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남 광덕사, 객산 (292m), 선법사, 광주향교
- ( 2022.05.01 )
하남시 천현동과 교산동에 걸쳐있는 객산(292.1m)을 등산해 보았습니다. 출발점은 하남시 천현동 객산 기슭에 있는 광덕사에서 산행을 출발했습니다. 중부고속도로 '만남의 광장'이 보이는 곳에서 산 쪽으로 조금 오르면 광덕사란 절이 나오는데, 광덕사는 이번이 처음인데, 사찰 경내에 있는 주차장도 좋고, 계곡을 따라 생각보다 큰 사찰이었습니다. 5월 8일 (음 4월 초팔일) 석탄일을 앞두고 미리 절을 다녀가는 듯 50,60대 초반으로 보이는 부인들이 주지스님으로 여겨지는 분과 경내에서 헤어지면서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었는데, 모두 기쁜 얼굴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종교는 참 묘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일반적으로 남자들 보다 여자들, 특히 어머니들의 종교심이 더 강한 것 같습니다. 이는 가족의 안녕과 축복이라는 염원이 절실히 반영되는 현상이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주지스님에게 이곳의 산길을 물어보니 옛날엔 가끔 등산객이 보였는데, 요즈음은 거의 발길이 뜸하며, 산길이 조금 험하다고 합니다. 나는 계곡을 따라 길게 들어서 있는 사찰을 따라 올라 광덕사 삼성각이 있는 곳의 우측으로 산행을 시작하였습니다. 초행 길이라 산행 들머리를 잘 찾아야 했습니다. 산 중턱을 따라 산길을 만든 공사를 한 것 같은 길이 있어 이 길을 따라 산행을 시작하였습니다. 산길을 새로 조성한 부분을 따라 산 비탈을 따라 돌아 오르니, 새로 쓴 묘와 함께 오래된 묘들이 있는 묘소가 있었습니다. 이 새로 조성한 길은 여기에서 끝나고 말았습니다. 조금 난감하였으나, 묘소 윗부분으로 올라가 보니 낙엽이 깔린 길 흔적이 보이는 능선으로 가는 산길이 있었습니다. 나는 뱀이 무서워 이 길의 낙엽을 스틱으로 헤치며 능선을 따라 산을 올라갔습니다. 조금 오르니, 앗, 옛날 객산 산행시 능선에서 주변 경치를 감상했던 넓은 평상이 놓여있는 능선 쉼터가 나왔습니다. 여기에서 부터는 객산 가는 능선 길이 훤했습니다.
능선 쉼터에서 부터 키 큰 소나무들이 좋은 능선길을 따라 조금 가서 선법사 갈림길을 지나 산 측면을 돌아올라 객산 정상에 오르니 주변의 조망이 시원하게 터졌습니다. 정상 전면으로 하남의 한강 방향의 경치가 아주 아름답게 조망되었습니다. 그리고, 객산 뒷 부분의 남한산성 방향도 우거진 나무 사이로 언듯언듯 볼 수 있었습니다. 오늘 따라 정상에서의 바람은 아주 심한 강풍이 불었습니다. 남한산성을 넘어온 바람의 강도가 '푄 현상'으로 아주 심해진 것 같습니다. 오늘 날씨는 맑고 좋은데, 바람은 아주 심했습니다.
정상 바로 아래 바람이 약한 부분의 의자에 앉아 빵과 음료 한잔을 한 후에 하남시 교산동의 선법사 방향으로 하산을 하였습니다. 등산과 마찬가지로 이 곳으로의 하산도 처음 길이었습니다. 처음 가는 길이라 호기심도 크고 기대가 되었습니다. 선법사 가는 길은 갈림길에 이정표도 서 있었으며, 내려 가는 길도 좋았습니다. 계곡의 산 비탈을 따라 내려 가는 길이었습니다. 선법사 입구에 도착하니 이곳의 주차장도 아주 넓었습니다. 사찰은 대웅전과 요사채가 있어 아담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곳에는 사찰 경내에 아주 많은 연등만 걸려 있고, 사람 한명 구경하지 못하고 적막함만 감도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곳에 뜻하지 않게 '하남 교산동 마애약사여래좌상 (보물 제 981호)'이 있었습니다. 국가지정 보물이라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되었습니다. 마애석불(磨崖石佛) 또는 마애불(磨崖佛)은 바위에 새긴 불상으로, 7세기 전반부터 백제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현존하는 백제의 마애불로는 1958년에 발견된 충청남도 서산 용현리의 마애석불과 태안의 마애석불이 잘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나는 여기를 돌아나와 교산동 마을 도로를 따라 하남 교산동에 있는 경기 광주향교까지 걸어갔습니다. 언제나 인상적인 유서깊은 광주향교에서 오래된 보호수 은행나무들과 대성전, 명륜전 등을 울터리 담장 너머로 돌아본 후에 오늘의 산행을 마쳤습니다. 광주향교에 오면 세계4대 성인 중 한 분인 공자의 위대한 사상을 생각하게 되며, 인생을 살아가는데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광덕사와 광주향교에서 휴가 중인 나의 둘째 아들이 차로 대려다 주고 픽업도 해 주어 고맙기도 그지 없습니다. 사실 아들 덕에 오늘 객산 산행을 한 셈입니다.
○ 산 책: 걸음수 6,592 steps, 거리 4.6 km, 소모열량 261 kcal, 소요시간 01:07 hrs, 속도 4.1km/h, 기온 20℃.
○ 코 스: (하남시 천현동) 광덕사 - 능선쉼터 - 객산 (292.1m) - (하남시 교산동) 선법사 - 광주향교.
2021.5.10 사진, 천현동 마루공원 입구에서 왼쪽 중부고속도로
곁의 광덕사 가는 길. <- 500m 광덕사.
● 하남 천현동 광덕사:
광덕사 2층의 대웅전
" 경전을 아무리 많이 외워 알아도
행하여 지키지 않고 방탕한 사람은
남의 소를 세고 있는 목자와 같아
진정한 부처님의 제자가 아니다. "
" 남의 허물을 꾸짖기를 좋아 하지 말고
스스로 내 잘못을 살펴보자.
만일 이것을 알고 행하면
근심, 다툼 영원히 사라지리라. "
대한불교조계종 광덕사.
범종각
삼성각 가는 길
삼성각
● 객산 가는 길:
삼성각 오른쪽의 등산로 입구, 묘소로 가는 길이다.
산길을 막으려는 목적인가 산길의 중간 부분에 길 끝까지 나무를 심어 놓았다.
묘지를 밟고 산을 오르는 것을 막으려는 것 같다.
이 길을 돌아나가 새로 쓴 묘가 있는 묘소가 나오고 등산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묘소 윗 부분으로 오르니 낙엽이 무성히 깔린 산길이 보인다.
묘소 상부에서 바라보는 검단산
낙엽 무성한 산길. 누가 다닌 흔적이 없어 스틱으로 헤쳐가면서 조심히 오른다.
산행 중 반가운 리본
앗, 능선
하남시 팔당대교 방향
능선 쉼터, 객산 산행시 가장 좋은 능선의 평상 쉼터.
↑ 광덕사 등.하산로 입구, 이정표가 없다. 정규 등산로가 아니다.
낙엽이 많고 가파르기 때문에 하산시는 추천하고 싶지 않다.
대신 평상 쉼터 왼쪽으로 능선을 약간만 따라 내려가면
이정표와 함께 마루공원으로 하산하는 좋은 하산로가 나온다.
객산 가는 능선 산길
선법사 갈림길의 이정표.
<- 2.0km 위례 둘레길 (샘재), ↘ 위례 둘레길 (선법사) 0.7km,
-> 위례 둘레길 (남한산성) 4.8km, -> 위례 둘레길 (객산) 0.3km
하얀 건물, 마루공원 건물
천현동 광덕사 방향으로 흐르는 계곡
객산 아래 갈림길 이정표
↙ 2.1km 위례 둘레길 (샘재),
-> 위례 둘레길 (남한산성) 4.7km, -> 위례 둘레길 (객산) 0.2km
● 객산 정상에서:
객산 정상
<- 2.3km 위례 둘레길 (샘재), ↗ 위례 둘레길 (남한산성) 4.5km.
객산
해발 292m
객산 왼쪽 하남시 교산동 방향
객산 아래 흐르는 능선
능선 아래 끝 부분에 중부고속도로가 지나간다.
객산 왼쪽 방향,
하남시 춘궁동, 덕풍동, 서울 상일동, 고덕지구 방향
가로로 지나가는 중부고속도로
한강 상류 팔당대교 방향
▶ 삼각점:
이 시설은 국토해양부 국토지리정보원의 국가기본측량에 의하여 결정된 지리좌표 ( 경도, 위도, 표고 등)를 표시한 삼각점(국가기준점) 입니다. 이곳 화강암표지위 (십자선교점) 에서의 각종 측량법( GPS측량, 삼각측량, 수준측량 등)을 통해 이 점이 없는 다른 지점의 지리좌표 (지구상 위치)를 정확하고 손쉽게 구할 수 있음에 따라, 국토지리정보원에서는 이러한 삼각점을 전국에 2~3km 간격으로 설치하여 국토의 효율적 이용과 관리를 위한 국가기본측량, 지적측량, 공공측량 등의 기준을 제공하고 나아가 지각변동 등에 의한 국토의 위치변화를 모니터링하는 등 국토 공간정보의 구축과 다양한 사용을 위한 중요 기초자료로서 활용하고자 아래와 같이 그 성과(지리좌표)를 제공하고 있으며 또한 이 좌표는 네비게이션, 등산, 레져, 내우치 확인 등 국민 생활의 편의 증진을 위해 활용되도록 하고 있습니다.
▶ 지리적 개념도: 그리니치오선(영국) (경도 0도), 지구 중심, 적도(위도 0도), 현재의 위치 등.
▶ 삼각점의 이해: ( * 위의 가상의 수치로 계산한 예시 )
- 삼각점높이 (해발고도) = 1,000m (50m + 950m):
- 평균해수면으로 부터 수준점까지의 고도= 50m,
- 수준점에서 삼각점표석단 까지의 높이치 = 950m,
※ 삼각점표석은 산 정상에 위치하지 않을 수도 있읍니다.
교산신도시가 들어서는 하남의 분지형 고골 방향
남한산성 방향
● 하산 길 (선법사):
<- 위례 둘레길 (선법사) 0.7KM
선법사:
선법사에서는 국가지정 보물 제 981호인 <하남 교산동 마애약사여래좌상>이 있으며,
그 옆에는 객산 폭포의 온조왕이 마셨다는 전설이 있는 온조왕 어용(御用)샘이 있다.
하남 교산동 선법사 가는 길
병풍바위
생강나무
농작물 텃밭
노린재나무
나무를 태우면 노란색 재가 남아 '노린재나무'라고 한다. 5월에 하얀 꽃이 핀다.
● 선법사:
선법사 주차장
<- 1.2KM 위례역사길(광주향교),
↑5.5KM 위례둘레길(남한산성), ↑1.0KM 위례둘레길(객산),
-> 위례역사길(선법사) 0.1KM
선법사
뒷편 객산
온조왕 어용샘, 선법사 약수터
수질: 적합
'하남 교산동 마애약사여래좌상'
국가지정 보물 제 981호.
하남 교산동 마애약사여래좌상
보물 제 981호
바위 남쪽면에 새겨져 있으며, 노이가 93cm이고 광배* 와 받침대인 대좌가 있다. '약사여래'는 질병에서 모든 중생을 주제해 준다는 부처를 말한다. 얼굴 표정이 부드럽고 옷은 왼쪽 어깨만 걸쳤다. 왼손 손바닥은 위로 하여 약그릇을 들고 있으며, 오른손은 손바닥이 정면을 향하고 손가락을 위로 하고 있다. 몸 뒤편에는 머리 광배와 몸 광배를 계단식으로 새겼으며, 주위에는 불꽃부늬가 있다. 대좌는 연꽃잎이 아래로 향한 모양의 하대석 위에 짧은 기둥 4개로 이루어진 중대석이 있으며, 그 위에 쏯잎이 다섯 장으로 된 연꽃이 불신을 떠받치고 있다. 불상오른쪽에는 '태평이년정축칠월이십구일고석불재여사을중수위금상황제만세원 (太平二年丁丑七月二十九日古石佛在如賜乙重修爲今上皇帝萬世願)' 이라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태평 고려 경종 2년(977)임을 알 수 있다. 조각 기법이 섬세하고 보존 상태가 양호하여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 광배: 회화나 조각에서 인물의 성스러움을 드러내기 위하여 머리나 등 뒤에 광명을 표시한 것.
대웅전
● 광주향교 가는 길:
썬더치킨 & 객산
안샘재 마을회관
<- 350M 금구정사, <- 전통사찰 선법사, 02-792-2654
-> 700M 하남 교산동 마애약사여래좌상
cafe SJ
cafe HAYAN GOM
고기박사 & '오늘은 웃자' 신관
동산주말농장
이 주변도 모두 신도시로 수용되어 조용한 풍경은 사라질 것이다.
하남한식부페, & 산곰장어, 황금정 중화요리,
덕풍천
아, 이 덕풍천 주변의 넓은 남한산성 아래의 분지형 벌판, 모든 곳은 광주향교를 제외하고
모두 신도시로 탈바꿈하여 거대한 아파트 숲으로 변모하게 된다.
● 광주향교:
광주향교 보호수 은행나무, 주치장 방향
대성전
보호수 은행나무 (1981년 지정).
나무나이 약 500년, 나무높이 31m, 나무둘레 810cm.
보호수 은행나무 (1981년 지정).
나무나이 약 450년, 나무높이 32m, 나무둘레 670cm.
광주향교사적비
광주향교 수호목 보호수
광주향교
▶ 공자 (BC 551~ BC 479):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정치가, 사상가, 교육자이다. 예수, 석가, 소크라테스와 함께 세계 4대 성인 중 한 사람이다.
- 탄생: 노나라 시대 산동성 추읍(郰邑)에서 아버지 숙량홀이 64세에 세째 아내 안씨와의 사이에 늦둥이로 태어나다. 공자의 어머니는 아들을 얻기 위해 니구산(尼丘山)에 가서 신령님께 기도를 올리고 공자를 낳았다고 한다. 그런 까닭에 공자의 이름의 니구산의 구(丘) 자에서 따왔다고 하는 설이 있다.
- 성장: 공자 3세 아버지 타계하고, 어머니 슬하에서 성장함. 공자는 성장하면서 15세 이전 학문에 열중하고, 어릴 때 부터 예(禮)에 뛰어났다고 한다.
- 결혼생활: 공자 19세에 어머니 권유로 노나라 거주 송나라 사람 계관씨의 딸과 결혼함. 결혼후 1년만에 아들을 얻었으나 부인에 대하여는 별로 알려진 게 없다.
- 교육활동: 공자 나이 24세에 어머니 돌아가심. 그 후 자기집을 서당으로 젊을 때부터 교육활동을 하여 수십년 동안 무려 3,000명이 넘는 제자를 양성함. 제자 중 특히 안연, 자공, 자로, 자장, 자하 등이 유명하다.
- 관리생활: 나이 50세에 고향의 관리가 되다. 이듬해 노나라 정공의 제나라와의 화해조약 행차시 대동함. 54세에 재상의 실권을 득함. 그 후 정공이 제나라에서 보내온 여자들 때문에 정사를 돌보지 않자 관직을 사임함.
- 생의 마감: 56세에 모국인 노나라를 떠나 약 14년 동안 천하를 주유하며 인(仁)에 기초한 정치를 펼치려 했으나 실패하여 유가 경전을 정리, 편찬하는 데 전념하고, 제자 양성에 힘썼다. 공자 나이 68세에 아들을 먼저 떠나보냄. 제자 중 70세에 도(道)의 계승자로 여기던 안연이 타계하고, 71세에 재아, 72세에 가장 믿었던 자로 마저 세상을 떠남. 그후 공자는 73세에 타계함.
- 공자의 사상: 공자는 인(仁)을 인간의 최고의 도(道)와 덕(德)임을 주창하였다. 공자는 인을 근본으로 예를 실천하는 사람이 군자라고 설파앴다. 《논어》는 그의 제자들이 스승이 죽은 후 편찬한 것으로 공자의 사상이 집대성 되어있다.
▶ 공자 년표:
BC551년 (1세): 노나라 창평향 추읍에서 출생
BC549년 (3세): 아버지 숙량흘 여의다.
BC537년 (15세): 배움에 뜻을 두다.
BC535년 (17세): 이 무렵 어머니 안씨를 여의다.
BC533년 (19세): 송나라 견관씨와 결혼하다.
BC532년 (20세): 아들 공리가 태어나다. 계씨의 창고지기가 되다.
BC531년 (21세): 가축사육하는 일을 맡다.
BC525년 (27세): 노나라에 온 담자에게서 고대 관제를 배우다.
BC522년 (30세): 자립하다. -<논어>
BC518년 (34세): 노나라 대부 맹희자가 아들 맹의자와 남궁경숙에게 공자를 스승으로 삼아 예를 배우라로 유언하여 공자에 입문함.
BC516년 (36세): 제나라 경공이 정치를 묻다.
BC516년 (36세): 소악(韶樂)을 듣고 음악에 심취하다.
BC515년 (37세): 제나라에서 노나라로 돌아오다.
BC512년 (40세): 의혹되지 아니하다 -<논어>
BC509년 (43세): 노나라 정공 즉위하다.
BC502년 (50세): 천명을 알다. -<논어>
BC501년 (51세): 정공9년 노나라 정공이 중도(中都)으; 제(帝)로 삼다. 중도의 제에서 사공(司空), 대사구(大司寇)로 승진하다.
BC500년 (52세): 정공10년. 노정공과 제경공의 협곡회담에 참여하다. 제경공으로 부터 노나라 따을 돌려받다.
BC497년 (55세): 정공13년. 제나라로 부터 여악(女樂)받고 정사를 돌보지 않자 위나라로 떠나다.
BC497년 (55세): 위나라에서 10개월을 머물다 진나라로 가는 도중 광(匡)에서 포위되는 재난을 당하다.
BC492년 (60세): 귀가 순하게 되다. - <논어>
BC490년 (62세): 섭나라의 섭공과 정치를 이야기하다.
BC489년 (63세): 초나라로 가는 도중 진나라와 채나라 사이에서 식량이 떨어져 곤경에 처하다.
BC484년 (68세): 노나라의 계강자가 예를 갖추어 공자를 부르니 14년만에(BC497-484)만에 노나라에 돌아오다.
BC483년 (69세): 악(樂)을 바로 잡다. 아들 공공리가 50세로 죽다.
BC482년 (70세): 마음이 하는 대로 따라도 정도를 지나치지 않게 되다. - <논어>. 노나라가 공자를 정치에 쓰지 않자 제자를 가르치고 문헌을 정리하는일에 힘쓰다. 제자 안희 죽다.
BC481년 (71세): 춘추를 짓다.
BC480년 (72세): 위나라 정변으로 제자 자로 죽다. 자로의 시체를 소금에 절였다는 말을 듣다.
BC479년 (73세): 애공 16년 하(夏) 사월에 공자 세상을 떠나다. 노나라 도성 북쪽 사수(泗水) 강 언덕에 묻히다.
광주향교 | 廣州鄕校
향교는 성현에게 제사를 올리고 지방민을 교육.교화하고자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현재는 교육은 하지 않고 제사만 올리고 있다. 광주향교를 처음 지은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조선 숙종 29년(1703)에 고읍(古邑) 서쪽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향교의 가장 뒤쪽에는 제사 공간인 대성전과 동무.서무가 있으며 그 앞으로 교육 공간인 명륜당과 동재.서재가 있어 전형적인 전학후묘(前學後廟) 구성으로 배치되어 있다. 대성전은 앞면 3칸, 옆면 4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려고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에만 공포가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안쪽에는 공자를 비롯한 중국과 우리나라 성현의 위폐를 모셨다. 명륜당은 앞면 5칸. 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명륜당은 학생들이 모여 공부하는 강당이고, 동재.서재는 학생들의 기숙사이다.
'향교의 수호목'
보호수 은행나무, 나무나이 약500년
이 나무는 수나무로 향교 주위에 4그루의 암나무를 거느리고 있다.
명륜당
《 공자 어록 》:
○ 成事라 不說하며 遂事라 不諫하며 旣往이라 不咎로다. ( 성사 불설 수사 불간 기왕 불구 )
- 이미 이루어진 일은 말하지 않으며, 끝난 일은 간하지 않으며, 지난 일은 탓하지 않는다.
○ 子曰 不仁者는 不可以久處約이며 不可以長處樂이니 仁者는 安仁하고 知者는 利仁이니라.
( 불인자 불가이구처약 불가이장처락 인자 안인 지자 이인 )
- 어질지 못한 사람은 역경에 오래 있지 못하며 행복도 오래 누리지 못한다. 그리고 어진 사람은 仁(인)을 편안하게 여기고 지혜로운 사람은 인을 이롭게 생각한다.
○ 子曰 德不孤라 必有隣이니라. ( 덕불고 필유린 )
- 덕이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으며 반드시 이웃이 있다.
○ 子曰 人之生也 直하니 罔之生也는 幸而免이니라. ( 인지생야 직 망지생야 행이면 )
- 인간의 삶은 원래 정직한 것이다, 정직하지 않으면서도 살 수 있는 것은 요행히 화를 면하고 있는 것이다.
○ 過猶不及이니라. ( 과유불급 )
-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과 같다.
○ 子曰 人無遠慮면 必有近憂니라. ( 인무원려 필유근우 )
- 사람이 먼 앞날을 걱정하지 않으면 반드시 가까운 시일에 근심이 생긴다.
○ 子曰 躬自厚而薄責於人이면 則遠怨矣니라. ( 궁자후이박책어인 즉원원의 )
- 자신을 꾸짖기는 엄하게 하고 남을 책망하길 가볍게 하면 남의 원망하는 소리를 멀리할 수 있다
○ 子曰 年四十而見惡焉이면 其終也已니라. ( 연사십이견오언 기종야이 )
- 나이 사십이 되어서도 남에게 미움을 받는다면 그것은 끝장이 난 것이다.
○ 子曰 君子는 求諸己오 小人은 求諸人이니라. ( 군자 구저기 소인 구저인 )
- 군자는 모든 책임의 소재를 자신에서 구하나 소인은 남에게서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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