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길산 수종사, '물의 정원'
- ( 2022.06.01 )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송촌리의 운길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봉산사의 말사인 수종사(水鐘寺)를 가보았습니다. 조선시대 유명한 시인 서거정(1420~1488)이 수종사에 올라 “동방 사찰 가운데 제일의 경치”라 격찬하였다고 하는 수종사는 운길산(606.5m)의 능선 절상봉(522m) 바로 아래에 위치해 있습니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 일대를 내려다 보며 조망할 수 있는 절로서, 조선시대 유명한 시인, 묵객들이 찾아온 사찰입니다.
수종사는 1458년 (세조4년) 세조가 두물머리에서 머물다 새벽에 들려오는 종소리를 따라 올라와 보니 그 종소리는 다름아닌 바위굴 속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임을 알았고, 굴속에서 18나한을 발견하고 5층 돌계단을 쌓았으며 팔도방백에 중창을 명하여 도량을 짓고, 수종사라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 절로 조선왕조와 깊은 인연을 갖고 있는 절입니다.
수종사는 한국전쟁으로 불에 탄 이후 1974년 이후부터 복원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대웅보전은 1974년에 혜광스님에 의해 건립되었고, 1981년 대웅스님은 약사전과 종각을 지었으며, 1999년부터 동산스님이 응진전, 선불장, 삼정헌, 경학원, 미륵불, 일주문 등을 세웠다고 합니다.
수종사는 이렇게 높은 산 비탈에도 물이 나오기 때문에 절을 지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수종사는 높은 위치 때문에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양수리 일대를 아주 잘 조망할 수 있어, 조선시대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수종사의 경치에 감탄했다는 절입니다. 옛날에는 물길을 이용하여 수종사 아래 송촌리의 용진나루터로 와서 거기에서 부터 수종사를 등산하여 올라왔을 것입니다. 수종사까지는 상당한 거리이고 지금과 달리 그 옛날엔 험하고 가파른 산길이었을 텐데, 그 높은 곳의 절까지 힘들게 올라간 연유를 알 것 같습니다. 수종사에서 바라보는 유유히 흐르는 북한강과 양수리, 팔당호수 주변의 경치는 참 아름다웠습니다. 수종사는 경학원이 있어 많은 수종사 방문 인사들이 이곳에서 학문을 논하고, 묵으며 좋은 시와 그림을 남겼을 것 같습니다.
하산시는 수종사 축대 아래 비포장 임도를 따라 내려왔는데, 솔직히 나는 높은 절벽같은 축대가 무섭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아주 가파른 산 기슭에 축대를 쌓아 공간을 확보하고 지은 절로서 지금까지 큰 장마 비 등에 축대가 문제없이 보존되고 있다는 게 정말 신기하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석축으로 된 축대가 아주 야무져 보이지 않고 내 눈에는 아슬아슬하게만 느껴졌습니다. 이 도로가 있어 수종사 경내까지 차량이 올라가 보호수 곁 공터나 보광전 옆 공간에 주차하고 있었습니다. 수종사는 스타렉스 차량 2대를 운영하고 있는 것 같으며, 이 차량이 없다면 보통 다리가 불편하신 연로한 여성 신도들은 수종사까지 오기 힘들 것입니다.
수종사 구경 후에 하산하여 진중리 북한강변의 '물의 정원'에도 잠깐 들렀다가 왔습니다. 지금 물의 정원에는 양귀비 꽃이 화려하게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했으니 지금 부터 10일 안에 가서 보면 장관을 이룰 것 같았습니다.
● 수종사는 운길산(610m) 능선, 절상봉 아래 위치한 절로서, 절 입구에서 삼정헌, 웅진전, 산령각, 선불장, 사리탑, 팔각오층탑, 대웅보전, 경학원, 보광전, 범종각의 배치를 보이고 있다. 거의 운길산 정상 부근이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25교구 봉선사의 말사이다. 창건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조선 후기 절에 대한 책 '범우고'에 의히면 세조가 이 절에 친히 행차하여 땅을 파서 샘을 찾고 혹은 종을 발견했다 해서 '수종사' 라고 했다는 전설이 있다. 1939년 석조 부도를 중수하면서 세종21년 (1439)에 조성된 정의옹주 부도로 추정되기에 조선 초기 창건된 절이라고 추정된다.
○ 산 책 : 걸음수 15,935 steps, 거리 9.08 km, 소모열량 654.2 kcal, 소요시간 03:05 hrs, 속도 3.6 km/h, 기온 24 ℃.
○ 코 스 : (경의중앙선) 운길산역 - 진중2리경노당 - 능선 시멘트 차도 - 수종사 (반환점) - 능선산길 하산 - 북한강 '물의 정원'.
● 수종사 가는 길:
경의중앙선 운길산역.
운길산(606.5m)이 보이고, 오른쪽 뾰족한 절상봉(522m)이 보인다.
절상봉 아래 숲이 없는 검정 부분에 수종사가 있다.
○ 예봉산, 운길산 등산 안내도:
1) 팔당역- 등산로입구- 예봉산: ( 거리 2.88 km/ 소요시간 1:50분 )
2) 팔당역- 등산로입구- 벗나무쉼터- 예봉산: ( 거리 3.56 km/ 소요시간 2:10분 )
3) 천주교묘지- 승원봉- 견우봉-직녀봉-율리고개-율리봉- 벗나무쉼터- 예봉산: ( 거리 5.15 km/ 소요시간 2:40분 )
4) 도곡리마을버스종점- 새재고개- 적갑산- 철문봉- 예봉산: ( 거리 6.15 km/ 소요시간 3:05분 )
5) 도곡리마을버스종점- 새재고개- 운길산: ( 거리 6.50 km/ 소요시간 3:20분 )
6) 운길산역- 율리봉- 벗나무쉼터- 예봉산: ( 거리 5.25 km/ 소요시간 2:50분 )
7) 운길산역- 운길산: ( 거리 3.10 km/ 소요시간 1:40분 )
8) 조안보건지소 - 운길산: ( 거리 2.97 km/ 소요시간 1:30분 )
9) 한음이덕형별서터- 운길산: ( 거리 2.28 km/ 소요시간 1:15분 )
남양주 8경(八景):
1경: 정약용유적지, 2경: 광릉숲, 3경: 북한강 자전거길, 4경: 천마산 일출, 5경: 축령산(축령산자연휴양림)
6경: 오남호수공원, 7경: 수락산. 불암산, 8경: 미음나루, 삼패한강공원.
다산길 종합 안내도
< 삼패한강공원(시점) - (8.45km, 2:50소요)- 예봉산입구 - ( 4.16km, 1:10 소요)- 마재마을 - (2.15km, 00:45 소요) - 다산유적지- ( 5.34km, 1:30 소요)- 운길산역(현위치, 종점) >
① (삼패한강공원~팔당역) (1:50소요, 7.36 km )
② (팔당역~능내역(폐역)~다산유적지 입구) (1:33소요, 6.23 km )
③ (다산유적지 입구~운길산역) (1:31소요, 6.1km ).
<- 예봉산 등산로
이 구간은 거리가 상당히 길다. 예봉산 등산은 팔당역에 내려 가는 것이 좋다. 나는 예봉산 하산길에 율리고개를 지나 율리봉 직전에서 운길산역 방향으로 한번 하산해 본 적이 있다.
운길산역 이정표
<- 5.25km 예봉산 정상, ↖ 3.10km 운길산 정상, ↖ 3.2km 주필거미박물관
꿈마을 장어
북한강을 끼고 있는 양수리 일대에는 장어집이 많다.
운길산역에서 운길산 수종사 가는 길
운길산 정상 오른쪽의 뾰족한 봉우리 절상봉 아래 숲이 파인 듯이 보이는 곳에 수종사가 있다.
지금 부터 저기까지 올라야 한다.
장미와 운길산역
푸른농원 가는 길,
토종닭 백숙, 오리백숙, 닭볶음탕, 오리로스, 두부전골, 낚지볶음,
오디체험 판매 010-7314-8695
옥수수, 감자 등 텃밭의 농작물이 싱그럽다.
운갈산, 수종사 가는 마을 길
멀리 하얀 기상대가 보이는 예봉산, 그리고 진중리 계곡.
전철은 이 계곡을 가다 터널로 들어간다.
<- 운길산 0.45km, -> 운길산 정상 2.6km, -> 수종사 2.2km
운길산 수종사 등산로 ->
진중2리 경로당
초록향기 뜨락
초록향기 입구 ->, 영업합니다. 청국장 팝니다.
산아래 농원 각종 야채 판매합니다.
마지막 집
마지막 집 곁의 예봉산, 운길산 안내도.
↑ 계곡 직진, 운길산, -> 산비탈 수종사 가는 차도
마지막 집 곁에서 바라보는 운길산역 방향
앗, 능선 산비탈 수종사 가는 시멘트 차도.
시멘트 길 중간 중간 갓길 공터에 차를 두고 운길산 등산이나 수종사 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수종사 까지 가는 좁은 도로는 매우 가파르고 서로 교행하는 데 힘들게 느낄 수 있다.
산길에서 숲 사이로 북한강이 보인다.
↖ 팔각정, <- 운길산정상( 수종사 0.97km) 1.77km, ↘ 운길산역 1.80km
가파른 시멘트 길에 덥고 지치는데, 지금 어디 쯤이야 하는 생각하게 되는데
숲속 산길의 바로 위의 산 속 팔각정 길, 그리고, 수종사와 운길산 가는 거리를 가늠할 수 있어
이 이정표가 고맙고, 너무 좋다.
무더운 여름날 산길 나설 때는, 다 아시겠지만,
초코렛 바, 빵, 단 음료, 커피, 얼음물, 그리고 보통 시원한 물 충분히 가져 가세요.
물수건도 필요하고요, 옷은 아침과 낮에 기온에 따라 입을 수 있게 하시고,
발 뒷쿰치 등 아플 때 붙일 파스도 가져 가지고, 등등...
나는 집에서 조그만 깡깡 얼음 생수 한병 가져 갔다가 얼음이 녹지 않아서 목 마른데 혼 났습니다.
무더운 길 산행 중에 만나는 반가운 경치
나는 옛날 차를 가지고 한번 수종사 일주문까지 오른 적이 있는데 나의 운전 미숙으로
교행이 어려워서 긴장되고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쓰러지지 않고 ... 강인한 생명력
나도 꽃은 꽃이예여,
예쁘게 보아주세요.
앗, 북한강... 멀리 뾰족한 청계산(656.1m), 형제봉 (507.6km)
중간 오른쪽 부분 하계산(326m), 그 뒤 뾰족한 부용산 (362.7km).
바로 아래 북한강변의 '물의 정원'
앗, 시원한 음료 자판기
일주문 곁의 주차 공간
운길산수종사
1. 대웅보전, 2. 경학원, 4. 웅진전, 5. 산령각, 6. 삼정현, 7. 후원채, 8. 다도실, 9. 범종각, 10. 보광전, 11 팔각오층탑 (보물 제1808호), 12. 부도 (경기도유형문화재 제 157호), 13. 불이문, 14. 미륵불, 15. 일주문, 16 화장실
남양주 운길산 수종사 일원: (명승 제109호):
조선시대 문인인 정약용이 지은 <유수종사기(遊水鐘寺記)>에 수종사는 신라시대 때 지은지 오래된 사찰이라고 전하고 있니만, 근거 자료가 없어 자세하지 않다. 전하는 설화에 따르면, 고려 태조 왕건이 산 위에서 솟아나는 이상한 구름기운을 보고 가보았더니 우물 속에 동종이 있어서 그곳에 절을 짓고 수종사라고 이름 붙였다고도 하며, 1458년(세조4년)에 금강산을 다녀오던 길에 이두수(二頭水: 兩水里_양수리) 에서 유숙하던 세조가 운길산에서 종소리를 듣고 깨어나 주변을 찾아보니 18나한상이 모셔져 있는 바위굴에서 물소리가 종소리처럼 울려 퍼지고 있어 수종사라 하고 중창하였다고도 한다" "수종사에는 1439(세종21)에 조성한 태종의 딸 정혜옹주(? ~1424)의 부도와 1494년(성종24)에 태종의 후궁인 명빈 김씨(?~1476) 성종의 후궁들이 발원하여 조성한 팔각오층석탑이 있다. 팔각오층석탑에서는 1682년(인조6) 선조의 계비인 인목대비(1584~1632)가 발원하여 조성한 불보살상도 발견되었다" " 1890년(고종27)에는 주지로 있던 풍계 혜일(枫溪慧一)이 고종에게 8천냥을 하사받아 수종사를 중창하였다. 이듬해에 다시 4천냥과 비단을 하사받아 불상 4존(尊)을 개금하고 탱화 3축(軸)을 새로 봉안하였다."
"여기는 슬로시티 조안" - 남양주시
" 수도권 최초의 슬로시티, 남양주시 조안..."
빠르게 빠르게만 살아온 현대인들의 삶 속에 작은 쉼표가 되어주는 수도권 최초 슬로시티 조안, 이곳에서는 북한강과 남한강이 서로 만나 유유히 흐르는 자연의 수려함과 다산 정약용의 얼을 그대로 지닌 전통의 가치를 함께할 수 있습니다.
'새가 편안히 깃든다'하여 이름 붙인 조안은 구불구불 이어진 마을 안길로 차가 마주하요도 기다려 주는 느림의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자연의 시간을 존중하고 배려하여 얻은 자연의 먹을 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나누는 곳이기도 합니다. '슬로시티 조안'은 그 이름에 걸맍게 천천히 돌아보아야 제멋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강바람의 향기를 맡으며 힘차게 페달을 밟는 자전거로 자연과 역사가 주는 고마움을 공유하며 걷는 다산길 걷기까지 느림의 미학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느리게, 느리게...자연의 속도에 맞추다 보면 우리의 마음에 평안이 깃들 것입니다.
↑ 운길산 1.0km
불이문, 공사중
수종사 계단 입구 이정표
↑ 0.8km 운길산 정상, -> 수종사(보호수), ↓ 운길산역 2.8km
● 수종사:
해탈문
삼정헌
선불장 & 대웅보전 & 경학원
응진전
삼정헌 곁의 경치
선불장,
종무소로서 요사채와 함께 있다.
대웅보전
삼정헌
초의선사,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한음 이덕형 선생 등이 차를 즐겨 마셨을 삼정헌이다. 초의선사는 전라도 대흥사의 다도에 관한 유명한 스님인데, 1830년 정약용의 두 아들과 함께 눈보라 속에 운길산 수종사를 찾았다고 한다. 초의선사는 배를 타고 한강을 거슬러 이곳으로 왓으며, 조선시대 문인들도 대개 한강을 따라 배로 유람에 나섰을 것이다.
"묵언"
묵언무언(默言無言), 묵언수행(默言修行). 말이 없으면 자기 내면을 살피게된다.
입을 닫아 말을 하지 않고 잠잠함은 어떤 깊은 뜻이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슬기로운 자는 말을 삼가하는 것이다.
" 침묵은 금이다 " - 데모스테네스( 고대 그리스의 정치가이며 웅변가 ).
"미련한 자라도 잠잠하면 지혜로운 자로 여겨지고, 그의 입술을 닫으면 슬기로운 자로 여겨지느니라"
- ( 구약성경, 잠언 17 :28 ).
북한강, 북한강철교, 양수대교, 신양수대교,
신양수대교 왼쪽에 두물머리, 그리고 팔당호수,
산 아래 바로 운길산역.
멀리 중간 왼쪽 뾰족한 해협산(527.7m), 그 앞으로 정암산(406.4m),
그리고 중간의 약간 오른쪽에 뾰족한 무갑산(578m).
오른쪽 팔당호에서 무갑산 방향으로 경안천이 흐르고 있다.
중간의 수종사 산령각
남양주 수종사 사리탑 (좌측: 보물 제2013호), 삼층석탑 (중간, 비지정),
그리고 수종사 팔각오층석탑 (우측: 보물 제1808호)
1939년 사리탑 해체, 수리시 발견된 사리장엄구 (舍利莊嚴具)는
보물 제259호로 지정되어 불교중앙박물관에 소장 중이다.
유형문화재 제 157호
남양주 수종사 부도 ( 南陽州 水鐘寺 浮屠 ):
왕명에 의하여 세워진 수종사에 남아있는 팔각원당형 부도이다. 팔각원당형 부도는 기단, 탑신, 지붕이 모두 8각형이도 단층인 부도로 지붕과 기왓골 등 세부는 목조 건물의 양식을 모방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지붕돌 낙수면에 '태종 태후 정의옹주 사리조탑 시주 OO유씨금성대군정동4년기미십월일입'이라는 명문이 세겨져 있어 세종 21년(1439) 왕실의 명으로 제작돠었음을 알 수 있다.
남양주 수종사 팔각오층석탑:
남양주 수종사 팔각오층석탑은 경기도 남양주 운길산 중턱에 위치한 수종사에 전해오는 조선시대 석탑이다. 수종사는 조선 세조 5년(1459)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며 석탑은 원래 사찰의 동쪽 능선에 있었으나 후대에 대웅전 옆으로 옮겨졌다. 1957년 해체 수리 중에 1층 탑신과 옥개석 등에서 19구의 불상과 1970년 이전 도중에 2층 , 3층 옥개석에서 12구의 불상이 각각 발견되었는데 함께 발견된 묵서명을 통해 성종 23년(1493)에 건립되었고 인조 6년(1628)에 중수된 것을 알 수 있다. 석탑의 형태는 고려시대 팔각석탑의 전통을 이으면서 규모가 작아지고 장식적으로 변모한 조선 초기 석탑의 형태로 지대석 위에 팔각의 대석을 올리고 그 위에 팔각형 기단석을 올렸다. 기단부는 아래로 향한 연꽃과 위로 향한 16엽의 연꽃문양을 각각 새겼고 5층으로 된 탑신 역시 팔각형으로 옥개석(지붕들) 치마의 부드러운 곡선과 원형기둥, 옥개받침 등이 특징적이다. 정상부에는 합각지붕 형태의 삼각형 문양을 2단으로 조성하였고, 그 위에 연봉우리 모양의 보주를 올렸다. 수종사 팔각오층석탑은 현재까지 확인된 조선시대 석탑 중 유일한 팔각오층석탑으로 건립 연대가 확실하고 비교적 작은 규모임에도 안정적인 비율과 지대석에서 상륜부까지 섬세한 조각으로 역사적, 학술적 가치는 물론 높은 품격을 보여주고 있다.
남양주 수종사 사리탑:
남양주 수종사 사리탑은 조선 태종 이방원의 딸 정혜 옹주를 추모하고자 제작한 승탑이. 이 탑의 몸돌은 공같이 둥근 모양인데, 겉면에는 구름과 용이 조각되어 있다. 이 탑은 몸돌의 윗부분을 튀어나오게 하여 지붕돌의 밑부분에 조립한 것이 특징이다. 지붕돌의 빗물이 흘러내리는 면에 "태종 태후" 太宗 太后/ 정혜 옹주 貞惠翁主/ 사리 조탑 舍利 造塔/ 시주 문화 류씨 施主 文化 柳氏/ 금성 대군 정통 錦城 大君 正統 / 사년 기미 십월일 四年 己未 十月日" 이라는 문구가 기록되어 있어 이 사리탑이 조선 세종 21년 (1439)에 정혜옹주를 추모하고자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남양주 수종사 사리탑은 건립 시기가 분명하고 탑의 각부분에 새겨진 문양이 우수하여 조선 전기의 사리탑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또한 승탑을 만들어 옹주를 추모한 것은 당시 조선 왕실의 불교 신앙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어서 그 가치가 높다.
* 태종의 첫째 후궁인 의빈 권씨가 정혜옹주 사리탑을 조성했으며, 문화 류씨와 금성대군이 시주했고, 정통 4년 기미년(1439년) 10월에 세웠다는 내용이다. 이를 통해 조선 왕실 발원으로 조성된 탑임을 알 수 있다. 출생연도가 정확하지 않은 정혜옹주는 1424년 세상을 떠났다. 1426년 세종의 여섯째 아들로 태어난 금성대군이 정혜옹주 사리탑에 시주한 것은, 의빈 권씨가 금성대군을 맡아 기른 인연 때문으로 보인다.
경학원
水鐘寺 (수종사)
서거정
秋來雲物易悽悽_ 추래운물이처처
宿雨連朝水拍堤_ 숙우련조수박제
下界煙塵無地避_ 하계연진무지피
上方樓閣與天齊_ 상방루각여천제
白雲歷歷誰堪贈- 백운력력수감증
黃葉飛飛路欲迷_ 황엽비비로욕미
我擬往參東院話_ 아의왕참동원화
莫敎明月怪禽啼_ 막교명월괴금제
가을이라 오만 풍경이 처량해지기 쉬운데
밤새도록 비까지 와서 물이 못 둑을 쳐 대네.
속세의 연기 먼지는 피할 길이 없건만
상방의 누각은 하늘과 가지런하여라.
백운은 역력하건만 뉘에게 줄 수 있으랴
단풍잎은 흩날려 가는 길은 헷갈리겠지.
내가 가서 동원의 담화에 참여하려 하노니
밝은 달밤에 괴이한 새가 울지 못하게 하소.
○ 서거정(徐居正,1420~1488): 수종사에 올라 “동방 사찰 가운데 제일의 경치”라 격찬 하였다. 수종사를 중창한 세조가 매우 아끼던 신하였던 당대 최고의 문장가요 시인이다. 그는 45년간의 공직생활 가운데 대제학을 23년간 지냈다. < 동국통감〉〈동국여지승람〉〈동문선〉〈경국대전〉등 조선을 대표하는 저술들의 편찬을 주도했고,〈동인시화〉〈역대연표〉 등의 개인 저술과 시문집〈사가집〉을 남겼다. 그가 쓴 시문(詩文)은 무려 1만여 편에 이른다는데 전하는 것이 6000여 편이다.
游水鐘寺 (유수종사)
정약용
담쟁이 험한 비탈 끼고 우거져 (垂蘿夾危磴_수라협위등)
절간으로 드는 길 분명찮은데 (不辨曹溪路_불변조계로)
응달에는 묵은 눈 쌓여 있고 (陰岡滯古雪_음강체고설)
물가엔 아침 안개 떨어지누나 (晴洲散朝霧_청주산조무)
샘물은 돌구멍에 솟아오르고 (地漿湧嵌穴_지장용감혈)
종소리 숲 속에서 울려퍼지네 (鍾響出深樹_종향출심수)
유람길 예서부터 두루 밟지만 (游歷玆自遍_유력자자편)
유기를 어찌 다시 그르칠 수야 (幽期寧再誤_유기녕재오)
* '유수종사'란 시는 다산이 14세에 지은 시라고 한다. 다산 정약용은 이곳과 가까운 약 7.7km 정도 떨어진 남양주 조안면 능내리에 생가가 있어 어릴 때 부터 수종사에 자주 와 놀기도 하는 등 여러가지 인연이 깊다고 한다.
○ 다산 정약용 선생의 삶:
1762년 (영조38년) -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출생
1789년 (정조 13년) - 문과급제
1794년 (정조18년) - 성균관 직장, 경기도 암행어사의 명을 받들고, 이어서 홍문관 부교리에 임명됨.
1795년 (정조19년) - 주문모 신부 건에 정약용의 친형 약전의 연루로 충청도 금정찰방으로 좌천.
1801년 (순조1년) - 전라도 강진으로 유배
1818년 (순조 18년) - 다산 초당에서 저술을 시작함
1836년 (현종 2년) - 75세로 능내리 마을에서 세상을 떠남.
보광전
이 높은 산 중턱 수종사 경내까지 보광전 공터에 차량이 진입할 수 있다는 것이 대단하다.
범종각
세조를 감동시킨 종소리 (은행나무)
부스럼을 앓던 세조가 오대산 상원사에서 문수보살을 만나 깨끗이 낫고 한강을 따라 환궁하는 길이었다. 양수리까지 오니 밤이 이슥해 쉬어 가는데 운길산에서 종소리가 들려왔다. 신하가 알아보니 천년고찰 터 암굴 속에 십팔나한상이 앉아있고 천장에서는 물방울이 떨어지면서 종소리를 내는 것이라 했다. 세조는 이곳에 절을 복원해 수종사라 부르고 이 은행나무(500년)을 하사했다고 한다.
수종사 사적기
고려 왕건이 상서로움을 좇아 이곳에 이르러 구리종을 얻음으로써 부처님의 혜광을 통해 고려를 건국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1439 (세종21년)에 이르러 세종의 여섯째 아들 금성대군의 옹주의 부도를 세우고 금제 9층 수정사리함 (사리14과)을 청자항아리에 담아 부도 안에 모셨다. 1458 (세조4년) 세조가 두물머리에서 머물다 새벽에 들려오는 종소리를 따라 올라와 보니 그 종소리는 다름아닌 바위굴 속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였다. 세조는 굴속에서 18나한을 발견하고 5층 돌계단을 쌓았으며 팔도방백에 중창을 명하였다. 도량은 이러한 연유에 의해 수종사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이때 은행나무 두 구르를 심고 다음 해인 1459년에 수종사 담을 건립하였다. 1493 (성종24년) 후궁 명빈 이씨가 목제불감과 설법도가 그려진 금동불감에 금동불보살상 등 14좌를 봉안하고 후궁들의 발원문도 함께 넣었다 고 탑안에 모셨다. 1628(인조6년) 정의대왕대비가 금동비로자나불좌상을 시주하였으나 6.25전쟁 때 불에 탔다. 1974년 혜광화상이 대웅보전을 1981년 규원당 대웅화상이 익사전과 종각을 지었다. 1999년부터 금해당동산은 응진전 선불장 심정헌 미륵불 일주문 등을 세워완성하며 서거정이 천하제일명당이라 찬탄했던 절의 풍광을 다시 복원하였다. 수종사는 조선후기 초의 다산 추사를 비롯한 다선묵객들이 당색과 신분을 따지지 않고 함게 모여 담론을 했던 사회변혁의 꿈이 깃든 곳이다. 후인을 위해 수종사와 함게 했던 선인의 발자취를 따라 사적기를 적는다. 불기 2551년 동산 짓고 선종석 쓰다.
보호수
- 지정번호: 경기-남양주-17
- 수종: 은행나무 2본
- 지정일자: 1982년 10월 15일
- 소재지: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 산 26-22
- 수령: 500년
- 수고: 35m, 25m
- 흉고직경: 2m, 12m
- 관리자: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 1060 수종사
<- 수종사, -> 하산길(송촌리) 1.8km
운길산 수종사와 한음 이덕형 선생
한음 이덕형(1561-1613) 선생은 산수가 빼어난 운길산을 사랑하시어 바쁜 중앙정치의 와중에도 여가를 내어 사제촌에서 수종사로 이어지는 돌길을 따라 자주 걸으셨다. 수종사의 주지가 되어 사제촌(莎堤村)의 한음선생을 인사차 찾아온 덕인(德人) 스님에게 준 시에서 선생과 스님과 사제촌을 겨울 풍광이 그대로 드러난다.
운길산 스님이 사립문을 두드리네 (僧從西庵 拍柴關 _승종서암 박자관)
앞 개울 얼어 붙고 온 산은 백설인데 (凍合前溪 雪滿山_동합전계 설만산)
만첩청산에 쌍련대 매었네 (萬疊靑螺 雙練帶_ 만첩청루 쌍동대)
늘그막의 한가로움 누려봄 즉 하련만 (不妨分占 蒼年閑_부방분점 창년한)
선생은 7년여의 임진왜란을 수습하는데 큰 공을 세웠으나 극심한 정쟁에서 오는 국정의 혼미에 몹시 상심하셨다. 봄날이 가는 어느 초여름 선생은 이곳 수종사를 찾아 주지 스님에게 우국충정에서 오는 자신의 괴로운 심경을 드러내는 시를 지어주셨다.
산들바람 일고 옅은 구름비 개었건만 (風輕雲淡 雨晴時_풍경설담 우청시)
사립문 향하는 걸음걸이 다시금 더디네 (起向柴門 步更遲_기향자문 보경지)
구십일의 봄날을 시름 속에 보내며 (九十日春 愁裏過_구십일춘 추이과 )
운길산 꽃구경은 시기를 또 놓쳤구나 (又孤西庵 賞花期_우고서암 상화기)
오른편 사제촌(송촌리) 한음마을에는 500년 조선역사상 최연소로 31세에 대제학에 오르고 42세에 영의정에 오르신 선생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후 삶을 마감하신 별서(別墅) 터 및 하마석(下馬石) 등의 유적이 그대로 있어 아련한 선생의 발자취를 가늠해 볼 수 있다.
2010년 6월 광주이씨한음상공파종회
● 수종사 하산 길:
↖ 축대 밑 임도(차도)를 따라 하산한다
일주문
MTB 타고 수종사 일주문 까지 오른 사람 (59세) 을 보고 놀랐다.
자전거 경력은 20년 정도.
일주일에 한번은 오는데, 쉬지 않고 단번에 오른다고 한다.
일주문에서 약 130M 정도에서 옛 생각에 산길로 접어들어 하산하려 하였다.
뒤돌아 본 모습.
하산하는 산길이 나무가 우거져 그늘지고 길도 좋았다.
수종사 올때는 시멘트 길을 오르면서 힘들었는데 너무 좋다.
한참을 낙엽이 많이 쎃인 가파른 길을 내려왔는데 길이 막혀 있다.
아차, 옛날 하산해 보았던 길이 아니구나!
다행히 하산길 표시 이정표
그런데, 조금 옆에 빨간 리본이 보인다. 오호라, 막아놓은 능선길을 우회하는 길이 보이는구나 하고 이 길을 들어섰다.
그러나 길을 가다보니 이게 아니다 싶어 소나무가 있고, 풀이 별로 없는 능선을 따라 하산길과 만나려고 진행하였다.
산길은 정규 산길이 아닌 곳은 어찌되었건 힘든다.
계곡 하산로르 만나 내려 가니... 앗, 아름다운 풍경이!!
너무 반갑다.
여기에서도 집 있는 곳으로 가려고 넓은 길을 놔두고, 논 가로 진행하였으나 무모한 알바만 하였다.
다시 찾은 하산로
↖ 한음 이덕형 별서 터, <- 190M 변협장군묘, <- 220M 변응성장군묘, <- 400M 고려장 터
꿀벌 관리하는 사람들
이곳에 서니 옛날 하산한 능선이 생각난다. 이번에는 오른쪽 능선을 따라 하산한 것이고,
옛날엔 앞의 숲이 우거진 능선길로 하산하였다는 기억이 떠오른다.
진중리 차도 나가는 길
앗, '물의 정원' 곁의 차도다.
양봉교육장 031-553-8116, 150M ->
하산 길을 뒤돌아 보다. 뾰족한 절상봉 아래 수종사에서 산길을 따라 하산하였다.
● 물의 정원:
앗, 물의 정원 뱃나들이교가 보인다.
그늘이 있는 의자를 찾지 못하여 '팔당생명살림 두레생협' 그늘진 벤치에 앉아
점심으로 빵과 음료수를 마신다.
힘들고 지쳐있으나, 더위에 갈증에 찬물이 반갑다.
물의 정원 가는 길 ->
물의 정원 주차장2
( 주차관리팀 031-560-1217~8 )
▶ 운영시간: 월~토 ( 일.공휴일 무료 ):
하계 -> 4월~10월 ( 08:00~20:00 ), 동계 -> 11월~3월 ( 09:00~18:00 )
▶ 주차요금: 기본 30분 600원/ 30분 초과마다 300원/ 1일 주차요금 7,000원 ( 월정기주차요금(주간) 70,000원 ).
* '물의 정원' 주차장은 2곳이 있다. 물의 정원 앞 차도 건너편의 조안면 체육시설 곁의 제1공영주차장, 그리고 조안면주민센터 맞은 편에 있는 물의 정원 초입의 제2공영주차장 2곳이다.
물의 정원
뱃나들이교
양수리 방향
운길산, 절상봉, 수종사 방향
예봉산, 진중리 계곡 방향
열초 산수도......다산정약용
열초(洌樵)는 다산의 필명(筆名)이다. "다산 정약용이 말년에 고향 열수(洌水: 한강)에서 산수를 유람하며 그린 것으로 전해지는 열초산수도를 재구성 하였읍니다. - 동아대학교 소장. "
輭槲肥梧葉始舒_(연곡비오엽시서): 연한 떡갈과 살찐 오동나무 잎이 막 펼쳤는데
一株枯木獨蕭疎_(일주고목독소소): 고목 한 그루만이 홀로 쓸쓸하네
范寬筆意徐熙墨_(범관필의서희묵): 범관의 붓놀림과 서희의 먹으로
好向殘山賸水攄_(호향잔산승수터): 하찮은 산수 정치를 잘도 묘사하였네
- < 洌樵_열초: 정약용 >
♠ 정약용(丁若鏞)(1762~1836): 조선 정조 때의 문신, 실학자, 저술가, 시인, 철학자, 과학자. 경기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 옛 광주군 초부면 마재 ) 에서 태어남. 부친은 진주 목사 를 지낸 정재원이다. 호는 다산(茶山), 당호는 여유당(與猶堂)이며, 시호는 문도(文度)이다. 다산의 파란만장한 일생은 3기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제1기는 학문을 닦아 벼슬에 나가는 시기이고, 제2기는 유배생활기, 그리고 제3기는 유배생활을 끝내고 마지막 삶을 영위하며, 풍류와 학문을 완성한 시기로 볼 수 있다. 열초산수도는 제작시기는 제 3기에 해당한다.
붉은 양귀비곷의 향연
몹씨 덥다, 갈증이 그치지 않는다.
북한강 철교 아래 가는 길에 길가의 C-SPACE 편의점에 앉아 음료와 이이스케키를 먹는다.
북한철교 아래에서:
'물의 정원' 방향
'밝은 광장' 자전거 정보 센터
국토종주 자전거노선
북한강 자전거길
2012.12.26 개통 대통령 이명박
밝은 광장 인증센터
오늘 운길산 자락에 있는 수종사까지 운동 잘 하고, 구경 잘하고 내려와
북한강 물의 정원의 만발하는 붉은 양귀비꽃 잘 감상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북한강 철교 아래 '밝은 광장'에서
아름다운 북한강 경치에 매료되어 취합니다.
나는 시원한 강물이나, 드넓은 바다를 보면 너무 마음이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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