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창덕궁, 후원, 창경궁
- ( 2021.11.28 )
《 창경궁, 왕십리배들곱창 》:
창덕궁 일원, '왕의 정원' 후원, 그리고 마지막 관람지 창경궁을 구경하여 봅니다. 창경궁은 덕수궁 같이 궁의 건물들이 많지 않아 아주 넓은 공원 같습니다. 몇 개의 전각을 구경하고 마지막으로 춘당지를 구경해 보았습니다. 창경궁의 동명전, 집복헌, 경춘전, 함안정, 문정전, 명정전 순으로 구경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춘당지로 가보았습니다. 춘당지의 아름다움에 무거운 발걸음도 가벼워진 듯 하였습니다. 춘당지를 보고나니 식물원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하여 식물원도 구경하여 보았습니다. 식물원은 규모는 적으나 아기자기한 맛이 있었습니다. 아직 단풍을 가끔은 볼 수 있는 초겨울의 고궁산책은 평범한 일상의 별미(別味)같이 느껴졌습니다.
오늘 고궁 답사를 모두 마치고, 점심은 늦고, 저녁은 이른 시간에 왕십리곱창거리의 도선사거리에 있는 '왕십리 배들곱창' ( 02-2299-1717/ 서울 성동구 홍익동 125 )에서 야채곱창(12,000원)에 막걸리(4,000원) 한병, 그리고 볶음밥(3,000원)을 시켜서 아주 정신없이 폭풍흡입하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나는 왕십리곱창거리에서는 처음으로 곱창을 먹어보는데 맛이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곱창은 집사람이 싫어하여 먹지 못하다가 참으로 오랜만에 먹어보는 데, 속된 말로 허겁지겁 하며 먹었습니다. 오후 3:56분 늦은 시각, 오랜시간 돌아다니다 늦은 시각 얼마나 배가 고팠는지, 아주 게눈 감치듯 말입니다. 소박하고 간단한 음식 하나가 사람을 이렇게 행복하게 할 수 없었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食後景)이다" 란 말을 실감했습니다. 옛말에 틀림이 없습니다.
창경궁 (昌慶宮):
본래 창경궁 터에는 1418년 세운 수강궁(壽康宮)이 있었다. 수강궁은 세종 때 상왕(上王) 태종을 위해 창덕궁 동편에 창건한 궁이었다. 1483년 성종이 3명의 대비를 위해 이 터에 크게 궁궐을 다시 짓고 창경궁이라 불렀습니다. 창경궁은 창덕궁과 사실상 하나의 궁궐을 이루어 이 둘을 합쳐 동궐(東闕)이 라 하였고, 후원의 정원도 공동으로 이용했다. 창경궁은 창덕궁의 부족한 생활공간을 보충하여 왕과 왕비뿐 아니라 후궁,공주, 궁인의 처소로도 사용해했다. 경복궁처럼 일정한 원칙을 좇아 경영된 궁궐과 달리 창경궁은 건축형식과 재도 면애서 자유롭게 세워지고 이용된 궁궐이었다. 궁궐은 남향이 원칙이지만 창경궁 중심부분은 특이하게도 동향으로 배치되어있다. 동쪽애 왕실 동산인 함춘원(含椿苑)과 낙산이 자리잡고 있어 그곳을 바라볼 수 있도록 지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생활 공간들은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창경궁은 자연지형을 따르면서도 생활의 편의를 추구하여 궁궐을 조성했기 때문에 아름다움과 친근함을 두루갖춘 궁궐이 되었다. 임진왜란(1592년) 때 서울의 다른 궁궐과 함께 불에 탔다가 1616년에 재건되었다 이 때 다시 세운 명전전, 홍화문 등은 창경궁의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궁궐 건물들에 속한다. 창경궁의 전성기는 1830년대였다 동궐도(東闕圖)에는 여러 대비궁, 후궁과 공주들의 처소, 궐내각사들이 촘촘하게 들어서고 곳곳에 정원시설이 조화를 이룬 당시 모습이 잘 묘사되어 있다 일제 강점기에 창경궁 안의 건물들을 대부분 헐어내고 동물원과 식물원을 설치하여 시민공원으로 바꾸고 이르마저 창경원(昌慶苑)으로 격하시켰다. 또한 종묘와 연결된 땅의 맥을 끊고 그 사이에 도로를 개설하여 궁궐의 품격을 훼손했다. 1983년 부터 동물원을 이전하고 본래의 궁궐모습을 되사리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비록 아직 많은 유적들을 복원하지 못했지만, 아름다운 자연과 어우러진 창경궁의 모습에서 왕실 생활의 체취를 느낄 수 있다.
◆ 창경궁 연표:
1392년 (태조1): 조선 개국.
< 1400년대 창건 >
1418년 (세종즉위): 상왕전(태종)으로 수강궁 창건.
1483년 (성종14): 수강궁 터에 창경궁 창건.
< 1500년대 임진왜란으로 소실 >
1592년 (선조25): 임진란으로 소실.
< 1600.1700년대 (중건.소실 및 복구) >
1616년 (광해군8): 창경궁 중건.
1623년 (인조즉위): 인조반정으로 동궁인 저승전과 내전 일대 소실.
1624년 (인조2): 이괄의 난으로 통명전, 양화당 등 소실.
1633년 (인조11): 통명전, 양화당 중건.
1777년 (정조1): 자경전 건립.
1790년 (인조14): 통명전 소실.
< 1800년대 화재및 복구 >
1830년 (순조30): 환경전에서 발생한 화재로 내전 일대 소실.
1834년 (순조34):통명전, 환경전 등 소실된 전각 재건.
1857년 (철종8):선인문, 위장소, 주자소 등 60여칸 소실.
1877년 (고동14): 창경궁 수리.
< 1900년대 민족수난기와 복원 >
1909년 (순종3): 동.식물원 조성으로 궁궐 훼손.
1911년: 창경원으로 격하.
1983년: 창경궁으로 환원.
창경궁 약도
1. 흥화문, 2. 옥천교, 3. 명정문, 4. 명정전, 5. 문정전, 6. 숭문당, 7. 빈양문, 8. 함인정, 9. 경춘전, 10. 환경전, 11. 통명전, 12. 양화당, 13.연춘전.집복헌, 14. 풍기대, 15. 성종대왕태실 및 성종대왕태실비, 16 춘당지, 17. 팔각칠층석탑, 18. 대온실(식물원), 19. 관덕정, 20. 관천대, 21. 선인문, 22. 함양문 창덕궁(후원) 입구, 23. 과학의 문, 24. 월근문, 25. 관리사무소, 26. 집춘문.
창경궁 후원 입구 오른쪽, 함양문(咸陽門), ↑창경궁
함양문은 창덕궁과 창경궁을 연결하는 문이다. 두 궁마다 문 옆에 매표소가 있어 드나들 수 있다. 창덕궁 관물헌의 동쪽, 창경궁 통명전의 서쪽 언덕 위에 있다.
▶ 창경궁 관람정보:
○ 관람시간: 09:00 - 21:00 (마지막 입장은 20:00까지 )
* 입장은 마감시간 1시간 전입니다.
* 매주 월요일은 창경궁 휴궁입니다.
○ 창경궁 관람요금:
- 어른 (만25~만64세): 1,000원. ( 유료입장 관람객 10인 이상 800원 )
- 무료: 만24세 이하(내국인), 만65세 이상 (내.외국인).
* 함양문을 통해 창덕궁과 연계 관람 가능 ( 별도 관람권 구매 )
<통명전-양화당-집복헌-영춘헌> 이 일직선으로 나란히 남쪽을 보고 있다.
통명당과 양화당 (通明殿, 養和堂)
○ 통명전, 양화당: 통명전(보물 818호)은 1834년에 다시 세운 일상 생활공간인 내전의 중심 건물답게 넓은 월대를 쌓고 지붕 가운데 용마루가 없다. 가운데 세간은 대청마루를 두고 양 옆에 온돌방을 두어 왕과 왕비의 침실로 썼다. 서쪽 마당에는 동그란 샘과 네모난 연못이 있고, 그 사이의 물길을 둘로 공들여 만든 정원이 있다. 1834년에 다시 지은 양화당은 대비의 침전이지만,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으로 피난했던 인조 임금이 돌아와 거처하기도 했다.
통명전
통명전(通明殿) & 양화당(養和堂)
통명전
양화당(養和堂)
집복헌 & 영춘헌
○ 영춘헌. 집복헌: 통명전과 양화당 일대는 대비를 비롯한 왕실 어른들이 거처하는 곳이라며, 영춘헌과 집복헌은 후궁의 거처였다. 남향인 영춘헌은 내전 건물이며, 서쪽 방향의 집복헌은 영춘헌과 연결된 5칸의 서행각이다. 이 건물들의 창건 연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1830년(순조 30)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834년(순조 34)에 재건되었다. 집복헌은 사도세자 와 순조가 탄생한 곳이기도 하다. 영춘헌은 정조가 즉위 후 자주 머물렀던 장소이며, 정조가 49세의 나이로 승하한 곳이다. 정조는 영춘헌을 독서실 겸 집무실로 이용 하였다.
경춘전(景春殿)
○ 경춘전: '경춘(景春)'은 '햇볕 따뜻한 봄'이라는 뜻이다. 1484년(성종 15) 창건 당시에 건립된 침전 건물로 주로 왕대비, 왕비 또는 세자빈 등이 거처했던 것으로 보인다. 임진왜란, 이괄의 난 등으로 여러 차례 소실되었다가, 1834년(순조 34)에 중건되었다. 편액의 글씨는 순조의 어필이다. 이곳에서는 22대 정조와 24대 헌종이 태어났고, 성종의 생모 소혜왕후, 즉, 인수대비 한씨와 숙종비 인현왕후 민씨, 정조의 생모 헌경왕후, 즉 혜경궁 홍씨 등이 승하하였다. 사도세자는 정조를 낳기 전에 용이 이곳 경춘전에 들어오는 꿈을 꾸고, 경춘전 동쪽 벽에 용 그림을 그려두었다. 정조는 본인의 탄생을 기념해 경춘전 내부에 ‘誕生殿(탄생전)’이라 쓴 현판을 걸었으나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
환경전(歡慶殿)
○ 환경전: 창경궁의 내전(內殿) 건물 중 하나로 세자나 국왕이 생활하던 곳이며, 중종과 소현세자가 승하한 곳이기도 하다. 성종 때(1484년) 창건되었다가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지고, 1616년(광해군 8)에 중건되었다가, 1830년(순조 30)에 화재를 당한 후 1834년(순조 34)에 다시 중건되었다. 이 건물은 빈전과 혼전으로 사용된 예가 많았는데, 빈전은 왕 또는 왕족의 시신이 들어 있는 재궁(관)을 모신 건물을 말한다.
빈양문
빈양문 앞에 큰 건물 명전전, 그 옆의 남향의 문정전,
그리고 명전전 뒤의 빈양문 곁에 숭문당.
창경궁 오층석탑
창경궁 함인정 옆, 명정전 뒤에 서 있는 오층석탑이다. 이 탑은 일제강점기에 어디선가 옮겨진 고려 시대 석탑이라고 추정되며, 오층석탑은 국립문화재연구소 연구조사에서 충청지역 사찰에서 건립된 사리탑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함인정 (涵仁亭)
○ 함인정: 함인정은 문무 과거에 급제한 신하들을 접견하던 곳으로 1833년에 다시 세웠다. '세상이 임금의 어질과 외로움에 흠뻑 젖는다'는 건물 이름의 뜻을 상징하 듯, 사방이 터진 개방형 건물이다.
함인정과 왼쪽에 경춘전, 뒷편에 환경전
함인정 방향
빈양문 (賓陽門)
○빈양문: 명정전에서 뒤편의 문으로, 왕의 공적 공간인 명정전과 사적 공간인 내전을 연결하는 문이다. '빈양(賓陽)'은 ‘밝음을 공경히 맞이한다’라는 뜻으로, 밝음은 국왕을 상징한다. 지금의 빈양문은 일제에 의해 강제 철거되었던 것을 1984년 발굴을 통해 1986년 중건 공사 때 재건한 것이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 주목
음료자판기, 반갑습니다.
잠깐 음료 한잔 하고 쉰다.
문정전(文政殿)
문정문(文政門)
문정전(文政殿)
○ 문정전: 창경궁의 편전으로, 국왕이 관리들과 만나 업무 보고를 받고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던 집무실이었다. 문정전은 임진왜란 때 불에 타 광해군 8년(1616) 다시 지었고, 현재의 건물은 일제 강점기에 철거되었던 것을 1986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문정전은 왕실 가족의 신주를 모신 혼전(魂殿)으로 쓰인 경우도 있었고, 영조의 첫째 왕비인 정성왕후와 철종의 비인 철인왕후의 혼전으로 사용되었다. 이곳은 영조가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라고 명하고 서인으로 폐한 곳이기도 하다. 그 후 뒤주는 홍화문 남쪽에 있는 선인문 안뜰로 옮겨졌고, 사도세자는 8일 동안 굶주림과 더위에 신음하다가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문정전의 용상
숭문전(崇文殿)
빈양문에서 명전전으로 이어지는 회랑
명전전 측면
명전문과 품계석
명전전
명전전 용상
명전전(明政殿)
○ 명정전: 조선 중기에 세워진 창경궁의 정전(正殿)이다. 돌로 된 월대 위에 목조건물로 세워졌으며, 정면 5칸, 측면 3칸, 단층 다포계 팔작지붕이다. 정전은 왕이 문무백관과 왕세자, 척신에게 조하를 받고 정령(政令)을 반포하며 외국의 사신을 맞이하는 등 국가의 가장 공식적인 의례가 행해지는 전각을 가리킨다. 모든 궁궐 건축에 있어서 정전은 규모와 형태 등의 측면에서 최상위에 위치하며 전체의 배치도 정전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 대한민국의 국보 제226호 )
옥천교
홍화문(弘化門)
○홍화문: 창경궁의 정문으로 '홍화(弘化)'는 ‘조화를 넓힌다’, 즉 덕을 행하여 백성을 감화시키고 널리 떨친다는 뜻이다. 창경궁 창건 당시에 처음 건립되었다가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1616년(광해8)에 재건된 건물이다. 홍화문은 국왕이 직접 백성들을 만났던 곳이기도 하다. 영조는 1750년(영조26)에 균역법을 시행하기 전에 홍화문에 나가 양반과 평민들을 만나 균역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정조는 1795년(정조19)에 어머니 혜경궁의 회갑을 기념하여 홍화문 밖에 나가 가난한 백성들에게 쌀을 나누어 주기도 하었다.
홍화문(弘化門)
▶ 관람정보:
○ 관람시간: 09:00 - 21:00 (마지막 입장은 20:00까지 )
* 입장은 마감시간 1시간 전입니다.
* 매주 월요일은 창경궁 휴궁입니다.
○ 관람요금:
- 어른 (만25~만64세): 1,000원. ( 유료입장 관람객 10인 이상 800원 )
- 무료: 만24세 이하(내국인), 만65세 이상 (내.외국인).
* 함양문을 통해 창덕궁과 연계 관람 가능 ( 별도 관람권 구매 )
홍화문 앞 서울 회화동 서울대학교병원 주변 거리
● 춘당지 & 식물원:
화화나무와 느티나무
회화나무와 느티나무 뿌리와 줄기가 뒤엉켜 자라고 있다.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이 살얼음판 같은 궁궐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서 있는 모습이 연상된다.
춘당지 일원
춘당지는 창덕궁 쪽 절벽인 춘당대와 짝을 이룬 연못이었으나 지금은 담장으로 나뉘어 있다. 현재 소춘당지가 원래의 춘당지이고, 대춘당지는 1909년에 내농도(內農圖)에 속한 11개 논을 하나의 연못으로 만든 것이다. 내농포는 임금과 왕비가 각기 농사와 양잠을 체험할 수 있도록 궁궐안에 둔 논과 뽕밭이다. 대춘당지의 섬은 1984년에 만들었다.
창경궁 춘당지
창경궁 팔각칠층석탑
팔각칠층석탑 (八角七層石塔)
이 탑은 8각 7층 석탑이다. 기단부는 4각형 받침돌과 8면에 안상을 새긴 2단 고임돌과 88면에 안상과 꽃을 새긴 연화대좌로 구성하였다. 7층의 탑신부는 기와 지붕 건물 모양이며 1층은 연화곽 위에 높고 볼록한 몸돌을 얹었다. 꼬대기에는 흰돌로 만든 보주 장식을 올렸다. 1층 몸돌에 새겨진 '성화(成化) 6년' 이란 글씨를 근거로 1470년(조선 성종1)에 세웠음을 알 수 있다.
대춘당지
소춘당지, 뒤에 식물원.
창경궁 식물원
관덕정(觀德亭)
관덕정과 집춘문 ( 觀德亭, 集春門 )
관덕정은 1642년에 지었으며 활을 쏘던 정자였다. 앞쪽의 넓은 빈터는 군사훈련과 무과 시험장으로 쓰였다고 한다. 정자 뒤로는 단풍숲이 우거져 여러 임금들이 단풍의 아름다움을 읊은 시가 전한다. 집춘문은 관덕정 북쪽 담장에 난 궁문으로 문묘(文廟, 또는 성균관)가 마주 보이는 곳에 있다. 역대 임금님들이 문묘로 나갈 때 이 문을 이용했다.
식물원 내부
● 왕십리곱창거리 '왕십리 배들곱창':
성동구청
'왕십리 배들곱창'
( 02-2299-1717/ 서울 성동구 홍익동 125 )
배들곱창 내부
정갈한 상차림
야채곱창 (12,000원)
오후 3:56분 늦은 시각 야채곱창이 나왔습니다. 아, 맛이 정말 최고였습니다.
볶음밥 (3,000원)
이 볶음밥 정말 최고였읍니다.
메뉴: 소곱창 22,000, 양념구이 13,000, 소금구이 13,000, 야채곱창 12,000, 삼겹살 13,000, 볶음밥 3,000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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