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주여, 가을이 왔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길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놓으십시오.
들에다 많은 바람을 풀어 놓으십시오.
마지막 과실들을 익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
그들을 완숙케 하여
마지막 단맛이 진한 포도주 속에 스며들게 하십시오.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고독한 사람은 이후에도 오래 고독하게 살면서
잠자지 않고, 읽고, 그리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바람이 불어 나뭇잎이 날릴 때, 불안스레
이리저리 가로수 길을 헤맬 것입니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 (Rainer Maria Rilke; 1875 ~ 1926): 오스트리아 시인, 소설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보헤미아 왕국의 프라하에서 출생. 어린 시절 부모는 이혼했고, 고독한 소년 시절을 보낸 후 1886년 군사학교에 입학하였으나 몇년 후중퇴하였다. 1891년 프라하 대학에 입학하여 문학수업을 듣게 되었고, 그의 시인으로서의 출발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일찍부터 꿈과 동경이 넘치는 섬세한 서정시를 썼으나, 점차 시에 종교성을 부여하여 사랑과 고독 그리고 죽음에 대해서 고찰하는 시들을 써 내려갔다. 그의 시에서는 인간의 존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릴케의 시선을 찾아볼 수 있다. 릴케는 20세기 최고의 독일어권 시인 중 한 명이다. 철학자 니체와 시인 릴케가 사랑한 루 살로메란 14세 연상인 러시아 여인에 대한 운명적인 사랑 이야기는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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