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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구릅/나의 산행

망우산(282m) 능선 - ( 2023.02.22 )

by the road of Wind. 2023. 2. 22.

망우산(282m) 능선 

- ( 2023.02.22 )

 

평소에 잘 가지 않던 망우산 능선을 산책하여 보았습니다.  나의 경우 이 곳 산행은 보통 용마산-아차산 연계 산행을 하고 하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대부분 망우산 방향으로는 가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은 마음 먹고 7호선 사가정역에 내려 용마산~망우산 능선 사이 깔딱고개를 올라 왼쪽으로 망우산 능선을 걸어보았습니다. 그리고, 망우산에 오른 후 하산은 서울.구리 경계지점인 망우리고개로 내려선 후, 한참을 서울 상봉동 방향으로 걸어 '망우동고개' 버스정류소로 가서 상봉역을 지나가는 버스를 타고 상봉역에서 하차, 환승하여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오늘도 습관처럼 늦게 집을 나서서 해질 무렵 안전하게 순환로를 따라 망우리고개에 내려섰습니다.  해지는 시간이 아직 좀 남아있었더라면, 구리시청 방면으로 히산하려 했는데 가보지 않은 숲길을 따라 무리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산   책 : 걸음수 10,843 steps, 거리 6.83km, 소모열량 426 kcal, 소요시간 01:48 hrs, 속도 3.7 km/h, 기온 8℃.

 코   스 : (7호선) 사가정역 - 사가정 전통시장 - 사가정공원 -  깔딲고개 - 망우산.용마산 능선 길 (중랑둘레길. 서울둘레길) - 용마산악기상관측장비  -  망우산1보루 - 산불감시초소 - 망우산순환로 삼거리 - 중랑전망대 - 망우산2보루(구리.한강전망대) - 아스팔트 망우산 순환로 (구리둘레길1코스) -  망우산 정산(282m). 망우산3보루 - 산불감시초소 - 이태원합장비(유관순열사)  -  망우역사문화공원 - 망우리고개 -  망우동고개 버스정류소. 동부제일병원.

 

 

7호선 사가정역 1번 출구

 

사가정시장

 

 

한양수자인사가정파크아파트

 

 

사가정공원

 

 

서거정과 함께 하는 산책길

 

서거정의 발자취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은 경상도 대구(大邱)에서 태어났으며, 호는 사가정(四佳亭) 또는 정정정(亭亭亭),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서거정은 어릴 때부터 재주가 뛰어나 6세에 독서하고 시를 지을 줄 알아서, 사람들은 그를 신동이라고 불렀다. 19세(1438)에 진사관와 생원과에 잇달아 합격하였고, 25세(1444년)에 대과에 급제하여, 집현전박사(集賢殿博士)라는 관직으로 벼슬을 하였다. 세종에서 성종에 이르는 동안 69세의 나이로 생애를 마칠 때 까지 6조 판서와 한성부 판윤, 대사헌, 대제학 등을 역임하였고, 23년간 문형(文衡)을 담당한 대문호(大文豪)이자 전형적인 대각문인(大閣文人)으로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과 함께 당대 최고의 문인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였다. 그 대표적인 편저로는 <경국대전(經國大典)>, <동문선(東文選)>의 편찬과 <동인시화(東人詩話)>, 필원잡기(筆苑雜記)>를 저술하여 조선전기 어느 문인보다도 다양하고 많은 저술을 남겼다. 

서거정 詩碑(시비):   獨坐(독좌) /  睡記(수기) / 春日(춘일)/  閑中(한중)
 

 

獨坐 독좌 - 홀로 앉아
                    - 서거정(徐居正)


獨坐無來客 독좌무래객 -  홀로 앉아 찼아오는 손님 없고
空庭雨氣昏 공정우기혼 -  빈 뜰엔 우기*로 어둡구나
魚搖荷葉動 어요하엽동 -  물고기가 요동쳐 연잎이 움직이고
鵲踏樹梢翻 작답수초번까치가 밟아 나뭇가지 끝이 출렁 된다
琴潤絃猶響 금윤현유향거문고는 눅눅해도 줄에는 오히려 울림이 있고
爐寒火尙存 노한화상존 -  화로는 차가워도 불은 아직 남아있네
泥途妨出入 이도방출입 진흙길이 출입을 방해하니
終日可關門 종일가관문 -  종일 문을 닫아도 되겠구나

* 雨氣(우기): 비가 올 듯한 기운.

 

 

春日 춘일 봄날

                - 서거정(徐居正)

金入垂楊玉謝梅 금입수양옥사매금빛은 수양버들에 들고 옥빛은 매화를 떠나는데
小池新水碧於苔 소지신수벽어태작은 연못 새 빗물은 이끼보다 푸르다
春愁春興誰深淺 춘수춘흥수심천 봄의 수심과 봄의 흥취 어느 것이 더 짙고 옅은가
燕子不來花未開 연자불래화미개제비도 오지 않고 꽃도 피지 않았는데

 

 

 

↑ 깔딱고개  가는 길

 

 

중랑 사가정 시장

 

사가정시장은 시설 현대화사업으로 고객들에게 쾌적하고 안전한 쇼핑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노후된 시설을 정기적인 교체하고 있읍니다. 또한 각종 행사 및 할인판매와 일정금액 이상 구매자에게 온누리상품권을 경품으로 지급하여 방문고객들에게 볼거리, 즐길거리, 먹거리를 풍부하게 제공하였으며, 특히 친절.청결이벤트로 상인이름표 달기, 위생복.조끼입고 고객맞이하기, 친절명패달기 등으로 달라진 상인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산불조심  /   환경보호

우리를 지켜 주세요!   야생동물 먹이 (도토리, 밤 ,열매) 채취하지 마세요!

 

 

약수터

 

 

깔딱고개  오르는 목재계단 길

 

사가정공원 방향

 

 

 

귀뚜라미
             - 김소월 -

산(山) 바람 소리
찬비 듣는 소리
그대가 세상(世上) 고락(苦樂)
말하는 날 밤에

순막집* 불도 지고
귀뚜라미 울어라

 

 

* 순막:  '주막'의 북한 방언.

 

 

구리시 (아차울마을) 와 서울 중랑구 경계인, 깔딱고개

 

사적 제55호 용마산-아차산-망우산 보루를 이어주는 보루연결로 (아차산성):

 

사적455호 용마산.아차산 보루군고구려(용마산 1,2,4,5보루/ 망우산1보루/아차산1,2,3,4,5보루/ 시루봉보루, 홍련봉 1,2보루)신라(용마산3,6,7보루) 유적으로 삼국(고구려.백제. 신라)이 한강하류를 차지하기 위한 전략요충지에 축성한 남한에 남아있는 최대의 고구려유적입니다. 아차산 정상 (아차산~용마산~망우산~배봉산)백제 초기 도읍지 (면목동 하북위례성설) 토성으로 추정하며, 고구려가 점령후에는 보루를 이어주던 연결로로 사용되었고, 신라가 점령후에는 이곳에 장한성을 쌓았으며, 조선시대에는 살곶이목마장의 담을 축성하였다. 아차산성길은 고은 흙으로 다져서 만들어 1,500여년이 지난 지금도 등산로로 이용되고 있으며, 이곳의 작은 돌, 토기 한조각도 함부로 옮기시면 유적이 훼손되어 발굴이 어려워집니다. 고구려보루와 아차산성을 잘 보존하고 사랑하는 것이 중국의 동북공정(고구려 역사를 중국역사라 주장)을 통한 역사침략을 막아낼 수 있는 든든한 방패가 됩니다.  (보수: 2011년 11월 22일 )  (사) 바르게살기운동 중랑구 면목 3.8동 위원회

 

 

깔딲고개 이정표

<- 구리둘레길 1코스 (동화천약수터), -> 구리둘레길 1코스 (대성암) 2.47km

<- 망우리 순환로 850m, -> 용마산5보루 395m.

 

 

 

 

 산(山)에 언덕에
                          - 신동엽 -

그리운 그의 얼굴 다시 찾을 수 없어도
화사한 그의 꽃 
 산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그리운 그의 노래 다시 들을 수 없어도
맑은 그 숨결 
들에 숲 속에 살아갈지어이.
쓸쓸한 마음으로 들길 더듬는 행인(行人)아, 

눈길 비었거든 바람 담을지네.
바람 비었거든 인정 담을지네. 
그리운 그의 모습 다시 찾을 수 없어도
울고 간 그의 영혼 
들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사가정역 1.6km, ↘ 아차울마을 0.9km
-> 서울둘레길(화랑대역) 7.7km
<- 중랑둘레길, -> 중랑둘레길
<- 4.6km  서울둘레길(광나루역)

 

 

↑ 용마산, 아차산 방향

 

깔딲고개 방향

 

중랑구 방향

 

상봉동 방향

 

 

망우산-용마산 능선 길

 

 

아차산 방향

 

 

아,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겠다.

 

 

겨울의 앙상한 나목들이 너무 멋있다. 

 

 

산악기상관측장비 (용마산 산악관측소 )

 

 

 

망우산1보루 동영상

 

 

망우산 1보루:

 

망우산 보루 중 훼손이 심한 2.3보루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사적(史積)으로 지정되었다. 망우산 남쪽 끝 봉우리 (해발 280.3미터)에 자리하고 있으며, 용마산 보루와 시루봉 보루 일대가 잘 조망된다. 1994년 지표조사에서 고구려 도기편 여러 개가 발견되어 고구려 보루로 추정된다. 헬기장과 군용 참호, 묘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유적이 많이 파괴되었으나 지금은 헬기장과 참호를 없애고 유적을 돌아가도록 하는 등산로를 새로 만들어 보루를 보존하고 있다.

 

 

 

왼쪽 아차산, 오른쪽 뒤편 용마산

 

 

상봉동 방향, 오른쪽 멀리 망우산

 

 

 

淑夫人陽州許氏之墓 (숙부인양주허씨지묘)

 

자손에게 전합니다
一九六七年 四月  日 建立 ( 1967년 4월  일 건립)
그 孝心(효심)에 부쳐   月灘(월탄) 朴鐘和(박종화) 지음   嗣子(사자) 金時(...)

 

아아 어머님 어머님께서는 삼십미만 二十 八(28)세 때 푸른 (...) 
아버님 여이고 홀로되시었습니다 그 때 불초자의 나이 

겨우 여섯살과 두살 이었음니다 청상의 몸으로 소자들을 

길러주셨읍니다 길러만 노셨습니까 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글만 가르쳐 주셨습니까 사람이 되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오늘 불초자가 사람구실을 하게된 것도 어머님의 백수정갈이 

만드시고 난초같이 향기 높으신 그 자세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뿐이오니까 해방 뒤 국토가 양단되어 고향 길주를 뒤에 두고 

남으로 내려오던 그 가시밭길을 아직도 눈에 삼삼히 어립니다 

어머님 어머님께서는 춘추 六十九(69)세로 춘삼월九(9)일 합 (...)  

불초자를 남기고  이진세를 떠나 셨습니다 어머님 호천망극 (...)

님을 주소로 생각하는 지극한 정을 이 빗돌에 새겨 후 (...)

 

♠ 우리나라의 유명한 문학가이신 월탄 박종화 선생님이 쓰신 비문이다. 잡풀에 가려져 아랫 부분을 읽지 못해 (...)부분으로 처리하였는데 어떤 부분은 내용을 알 수 없고, 매우 아쉽게 생각된다. 그렇지만 빗돌에 새긴 글의 내용에 너무 크나큰 감동을 받게된다. 돌아가신 나의 어머님에 대한 불효를 생각하면서 마음이 찡해져 왔다. 산책로 바로 곁에 있어 우연히 보게 된 비문인데, 옛날에도 이 묘소가 많이 내려 앉아있고 잡초가 무성하였는데 후손들에 대한 궁금중이 많이 들었으며, 측은하게 생각이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너무나 유명하신 월탄 박종화 선생님이 글을 쓰신 사연이 궁금해 지기도 하였다.   

 

 

망우산 가는 길에  산불감시초소 

 

 

<- 망우공동묘지, ↖ 백교마을, -> 용마산,  ↗ 시루봉


<- 1.65km 구리둘길1코스 (망우묘지 삼거리), -> 구리둘레길 (깔깎고개 쉼터) 2.05km,
<- 170m 동락정, -> 관룡탑 1.03km 

 

↑ 망우산,  시루봉보루 ↘

 

구리시 방향

 

 

순환로 삼거리 쉼터

 

이 삼거리는 중요한 포인트다. 망우산 허리를 감싸며 순환로 포장도로가 타원을 그리며 한 바퀴 돌고 이곳에서 분기되어 사가정 깔딱고개 방향으로 능선 허리를 따라 순환로 포장도로가 계속된다. ' 0-- ' 모양의 포장 순환로이다. 

 

 

<- 1.45km 구리둘레길 1코스 (망우묘지 삼거리), -> 구리둘레길 1코스 (깔딱고개 쉼터) 2.25km

<- 순환로 -> ,  ↗ 동천약수터 700m

 

 

아차산 일대 보루군


아차산 줄기는 용마산망우산으로 연결되어있다. 조선시대까지 이 전체를 아차산이라 하였다. 아차산 능선에는 작은 봉우리마다 '보루保樓' 라고 불리는 성곽이 있다. 보루는 흔히 300m 이하의 작은 성곽을 가리키는데, 군사적.행정적 중심지 역할을 하는 일반 성곽과는 달리 주로 교통로나 요충지를 감시하는 기능을 하였다. 몇 개의 보루가 일정한 간격으로 나란히 위치한 것이 특징이다. 아차산의 고구려 보루들은 장수왕 63년(475)에 고구려가 한강 유역에 진출한 후 만들어져 양원왕 7년(551)신라와 백제 연합군에 밀려 물러날 때까지 사용되었다. 삼국시대 한강 유역은 인구와 물자가 풍부하고 중국으로 가는 교통로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고구려와 백제, 신라 모두 중요하게 여겼다. 아차산 보루군은 한강 유역을 넓게 조망할 수 있고 동쪽으로 왕숙천, 서쪽으로 중랑천 변의 남-북 교통로를 장악할 수 있는 요충지에 있다. 아차산에 흩어져 있는 약 20여 개의 보루 중 아차산3보루, 아차산4보루, 시루봉보루, 홍련봉1보루, 홍련봉2보루, 용마산2보루를 발굴 조사한 결과, 고구려 보루는 일정한 간격으로 나무 기둥을 깊게 박아 판축공법으로 성벽 안쪽의 토축부를 먼저 만들고, 돌을 덧대어 외벽을 석축으로 마감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는 백제나 신라, 가야 성곽과 다른 독특한 공법이다. '토심석축공법' 으로 불리는 이 공법을 통해 토성과 석성의 장점을 결합하여 효율성과 경제성을 높인 고구려의 발달된 토목 기술을 알 수 있다.   

 

시) 시루봉보루

1) 아차산1보루, 2) 아차산2보루, 3) 아차산3보루, 4) 아차산4보루, 5) 아차산5보루, 6) 아차산6보루,
1) 망우산1보루,  2) 망우산2보루, 1) 망우산3보루,
1) 용마산1보루, 2) 용마산2보루, 3) 용마산3보루, 4) 용마산4보루, 5) 용마산5보루, 6) 용마산6보루, 7) 용마산7보루,
1) 홍련봉1보루, 2) 홍련봉2보루,
수) 수락산 보루

 

 

구리 둘레길 아차산 생태문화 길

 

 구리 둘레길, 아차산 생태문화길:

아차산생태문화길(약 2.2KM, 1시간 10분 소요)
고구려대장간마을-> 고구려역사박물관-> 고구려정-> 두꺼비바위-> 큰바위얼굴-> 고구려대장간마을.
고구려 역사문화길: (약 4.5KM, 2시간 10분 소요)
고구려대장간마을->  고구려역사박물관-> 고구려정-> 아차산 1,5,6,3,4보루-> 헬기장, 용마산5보루-> 아차울마을.
근현대사 묘역길:  (약 5.0KM, 2시간 30분 소요)
정각사입구-> 형제약수터-> 사색의 길-> 팔각정-> 동화천약수터-> 관룡탑-> 한다리마을(백교저수지)


▶ 어우름, 머무름 구리둘레길:  (전체코스 총 30KM, 총 12시간)

제1코스약 7.9KM, 4시간 코스.
고구려대장간마을-> 범굴사-> 아차산보루군-> 관룡탑-> 망우역사문화공원-> 딸기원입구.
제2코스약 7.8KM, 3시간 30분 코스.
딸기원 입구-> 국군구리병원-> 구룡산-> 갈매마을(갈매역)-> 별내역-> 사노나들목.
제3코스약 7.8KM, 2시간 30분 코스.
사노나들목 -> 구리왕숙체육공원-> 동창보( -> 동구릉) -> 구리농수산물도매시장-> 왕숙교-> (->구리역)->  왕숙천 생태습지-> 구리자원화수시설(구리타워)
0 제4코스; 약 6.5KM, 2시간 코스.
구리자원회수시설(구리타워)-> 강동대교-> 구리한강시민공원-> (-장자호수공원) -> 구리암사대교-> (-> 아천생태습지) -> 고구려대장간마을.

 

 

사색의 길 걷기로 
건강을 실천하세요!!


== (흰선     산책로) ===  사생의 길  (총 4.7km) 약80분 소요.
== (노란선 산책로) ===  인문학길 사잇길 (총 1.92km) 
== (빨간선 산책로) ===  추가 탐방로  (총 0.6km) 


** 사색의 길 완주시 (80분) 열량소모:

체중    50kg      60kg      70kg       80kg
열량  266kcal  319kcal  372kcal  426kcal

** 식품 열량:

밥 한 공기 300kcal   - 라면 사리 1개  200kcal 
- 식빵          100kcal   - 고구마 中 1개  200 200kcal 
- 계란 2개   120kcal    - 바나나 1개      100kcal  
- 사과 1개   100kcal    - 우유 200ml     125kcal  

 

 

 

님의 침묵
                    - 한용운 -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든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
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다.

 

 

 

구리전통시장 

고객이 즐겁고 고객이 행복한 구리전통시장:
구리전통시장은 현재 구리. 남양주시를 통틀어 유일하게 전통시장의 맥을 이어가는 등록된 인정시장이며 2013년 문화관광형 시장으로 선정이 되었습니다. 문화관광시장은 지역의 역사.문화, 관광자원. 특산물 등과 연계해 시장의 고유한 특성을 발굴해서 국내외 관광객들이 관광과 쇼핑이 가능하도록 육성하는 사업입니다. 구리전통시장으로 오시면 다양한 문화예술할동을 함께 하실 수 있습니다.

독립운동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는 
망우산 묘역입니다. 
다음 지점은 엄마약수터로 1.5km 입니다.


구리시.

 

 

망우리공원 인문학길 '사잇길' 안내도

 

망우 묘역의 독립운동가

1. 춘파 서동일 (1893~1966)
2. 춘영 오재영 (1897~1948)
3. 대향 이중섭 (1916~1956)
3. 대향 이중섭 (1916~1956)
4. 김종규 (1883~1960)
5. 박인환 (1926~1956)
6. 송촌 지석영 (1855~1935)
7. 해관 오긍선 (1878~1963)
8. 유상규 (1880~1919)
9.  지기 문명훤 (1892~1958)
10.  소파 방정환 (1899~1931)
11. 호암 문일평 (1888~1939)
12. 위창 오세창 (1864~1953)
13. 송암 서병호 (1885~1972)
14. 만해 한용운 (1879~1944)
15. 즉산 조봉암 (1898~1959)
16. 설산 장덕수 (1894~1947)
17. 서광조 (1897~1972)


 

▶ 삼거리에서 망우산 가는 능선길: 

 

↑ 망우산 2보루, 망우산3보루

 

앗, 구리 토평 방면... 한강 상류

 

 

오기만 묘소  → 

 

망우 독립유공자 묘역 오기만 묘소
국가등록문화재

오기만(吳基萬, 1905.8.21-1937.8.23)은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다.

1928년 4월 16일 신간회(新幹會) 백천지회(白川支會) 설립대회 당시 준비위원장으로서 홍세혁 등과 함께 격문을 배부하려다가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중국 상해로 망명하여 유호한인독립운동자동맹(留滬韓人獨立運動者同盟)을 결성하여 민족운동 기념일 마다 재류 한인들에게 격문을 반포하여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1934년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징역 5년 형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그 해 10월에 옥고 여독으로 순국하신 독립운동가이다. 「망우 독립유공자 묘역」은 일제에 항거하여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독립지사 묘소가 모셔진 역사적 장소로서 항일 독립운동의 정신 계승과 역사적 교훈을 되새기는 기념적 가치가 있어, 2017년 문화재로 등록되었다.   

 

 

↙ 2.77km 구리둘레길 1코스 (깔딱고개 쉼터),

<- 200m 솔밭약수터, ↗ 구리 둘레길 1코스 ( 망우묘지 삼거리) 930m

 

<-  1.3km 구리둘레길 1코스( 관룡탑),   -> 구리둘레길 1코스(망우묘지 삼거리) 840m

 

망우리의 유래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도읍을 정하고 종묘사직을 마련한 후, 선왕들의 능지를 정하기 위해 고심하던 중 현재의 동구릉을 답사하게 되었다. 이성계와 함께 하던 무학대사는 동구릉의 지세가 선왕의 능지보다는 태조의 신후지지(身後之地)로 적합하다고 조언하였고 태조는 그 조언을 받아들여 자신의 능지로 결정하였다. 기쁜 마음으로 환궁하던 중 지금의 망우고개 위에서 뒤를 돌아보고는 " 과연 명당이라 이제는 근심을 잊게 되었다. "  라고 경탄한 데서 지금의 '망우(忘憂)'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고 한다. - 구리시 

 

 

중랑 전망대

 

국가기준삼각점

이곳은 망우산 2보루 유적지입니다.

 

 

    망우리공원 사잇길 - 중랑전망대

    

                                                       북한산 
                                              보현봉       백운대     망우역         봉화산   도봉산      수락산  불암산

 

 

가운데 삼각형 모양의 봉화산

 

 

멀리 불곡산,  오른쪽의 수락산, 불암산

 

 

중랑전망대 동영사

 

 

(왼쪽) 도봉산,  (중앙) 불곡산,  (오른쪽) 수락산, 불암산 

 

 

망우산2보루

 

 

망우산 정상 (3보루, 282m)

 

망우산 정상석은 없으며, 누군가 정상을 알리는 표식과 깃대를 세워두었다.

감사한 일이다. 만약 이 표식이 없었으면 망우산을 찾지 못하여 얼마나 아쉬워 하겠는가?   

 

앗, 무서운 맹견이 갑자기 나타나 입마개를 하고 사람을 쳐다본다. 정말 아주 놀랐다. 이상하다. 이게 유기견인가? 주인은 보이지 않는다. 태연하게 행동하고 개를 자극하지 않으려 하였다. 맹견이 긴장하고 달려들 자세다. 개입마개를 믿고 조용히 지나쳐 내려오는데, 곧 나이 든 여주인이 올라오고 있었다. 참,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산이라 해도 목줄을 하고 끌고 와야 되는 것 아닌가? 맹견이 입마개를 비벼서 스스로 풀고 사람을 물어 죽이거나 상해를 입힌 경우의 뉴스를 본 적이 있다. 최근 개 물림 사고가 비일비재하다. 솔직히 나는 외진 곳에 가면 개가 제일 무섭다. 무더운 여름철엔 개의 숨소리까지 들려오는 것 같다. 옛날 강화도에서 등산하다 한번은 개가 저 아래 쪽 민가 어디에서 좇아오는 것 같아 나무에 올라간 적도 있다. 망우산 정상 부터는 산책로 주변으로 묘지가 간헐적으로 나타난다. 나는 오늘 망우리 망우산 능선 산책 나왔다가 맹견에게 물려 즉시 공동묘지 행 할  뻔 한 것 아닌가? 으스스...  

 

 

↙ 망우리 전망대 300m

 

  

<- 85m 사잇길 생명의 숲, -> 아사카와 다쿠미 묘소 120m

↑ 구리.한강전망대,  ↓ 망우리전망대 290m

 

 

안창호 묘터 ->

구리.한강 전망대

 

 

망우리공원 사잇길 - 구리(한강) 전망대

백봉산     예봉산    강동대교   검단산  한강   무갑산   금암산  구리암사대교

 

 

 

 

구리.한강 전망대 동영상

 

 

역사의 전망대

 

풍수적으로 이곳 망우리가 배산임수의 명당임을 확인할 수 있는 장소다. 역사적으로 아차산에서 온돌장군이 전사했다는 전설과 중국과의 교역로이며 땅은 비옥하고 전쟁에 유리한 지형으로 삼국시대 지정학적 요충지였다. 백제와 고구려(475~553, 장수왕)에 이어 신라(진흥왕)가 이곳을 차지하며 한반도의 주인이 되었고 조선시대에는 외사산(外四山)의 좌청룡의 자리로 한양을 병풍처럼 크게 둘러싸며 조선500년을 지켜왔다. 그리고 이제는 일제가 만든 시립공동묘지(1933~1973)의 어둠을 벗어나 아름다운 경관 속에 선진 한국의 새벽을 여신 분들이 모여있는 우리 근현대사의 성지가 되었으니 이곳에서 맞는 해돋이는 그 어느 곳보다 의미가 깊다. 

 

 

 

구리시 토평, 서울 강동구 방향

한강 위 포천-세종고속도로 교량 고덕대교 사장교, 오른쪽에 구리암사대교 

 

 

산불감시초소

 

 

서울 상봉동 방향

 

 

구리시가지

 

 

<- 망우공원묘지입구, -> 아차산,  ↗  형제약수터

 

 

경기옛길 제1길

망우왕숙길

<< 딸기원 1.5km  ||  1.3km 구리시청 >>

제1길 총 8.8km

 

딸기원 --2.8km, 현위치-- 구리시청 -- 1.4km -- 구리전통시장 -- 0.8km -- 구리역 -- 3.8km -- 합수머리 세월교

 

 

망우공동묘지 삼거리 가는 길

 

-> 엄마약수터 

 

 

중알구 상봉동, 신내동 방향

 

 

구리시 교문동 방향

 

 

↑ 이태원묘지 무연분묘 가는 길 ( 유관순 열사 합장묘역)

 

 

이태원묘지 무연분묘 가는 길 ( 유관순 열사 합장묘역)

 

 

 

유관순 열사
( 1902~1920, 독립운동가 )

내 손톱아 빠져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잇아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 밖에 없는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 유관순 열사의 마지막 유언 - 

 

 

 

유관순 열사 (1902~1920) 일대기:

 

1902. 12.  충청남도 천안시 병천면 용두리에서 출생
1918. 04.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 1학년 진학
1919. 03.  휴교령으로 고향 천안에 내려와 만세운동 준비
1919. 04.  병천 장날을 기하여 아우내 만세운동 주도
1919. 05.  공주지방법원에서 5년형 선고
1919. 06.  경성복심법원에서 3년형 선고, 상고 포기
1920. 03.   서대문 감옥에서 옥중 만세 시위 주도
1920. 09.  서대문 감옥에서 순국
1962. 03.  건국공로훈장 단장 추서
2018.09.   망우리 공원에 유관ㅅ군 열사 분묘 합장 표지비 건립
2019. 03.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추서
2021. 12.   서대문 독립공원 유관순 열사 동상 건립      

 

 

2023  망우역사문화공원 

 

계용묵 (1904-1961) 소설가 /  권진규 (1922-1973) 조각가/ 김말봉 (1901-1962) 소설가/ 김봉성(1900-1943) 애국지사(건국포장)/ 김상용(1902-1951) 시인/


오재영(1897-1948) 애국지사)(애족장)/ 유상규(1897-1936) 의사.애국지사(애족장)/ 이경숙(1924-1953) 여성운동가/ 이광래(1908-1968) 극작가/ 이병홍(1891-1955) 국회의원/

 

김이석(1915-1964) 소설가/ 김효직(1905-1950) 영양학자.교육자/ 노필(1927-1966) 영화감독/ 명온공주(1810-1832) 순조의 장녀. 김현근(1810-1868) 부마. 추증 영의정/ 문명환(1802-1958) 애국지사(애족장)


이영민(1905-1954) 야구인/ 이영준(1896-1968)의사.국회의원/ 이인성(1912-1950) 화가/ 이중섭(1916-1956) 화가/ 장덕수(1894-1947) 정치가.언론인

 

박승빈(1860-1943) 변호사.국어학자/ 박원희 (1899-1928) 애국지사(애족장)/ 박은혜(1904-1963) 교육자/ 박인환(1926-1956)시인/ 박찬익(1884-1949) 애국지사(독립장)/ 박희도(1889-1952) 종교인.교육자/ 방정환(1890-1931) 아동문학가.애국지사(애국장)/ 


지석영(1855-1935) 의사.국어학자/ 차중락(1942-1968) 가수/ 최신복(1906-1945) 수필가.아동문학가/ 최학송(1901-1932) 소설가/ 한용운(1875-1944) 시인.애국지사(대한민국장)/ 함세덕(1915-1950) 극작가/ 서이토 오토사쿠(1866-1936) 총독부 초대 산림과장/  

 

삼학병(김명근/김성익/박진동, --1946.01.19) 학병동맹원/ 서광조(1897-1964) 애국지사(애족장)/ 서동일(1893-1966) 애국지사(애족장)/ 서병호(1885-1972) 애국지사(애국장)/ 서병호(1895-1972) 애국지사(애족장)/ 설의식(1900-1954) 언론인/ 설태희(1875-1940) 민족운동가/

아사카와 다쿠미(1891-1931) 민예연구가/ 13도창의군탑(1991)/ 이태원묘지무연분묘합장비, 1936년. 이태원공동묘지 무연고 묘 합장/  경서노고산천골취장비, 1938년 서울 노고산 공동묘지의 무연고묘 합장/  국민강년탑, 수십년간 쓰레기를 주워온 최고학옹(1927~)이 세운 돌탑.

 

신경진(1575-1643,  평산신씨 중종묘지) 영의정/ 안창호(1878-1938) 애국지사(대한민국장)/ 오긍선(1878-1963) 의사.사회사업가/ 오기만(1905-1937) 애국지사(애국장)/ 오세창(1864-1953) 서화가.언론인

 

 

망우리공원의 인문학길 '사잇길

이 길은 망우리공원의 자연 경관 조망 및 묘지 속의 사색과 함께, 그 어느 때 보다도 격동적인 근현대사를 살다간 유명인사 50여명과 서민의 이야기를 비명을 통해 체험할 수 있는 코스로 조성되었습니다. 이처럼 복합적인 인문학 공간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기 어렵습니다. 이곳은 선진 대한민국의 뿌리를 내리고 꽃씨를 뿌리신 근현대 각 분야의 선구자와 서민닝 한데 모여 계신 성지입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어제와 오늘의 사이 삶과 죽음의 사이를 걸어가며 깨달음을 얻어 즐거이 '망우(忘憂)' 하시기 바랍니다.  


樂而忘憂* ( 낙이망우, <논어> )

 

*  '發憤忘食(발분망식)  樂而忘憂(낙이망우)'. 論語(논어)·述而(술이) 편에 나오는 말이라고 한다. 공자가 열국을 주유하다 초나라에 이르렀을 때, 초(楚)나라 葉邑(섭읍)의 장관 沈諸梁(심제량)이 孔子(공자)의 제자 子路(자로)에게 공자의 사람됨에 대해 묻자, 자로는 어떻게 대답할지를 몰라 했다고 한다. 공자가 이 사실을 듣고 자로에게 "너는 왜 그 사람됨은 발분하여 먹는 것도 잊고, 즐거워서 근심을 잊으며, 늙는 것도 알지 못한다고 대답하지 않았냐"고 말했다고 한다. 망우리는 '樂而忘憂 (낙이망우)'의 망우에서 생겨난 말이라고 한다. 

 

 

                                               < 2018.02.05 사진 > 망우리묘역에서

 

박인환 (1926-1956 시인):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 < 목마와 숙녀> 중에서.  

박인환(朴寅煥) (1926~1956): 1950년대의 대표적인 모더니즘 시인이다. 강원도 인제에서 출생, 경성제일고보를 거쳐 평양의전을 중퇴하였다. 1946년 '거리'를 발표하여 등단하였다. 광복 후 서울에서 서점을 경영하였고, 1947년부터 경향신문 기자로 미국을 시찰하였다. 1949년 동인그룹 '후반기'를 발족하여 활동하였다. 1949년 5인 합동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발간하여 본격적인 모더니즘의 기수로 주목받았다. 1956년 향년 29세로 심장마비로 자택에서 사망하였다. 시집: <목마와 숙녀>, <세월이 가면>, <검은 강>, <고향에 가서> 등

 

 

 

<- 2.7km 서울 둘레길 (용마산 깔딱고개, 사가정역), 
<- 2.1km 구리 둘레길 1코스 (관룡탑), 
<- 5.0km 서울둘레길 (화랑대역),
<- 500m 구리 둘레길 2코스 (구릉산 입구)
-> 망우산순환산책로

 

 

<< 망우왕숙길 딸기원 0.8km

망우왕숙길 구리시정 2km >>

 

 

" 망우 >  행복 HAPPY  

근심 > 행복 HAPPY  

걱정 >  평안 PEACE  "

 

 

구리둘레길 인증센터 1

 근심을 먹는 우체통

 

우리동네 미술관 16호 작품

망우동 주민자치회 / 2020년 9월 설치/ 3,500x3,500 mm


제작목적:

이곳은 빈 공간을 공공미술로 밝히고 생기를 불어넣는 '우리동네미술관' 16번째 작품공간입니다. 망우리공원을 찾는 분들이 근심을 잊고 좋은 기억을 가져가시기를 바라는 망우본동 주민들의 따뜻한 마음이 담겨져 있습니다. 

작품의도:
지붕 모양의 프레임은 비바람을 막아주는 사계절 아름다운 포토죤이 됩니다. 근심은 엽서에 적어 우체통에 날려버리세요. 어린이 처럼 해맑게 웃고 행복하시라고 자전거 타는 소년 소녀를 표현해 보았습니다. 

- 주관 및 관리부서: 망우본동 주민센터 

 

      

 

중랑망우공간

 

망우역사문화센터

 

 

딸기원 방향

 

 

망우리고개

 

 

<- 3.2km 서울둘레길(깔딱고개 쉼터), <- 320m 중랑둘레길(망우공원관리사무소),  

-> 서울둘레길 (화랑대역) 4.5km

 

 

상봉동, 신내동 방향,

중간의 봉화산

 

망우역사문화공원

 

 

조형물  '소통의 문'  

 

 

망우리(忘憂里) 고개의 유래:

조선 태조 이성계가 1394년 한양 도읍을 정하고 사직의 기초를 세웠으나 아직 자신이 죽은 뒤 묻힐 명당을 찾지 못해 걱정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전국에 지관(地官)을 파견하여 명당을 찾게 한 결과 그디어 명당을 찾게되었는데, 그곳이 곧 동구릉(東九陵) 안에 있는 건원릉(健元陵) 자리이다.
태조는 중신들과 지관을 거느리고 양주로 가서 검암산(劍岩山) 밑에 있는 능터를 직접 보고 과연 그 자리가 명당임을 확인하였다. 태조는 흡족한 마음으로 궁으로 돌아오는 길에 망우산(忘憂山) 고개 위에서 잠시 쉬면서 멀리 건원릉 터를 바라보면서 신하들에게 "아아! 이제야 오랫동안 근심을 잊게되었구나. (於斯吾憂忘矣_어사오우망의)"라 하였다.
이후부터 이 고개를 망우((忘憂)고개 (근심을 잊은 고개)라 하고 이 일대를 망우리라 하였는데, 세월이 흐르며 망우리고개가 되었다고 한ㅁ다.

현재 망우리고개는  옛 고개보다 남쪽에 새로 낸 고갯길이며, 옛 고개의 위치는 종전의 중앙선의 망우역과 도농역 사이의 기차 터널 윗길이었다.

출처: <서울의 고개>, 서울특별시편찬위원회(2000.12.30)

소통(疏通)의 문(門)

-- 소통의 문: 
예로부터 서울의 도심은 4대문을 기점으로 안쪽에 위치하여 왔다. 도심은 광역화되고, 서울의 접근방법은 나날히 다양화 된 오늘날 4대문은 더 이상 서울의 관문(關門)이라 할 수 없다. 이제 서울의 근교와 인접한 많은 지역들이 서울의 관문으로써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 중 중랑구는 서울과 구리시를 연결하는 동북쪽의 관문이다. '소통의 문'은 대문(大門)의 한자인 문(門) 자(字)를 형상화하여 이런 중랑구의 상징성을 펴표현하였다. 

-- 화합의 삼위일체;
중랑구를 품고 있는 3개의 봉우리들인  망우산(忘憂山), 용마산(龍馬山), 봉화산(烽火山) 의 기(氣)를 한데 모아, 구민의 화합과 행복을 염원하는 구민의 마음을 3개의 기둥으로 표현하였다.

-- 도약을 위한 탈피:
오랜 역사를 간직한 중랑구의 전통을 기반으로 나비가 허물을 벗고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날아오르 듯, 서울 동북부의 중심도시로 힘차게 도약하는 중랑구의 밝은 미래를 기둥 하단의 은백색과 상단의 검은색으로 표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