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여주 신륵사, 영월루
- ( 2025.04.18 )
《 영월루 》
여주 8경 (驪州八景):
1- 신륵종성(神勒鐘聲) - 신륵사에서 강산에 울려 퍼지는 종소리
2- 마암어등(馬巖漁燈) - 마암의 저녁 고잡이의 은은한 등불
3- 학동모연(鶴洞暮煉) - 강건너 학동의 저녁연기 모습 (도자기 혹은 밥 짓는)
4- 연탄귀범(燕灘歸帆) - 강여울에 돛단배가 귀가하는 모슴
5- 양도낙안(洋島落雁) - 양섬에 기러기떼 내리는 모습
6- 팔수장림(八樹長林) - 오학리 강변에 울창한 숲이 강물에 비치는 전경
7- 이릉두견(二陵杜鵑) - 영릉과 녕릉에서 두견새 우는소리
8- 파사과우(波娑過雨) - 파사성에 여름철 소나기 스치는 광경
신륵레져보트, 신륵황포돛단배 ....황포돛배 요금 1만원.
여주 남한강 출렁다리
민물물고기판매
신륵관광단지 음식점들...
여주대교 가는 길
충주노선 연결도로 안내
-- 영월루 --(1.5km, 약 10분)--여주시청 --(2.5km, 약 13분)--왕리대교 --(700 m, 약 5분)-- 양릉교 --(3km, 약 15분)-- 여주보 --
여주박물관
여주도서관
여주대교 입구 동영상
<- 여주박물관(10코스), <- 여주도서관(4코스), 연인교 (4코스) ->, ↑ 여주대교 (10코스)
여주KCC 스위첸 아파트
여주대교
여주 세종대교 방향...남한강 하류 방향
영월루 방향
여주 남한강 출렁다리 방향, 금은모래깅변공원, 썬벨리호텔 방향
<- 일신역 21.6km, <- 북네체육공원 8.1km
금당천 십리벚꽃길 종합안내 :
"누구나 걷고싶어 하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금당천 십리벚꽃길"
1코스: 금당천 ~ 일신역, 14.4km, 걷기 3시간 40분, 자전거 1시간.
북내면행정복지센터(면사무소)--북내면체육공원--주암교--지선4교--일신2교--일신역.
2코스: 금당천 ~ 석우리 선돌, 9.8km, 걷기 2시간 30분, 자전거 40분.
북내면행정복지센터(면사무소)--북내면체육공원--신라교--장암1길입구--원효장군묘--덕산길입구--석양교--석우1리마을회관--석우리 선돌
3코스: 금당천 ~ 고달사지, 19.9km, 걷기 5시간, 자전거 1시간30분.
북내면행정복지센터(면사무소)--북내면체육공원--신라교--석양교--석우1리마을회관--석우리선돌--석우교--주암교--동여주IC교차로--고달사지 터--상교리입구--상교2교--교향동정자--이인영 생가터--교량동 어귀--내룡교--금당천 합류지점--덕산길 다리--북내면체육공원.
연계코스: 공동 구간, 10km, 걷기 2시간 30분, 자전거 40분.
북내면행정복지센터(면사무소)--강천보.
여주대교 남단
남한강변 내려 가는 자전거 길, 산책로...
여흥민씨관향비(驪興閔氏貫鄕碑)
여흥민씨의 본관 여흥은 현재의 경기도 여주의 옛 이름이며 여흥단본으로 통하고 있다. 시조는 고려때 상의봉어를 지낸 휘 칭도이며, 여흥민씨는 조선왕조 때 네 분의 왕비를 배출하였다. 태종비 원경왕후, 숙종비 인현왕후, 고종황제비 명성황후, 순종황제비 순명황후 등이다. 원경왕후는 성군 세종대왕의 어머니며, 인현왕후는 예의 바르고 정숙하신 분이며, 명성황후는 기울어 가는 조선 왕조 말의 일제에 의해 시해 당한 비운의 왕비이다. 임진왜란 때는 여운, 인로 등 의병장들과 호성공신 희건, 여원군을 위시하여 많은 사람들이 용감하게 왜적과 싸웠으며, 병자호란 때는 충민공과 그의 아들 3형제등 가족13명이 모두 순절하였으며, 경상 우병사 충장공도 순절하였다.
↗ 마암(馬巖)
여주 마암
마암(馬巖)은 여주 지명의 유래가 되는 황마(黃馬)와 여마(驪馬)가 이곳에서 솟아났다 하여 마암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이러한 이유로 고려시대 여주 지명이 황려(黃麗)라 불렀다고 한다. 즉 여주의 지명은 골내근면-황효-황려-여흥-여주로 변천되었는데, 황려 지명은 이 마암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여주 출신 대문호 이규보의 한시중 "두마리 말이 기이하게 물가에서 나왔다 하여, 이 때문에 고을 이름이 황려라 하네" 라고 적은 내용이 있어 그 역사성이 매우 높은 유적이다. 또한 여주의 대표적 성씨인 여흥 민씨의 시조가 탄생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여주시를 대표하는 자연경관 유적이다. 그리고 이규보, 이색, 서거정, 최숙정, 김상헌, 정약용, 김창협 등 당대의 시인묵객들이 찾아와 시와 풍류를 즐기던 명소였다. 현재 마암이 시작되는 평평한 바위면에 '馬巖'이라 큰 글씨가, 위쪽에 여주목사를 역임한 '이인응(李寅 應)과 '시월( 十月)' 일각(一刻)이, 오른쪽에 여주군수를 지낸 '申鉉泰(신현태)"라 새겨진 글씨가 새겨져 있다.
마암 내려 가는 강변 길
마암 가는 강변 길 동영상
바닷가를 연상시키는 풍경이다.
여주 남한강 황포돛배 동영상
馬巖(마암)이란 글씨 등이 새겨져 있는 남한강변 바위.
마암은 여주 8경 중 하나이며, 여주의 대표적인 자연경관 유적이다.
▶ 영월루:
전망대
영월루 가는 길 전망대 동영상
'남한강 소식' ...김태영 작사.작곡, 허민 노래
1. 신륵사 깊은 밤에 종소리만 우는데/ 동대에 어린 꿈을 / 너는 어이 잊을 소냐/ 남한강 칠백리 등지고 떠나올 때/ 눈물 많이 흘렀었지/ 다시 밟을 내 고향아/ 남한강아 잘 있느냐
2. 마암대 깊은 밤에 물소리만 처량한데/ 옛놀던 영월루엔/ 어린 꿈이 날 울리네/ 양동섬 백사장에 슬피우는 꿀새야/ 달빛 실은 뗏목 위에/ 한숨만이 실렸드냐/ 고향 봄도 실렸더냐
3. 남한강 나루에 강물만이 차량한 데/ 노젖는 사공들아/ 고향 노래 불러다오/ 타향 땅 섧고 섧어 고향을 울며 올 때/ 눈물 많이 흘렸었지/ 다시 밟을 내 고향아/ 남한강아 잘 있느냐.
영월루
영월루 迎月樓:
영월루는 원래 군청의 정문으로 18세기 말 건물로 추정된다. 현재의 영월루는 1925년에 군청을 옮기면서 지금 있는 자리에 누각으로 다시 세운 것이다. 이 누각은 2층 누각으로 핲면이 3칸, 옆면이 2칸 규모로 되어있다. 지붕은 팔작지붕* 이다. 낮은 기단과 기다란 몸체, 처져 올라간 지붕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누각 바로 아래에는 커다란 괴암이 절벽을 이루고 있다. 바위 위에는 '마암(馬巖)' 이라는 글자가 힘있는 필치로 새겨져 있다, 누각에서 바라보는 전망도 아름답다.
* 팔작지붕; 합각지붕 (위 절반은 박공으로 되어있고, 아래 절반은 네모꼴로 된 지붕)
* 마암: 여주 팔경 중 하나로 여주 옛 지명인 '황려(黃麗)'와 여흥 민씨의 시조 탄생 관련 이야기가 전해지는 바위로 여주의 대표적인 자연 경관 유적임.
영월루에서 남한강 동영상
전망대
전망대에서 동영상
영월루 주변에 커다란 토끼들이 보인다. 이곳에 천적은 없을까? 살아남은 비결이 궁금하다.
영월루 토선생 동영상
규휼비, 영세 불망비 등
- 김홍복 청덕애민영세불망비: 조선 숙종 22년(1696.10) 여주 목사로 부임한 김홍복(1649-1698)의 청렴한 덕과 선정을 잊지 않기 위하여 세운 비이다.
- 기동보린사(畿東保隣社) 창립기념비: 1727년 흥천면 외사리의 이민응(1580-1642)과 아들 재정이 빈민 구제를 위해 기동보린사를 창립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1940년 여주군수 김수명이 세운 비이다.
- 이헌직 영세불망비: 조선 고종 27년(1890.3) 경기관찰사로 부임한 이헌직이 조세를 경 선정을 베풀어 이를 잊지 않기 위하여 1891년 세운 비이다.
- 이주징 애민선정비: 조선 숙종 32년(1706.7) 여주 목사로 부임한 이주정(1639-1692)이 백성을 사랑하고 선정을 베풀어 이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이다.
- 김명진 애민선정비: 조선 고종 20년(1883.11) 여주목사로 부임한 김명진(1840-?)이 백성을 사랑하고 선정을 베풀어 이를 기리기 위하여 1888년 세운 비이다.
- 홍우경 애민선정비: 조선 고종 24년(1887.6) 여주목사로 부임한 홍우경이 백성을 사랑하고 선정을 베풀어 이를 기리기 위하여 1888년 세운 비이다.
- 김병기 구휼비: 조선 철종 7년(1856.4) 여주 목의 가옥 1,000여호가 불에 탄 대화재 당시 난민을 구제한 찬동령 부사 김병기(1818-1875)의 공덕을 기리고자 1860년 세운 비이다.
- 김희화 애민선정비: 조선 순조 20년(1820.4) 여주목사로 부임한 김희화가 백성을 ㅅ가랑하고 선정을 베풀어 이를 기리기 위하여 1822년 세운 비이다.
- 순상 선정비: 조선 순조 22년(1822) 순찰사의 선정을 잊지 않기 위하여 세운 비이다. 비선 앞면의마모가 심해서 누구의 선정비인지 판독이 어려운 상태이다.
- 이세유 창덕선정비: 조선 숙종 34년(1708.1) 여주 목사로 부임한 이세유(1645-1711)의 청렴한 덕과 선정을 기리기 위하여 1709년 세운 비이다.
- 남선 인명구민비: 조선 인조 25년(1647.4) 여주 목사로 부임한 남선(1582-1654 )의 선정을 잊지 않기 위하여 1648년 비를 세웠으나 마모되어 1943년 10대 손 종우가 다시 세운 비이다.
- 이진휴 영세불망비: 조선 숙종 23년(1697.4) 여주 목사)로 부임한 이진휴(1657-1710)의 선정을 잊지 않기 위하여 1697년 세운 비이다.
규휼비, 영세 불망비 등...
- 한회일 거사비(去思碑): 조선 인조 13년(1635.1) 여주 목사로 부임한 한회일(1580-1642)의 선정을 기리기 위하여 1636년 세운 비이다.
- 장조이 열녀비(烈女碑):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시 청군에 붙잡히기 전 '마암'에서 강으로 투신 자결한 정조이의 절개를 기리기 위하여 1637년 정려를 내려 세운 비이다. 장조이는 여주 관아의 관리 윤응빙의 아내로 조이(召史)는 과부를 나타내는 이두(吏䕱)이다.
- 영의정 홍순목 만세충망비: 조선 고종9년(1872..10) 영의저으로 임명된 홍순목(1816-1884)이 고향(금사면) 여주에 선정을 베풀어 이를 잊지 않기 위하여 1884년 세운 비이다.
- 이문원 선정비: 조선 정조 원년(1777.7), 정조 10년(1786.7) 두 차례에 걸쳐 여주 목사로 부임한 이문원(1740-1794)의 선정을 잊지 않기 위하여 1788년 세운 비이다.
- 김덕함 애민비: 조선 인조 6년(1828.8) 여주목사로 부임한 김덕함(1562-1636)이 청렴결백으로 백성을 사랑하여 이를 기리기 위하여 1630년 세운 비이다.
- 박태규 선정 불망비: 조선 숙종 36년(1710.4) 여주 목사로 부임한 박태규의 선정을 잊지 않기 하여 1714년 세운 비이다.
- 홍만식 영세불망비: 조선 고종 12년(1875.7) 여주 목사로 부임한 홍만식(1842-1905)이 선정을 베풀어 이를 기리기 위하여 1877년에 세운 비이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음독자살하여 순국하였다. (父 영의정 홍순복, 第 초대우국총판 홍영식).
♠ 영원히 잊지 않기 위하여 선정(善政)의 비를 세운다는 뜻의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는 지나가는 길손의 옷깆을 여미게 하고 감동을 준다. 여기에는 열녀비(烈女碑) 등도 있다. 백성과 하나가 되고자 하는 조선의 지방 목사들 등의 우국충정 앞에 서서 빛바랜 오래된 비석들을 보면서 국민을 위한 공복들의 선정이 역사에서 얼마나 값지고 빛나는 지를 되새기게 된다.
헌시
여주벌 드넓은 겨레의 품 속 남한강 굽이치는 미래의 언덕 여기 더없는 듯 뜨거운 피로 새 세상을 비쳐 밝히는 님께 가슴의 불꽃을 사뤄 새기노니 오! 거룩함이여 진실됨이여 그 넋을 기림 영원케 합소서' - 여수군수 임창선
현충탑: 여주시 주내로 13 (상동)
본 현충탑은 조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하여 공산 침략자와 싸우다 전사하신 해군 중령 고 장남섭 외 957위의 호국 영령들을 추모하기 위하여 1959년 6월 6일 여주군민의 뜻을 담은 성금으로 제막되었고, 1981년 4월 탑 기단부를 설치하는 등 보강 사업을 실시하였고, 2004년 11월 군민의 염원을 모아 재건립에 착공하여 2005년 5월 준공하였다. 삼가 호국영령들의 명복을 빕니다.
여주 하리 삼층석탑 (보물 제92호) & 여주 창리 삼층석탑 (보물 제91호)
여주 하리 삼층석탑:
- 이 석탑은 1958년 석탑을 하리의 옛절터에서 옮겨왔으며, 하층기단의 구성은 통식(通式)에 속하여 갑석은 상면에 현저한 경사를 이루었고, 그 중심에 삼층기단 중석을 받치기 위한 높직한 2단의 받침이 있습니다. 각층 옥신에는 우주형이 얕게 조각 되어있고 초층 옥신은 특히 높은 편으로, 옥개석의 각층 받침은 4단이고 추녀밑은 아랫면과 수평을 이루다가 전각에 이르러 반전된 모습을 보이는데, 상륜부는 완전히 소실되어 하나도 남은 것이 없습니다. 조성시기는 고려시대일 것으로 보입니다.
여주 창리 삼층석탑:
- 이 석탑은 본래 여주읍 내 과수원의 옛 절터에 있었던 것을, 1958년 한강변에 위치한 영월루(迎月樓) 아래의 공원 산중턱으로 옮겨져, 여주 하리 3층석탑(보물 제92호)과 나란히 세웠는데, 탑신부는 기단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1층 몸돌만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고 나머지는 지붕돌과 탑몸돌이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지붕돌의 아래쪽에는 각각 3단의 받침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하층 기단의 각 면에 안상(眼象)이 새겨져 있고, 갑석 위에는 연꽃이 조각되어 있으며, 낙수면의 경사가 급하고 추녀는 수평을 이루다가 끝 부분에서야 반전되었으나 대체적으로 둔중한 느낌을 줍니다. 1층 탑몸돌 윗면의 사리를 모셔두는 사리공에서 동제여래입상이 발견되었는데, 탑의 양식으로 보아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대한민국무공수훈자공적비, 여주군 6.25참전기념비
그리스군 참전 기념비
메시지 2001...연제동, 2001
쉼....김성휘, 2001. 8
메시지 2000....연제동, 2001
싸리산과 함께하는 봄,
제3회 여주오학 싸리산행복축제: 개막식 4.19(토) 18시 (축하공연 및 오케스트라음악회 그리고 푸짐한 경품)
일시: 4.19 (토) ~ 4.20(일), 장소: 여주 시민공원(현암동 637-112), 문의 883-9955
싸리산 등산: 4.20(일) 11시 ~
** 싸리산행복축제를 위하여 여주남한강출렁다리 2일간(4.19, 4.20) 임시 개통함. 무료.
여주여자중학교...여기 버스정류장이 있는데 여주역 가는 차량이 무려 45분을 기다려야 한다고 안내되고 있어 주위에 물어 버스가 많은 여웆시청앞 군청농협 앞 정류정까지 약 11분 정도 걸어갔다.
경기여주교육지원청
앗, 여주시청
도로 건너 NH 농협은행 건물...이곳에는 시내버스가 많았다.
NH 농협은행 여주시지부
제37회 여주 도자기 축제: 2025. 05. 01(목) ~ 05.11(일)
여주 남한강 출렁다리: 2025.05.01 (목) ~
여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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