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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구릅/일상들 ( life )

덕수궁 - ( 2016-03-15 )

by the road of Wind. 2016. 3. 16.

덕수궁 - ( 2016-03-15 )

 

시내 중심가에 있는 덕수궁을 다녀왔다. 시내 볼 일을 보고 잠깐 들른 것이다. 그동안 서울에 오래 살면서도 덕수궁에는 들어가본 적이 없었다. 늙으막에 이제서야 잠깐 덕수궁을 보고 나왔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실감난다. 가까이 있으면 오히려 더 가보지 못 한다. 서울의 고궁 중 아직도 창덕궁은 가보지 못 했다. 차츰 차츰 이 것들도 가보고 싶다. 고궁을 방문하면 역사 공부가 되었다. 특히 해당 지점을 중심으로 일어난 현대사를 들여다 볼 수 있어서 다시금 의미를 새롭게 조망해 볼 수 있게 되기도 한다.    

 

조선 말기의 외세의 침탈에 의한 국내 정세는 변화무쌍하였다. 모두 열강들의 이권 다툼이었다. 결국 우리나라는 열세에 의하여 국왕이 피난을 가거나 이 곳 저 곳을 전전하며 힘든 시대를 보내게 된다. 원래 덕수궁은 조선 세조가 큰며느리(인수대비)를 위하여 지어준 사저였다. 그리고 그 후 월산대군의 저택이 되었던 곳이다. 그런데 임진왜란이 발발 의주까지 피난 간 선조가 되돌아와 덕수궁을 임시거처로 쓰기도 하고, 러시아 공사에 있던 고종이 덕수궁에 환궁하여 환구단을 지어 하늘에 제사를 올리고 황제라 칭하기도 하면서, 바람 같은 국력을 되살려 보려는 의지를 보이기도 한 곳이다. 고종은 경운궁의 전각들도 다시 세우고 하였으나 일제에 의하여 강압적으로 퇴위 당하고 순종에게 왕위가 넘어가게 된다. 이때부터 경운궁은 덕수궁이라 불리게 되었다. 순종이 창덕궁으로 옮겨가며 오래 사시도록 '덕수'라는 궁호를 올린 것이 시발이다. 그 후 고종 황제는 덕궁에 계속 살면서 일생을 마치게된다. 덕수궁은 조선 말기의 격변기의 사건의 중심에 있던 궁전이라 할 수 있다.  더수구 경내에는 넓지 않으면서 여러 건물들이 있다. 중화전, 중화문, 대한문, 즉조당, 석어당, 함년전, 덕흥전,석조전, 정관헌 등이 그것이다. 이 건물들을 겉에서 대충보고 돌아나왔다. 마침 대한문에서는 수문장교대식이 있었다. 시간이 예날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시청 앞 광장 부근에 나오니 서울시 신청사가 보이는데 옛날의 일제시대 시청 건물과 연이어 있어서 기분이 묘함을 느꼈다. 왜 일제시대 양식의 건물을 그대로 존치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보기에 좋지 않았다.    

 

 

덕수궁 주요 년표 (1500년대 이후):

 

1593 (선조26)  1592년 임진왜란 발발로 10월 의주(용만)까지 피난 갔던 선조가 한양으로 환도, 월산대군 후손의 저택을 임시 행궁으로 함.

1608 (선조 41년) 2월 선조 정침 (석어당 추정) 에서 승하. 다음날 광해군 서청(즉조당 추정)에서 즉위

1611 (광해 3년) 10월 창덕궁으로 이어하며 정릉동 행궁을 ‘경운궁(慶運宮)’이라 칭함 

1611 (광해 3년) 광해군 다시 경운궁으로 돌아옴.

1615(광해 7년) 광해군 창덕궁으로 다시 감.

1617(광해 9년) 광해군 기울어진 궁장의 수리를 지시함

1618(광해 10년) 경운궁에 유폐된 인목대비의 호를 폐하고 ‘서궁(西宮)’으로 낮추어 부름 

1623 (인조元) 3월 인조 반정에 성공한 뒤 경운궁 침전(즉조당 추정)에서 즉위함, 창덕궁으로 감.  
1679 (숙종 5년) 5월 숙종이 호조(戶曹)에 명하여 경운궁(慶運宮)을 개수할 것을 명함 
1876 (고종13) 고종이 경운궁 수리를 명함.

1894 (고종31) 1월 갑오농민전쟁 봉기
1895 (고종32) 8월 일본 공사 미우라가 주동이되어 '을미사변'자행함
1896 (건양元) 2월 고종 세자(순종)을 데리고 러시아공사관으로 아관파천(俄館播遷)함. 8월 명성황후의 빈전(殯殿)을 경운궁으로 옮김.
1897년 2월 고종이 인화문(仁化門)을 통해 러시아공사관에서 경운궁으로 환어함 .
1897 (광무元) 8월 광무(光武) 연호를 반포함. 10월 환구단에서 황제 즉위식을 거행. 10월 대한제국(大韓帝國) 선포.
1898 (광무 2) 10월 정동제일교회 완공(정동32-2번지)

1900 (광무 4)  10월 경운궁 진전(眞殿)에 화재가 발생하여 숙종 이하 7왕의 어진 소실됨.

1902 (광무 6) 5월 중화전의 명칭을 다시 즉조당으로 하고 즉조당 앞에 새로 지은 중층의 정전을 중화전이라 함.
1904 (광무 8) 2월 러일전쟁 발발함. 2월 한일의정서 체결함. 4월 경운궁 대화재 발생, 고종 중명전으로 거처를 옮김.

1905 (광무 9) 11월 중명전(重明殿)에서 제2차 한일협약(을사조약) 체결 (통감정치). 

1906 (광무10) 4월 대안문(大安門) 수리 다시 상량 대한문(大漢門)으로 개칭. 7월 중화전(中和殿)을 단층으로 중건함 .

1907 (융희元) 7월 황제 양위식 중화전에서 거행됨. 궁호를 덕수(德壽)라 함. 7월 한일 신협약 체결됨 (차관정치). 8월 군대 해산식. 8월 순종 경운궁 돈덕전에서 황제 즉위식. 11월 순종 창덕궁으로 감. 

1910 (융희 3) 덕수궁 석조전 완공  
1910 10월 한성부가 ‘경성부(京城府)’로 바뀜. 

1911 환구단과 황궁우 등 주변일대 총독부 소관으로 넘어감.
1915 덕수궁 중명전 ‘경성구락부’(외교클럽)의 사교장으로 쓰이기 시작함. 

1919 1월 고종 덕수궁 함녕전에서 승하함. 

1925 3월 덕수궁 중명전 화재로 전소됨 

1933 일제에 의해 덕수궁 대부분의 건물 훼철 공개입찰, 방매 처분 당함. 3월 석조전별관 준공, 이왕가미술관(李王家美術館)으로 사용됨
1946 1월 석조전에서 미소공동위원회 임시회의 개최됨. 

1963 1월 덕수궁을 사적 제124호로 지정.

 

 

 

덕수궁 가는 길....

 

덕수초등학교.

 

구세군건물...

구세군사관학교...구세군은 기독교의 일파로서 명칭에서와 같이 군대 조직 용어를  쓰고 있다.

 

구세군 제일교회.

 

 

 

덕수궁 돌담길...

 

저기 중간에 덕수궁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다. 정문으로 가지 않고 우연히 후문을 발견하여 이리로 덕수궁 경내로 진입하였다. 덕수궁 돌담길은 애인과 걸어야 좋을 것 같다.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면 서로 헤어진다는 말이 있기도 하였다. 옛날 이 근처에 가정법원이 있어 이혼 사건등 여러가지 사건들이 많아 법원에 갈 때는 둘이고 나올 때는 혼자여서 그런 이야기가 나돌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지금은 연인들의 좋은 산책로 명소가 되었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입구.... 돌담길을 돌아서 덕수궁 구경을 하려 하였으나 가는 도중에 이 문을 만나 이 곳에서 정문 방향으로 거꾸로 구경을 하고 나왔다.

 

정동제일교회 방향의 돌담길...덕수궁 주변에는 많은 나라의 공사관이 있었고 조선말기 교회, 커피점등이 생겨났다고 한다.  

 

 

 

 

덕수궁에서: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선원전 터....

 

담 넘어 주한영국대사관이 있다.

 

오래된 회화나무...8월에 연황색의 꽃이 가지 끝에 달리며, 열매는 9~10월에 노랗게 익는다. 도시환경에 적응력이 높다.

 

 

 

증명당, 즉조당 방향으로 들어가 본다.

 

중화전의 뒷모습..

 

 

덕수궁 유일의 2층 전각 석어당..

 

준명당...

 

온쪽 부터 즉조당, 2층 건물 석어당....,

 

왼쪽 2층 건물은 석어당, 오른 쪽은 중화전...

석조전 일원...서양식 건물로 돌로 지었다고 석조전이라 이름붙인 것 같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석조전...

 

 

중화전의 측면..

 

중화문 방향...

 

중화전(中和殿)..

 

덕수궁의 중심이다...임금이 정사를 보던 곳이다. 열강들에 둘러쌓여 있어 중화전이란 이름도 남다르게 느껴진다.

 

중화문을 정면으로 바라본다...품계이 2열 종대로 놓여있다. 어딘지 위엄이 느껴진다.

 

중화전 귀퉁이에서 바라본 시청사 방향...

 

중화전을 서쪽으로 다른 각도에서 본다.

 

중화전 우측면에서 뒷편을 바라보다.

 

석어당...한옥의 거대한 2층 집은 위에서 아래로 왠지 중량감이 느껴진다.

 

덕흥전, 함녕전 -> ,  <- 정관헌...  정관헌 의 측면이 단정히 보인다.

 

 

정관헌...1900년 고종이 만들었으며 다과회, 연회장, 음악당 등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정관헌을 올려다보다...서까래가 단정하고 세밀하다. 못을 쓰지 않고 나무를 깍아 만든다. 그 많큼 사람의 손이 많이간다.

 

 

 

 

덕현문..

 

창신각...

 

 

↑ 덕흥전,  -> 석조전,

 

여기에서 바라보는 덕수궁은 참 아름답고 정갈하다.

 

 

 

 

 

덕흥전, 함녕전...

 

 

 

 

일단의 관광객들이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다.

 

'백년의 신화, 한국 근대미술거장전' 스터...1916~1990 변월룡   (2016.3.3~5.8) 국립현대미술관덕수궁관변월룡은 한국인 미술학 박사 1호, 러시아 레핀미술대학 교수였던 서양화의 거장이었다.

 

 

궁전의 대문은 보통 남쪽이나 덕수궁은 정문인 대한문이 동쪽으로 있다.

 

 

 

대한문 앞에서 왕궁 수문장 교대식...

 

시청앞 광장으로 나오다... 일제시대 건물을 파도가 덮치는 것 같은 느낌이다. 기분이 묘하다...한국식을 변형하여 전체를 새로 지었으면 좋았을 걸 한다. 일제의 잔재를 지워버렸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