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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구릅/나의 산행

② 2024 북한산계곡 단풍- ( 2024.11.04 )

by the road of Wind. 2024. 11. 6.

 2024 북한산계곡 단풍

- ( 2024.11.04 )

 

   새마을교 ~ 산영루  》:

 

새마을교

 

북한산성 (北漢山城)  

지정번호: 사적 제162호
지정일: 1968.12 .5
소재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 산 1-1(임)

북한산성은 북한산의 여러 봉우리를 연결하여 돌로 쌓은 산성이다. 길이는 11.6km이며, 내부 면적은 5.3 ㎢에 달한다. 북한산성은 축성 이후 한번도 전쟁을 겪지 않고 현재의 상태로 보존되고 있다. 북한산성를 쌓는 것에 대한 논의는 일찍부터 있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한양 도성의 배후에 산성을 쌓아 국난에 대비하자는 의견이 제기었지만, 당시에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실제 축성은 1711년(숙종37)에 이루어졌다. 논의 과정은 길었지만 성벽을 쌓는 데에는 단 6개월 밖에 걸리지 않았다. 성벽은 평지.산지.봉우리 등 지형에 따라 높이를 달리하였다. 축성 방법을 살표보면 계곡부는 온전한 높이로 쌓았고, 지형이 가파른 곳은 그 보다 낮게 쌓거나 여장(女墻)을 올린 곳도 있다. 봉우리 정상부는 성벽을 쌓지 않았는데 그 길이는 3km 이다. 특히, 성벽의 높이를 지형에 따라 달리 한 점, 성문의 여장을 한장의 돌로 만든 점, 옹성(甕城)과 포루(砲樓)를 설치하지 않은 점, 성을 이중으로 쌓은 점 등은 다른 산성과 구별되는 북한산성의 특징이다. 주요 출입시설로는 대문 6곳, 보조 출입 시럴로 암문 8곳, 수문 2곳을 두었다. 성곽지대에는 병사들이 머무는 초소인 성랑(城廊) 143곳이 있었다. 성 내부 시설로는 임금이 머무는 행궁, 북한산성의 수비를 맡았던 삼군문(훈련도감, 금위영, 어영청)의 주둔부대가 있었던 유영(留營) 3곳. 이 유영의 군사 지휘소인 장대(將臺) 3곳을 두었다. 또한 군량을 비축하였던 창고 7곳, 승병이 주둔하였던 승영 사찰(僧營 寺刹) 13곳이 있었다.   

1. 하창지, 2. 덕암사 목조보살좌상, 3. 원효대, 4. 상운사, 5. 3.1운동 암각문, 6. 북장대지, 7. 훈련도감유영지, 8. 산영루, 9. 선정비군, 10. 중흥사지, 11. 태고사 원중국사탑비 및 원중국사탑, 12. 중창지, 13. 봉성암, 13. 경리청상창지, 15. 행궁지, 16. 남장대지, 17. 금위영이건비비, 18. 금위영유영지, 19. 어영청유원지  

※ 참고: 북한산성 성곽 코스: ( 약12km, 8~9시간 )  

* 성곽 코스: 효자동마을회관 입구- 1km - 서암문(시구문) - 1.2km - 뷱문- 1.3km - 위문(백운봉암봉) - 0.9km- 용암문- 1.5km - 대동문 - 0.6km - 보국문- 0.6km - 대성문 - 0.4km - 대남문 - 0.3km - 청수동 암문- 0.9km - 가사당 암문 - 0.7km - 대서문- 1.9km - 산성탐방지원센터.   
* 대중교통: 구파발역 1번출구 -> 704 (효자동마을회관, 효자파출소 하차) -> 효자구판장 옆 마을길로 진입.
 

새마을교 앞 이정표

<- 2.6km 백운대, <- 1.2km 원효봉, -> 백운대  4.1km, -> 대남문 3.7km, -> 북한산대피소 2.5km

 

공원안내

↖ 0.9km 대동사, 0.8km 상운사, 0.1km 보리사, ↗ 부황사 1.9km, 용학사 1.5km,  국영사 1.0km, 법용사 0.4km, 대성암 3.2km, 봉성암 2.2km, 태고사 2.0km,  중흥사 1.8km, 노적사 1.2km, 거북암 0.4km, 선봉사 0.2km 

 

북한산 국립공원 자생식물원

 

북한동 향나무....품격; 시나무,  수종: 향나무, 수령: 350년 (1982.10.15 지정), 수고 7m, 나무둘레 2.3m 

 

보리사

 

선봉사

 

 

의상봉 방향

이곳까지 차량이 들어올 수 있다. 

 

이 이후 도로는 4륜 전동차를 이용하여 짐을 나르고 있었다. 

 

법용사.... <-  중성문 방향,  ↑ 국녕사, 의상봉 가는 길.

 

↑ 2.8km 대성암, ↑  1.8km 봉성암, ↑  1.6km 태고사, 
↑  중흥사 1.4km, ↑  용학사 1.1km, ↑  노적사 0.8km, -> 국녕사 0.6km 

↓ 1.9km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 ↑ 대남문 3.3km
-> 의상봉 1.1km, -> 국녕사 0,6km, -> 법용사

↑ 신영루 1km, 봉성암, 전성능대사부도 1.8km, 행궁지 2km, 태고사, 원중국사탑비 및 원중국사탑 1.5km 

 

소낙성 집중호우시 탐방객 주의사항

급격한 날씨변화(소나기, 집중호우, 천둥번개 등)는 예상치 못한 산행 사고의 원인이 됩니다. 사전에 산행할 지역의 날씨 등을 미리 알아 두면 안전 사고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낙뢰: 낙뢰가 칠 때 큰 나무 밑, 고지대에 위치한 지역은 낙뢰를 맞아 감전될 수 있습니다.
추락: 낭떨어지나 암벽 등 탐방로 이용시 주의하지 않으면 추락할 수 있습니다.
계곡 급류: 폭우로 불어난 계곡에 들어가거나 건너는 행동은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위험합니다.
산사태; 폭우기 내리면 비탈면의 바위나 흙이 흘러내려 고립될 수 있어 즉시 안전한 곳으로 대피해야 합니다.
낙석: 낙석주의 안내판이 보이는 탐방로를 이용할 때는 신속하게 통과해야 합니다. 

국립공원공단 북한산국립공원서무소    

 

앗, 중성문

 

중성문

 

중성문과 노적봉

 

중성문 中城門:

 

북한산의 노적봉과 중취봉 사이의 협곡에 쌓은 중성(重城)에 설치된 성문이다. 대서문에서 이곳에 이르는 지역은 지형이 비교적 평탄해 적의 공격에 취약한 구역이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이곳에 적의 공격을 이중으로방어할 수 있는 차단성(遮斷城)인 중성을 쌓았다. 중성 안쪽은 북한산성의 내성(內城)에 해당되는데, 이 내성에 행궁, 중흥사, 상창 등의 주요 시설이 집중되어 있었다. 중성문의 수비를 담당하였던 군부대는 대서문과 대남문의 수비를 맡았던 어영청 유영이었다. 
현재의 중성문은 석축기단인 육츅부, 그 위에 올려진 문루, 무지개 모양의 출입구인 홍예문을 갖춘 전형적인 대문의 모습을 하고 있다. 홍예 양쪽에 문루의 배수시설인 누혈樓穴이 하나씩 설치되어 있다. 바깥쪽 홍예 안쪽에는 문짝을 달았던 원형의 지도릿돌과  장군목을 걸쳤던 방형의 구멍이 남아있다. 규모는 대서문 보다 조금 작은 편이다.  
문루는 1998년 복원했는데, 1958년 복원한 대서문의 문루보다 40년이 늦어 복원 기술의 변화를 엿볼 수 있다. 중성문 옆의 암반에 폭 2.1m, 높이 1.8m 규모의 작은 암문(暗門)이 숨겨져 있다. 이 암문은 원래 이름이 없었으나 성 안에서 생긴 시신屍身이 중서운을 통과하지 못 하고 이 문을 통해 나간다고 해 '시구문屍軀門'이라 불렀다. 한편, 중성문 바로 옆을 흐르는 계곡에는 수문이 설치돼 있었으나 현재는 남아있지 않다.

 

노적봉의 아름다운 자태

 

운하교......↑ 노적사, ->.중흥사 

 

<- 노적사, 훈련도감 유영지, 북장대지, 

↗ 0.8km 중창지, 1.2km 호조창지, 1.21km 경리청상창지, 1.5km 행궁지, 1.8km 금위영, 2.2km 어영청

 

진국교

 

 

-> 중흥사,  -> 대동문 2.4km,  ↑ 노적사, 진국로

 

아, 붉은 단풍의 아름다움의 절정이다

 

북한산 용학사 갈림길 이정표:

↑ 2.3km 대남문, -> 부왕동암문 0.9km, -> 부황사 0.5km, ↓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 2.9km
↑ 중흥사 0.4km, -> 부황사 0.5km, ↑  태고사 0.6km 

 

↖ 중흥사  템플스테이 300m

 

중흥사권역 重興寺圈域:

중흥사를 중심으로 태고사. 신영루지. 부왕사지. 중창지. 선정비군. 북한승도절목 등의 문화재가 집중 분포하는 곳이다. 1711년 (숙종 37) 북한산성이 축성되기 이전에는 북한산에서 가장 중심되는 지역이었다. 중흥사. 태고사. 신영루 등은 북한산성 축성 이전에, 그리고 나머지는 축성 이후에 조성되었다.

1. 중흥사지, 2. 중창지, 3. 태고사
4. 봉성암 전성능대사부도, 5. 용암사지 석탑, 6. 북한산성선정비군.북한승도절목,
7. 신영루지, 8. 원각사지, 9. 조적사, 
10. 훈련도감유영지

 

앗, 신영루

 

 북한산성선정비군

북한산성선정비군 北漢山城善政碑群;

이곳의 비석들은 북한산성 관리 의 최고책임자가 재임할 당시의 선정과 홍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선정비로, 현재 26기 정도 남아있다. 비석을 세워 비문을 기록한 선정비가 대부분이며 따로 비석을 세우지 않고 암벽에 비문을 새긴 선정비도 있다. 이들 선정비의 건립시기는 모두 19세기 인데, 이 시기 북한산성의 관리는 종융청과 무위소가 맡고 있었다. 이에 비문에는 해당 관청의 관리책임자였던 총융사와 무위소 제조, 경리사의 선정을 기리고 있다. 

북한승도절목 北漢僧徒節目:

이 암각문은 1855년(철종6)에 새긴 북한승도절목으로 모두 325자이다. 명문銘文에는 승병대장인 충섭을 임명할 때 예상되는 폐단을 없애기 위한 규칙 3가지를 제시해 놓았다. 이를 통해 승영사찰이 피폐하여 승도가 흩어지고 있었던 사실과 그 원인이 총섭의 부적절한 임명에서 비롯되엇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때를 전후하여 산성 박의 승려가 총섭에 임용되기 시작한 것과, 불공평한 임용을 막기 위하여 다수절의 비밀 투표를 요구했던 사실도 파악할 수 있다.     

 

산영루 山映樓

추사 김정희의 북한산 여정

 

산영루(山映樓)

 

游客住笻古樹間  유객주공고수간
亂流爭響夕陽山  난류쟁향석양산 
此亭自古稱勝地  차정자고칭승지 
徒倚華欄憺忘還  도의화란담망환


고목 숲에서 나그네 발걸음을 멈추면,
어지런 물결이 석양 저문 산을 울린다. 
예부터 명승지로 알려진 이 정자에 올라,
꽃 난간 기대서니 편히 돌아가길 잊게 되네.

- < 삼각산기행시축> 중에서

경기도 문화유산 산영루는 북한산성 내 위치한 대표적인 누각입니다. 당대의 수많은 문인들이 사랑했던 곳으로 여러 시문들을 남긴 장소입니다. 특히 추사 김정희는 산영루를 사랑하여 <삼각산기행시축>에 1편, <완당전집>에 3편의 시를 남겼습니다. 위 시는 젊은 시절 추사가 아버지와 함께 산영루를 유람하며 그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입니다. 

- 한국산서회, 북한산국립공원사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