정전(宣政殿)은 궁궐의 편전(便殿: 사무공간)으로서 왕이 고위직 신하들가 더불어 일상 업무를 보던 곳으로 지형에 맞추어 정전 동쪽에 세워졌다. 아침의 조정회의, 업무보고, 국정 세미나인 경연 등 각종 회의가 매일같이 열였다. 주위를 둘러싼 행각들은 비서실, 창고 등으로 이용되었으나 전체적으로 비좁았다. 선정전은 청기와를 올린 것과 앞쪽 선정문 까지 복도각 건물로 연결한 것이 특징이다. 선정전은 한 때 혼전(魂殿: 신주를 모시는 곳)으로 쓰였는데, 복도는 그때의 흔적이다.
선정전(宣政殿)
선정전 임금님 용상
희정당(熙政堂)
○ 희정당은 왕의 거처이며 집무실이다. 원래의 이름은 숭문당이었는데, 연산군 대에 희정당(熙政堂)으로 바꾸었다. 선정전이 종종 국장에 사용되면서 또 다른 집무실로 활용되었고, 왕의 침실로 쓰이기도 했다. 지금의 희정당은 1917년에 붙에 타 없어진 희정당을 복구하면서 경복궁 강녕전을 이전하여 건축한 것으로, 원래의 모습과 다르다. 앞쪽에는 자동차를 타고 내릴 수 있도록 현관이 마련되고, 내부에는 유리창과 전등, 근대적 화장실을 설치하고 유럽풍의 가구를 갖추었다.
파란색 건물, 선정전(宣政殿)
↑대조전, ↑희정당
희정당
희정당
선평문(宣平門)
대조전(大造殿)
○ 대조전은 창덕궁의 정식 침전(寢殿)으로 왕비의 생활공간이다. 원래는 대조전 주변을 수많은 부속 건물들이 에워싸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 흥복헌(興福軒)은 1910년 마지막 어전회의를 열어 경술국치가 결정되었던 비극의 현장이다. 1917년 불타 없어진 터에 1920년에 경복궁의 침전인 교태전을 옮겨 지어 현재의 대조전이 되었다. 이건하면서 창덕궁의 상황에 맞추어 재구성했는데, 대조전을 중심으로 양옆 날개채와 뒤편의 경훈각 등이 내부에서 서로 통하도록 복도와 행각으로 연결했다. 원래 궁궐의 복합적인 구성을 잘 보여 주는 거의 유일한 부분이다. 희정당과 마찬가지로 내부는 서양식으로 개조하였으며, 왕실생활의 마지막 모습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경훈각
후원 방향 출입문
흥복헌
" 조화어약(調和御藥) 보호성궁(保護聖躳) "
임금의 약을 제조하여 임금의 몸을 보호한다. 허준이 이곳 상정각에서 내의원으로 일하였다고 한다. 1917년 창덕궁 화재로 순종황제께서 후원 영역에 있는 연경당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일제가 임의로 이곳 성정각을 내의원으로 상요하게 된 것이다.
보춘정(補春亭)
희우루(喜雨樓)
◆ 낙선재 일원:
승화루(承和樓)
낙선재 일원
낙선재(樂善齎)
○ 낙선재: 조선 24대 임금인 헌종은 김재청의 딸을 경빈(慶嬪)으로 맞이하여 1847년(헌종13)에 낙선재를, 이듬해에 석복헌(錫福軒) 등을 지어 수강재(壽康齋)와 나란히 두었다. 낙선재는 헌종의 서재 겸 사랑채였고, 석복헌은 경빈의 처소였으며, 수강재는 당시 대왕대비인 순원왕후 (23대 순조의 왕비)를 위한 집이었다. 후궁을 위해 궁궐 안에 건물을 새로 마련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헌종은 평소 검소하면서도 선진 문물에 관심이 많았다. 그 면모가 느껴지는 낙선재는 단청을 하지 않은 소박한 모습을 지녔으며, 석복헌에서는 순종의 비 순정효황후가 1966년까지 기거하였고, 낙선재에서는 영왕의 비 이방자 여사가 1989년까지 생활하였다.
석복헌(錫福軒)
수강재(壽康齎)
고택에 감나무 같은 운치를 느낀다.
아름다운 가을 경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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