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북한강철교, 두물머리, 세미원
- ( 2025.10.29 )
《 세미원, 용담호 》

觀水洗心(관수세심) - 물을 보며 마을을 씻고
觀花美心(관화미심) - 꽃을 보며 마음을 아름답게 하라
세미원 관람안내도:
연꽃박물관, 국사원, 장독대분수, 페리기념연못, 백련지, 홍련지, 세계수련관(열린정원), 열대수련정원, 유상곡수, 세한정, 사라의 연못, 배다리, 상춘원, 두물머리
사진:
불이문 / 장독대분수 / 연꽃박물관 / 국사원 / 배다리-열주수교 / 세한정
물과 꽃의 정원
세미원(洗美苑):
세미원(洗美苑)의 명칭은 물을 보며 마음을 씻고 꽃을 보며 마음을 아름답게 하라는 옛 성현의 말씀에 기원했습니다. 한강 상류에 위치한 세미원은 수질정화 기능이 뛰어난 연꽃을 주로 식재하며 봄, 여름, 가을, 겨울 각 계절에 맞게 정원을 꾸며 사계절 언제나 아름답습니다. 또한 생태환경 교육과 체험교육, 전시활동을 겸하는 복합문화공간을 지향합니다.
** 사진찍기 좋은 코스:
연꽃 박물관-> 국사원-> 자옥대분수-> 페리기념연뭇-> 열대수련연못-> 세한정-> 배다리-> 상춘원-> 두물머리
** 휠체어로 이동하기 편한 코스:
연꽃박물관-> 메타세콰이어길-> 홍련지 및 백련지-> 고가다리 밑

매표소 & 배다리

요금표:
- 일반: 7.000원 (19세 이상 성인),
- 우대: 4,000원 (6세 이상 어린이, 청소년, 65세 이상, 장애인 경증(4-6급)
- 단체: 4,000원 (30인 이상 (중복불가))
- 무료: 5세 이하, 양평군민, 국가유공자 및 배우자, 기초생활수급 1종 대상자, 의사자 유족 및 의상자.
반입금지:
- 반려동물 등 허가받지 않은 동.식물
- 모든 음식물
- 타인의 관람에 피해를 줄 수 있는 물품
- 악기, 앰프, 화성기 등













세미원 배다리....세미원 세한정에서 두물머리 한강 구간에 선박 44척을 연결해 만든 주교(舟橋)로, 길이는 245m (교량구간 200m) 폭은 4m 임,
세미원 배다리는 1795년 조선후기 정조대왕이 아버지 사도세자 묘인 화성 현릉원을 참배하기 위해 서용보, 정약용에게 지시해 한강에 설치했던 주교(舟橋)를 재현해 만든 것으로, 물과 꽃의 정원으로 널리 알려진 세미원과 남.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를 선박 44척을 이어 다리형태로 연결했다. 제작 과정에는 역사 문헌인 주교사절목(舟橋節目)의 주교도와 노량주교도섭도를 최대한 재현하는데 주안점을 뒀다. 배 한척은 강의 상류를 향하고, 한 척은 하류를 향하도록 하여 서로 교차시켜가면서 늘여 세웠다. 강안 양끝에는 각각 홍살문을 세워 왕의 행차에 대한 권위와 경건함을 상징하는 문을 설치했다. 각 배에는 조선시대 군대를 지휘하는데 사용한 오방기 (五方旗)와 고초기(高招旗)가 걸려있다. 세미원 배다리는 정조대왕의 효심과 정약용 선생의 지혜로움을 상징하는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잇으며, 세미원과 두물머리를 잇는 중요한 통로로 관광객이 우회하는 불편함을 해소하고자 설치했다. 2012년 7월 21일에 처음 설치했고, 2024년 4월 12일에 재설치했다.

배다리를 건너며(過舟橋)
- 다산 정약용
해마다 정월달이 돌아오면 _ 歲歲靑陽月 (세세청양월)
난여가 화성으로 거둥하시지 _ 鑾輿幸華城 (난여행화성)
가을이 지난 뒤에 배를 모아서 _ 船從秋後集 (선종추후집)
눈 내리기 이전에 다리 만드니 _ 橋向雪前成 (교향설전성)
새 나래 붉은 난간 두 줄로 서고 _ 鳥翼紅欄夾 (조익홍란협)
고기비늘 흰 널판자 가로로 깔려_ 魚鱗白板橫 (어린백판횡)
선창가의 저 바위 구르지 않아 _ 艙磯石不轉 (선기석불전)
천년토록 임금의 마음을 알리 _千載識宸情 (천재식신정)

초의여! 양평에 삽시다.
정약용(丁若鏞, 1762-1836)
이 글은 정약용 선생께서 해남 대흥사 초의스님에게 양평에 올라와 살 것을 제안하신 서한 중 두물머리에서 강물을 따라 오르내리며 시를 짓고 거문고를 타며 함께 즐기면서 살자고 권유하는 내용을 발췌한 것입니다. 아래 그림은 겸제 정선(謙齊 鄭敾, 1676-1759) 선생께서 두물머리 일대의 풍경을 그린 독백탄도(獨柏灘圖) 입니다.
소설암(용문산에 있던 암자)에서 시내를 따라 몇 리 쯤 내려오면 녹효수(여주 쪽에서 올라오는 한강)와 만납니다. 여기서 작은 배를 타고 가울을 따라 20여리 내려오면 두 물줄기가 서로 합쳐지는 곳에 이르지요. 이곳이 바로 유산별서(酉山別墅)입니다. 그 사이의 물빛과 산빛, 삼각주와 모래톱의 자태는 모두 뼈에 저밀 듯 해맑아, 깨끗함이 눈길을 빼았는다오. 매년 3월 복사꽃이 할짝피면 강물을 따라 오르내리면서 시를 짓고 거문고를 타며 이 맑고 한가로운 경계에서 논다면 이 또한 인간세상의 지극한 즐거움이 아니겠소? 선만자(善男子)여! 뜻이 있으신가? 만약 뜻이 있다면 나를 따라오시오.
- 늙은 초부 다산 씀 -


추사하루방
우리역사상 가장 위대한 서예가요 대학자이신 추사 김정희 선생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우리나라 맨 남쪽 제주도 끝자락 대정고을에서 귀양살이를 하게되었다. 가시울타리가 둘러진 외딴 초가집에서 외롭고 쓸쓸한 삶을 사셨던 추사 선생의 공허하고 텅빈 마음을 뻥 뚫린 가슴의 하루방을 통해 표현하고 추사하루방이라 명명하였다.

세한정
국보180호인 추사 김정희 선생(1786-1856)의 세한도를 기본으로 하여 세미원의 한부분에 소나무와 잣나무를 소재로 정원을 조성하고 그 이름을 세한정이라 명명하였다.




송백헌


세한도의 긴 여정
세한도는 200여년 동안 이리 저리 유랑의 길을 걸어왔다. 추사 김정희 선생이 제주도 유배 생활 중이던 1839년, 세한도를 완성하여 제자 이상적에게 보낸다. 제자 이상적은 스승이 보내준 세한도를 중국으로 가져가서 중국의 학자들에게 보여주고 제영을 받아 다시 제주도의 스승께 보여드린다. 그 후 세한도는 일제시대 때, 추사를 연구하던 경성제국대학의 일본인 후지츠카 교수의 손에 넘어가고 후지츠카 교수는 세한도를 일본 동경으로 가져간다. 이에 서예가 손재형 선생은 동경으로 건너가 후지츠카 교수에게 두 달여간의 끈질긴 설득 끝에 1944년, 세한도를 한국으로 되찾아온다. 굥교롭게도 그 해 후지츠카 교수의 집이 폭격을 맞아 많은 추사의 자료가 불타 버린다. '세한도의 긴 여정'은 세한도가 이렇듯 험난한 과정을 거쳐 오늘에 있기까지의 과정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그림으로 그려 전하고자 제작되었다.

1. 명문의 지집안에서 귀하게 태어나다. (1786년 (정조 10년), 1세)
추사는 1786년 충청남도 에산군 신암면 용궁리에서 아버지 김노경과 어머니 기계 유씨 사이에서 장자로 태어났다. 대대로 높은 벼슬을 지내던 이름 난 명문 가문인 경주 김씨의 자손으로 태어낫으며 영조대와의 둘째 딸 화순옹주가 증조모로 왕실의 훈척이 있다.

2. 어릴 때부터 글씨를 잘 써 세상을 놀라게 하다. (1792년 (정조 16년), 7세)
어릴 적 부터 글씨를 잘 써 세상에 소문이 자자하였다. 당시 73세였던 명재상 재재공이 추사가 쓴 입춘첩을 보고 글씨로 이름을 날릴 것을 예언하며 담소를 나누었다. 8세 때는 절손이 된 큰아버지 댁으로 양자를 가게 된 후 어린 나이에 쓴 것으로 보이지 않는 문안 편지를 남겨 사람들을 감동 시켰다.

3. 중국에서 학문의 세계를 넓히다. (1809년 (순조 9년), 24세)
24세 젊은 나이로 사신으로 떠나는 아버지를 따라 중국에 가 평소에 만나고 싶던 대학자들을 찾아뵙고 학문을 토론하여 중국 학계를 놀라게 했다. 특히 중국의 원로학자인 옹방강(78세)과 학계에 떠오르는 학자인 완원(47세)은 추사에게 실학 고증학 등의 핵심을 알려주며 추사의 뛰어난 자질을 알아보고 제자로 삼았다.

4. 조선의 금석학을 발전시켰다. (1816년 (순조 16년), 31세)
추사의 학문 세계는 유교는 물론 불교, 노장, 실학 그리고 금석학, 고증학에 까지 다방면에 일가견을 이루었다. 31세에 북한산에 있는 이름 모르는 오래된 고비(古碑)가 진흥왕의 순순비라는 것을 처음 밝혔다. 추사는 북한산 진흥왕순수비를 고증하기 위해 여러 차례나 북한산 비봉에 올랐으며 우리나라의 옛 비문들을 연구하여 조선 금석학을 독립된 학문분야로 발전 시켰다.

5.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오르다. (1819년 (순조 19년), 34세)
성균관 유생에게 치르는 시험에서 제술(製述, 글짓기)로 수석을 차지하였고 이듬해 4월 25일 문과에서 병과 8위로 급제하였다. 드디어 관직에 올라 정치에도 능력을 발휘하였다. 대리청정하던 효명세자의 특별한 총애를 받아 세자를 보좌하였으니 이로 인해 소인배들의 질투와 시기의 대상이 되는 시발점이 되기도 하였다.

추사 김정희 선생 글씨

7. 누명을 쓰고 제주도에 유배되다. (1840년 (현종 6년), 55세)
경주 김씨 가문 중에 특히 안동 김씨의 집중적인 모함을 받은 추사는 결국 억울한 누명을 쓰고 제주도 대정현에 위리안치(圍籬安置) 되었다. 귀양가는 뱃길 중간 쯤 갑자기 풍랑이 심하게 일어 모든 사람들이 죽었구나 하고 체념을 했지만 추사는 뱃전에 홀로 앉아 배의 방향을 정확히 알려주어 아침에 출발한 배가 저녁에 무사히 제주에 도착해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8. 우연히 중국에서 책을 구해준다. (1843년 (현종 9년), 58세)
추사의 타는 목마름을 채워 줄 한 모금의 시원한 냉수가 있었으니 바로 제자 이상적(李尙迪, 1804-1865)의 책 선물이었다. 스승의 외로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우선 이상적은 직업이 대대로 통역관이었다. 사행(使行)으로 중국 북경에 갈 때 마다 새로 발간되는 명서들을 구해 추사에게 보내주었다. 북경에서 제주도 남쪽 끝까지 말에 실리고 배에 실리고 동침에 지워져 스승 추사에게 전달 되었다.

세한도

9. 외롭고 쓸쓸하게 귀양살이 하다. (1843년 (현종 9년), 58세)
제주도 남쪽 끝 바닷가의 조그마한 집 탱자나무 울타리. 감옥 아닌 감옥 속에서 허름한 잠자리, 보잘 것 없는 시골 음식,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외ㅗ움은 겹겹히 들려오는 모진 파도와 같았다. 그러나 이 모든 괴로움보다 더 모진 고통이 있었으니 손에 들고 읽을 마음의 양식인 책이 없다는 것이다. 독서에 대한 갈급함이 지식인으로서 가장 견디지 못할 고문이었다.

11. 초선 최고의 문인화가 탄생하다. (1844년 (현종 10년), 59세)
세한도를 완성한 후 추사는 무언가 허전하였다. 심심파적으로 돌 하나를 집어 들어 칼을 대기 시작하였다. 장무상망(長毋相忘) 은 온 정성과 심혈을 기울여 새긴 네 글자의 인장을 세한도의 한 귀퉁이에 찍으면서 추사는 마음 속으로 이렇게 부르짖었다. "여보게 우선! 우리 영원히 잊지마세! 고맙네! " 추사의 눈가에 이슬이 맺혀 있었다.

12. 중국의 지성인들이 감동받다. (1845년 (현종 11년), 60세)
우선은 세한도를 가지고 중국 연경에 가서 추사와 교분이 있거나 홍보하던 중국 학자들을 모아 세한도를 펼쳐보였다. 중국 학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고 깊은 신믕소리 같은 찬사가 여기저기 쏟아졌다. " 추사 선생도 훌륭하고 이상적 당신도 훌륭하오. 이 세한도 또한 세상에 없는 보물이오!" 단전에 13명의 학자들이 제영(題詠)을 앞다퉈 썼다. 참여하지 못한 학자들의 제영도 후에 함께 하게 되어 16명의 제명이 세한도의 뒤를 장식하게 되었다.

김정희, <세한도(歲寒圖)>, 1844, 수묵화
23.0X69.2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국보 제180호.
추사 나이 59세 되던 1844년, 제주도에 유배온지 5년이 되었을 때, 추사는 생애 최고의 명작으로 꼽히는 <세한도(歲寒圖)>를 제자인 이상적에게 그려주었다. 제자인 역관 우선 이상적은 스승 추사가 귀양살이 하는 동안 연경에서 구해온 귀중한 책을 정성으로 보내주었다. 추사는 그 고마운 마음의 표시로 <세한도>를 그려 준 것이다.

13. 손재형 나라의 보물을 되찾아오다. ( 1944년 )
추사가 세한도를 그린 지 80여년 후 우여곡절과 잦은 풍상을 거치며 세한도는 흘러흘러 후지츠카 경성제국대학교수(1879~1948)에게로 넘어가게 된다. 전세가 불리해 짐을 깨닫고 고향인 동경으로 들어가면서 추사 선생의 모든 자료를 함께 가지고 갔다. 이 소식을 접하고 가장 놀란 사람은 서예가로 명망 높은 손재형(1903~1981)이었다. 추사 자료의 해외 반출이 안타까웠다.

14. 민족의 보물이 불타버릴 뻔하다. (1944년)
"돌려 주십시오. 우리 민족의 혼이 깃든 작품입니다. 돈은 제가 준비해 왔습니다. 세한도 하나 만이라도 돌여 주십시오." 두달여 무릅 끓고 끈질기게 간구한 손재형의 손에 드디어 세한도 작품이 돌려졌다. "좋소. 당신의 열정이면 이 세한도를 잘 보전 하리라 믿소. 조심해서 가지고 가시오. 세상이 온통 포화 속이도!" 세한도를 받아 든 손재형은 벅찬 가슴을 누르고 귀국했다. 우연일까? 얼마 후 후지츠카 교수의 집에 포탄이 떨어져 추사의 많은 자료들이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15. 잘했구나! 잘했어. (1949년 )
손재형은 상당 기간 동안 세한도 이야기를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일본의 패망과 그리고 좌우의 분열과 혼란 등이 이유였으리라. 대한민국이 탄생하고 사회가 어느 정도 안정되어가는 1949년 애국심이 남다르고 학문의 세계가 당대 최고였던 정인보, 이시형, 오세창 선생을 찾아가 세한도에 대한 설명을 드리고 발문을 받았다. " 자네 같은 사람의 애국심 더택에 우리가 해방되고 독립이 된 것이네. 잘 했구나! 잘 했어! "





























일심교



어머니
최상만
생각만으로도 가슴속에
별이 되는 이름
지상의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 이름
어머니
평생토록 정화수에
눈물꽃 피우시더니
시간이 흘러도 애절한 그 마음
장독대 위에 남아
오가는 사람들
두 손 모으게 하네



임신서기석의 역사적 의의, 해석
- 임신서가석의 역사적 의미:
신라시대 제작된 금석문(金石文)이다. 1934년 경상북도 월성군 햔곡면 금창리 석장사(石丈寺)터 근처에서 발견되었다. 비석은 상하길이가 약 30cm, 너비는 윗부분이 12.5cm이나 아래로 내려갈 수록 좁아지고 있다. 새겨진 연대가 임신년(壬申年)으로 정확히 기록되어 있어 그 제작연대를 대략 612년 (진평왕34년)으로 추측할 수 있다. 신라의 젊은이들이 국가에 충성할 것을 맹세하고 인격 도야에 힘쓸 것과 학문 연마에 힘을 다할 것을 서약하고 그 내용을 돌에 새긴 일종의 서약문이다. 젊은 신라인들의 투철한 국가관과 친구간의 덕업정신과 학문연마의 면면을 살필 수 있어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 중 가장 연약해 보이던 신라가 통일의 대업을 달성하는 그 원동력을 여기서 살필 수 있다.
- 임신서기석 해석:
임신년 6월 16일 두 사람이 서약한 것을 기록한다. 하느님 전에 맹세하노니 지금부터 3년후 까지도 국가에 충성을 다하고 개인적으로는 아무 과실이 없기를 서약한다. 만일 서로가 이 서약을 어기면 하느님께 큰 죄를 짓는 것이라 맹세한다. 만약 나라가 평안치 않아 세상이 큰 혼란에 빠진다면 마땅히 맹세한 것을 실행에 옮길 것이다. 또한 그 보다 앞서 신미년 7월 22일에도 크게 맹세했으니 시경(詩經), 상서(尙書), 예기(禮記), 춘추전(春秋傳)을 3년 동안 완전히 습득하기로 서약하였다.
보물 1411호, 신라시대,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 한산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 큰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 어디서
일성 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
- 1969년 2월 28일 충무공 탄신 424주년 기념일에
이충무공 한산섬시 후학 소천 손재형 씀.
* 수루(戍樓): 적군의 동정을 살피기 위해 성 위에 지은 망루.
* 일성호가(一聲胡茄): 한 곡조의 피리소리.




不二門 (불이문)
불이문은 사찰로 들어가는 3문(三門) 중 하나로, 큰 사찰의 본전에 이르는 마지막 문을 말한다. ‘불이’는 본래 진리 자체는 둘이 아님을 뜻한다고 한다. 불이문을 해탈문(解脫門)이라고도 한다. 보통 큰 사찰을 들어서다 보면, 세 종류의 문을 지나게 되어 있는데, 삼문(三門)이라 하며, 첫째 일주문(一柱門), 둘째 금강문(金剛門) 또는 천왕문(天王門),그리고 마지막으로 불이문(不二門) 또는 해탈문(解脫門)이있다. 나는 어릴 때 고향의 절에 가면 천왕문의 양편에 무시무시한 큰 칼 차고 눈이 튀어 나오고 부리 부리한 사천왕 형상이 너무 무섭고 하여 절이 너무 싫었다. 나중에 성인이 되고서는 칼을 차고 악귀를 쫒는다는 것인가 생각하기도 하였다. 세미원은 연꽃의 세상이므로, 자연스럽게 연꽃을 높게 평가하는 불교의 용어를 차용한 것 아닌가 생각해 본다.


세미원 연꽃박물관

세미원 공용주차장


한강수계 두물쉼터

▶ 용담호:

연못의 연잎사귀가 말라 버려 영담호의 모습이 전혀 다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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