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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구릅/나의 산행

② 춘천 의암호, 봉의산 (300.5m)- ( 2022.07.24 )

by the road of Wind. 2022. 7. 25.

  춘천 의암호, 봉의산 (300.5m)

- ( 2022.07.24 )

 

-  《 소양정, 봉의산 》:

 

 

봉의산 산행 코스

 

<  소양2교 호반사거리 -  번개시장 -  소양로 비석군 - 소양정  - 북측 능선 길 -  봉의산 정상 -  강원도청 -  춘천역 > :

 

 

●  소양정 가는 길:

 

                         < 2020.06.13 사진: 상중도에서 바라본 봉의산 북측 능선 이미지 >

 

 

길을 건너 번개시장으로

 

'춘천 자전거 여행자의 집',

그리고 공용주차장, 춘천닭갈비 집이 많은 거리

 

 

 

사람의 정이 흐르는 만남의 장터,

번개시장

 

 

춘천 번개야시장 개장

운영: 2022년 7월 22일 부터
장소: 춘천번개시장 일원
일시: 매주 금.토 17:00 - 22:00
주요내용: 프리마켓, 공연, 이벤트, 버스킹, 각종 먹거리

 

 

            돈, 돈, 돈 물고 있는  견공.... 그런데 삼복더위다, 걱정되지 않나?

 

 

번개시장 소통공작소

 

봉의산 아래 첫마을 안내도:

A 춘천 번개시장가, B 소양정 문화거리, C 그림골목, D 배나무골,

E 상변 포토갤러리, F 소양정 역사.문화명소

 

 

여문소: 여러가지 문제연구소

 

 

춘천곰탕

 

 

설운 GALLERY

 

 

건강보험,  소근소근 마을관리소

 

 

 

-> 지장암, 나는 여기에서 조금만 더 가서 붉은 벽돌건물을 돌아 봉의산으로 산행하여야 하는데, 착각하여 지장암 방향으로 오르게 되었다. 

 

 

지장암

길이 없다. 그래서  풀이 길어, 길이 잘 보이지 않는 왼쪽으로 나가본다. 등산로를 만날 것 같다. 

 

앗, 소양정 가는 길이 보인다.

 

                   

 등산로 초입의 소양로 비석군  (춘천시 소양로1가)


소양로 비석군 (향토문화재):  선정비란 관찰사(觀察使)와 부사(府使0) 등 고을의 수령이 고을을 다스리면서 이룩한 공적이나 업적을 기리고자 세운 비로서 우리나라의 어느 고장에 가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칭송의 성격과 정도에 따라서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 , 애민선정비(愛民善政碑), 송덕비(頌德碑), 공덕비(功德碑), 흥학비(興學碑), 청백비(淸白碑) 등 다양한 명칭을 붙이고 있다. 이 비석군은 소양1교 주변과 춘천 관내에 흩어져 있던 비석들을 1940년과 1983년에 모두 이곳으로 옮겨와서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비 가운데 조선시대의 종이품직(從二品職) 으로서 시장급인 부사비 15기, 종사품직(從四品職)군수비 2기총 26기가 있다.

 

 

 

소양정 가는 길

 

 

춘천 절기 전계심 (春川節妓 全桂心) 묘비

 

이 비석은 춘천에서 태어난 관기(官妓: 관청에 딸린 가무(歌舞)와 기악 따위를 하던 기생) 전계심 무덤 앞에 있던 비이다. 외형적으로는 오랜 세월 비바람으로 마모되어 보잘 것 없고 초라한 비석에 불과하나 푼천의 선비들이 그녀의 절개를 가상(嘉賞)하게 여겨 세운 비석이다. 조선 22대 정조 임금 때 천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서 기생이 되었으나 아름다운 용모와 단정한 행동으로 칭송이 자자한 덕에 17세 되던 해 춘천부사의 소실(첩)이 되었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부사가 다른 지역으로 발령이 나 기회를 보아 데려가겠다던 약속만을 받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아무런 소식이 없는 약조가 무슨 필요가 있느냐며 서울의 기방에 팔아버렸다. 계심은 어쩔 수 없이 기방에 있게 되었으나 이미 부사의 아이를 잉태하고 잇었기에 부사가 자신을 찾아올 것이란 실날같은 희망으로 견디고 있었다. 그녀의 고결한 성품과 곧은 절개를 꺾여 보려는 사내등의 많은 유혹이 있었지만 은장도를 가슴 속에 간직한 채 모진 마음을 먹고 정숙한 나날을 보냈다. 그러나 어느날 폭력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정조를 유린당하고 뱃속의 아이마저 낙태하게 되자 사랑했던 사람에게 애절한 유서를 남기고 자결하고 말았다. 한편 계심이 자결하던 날, 계심이 유혈이 낭자한 모습으로 찾아와 해매는 꿈을 본 부사는 기이한 생각이 들어 계심을 찾아가 보니 처참한 모습으로 죽어있었다. 부사는 시신을 거두어 그녀의 고향인 춘천 봉의산록에 장사 지내 주었다 한다. 그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순찰사가 행적을 가상히 여겨 열녀정문(烈女旌門)을 세워주었고 1796년에 춘천 선비들이 그녀의 절개를 높이 평가하고 뜻을 모아 후세에 귀감이 되도록 춘기전계심순절지분(春妓全桂心殉節墳)이라는 흔히 볼 수 없는 기생의 묘비석을 세웠다고 한다. 이 무덤은 본래 봉의산 소양강변에 있었으나 도로 개설로 없어지고 비석만 남아있던 것을 1997년 이곳으로 옮겨놓은 것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작고 초라한 비석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겨있는 애뜻하고 절개 있던 그의 뜻을 가슴속으로 되새겨 보아야 할 향토유적이다.  

 

        

6.25전쟁의 동족상잔의 처참한 흔적을 아는지 모르는지,

소양강은 흐른다

 

 

공병중대 격전지


소양호가 정면으로 내려다 보이는 이곳은 6.25 전쟁 초기 6사단 공병대대 1중대가 배치되어 소양교를 건너 공격해 오는 적과 혈전을 전개했던 장소이다. 1950년 6월 25일 적이 기습남침을 개시하자 6사단 7연대 에 배속되었던 공병 1중대는 대부분이 출동하여 보병대대를 직접 지원하였고, 중대잔여병력 (약 1개 소대 규모) 은 소양강 남쪽 입구 봉의산 기슭에 구축된 방어진지에 배치되었다. 6.25일 오전, 공병중대는 소양교 폭파 준비를 하고 시내 진입로에는 드문드문 대전차 지뢰를 유리한 소양강 남단에 재배차되자 공병중대장은 매설하는 등 방어준비를 하였다. 해질 무렵 소양강 북쪽에서 전투하던 7연대가 방어에 소양교 폭파를 건의하였다. 그러나 전 전선의 상황을 파악할 수 없었던 6사단장은 반격시 사용할 생각으로 폭파를 보류 시켰다. 6월 27일 새벽, 적 정찰병이 소양교에 접근해 오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곳 진지에서 내려다 보고 쏜 공병중대의 정확한 사격에 모두 쓰러졌다. 07:00시 경부터 적은 대대적인 포격을 시작했고 적 포탄은 봉의산과 도청 부근의 시내 중심부에 마구 떨어졌다. 봉의산 뒷편에 위치한 16포병대대도 소양교 북쪽의 동방제사공장(현 롯데 인벤스 아파트 지역) 부근 보리밭 속에 숨어있는 적에 대하여  포격을 개시했고 아군의 포탄이 떨어질 때마다 적군이 이리저리 피해 다녀 보리밭이 파도치듯 했다. 08:00시경 드디어 적 보병들이 도로위에  출현하였고 소양교를 건너오기 시작했다. 소양교를 정면으로 내려다 보는 공병중대가 소총 및 기관총으로 집중 사격을 가하자 적은 큰 피해를 입고 후퇴하였다. 또 다시 적이 공격해 오고 공병중대가 사격으로 격퇴하는 것이 몇차례 반복되자 소양교 위에는 적의 시체가 가득히 쌓였다. 소양교는 아군 포병의 사각지점이어서 포병의 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 이렇게 불리한 여건 속에서 공병중대 단독으로 싸워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임저무퇴의 투혼으로 싸운 장병들의 정신력과 유리한 지형을 잘 이용했기 때문이다. 몇번의 공격이 실패하자 적은 최후 수단으로 11:00경 T-34전차를 앞세우고 공격해 왔다. 적 전차는 공병중대 진지를 향해 전차포 사격을 퍼부은 후 소양교 위에 널려있던 동료들의 시체를 무자비하게 깔아 뭉개며 다리를 건너 오기 작했고, 그 뒤를 적 보병들이 줄지어 따라왔다. 적 전차가 송양교 중간 지점에 도달했을 때 아군의 대전차포가 사격을 가해 명중시켰으나 파괴되지 않았고, 공병중대 황기중 일병이 빗발치는 적의  총탄을 무릅쓰고  폭파기가 있는 참호로 올라가 폭파 스위치를 눌렀으나 폭약 연결선이 적 포격에 ㅢ해 절단되어 있어 소양교 폭파에 실패하였다. 참으로 안타까운 순간이었다. 공병중대는 기관총 총열이 파괴되어 더 이상 사격을 할 수 없을 때 까지 전투를 계속하여 적을 저지했다. 그러나 중대원 대부분이 전사하고 적 전차 뒤를 따라 소양교를 ㅓㄴ너온 적 보병들이 봉의산으로 공격해 오자 더 이상 방어할 수 없어  소수의 생존자들은  석사동 방향으로 전투이탈하였다. 보병보다 더 용감하게 싸웠고ㅡ 공격시에는 가장 앞에 나가고 방어시에는 가장 나중에 나온다는 공병의 정신을 지킨 공병중대장병들, 그 공병의 혼이 서려있는 이곳에  그들을 영원히 기리고자 표지석을 세운다.

2군단 춘천대첩 선양회.  춘천시      

 

* 이곳 소양강전투에서 조국을 수호하기 위해 산화한 젊은이들이 너무 가슴아프다. 그 당시의 긴박하고 처절한 전쟁 상황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아, 우리들은 지금  이들 피값으로 부강한 나라를 이루어 잘살고 있구나 생각하니 미안하고 더 마음이 아파왔다.  솔직히 지금 우리들은 6.25 전쟁시 피흘려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추념을 얼마나 하고 있는가? 답답한 마음 뿐이다. 

 

 

   

앗, 소양정!

 

소양정  강원도지사 박경원 서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호)


처음 창건된 시기는 확실하지 않으나 고려 말 문인 운곡 원천석( 隱谷 元天錫)의 시에 '소양정(昭陽亭)'이라는 명칭이 쓰인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존재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조선 전기인 15세기에는 '요요루(二樂樓)' 라 불리기도 하였으나, 1647년 인조25년 춘천부사 엄황이 정자를 수리하면서 현재의 '소양정'이라는 명칭을 갖게 되었다. 소양정은 본래 위치보다 아래인 소양강변에 있었으며, 1780년 정조4년 부사 이동형이 홍수로 유실된 것을 다시 지었다. 그러나 한국전쟁 때 소실되어 1966년 현재의 위치에 정면 4칸, 측면 2칸의 중층 누각으로 재 건립 하였다. 



 

다산길 4,6구간:


다산 정약용 선생은 1820년과 1823년 두차례에 걸쳐 춘천을 방문하며, 여행기인 <산행일기>와 여행길에 지은 시문을 담은 <천우기행>을 남겼다. 두 저서를 바탕으로 선생의 춘천 답사길을 정리한 것이다. 남면 관천리 부터 소양정을 지나 청평사와 사창리에 이르는 춘천 다산길은 총 8개 구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구간마다 정약용 선생이 남긴 시문과 함께  북한강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구간에 따라 차량을 조심할 곳이 있으니, 이점에 유의하여야 한다.   

* 다산길 6구간:

소양정 --(4.0km)--춘천인형극장 --(3.5km)--용산교차로 --(1.5km) -- 용왕샘터 --(2.5km)--문암서원터 (춘천수력발전소)

* 다산길 7구간:

소양정 --(3.5km)--우두산 --(5.0km)--세월교 --(4.0km)--소양댐.

 

 

 

다산길 4.6구간


우수주에서 두보의 
성도부시에 화답하다
                             정약용

저녁에 우두동에서 자면서
자세히 사방을 살펴보니 (생략)

나무껍질은 일 촌도 되지 않고
오곡은 밭둑에 연이어 자라네
날씨 포근하여 빨리 움터서
초여름에 나뭇잎 이미 푸르며
뻐꾸기는 나무마다 울어대고
꾀꼬리는 우연하게 연주하네  

 

 

소양정에 오르다

 

昭陽亭 (소양정)
                          松巖(송암) 梁大樸 (양대박) 


遠客惜芳草(원객석방초)_ 나그네 꽃 핀 봄날이 아쉬워
昭陽江上行(소양강상행)_ 소양강가에 나아가네
高亭臨古渡 (고정임고도)_높은 정자에서 옛 나루를 내려보니
喬木夾飛甍 (교목협비맹)_교목 치솟아 처마를 끼고 있네   
列峀天邊淡 (열수천변담)_둘러친 산들은 하늘가에 담박하고
晴波檻外明(청파함외명)_ 안개 거친 파도는 난간 너머로 분명하다
風流堪畫處 (풍류감화처)_풍류는 그림처럼 빼어나고
漁艇帶烟橫 (어정대연횡)_고깃배 안개 속을 가로지른다

 

 

 

昭陽亭 (소양정) 
                           陶菴(도암)  李縡(이재) 

正月昭陽亭上行 (정월소양정상행)_ 정월에 소양정에 올라서
石翁之後敢容評 (석옹지후감용평)_ 석옹 뒤를 이어 감히 평하여 보네
遙村烟闊一人去(요촌연활일인거)_  멀리 연기 서린 마을에 한 사람 지나가며
落日沙寒雙鶴鳴 (낙일사한쌍학명)_ 지는 해에 모래 차고 학이 쌍으로 울어대네
山雪江冰更淸絶 (산설강빙경청절)_ 산엔 눈 내리고 강은 얼어서 다시 맑고 산뜻해져
天高地逈覺分明(천고지형각분명)_  하늘 높고 땅은 아득하여 경계 분명하여라
休言春晩勝春早(휴언춘만승춘조)_  늦봄이 올봄보다 낫다 말하지 말게나
眞味方從淡處生(진미방종담처생)_  참맛은 담박한 곳에서 생겨나네

 

 

본격적인 봉의산 등산 시작

 

 

 

현위치 봉의산 12

- √  일몰전/ 일몰후 나홀로 산행 자제하기
-  지정된 등산로 이용하기
-    등산 중 수시로 자기 위치 알리기

- 강원도산림과학연구소,  - 춘천경찰서

 

 

강인한 생명력, 적응력

 

인간은 자연에서 많은 것을 배워야 된다고 생각한다. 자연은 아름답고 조화롭다. 그렇지만 생명체들은 자기의 영역에서 살아나려고 서로 투쟁하며 생존한다. 소위 적자생존이며, 약육강식의 자연 법칙이다. 이것은 강한 생명력에 기인한다고 볼 것이다. 우리 인간도 이러한 강인한 생명력을 가져야 한다고 믿는다. 아무리 큰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인내하며 견디며 살려고 힘쓰면 살 수 있는 계기가 오게 된다. 

 

 

<- 정상, -> 충원사

 

 

오전에 비가 많이 쏟아진 것 같다. 나무 표피가 모두 축축히 젖어있다. 

 

 

봉의산 동영상

 

 

봉의산 정상 아래 운동 쉼터

 

소양강

 

↑ 정상 가는 계단,

시계가 2:36분을 가리키고 있다. 

 

 

봉의산 정상석

(300.3m)

 

 

하산 길:

전망좋은 전망대

 

 

봉의산 전망대 동영상

 

 

의암호 방향

 

 

멀리 삼악산, 그 오른쪽 뾰족한 봉우리 능선에 삼악산 의암호 케이블카 상부 정차장이 있다. 

 

 

유봉여자중.고교, 한림대학교

 

 

강원도청 범이곰이어린이집

 

 

고구마 텃밭

나는 이런 농작물만 보아도 마음이 힐링된다.

 

 

" 춘천, 시민이 주인입니다. 

이제 새로운 춘천을 만듭니다! "

굳 케취프레이즈  !!

 

봉의산 아래  강원도청

 

강원도청 정면에 태극기와  새마을기, 강원도기 등이 높이 걸려 있어 보기 좋다.

 

 

 

강원일보 & 동아일보

 

 

뒷골목, 먹자골목 같다. 그런데 일요일에는 쉬는 것 같다.

 

 

밤의 불야성이 느껴진다. 옛날 70년대 분위기다.

 

 

시간이 3:40분인데, 늦은 점심으로, 편의점에서, 참깨라면 & 시원한 캔맥주.

목은 마르고, 더위에 지쳐 음식 생각도 없는데, 그러나 참깨 라면에 시원한 맥주는 아주 최고였다. 

목 탈 때, 갈증에는 시원한 맥주가 최고입니다. 

 

 

춘천상공회의소

 

 

소양동행정복지센터

 

 

춘천고등학교, 명문이다.

 

 

바로 전면 펜스가 둘러쳐진 춘천역 앞의 미군 부대 캠프페이지 터에 강원도청 신청사가 들설 예정이다. 강원도는 3089억을 들여 연면적 11만㎡(사무공간 6만㎡, 주차공간 5만㎡) 규모의 신 청사를 2025년 1월 착공해 2027년 6월 완공할 계획이라 한다. 

 

 

가로에 대나무

 

 

다시 보는 봉의산

 

 

앗, 춘천역

 

 

호수문화관

 

 

 

 

춘천역에서 오늘의 산행을 마칩니다. 그런데, 집에 와서 생각해 보니 춘천역 근처에서라도 닭갈비를 먹어볼 껄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숯불이 아니고 가스 버너로 구워주는 것이지만, 옛날과 달리 춘천역 뒤편 춘천대교 입구 방향에 있는 '장미공원(033-257-9559)'  (1인분 15,000원) 닭갈비집에 전화로 문의해 본 결과 1인분은 안돠며, 2인분을 시켜먹으라고 합니다. 춘천에서 닭갈비 가격도 음식점에 따라 1인분에 13,000원 또는 15,000원으로 가각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옛날 강원도청 앞 사거리 근처에 있는 명동달갈비골목의 '명물닭갈비( 033-244-2961)' (1인분 13,000원), 그리고, 강촌역 근처  '원조중앙닭갈비(033-262-9766)' (1인분 13,000원) 집에서는 자전거 타다 들어가서 1인분을 시켜 잘 먹어본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혼자 먹을 수 있냐고 문의하니 대환영이라고 오세요 라고 말한다. 최근 남춘역 앞 닭갈비골목에서도 '남춘천명가('033-256-6222) (1인분 13,000원) 닭갈비 집에서는 오후 2시가 넘어 테이블이 많은데도 1인분은 안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삼악산 케이블카를 탄 후 바로 위에 있는 '진보닭갈비(033-241-7123)' (1인분 13,000원) 집에 갔더니, 1인분은 안되고, 16,000원 짜리 1인분으로 시키라고 하여, 잘 먹고 돌아온 적이 있습니다. 물가가 많이 올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이제 혼자 춘천에 가서 닭갈비 먹으려면 미리 전화로 문의해 보고 가야 발품 팔 일이 없을 것 같습니다. 춘천에서 혼자서는 닭갈비 맛도 못 보게 되는 세상이 되어가는 것 같아, 재미 하나가 없어진 느낌입니다. 나는 사실 춘천이 좋기도 하지만 닭갈비 먹으려는 생각에 춘천으로 행선지를 잡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가가 많이 올라서 걱정입니다. 어떻게 하든 인플레는 꼭 잡아야 하겠습니다. 물가 상승은 서민들에게  큰 고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