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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구릅/일상들 ( life )

고덕산 (86.3m) - ( 2022.12.20 )

by the road of Wind. 2022. 12. 20.

고덕산 (86.3m)

- ( 2022.12.20 )

 

오후 늦게 갈 곳을 찾지 못해, 동내 야산인 고덕산을 걸어보았습니다. 앙상한 나무 가지 사이로 산책로 주변의 경치를 바라보면서 걸었습니다. 5시를 해 지는 시간으로 보고 바쁜 걸음을 하였습니다. 12월의 끝을 향해 달리는 시간 속 고덕산은 조용하기만 하였습니다.

 

 산   책 : 걸음수 10,014 steps, 거리 6.36 km, 소모열량 355 kcal, 소요시간 01:36 hrs, 속도 3.9 km/h, 기온 0℃.

 코   스 : 상일역 - 고덕역 - 가재울전원마을 -  고덕산 - 명일역.

 

 

강동 02번 버스,  고덕동주민센터.두레근린공원 정류장.  

가래여울 <--- 상일역 -- 암사역 ---> 서원마을.

 

* 고덕역에서 고덕산 가는 길에 강동02번 마을버스 정류장을 본다. 나의 경우 강동 02번 버스는 한강변을 걷다 가래여울마을에서 전철역으로 나오면서 이용하는 버스인데, 이곳에 있는 정류장을 보니 반갑다. 

 

 

레미안힐스테이트고덕아파트

 

 

고덕산이 보인다.

 

 

고덕동, 강일동 방향

 

길 건너 가재울전원마을 가는 비탈 길이 보인다. 

 

 

가재울전원마을 입구...

 

 

가재울전원 마을 끝에서 바라보는 고덕동 방향 경치

 

 

고덕동고인돌,  (소재지: 강동구 고덕동 산94번지 일원 (2호) 

고인돌은 대체로 청동기시대 (기원전 10세기경) 조성된 무덤으로 고덕동 고인돌은 2004년 세종대박물관의 조사과정에서 발견되었다. 고덕동 고인돌은 양천 허씨 묘역에 인접해 있는 데 등산로 오른쪽 참호 옆에 1호가, 왼쪽에 2호가 있다. 고인돌이 위치해 있는 능선은 서쪽으로 암사정수사업소까지 연결되고 있고 이 지역을 '가재골' 이라 불렀으며, 청동기 시대부터 많은 사람들의 생활터전이었던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현재 1,2호 모두 받침돌은 보이지 않지만 덮개돌 밑에 작은 크기의 몇 개의 돌조각이 박혀있어 하부구조에 사용되었던 것일 가능이 있다. 덮개돌의 암질은 편마암으로 장방형이며 윗면에 성혈이 있다. 1호는 군사시설이 들어서는 과정에서 원래의 위치에서 이동된 것으로 보여진다. 

* 성혈: 돌구멍/ 장방형: 직사가형의 옛용어. 

 

 

 

<- 서울둘레길(고덕역),  서울둘레길(광나루역) ->

 

 

 

강동그린웨이 (현위치)

 

 

↑ 6.7KM 서울둘레길(광나루역), <- 1.3KM 명일역,

↘ 샘터근린공원 1.3KM, ↘  서울둘레길(명일근린공원 입구  2.6KM, 

 

 

 

 

삼각점

 

 

고덕산(高德山) 유래(由來)

 

고덕산은 낮은 야산이고 하여 원래 이름이 없는 산이었다. 고려의 절의충신 석탄 이양중(石灘 李養中) 공이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되자 관직을 떠나 야인으로 이곳 산자락에 운둔생활을 시작한데서 후일 인근 사람들에 의해 산 이름이 지어진 것이었다. "고덕"이란 이름에는 공의 고매(高邁)한 인격과 덕성(德性)을 보고 느껴 기리는 데서 지어졌던 것이다. 공은 실로 높은 관직에 있으면서도 권력에 탐하거나 야합화지 아니한 섭비였다. 공의 그러한 몸가짐에서 조선의 개국과 함께 높은 관직인 한성판윤(현; 서울시장)제수가 있어도 결코 받지아니하고 더욱이 조선의 왕과 친분이 깊어도 거절하여 고려의 신하임을 지켰다. 공의 이러한 품성에 걸맞게 우거지(寓居地)의 무명산(無名山)을 세상 사람들이 고덕산이라 명명한 것이었다. 이 고덕산에는 조선 선조조 명신 이시무(李時茂)가 국난 평정을 기원해 서 쌓은 토단(土檀)이 이 산 정상에 있었다.  공 역시 광주인(廣州人)으로 1592년(선조25, 임진)년 왜적이 침입하였을 당시 통정대부 장예원판결사로 재임하고 충의가 깊었다. 그이 국난평정 기원은 왜적에 의해 일어난 전화로 나라가 워낙 위험에 처한 것을 우국충정으로 애국하였음에 조선 고종조에 와서 승록대부 의정부좌찬성에 증직되었으며 회성군에 봉군되고 순충보조공신에 올랐으며 시호는 충민공이다.

- 강동구청 

 

 

 

숲 사이 한강, 구리시 토평 한강시민공원 방향.

 

 

고덕산 정상 아래 쉼터

 

- 서울시 테마산책길 -  
강동고덕산길, 

작지만 경치를 품고 있는 산

고덕산은 완만한 구릉지 형태의 야산으로 해발 50M 안팎이 대부분이고 높아야 100M를 넘지 않는다. '산을 오르다' 보다는 '산책하다' 라는 표현이 고덕산에는 더 어울린다. 지형적으로 북으로는 한강이을 끼고,  동서로 숲이 울창하다. 고덕산에 들어가면 소나무 숲에서 풍겨오는 진한 솔향기와 가슴을 후련하게 쓸어내리는 맑은 공기가 있다. 그리고 그 안에 온갖 무목들과 새, 벌레들이 공존한다. 그래서 지역 주민들에게는 더 없이 소중한 산이다. 

* 주변 가볼만한 곳: - 고덕산 전망대/ - 고덕산 소나무 군락지/ - 고덕산 자락길   

 

 

 

고덕산 정상


 

고덕산 정상 지적삼각점

 

 

2006년 서울시 선정,   우수조망명소

한강과 남양주시의 전경이 수채화 같이 아름다운 강동구의 조망명소 입니다.  강동구청장.

 

 

 

고덕산에서 바라본 전망:  

퇴뫼산/ 철마산/  구리타워/ 남양주시/ 천마산/ 평내/ 백봉/ 양정리/ 갈미봉/ 강동대교/ 갑산.

 

고덕산 정상 전망

 

 

하산 길:

< 서울둘레길(명일공원, 고덕역), <- 1.8KM 고덕그린웨이 샘터근린공원, -> 고덕산정상 0.1KM.

 

 

광주이씨 광릉부원군파 묘역

이곳에는 조선 세종 때부터 연산군에 이르기 까지 일곱 왕을 섬기면서 도덕정치를 실천한 광릉부원군 이극배(李克培: 1422-1495)와 그 후손들의 묘가 있다. 이극배는 우의정 이인손의 아들로 그의 자는 겸보(謙甫)이고, 호는 우봉(牛峰)이다. 그는 1447년(새종29) 사마사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그해 식년문과에 정과(丁科)로 급제하였다. 그는 세조가 왕위에 오르는데 큰 공을 세워 좌익공신 3드에 올랐고, 광릉군에 봉해졌다. 1462년(세조8)이후 이조. 예조. 병조. 형조의 판서를 두루 거쳤고, 1471년(성종2)에 판중추부사가 되었다. 1485년(성종16) 우의정이 된 후 1493년(성종 24) 영의정에 올라 광릉부원군에 봉하여 졌다. 기로소(耆老所)에 들었고, 궤장(几杖)을 하사받았다. 그의 시호는 익평이다. 이극배의 묘역은 부인 경주 최씨와 쌍분 합장묘이다. 묘역에는 신도비를 비롯하여 묘포. 망주석. 상석. 장명등. 문인석 2쌍 등의 석물이 있다. 이곳에는 이극배와 그의 후손들이의 묘역이 두루있다. 이곳은 조선시대 한 문중의 묘제 및 석물의 변천과정을 파악할 수 잇는 중요한 자료다.



 

 

 

강동 아름숲 (고덕산)

 

이곳 고덕산은 2010년 9월 2일 태풍 곤파스 (순간 촤대풍속 24~32m/s)로 아카시아나무 등 1,000여 그루의 나무가 쓰러지는 피해를 입혔습니다. 이에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강동 아름숲'을 새로 조성하게 되었습니다.

 

- 위치: 강동구 암사동 산 40-3일대

- 면적: 1.3ha

- 수량: 산벚나무 등 1,500주

- 참여자: 주민 1,500명

- 조성일: 2012년 4월 14일

 

서울특별시 강동구. 강동 아름숲과 함께하는 사람들

 

 

 

암사아리수정수센터 사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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