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남한산, 사기막골
- ( 2023.05.24 )
오랜만에 <남한산성 - 남한산 - 성남 사기막골> 코스로 산행을 해보았습니다. 옛날 사기막골은 조용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빌라촌이 되어버린 것 같았습니다. 옛날 사기막 계곡에 물놀이 수영장이 있고 계곡미가 살아있을 때가 좋았던 것 같습니다. 집에서 가까운 곳인 남한산성은 산성역 2번 출구 앞에서 9번 버스를 이용하면 쉽게 오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더운 날씨에 가까운 남한산성을 가보았습니다. 남한산성으로 들어가면 성길을 따라 청량산에 있는 수어장대를 가보아야 제 맛을 느낄 수가 있는데, 오늘은 모두 포기하고 남한산 방향으로 산행 코스를 택했습니다. 남한산성 '남문 정류소' 에 내려 남문(지화문)을 통과하여 보호수가 있는 지점에서 산길을 시작하였습니다. 너무 숲이 우거져 조망이 트이지 않았지만 그늘에 시원한 산행을 할 수 있었습니다. 비스듬한 산 측면을 따라 가면 남한산성 제1옹성을 만납니다. 옹성을 조금 지나면 차도가 나옵니다. 이 차도는 남한산 통신대가 있는 지점까지 계속됩니다. 나는 차도를 따라 남한산 통신대 바로 아래 지점까지 갔습니다. 그리고 여기 삼거리 검복리 등 분기점에서 이배재고개 가는 방향의 나무 데크 길을 따라 계속 갑니다. 어느 정도 걸으면 고개가 나오는 데 이곳의 또 다른 분기점에서 사기막골을 가기 위해 황송공원 방향으로 오른쪽 계곡방향으로 직진하여 내려갑니다. 그리고 어는 정도 산길을 내려가면 황송공원, 사기막골, 남한산 분기점이 나오게 되며 이곳에서 산 아래 사기막골 방향으로 내려섰습니다. 계곡길은 반질하게 넓고 깨끗히 잘 정비되어 있었습니다. 계곡을 따라 내려서다 다시 분기점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왼쪽 방향으로 계속 하산하게 되면 사기막골입니다.
오늘 이 코스를 산행하며 검단산 통신대 가는 자동차 도로 옆에 서 있는 '병자호란 이야기' 설명판들을 읽으며 그 당시의 남한산성에서 청나라와 싸우면서 47일간 사투를 벌이며 일어난 일들을 읽으며 너무 가슴이 미어지는 듯 했습니다. 이런 좋은 설명판은 남한산성이 가지고 있는 비극의 현장이자 역사의 산증거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아쉬운 점은 이런 좋은 이야기 설명판이 왜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남한산의 외진 찻길 곁에 설치해 놓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들을 옮겨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남한산성 종로의 잔디밭에 세우면 탐방객들과 어린 후손들이 읽고 우리의 비극적 역사를 배우게 될 것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남한산성 (사적 제57호):
1 남한산성 행궁, 2 수어장대, 3 숭렬전, 4 청량당, 5 현절사, 6 침괘정, 7 연무관, 8 지수당, 9 장경사, 10 망월사, 11 개원사, 12 제1남옹성, 13 제2남옹성, 14 남문(지회문), 15 서문 (우익문), 16 연주봉옹성, 17 북문(전승문), 18 동문(좌익문), 19 장경사신지옹성, 20 동장대터, 21 봉암성, 22 벌봉
남한산성은 청량산을 중심으로 북쪽으로 연주봉, 동쪽으로 벌봉과 한봉을 연결한다. 해발 500m 내외의 자연지형을 따라 둘레가 12km가 넘는 성벽을 구축하여 많은 병력으로도 쉽게 공략할 수 없는 지리적 여건을 구비하고 있다. 동아시아의 성곽 건축술의 원형과 시대별 발달을 잘 보여주는 남한산성은 672년 신라 주장성으로 부터 시작하여 1624년 본격적인 축성이 이루어졌으며, 19세기에 이르기 까지 지속적으로 개수축이 이루어졌다. 특히, 남한산성은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 당시 청 태종의 10만이 넘는 대군에 맞서 인조가 47일간 항전하였던 전쟁터였으며, 동아시아 명청 교체기에 힘의 각축장이었다. 17세기 남한산성 축성과 광주유수부 설치는 국토 방어와 주민 거주의 개념을 통합한 '산성거주론'을 실천한 처음이자 마지막 사례이다. 남한산성은 인조 2년(1624)에 축성한 이후 왕실의 보장처로서 역할을 하며, 300여년 넘게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경영한 세계사적으로 보기 힘든 초대형 산성의 사례가 되었다. 하지만, 1896년 을미의병의 거점이 된 남한산성은 1907년 일제에 의해 많은 건물이 파괴되었으며, 1917년 성내에 있던 광부군청이 산성 밖으로 이전하면서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1954년 국립공원으로 지정, 1971년 도립공원으로 지정으로. 남한산성은 정부에 의해 체계적으로 관리되기 시작하였다. 유원지로 알려졌던 남한산성은 1999년 부터 시작된 경기도의 남한산성 복원 사업으로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고, 2014년 6월에 1439번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 산 책 : 걸음수 8,528 steps, 거리 5.7 km, 소모열량 299 kcal, 소요시간 01:30 hrs, 속도 3.6 km/h, 기온 24℃.
▶ 코 스 : 남한산성 남문(지화문) - 님한산성 제1옹성 - 남한산 - 대원사 - 사기막골.
▶ 남문 -> 남한산:
남한산성 남문 터널 방향
비석숲
남한산성비석군: (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 114-1번지 소재 )
성 내에는 18~20세기 무렵에 설치된 39여기의 비석이 있다. 이 중 본 부지 (남문진입로) 내로 남한산성 행궁 복원 사업에 따라 이전된 11기와 현 위치에 보존되어 있던 19기를 포함한 총30기의 비석을 한곳으로 모아 남한산성을 방문하는 탐방객들에게 옛 선현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후대에 소중히 전승될 수 있도록 비석을 한 곳으로 옮겨 정비해 놓았다. 이곳에 있는 비석은 역대 광주유수(廣州留守) 및 수어사(守禦使), 부윤(府尹), 군수(郡守)의 비로서 재직시 백성들을 정성스레 돌봐 치정을 잘 했거나 사랑을 베풀어 선정을 한 분들에게 백성들이 그들을 추념하여 새운 비로서 광주유수.영의정을 지낸 심상규(沈象奎)의 비를 포함 30기의 비석이 이곳에 위치하고 있다.
태원 (台原)...
세계유산 남한산성 종합안내판
1코스: 산성로터리- 북문- 서문- 수어장대- 영춘정- 남문- 산성로타리 ( 3.8km, 1시간 20분 )
2코스: 산성로터리- 영월정- 숭렬전- 수어장대- 서문- 국청사- 산성로타리 ( 2.9km, 1시간 )
3코스: 남한산성 역사관주차장- 현절사- 벌봉- 장경사- 망월사- 지수당- 남한산성 역사관주차장 ( 5.7km, 2시간 )
4코스: 산성로터리- 남문- 남장대터- 동문- 지수당- 개원사- 산성로타리 ( 3.8km, 1시간 20분 )
5코스: 남한산성 역사관주차장- 동문- 동장대터- 북문- 서문- 수어장대- 영춘정- 남문- 동문 ( 7.7km, 3시간 20분 )
지화문 (남문)
남문 앞 이정표:
<- 1.5km 수어장대, <- 2.1km 우악문(서문), -> 종로 0.7km.
남문 南門.至和門
남한산성에는 동.서.남.북에 4개의 대문이 있는데, 남문은 남한산성에 있는 4대문 중 가장 크고 웅장한 중심문으로 현재에도 출입이 가장 많은 문이다. 선조 때의 기록을 보면 동문, 남문, 수구문의 세 문을 수축하였다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남문은 인조 2년(1624)수축되기 이전 부터 이미 있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남문은 정조 3년(1779) 성곽을 보수할 때 개축하며, 지화문(至和門)으로 이름이 붙여졌으며 4대문 중 유일하게 현판이 남아있는 문이다. 병자호란으로 인조가 처음 남한산성에 들어올 때 바로 이 문을 통해서 들어왔다.
지화문 (남문)
정조3년 성곽을 보수 할 때 '지하문'이라 칭하였고 남한산성 4대문 중 가장 크고 웅장한 중심문이다. 유일하게 현판이 남아있다. 또한 현재는 성남으로 통하는 관문역할을 하고 있으며, 성문앞에 식재된 (350년 수령, 성남시 보호수) 느티나무와 함께 문화와 역사가 살아숨쉬는 시민의 역사터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다. - 성남시.
성남 누비길 노선 안내
검단산 길
성남 누비길을 일주합시다.
울창한 숲에서의 등산은 신체리듬을 회복시키고 산소공급을 원할히 하여 운동시경을 단련시키는 등 인체건강에 유익합니다. 시민 여러분의 건강과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성남누비길을 일주해 봅시다.
누비길 코스:
1구간: 남한산성길 7.5km ( 4시간 )
2구간: 검단산 길 7.4km ( 3시간 30분 )
3구간: 영장산 길 9.7km ( 4시간 30분 )
4구간: 불곡산 길 8.8km ( 4시간 )
5구간: 태봉산 길 10.7km ( 4시간 30분 )
6구간: 청계산 길 8.5km ( 4시간 30분 )
7구간: 인능산 길 9.5km ( 4시간 )
> 검단산 길:
검단산은 태백산맥의 철령(鐵嶺) 부근에서 분기하여 서울 부근에 이르는 광주산맥의 지맥으로서 남한산성과 연결되는 산줄기를 이루며, 높이는 534.7m이다. 경기도 성남시 동쪽으로 광주시와 경계를 이루며, 전체적으로 '凹(요)'자 모양의 산지를 형성한다. 이 산을 중심으로 하는 성남시의 동쪽 산지는 남쪽으로 갈 수록 해발고도가 낮아지며 완만한 산이라 하여 그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 산성역 - 불망비 - 남문(지화문): 3,7km
검단산길 2코스:
남문(지화문) - 1.0km- 산림초소 - 1.4km - 검단산 정상 (536.4m) - 1.4km - 만수천 약수터 - 0.7km - 망덕산 정상 ( 500.3m ) - 0.5km - 형제봉 정상 ( 435m ) - 0.8km - 이배재고개 - 1.8km - 갈마치고개.
누비길 검단산길 구간...."여기부터 제2구간입니다. "
호국정신과 선비정신이 깃든
남문 앞 역사터 안내
- 남한산성은 한성 백제시대의 성산이요 진산의 개념으로 백제의 시조 온조대왕의 사당 숭렬전(경기도유형문화재 제2호)이 있는 곳이다.
- 남한산성은 통일신라시대에는 주장성(晝長城) (일장(日長)산성)으로 불렀으며 한강유역의 중요 산성으로 발전하였다.
- 고려시대에는 몽고군의 침입을 물리친 국방의 요새지 이었다.
- 조선왕조 제16대 인조임금 원년(1623)에 성의 축성을 시작하여 1826년에 완성 (본성의 둘레가 9.05km)하니 남한산성은 경도보장지(京都保障地)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 남한산성은 주봉인 청량산(497.8m) 을 중심으로 4대문과 18암문을 완성하고 성내에는 행궁을 비롯하여 수어장대 등 각종 문화유적이 남아있고, 현재는 경기도 도립공원(국가사적 제57호)으로 성남시, 하남시, 송파구, 광주시 등 4개 지방자치 단체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 특히 남문은 성의 서남쪽 곡저부의 해발 370M 지점에 위치하여 있으며 정조 3년 성곽을 개보수할 때 개축하여 지화눈(至和門)으로 칭하였고, 4대문 중 가장 크고 웅장한 중심 문이며 유일하게 현판이 남아있으며 성남으로 통하는 관문 역할을 하는 문이다.
- 인조 14년에 청태종의 침공(병자호란)으로 인조 임금이 이곳으로 피신하여 45일간 항전한 유서 깊은 곳이다.
- <남문 앞 역사 터>는 성남시가 문화재청과 협의를 거쳐 2007. 5.15부터 약 6개월간의 공사로 2007.11.19 준공하였으며, 성문 앞에 식재된 380여년 된 느티나무와 원형이 가장 잘 보전된 것으로 평가받는 남문은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역사 공간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다.
- 성남시 보호수인 느티나무(4주)는 성곽방어의 특성을 고려하여 남문을 시각적으로 차폐하기 위하여 식재하였을 가능성과 성문 주변이 평상시 왕래가 많고 지형상 경사가 심하여 우수 시에 토양유실을 막기 위해 식재하였을 것으로 추론되는 역사터다. - 성남시
남문(지화문) - 백련사 - 주 등산로 - 산성유원지 입구 - 검단산 - 시계 등산로 - 남문 (지화문)
보호수 느티나무
수종: 느티나무 (약 360년), 지정일자: 2006.6.20
수고: 14~16m, 나무둘레 0.9~1.37m
소재지: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은행동 산 132-2
연혁 및 전설: 남한산성 성곽은 인조 4년 (1626년)에 준공되었으며 느티나무(보호수)는 당시 성곽사면 토양유실 방지 및 차폐의 목적으로 식재된 것으로 추정된다. 남한산성 순환도로 터널이 개통 된 후 폐도 부지가 된 남문 앞 느티나무 주변을 2006년 재정비 및 느티나무 생육환경 개선 후 4주를 보호수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 성남시.
至和門 (지화문; 남문)
성남 누비길
은행동과 마을 유래
은행나무가 있는 마을
은행동 동명은 은행정(銀杏亭)에서 유래래한다. 은행시장 뒷편에 수고 30m, 둘레 6m, 수령 약 300년 가량의 은행나무가 있는데 여름이면 정자나무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은행정(銀杏亭)이라 불리 웠는데 으능쟁이.은행쟁이라고도 한다. 은행동(銀杏洞)은 바로 이 은행나무에서 그 명칭이 유래한다.
나뭇그늘 시원한 쉼터..
남한산성 제1옹성
남한산성 제1옹성
↖ 1.8km 검단산, ↘ 지화문(남문) 0.8 km, -> 남한산성 유원지 2.0km, -> 남한산성유원지(약사사) 1.2km.
<- 2.18 검복리 마을회관, ↖ 11.65km 목현1동 마을회관, ↖ 5.96km 불당리 버스정류장, ↖ 3.66km 검복리 버스정류장,
-> 남한산성 0.35km.
불당리, 검복리 방향
검단산 가는 길 동영상
<- 0.85km 남한산성, -> 목현1동 마을회관 11.15km, -> 불당리 버스정류장 5.46km, -> 검복리 버스정류장 3.16km
쌈지공원 이용안내....
도저히 공원이라곤 볼 수 없는 곳으로 아무도 읽어보지 않고 지나칠 곳에 병자호란 설명판이 서 있었다. 참으로 딱한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자동차 길을 따라 하산하거나 등산만 하지 무슨 쉼터도 아니고, 공원같지도 않은 이런 곳에 굳이 들어가 설명판을 읽는단 말인가 의아했다.
● 병자호란 이야기:
병자호란 이야기
1636年 (丙子) 12月 17日
인조(仁祖)왕의 통한
신하들이 눈물 흘리며 다시 왕의 피신을 권하자 왕도 울음섞어 말씀하시길, '나를 따라 성에 들어온 이들을 죽을 땅이 두고 장차 어디로 간단 말이오? 경들이여, 경들이여 어쨌으면 좋겠는가? 반정(反正)하는 사업을 이루어 임금 자리에 오른지가 이미 14년이나 되었건만, 이 지경에 떨어질 줄이야 생각이나 했겠소? 그러나 여러분에게 무슨 잘 못이 있겠소. 나의 우매함으로 이 망극한 변을 당하였구려!'
이서(李曙): 어제 성첩에 배치된 군대를 둘러보았더니 신에게 대장을 맡기면서 주신 군사라곤 천사백 뿐인데 배당된 성첩은 西門에서 시작해 연주봉을 거쳐 망월봉에 이르는 사이에 두 암문(暗門) 과 두 장대(將臺)가 잇어 거의 오만여첩에 이르니 새 군대가 도착하는 대로 꼭 보태주셔야 겠습니다. 오늘 아침에 胡兵(호병)이 올라왔기에 신이 군사들에게 십보내에까지 오거든 쏘지, 그렇지 않거든 결코 헛된 화살을 날리지 말라 하였사온데 저들이 백보 거리까지 와 정세를 보고는 허둥대며 가버려서 걱정되는 것은 야습과 식량공급이옵니다.
병자호란 이야기
1636年 (丙子) 12月 18日
왕이 교서를 내리다 (哀痛敎)
이제 군신상하(君臣上下)가 함께 성을 지키며 화의(和議) 또한 끊기었으니 오직 싸움이 있을 뿐이요, 승전한다면 상하가 모두 온전 하겠지마는, 이기지 못한다면 모두가 함께 망하는 것이라. 오직 마땅히 죽음 가운데서 생을 구하고 위험 가운데 안정을 얻자니, 모두가 마음과 힘을 합쳐 몸을 떨쳐 적은 당한다면 적도 외로운 군대로 기이 들와왔다가 그 강한 것도 구그러들며 사방에서 구원병이 잇달아 들어와 하늘이 옛날 송나라를 돕듯이 전승할 수 있을 것이라. 바라건데 함께 이 성안에 있는 이들은 웃람은 아래 사람 보호하기를 아비가 자식 감싸듯 하고 아랫 사람은 윗 사람 아끼기를 자식이 제 부모 위하듯 래야겠으니, 그렇게 한다면 군사는 비록 적더라도 많은 무리를 당해낼 수 있을 것이라.
병자호란 이야기
1636年 (丙子) 12月 23日
치열한 전투
왕: 오늘 출전한 형편은 어떠하오?
이서: 연주봉에서 가장 잘 싸워 세 번 험한 곳을 뺏었으나 환약이 떨어졌기 때문에 퇴각을 면치 못했사옵니다. 그러나 우사파총 洪順性(홍순성)이 싸운 곳에서는 적진을 차지해 적의 물자를 송두리째 빼앗았고 적병은 시체를 끌고 돌아갔는데 피가 흘러 내를 이루었다고 하옵니다. 군병들이 하도 배고파하기에 신에게 있는 農牛(농우) 두 마리를 오늘 左右司(좌우사)에 나눠주어 군사들에게 먹이겠사옵니다. 오랑케의 군이 강하다고 하나 우리 군 또한 무적이옵니다. 곧장 뚫고 虛(허) 를 지지쳐 간다면 저들이 어지 꺼리지 않으오리까?
병자호란 이야기
1636年 (丙子) 12月 24日
(오후에 얼음비가 내리붓듯이 왔다.)
왕의 기원
왕은 남한산성에 계시어 황제에게 遙拜(요배) 하는 望闕禮(망궐례) 거동을 하시었다. '이 외로운 성에 들어와 믿는 바는 하늘이 온대 얼음비까지 갑자기 내리어 모두가 장차 얼어 죽을 지경이니, 내 한 몸 죽어 아까울 것이 없사오나 백관과 만백성이 무슨 허물이 있사오리까? 하늘께서 조금이라도 날이 들게 하셔서 우리 만민을 살려주옵소서."
이어 땅에 엎디어 슬피 우시고 또 빌기를 한낮이 가깝도록 그러시니, 으복이 몽땅 젖어 몸에 찰싹 붙도록 울며 이원하셨다. 여러 신하가 나아가 御衣(어의)를 부여잡고 일으켜 세우려 들기를 한 동안이나 한 끝에 비로소 일어나 네 번 절하고 물러나시니, 눔물과 빗물이 양볼로 뒤섞어 흘러 뵙는 이는 모두가 목이 메어 울음을 삼켰다.
병자호란 이야기
1636年 (丙子) 12月 29日
(조금 따뜻해 짐)
마치 버들 꽃잎처럼
청군이 쏜 화살이 우리 군의 등 뒤와 좌우 세ㅐ 방향으로 메뚜기 때처럼 덮쳐와, 우리 병사들은 시위 소리가 날적 마다 언덕에서 마치 버들 꽃 날리듯 떨어져 내리니, 시체는 구렁을 메꾸고 가졌던 병기는 산등에 널렸다. " 아아! 失石(실석)을 피하지 않고 몸소 士卒(사졸) 의 앞에 서야 모두의 죽을 힘을 얻을 수 있겠는데 어떻게 지휘자는 모조리 성 안에 있으면서 군졸들 더러만 나아가 죽을 힘을 내라고 할 수 있더란 말인가!"
병자호란 이야기
1637年 (丁丑) 1月 3日
和議(화의)를 결정하다
조선 국왕은 삼가 글을
대청국관온인성황제(大淸國寬溫仁聖皇帝)께 올리나이다.
小邦(소방)이 대국에 가슬려서 스스로 兵禍(병화)를 재촉하게 되어 몸을 孤城(고성)에 의지해 위험이 조석에[ 닥쳤기로 따로이 사신을 보내 속마음을 아뢰려 하였으나 병과(兵戈)에 가로막혀 스스로 통할 길이 없었사옵니다. 이제서야 황제께서 이런 곳까지 오셨음을 듣고, 기쁨과 두려움이 엇갈리옵니다..... 지난 해 봄 小邦臣民(소방신민) 의 식견이 얕고 좁아 명분에 얽매여서 끝내 사신을 화내어 돌아가게 하여 대국이 노여움을 범라였으나...... 무릇 지난 날의 일은 소방이 이미 그 죄를 아는 바라 만약에 丁卯年(정묘년) 하늘에 맹약했던 약속을 헤아리어, 저희 백성들의 목숨을 가엾게 여기사, 저희가 방침을 바꿔 스스로 새로워질 것을 받아들여 주신다면 마음을 씻고 섬기기를 오늘로 부터 시작하오리라.
병자호란 이야기
1637年 (丁丑) 1月 12日
(남풍이 일었다)
이대로 함락당할 것인가
이성에 들어온지 29일째건만 구원병은 전혀없고 식량부족 또한 심각하여 성 밖의 풀과 나무도 모조리 불타 남음이 없으며, 말들이 서로 꼬리털을 물어뜯고 군사들도 모두 오래지 않아 함락될 것으로 여겨 성을 넘어 적진으로 달려가는 자마저 연달아 생겼다.
병자호란 이야기
1637年 (丁丑) 1月 28日
척화신의 이별
윤 집, 오달제(尹 集, 吳達濟)가 압송당해 성 박으로 나갈 때 두 친구가 울며 작별하니, 그들은 웃으며 '나는 죽은 이를 조문한단 말은 들었어도 살았는데 조문한다는 소리는 듣지도 못하였네. 바라건대 여러분은 각자 잘 보존하여 우리 임금님 잘 모셔 옛 서울에 돌아들 가게.' 왕는 두 신하를 불러보고 목 놓아 우시었다. " 그대들이야 말로 나라 위해 몸을 바치는 충신들이다. 하늘이 종사를 내리지 않으신다면, 그대들이 노모와 처자를 보호해 돌볼 것이니 염려치 마라.
병자호란 이야기
1637年 (丁丑) 1月 29日
망월봉의 전투
성첩의 군졸들이 추위와 굶주림을 견디며 빙판에 앉고 서기를 이제 오십여일이나 되었건만 한 사람 원망하는 이가 없고 앞서 싸움에서는 사흘동안 탄환이 비같이 쏟아지고 성가퀴가 깡그리 무너져 몸을 숨길 곳이 없건만 오히려 두려운 기색 없이 끝까지 싸우려 하니 그 뜻은 참으로 가상하옵니다.
병자호란 이야기
1637年 (丁丑) 1月 30日
(햇빛이 없었다)
임금님,
우리 임금님, 우리를 버리고 가십니까?
날씨마저 슬픔에 잠겨 누른 안개가 사방으로 내리덮은 날, 오아과 세자각 남빛 帖(첩)을 입고 서문을 납시니 百官(백관)이 문턱에서 울며 전송하였다. 청 陳(진)에 사로잡힌 채 전하의 행렬을 바라보고 목 놓아 울며 울부짖는 이가 수만을 헤아리니 성내에 곡소리가 하늘에 사무쳤다.
청가 몽고 陳(진) 중에 우리나라 사녀로 붙잡힌 이는 그 수가 몇 만인지 모르겠는데 왕의 행렬을 보고 울부짖어 날뛰고 뒤뚱거리며 스스로 나는 어느 집 처자라고 외쳐대자 청인이 몽둥이로 마구 때렸다. 所波(소파) 언덕에 이르러 보니 적의 진 복판으로 한 단을 쌓았고 단 위에 비단을 깔아 金椅(금의) 를 놓고 淸帝(청제)는 그 위에 앉았다. 우리 임금을 시켜 세자와 정승 및 육판서를 거느려 예를 행하게 하였다. 이날 왕께서는 창덕궁에 듭시고, 백관도 모두 대궐안에 묵었다.
119 현위치 국가지점번호 다사 7211 4035
524고지
<- 검단산 1.0km, -> 지화문(남문) 1.7km
<- 한양 삼십리 누리길
<- 10.19km 목현1동 마을회관, <- 4.5km 불당리 버스정류장, <- 2.2km 검복리 버스정류장, ↙ 1.81km 남한산성,
-> 검단산 0.3km
역사.문화의 길을 걷다.
한양 삼십리 누리길은?
한양 삼십리 누리길은 경기도 광주시 목현동 ~ 남한산성 남문까지 총 12km (삼십리)로 조선시대 관원들의 군사 정보 전달과 지방 선비들의 과거길이며, 1636.12.13 ~ 1637. 1.30 (47일간) 청군과 결전에 조선 제16대 인조임금의 고뇌를 재현하였고, 2014년 6월 22일 세계문화유산으로 남한산성이 등재.지정됨에 따라 남한산성의 역사와 문화를 널리 알리고자 국토교통부에 공모하여 조성된 숲길입니다.
탐방구간 안내 (숲길 구간) - 총 12km
1코스 -- 문화산책길 (목현동 ~ 오전리) -- 2코스 -- 테마 숲길 (오전리 ~ 불당리) -- 3코스 -- 호국숲길 (불당리~검복리) -- 4코스 -- 역사숲길 (검복리~산성리)
▶ 하산 길 (-> 사기막골):
갈림길 이정표
<- 2.8km 지화문(남문), ↖2.3km 불당리, ↘ 검단산 60m, -> 이배재고개 2.6km, ->망덕산(왕기봉) 1.7km
여기에서 '↘ 오른쪽 계곡 방향' 으로 하산해야 사기막골 또는 황송공원으로 가는 길이다. 즉 검단산과 이배재.망덕산 가는 길 중간으로 내려 가야 한다. 이정표가 여기에는 없어 햇갈릴 수 있다. 물론 이재재고개 방향의로 가도 조금 가면 오른쪽으로 내려 가는 길이 나오게 된다.
쉼터 이정표;
<- 황송공원 2.0km, <- 성천약수 0.7km, -> 검단산.
↓ 사기막골
쉼터....이곳에는 편히 누울 수 있는 굴곡의 긴의자도 여럿 있다.
↑ 망덕산, 이배재고개 가는 길
계곡의 돌탑? 홍수로 물이 할키고 간 흔적이 보인다.
갈림길 이정표
↙ 0.7km 사기막골, ↙ 0.5km 대원사, ↗ 검단산 1.3km
운동 쉼터
사기막골 하산 길 동영상
119 국가지점번호 다사 7221 3886
<- 검단산 1.8km, -> 0.4km 사기막골 공원
대원사
대원사 종무소
이번 주말에 석가탄신일이니 절집에서는 일년 중 가장 바쁜 날이 될터이다.
↑ 검단산 17709m, <- 사기막골 500m, -> 대원사 50m
▶사기막골 근린공원
전통가마
토기인형 재현 제작과정:
1. 수비(흙정제하기) -> 2. 흙밟기 -> 3. 꼬박밀기 -> 4. 판성형(왼쪽), 흙가래성형(오른쪽) -> 5. 물래성형 -> 6. 정형(다듬기) -> 7. 조각(시문) 후 초벌구이(1차 소성) -> 8. 인료시문(그림그리기) -> 9. 시유(유약바르기) -> 10. 재벌구이 (2차 소성) 완성 후 불량 선별.
전통문화체험관
체험관에서 무엇을 만드는 일에 여러 사람들이 열중하고 있었다.
사기막골 근린공원 주차장 (주차료 무료)
사기막근린공원
사기막근린공원은 조선시대 민간별서 정원 형태를 바탕으로 사기막골의 지명유래를 담아
사기를 굽던 전통가마를 재현하고 주변의 자연과 전통정원이 어울리도록 조성하였습니다.
사기막골 근린공원
싱싱한 양배추
사기막골이 빌라촌으로 바뀌었다
사기막골 입구 ... 버스 종점 지구
연탄돼지갈비 600g 26,000원....예약문의 031-746-3223
사기막골 방향
버스 종점 (회차지점)
'영원무역' 버스 정류장 (정류장 번호: 06-135) .... 오늘의 종착점.
- 일반 3-1번:
<광주차고지 <-> 사기막골>, 배차간격 8-15분, 24대 운행 중.
- 일반 340번:
<판교대장로 동측 <-> 영원무역>, 배차간격 17-27분, 10대 운행 중.
- 마을 87번:
<성남동대형주차장 <-> 사기막골>, 배차간격 16-26분, 5대 운행 중.
- 마을 88번:
<차고지출발(경유) <-> 영원무역>, 배차간격 15-25분, 5대 운행 중.
- 마을 88-1번:
<성남동대형주차장 <-> 영원무역>, 배차간격 10-20분, 5대 운행 중.
- 일반 100번:
< 사기막골 <-> 가락시장.가락시장역>, 배차간격 150-160분, 1대 운행 중.
- 일반 220번:
<양원무역 <-> 한국학중앙연구원>, 배차간격 9-19분, 28대 운행 중.
- 일반 33번:
<사기막골 <-> 율동공원>, 배차간격 10-20분, 18대 운행 중.
- 일반 342번:
<영원무역 <-> 청계산옛골>, 배차간격 20-30분, 7대 운행 중.
- 일반 51번:
<사기막골 <-> 서울대뱡원>, 배차간격 5-15분, 31대 운행 중
- 직행 9800번:
<영원무역 <-> 지하철2호선 강남역(중)>, 배차간격 40-60분, 4대 운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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