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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구릅/my cycle life

뚝섬유원지~소요산역 (편도, 63.9 km)  - (2008-10-19)

by the road of Wind. 2011. 5. 9.

뚝섬유원지~소요산역 (편도, 63.9 km)  - (2008-10-19)

 

그날 날씨는 화창헀다. 가을 냇가 연도엔 코스모스가 만발하여 가을의 정취가 물씬 하였다. 뚝섬유원지 한강변에서 경기도 동두천시 소요산역 있는 곳까지 싸이클링을 해 볼 요량으로 길을 나섰다. 자전거 운행중 서울 북부 도봉산역 못 미쳐서 어떤 외국인을 만나기도 하였다. 이 분은 주한 미군 소속 군무원으로서 기술자였다. 10월쯤 미국 본토로 간다고 하였다. 본토에서 정년 퇴직을 한단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같이 진행을 하였다. 이 분의 목적지는 동두천 보산동에 있는 캠프 케이시란다. 아, 잘 되었다. 길동무도 생겼고.  의정부를 거쳐 어느덧 양주역에 도달하였다. 양주역 뒤편 구멍가게 있는 곳을 안내하여 캔맥주와 안주를 조금 사서 서로 이야기하며 재미있게 마셨다. 굿 굿 한다. 그래 좋을 거다. 한국 맥주 짱아닌가? 그리고 계속 길을 간다. 한적한 길이다. 우리 둘 외에 아무도 없다. 조금 오르막을 지나서 뒤돌아 보니 MTB를 타고 오던 이 뚱뚱한 군인 아저씨 따라 오질 않는다. 무슨일인가 하고 뒤돌아 다시 내려가서 보니 자전거 뒷쪽 바디 일부분이 찢겨나갔던 것이다. 워낙 몸무게가 있었고 무슨 짐도 가뜩 얹어 싣고오다 보니 중국산 자전거가 견디지 못 한 것 같았다. 하는 수 없이 '유 고 바이 트렌인' 하며 더 이상 진행 불가능, 그리고 수리 할 곳도 없음을 이야기를 해 주었다. 이 아저씨 난감 표정. 뭣을 뒷짐 가방에서 꺼낸다. 콜라등 음료수다. 당신 이거 가져가서 먹으라는 것이다. 땡큐! 땡큐! 고맙소 반갑소이다. 아무튼 양주 전철역으로 올라 가는 것을 보며 빠이빠이 전송까지 하고 나혼 자 외롭게 진행을 하였다. 양주 시청앞을 지나고 덕계역까지는 자전거 도로가 없어 차도 옆 인도나 가장자리를 이용 조심 조심 갔었다. 덕계부터는 자전거 도로가 잘 닦여 있었다. 베리 굿. 신나게 밟으며 가을을 느끼며 감상하며 대한민국 아니 세계에서 가장 기분 좋은 사나이가 되어 라이딩을 하였다. 소요산역 앞에서 시원한 것으로 목을 축이고 시간도 늦고 해서 전철로 가기로 하였다. 그런데 아플싸! 왠 할아버지들이 이렇게 많으세요?  역무원이 다가와 사정상 한번만 봐 준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근근히 만원 전철을 타게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자전거 탄 자 자전거로 돌아 가야지 전철은 뭐야? 하는 눈화살들이 여기 저기서 날라왔다. 나는 모른 척 름름하게 바닥만 응시하거나 때론 눈감고 하며 정다운 홈 까지 돌아왔다.  오늘 좋았읍니다. 많이 좋았어요. 땡큐! 땡큐!    

 

 

캠프 케이시 (camp Casey) :  한국전쟁에 참가했다가 전사한 미국 공군장교 휴 보이드 케이시 소령을 기리기 위하여 미군 기지 이름에 붙인 것이다.  케이시 소령은 1952년 1월11일 헬기에 탑승해 동두천시 상공에서 전투하던 중 중공군이 쏜 지상포화를 맞아 헬기가 추락하는 바람에 27세의 나이에 숨을 거뒀다. 주한 미군 기지들의 이름은 모두 "캠프+ 이름" 의 형식을 띄고 있는데 이들은 대부분 한국전등에서희생된 미군 장병들의 이름을 따서 만든 사연들을 갖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대구에 있는 [캠프 워커]는 1950년 자동차사고로 숨진 워커중장을, 원주의 [캠프 롱]은 1951년 횡성전투에서의 전과로 훈장을 받은 롱중사를 각각기려 명명됐으며, 평택에 있는 [캠프 험프리]는 지난 61년 헬기사고로 숨진 험프리 준위의 이름을, 의정부에 있는 [캠프 스탠리]는 2차대전중 숨진 스탠리대령의 이름을 붙인것이다. 하지만 전사한 군인의 이름만으로 부대 이름을 짓는 것이 다 아니고 공훈이있는 부대원을 기리기 위해 부대이름을 짓는 경우도 많다.  대구에 있는[캠프 헨리]는 1950년 안동지구에서의 전투로 훈장을 받은 2사단 소속 헨리중위의 이름을 딴 것이며, 또 용산 미8군기지 식당인 [하텔 하우스]는 1951년 고방산리 전투에서의 전과로 훈장을 받은 2사단소속 하텔중위를, 판문점 인근지역 최전방초소인 [올렛]과 [콜리어]는 6.25때 훈장을 받은 올렛(9사단 소속)과 콜리어(40사단소속) 사병을 각각 기려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판문점 경비부대인 [캠프 보니파스]는 지난 76년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때 희생된 보니파스대위를 기려 지난 86년 명명되었다.

 

미군 철수와 동두천: 10여 년 전만 해도 12월이 시작되면 쇼핑백을 든 미군들로 북새통을 이뤘던 곳이 동두천인데 지금은 가게를 기웃거리는 미군들 찾기가 손으로 꼽을 정도란다. 동두천시 미군 제2사단 캠프 케이시(Casey) 인근 상가에는 최근 미군들의 발길이 끊기면서 상가들이 개점 휴업 상태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음식점과 휴대폰 가게, 미용실 등 영어 간판을 내건 수많은 가게는 주인들만 덩그러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미군들 규모가 갈수록 줄고 있는데다, 지하철 1호선이 동두천까지 연장되면서 미군들이 이태원이나 홍대로 나가 쇼핑을 한다고 한다.  "미군들을 상대로 한 장사는 끝났다"고 상인들은 한숨이다. 미군들 씀씀이는 갈수록 줄고 있어 동두천 경제가 안으로 곪고 있다고 하며, 동두천 경제의 20%를 차지하는 미군의 공백을 메울 대책도 막막하다고 한다. 미군들이 떠나도 걱정, 안 떠나도 걱정인 셈이다. 지난 60여 년 미군에 의존해오던 기형적인 경제구조가 동두천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