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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구릅/일상들 ( life )

② 경복궁 - ( 2025.08.27 )

by the road of wind 2025. 8. 31.

 경복궁 

- ( 2025.08.27 )

 

《  경회루, 향원정, 건청궁, 국립민속박물관  》

 

경회루 (慶會樓):

왕실의 큰 연회를 베풀거나 외국 사신을 접대하던 곳으로 1867년 재건되었다. 높은 2층 누마루에 올라 서쪽으로 인왕산, 동쪽으로 궁궐의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하며, 주위의 넓은 연못에는 뱃노리를 했다고 한다. 7 X 5칸, 바닥면적 933㎡ (282평)로 현존 목조 건물 가운데 가장 큰 규모다. 2층 마루는 3겹으로 구성되었는데, 중심 3칸은 천지인(天地人) 을, 그 바깥 12칸은 1년 12달을, 가장 바깥의 24기둥은 24절기를 의미하는 등 동양적 우주관을 건축으로 상징했다. 중건 당시에 경회루(慶會樓) 연못에 2마리 청동 용을 넣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실제로 1997년 준설공사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경회루

 

수정전과 궐내각사:

 

왕실과 밀접하게 관련있는 관청을 궁궐안에 설치해 궐내각사(闕內各司)라 불렀다. 비설인 승정원, 서작 편찬을 맡앗던 홍문관, 의료기관인 내의원 등 크고 작은 관청들이 근정전 서쪽에 있었다. 세종 때 한글 창제의 무대가 된 집현전은 지금의 수정전 자리에 있었다. 1867년 중건된 이곳은 왕의 출입이 빈번하여 관청으로는 드물게 정면에 월대를 두었다. 수정전은 일상 집무공간으로 사용하다가 1894년 갑오개혁 때 내각 본부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풍기대(風旗臺)... 보물제847호  

풍기대는 대 위에 구멍을 뚫어 깃대를 꽂고 그 깃대에 기를 달아 바람의 방향과 속도를 가늠했던 기상 관측기구이다. 18세기 유물로 추정하며, 탁자 모양의 돌 위에  긴 팔각기둥을 세우고 넝쿨무늬를 정교하게 새겼다. 본 풍기대는 경복궁 흥복전권역 복원공사 구역에 위치하고 있어, 공사기간 동안 불가피하게 이곳으로 임시 이전하여습니다.    

 

하향정(荷香亭):

하향정은 경회루 연지(蓮池) 북쪽에 있는 정자로, 1959년 지어졌다. 하향정은 일반 정자에서는 보기드문 육각형의 형태이며 규모는 적지만 건축 기법이 섬세하고, 익공(翼工) 형식의 조선 후기 궁궐 건축 양식을 따랐다.

 

경회루 방향

 

진덕문

 

함화당

 

백상문

 

집경당

 

향원정 연못....아름다운 연못이다. 선녀들이 곧 나타날 것 같은 연못의 아름다움이 마음을 감동시킨다.

 

향원정(香遠亭):

1873년 고종이 건청궁을 지을 때 옛 후원인 서현정 일대를 새롭게 조성하였는데 연못 한가운데 인공의 섬을 만들고 그 위에 육각형 정자를 지어서 ‘향기가 멀리 퍼져나간다’는 향원정(香遠亭)이라 불렀다. 원래 조선시대의 정자에는 창호를 두지 않고 사방이 개방되어 있는 것이 보통인데, 이 향원정은 사방에 창호를 달아서 바람을 막을 수 있게 해 놓고 있다. 당시 선진국이라 생각했던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취향교(醉香橋):

취향교는 건청궁 영역과 연못 안에 있는 향원정을 연결하기 위한 둥근 나무다리이다. 원래 향원정 북쪽에 있었으나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자 1953년 향원정 남쪽으로 옮겨 세웠다. 2017년 벌굴조사를 거쳐 취향교 원래 위치를 확인한 후 남쪽 다리는 철거하고, 사진 등을 참고하여 2019년 복원하였다. 

건청궁 방향... 조선의 명성황후께서 무참히 일본의 낭인들에게서 시해 당했던 현장이다. 건청궁에만 들어가면 마음이 아프고 애잔한 생각이 든다.

 

열상진원 샘


이 샘은 경복궁 창건(1395) 당시부터 있던 왕궁의 샘으로 옛날부터 물이 맑고 차서 음료수로 이용하였다. 글을 새긴 우물 뚜껑은 경복궁 중건(1868) 때 만든 것이다. 샘에서 솟아난 물이 두번 직각으로 꺾여서 연못으로 잔잔히 흘러들도록 만들었는데 이것은 향원지(香遠池)에 드러워진 정자와 꽃나무의 그림자가 물결에 흔들리지 않고 고요히 비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꺾어지는 수로는 둥근 돌로 통로를 만들어 흐르는 물이 더욱 생기를 띠게 한다.

 

집옥채 방향

 

집옥재(集玉齋) 

 

집옥재는 경복궁 북문인 신무문과 건청궁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고종28년(1891) 창덕궁 함녕전의 별당이었던 집옥재, 협길당 등을 이건한 것으로 서재와 외국 사신 접견소로 사용되었다. 집옥재는 양 옆을 벽돌로 쌓아 전통 양식에 중국풍을 일부 가미하여 만든 건물로 좌,우에는 팔우정과 협길당이 하나의 복도로 연결되어 있다. 

 

 

필성문

 

추수부용루

 

추수부용류 & 장안당

 

함광문

 

옥호루, 사시향루

 

곤녕합(坤寧閤)

곤녕합은 명성황후가 일상 생활 공간으로 사용하던 건물로 1895년 10월 8일 명성황후가 일본인 자객에 의해 시해된 을미사변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7년간 왕실 의사로서 왕지를 모신 미국인 앨러스 벙커( Annie Ellers Bunker) 여사는 명성황후에 대해 성품이 부드럽고 친절하며 조선 여성의 미를 갖춘 미인이라고 회상하였다. 1895년 2월 청일전쟁 이후, 일본이 만주까지 침략하자 조선 왕실은 러시아와 손을 잡고 일본을 국내에서 철수시키려 하였다. 이에 일본 군부는 왕실을 압박하는 비상사태를 만들기 위해 10월 8일 새벽에 민간인 복장을 한 일본 장교들이 건달들을 끌고 건청궁에 난입하여 왕비를 시해하였다. 폭도들은 왕비의 시신을 건청궁 동쪽 언덕 녹산 자락에서 태우고 남은 뼈를 그 자리에 묻었다. 이후 왕실에서 이를 거두어 경운궁(현 덕수궁)에 시신을 안치하고 국장을 지냈다.     

 


쓸쓸한 달빛 아래
내 그림자 하나 생기거든
그땐 말해볼까요 이 마음 들어나 주라고
문득 새벽을 알리는 그 바람 하나가 지나거든
그저 한숨 쉬듯 물어볼까요 나는 왜 살고 있는지

나 슬퍼도 살아야 하네
나 슬퍼서 살아야 하네
이 삶이 다 하고 나야 알텐데
내가 이 세상을 다녀간 그 이유
나 가고 기억하는 이
나 슬픔까지도 사랑했다 말해주길

 

(....)

-  조수미, If I Leave( 나가거든), '명성황후'  OST, 

 

청휘문

 

초양문

 

건청궁

 

건청궁 (乾淸宮)

경복궁 중건사업이 끝난 이듬해인 1873년, 고종은 경복궁 북쪽 동산정원인 녹산(鹿山)과 향원정(香遠亭) 사이에 건청궁을 건립케 하고 명성황후와 기거하였다. 건청궁의 건축양식은 궁궐의 침전 양식과는 달리 양반가옥 살림집을 응용하여 사랑채(장안당), 안채(곤녕합), 부속건물(복수당), 행각 등으로 구성되었는데 그 규모는 양반가옥 상한선인 99칸의 2.5배 되는 250칸이다. 건청궁이 건립된지 3년이 지난 1876년, 경복궁에 큰불이 나자 고종은 창덕궁으로 생활공간을 옮겼으며, 1885년에 다시 건청궁으로 돌아와 1896년 아관파천 때 러시아공관으로 피신 할 때까지 10여년간 줄곧 이곳에서 지냈다. 한편 건청궁은 1887년 미국의 에디슨 전기회사에서 발전기를 설치하여 우리나라 최초로 전등이 가설된 곳이며, 1895년 을미사변 때 명성황후가 곤녕합에서 일본인 자객에게 시해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일제시대에 들어와 경복궁의 건물들이 차례로 파괴되면서 건청궁은 1909년에 철거되어 이 자리에 조선총독부 미술관이 지어졌으며, 한동안 국립 현대미술관으로 사용되다가 1998년에 철거되었다. 문화재청은 건청궁을 원래 모습으로 복원하여 2007년 10월 부터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다.    

 

향원정과 취향교

 

취향교(醉香橋)

취향교는 건청궁 영역과 연못 안에 있는 향원정을 연결하기 위한 둥근 나무다리이다. 원래 향원정 북쪽에 있었으나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자 1953년 향원정 남쪽으로 옮겨 세웠다. 2017년 벌굴조사를 거쳐 취향교 원래 위치를 확인한 후 남쪽 다리는 철거하고, 사진 등을 참고하여 2019년 복원하였다. 

 

 

국립민속박물관 출입구...."재입장불가"

 

국립민속박물관

 

 

=== < ▼ 2024.04.28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내부 >===

 

송액영신(送厄迎新)...나쁜 액을 쫒아내고, 밝은 새해를 맞이한다는 의미이다. 보통 설 직후 대보름에 날리는 액막이 연 날리기 등에 쓴다.

봄농사...쟁기

화전과 두견주

 

꽃놀이와 봄소풍

봄소풍 가방과 도시락 등

봄나물과 약초

푸른 모시치마, 모시 저고리

가을걷이

추석

배틀

상달 고사

김장

 

 

=== < ▲ 2024.04.28 사진: end >===

 

 

오촌댁

오촌댁(梧村宅)    :  1984년 남병혁 기증. 원소지: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원구1리

조선후기 이 지방의 중산층 가옥 형태를 잘 보여주는 가옥으로,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원구1리에 있던 것을 남병혁씨로 부터 기증받아 옮긴 것이다. '오촌댁(梧村宅)'이라는 명칭은 영양남씨(英陽南氏) 남용진(1887~1912)이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오촌리 출신의 재령이씨(載寧李氏) 와 혼인하면서 붙여진 택호에서 비롯되었다. 건물이전을 위한 해체 과정에서 "道光貳拾捌季戊申三月二日申時立柱上樑同日時(도광이십팔년무신삼월이일신시입주상량동일시)"라고 적힌 상량문이 발견되어, 건립 연대는 1948년임을 알 수 있다. 가옥의 중앙에 마다이 있는 口자 형태로, 지붕의 용마루가 끊어지지 않고 연결되어 안채와 사랑채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거주공간으로 네개의 방(안방,상방,사랑방,문간방)을 비롯해, 안마루(안대청), 정지(부엌), 물건을 넣어두는 도장방(방에 부속된 수장공간)과 고방(창고방)이 있다. 외부출입은 뒤쪽을 제외한 세 방향이 다 가능하며 뒷마당에는 장독대를. 오른쪽 마당에는 디딜방앗간과 우물, 화정실을 배치했다.

 


 

▶ 7080 추억의 거리:

 

7080 추억의거리  

01. 북촌국민학교, 02. 현대문구, 03. 근대화수퍼, 04. 꾸러기만화, 05. 만나분식, 06. 화개이발관, 07. 풍년상회, 08. 약속다방, 09. 스타의상실, 10. 서울사장, 11. 종합전파사, 12. 장수탕

 

 

연자방아

 

물래방아

 

문인석

 

남근석

 

 

효자비

 

장승

 

국립민속박물관 안내도  

1 정문, 2 안내, 3 전통문화배움터, 4 오촌댁, 5 제수합, 6 경복궁 매표소, 8 전시관입구, 9 어린이박물관, 10 추억의 거리, 11 어린이박물관 교육관(별들제)  12 야외놀이터
 

 

국립민속박물관 정문

 

건춘문

 

경복궁 주차장 입구


- 승용차: 기본 1시간 3,000원, 추가 10분당 800원.
- 중.대형차: 기본 1시간 5,000원, 추가 10분당 800원.

 

동십자각

 

정부종합창사 & 광화문

 

광화문 

 

수문장 교대의식 안내:  

- 수문장 교대의식:  10시, 14시 (소요시간 20분)
- 광화문 파수의식:  11시, 13시 (소요시간 10분)
- 수문군 공개훈련:   9시 35분, 13시 35분 (소요시간 15분)

 

▶ 광화문 광장:

 

주한미국대사관

 

" 여름은 동사의 계절
뻗고, 자라고, 흐르고, 번지고, 솟는다 "


- 교보문교

 

포시즌스호텔 서울

 

다시 세종문화회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