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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구릅/일상들 ( life )

② 종로3가 탑골공원, 종묘- ( 2025.01.20 )

by the road of Wind. 2025. 1. 22.

 종로3가 탑골공원, 종묘

- ( 2025.01.20 )

 

《  세계문화유산 종묘  》

 

 종묘(宗廟):  조선 왕조 역대 국왕들과 왕후들의 신주를 모시고 제례를 봉행하는 유교 사당 (사적 제125호)이다. 서울 종로구 훈정동 1번지에 위치해 있다. 종묘의 건물은 1394.10월 태조가 한양로 수도를 옮긴 해 12월에 지어졌고, 임진왜란 때에 소실되었다가 광해군 즉위년(1608년)에 다시 지어졌다. 종묘 정전(正殿) 영녕전(永寧殿)으로 나누어 정전에는 정식으로 왕위에 오른 선왕과 그 왕비의 신주를 순위에 따라 모시고, 영녕전에는 추존(追尊)된 선왕의 부모나 복위된 왕들을 모셨다. 그리고 정실의 출생이 아닌 왕이 그 사친(私親)을 봉안하는 사당으로서 따로 궁묘(宮廟)를 두었다. 종묘의 제사일은 4계절의 첫달 상순, 정초·단오·한식·추석, 동지의 납일과 매월 삭망(朔望)일로 정하여 왕이 백관을 거느리고 지냈다. 종묘의 건축물과 600여 년간 제례행사의 가치는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 인정 되었다. 종묘제례(중요무형문화재 제56호)와 제사를 지낼 때에 음악인 종묘제례악(중요 무형문화재 제1호, 세종대왕 작곡)은 2001년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걸작으로 등록되었다. 종묘제례는 매년 5월 첫째주 일요일에 어가행렬과 함께 전주 이씨 종친에 의한 제사로 거행된다. 종묘 사직단과 함께 국가의 중요한 요소로서 조선의 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월남 이상재 선생 동상

 

월남(月南) 이상재(李尙在) 선생은 1850년 충청남도 서천군에서 태어나 1881년 조사사찰단의 일원으로 개화사상을 갖게 되었으며, 1896년 서재필 등과 함께 독립협회를 창립하고 이를 통하여 독립신문과 만민공동회 운영으로 개화구국의 지도자 역할을 하였다.

1905년 일제가 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하고 외교권을 박탈하자 이상재 선생은 기독교도들과 함께 애국계몽운동을 적극 지원하였고, 1913년 황성기독교청년회의 초대 한국인 총무에 취임, 한국 기독교계를 친일화 하려는 정치공작을 분쇄하고 기독교계를 국권회복운동편에 서게 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1919년 3,1운동 당시 기독계열 독립운동을 지도한 혐으로 일제에 체포되었다. 이후 1924년 조선일보 사장에 추대되어 당시 새로 대두되는 자치론을 저지하고 완전독립을 민족운동 노선으로 정립하는데 노력하였다.

1927년 신간회 회장으로 추대되어 독립운동을 하던 중 서거하였으며,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에 추서되었다. 본 시설은 1986년 4월 10일 선생의 뜻을 기리고자 서울 YMCA 월남 이상재 선생 동상 건립 추진위원회에서 건립하였다.    

 

   

종묘 정문

 

종묘 관람 안내

 

 시간제 관람 - 평일 (월.수.목.금):
    09:20, 10:20, 11:20, 12:20, 13:20, 14:20, 15:20, 16:20, (16:40 3월~9월)

* 시간제 관람이란?  정해진 시간에 입장 후 문화해설사와 동행하여 단체로 관람하고 함께 퇴장하는 제도입니다.

- 관람시간은 약 1시간 입니다.
- 외국어 해설시간은 외국인을 대상으로만 운영합니다.
- 종묘내 전지역은 금연구역입니다.
- 주류 맟 음식물, 야영용품 소지, 반려동물 동반시 입장 하실 수 없습니다.

  일반관람 - 토.일.공휴일. 문화가 있는 날(매월 마지막 수요일):
- 2월~5월, 9월~10월: 매표시간 09:00 - 17:00, 관람시간 09:00 - 18:00.   

- 6월~8월: 매표시간 09:00 - 17:30, 관람시간 09:00 - 18:30.  

- 11월~1월: 매표시간 09:00 - 16:30, 관람시간 09:00 - 17:30,   

- 입장 마감 시간은 폐장 1시간 전입니다. 
- 해설시간:

  일요일, 문화가 있는 날 - 평일 해설 시간과 동일.

  토요일,공휴일: 10:00, 11:00, 13:00, 14:00, 15:00

 관람요금성인(만25세~만64세) 1,000원문화가 있는 날 : 무료
* 통합관람권: 성인(만25세~만64세) 10,000원 (구입일로 부터 3개월 내 종묘와 4대궁 관람가능합니다.)

- 정기휴관일: 매주 화요일

  무료관람자:
- 만 24세 이하 및 만 65세 이상 국민
- 만 6세 이하 및 만 65세 이상 외국인
- 병무청 벌금 병역명문가증, 현역군인
- 국가유공자 및 배우자, 선순위 유족 
- 기초생활수급자 및 차상위계층
- 장애인 및 동행 보호자 1인
- 초.중,고 교원(학생 인솔 등 교육활동시)
- 임산부와 보호자 1인
- 다자녀 가정 부모  

 감면대상: 종로구 주민 50% 할인

 

마지막 관람 타임, 종묘 해설사와 함께 해설을 들으며 단체 이동... 시간제관람,   평일 (월.수.목.금)

 

종묘 안내판.....

1 외대문, 2 정전 남신문, 3 정전, 4 영녕전, 5 향대청 일원, 6 재궁 일원, 7 전사청 일원, 8 정전 악공청, 9 영녕전 악공청,

종묘(宗廟):

 

종묘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국가 최고의 사당이다. 조선의 태조가 한양을 새 나라의 도읍으로 정하고 나서 바로 짓기 시작하여 1395년에 경복궁과 함께 완공했다. '궁궐의 왼쪽인 동쪽에 종묘를, 오른쪽인 서쪽에 사직단을 두어야 한다'는 고대 중국의 도성 계획 원칙을 따라 경복궁의 왼쪽인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 후 왕조가 이어져 봉안해야 할 신위가 늘어남에 따라 몇 차례 건물의 규모가 커져서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왕이나 왕비가 승하하면 궁궐에서 삼년상을 치른 후에 그 신주를 종묘로 옮겨 모신다. 정전에는 공덕이 뛰어난 임금들을 모셨고, 영년전에는 태조와 4대조와 죽은 뒤에 왕으로 추존되었거나 정전에서 신주를 옮겨온 임금들을 모셨다. 정전의 신실 19칸에는 태조를 비롯한 왕과 왕비의 신위 49위를, 영년전의 신실 16칸에는 신위34위를 모셔 두었다. 왕위에서 쫒겨난 연산군과 광해군의 신위는 종묘에 모시지 않았다. 종묘제례는 국가이 가장 큰 제사로서 정전에서 1년에 5번, 영년정에서  1년에 2번 열렸으며, 왕이 친히 주관했다. 현재 종묘제례는 매년 5월 첫째 일요일에 행하고 있다. 제사 외에도 종묘에서는 국가의 중요한 일을 알리거나 기원하는 의식을 행하기도 했다. 종묘의 모든 건물은 장식과 기교를 배제하여 단순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단순함 속에서 삶과 죽음의 깊은 의미를, 엄숙함 속에서 왕조의 신성한 권위를 읽을 수 있다. 중국이나 베트남과 달리 한국의 종묘는 건축물과 더불어 제레와 제례악의 본 모습을 그대로 ㅗ존하여 실현하고 있는 유일한 곳이다. 종묘는 1995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은 2001년 '인류 구전 및 무현유산 걸작'으로 등재되었다.       

 

 

종묘 세계문화유산

종묘(宗廟)는 인류의 문화유산으로서 그 가치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아 세계 문화 및 자연 유산의 보호에 관한 협약에 의거하여 유네스코에 세계 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세계유산이란 당해 문화재가 세계적으로 특출하고 보편적 가치를 지니고 있어 인류 전체의 이익을 위해 보호되어야 할 유산을 말한다. 종묘는 조선시대 역대 왕과 왕후의 신위(神位) 를 모시고 제향(祭享) 을 올리는 유교적 전통 신전(神殿)으로 1395년 (조선 태조 4년)에 지어졌으며 그 후 매년 이곳에서 종묘 제례(祭禮)의식을 거행하고 있다.

등록일: 1995년 12월 9일

 

 

중연지(中蓮池),  아주 오래된 향나무....종묘의 연못은 풍수와 음양사상을 배경으로 조성되었다. 못 가운데 둥근 섬에는 향나무를 심어 종묘가 제례의 공간임을 나타냈다. 종묘는 즐기는 공간이 아니었기에 연꽃을 심지 않았고 물고기도 기르지 않았다.

 

향대청 일원  

제례에 바칠 향.축문.폐백(香祝幣)을 보관하고 졔례를 주관하는 제관들이 대기하던 곳이다. 또한 제례에 종사하는 집사들의 집사청(執事廳) 도 딸려잇다. 정면 9.5칸의 긴 건물이며 앞에는 행각이 놓여있어 남북으로 긴 뜰이 만들어져 있다. 남쪽의 망묘루(望廟樓)는 제례를 지낼 때 임금이 잠시 머물며 앞선 임금들의 공덕을 기리던 곳이다. 망묘루 옆쪽에 연못을 만들었고 뒤쪽에 공민왕 신당을 두었다.    

향대청  /  망묘루  / 공민왕 신당  / 현위치
중연지

 

향대청 출입문

 

이곳에는 제사에 쓰는 집기 등 종묘의 각종 물건들의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시간이 없어 패싱...

 

 

재궁 방향...

 

재궁은 재전, 어숙실이라고도 불린다. 3동의 건물로 북쪽은 어숙실, 동쪽은 세자실이고 서쪽은 어목욕청이라 하며, 각 건물을 잇는 어도가 십자형으로 설치되어있다. 임금이 제례를 행하기 하루 전날 재궁에 도착하여 다음 날 밤 1시(축시, 오전 1시)가 되어 제례를 올릴 때까지 머물며 마지막 날 재계를 하는 곳으로 목욕재계하고 의복을 정제하며 세자와 함께 제례를 올릴 준비를 하던 곳이다.

신로(중앙), 어로(동쪽), 세자로(서쪽)

 

신로. 어로. 세지로

神路.御路.世子路

바닥의 세갈래 돌길은 종묘제례 등에 사용되는 길이다. 가운데 길(신로 또는 신향로)은 신부, 향, 축문을 옮길 때 사용하며, 동쪽 길(어로)은 왕이, 서쪼 길(세자로)은 왕세자가 다니는 길이다. 신로는 위대문 안쪽 부터 정전과 영녕전 남선문을 지나 하월대까지, 어로와 세자로는 외대문 안쪽 부터 재궁을 거쳐 정전과 영녕전 동문으로 연결된다. 이 길은 재례에서 신주.향.축문과 왕과 왕세자의 동선에 맞춰 설치되어 있다.   

 

재궁 일원

 

재궁의 어재실 (중앙)

 

어목욕청

 

세자재실

 

전사청 방향...오늘은 해설사가 시간에 임박하여 가보지 못 했다.

( ▲ 2018.10.10 사진)

 

전사청...전사청은 신주라고도 하며 종묘제례에 사용되는 제수를 장만하고 제물, 제기 및 운반구를 포함하는 여러 가지 기구들을 보관하던 곳이다. 원래 이곳에는 제사 음식을 조리하기 위한 솥이 설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앞의 마당에 졔레에 쓰일 소들을 몰고와 왕이 선택하면 뒷산에서 도축을 하여 각 부위를 니누어 생으로 제례에 쓰며, 내장 등은 삶아서 왕이 음복 후 안주로 드셨다고 한다.

 

종묘 정전 

 

종묘는 임진왜란, 일제시대, 6.25 전란에도 파괴되지 않고 건재하였다고 한다.

 

정전 출입문

 

정전 일원


정전은 종묘의 중심 부분으로, 긴 정전의 앞에는 넓은 월대(月臺: 중요한 건물 앞의 넓은 대)를 두었고 사방으로 담장을 둘렀다. 남쪽 신문으로는 혼령이, 동문으로는 임금을 비롯한 제관들이, 서문으로는 제례악을 연주하는 악공과 춤을 추는 일무원(佾舞員: 종묘 제례 때 여러 줄로 서서 춤을 추는 사람)) 들이 출입했다. 1395년에 신실 7칸의 규모롤 처음 만들어 졌고, 여러 차례 널려지어 현재는 19칸에 이르는 매우 긴 목조 건물이 되엇다.  거친 월대 바닥과 그 위로 육중한 지분이 떠 잇는 모습은 숭고하고 고전적인 건축미의 극치를 보여준다. 남쪽 담장 안네는 공신당(功臣堂)과 칠사당(七祀堂) 을 각각 동쪽과 서쪽에 세웠으며, 서문 밖에는 제례악을 준비하는 악공청(樂工廳)을 두었다. 

* 신실: 신주를 모시는 방
* 신주: 죽은 사람의 이름을 적은 나무 조각(패)      

 

정전 신위 봉안도

제1 실   태조고황제(太祖高皇帝)  신의고황후(神懿高皇后) 한씨,  신덕고황후(神德高皇后) 강씨 
제2 실   태종대왕(太宗大王)  원경왕후(元敬王后) 민씨
제3 실   세종대왕(世宗大王)  소헌왕후(昭憲王后)  심씨
제4 실   세조대왕(世祖大王)  정희왕후(貞熹王后) 윤씨
제5 실   성종대왕(成宗大王)  공혜왕후(恭惠王后) 한씨,  정현왕후(貞顯王后) 윤씨 
제6 실   중종대왕(中宗大王)  단경왕후(端敬王后) 신씨, 장경왕후(章敬王后) 윤씨, 문정왕후(文定王后)  윤씨
제7 실   선조대왕(宣祖大王)  의인왕후(懿仁王后) 박씨, 인목왕후(仁穆王后) 김씨 
제8 실   인조대왕(仁祖大王)  인렬왕후(仁烈王后) 한씨,  장렬왕후(莊烈王后)  조씨
제9 실   효종대왕(孝宗大王)  인선왕후(仁宣王后)  장씨
제10실  현종대왕(顯宗大王)  명성왕후(明聖王后)  김씨
제11실  숙종대왕(肅宗大王)  인경왕후(仁敬王后) 김씨, 인현왕후(仁顯王后) 민씨, 인원왕후(仁元王后) 김씨
제12실  영조대왕(英祖大王)  정성왕후(貞聖王后) 서씨,  정순왕후(貞純王后) 김씨 
제13실  정조선황제(正祖宣皇帝)  효의선황후(孝懿宣皇后)  김씨
제14실  순조숙황제(純祖肅皇帝)  순원숙황후(純元肅皇后) 김씨
제15실  문조익황제(文祖翼皇帝)  신정익황후(神貞翼皇后) 조씨
제16실  헌종성황제(憲宗成皇帝)  효현성황후(孝顯成皇后) 김씨, 효정성황후(孝定成皇后) 홍씨
제17실  철종장황제(哲宗章皇帝)  철인장황후(哲仁章皇后) 김씨 
제18실  고종태황제(高宗太皇帝)  명성태황후(明成太皇后) 민씨
제19실  순종효황제(純宗孝皇帝)  순명효황후(純明孝皇后)민씨, 순정효황후(純貞孝皇后) 윤씨

불천위 -  유교에서는 사대봉사(四代奉祀)라고 하여 4대조(부, 조부, 증조부, 고조부)까지의 제사를 지내는 것이 기본이었으나, 4대를 넘어가면 신위(神位)를 사당에서 옮겨 땅에 묻고 더 이상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그러나 고인이 특별한 위인이고 덕망이 있는 경우, 신위를(位) 옮기지 않고((遷)不_불천), 후손들이 대대로 계속 제사를 지내 기리는 것을 허용했는데, 이것이 바로 불천위이다. 불천위 제도 때문에 집안이 큰 경우 제사가 많아 종가집 등의 며느리들이 고생하기도 하였다. 불천위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나라에서 정한 국불천위(國不遷位), 유림들에 의한 향불천위, 문중에서 자체적으로 유명한 조상을 기리는 사불천위 등이 있는데, 종묘에 배향된 배향공신의 경우 해당 인물의 가문에서도 불천위로 제사를 지냈다. 예를 들어 태조 이성계나 세종대왕은 당연히 불천위로 모시는 등 이다. 불천위가 결정되면 종묘 정전에 신위를 그대로 모시고 제사를 드리며 그렇지 않은 경우 영녕전으로 천위된다. 왕들은 사후 처음은 정전에, 천위시 영녕전에 신위가 옮겨가게 된다.  그러나 정전에는 이유를 알 수 없이 불천위된 왕들이 더러 있다. 임진왜란,정묘호란 등으로 성과가 없고 백성을 위태롭게 한 왕들이다.   

조선 왕들의 불천위 ( 영녕전에 불천위는 없고, 전부 정전에만 있다 ):  1실 태조(太祖) 초대 군주/ 2실 태종(太宗) 국가 기틀 마련/ 3실 세종(世宗) 제도 정비, 영토 확장/ 4실 세조(世祖) 여진족 토벌, 왕권 강화/ 5실 성종(成宗) 조선 전성기/ 6실 중종(中宗) 폭군 축출, 사림 중용/ 7실 선조(宣祖) 국가 보전, 족보 오류 수정/ 8실 인조(仁祖) 국가 보전/ 9실 효종(孝宗) 북벌, 서인 등용/ 10실 현종(顯宗) 국가 안정, 숙종의 요구/ 11실 숙종(肅宗) 대동법 시행, 정국 안정/ 12실 영조(英祖) 탕평책, 조선 중흥기/ 13실 정조(正租) 조선 중흥기, 문체반정

이상 13명의 왕이 불천위로 지정되었고, 나머지 정전에 있는 순조, 문조(효명세자, 추존), 헌종, 철종은 조선 멸망 당시 4대가 아직 안지나서 영녕전에 옮기지 않았고, 고종황제와 순종황제는 조선이 멸망한 뒤까지 살았지만 정전에 자리가 남아있어서 옮긴 경우다. 공신이 아닌 경우, 특히  여성이 그 개인의 공적으로 인해 서훈을 받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는데, 음식디미방(국내 최초 음식 조리서)을 쓴 정부인(貞夫人) 안동 장씨 장계향(張桂香)이 여성으로서 국불천위를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종묘대제는 조선왕조의 사당인 종묘에서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의례로, 봄.여름.가을.겨울. 납일 등 1년에 5번 지냈으나 현재는 매년 5월 첫번째 일요일에 국제문화행사로 봉행되고 있다. 제향의식 뿐 아니라 제례악과 일무 등 유형과 무형의 세계유산을 함게 감상할 수 있는 종묘대제는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종합적인 의례이다.  

종묘제례,  아래 사진 (왼쪽부터) -  취위, 신관례, 천조례, 초헌례, 아헌례, 종헌례, 음복례, 송신례, 망료례, 망료.

 

종묘 정전....지금 공사 중이다.  정전 안의 위폐는 공사 소음으로 시끄럽기 때문에 창덕궁에 옮겨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공사는 종묘 건축 후 처음있는 일로 일생에 한번 볼 수 있는 광경이라고 한다. 그동안 종묘는 확장 필요성이 있을 때 마다 목조 건물로 늘려 지었다고 한다. 

 

 

종묘 정전 보수정비 공사
- 공사내용:  노후된 종묘 정전 보수( 지붕 해체보수 등) 및 주변 정리
- 공사기간: 2020.06.22 - 2025.04.

 

정전 악공청 樂工廳:

 

정전 악공청은 종묘 제례(정전) 때 악공과 일무원들이 대기하는 건물이다. 정면 6칸, 옆면 2칸의 구조로 소박하고 간결한 모습이다.

 

종묘 제례악은 종묘 제례 의식에 맞추어 연주하는 것으로, 기악.노래.춤이 어우러지는 종합예술이다. 악기 연주에 맞추어 선왕의 공덕을 기리는 노래를 부르며, 열을 맞추어 추는 일무이다. 

종묘제례악은 1964년 중요무형국가유산 제1호로 지정되었고, 20001년에 종묘 제례와 더불어 유네스코 인류뮤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영녕전 신위 봉안도

제 5실  정종대왕(定宗大王)  정안왕후(定安王后) 김씨  
제 6실  문종대왕(文宗大王)  현덕왕후(顯德王后)  권씨
제 7실  단종대왕(端宗大王)  정순왕후(定順王后)   송씨
제 8실  덕종대왕(德宗大王)  소혜왕후(昭惠王后)   한씨
제 9실  예종대왕(睿宗大王)  장순왕후(章順王后) 한씨 안순왕후(安順王后) 한씨
제10실 인종대왕(仁宗大王)  인성왕후(仁聖王后)  박씨
제 1실  목조대왕(穆祖大王)  효공왕후(孝恭王后) 이씨  
제 2실  익조대왕(翼祖大王)  정숙왕후(貞淑王后)  최씨
제 3실  도조대왕(度祖大王)  경순왕후(敬順王后) 박씨 
제 4실  환조대왕(桓祖大王)  의혜왕후(懿惠王后)  
제11실  명종대왕(明宗大王)  인순왕후(仁順王后) 심씨
제12실  원종대왕(元宗大王)  인헌왕후(仁獻王后) 구씨 
제13실  경종대왕(景宗大王)  단의왕후(端懿王后) 심씨 선의왕후(宣懿王后) 어씨
제14실  진종소황제(眞宗昭皇帝)  효순소황후(孝順昭皇后) 조씨 
제15실  장조의황제(莊祖懿皇帝)  헌경의황후(獻敬懿皇后) 홍씨
제16실  의민황태자 영왕(懿愍皇太子 永王)  의민황태자비(懿愍太子妃) 이씨 

 

 

영녕전

 

 

영녕전

 

영녕전 일원:

영녕전은 정전에 있던 신주를 옮겨 모시기 위해 1421년 지은 건물로, '영녕'은 '왕가의 조상과 자손이 길이 평안하라'는 뜻이다. 시설과 공간 형식은 정전과 유사하지만 정전보다 규모가 작고 좀 더 친밀하게 지었다. 정전과 유사하게 2층으로 된 월대(月臺: 중요한 건물 앞의 넓은 대) 주위에 담장을 두르고 동쪽.남쪽.서쪽 세곳에 문을 두었다. 원래 6칸 규모였으나, 어러 차례 좌우에 칸을 만들어 현재 시실은 모두 16칸이다. 가운데  4칸은 태조의 4대조를 모신 곳으로 좌우 협실보다 지붕이 높다. 동쪽에는 제사 도구를 보관하는 제기고를, 서남쪽 바깥에는 제례악을 준비하는 소악공청(小樂工廳)을 두었다. 

* 신실: 신주를 모시는 방
* 신주: 죽은 사람의 이름을 적은 나무 조각(패)

 

종묘 나가는 길에 바라보는 정전

 

종묘 앞 광장

 

전교....세운상가 방향

 

종묘전교

 

종묘로 들어가는 입구의 하천인 회동 제생동천(灰洞 濟生洞川)에 축조된 다리로, 대동지지(大東地志)에서 이 다리를 "종묘전교(宗廟前橋)"라고 하였다. 종묘전교는 처음에 나무다리였던 것을 세종 3년(1421) 돌다리로 개축하였고, 이후 현종4년(1663)에 개수한 바 있다. 역대 왕들이 종묘에서 행하는 종묘대제(宗廟大祭)를 비롯한 각종 주요 행사 때 이용 하였던 다리였다. 이 다리는 널다리(平橋) 형식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폭 9.6m, 길이 6.9m) 규모인데, 다리의 바닥 한가운데가 좌우보다 한단 높은 어도(御道)형식이고 다리가 설치된 가장 자리 네모서리에는  해태 상을 새긴 화표주(華表柱)가 마련되어 있다..

 

세운상가 방향....옛날 젊은 날 주말이면 퇴근시 세운상가 빈티지 오디오 샾에서 좋은 오디오 소리 듣는다고 더러 찾아다닌 기억이 생생하다. 

 

종로는 귀금속 찬국이구나!!! 골목에도 귀금속 점포들이 밀집......

우리 큰 아들 결혼식을 앞두고 종로3가 귀금속 가게를 방문하여 가슴 설레게 혼수품을 조금 산  기억이 생생하다.

 

 

앗, 화려한 불빛...

 

종로3가 포장마차

포장마차 메뉴:

민물장어 20,000, 오징어무침 20,000, 오징어볶음 20,000, 오징어숙회 18,000, 문어숙회 20,000, 해삼 18,000, 소라숙회 20,000, 새우구이 20,000, 고등어구이 18,000, 전어구이 20,000, 조기구이 18,000, 시사모구이 18,000, 멍게 18,000, 산낙지 20,000, 꼼장어 18,000, 오돌뼈 18,000, 제육볶음 18,000, 닭꼬치 15,000, 염통꼬치 15,000, 순대볶음 18,000, 야채곱창 18,000, 닭발 18,000, 은행 15,000, 계란말이 15,000, 김치전 15,000, 해물파전 20,000, 감자전 20,000,
홍합탕 15,000, 백합캉 20,000, 오뎅탕 18,000, 계란탕 15,000, 꽃치김치찌게 20,000, 스팸김치찌개 20,000, 돼지김치찌개 20,000, 돼지껍데기 18,000


안주류: 스펨 20,000, 석굴 15,000, 꼬막 18,000, 똥집 15,000, 떡볶이 15,000, 골뱅이무침 20,000, 소라무침 20,000, 주꾸미볶음 20,000,
주류:  켈리/테라 5,000, 참이슬 5,000, 진로 5,000, 청하 6,000, 매화수 6,000, 막걸리 5,000, 콜라/사이다 3,000 

국수 6,000, 우동 5,000, 라면 5,000

 

 

 

 

▶ 종로3가 익선동 골목 구경하기:

원조 소문난집에서 국밥 한 그릇 먹고 집에 들어간다. 나는 하찮게 보여도 맛있는 이 집의 시레기 국물 맛을 잊을 수 없다

 

 

맛있는 국밥, 단돈 3,000원의 행복.. ..... .막걸리 한 잔 1,000원..... 

 


넘어져 본 사람은  
                            이준관 (1949~ )


넘어져 본 사람은 안다.
넘어져서 무릎에
빨갛게 피 맺혀 본 사람은 안다.
땅에는 돌이 박혀 있다고
마음에도 돌이 박혀 있다고
그 박힌 돌이 넘어지게 한다고.

그러나 넘어져 본 사람은 안다.
넘어져서 가슴에
푸른 멍이 들어 본 사람은 안다.
땅에 박힌 돌부리
가슴에 박힌 돌부리를
붙잡고 일어서야 한다고.
그 박힌 돌부리가 나를 일어서게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