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남 이성산성 (209m)
- ( 2022.03.28 )
일교차는 커도 오후 시간은 땨뜻한 봄날씨입니다. 요즈음 나는 집사람과 함께 감기에 걸려 1주일 이상 조심하다 오늘에사 가까운 이성산성을 찾아보았습니다. 이성산의 중턱을 나선형으로 돌아 오르고, 내려오는 산길은 조용하고 좋았습니다. 숲길과 옛 산성의 흔적과 건물터, 저수지 등 유적지에서는 어떤 역사의 향기를 느끼게 하였습니다. 이성산은 남한산성 수어장대가 있는 청량산(497.1m)에서 시작한 능선이 한강 방향으로 내려서다 능선 중간 쯤에서 금암산(321.2m)을 일으키고, 낮은 향교고개를 지나자 마자 곧 바로 하남시 춘궁동의 이성산(209m) 낮게 일으킨 후 한강을 마주하는 평지 부분에서 머리를 숙이는 지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성산은 조망이 우수하여 한강 상류 지역에서 침투하는 적을 감시하기 좋은 곳으로 이성산성의 유적이 있습니다. 가볍게 맑은 공기도 마시며, 좋은 산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집사람은 이성산 산책이 처음인데, 산이 낮아 부담 없고, 숲이 좋으며, 유적지와 주변 전망이 너무 좋다고 합니다. 집사람이 좋다니 참 보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 이성산(二聖山): 높이가 209.8m의 경기 하남시 광암동에 있는 낮은 산이다. 이성산은 남한산성이 있는 남한산에서 금암산(金岩山)으로 이어진 한강 방향의 산줄기 상에 마지막 낮게 솟아 있는 산이다. 산 양편으로는 동서로 하남의 과 춘궁동과 초이동이 있다. 이성산(二聖山)의 명칭은 백제 왕자 두 사람이 거주했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성산에는 이성산성( 사적 제422호) 유적이 있으며, 이는 553년 신라가 한강 하류를 탈취하여 이 유역을 방어하기 위해 행주산성, 아차산성, 대모산성(양주), 호암산성, 계양산성(인천) 등을 쌓았다고 전해진다. 신라는 지방조직인 '신주(新州)'를 설치하고 치소를 이성산성에 뒀다고 전해져 이성산성의 중요성을 알 수 있게 한다. 이성산성, 아차산성과 함께 한강 상류 지역을 잘 바라보며 탐지하고 방어할 수 있는 낮은 산 위에 있는 요지라고 여겨지는 곳이다.
○ 산 책: 걸음수 5,603 steps, 거리 3.9 km, 229 kcal, 소요시간 01:20 hrs, 속도 3.7 km/h, 기온 4℃.
○ 코 스: 이성산성 주차장 - 저수지(A지구) - 이성산 둘레길 - 이성산 정상 (209.1M) - 장방형건물지 & 9각 건물지 - 이성산성 동문지 - 저수지(C지구) - 장방형건물지 & 9각,12각 건물지 - 저수지(A지구) - 이성산성 주차장.
이성산성 주차장 (무료)
하남 이성산성, 이성산성 안내도, 하남역사박물관 이성산성AR실감관
● 하남 이성산성: 사적 제422호.
이성산성은 춘궁동 이성산 정상부에서 남쪽으로 계곡을 감싸면서 돌로 쌓은 삼국시대 산성이다. 이성산성 면적은 231,313 m2, 둘레는 약 1.9km로, 한강을 포함한 주변 지역을 한눈에 모두 볼 수 잇을 정도로 위치가 좋다. 지리적으로 강북의 적으로 부터 한강 우역과 남쪽의 평야지역을 방어하기 유리한 지점에 있다. 이성산성은 1986년 문화재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장방형, 8각, 9각, 12각 건물지 등 20여 동에 이르는 건물지와 성문지, 저수지 등이 드러났고, 목간(木癎), 요고(腰鼓), 쇠발, 조각품, 벼루, 나무자 등 다양한 유물이 촐토되었다. 이성산성은 처음 산성을 쌓은 사람들이 백제 또는 고구려 사람들이라는 이야기가 있으나 대체로 신라가 한강 유역을 차지하고 난 후 6세기 중반에서 8세기 까지 주로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성산성은 삼국을 통일하던 시기 신라의 군사적 요충지(군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장소)이자 새롭게 점령한 한강 유역의 행정 중심지, 또는 국가의례와 제사를 실시하던 유적으로 보인다. 앞으로도 꾸준한 조사와 연구를 통해 산성이 처음 만들어진 시기나 정확한 용도, 사용기간 등 밝혀낼 역사적 사실이 많은 고대 산성이다. 성안에서 나온 유물은 하남역사박물관과 한양대학교 박물관 등에서 직접 볼 수있다.
● 이성산 안내도:
1) 저수지(A지구), 2) 9각 건물지, 3) 12각 건물지, 4) 장방형 건물지, 5) 건물지, 6) 8각건물지, 장방형 건물지,
7) 9각 건물지, 8) 건물지, 9) 동문지, 10) 서문지
<- 0.1km 이성산성
전면 중앙에 보이는 뾰족한 객산 (292.1m)
오른쪽 멀리 뾰족한 남한산 (522m)과 그 능선 왼쪽에 벌봉(515m)이 보인다.
이 능선이 하남 방향 내려서다 객산을 일으킨 후 능선이 소멸된다.
벌봉은 남한산성의 수어장대(497m)보다 높기 때문에 남한산성의 서쪽 내부와 동쪽 성벽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또한 벌봉을 둘러싸고 있는 남한산성의 외성에는 천혜의 요새답게 산세가 험해
병자호란 때 청태종과 청군이 이곳에서 진을 친 다음 전투는 하지 않고
인조와 조선군이 피신해 있는 남한산성을 내려다보면서
항복할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
귀롱나무
봄의 푸른 잎사귀
이성산성 성벽
사적 제422호.
이성산성 성벽은 2번에 걸쳐 만들어졌다. 수직에 가깝게 쌓은 1차 성벽은 일정기간이 지난 후 어떤 요인으로 무너졌고, 이상산성의 지배자는 적의 침입에 방비하고 요새를 굳건히 만들기 위하여 다시 성벽을 쌓았다. 새롭게 만든 2차 성벽의 성돌은 마치 옥수수알 모양처럼 둥그스럼한 모양이 되도록 정성스럽게 듬었다. 성돌의 끝은 좁고 길게 깎아 성벽을 만들 때 성돌과 뒷채움돌이 견고하게 물리도록 하였다.
갈림길
<- 0.2km 위례역사길 (남문지), -> 위례둘레길( 남한산성) 6.0km, -> 위례둘레길(이성산) 0.6 km
↑ 서문지, -> 남벽
성벽 Fortress Wall
하남 이성산성 성벽의 단면은 전치적으로 사다리꼴의 형태이며, 높이는 약 7m, 기울기는 수직에 가깝다. 6세기 중엽 처음 쌓은 이후, 7세기 말에서 8세기 초에 보수하였고, 시간이 흐른 뒤 성벽이 무너져 8세기 초에 2차 성벽을 다시 덧붙여 쌓았다. 2차 성벽은 옥수수알 모양으로 잘 다듬은 성돌로 쌓았다. 1차 성벽의 밑바닥에서 약 1.5m 높이까지 돌을 채워쌓고, 그 위에 너비 60~90cm 크기의 지대석* 을 올려 놓았다. 지대석 위에는 모서리를 둥글게 깍은 옥수수모양의 성돌을 위로 가며 10cm 정도씩 들여쌓아 성벽에 기울기를 준다. 들여쌓기는 성벽의 안정성을 높여주었다. 그리고 성돌 모서리를 둥글게 깍은 옥수수알 성돌은 적들이 쉽게 성벽을 오르지 못하게 만들어 성벽의 방어력을 높여준다.
* 지대석: 건축물이 세워지는 곳을 주위보다 조금 높이기 위해 쌓은 돌.
노란 산수유
따뜻한 남향으로는 진달래꽃도 피어있었다.
갈참나무
참나무류 중 가을에 늦게까지 낙엽이 남아 있어 가을 참나무란 의미로 '갈참나무'라 한다.
금암산(321.2m)
거북이바위
거북의 형상을 하고 있는 바위로 등 뒤에는 삼태성(三台星)* 의 별자리가 새겨져 있으며 신앙유적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 삼태성(三台星)은 국자 모양의 북두칠성의 물을 담는 쪽에 길게 비스듬히 늘어선 세 쌍의 별이다.
서문지 西門址
이성산성에는 동.서.남.북에 1개씩 총 4개의 문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지금까지 발굴 조사를 한 결과 동쪼과 서쪽에서 문 터가 발견되었다. 동문지와 마찬가지로 서문지는 사다리를 걸쳐놓고 올라가야 하는 현문식 懸門式 구조이다. 문의 크기를 파악할 수 잇는 주변 성벽도와 함께 확인되었다. 바닥에는 동문과 마찬가지로 물을 빼내는 시설을 설치하였다. 성벽은 두번에 걸쳐 다시 지었기 때문에 처음 지었던 문초측과 다시 지어진 문수축으로 구분되며, 문의 규모로 파악할 수 있는 옆 벽축벽이 성벽의 동서 양 쪽에서 확인되었다. 처음 축조한 문의 너비는 약 6.8m 이며 높이는 1.3m 가량 남아 있었다. 다시 지어진 문은 너비 약 3.8m이며 문의 입구 안쪽에 2개의 문확석* 이 발견되었다.
* 문확석: 문을 끼워넣는 구멍이 있는 돌.
춘궁동(春宮洞):
춘궁동은 춘장리의 춘(春)자와 궁말의 궁(宮)자를 붙여 춘궁동이 되었다. 춘장(春長)은 옛 백제시대에 궁궐이 있던 마을을 뜻하며, 궁말도 백제 때의 국궐이 있었던 것을 뜻한다.
남문지 갈림목
↖ 3.1km 위례둘레길(덕풍골), ↖ 0.2km 위례둘레길(이성산), <- 0.6km 위례둘레길(동문지),
-> 위례둘레길(남한산성) 5.6km, -> 위례둘레길(동사지) 1.3km.
하남시 초이동 방향
산불감시초소 & 이성산 정상
이성산 해발 209m
이성산(二聖山):
춘궁동 산 36번지 일대에 위치한 산으로서 해발 209m이며 춘궁동과 초이동을 끼고 있다. 남한산성에서 금암산을 따라 이어진 줄기에 속한 이 산은 이성산성이라 불리우는 석축산성이 있다. 전설에 의하면 백베의 왕자 두 사람이 이 산에 거주 하였다 하여 이성산이라 칭하였다는 설이 있다. 발굴조사 결과 삼국시대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으며, 오래 전 부터 백제 도읍지와 관련하여 학계의 부목을 받아오고 있는 산이다.
이성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하남 검단산 (657m)
● 하산 길:
위례역사길 코스
↖ 2.7km 위례둘레길(덕풍골), ↖ 0.1km 위례둘레길(동문지),
-> 6.0km 위례둘레길(남한산성), -> 0.2km 위례둘레길(이성산),
↙ 1.8km 위례둘레길(동사지).
하남시 방향
8각 건물지
동문지 주변에서는 8각 건물지, 9각 건물지, 장방형 건물지가 1곳씩 확인되었다. 8각 건물지는 지름이 8.8M이다. 중심부에 하나의 초석을 두고 주변으로 세 줄이 원을 그리며 놓여있다. 초석의 수는 21개이다. 주요 유물로는 격자문. 당초문* 기와, 고배, 합**, 벼루, 도가니***, 시루, 철제 못 등이 있다. 이러한 유물과 건물지의 모양을 볼 때 사직단**** 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 당초문: 덩굴풀이 꼬여서 뻗어나가는 모양을 그린 무늬.
** 합: 뚜겅이 있는 그릇.
*** 도가니: 쇠붙이를 녹이는데 쓰는 오목한 그릇.
**** 사직단: 토지의 신인 '사'와 곡식의 신인 '직'에게 제사를 지내던 제단.
장방형 건물지:
동문 주변애서는 8각 건물지, 9각 건물지, 장방형 건물지가 각1곳씩 확인되었다. 장방형 건물지는 15X4칸 규모이며 창고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원래 초석*의 수는 80개 였을 것으로 보이나, 현재 남아있는 초석은 54개이다. 건물은 특별히 기단부* 를 높이거나 하지 안호고 산의 완만한 경사면을 다듬기만 한 후 지었으며, 초석 역시 기둥이 놓이는 윗면만 다듬어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건물지 주변에서는 흙이나 철로 만든 44개의 말을 일부러 부러뜨려 문어 놓은 것이 발견되었다. 건물초석** 에 동물 머리를 파묻는 것은 중국 고대부터 있던 풍습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백제 풍납토성에서 말머리가 발견된 사례가 있다. 삼국시대 중반 이후로는 이성산성에서 발견된 것과 같이 흙이나 철 등으로 작은 말 모형을 만들어 묻었다. 또 토제벼루편, 돌화살촉, 돌도끼도 여러 점 발견되었다.
* 초석: 건물의 기둥 아래 괸돌.
** 기단부: 건물의 기초가 되는 단 부분.
9각 건물지
광주군 향토유적 광주제1호
이성산성 (二聖山城)
하남 시가지
왼쪽 팔당의 예봉산(678.8m), 중간 율리고개, 고개 오른쪽의 예빈산 (견우봉, 직녀봉), 오른쪽 하남의 검단산 (657m).
동문지 東門址
이성산성에는 동,서,남,북에 각 1개씩 총 4개의 문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지금까지 발굴 조사한 결과 동쪽과 서쪽에서 문이 발견되었다. 동쪽에서 조사된 동문은 사다리를 걸쳐놓고 올라가야하는 현문식 구조이다. 성벽과 같이 두 번에 걸쳐 만들어지고 사용되었다. 성벽 위 3.5m 높이에 망들었고, 처음에는 너비 6.2m, 그 다음에는 3.56m로 하였다. 문 양쪽에서 문을 고정하는 돌 두개가 발견된 것으로 보아 목재로 된 문을 걸어 사용했을 것이다. 바닥에는 물을 빼내는 시설을 설치하였다.
< 참고> 이성산성은 한강주변에 접해있는 여러 성 城들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해 있으며,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리적 가치를 지닌 유적이다. 동문東門의 형태는 凹요 모양의 현문식懸門式-출입구가 성벽 중간에 있어 드나들 때 사다리 등의 특수시설을 이용해야 하는 문 이며, ‘ㄱ’ 자형으로 꺾여있어 적으로부터 공격시 효율적인 방어가 가능하도록 축조되었다. 외벽 안쪽으로는 2차 개축 때 형성된 것으로 보이는 문지공석門址孔石-기둥을 무너지지 않게 고정시키는 돌, 문비고정석門扉固定石-문을 닫을 때 문이 뒤로 밀려나지 않게 고정시키는 돌과 집수시설集水施設, 배수로排水路 및 두 차례 이상 개축한 것으로 보이는 측벽이 있다. 문비고정석 중앙 하부는 암반층을 굴토하여 집수시설과 배수로를 만들었으며, 출수구로 물을 배출시킬 수 있도록 자연스러운 경사로를 만들어 조성하였다. 이는 동-서 방향의 경사로 인해 성 내부로 흘러들어온 물을 모아 성 외부로 배출시키기 위한 것이다.
멀리 아파트 사이에 있는 타워는 하남유니온타워이다.
그 오른쪽에 스타필드 하남이 있다.
중간에 중부고속도로가 보인다.
상일동, 고덕지구 방향
C지구 1호 건물지
C지구 2호 건물지
C지구 12각 건물지
C지구 저수지
하남 이성산성:
1) 남문지, 2) 제2저수지, 3) 장방형건물지, 4) 9각건물지, 5) 12각건물지, 6) 장방형건물지, 7) 장방형부석건물지, 8) 제1저수지, 9) 장방형건물지, 10) 동문지, 11) 9각건물지, 12)장방형건물지, 13) 8각건물지, 14) 북문지, 15) 장방형건물지, 16) 장방형건물지, 17) 서문지
A지구 저수지
에이(A)지구 저수지는 두 차례에 걸쳐서 만들어졌으며 각각 1차 저수지와 2차 저수지로 부른다. 1차 저수지는 자연 저수지로, 형태는 타원형이고 크기는 대략 54x30m, 깊이 4.3m 정도로 추정한다. 저수지 안에서는 목간*, 목재 및 토기, 연화문 수막새** 등 다양한 유물이 나왔다. 특히 목간에는 무진년 戊辰年 608년으로 추정 정월 12일에 열린 행사와 행사에 참석한 지방의 관리, 지방 유력 세력의 명칭 등이 적혀 있어 당시 생활 모습과 신라의 지방 지배제도에 대한 정보를 알려준다. 2차 저수지는 크기 18X27m, 깊이 2.3m 내외의 직사가형이며 돌로 쌓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1차 저수지가 자연적으로 기능을 잃게되자 1차 저수지 내부의 밑바닥을 일부 파고 2차 저수지를 만들었다. 2차저수지에서는 인화문 토기*** 등의 토기와 목간, 목재 인물상, 목제 빗 등 각종 목재 유물, 연화문 수막새 등이 발견되었다.
* 목간: 글을 적은 나뭇조각.
** 수막새: 지붕 추녀 끝 장식 기와.
*** 인화문 토기: 겉면에 무늬가 새겨진 도장을 눌러찍어 무늬를 낸 토기.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 토기 형태.
<- 1.4km 위례역사길 (동사지), <- 1.3km 위례역사길 (광주향교),
-> 위례둘레길( 덕풍골) 3.0km, -> 위례역사길 (동문지) 0.4 km
향토민물장어 031-792-8295,
이성산성 주차장 방향
한정식집, 수막새 ( 031-793-8932/ 경기 하남시 서하남로 451번길 13-13)
창고형, 신뱔 왕도매
최부자집 만두샤브샤브, 만두 뚝배기
이곳 이상산성 입구에는 길 건너에 하남 고골약수터가 있는 곳으로 서울과 가깝고 많은 음식점들이 포진하고 있다.
보리향, 보리밥 청국장
중화요리, 리향
광주향교 방향
하남 이성산성 300M ->
다시, 하남 이성산성 주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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