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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구릅/일상들 ( life )

① 경복궁 - ( 2025.08.27 )

by the road of wind 2025. 8. 28.

 

 

경복궁 

- ( 2025.08.27 )

 

시내 나갔다가 오늘은 경복궁을 찾아보았습니다. 광화문역 8번 출구로 나와, <세종문화회관->  광화문 광장 -> 광화문 -> 흥례문-> 근정문-> 근정전-> 사정전-> 강녕전-> 경회루-> 흥복전-> 향원정-> 건청궁-> 국립민속박물관-> 추억의 거리-> 광화문-> 광화문역> 순서로 편리하게 걸어보았습니다. 오늘 따라 마지막 주 수요일 '문화의 날'이어서 입장이 무료였으며, 경복궁 관광객들이 아주 많았습니다. 외국 아가씨들이 한복을 입고 경복궁을 거니는 모습이 마치 조선 시대에 와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역시 한복은 너무 아름다운 옷임이 틀림 없는 것 같습니다. 세상에 이런 옷 맵시가 어디 있겠습니까? 날씨는 무더워도 아름다운 우리나라의 최고의 궁궐을 거닌다는 기분에 젖어 아주 좋았습니다. 나는 경복궁에 오면 궁궐의 하나하나의 이름에서 많은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경회루향원정의 아름다운 연못 경치는 눈을 시원하게 합니다. 또한 건청궁의 국모 민비 살해 현장에 서면 비극적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의 굴곡에서 가슴이 매우 아프고 슬프기까지 합니다.

 

 산   책 : 걸음수 7,604 steps, 거리 4.96 km, 소모열량 304 kcal, 소요시간 01:27 hrs, 속도 3.4 km/h, 기온 28℃.

 코   스  광화문역 -  광화문광장 -  광화문 - 흥례문 - 근정전 - 사정전 - 강녕전- 경회루 - 흥복전- 향원정 - 건청궁 - 국립민속박물관 - '추억의 거리' - 건춘문 - 광화문 -> 광화문역.  

 

▶ 광화문 광장: 경복궁 가는 길

5호선 강화문역 (8번출구) 하차, 세종문화회관 

 

책 읽는 소녀

 

서시 (序詩)
                    운동주 (1917-1945)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시인 윤동주 (1917-1945)중국 길림성 회룡면 명동촌 출생. 연희전문대 졸업. 일본 릿코대학 문학부 입학. 그러나 피어보지 못한 꽃 같은 젊은 시인은 해방을 불과 6개월 앞두고 후쿠오까 형무소에서 28의 젊은 나이에 옥사하였다.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의 詩>.
 

한글을 소재로한 이 작품은 한글을 창제하고 지켜온 역사를 되짚어 볼 소 있수 있는 한글가온길 이야기 도보 여행길의 중심부에 위치한다. 한글가온길의 '가온'은  '가운데', '중심'을 뜻하는 순 우리말로 한글이 창제된 경복궁, 한글을 지켜온 한글학회 주시경 선생의 집터 등이 있는 종로구 새문안로 3길과 세종로 23길 일대 ( 세종대왕 광화문광장 - 경복궁 - 세종문화회관 - 한글학회 - 한글발전연구소 주시경 집터)로 한글 이야기가 가득한 한글의 중심거리다.  '서울의 미소'는 웃는 입 모양과 웃음을 묘사하는 의성어 '하하하'를 소재로 한 작품으로 자음 'ㅎ'이 가지고 있는 기하학적 조형요소를 입체적으로 구성하여 한글의 우수한 조형미를 부각시켰다. 거대한 스마일 이미지는 웃음을 시각적으로 형상화 함으로써 밝은 서울, 행복한 서울 시민의 표정을 상징하고 있으며, 길게 이어진 'ㅎ'의 행렬은 미래를 함께 향해 나아가는 서울 공동체를 표상하기도 한다. 'ㅎ'의 원통 내부에는 단청에서 보여지는 다양한 색채를 부여 함으로써 전통적인 가치를 토데로 다양성에 기초한 새로운 문화의 흐름을 주조하는 서울 시민의 문화의식을 나타내고자 한다.  

한글가온길 이야기 도보 여행:

세종이야기 전시관 - 광화문 광장 - 경복궁 - 세종로공원 - 세종문화회관 - 세종 예술의 정원(서울의 미소) - 한글10마당(구세군회관) - 한글학회- 한글이야기 안내판 - 도렴녹지공원 - 주시경집 터(용비어천가)  
 

요아네스버그 아트 갤러리 특별전 monet to warhol  모네에서 앤디워홀까지

협찬 스티리트 댄스 8.3 sat

 

책 읽는 청년

 


            정지용 (1902~1950)

누워서 보는 별 하나는 
진정 멀 - 고나.

아스름 다치랴는 눈초리와
금金실로 잇은 듯 가깝기도 하고,

잠 살포시 깨인 한밤엔
창유리에 붙어서 엿보노나,

불현듯 솟아나 듯
불리울 듯 맞아들일 듯

문득, 영혼 안에 외로운 불이
바람처럼 이는 회한悔恨에 피어오른다

흰 자리옷 채로 일어나
가슴 우에 손을 여미다.

 

* 아스름: 아스라히, 희미하게

* 다치랴는: 닫히려는

* 흰 자리옷: 흰 잠옷

* 가슴 우에: 가슴 위에

* 손을 여미다: 손을 모으다

 

 정지용 (1902~1950): 충청북도 옥천 출생. 1910년 옥천공립보통학교에 입학, 1913년 송재숙과 결혼. 1918년 서울휘문고등보통학교 입학하여 동인지 『요람』을 발간. 1919년 3.1운동 때는 교내 시위를 주동하다가 무기정학을 받기도 함. 1919년에 창간된 월간종합지 <서광>에 『3인』이라는 소설을 발표. 1922년 휘문고보를 졸업한 뒤, 시작(詩作) 활동을 하였고, 이듬해 1923년 일본 교토의 도시샤대학 영문과에 입학. 1926년 유학생 잡지인 <학조(學潮)> 창간호에 『카페 프란스』를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문단 활동을 시작. 1929년 대학 졸업후 귀국, 휘문고보 영어과 교사로 부임하여 해방이 될 때까지 재임. 1930년 『시문학』을 발간하고, 1933년에는 순수문학을 지향하며 한국 시단을 대표하는 인물로 떠오름. 34세 때인 1935년 그 동안 발표했던 시들을 묶어 첫 시집인 『정지용 시집』을 출간함. 1939년부터는 시뿐 아니라 평론과 기행문 등의 산문도 활발히 발표했으며, 1941년에는 두 번째 시집인 『백록담』을 발간함. 태평양 전쟁 발발로 작품 활동을 중단한 채 은거 함. 해방 이후 이화여자대학교의 교수가 되어 한국어와 라틴어를 강의하였고, <경향신문>의 편집주간으로 활동험. 1946년에 시집 『지용시선(芝溶詩選)』을 발간.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는 이화여대 교수를 사임하고, 지금의 서울 은평구 녹번동에 초당을 짓고 은거하며 『문학독본(文學讀本)』을 출간함. 이듬해인 1949년 2월 『산문(散文)』 출간.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난 뒤 서대문형무소에 수용, 이후 북한군에 의해 납북되었다가 1953년 평양에서 타계했다고 알려진다. 정지용은 1930년대에 이미 한국 현대시의 새로운 시대를 개척한 선구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시인 김기림은 “한국의 현대시가 지용에서 비롯되었다”고 평하기도 했다.

 

 

세종썸머페스티벌

 

2025 누구나 세종썸머페스티벌

기간: 2025.08.31 (일) 19:30
장소: 관화문광장
세종문화테켓 02-399-1000
사전 관람 신청

Swing & Jazz Nigjt
광화문에서 만느는 브로드웨이

정통 재즈밴드 라이브, 밴드 퍼레이드, 재즈 배틀, 스윙, 비밥 등
세대별 재즈의 감성을 담은 스윙 & 재즈댄스  등.

 

세종대왕 동상

 

광화문 방향

 

정부종합청사

 

" 빛으로 이어진 80년의 기록 "

 

정부종합청사

 

광화문(光化門):

 

경복궁의 남쪽 정문이다. 光化(광화)의 의미는 ‘임금의 큰 덕(德)이 온 나라를 비춘다’는 뜻이라고 한다. 1395년(태조 4) 에 경복궁이 건설될 때 함께 세워졌다. 광화문이라는 이름은 그냥 정문(正門)으로 부르다 세종때 붙여진 것이다. 광화문은 1592년 임진왜란 때 경복궁이 불타면서 같이 무너졌다. 이후 273년간 공터로 있다가 흥선 대원군이 경복궁을 다시 복원하면서 1865년 재건되었다. 현판 글씨는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무관 임태영의 글씨라고 한다.광화문의 천장에는 주작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후 광화문은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 청사를 지으면서 그 위치가 현재 건춘문 위의 국립민속박물관 터로 옮겨졌고, 한국 전쟁때 목조부분이 불에 타 없어졌다. 이후 광화문은 2006년 문화재청 주도의 경복궁 복원사업 일환으로 해체하여 고종 중기 모습으로 2010년 현재 위치에 다시  세워졌다. 

 

  관람요금:

- 일반관람 (경복궁)
대인; 내국인(만25세~만64세), 외국인(19세~64세)개인 3,000원단체 2,400원(10인 이상)

 

24세 이하 청소년, 65세 이상 노인, 한복 착용자, 국가유공자, 장애인 등은 무료 입장.

*  매월 마지막 수요일에는 문화가 있는 날 무료 입장.


- 통합관람권(경복궁,창덕궁):
대인; 내국인(만25세~만64세), 외국인(19세~64세):  개인, 단체  6,000원 (구입일로 부터 6개월 내 사용)

 관람시간:
 1월~  2월:   입장시간 09:00~16:00, 관람시간 09:00~17:00
 3월~  5월:   입장시간 09:00~17:00, 관람시간 09:00~18:00
 9월~10월:   입장시간 09:00~17:00, 관람시간 09:00~18:00
11월~12월:  입장시간 09:00~16:00, 관람시간 09:00~17:00

 

흥례문(興禮門):  

광화문과 근정문 사이에 있는 남쪽 문이다. 본래 홍례문(弘禮門)이었으나, 중건할 때 청나라 건륭제(乾隆帝)(1711~1799)의 이름인 홍력(弘曆)을 피하고자 흥례문으로 바뀌었다. 지금의 흥례문은 조선총독부 건물이었던 옛 중앙청을 철거한 다음 2001년에 복원한 것이다.
 

근정문(勤政門)
 
경복궁의 중심 건물인 근정전의 남문으로 좌우에 행각이 둘러싸고 있다. 조선시대 태조 4년(1395) 경복궁을 세울 때 함께 지었으나 임진왜란으로 불에 타 버렸다. 지금 있는 건물은 고종 4년(1867) 경복궁을 다시 지으면서 새로 만든 것이다.

 

경복궁(景福宮): 

조선왕조 개국 4년째인 1395년 (태조4)에 처음으로 지은 으뜸 궁궐이다. "하늘이 내린 큰 복"이라는 뜻으로 경복궁(景福宮)이라 이름 지었다. 북악산을 주산으로, 목멱산(지금의 남산)을 안산으로 삼아 풍수지리적인 터잡기에도 한양의 중심을 차지했다. 정문인 광화문 남쪽으로 관청가인 육조거리(지금의 세종로)를 조성하고, 그 연장선 위에 근정전, 사정전, 강녕전 등 중한 궁궐건물들을 일렬로 놓아, 왕조국가인  조선의 상징 축으로 삼았다. 임진왜란으로 완전히 불타 없어진 후, 1610년 제2의 궁궐인 창덕궁은 재건하였으나 경복궁은 270년 이상 폐허로 남게 되었다. 1867년 (고종4)에 비로소 왕조 중흥의 큰 업적을 이루기 위해 조선의 법궁인 경복궁을 중건하였다. 691,921m2 의 광활한 대지에 약 500여동의 건물들을 건립하였으며 조선 왕실의 전통과 현실을 조화시켜 전체적으로는 규칙적 배치를 따르면서 부분적 변화를 가미하였다. 중건된 경복궁은 정무공간을 중심부에 두고, 좌우 뒤편으로 왕족의 생활공간, 그리고 곳곳에 정원시설들이 배치되어 하나의 작은 도시를 이루었다. 일제강점기대부분의  건물들이 철거되어 중심부의 일부 건물들만 남았고, 광화문을 비롯한 외전 일부를 헐어내고 조선총독부 청사를 지어 궁궐의 정면을 막기도 했다. 1990년 부터 복원 사업이 꾸준히 진행되어, 종독부 청사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원래의 흥례문 행각을 복원했고, 왕과 왕비의 침전왕세자가 기거한 동궁을 비롯한 궁궐의 정문인 광화문도 다시 복원하여 경복궁의 원모습을 회복 중이다.   

궁궐 영역 번호:

1. 광화문과 궁궐담장, 2. 근정전 일원, 3. 사정전 일원, 4. 강녕전과 교태전, 5. 흠경각과 함원전, 6. 자경전 일원, 7. 동궁 일원, 8. 함화당.집경당과 흥복전, 9. 향원정과 건청궁, 10. 집옥재 일원, 11. 태원전 일원, 12. 경회루, 13. 주정전과 궐내각사, 14. 소주방 일원, 15. 자선당 기단과 주춧돌

 

영제교(永濟橋)  

 

흥례문과 근정문 사이에 영제교(永濟橋)가 있다. 태조 4년(1395) 경복궁을 건설할 때 이 다리도 만들었고, 영제교라는 이름은 세종 8년(1426)에 부터이다. 경회루 연못에서 흘러나와 근정문과 흥례문 사이를 지나 동십자각 옆의 수구(水口)로 나아가 삼청동천과 합류하는 물이 이 영제교를 통과한다. 궁궐 안 어구(御溝)를 금천(禁川)이라 하고 그 위에 놓은 다리를 대개 금천교(禁川橋)라 한다. 조선은 궁마다 별칭을 두었으니 경복궁의 금천교는 영제교(永濟橋), 창덕궁의 금천교는 금천교(錦川橋), 창경궁의 금천교는 옥천교(玉川橋)이다.

 

                                                 

* 경복궁 배치도

1. 근정전, 2. 수정전, 3. 경희루, 4. 사정전, 5. 강녕전, 6. 교태전, 아미산 굴뚝, 7. 동궁, 8. 소주방, 9. 자경전, 자경전 십장생 굴뚝, 10. 향원전, 건청궁, 11. 집옥재, 12. 태원전.

 

* 경복궁 대문:  

남- 광화문, 동- 건춘문, 서- 영추문, 북- 신무문, 계무문, 광무문

 

근정문

 

근정전(勤政殿):

 

조선시대 법궁인 경복궁의 중심 건물이다. 신하들이 임금에게 새해 인사를 드리거나 국가의식을 거행하고 외국 사신을 맞이하던 곳이다. 태조 4년(1395)에 지었으며, 정종과 세종을 비롯한 조선 전기의 여러 왕들이 이곳에서 즉위식을 하기도 하였다. ‘근정’이란 이름은 '천하의 일은 부지런하면 잘 다스려진다' 는 의미로 정도전이 지었다. 지금의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고종 4년(1867) 다시 지은 것이다. 건물 내부는 임금의 자리인 어좌가 있다. 어좌 뒤에는 ‘일월오악도’ 병풍을 놓았고, 위는 화려한 장식으로 꾸몄다. 근정전에서 근정문에 이르는 길 좌우에는 문무백관들의 지위를 표시하는 품계석이 차례로 놓여 있다. 근정전은 조선 왕궁의 위엄을 갖춘 웅장한 궁궐 건축물이다.
 

근정전의 품계석((品階石): 

 

품계석은 조선시대 문무백관 벼슬의 높고 낮음에 따라 궁궐의 정전 앞마당에 정렬한 24개의 돌이다. 조선시대에는 벼슬의 높고 낮음에 따라 정1품에서 종9픔까지 30품계로 나누었다. 나라의 조회나 하례, 국왕탄신, 혼례 등 중요한 행사시에 문무백관들은 자신의 벼슬 품계석 앞에 정렬했다. 정전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동쪽인 오른쪽에는 문관(文官), 서쪽인 왼쪽에는 무관(武官)이 정렬했다.

 

근정전...경복궁의 핵심 궁궐이다.

 

근정전 용상

 

근정전 뒤 인왕산 방향

 

사정문

 

사정전(思政殿

사정전은 왕의 집무실인 편전(便殿)으로 최고 통치자인 왕이 공식적인 업무를 처리하던 곳이다. 이곳에는 매일 신하가 왕을 배알하던 약식 조회인 상참(常參)을 비롯하여 경연(經筵), 윤대(輪對) 등 일상적인 국정 운영이 이루어졌다. 현재의 사정전은 고종4년(1867)에 중건한 것이다.

 

만춘전(萬春殿):


경복궁의 편전. 사정전의 보조 전각으로 사정전 동쪽에 있다. 왕과 신하들이 주로 겨울과 초봄에 편전으로 사용했던 건물이다. 편전은 평상시 임금이 신하들과 함께 나랏일을 의논하고 경연을 하던 곳이다.

 

사정전

 

향오문(嚮五門):

 

강녕전 남쪽 행랑의 전각문이다. 사정전에서 강녕전으로 가려면 이 문을 들어서야 한다. 1867(고종 4)년, 경복궁을 중건할 때에 만들었다. ‘향오(嚮五)’는 ‘오복을 향함’이라는 의미다. 

 

강녕전(康寧殿):  

강녕전은 왕의 일상생활 공간인 침전으로 연침(燕寢) , 연거지소(燕居之所)라고도 한다. 이곳에서 왕은 독서와 휴식 등 일상생활 뿐 아니라 신료들과 편히 만나 국정 현안을 의논하기도 하였다. 임진왜란으로 전소되었다가 고종 2년(1865)에 중건되었다. 1917년 화제로 창덕궁 희정당이 소실되자 희정당 중건을 위해 옮겨졌다. 지금의 강녕전은  1995년에 복원한 것이다. 
 

강녕전은 동쪽에 연생전과 연길당, 서쪽에 경성전과 응지당이 영역을 공유한다. 강녕전 영역은 앞에 나열된 다섯 채의 건물이 모두 침전으로 사용되었다고 알려졌으나 2019년에 발간된 <국영 경복궁영건일기>를 통해 연길당과 응지당은 퇴선(退膳)(수라간에서 만든 음식을 차리고 물리는 중간 부엌)이었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다.

 

연생전(延生殿):

 

1394년(태조 3년) 경복궁 창건 당시에 처음 지었다. 1553년(명종 8년)에 화재로 사라진 뒤 재건했으나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 때 불탔고 270여 년 뒤인 1867년(고종 4년)에 다시 지었다. 그러나 1876년(고종 13년)에 화재를 입었고 1888년(고종 25년)에 재건했다. 일제강점기인 1917년에 불타 없어진 창덕궁 내전을 재건할 때 조선총독부가 경복궁 내전 건물을 자재로 쓰기 위해 해체, 이전했다. 이후 80년 가까이 빈 터로 남아있다가 1995년에 복원하여 오늘에 이른다.

'연생(延生)' 뜻은 '생명(生)의 기운을 맞이한다(延).'이다. 동쪽은 전통적으로 봄을 의미했고, 만물이 싹트는 시기가 봄이기 때문에 동쪽은 생명, 탄생을 의미했다. 맞은 편에 있는 경성전(慶成殿) 이름은 '완성을 기뻐한다'는 뜻으로 연생전과는 서로 뜻이 이어지는 이름이다.

 

경성전(慶成殿):

 

강녕전 서쪽에 있는 건물이다. 1395(태조 4)년에 침전인 강녕전의 소침으로 처음 지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불탔으며, 1867(고종 4)년에 중건하였다. 1917년 창덕궁 내전에서 불이 나 건물이 전소하자, 이 건물을 헐어 복원하는 부재로 사용하였다.<원전 9> 1995년 이 권역을 복원할 때 함께 복원하였다. ‘경성(慶成)’은 ‘완성함을 기뻐한다’는 뜻이다. 

 

연길당(延吉堂):

1867년(고종4년)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이 경복궁을 복원할 때 만든 강녕전의 소침 중 하나다. 연길(延吉) 이라는 뜻은 복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강녕전 오른쪽에 있는 정면 4칸, 측면 3칸의 전각이다.

 

응지당膺祉堂):

1394년(태조 3년) 경복궁 창건 당시에 처음 지었다. 1553년(명종 8년)에 화재로 사라진 뒤 재건했으나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 때 불탔고 270여 년 뒤인 1867년(고종 4년)에 다시 지었다. 그러나 1876년(고종 13년)에 화재를 입었고 1888년(고종 25년)에 재건했다. 일제강점기인 1917년에 불타 없어진 창덕궁 내전을 재건할 때 조선총독부가 경복궁 내전 건물을 자재로 쓰기 위해 해체, 이전했다. 이후 80년 가까이 빈 터로 남아있다가 1995년에 복원하여 오늘에 이른다.

 

양의문

 

교태전(交泰殿):

 

교태전은 왕비의 침전이다. 이곳에서 왕비는 내명부의 수장으로서 궐 안의 살림살이를 총 지휘했다. 세종22년(1440)경에 건립되었으나 임진왜란으로 전소되었다가 고종2년(1865)에  중건되었다. 1917년 화재로 창덕궁 대조전이 소실되자 대조전 중건을 위해 옮겼다. 현재의 교태전은 1995년에 복원한 것이다.

 

왕과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과 강녕전에는 지붕의 방수를 목적으로 하는 지붕의 용마루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보의당(輔宜堂):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 남쪽 행각의 서편에 위치한 건물로,  보의(輔宜)'는 '천지의 마땅함을 보상하다'는 뜻이며, '주역'에서 유래한 용어라고 한다. 

 

왕과 왕비의 침전에 있는 우물,어정(御井)  

어정에 대한 기록은 태종 때에 처음 등장힌다. 기록을 보면 경복궁에는 모두 24 곳에 우물이 있었는데, 음식 짓는 수라간 우물, 빨래하는 세답방 우물 등이 있었으나 대부분 매몰되었다. 임금에게 올릴 물 어수는 반드시 어정에서 길어야 했으며 수부는 궁중에서 어정의 물을 길어 어수를 바치던 주방(酒房)의 종이다. 태종 때에는 어수 바치는 것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내시를 벌주었다고 한다. 강녕전 서쪽에 있는 왕의 어정은 두터운 돌 뚜껑을 씌운 것으로 보아 평소에 식용수로 쓰였을 지는 의문이라고 한다. 

 

강녕전 과 좌우 연생전, 경성전.

 

협선당(協善堂):

 

사정전 서쪽 행각에 있는 건물로, 1868년에 지어졌으며 1893년에는 왕자들의 교육을 위한 강학청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숭현문 위쪽 2칸의 수정전과 연결되어 있으며, 1876년 화재 이후 복원된 건물이다.

 

경회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