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청량산: 483m)
- ( 2023.04.16 )
남한산성을 등산해 보있습니다. 남한산성은 서울의 남쪽을 둘러싸고 있는 산으로 옛날 조선시대 북한산성과 더불어 수도 한양의 중요한 방어진지 같은 것이었습니다. 전쟁 등 유사시 나라의 중추인 임금, 군대, 그리고 백성이 성 안으로 들어가 적과 대치하며 전투를 하려는 목적을 갖고 축성한 성곽입니다. 오늘은 황사가 짙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땅한 곳이 생각나지 않아 교통이 편리한 남한산성 산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 남한산성(南漢山城): 경기도 광주시, 성남시, 하남시에 걸쳐 남한산(480m) 을 중심으로 하는 산성(山城)이다. 병자호란 때 우리나라의 치욕적인 수난의 진원지이기도 하다. 대외정세에 둔감하게 대응한 국제정치의 실패의 결과이다. 난한산성의 역사는 백제의 수도인 하남위례성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조선 시대에 인조와 숙종 때에 산성을 증축하여 오늘날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남한산성의 성벽은 국가사적 제57호, 남한산성은 1971년 경기도립공원 제158호, 2014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남한산성에는 원성과 외성, 옹성, 4대문, 암문, 치, 장대, 포루, 수구, 단, 묘, 공해, 정, 사찰, 제당 등 많은 시설물과 행궁이 있으며 그 중 성곽 ,수어장대,숭렬전,청량당, 현절사, 침괘정, 연무관, 지수당, 장경사, 망월사지, 개원사지, 남한산성 행궁이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주요 시설에 대한 간단한 개략을 알아본다.
- 성곽 : 원성과 외성으로 나뉜다. 원성은 하나로 연결된 본성이며, 외성으로 봉암성과 한봉성, 신남성이 있으며, 두 개의 돈대가 있다.
- 성벽: 원성은 높이가 약 3~7m내외다.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편이다.
- 성문: 남한산성에는 남문(지화문_至和門), 북문(전승문_全勝門), 동문(좌익문_左翼門), 서문(우익문_右翼門) 의 4대문이 있다.
- 외성: 외성은 봉암성, 한봉성, 신남성의 3성이 있다.
- 옹성: 주 성곽에서 돌출 작은 성곽으로, 적군을 옆에서도 공격할 수 있다. 연주봉옹성, 장경사 신지옹성 등 총 5개의 옹성이 있다.
- 여장: 성위에 낮게 쌓은 담이다. 몸을 숨겨 총이나 활을 쏠 수 있게 만든 시설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하부는 석재로, 상부는 전돌을 사용한다.
- 암문: 암문은 적이 관측하기 어려운 곳에 만든 성루가 없는 성문이다. 남한산성에 16개가 있으며, 우리나라 성곽 중에서 가장 많다.
- 수어장대(守禦將臺): 장군의 지휘소다. 2층으로 되어있으며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 남장대 터: 제2남옹성 바로 곁에 있다. 지금은 주춧돌만 남아있다.
- 동장대 터: 남한산성의 동쪽에 있던 장대로 수어청에 소속된 5영 중 좌영장이 지휘하던 동장대가 있던 곳이다.
- 남한산성행궁: 광주 행궁이라고도 불린다. 유사시 왕이 피난할 수 있도록 준비된 예비 궁궐이다. 총융사 이서의 계책에 따라 완성되었다.
- 숭렬전: 백제의 시조 온조왕의 위패를 봉안하고 제사를 드리던 사당이다.
- 청량당: 수어장대 담 밖 서쪽에 있는 당집이다. 남한산성의 동남쪽 부분 축성 책임자 이회와 그 부인, 그리고 서북성 축조 담당 벽암스님의 혼령을 모신 사당이다. 이회는 모함으로 참수를 당했으나 후에 누명이 풀렸으며 이곳에 봉안되었다.
- 연무관: 군사들이 무술을 연마하던 곳이다. 현재는 건물 복원 작업을 위한 주춧돌만을 남기고 있다.
- 장경사: 대한불교 조계종 조계사의 말사이다. 남한산성 내에 존재했던 9개의 사찰 가운데 당시의 모습으로 남아 있는 현존하는 유일한 절이다.
- 국청사: 남한산성 안의 산성리에 있는 절이다. 승군의 숙식과 훈련을 담당하고, 비밀리에 군기와 화약,군량미 등을 비축하였던 사찰이다
남한산성 탐방안내도
▶ 1코스 (거리 3.8Km / 소요시간 1시간 20분):
산성로터리 – 북문(0.4km) – 서문(1.1km) – 수어장대(0.6km) – 영춘정(0.3km) – 남문(0.7km) – 산성로터리(0.7km)
▶ 2코스 (거리 : 2.9km / 소요시간 : 60분):
산성로터리 – 영월정(0.4km) – 숭렬전(0.2km) – 서문(0.7km) – 수어장대(0.6km) – 산성로터리(0.9km)
▶ 3코스 (거리 : 5.7km / 소요시간 : 2시간):
경기도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 – 현절사(0.1km) – 벌봉(1.8km) – 장경사(1.5km) – 망월사(1.1km) – 동문(1.0km) – 경기도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
▶ 4코스 (거리 : 3.8km / 소요시간 : 1시간 20분):
산성로터리 – 남문(0.7km) – 남장대터(0.6km) – 동문(1.1km) – 지수당(0.5km) – 개원사(0.3km) – 산성로터리(0.6km)
▶ 5코스 (거리 : 7.7km / 소요시간 : 3시간 20분):
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 – 동문(0.6km) – 동장대터(1.1km) – 북문(1.6km) – 서문(1.1km) – 수어장대(0.6km) – 영춘정(0.3km) – 남문(0.7km) – 동문(1.7km) – 경기도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
▶ 산 행 : 걸음수 10.578 steps, 거리 7.4 km, 소모열량 412 kcal, 소요시간 01:56 hrs, 속도 3.2-3.8 km/h, 기온 14-16℃
▶ 코 스 : 마천역 - 만남의 광장(남한산성 입구 버스정류소) - 청운사 - 일장천약수 - 제6암문 - 수어장대 (청량산; 483m) - 서문(우익문) - 남한산성 전망대 - 북문(전승문) - 종로로터리.
◆ 마천역 -> 수어장대:
5호선 마천역에 하차하여 남한산성 산행 들머리 가는 길.
'남한산성 입구' 버스정류소 (버스 종점)....옛날엔 느티나무 오른쪽 차들이 있는 곳에 만남의 광장이 있었는데....
3214번: < 남한산성입구- (방이역)- (올림픽공원역)- (둔촌동역2번출구) - (강동역) - (천호역)- (강동구청역) - 남한산성입구>, 배차간격 13분 (10대 운행)
3317번: <남한상성입구 <- (송파역) - (석촌역)- (마천역) - (종점) -> 잠실새내역>, 배차간격 8분 (10대 운행)
3315번: < 장지공영주차장 - (거여역) - (종점) - (남한산성입구) - (개롱역) - (오금역) - (잠실역8번출구)- (삼전역)- (송파나루역)- 삼전동사회복지관>, 배차간격 7분 (22대 운행)
3316번: < 남한산성입구 - (둔촌오륜역) - (강동역) - (천호역) - (둔촌역4번출구)- 남한산성입구>, 배차간격 12분 (8대 운행)
3416번: < 남한산성입구- (거여역) - (가락시장역4번 출구) - (수서역) - 남한산성입구>, 배차간격 12분, (10대 운행)
먹자골목 통과...커다란 느티나무...
엿장수 하시는 분의 따닥따닥 가위 장단이 흥을 돋게 한다.
" 환영합니다, 위례 ".... 그 다음 구역은 하남시 학암동이다.
참숯불꼼장어구이, 회무침, 매운탕 전문...꼼장어구이가 눈을 번쩍!!
남한산성 등산로 삼거리 .......소하천 학암천 하남시장.
↖ 성불사 ( 등산로 1 코스 ), ↗ 청운사 ( 등산로 2,3,4,5 코스 )
청운사
학암복지회관 경로당
벌교집 010-5340-6973...특별메뉴, 짱뚱어탕 전문, 12,000원.
푸른산장...봄꽃이 아름다운 음식점.
푸른산장....옻닭, 오리, 단고기 예약 02-403-3305.
남한산성 옛길
동문노선 9.5km, 북문노선 5.8km, 서문노선 2.1km, 남문노선 6.5km
서낭당과 장승:
" 마을과 여행자의 수호신 "
서낭당은 오래된 나무를 모시거나 돌무더기를 쌓아 신을 모시는 장소입니다. 장승은 주로 마을의 입구에 세워 마을로 들어오는 잡귀나 재액을 물리치는 역할을 하는 마을의 수호신앙의 일종입니다. 서낭당이 위치하는 장소는 바로 고갯마루였는데 옛길을 여행하는 여행자들은 항상 고갯마루를 넘어 다녀야 했으므로 자연스레 서낭당을 자주 마주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마을의 경계에 세워지는 장승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을의 경계로는 주요 도로와 마을길이 맞무리는 지점이기 때문에 이곳에 세워지는 장승 역시 여행자가 자연스레 마주칠 수 밖에 없는 구조였습니다. 길을 이용하는 보부상과 여행자들은 항상 여행길이 안전하기를 바랐는데 길목에 위치하고 있는 서낭당과 장승은 이 안전기원의 대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서낭당과 장승은 마을의 수호신앙이면서 동시에 여행자들의 신앙이었던 것입니다.
감이동 0.6km, 우익문 1.3km.
백제 얼이 살아 숨쉬는
하남 위례길
하남시는 백제의 시조인 온조왕이 최초로 도읍을 정하였던 하남 위례성(河南 慰禮城)이 위치했던 곳으로 추정되며, 백제 한성시대 약 500여년간 도읍이었던 역사적 고장이다. 그래서 옛길을 복원하여 만든, 걷고 싶은 길의 이름을 하남위례성의 역사성과 전통을 담아 하남위례길이라 하였다.
- 위레사랑길: 총거리 5km;
: 산곡천- 닭바위- 연리목 - 도미나루 -두껍바위 - 철새도래지 - 팔당댐.
- 위례강변길: 총거리 13.5km
: 산곡천 - 억새밭 - 덕풍천 - 미사리 경정공원 - 미사리 선사유적지 - 나무고아원 - 이어산란장 - 선동 축구장.
- 위례역사길: 총거리 5.8km
: 광주향교 - 이성산성 - 춘궁동 동사지- 선법사.
- 위례둘레길: 총거리 39.7km
: 시청 - 샘재 - 객산 - 남한산성 - 금암산 - 이성산성 - 덕풍골.
남한산성 등산로 2,3,4,5코스 들머리.
등산로3거리 -> a,b,c,d,e
(a): -> (1번코스) -> 성불사 -> 약수터 -> 체육시설 (거리 200m) ) -> 연주봉옹성-> 5암문 -> 수어징대.
(b): -> 청운사 -> (현위치) -> (2번코스)-> 쌍둥이약수터 (거리100m) -> 헬기장 (거리150m) -> 암자 (거리40m) -> (연주봉 옹성 / 남한산성 서문) -> 수어장대.
(c): -> 청운사 -> (현위치) -> (3번코스) -> 남한산성 서문 -> 수어장대.
(d): -> 청운사 -> (현위치) -> (4번코스) -> 남한천약수터 (거리 160m) -> 4,5코스 등산로 정상 -> 남한산성 서문 / 수어장대.
(e): -> 청운사 -> (현위치) -> (4번코스: 일장천약수터.체육시설 (거리110m) -> (5번코스) -> 4,5코스 등산로 정상 -> 남한산성 서문 / 수어장대.
갈림길 이정표:
<- 1.8km 우익문(서문), <-0.2km 쌍둥이약수, -> 수어장대 2.1km, 유일천약수 0.7km
<- 1.4km 수어장대, <- 1.4km 우익문(서문), <- 0.3km 일장천약수, <- 0.1km 유일천약수
-> 청운사 0.85km
계류...졸졸...
운동쉼터
일장천약수터
일장천 약수
일장천약수터 위 고개 이정표:
<- 수어장대, ↖ 위례근린공원, ↘ 유일천약수터
여기 앉아 음료 한잔...
여기에서 부터 능선 비탈길을 수어장대 아래 남한산성 제6암문 까지 올라야 한다. 등산에서는 공짜가 없다. 고도에 따른 땀이 있을 뿐이다. 자기 몸무게를 짊어지고 걸어오르는 것이다.
뿌리 많은 나무....삶의 의지.
앗, 남한산성
호국사 2.0km ↘, 유일천약수 1.4km ↘, ↑ 수어장대 0.7km
제6암문
제6암문(서암문)
암문은 적의 관측이 어려운 곳에 설치한 성문으로 일종의 비밀통로이기 때문에 크기도 작고, 적에게 쉽게 식별될 수 있는 시설도 설치하지 않았다. 이 암문은 성벽의 흐름 방향과 달리 입구가 북서쪽을 향하고 있어 외부에서 쉽게 관측되지 않도록 하였다. 또한 북동쪽의 성벽을 돌출하여 암문으로 접근하는 적을 측면에서 효과적으로 공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원성에 설치된 12개 암문의 외측 개구부는 대부분 홍예식이지만 제2암문과 더불어 이 암문의 개구부는 평거식이다. 인조 15년(1637) 1월 23일, 한밤중에 습격해 온 청병을 크게 물리친 곳이라 하여 이 암문 부근을 '서암문 파적지'라 부른다.
성곽 너머로 바라보는 상남시
<- 0.7km 우익문(서문), <- 1.7km 전승문(북문), <- 1.1km 종로, -> 지화문(남문) 1.4km, ↗ 수어장대 0.1km
수어장대와 수어청
" 한양 남쪽의 상비군, 수어청 "
수어장대는 남한산성의 서문과 남문 사이 가장 높은 지대에 위치한 지휘소 겸 적정 감시시설입니다. 특히 남한산성 방위의 총사령관이라 할 수 있는 수어사는 조선시대 군사제도인 5군영 제도 중 하나인 수어청의 수장이기도 합니다. 조선은 임진왜란을 겪으며 상비군의 필요성을 절감하느데요 . 그래서 전쟁 중에 설립된 기관이 훈련도감입니다. 훈련도감은 전쟁 중에 꼭 필요한 상비군을 훈련하고 유지하는 기관이었습니다. 이 훈련도감과 함께 4개의 지방 상비군이 설치되는데 그 중 남한산성에 설치된 군영이 바로 수어청입니다. 조선은 훈련도감 설치 이후 수도 한양을 방어할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는데 먼저 화기를 사용하는 총포군을 양성할 수 있는 어영청을 설치합니다. 다음으로 한양의 북쪽을 방어할 총융청을 설치합니다. 총융청의 본부는 북한산성이었고 한양에 적군이 진입하기 전 북한산성에서 격퇴하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다음 설치된 곳이 바로 남한산성의 수어청입니다. 마지막으로 설치된 왕의 직할부대 개념의 금위영까지, 5군영 체제는 조선후기까지 어어지는 핵심 군사제도였습니다.
↑ 수어장대 0.1km, -> 지화문1.1km.
수어장대
수어장대(守禦將臺) 와 청량당(淸凉堂):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호, 제3호):
수어장대는 지휘와 관측을 위한 군사목적으로 지은 누각이다. 남한산ㅅㅇ에 있던 5개의 장대 중 유일하게 남아있으며, 성 안에 남아있는 건물중 화려하고 웅장하다...남한산성 축성때 단층으로 지어 서장대라 불리던 것을 영조 27년 유수 이기진이 왕명을 받아 이층으로 다시 짓고 '수어장대'라 편액을 달았다...수어장대 2층 내부에는 '무망루'라는 편액이 달려 있었는데, 병자호란 때 인조가 겪은 시련과 8년간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가다가 귀국하여 북벌을 이루지 못하고 승하한 효종의 원한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영조가 지은 것이다. 현재 무망루 판액은 수어장대 오른편에 보호각을 지어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보관하고 있다.
청량당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온다. 이 사당은 남한산성 쌓을 때 동남측 축성의 책임자였던 이회 장군과 그의 부인의 넋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이회는 공사비를 횡령했다는 누명을 쓰고 죽임을 당했고 이 소식을 들은 부인 송씨는 한강에 몸을 던져 따라죽었다. 이회는 죽을 때 자신의 죄가 없으면 매 한마리가 날아올 것이라 에언 했는데 과연 매가 날아와 그의 죽음을 지켜보았다 한다. 후에 누명이 벗겨지고 그가 맡은 공사가 가장 잘된 것으로 알려지자 사당을 지어 초상을 안치하고 넋을 기렸다. 원래의 청량당은 6.25 전쟁때 소실 되어 다시지었다. 서장대가 있는 산 이름이 청량산이므로 청량당이라 이름 지었다.
보호수: 향나무, 수령 360년, 수고 2.5m, 지정일자 1983.03.10, 나무둘레 250cm, 관리자: 남한산성 세계유산센터
청량당(淸凉堂):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호):
청량당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온다. 이 사당은 남한산성 쌓을 때 동남측 축성의 책임자였던 이회 장군과 그의 부인의 넋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이회는 공사비를 횡령했다는 누명을 쓰고 죽임을 당했고 이 소식을 들은 부인 송씨는 한강에 몸을 던져 따라죽었다. 이회는 죽을 때 자신의 죄가 없으면 매 한마리가 날아올 것이라 에언 했는데 과연 매가 날아와 그의 죽음을 지켜보았다 한다. 후에 누명이 벗겨지고 그가 맡은 공사가 가장 잘된 것으로 알려지자 사당을 지어 초상을 안치하고 넋을 기렸다. 원래의 청량당은 6.25 전쟁때 소실 되어 다시지었다. 서장대가 있는 산 이름이 청량산이므로 청량당이라 이름 지었다.
수어장대
사적 제57호 남한산성
남한산성 수어장대: 보물
장대란 지휘와 관측을 위해 군사적 목적으로 지은 누각 건물로 남한산성에는 5개의 장대가 있었다. 수어장대는 남한산성 서쪽에 있어 본래 '서장대' 라고 불렸다. 병자호란 당시에는 단층 누각이었고, 수어청 우영장이 서장대에 머물며 군사를 지휘하였다. 이후 영조 27년(1751)에 유수 이기진이 복층으로 중건하고, '수어장대'라는 편액을 달았다. 지금의 수어장대 현판은 헌종 2년(1836)에 유수 박기수가 수어장대를 증축하였는데, 그 형인 박주수가 쓴 것이다. 수어장대에서는 수어사가 수어청의 군사를 지휘하였는데, 정2품 상사에 해당하였다. 수어청은 한양을 수비하는 5군영의 하나로, 본래 한성부 북부 진장방 (오늘의 서울 종로구 삼청동, 팔판동,화동 일부)에 그 본청이 있고, 광주부윤을 부사로 삼아 남한산성을 관할케 하였다. 그러다 운영의 효율성을 도모하고자 정조19년에 본청을 완전히 남한산성으로 옮기고, 광주유수가 수어사를 겸하게 하였다. 남한산성 수어장대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호로 관리되어 오다 2021년에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승격되었다. 또한, 수어장대는 세계문화유산 남한산성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 중 하나인 군사 경관 (장대)에 해당한다. 수어장대는 여러 문헌에 등장하는데, 그중 조선 숙종의 정비인 인경왕후의 아버지 김만기는 <서장대기>에서 아래와 같이 언급하였다.
" 비록 한강의 흐름을 기울여도 그날의 비린내는 씻지 못할 것이다. 만약에 혹시라도 풍경이나 구경하고 유람이나 탐하면서 다시는 감개하고 탄식하는 마음이 없다고 하면 이는 이른바 그 양심을 잃은 자이다. "
※ 병자호란 주요 연표:
- 1598년 (선조 31년): 임진왜란 끝남.
- 1608년 (선조 41년): 광해군 즉위.
- 1616년 (광해군 9년): 누루하치 후금 건국.
- 1618년 (광해군 11년): 명과 후금의 전쟁, 명에 원병 파견함.
- 1619년 (광해군 12년): 강홍립 후금에 투항. -> (중립외교).
- 1622년 (광해군 15년): 명나라 장수 모문룡 가도에 주둔.
- 1623년 (광해군 16년): 인조반정으로 인조 즉위. -> (친명배금정책)
- 1624년 (인조 2년): 이괄의 난.
- 1627년 (인조 5년): 정묘호란 발생.
- 1635년 (인조 13년): 후금 내몽고 점령.
- 1636년 (인조 14년): 후금 청으로 국호 변경하고, 조선에 군신관계 요구 (척화론과 주화론 대립).
12월 28일 병자호란 발생. 남한산성 전투.
- 1637년 (인조 15년): 2월 24일 인조 송파 삼전도에서 항복. 청과 사대관계 맺음.
- 1644년 (인조 21년): 명나라 멸망. 청 중국 통일.
매바위, 그리고 '수어서대" 암각글씨.
청량당에 위폐가 모셔진 남한산성 공사 책임자 중 한사람이었던 이회가 공사비 횡령에 연류되어 억울하게 처단되자 죽 전에 자신의 죄가 없다면 매가 날아와 이 바위에 앉을 것이라고 유언을 했는데, 그 후 과연 매가 날아와 매바위에 구슬피 울었다고 하며, 다시 확인해 보니 죄가 없음이 드러났으며, 오히려 다른 구간보다 성이 더 견고히 축성되었음이 밝혀졌다. 예나 지금이나 모함은 한 인간을 파멸로 이끌기도 한다.
무망루
조선 영조27년(1751) 광주 유수 이기진이 증축한 수어장대 2층의 내편(內篇) 문루로서 그 편액(扁額)이 2층 누각에 있어 1989년 전각을 건립하고 이 안에 현판을 새로 설치 일반인이 볼 수 있게 하였다. 무망루는 병자호란 때 인조가 겪은 시련과 8년간 청나라 심양에 볼모로 잡혔다가 귀국 후 북벌을 꾀하다가 승하한 효종의 원한을 잊지말자는 뜻에서 영조가 이믐지은 것이다.
無忘樓 무망루
벌봉, 남한산 방향
남한산성 (사적 제57호):
1 남한산성 행궁, 2 수어장대, 3 숭렬전, 4 청량당, 5 현절사, 6 침괘정, 7 연무관, 8 지수당, 9 장경사, 10 망월사, 11 개원사, 12 제1남옹성, 13 제2남옹성, 14 남문(지회문), 15 서문 (우익문), 16 연주봉옹성, 17 북문(전승문), 18 동문(좌익문), 19 장경사신지옹성, 20 동장대터, 21 봉암성, 22 벌봉
남한산성은 조선시대 뿐 아니라 삼국시대부터 천연의 요새로 중요한 역할을 하던 곳이다. 백제의 시조인 온조의 욍성이었다는 기록이 있고, 나당전쟁이 한창이던 신라 문무왕 12년(672)에 한산주에 쌓은 주장성이라는 기록도 있다. 고려시대에는 몽고의 침입을 격퇴한 곳이기도 하고 일제강점기에는 항일운동의 거점이 되기고 한 곳이다. 그러나 남한산성은 주로 병자호란으로 기억되는 곳이다. 조선 인조 14년(1636)에 청나라가 침략해 오자 왕은 이곳으로 피신하여 항전하였으나, 왕자들이 피신해 있던 강화도가 함락되고 패색이 짙어지자 세자와 함께 성문을 열고 삼전도에 나가 치욕적인 항복을 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남한산성은 패배를 알지 못하는 곳이다. 성의 외부는 급경사를 이루어 적의 접근이 어렵고, 내부는 경사가 완만하여 넓은 경작지와 물을 갖춘 천혜의 전략적 요충이기 때문에, 병자호란 당시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청군에 함락당하지 않고 47일간이나 항전할 수 있었던 곳이다. 이처럼 오랜 기간동안 우여곡절을 가진 성의 역사처럼 성곽의 형태 또한 단순하지 않아서 하나의 폐곡선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본성, 봉암성, 한봉성, 신남성과 5개의 옹성으로 이루어진 복잡한 구조이다. 인조 4년(1636) 에 중앙부의 가장 큰 폐곡선인 본성이 완성되었고, 병자호란 이후 방어력을 높이기 위해 동쪽의 봉암성, 한봉성 등을 비롯하여 여러차례 증축을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황사로 잠실 롯데월드타워가 희미하게 보인다.
우익문(서문)
서문 (우익문)
남한산성에는 동.서.남.북에 4개의 대문이 있는데, 서문은 4개의 대문중 규모가 가장 작고, 산성을 처음 쌓았을 때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조 3년(1799)에 다른 문과 같이 개축하며 우익문(右翼門)이라 칭하였다. 행궁을 중심으로 국왕은 남쪽을 바라보며 국정을 살피니, 서문이 행궁의 우측에 있어 우익문이라 하였다. 서문은 인조15년(1637) 1월 30일 왕이 세자와 함께 청나라에 항복하기 위해 남한산성을 나간 바로 그 문이다. 남한산성의 서쪽 사면은 경사가 급해 물자수송이 어렵지만 광나루나 송파나루 방면에서 산성으로 진입하는 가장 빠른 길이다.
서문 이정표:
<- 1.0km 수어장대, <- 일장천약수, -> 푯말삼거리 1.3km, 위례둘레길(덕풍골) 8.7km.
右翼門 우익문
서문 전망대
통제안내판...문화유산 보호및 탐방객 안전을 위해
전승문(북문) 가는 길
국청사
<- 0.9km 수어장대, <- 2.4km 지화문(남문), <- 1.7km 학암동, -> 전승문(북문) 0.7km.
하남시 고골 방향
남한산성 동영상
하남시 전경
멀리 아파트군이 있는 지역은 한강변 미사리 신도시 지역이며, 바로 아래는 하남시 춘궁동, 교산동 일대로 흔히 고골로 지칭되며, 하남교산신도시가 들어서는 지역이다.
하남교산신도시 : 경기도 하남시 천현동, 교산동, 춘궁동, 덕풍동 일원에 제3기 신도시인 '하남 교산 싣도시' 가 들어서는 지역이다. 하남교산 공공주택지구는 면적 6,314,121m2 (191만평) 으로 주택 3만3천호가 들어서며 인구 7만8천명이 유입된다. 사업기간: 2019년 ~2028년이다. 비야흐로 이 풍광이 청정 수려한 고골 일대에 쌍전백해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고골: 하남의 지형은 낮은 야산과 구릉지대가 펼쳐져 있고, 북쪽으로 흐르는 한강에는 망월천, 덕풍천,산곡천 같은 작은 샛강이 흘러 들어가며 강줄기의 옆에는 평야가 형성되어 있어서 B.C 4000여년 전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하였으며, 수로를 이용한 타 지역의 선진문화를 받아들여 문화가 융성했던 지역이다. 또한 남쪽으론 남한산, 동쪽은 검단산, 북쪽으론 한강이 흘러 군사의 요충지로서 더할 나위 없이 좋아 백제의 시조인 온조께서 이곳에 도읍을 정하고 470여 년간 한성백제의 수도로 위상을 떨치던 지역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한수의 쟁패를 놓고 삼국이 각축을 벌이던 역사의 현장 이기도 하다. 고려시대에 접어들어선 후삼국을 통일하고 태조의 개국을 도와 새로운 나라의 기틀을 조성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광주의 대호족 왕규가 세거를 이루었던 곳으로 추정하고 있다. 성종때(983년)에 이르러서는 지방통제를 위한 지방관제를 실시하여 지방행정상 요지에 12목(광주,양주,충주,청주,공주,진주,상주,전주,나주,송주,해주,황주)을 설치하였는데 광주도 12목의 하나로서 읍치가 바로 하남의 춘궁동(고골) 이었다. - ( 하남시 )
중간 멀리 한강 건너 팔당의 예봉산(678.8m) & 오른쪽의 하남의 검단산(657m)
남한산성 동영상
중간 금암산 (321.2m)
나무를 지키는 금림조합
" 남한산성의 귀중한 숲을 지켜 후손에게 "
남한산성의 산림은 매우 잘 보존되어온 아름다운 생태유산입니다. 이는 오래전부터 산성 내의 숲을 보호하고자 하는 산성 주민들의 의지가 반영되어 있는데요, 일반적으로 근대화 이전의 생활연료는 나무였기에 20세기 초반 대부분 산들은 나무가 없는 민둥산이 도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나 산성 안의 나무들은 예외였는데, 마을 주민들이 '금림조합'을 만들어 순산원을 두고 도벌을 막아 보호한 덕택에 지금처럼 건강하게 살아남았다고 합니다. 금림조합은 남한산성의 숲을 보호하기 위해 산감(山監: 산림 감시원) 50명을 선출하여 매일 6명 씩 교대로 산림을 감시토록 하였습니다. 산감은 극빈자 계층에서 선발하였기 때문에 숲을 보호하는 것과 동시에 취약계층의 구제에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남한산성 금림조합의 노력은 이후 2016년까지 90년에 가깝게 지속되어 왔으며, 덕분에 남한산성은 귀중한 생태문화자원을 잘 보존하여 후손에게 전할 수 있게 되었답니다.
<- 전승문 300m, -> 우익문 700m.
전승문 (북문)....
공사 중 ( 남한산성 북문 해체보수공사: - 공사기간; 2021.04.21 ~ 2022. . . - 발주자: 남한산성 세계 유산센터)
전승문(북문): 남한산성에는 동.서,남.북에 4개의 대문이 있는데, 북문은 병자호란 당시 성문을 열고 나가 기습공격을 감행했던 문이다. 싸움에 패하지 않고, 모두 승리한다는 뜻에서 '전승문'이라고도 하였다. 당시 영의정 김류의 주장에 의해 군사 300여명이 북문을 열고나가 청나라 군을 공격하였으나, 적의 계략에 빠져 전멸하고 말았다. 이를 '법화골 전투';라고 하는데,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서 있었던 최대의 전투이자 최대의 참패였다. 정조3년(1779) 성곽을 개보수할 때 성문을 개축하고 이름을 붙여 전승문(全勝門)이라 한 것은 그 때의 패전을 잊지말자는 뜻이었을 것이다. 선조 때의 기록을 보면 산성 내에 동문과 남문, 수구문의 3개의 문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북문은 인조2년(1624)에 신축된 성문이라고 생각된다.
세계유산 남한산성 종합안내판
'소풍'
<- 2.9km 지화문(남문), <- 0.1km 전승문(북문), -> 숭렬전 0.5km, ↑ 종로 0.3km
남한산성 근처 음식점:
전승문(북문) 150m ↓, 송림정 30m ↓ , 동촌 10m ↓ , 국청사 800m ->, 한경직목사 우거지 650m ->, 숭렬전 500m ->, 계곡산장 300m ->, 카페 작은 숲 250m ->, 영락수녀원 200m ->, 용마루 140m ->, 석촌 100m ->, 돌집 50m ->, 먹거리창고 30m ->, 백송식당 20m ->, 카페 남한산성 ->
'아말피' coffee
'청와정' cafe & 팬션
커다란 맹견들이 몇 마리 집을 지키고 있다.
산성마을 종로 로타리
남한산성 산성리 마을 내력:
남한산성내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것은 아주 먼 과거로 올라가겠지만, 본격적으로 대규모의 취락이 형성된 것은 인조5년(1627)에 광주부의 읍치를 산성으로 옮기고 나서부터라고 하겠다. 현재남한산성 내 마을의 행정구역은 ‘산성리’이며, 1914년 일제가 조선의 지방행정구역을 대대적으로 개편할 때부터 이처럼 불리기 시작하였다. 산성리 마을은 조선후기 광주유수부 시기에 두 개의행정 단위로 나누어져 있었다. 광주 행궁에서 동문에 이르는 도로를 경계로 하여 남쪽은 남동, 북쪽은 북동으로 나누어진 것이다. 그러다가 1910년경 산성내 마을은 군내면 광주읍에 속하게 되고, 마을은 광주읍 동부, 광주읍 서부, 광주읍 남부, 광주읍 북부, 광주읍 중부 등 5개의 행정단위로 나누어졌다. 그리고, 1914년 광주읍 5개 마을이 중부면 산성리로 통합되어 오늘에 이른 것이다. 1917년 광주군청이 산성 안에서 경안으로 이전하면서, 300여 년간 화려한 군사·행정 중심지였던 남한산성내 산성리 마을은 몰락하기 시작하였다. 산성리 마을은 풍부한 농경지가 있는 곳도 아니었고, 행정 중심지로서의 기능만을 수행한 곳이었다. 따라서 광주군청과 함께 치안·체신기관이떠난, 교통조차 불편한 산촌 마을인 산성리는 주민들이 생계조차 유지하기 어려웠다. 1,000여호 4,000여 인구를 자랑하는 산성리 마을 인구는 감소하기 시작하였다. 많은 주민들이서울과 광주, 여주, 이천, 양평 등지로 떠났고, 해방과 한국전쟁을 전후한 시기에는 70∼80호로 줄어, 산성리는 한적한 산촌 벽지로 변하였다. 한편 산성리 마을에는 산성 내 소나무를 보호하기 위한 금림조합이 결성되어 1945년까지 활동하였다. - 경기도 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
남한산성 역사 테마길:
남한산성 역사 테마길은 세계유산이며 도립공원인 남한산성의 가치를 체험할 수 있도록 테마별로 구성된 탐방로입니다. 국가지정 사적 제57호인 남한산성과 제480호인 남한산성 행궁을 비롯한 수많은 문화재가 잇으며, 백제 시조 온조왕, 병자호란 등 많은 역사적 의미를 간직한 장소입니다. 탐방객은 관심분야와 여건에 맞는 코스를 선택하여 체험할 수 있습니다.
- 장수의 길 1코스:
1코스 장수의 길은 세계유산 남한산성이 가지고 있는 방어요새의 특징들을 살펴볼 수 있는 탐방코스입니다. 방어시설의 중심이었던 존승문(북문), 우익문(서문), 자화문(남문)을 거닐며, 전쟁시 비상연락 및 적정 탐색을 위한 암문과 지휘를 했던 수어장대를 볼 수 있습니다. 장수의 길에서 세계유산 남한산성의 굳건한 모습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제1코스 (3.8km, 80분): 산성로터리- 북문(0.4km)- 서문(1.1km)- 수어장대(0.6km- 무궁화동산(0.3km- 남문(0.7km)- 산성로타리(0.7km)
- 국왕의 길 2코스:
2코스 국왕의 길은 조선시대 국왕의 공간이었던 행궁에서 시작되어, 침괘정을 지나 병자호란 시기 인조가 항복하러 성문을 나간 서문을 아우르는 탐방코스 입니다. 국왕이 행차하여 머물렀던 남한산성 행궁, 백제시조 온조왕 사당인 숭렬전, 인조 관련 이야기가 전해지는 침괘정과 우익문(서문)을 볼 수 있습니다. 국와의길에서 잘 가꾸어진 소나무 숲길을 거닐며 세계유산 남한산성의 시원한 자연환경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2코스(2.9km, 60분): 산성로터리- 영월정(0.4km)- 숭렬전(0.2km)- 수어장대-(0.6km) 서문(0.7km)- 국청사(0.1km)- 산성로타리(0.9km)
- 승병의 길 3코스:
3코스승병의 길은 남한산성을 만들 때 부터 전쟁시기 남한산성을 지켰던 승병들의 생활을 알아볼 수 있는 탐방코스 입니다. 산성의 수축과 유지를 위해 승병이 머물렀던 장경사와 망월사와 남한산성의 외성인 봉암성을 볼 수 있습니다. 승병의 기레서 사찰을 거닐며 세계유산 남한산성 사찰의 고즈넉한 모습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3코스(5.7km,120분): 남한산성 세계유산센터- 현절사(0.1km)- 벌봉(1.8km)- 장경사(1.5km)- 망월사(1.1km)- 지수당(1.0km)- 남한산성 세계유산센터 (0.2km)
- 옹성의 길 4코스:
4코스 옹성의 길은 남한산성의 약점을 보완하고자 했던 선조들의 고민을 느낄 수 있는 탐방코스입니다. 적 대포에 대응한 방어시설이었던 제1남옹성, 제2남옹성, 제3남옹성을 볼 수 있습니다. 옹성의 길에서는 굳건한 남한산성의 성벽과 양생화를 비롯한 아름다운 자연황경이 어우러져 있어 세계유산 남한산성의 평화로운 모습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4코스(3.8km, 80분): 산성로터리- 남문(0.7km)- 남장대터(0.6km)- 동문(1.1km)- 지수당(0.5km)- 개원사(0.3km)- 산성로타리 (0.6km)
- 산성의 길 5코스:
5코스 산성의 길은 '하늘이 만든 성'으로 알려진 남한산성의 성벽을 두루 볼 수 있는 탐방코스 입니다. 남한산성을 지키는 성벽을 따라 암문과 치성 등 방어시설물을 볼 수 있습니다. 산성의 길에서 남한산성 성벽의 경관과 성남, 하남, 광주의 경관을 모두 볼 수 있어 세계유산 남한산성의 다채로운 모습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5코스(7.7km, 200분): 남한산성 역사관주차장- 동문(0.6km)- 동장대터(1.1km)- 북문(1.6km)- 서문(1.1km)- 수어장대(0.6km)- 영춘정(0.3km)- 남문(0.7km)- 동문 ( 1.7km)
세계유산 남한산성
남한산성 옛길 종합안내
로터리
" 남한산성 내의 기준점 "
남한산성 안에는 핵심 간선 도로망이있던 봉화로가 남문과 동문을 통해 이어져 있으며, 남한산성 중심지에서 한양도성의 동쪽(현재 하남시)과 남쪽 (송파, 마천)으로 바로 이어지는 중요 노선들이 한 점을 중심으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바로 산성 로터리입니다. 남한산성에서 동으로 몇리, 남으로 몇리 이렇게 이렇게 거리를 측정하는 것도 바로 이 로터리를 기준으로 정하게 됩니다. 행궁의 바로 옆에 위치한 일종의 랜드마크와도 같아서 이곳을 왕래하는 주민들의 심리적 중심적 역할을 합니다. 남한산성 내에 위치한 마을이 산성리인데, 산성리 주민들은 로터리에서 우(북 또는 서)로 얼마를 가면 행궁이 있고 아래(동 또는 남)로 얼마를 가면 관아가 있고 방앗간이 있고 장터가 있다는 식으로 심리적 위치를 정하곤 합니다. 주민들 뿐만 아니라 남한산성을 찾는 많은 시민들은 지금도 남한산성 안에서 특정 지점을 말할 때 이 로터리를 기준으로 이여기를 하곤 합니다.
<- 지화문 700m, 전승문 400m ->
남한산성 인화관 방향
남한산성 로터리 주차장:
▶주차장 이용요금 (후불): ( 남한산성 로터리 주차장, 남한산성 남문 주차장, 남한산성 중앙주차장 )
- 이륜차, 1000cc 미만 승용차 ( * 스파크, 레이, 모닝 등 ):
평일: 1,500원, 공휴일 2,500원, 월정기료: 25,000원.
- 100cc이상 승용차. 소형 승합차(15인승 이하), 소형화물차(1톤이하):
평일: 3,000원, 공휴일 5,000원, 월정기료: 50,000원.
- 중.대형 승합차, 화물차 (공휴일은 주차불가):
평일: 6,000원, 10,000원.
* 20:00 - 09:00 무료.
* 30분 이내 출차 무료.
* 남한산성 주차장 감면규정;
- 무료: 국빈 및 외교사절단과 그 수행자/ 공무수행 출입자/ 국가유동자 등/ 한복 등 전통의상 착용자/ 군인 등.
- 주차사용료 50% 감면: 18세 미만 아동인 자녀 2명 이상 가족/ 성실납세자 선정된자. 남한산성 상가 중 주민자치평가위원회 선정 상가 이용객.
천흥사 동종 & 침괘정 방향
남한산성 행궁 방향
▶ 남한산성 행궁:
행궁(行宮): 왕이 도성을 떠나 행행(行幸)할 때 임시로 머무는 곳으로, 전란시·능행시·휴양 등의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조선시대에는 수원행궁, 강화행궁, 전주행궁, 의주행궁, 양주행궁, 온양행궁 등 10여개 이상의 행궁이 있는데, 그 중 남한산성행궁은 전쟁이나 내란 등 유사시 후방의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한양 도성의 궁궐을 대신할 피난처로 사용하기 위하여 인조 3년(1625) 남한산성 수축과 함께 건립되었다. 실제로 약 10년 후인 1636년 병자호란이 발생하자,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하여 47일간(1636.12.14~1637.01.30) 항전하게 된다. 이후 숙종·영조·정조·철종·고종이 여주에 있던 효종릉(寧陵) 등의 능행길에 머물러 이용하였다. 남한산성행궁은 종묘(좌전)와 사직(우실)을 두고 있는 유일한 행궁으로 일반적인 행궁에 머물지 않고 유사시 임시수도의 중요한 역할을 하던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국가사적480호이다. - < 남한산성 도립공원 >
* 관람시간: 하절기(04월~10월); 10:00 - 18:00, 동절기(11월~03월): 10:00-17:00
* 남한산성 행궁 관람 요금:
- 어른(만19세~만64세): 2,000원
- 어른단체(30인이상): 1,600원
- 청소년(만7세~만18세): 1,000원.
- 청소년단체(30인이상): 800원
- 무료: 만6세이하 어린이, 만 65세 이상의 노인, 경기도민, 등등
== < ▼ 2021.03.02 photo start; 남한산성 행궁 > ==
한남루: 남한산성 한남루는 유수 홍억(洪憶)에 의해 정조 22년(1798)에 세워졌으며,
왕이 머무는 행궁의 하궐 앞에 자리한 외삼문 주 출입구이다.
외행전...외행전은 하궐의 중심 건물로 인조3년(1625)에 준공되었다.
정면 7칸, 측면 4칸으로 상궐 내행전과 동일한 전체 28칸의 건물이았다.
바닥면적이 142㎡로 내행전 167 ㎡ 보다 적고 내행전에 비해 6m정도
낮은 곳에 지었다. 병자호란 당시 병사들에게 음식물을 베푼 호궤를 이곳에서
행하였고, 한봉에서 청나라군이 홍이포를 쏘아 포환이 외행전 기둥을 맞혔다는
기록이 있다. 죄승당이 지어지기 전에는 광주부 유수 집무실로 사용되었다.
현재 외행전은 2010년에 중건 된 것으로, 건축 당시 통일 신라시대 유구가
확인되어 건물지와 기와를 쌓은 곳 일부를 보존하고 있다.
내행전...상궐 내행전은 왕이 잠을 자고 생활하던 공간이다. 정면 7칸 측면 4칸 전체
28칸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간운데 4칸은 대청으로 되어있고 좌우 2칸은 온돌방과 마루방이다.
내행전 위 공포는 새의 날개처럼 된 부재를 두개 겹쳐쌓은 이익공 형식으로 행궁내 건물 중
가장 격식이 높다.
내행전 임금님 용상
내행전 내부...일월오악도 병품이 둘러있다. 병풍은 평소에는 접어두었다가 임금이
주석할 때만 펴서 세운다. 혹시 자객이 숨어 있을 수도 있어서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궁궐이나 행궁에서 문을 3개 통과 해야만 임금의 얼굴을 볼 수 있는데, 이것도
침입자를 방어하기 위한 수단 아닌가 한다. 중국 황제의 경우 5개의 문을 통과해야 한다.
== < ▲ photo end.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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