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전등사, 정족산 (223m)
- ( 2017.12.22 )
2011.02 월 강화도 전등사를 찾아본 후, 거의 7여년이 흐른 오늘 전등사를 다시 찾아보았다. 전등사를 찾아가면서 '전등사입구교차로' 에서 좌회전 해야되는 것을 미리 '장흥리입구교차로'에서 좌회전 하여 의도하지 않게 선두리 망실지 곁의 호젓한 들판 포장 길을 달려보게 되었다. 평소에 가보고 싶었던 곳인데 아주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갓길에 차를 파킹하고 가져간 김밥 한줄을 먹었다. 여기 도착 시간이 12:37분으로 점심을 미리 먹어두고 전등사 답사를 시작하려 하였다. 이곳은 마니산, 길상산, 정족산등으로 둘러쌓인 천혜의 벌판이다. 나 혼자 외딴 벌판에 서있는 그런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 간단히 요기를 한후 전등사 남문(종해루) 아래의 전등사 남문 주차장 을 찾아가 파킹을 하고 전등사 관람을 시작하였다.
강화도 정족산 전등사는 대단한 절이다는 생각을 하게된다.고구려 시대 372년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된 이래 381년 창건된 가장 오래된 절이라고 하니 그 전통이 1600년 이상인 고찰중의 고찰이다. 남문으로 길을 걸어 올라가니 거의 7년전 답사 기억이 새로워 지는 것 같았다. 정족산(삼랑성 최고위점)을 오르기 전 먼저 전등사를 관람한다. 오늘은 금요일 평일 이어서인지 관광객은 별로 없었다. 나는 종해루(宗海樓) 를 지나 전등사 이곳 저곳을 카메라에 담아본다. 그 중에서도 전등사 대웅전 지붕 4코너에 벌거벗은채 웅크리고 있는 나부상(裸婦像)에 흥미가 간다. 전등사를 지은 도판수와 연분이 난 온수리 쯤의 어떤 여자가 딴 남자를 사귀어 줄행랑을 치고 말았으며, 그녀를 원망하며 못잊어 하다 절 대웅전 코너에 그녀의 상징인 나부상을 조각하여 붙여 놨다는 전설이 있어서인지 왠지 더 관심이 간다. 오늘 찬찬히 보니 대웅전 코너 마다 나부상을 조각해 놓았다. 오래되어 하얗게 바래져 있는 것 같았다. 1600년이 더 흐른 시점이면 도편수의 원망도 사그라질 법도 하다. 전등사를 구석구석 돌아다본 후, 삼랑성 서문을 거쳐 전등사의 뒤산인 정족산(222.5m) 을 성길을 따라 등산하였다. 서문에서 정족산 가는 길은 삼랑성은 페허처럼 허물어지기 직전의 상태였으며, 마음이 안타까웠다. 속히 복원이 되어 강화도의 민족정신이 충만하길 빌어본다. 정족산 정상은 삼랑성의 최고위 지점으로 주변의 경치가 아주 좋았다. 겨울의 희멀건 회색빛 정경이라고는 하여도 겨우 223m의 높이에서 주변의 경치를 이렇게 잘 조망할 수 있는 곳도 드물 것이다.
정족산 등산을 마치고 하산길의 북문, 동문 방향으로 내려오는 길은 눈이 녹지 않고 덮여 있으며 조금 가파른 길이었다. 아이젠을 착용하고 조심 내려온다. 가파른 부분을 지나 성길 평지 부분에 다달으니 온수리로 하산하는 길목에 암문같은 북문이 있었으며, 여기에서 나는 전등사 방향으로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에는 강화도 정족산 사고(史庫)가 있어 의미가 남달랐다. 사고(史庫)는 고려와 조선시대의 역사 기록으서 우리나라 역사의 매우 중요한 기록물이다. 사고에 보관하는 실록(實錄)은 사관(史官)이 기록 편찬한 것으로 고려 시대의 것은 거란의 침입으로 모두 소실되고, 고종대인 1227년 부터 개경 이외의 지역인 합천 해인사에 한부를 보관하도록 하였는데, 조선은 고려 시대 제도를 답습하여 개경의 사고를 한양으로 옮겨 춘추관으로 하였다. 그러다 세종대에 경상도 성주, 전라도 전주, 충주와 함께 실록보관소를 만들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떄 전주사고를 제외하고 모두 소실되었다. 그래서 다시 깊숙한 오지인 묘향산, 오대산, 태백산, 적성산의 4곳에 사고를 두게 되었다. 소위 분산 배치를 한 것이다. 여기 정족사고는 전주 실록을 옮겨 보관한 것이다. 1908년 부터는 서울대 규장각에 보관해 오고 있다. 그래서 오늘 본 정족산 사고의 모습이 의미있게 다가왔다.
다시 전등사로 내려오면서 유서깊은 전등사를 또 다시 음미해보며 동문으로 난 길을 따라 걸어보았다. 동문 곁에는 양현수장군 전승비가 외롭게 서 있었다.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을 격파하여 물리친것을 기념하여 건립한 것이다.'순무천총 양현수승전비'이다. 동문 밖으로 나와 매표소 주변을 둘러보고 다시 동문으로 들어와 삼랑성을 따라 올라가 남문으로 내려 갔다. 전등사, 삼랑성, 정족산 일원은 둘러보기 좋은 아담한 규모로 성곽길을 따라 걸으며 강화도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모두 바라볼 수 있었다. 마니산, 길상산 등 바라 보는 것 만으로도 마음이 벅찼다.
오늘은 오후의 날씨가 영상으로 포근하고 평일이어서 교통량도 많지 않아 강화도를 잘 다녀올 수 있었다. 강화도 하면 밴댕이회가 유명한데 쫄쫄 굶고 막히는 구간인 강변도로를 통과하여 집 근처로 와서 감자탕에 막걸리 한병을 마시고 강화도의 아쉬움을 달랬다.
또한 오늘은 동지날이라 시장에서 팥죽을 두 팩 사서 집에 가져다가 잘 먹었다. 요즈음 세태가 바쁘고 하여 집에서 팥을 삶아 갈고 새알을 넣고 하여 동지 팥죽을 쑬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많은 가정에서 시장에서 만든 팥죽으로 동지를 지나곤 한다. 오늘은 정말 대단히 기분이 좋다. 흡족하다.
○ 정족산(鼎足山) (223m) : 인천시 강화읍 길상면 온수리 소재의 산으로 강화도에서 가장 유명한 고려시대의 사찰 전등사를 품고 있는 산이다. 산의 생김새가 마치 세 발 달린 가마솥과 같다 해서 이름이 붙여진 정족산이다. 정족산 기슭에는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삼랑성도 있다. 그 성안에 아늑하게 전등사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정족산은 마니산의 한 줄기가 서쪽으로 뻗어 길상면 온수리에 이르러 다시 세 봉우리를 형성하여 정족산(鼎足山)을 만들었다.
○ 전등사(傳燈寺): 전등사는 서기 381년(고구려 소수림왕 11년)에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처음으로 전래된 것이 서기 372년이므로 지금은 그 소재를 알 수 없는 성문사, 이불란사(375년 창건)에 이어 전등사는 한국 불교 전래 초기에 세워진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도량임을 알 수 있다. 처음 전등사를 창건한 분은 진나라에서 건너온 아도 화상이었다. 당시 아도 화상은 강화도를 거쳐 신라 땅에 불교를 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도 화상이 강화도에 머물고 있을 때 지금의 전등사 자리에 절을 지었으니 그때의 이름은 ‘진종사(眞宗寺)’ 라 하였다. 진종사가 다시 역사의 기록에 등장한 것은 고려 고종 46년 때인 1259년이었다. 이때 고종은 삼랑성 안에 가궐(假闕)을 지었다. 이보다 앞선 1232년, 고려 왕실에서는 몽골의 침략에 대응하기 위해 강화도로 임시 도읍을 정하고 궁궐을 지은 바 있다. 고려의 강화도 도읍은 1232년부터 1270년까지 이어진다. 고려 왕실에서는 삼랑성 안에 가궐을 지은 후 진종사를 크게 중창시켰으며(1266년), 16년이 지난 1282년(충렬왕 8년)에는 왕비인 정화궁주가 진종사에 경전과 옥등을 시주한 것을 계기로 '전등사(傳燈寺) ’ 라 사찰 명칭을 바꾸었다. 이때는 고려 왕실이 개경으로 환도한 뒤였고, 39년 동안 쓰였던 강화 궁궐터는 몽골군에 의해 폐허로 변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삼랑성 안의 전등사는 꾸준하게 사세를 유지해나갔다. 전등사는 조선의 숭유억불 정책에도 불구하고 향화(香華)가 그치지 않았던 가람이다. 현종 원년(1660년)에 경내에 선원각과 장사각이 세워졌으며 숙종 4년(1678)에 왕조실록을 장사각에, 왕실족보와 관계 문적들을 선원각에 보관하게 된다. 이로 인해 전등사는 정족산 사고를 지키는 사찰이기도 하였다.
1 대웅전, 2 강설당, 3 명부전, 4 약사전, 5 삼성각, 6 향로전 극락암, 8 적묵당,종무소, 9 대조루, 10 종루, 11 남문, 12 종각, 13 양현수비, 14 동문, 15 화장실, 16 정행당, 17 죽림다원, 18 삼랑성, 19 부도전, 20 정족사고, 21 고려가궐지, 22 관해암, 23 설법전, 24 요사채, 25 취향당.
○ 삼랑성(三郞城): 삼랑성은 사적 제130호의 돌성이다. 성의 시설물로는 남문루와 동문, 서문, 북문지가 있고 성 안에는 13개의 우물이 있었다고 전하며 고구려시대에 창건된 전등사가 있다. 1739년과 1764년 및 조선 말기에 여러 차례 보수공사를 하고, 1976년에는 남문인 종해루를 원형 그대로 복귀했다. 성의 동문 안에는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대를 대파하는데 공헌한 양헌수 전숭비가 있다.
선두리 벌판에서:
정족산 방향... 중간 가장 높은 봉우리가 정족산 정상이다. 그 아래 전등사가 위치하고 있다.
여기 갓길에서 김밥으로 점김을 먹다..보이는 산 정상은 길상산이다.
멀리 희미하게 강화도 최고봉 마니산이 보인다. 바로 앞은 망실지 연못인데 히얗게 얼어있다.
내가 가야할 방향....전등사 남문으로 가기 위하여...
다시 망실지를 바라본다...
내가 초지대교를지나 온수리 못 미쳐 장흥리교차로에서 좌회전하여 달려온 방향을 바라본다.
전등사 관람:
남문 주차장 입구...
남문 주차장 곁에 있는, KBS 6시 내고향 방영 맛집 ... '남문식당...031-937-1199.. ...한방토종백숙, 돌솥비빔밥, 버섯전골, 더덕구이 정식, 꽃게매운탕...젓국갈비전골, 밴댕이무침, 강화꽃게탕,...
전등사 입장료:
▶ 어른(19세이상) 개인 3,000, 단체(30명이상) 2,500
▶ 청소년(중고생) 개인 2,000, 단체 1,500
▶ 어린이 (초등생) 개인 1,000, 단체 800
▶노인(경로)(만 65세 이상) 무료(신분증 제시)
** 대웅전 까지 소요시간 7분. ** 관람시간 05:00-20:00
애완동물 출입금지...
일미식당...돌솥비빔밥, 산채비빔밥, 도토리묵, 김치부침, 녹두부침, 인삼동동주...
종해루가 보인다...오른쪽엔 안내소,,,
식당 메뉴판...주렁주렁..
삼랑성(三郞城):
일명 정족산성(鼎足山城) 이라고도 한다. 성을 쌓은 연대는 획실치 않으나 단군이 세 아들에게 성을 쌓게 하고 이름을 삼랑성이라 했다는 기록이 고려사에 보인다. 처음에는 흙으로 쌇은 토성이었는데 삼국시대에 이르러 그 위에 막돌을 맞추어가며 쌓았고 성체 안에는 막돌을 채운 튼튼한 석성으로 축조되었으며, 고려, 조선 시대를 거치면서 더욱 보강되었다. 성안에는 전등사는 물론 고려시대에는 가궐(假闕), 조선시대에는 사고와 선원보각이 있었다. 병인양요 때 (1866) 양헌수 장군이 프랑스군을 물리쳐 이곳에 보관한 조선왕조 실록과 욍실족보인 선원보를 지켰다. 1979년에 남문인 종해루를 원형 형태로 복원했다.
남문과 종해루(宗海樓):
종해루는 전등사 삼랑성의 남문에 위치해 있다. 영조15년(1739)에 유수 권교가 수축하고 종해루란 현ㅊ판을 걸었다. 영조 40년91764)에 중수하고 정조7년(1783)에 유수 김노진이 기문을 지었다고 한다.
삼랑성...
나무 가지를 의지하여...
무료 문화해설...
앗, 보호수다...
수종 은행나무/ 수령 약 700년/ 수고 24KM/ 나무둘레 6.5M/ 지정년도 2001년/ 갈상면 온수리 42 위치.
노승나무와 동자승 나무이야기..
조선조에 오면서 배불숭유 정책으로 전국의 사찰은 조정으로 부터 여러가지로 박해를 받게 되었다. 승려는 성곽을 쌓거나 다리를 놓는 일에 사역을 나가야 했고 사찰에서는 제각기 특산물을 공물로 받쳐야만 했다. 그러던 어느해에 관야에서 전등사 입구에 서 있는 은행나무에서 수확량을 두배로 바쳐라 한다고 동자승이 노승에게 전하였다. 전등사의 노승은 걱정이 태산 같았다. 풍년이 들어야 열가마니인데 스무 가마니를 내라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고민 끝에 노승은 도술이 뛰어난 백련사의 추승스님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동자승을 추승스님에게 보냈다. 동자승과 함께 온 추승스님은 은행나무열매가 더 열리게 하는 3일 기도에 착수하였다. 마지막 날 늦은 오후 은행나무 앞에서 3일 기도가 막바지에 다다르자 추승스님이 축원을 읽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그 축원의 내용은 은행나무가 천년만년 열매를 맺지 않게 하여 해다라는 내용이었다. 뜻밖의 축원에 모인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축원이 끝나자 마자 먹구름이 몰려오면서 천둥번개와 함께 돌풍이 몰아치고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관군들과 모여있던 사람들이 놀라서 모두 땅바닥에 엎드렸다가 고개를 들었을 때 기도하던 추승스님과 동자스님이 모두 사라졌다. 사람들은 보살들이 전등사를 구하기 위해 세명의 스님으로 변해 왔다고 하였다. 이후 은행나무는 더 이상 열매를 맺지 않았으며, 긴 세월의 풍상과 역사의 상처를 안은 채 오가는 이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 있다.
전등사 윤장대(輪藏臺)...윤장대란 불교경전을 넣은 책장에 축을 달아 돌릴 수 있게 만든 것으로 윤장대를 한번 돌리면 경전을 읽은 것과 같은 공덕이 있다고 한다. 전등사 윤장대는 보물 제684호와 똑 같이 재현 한 것이다.
그런데 주치힌 차들이 조금 위험해 보인다. 주차하다 이런 신성시 하는 사찰의 윤장대를 잘 못 들이 받으면 어쩌나?
진무중군 이공 용의 휼승도 영세불망비....
어려울 때, 배고파 죽어갈 때 양식으로 구휼하는 공덕은 이세상의 어느 것과도 비교가 되지 않을 아름다운 미덕이다. 영원히 잊지 않기 위한 불망비다..너무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 동문...-> 남문...
전등사...
심묵당..
명부전...약사전...
종각...극락전..
전등사 느티나무...수령 약 400년, 지정년도 1997년, 높이 20m, 둘레 4.6m, 관리자 길상면장.
고구려 소수림왕11년(381년) 아도화상이 창건하고 진종사라 부르다가, 충렬황의 원비 정화공주가 승려 인기(印奇)에게 부탁해서 송나라 대장경(大藏經)을 간행하여 이 절에 보관하도록 하고, 옥등(玉燈)을 시주한 후 전등사라 부르게 되었다. 그러나 이 고찰은 조선 광해군 때 화재로 인하여 소실 되었다가 1615년 재건하였는데, 그 때 풍치목으로 심은 나무로 추정되는 이 느티나무는 대웅전 뜰 앞에서 전등사를 찾는 이들의 쉼터로 주변의 큰 나무들과 조화를 이루어 운치를 더하고 있다. - 광화군.
우람한 느티나무...여기 저기 상처투성이이다...
문화관광해설안내...
해설출발장소...1회 10:00/ 2회 11:00/ 3회 13:00/ 4회 14:00/ 5회 16:00.
범종각...
2017년 전등사 타종식 대지원망(大志原望): 일시: 2017년 12월 31일 오후 11:40.
향로전..
대조루..
대웅보전..
템풀스테이 사무국..
큰나무...수령 약 280년...
전등사 입구 방향...
측면의 대조전..
대웅전 뜨락..
나는 전등사 사찰의 벽에 붙어있는 이 자녀를 위한 기도를 읽고 많은 감동을 받았다.
자녀를 위한 기도: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바른 생각
공손한 말
사려깊은 행위로 무장하게 하소서
겸손한 자가 되고
지헤롭고 용기있는 자가 되게 하소서
옳고 그름의 분별을 알고
바른 선택을 하며
결정에는 밝은 혜안을 갖게 하소서
온갖 역경에도
좌절하지 않으며
고난을 이겨내고
평화의 길로 가게하소서
삶에서 조급한 성격
무거운 마음을 떨치고
욕심과 분노, 어리석음을 버리게 히소서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자유로운 마음의 원리를 터득하여
무한한 창공을 느낄 수 있게 하소서
훌륭한 어른의 말씀에
귀는 착해지고
아름다운 글에
눈은 예쁘게 빛나게 하소서
착한 성격은 늘 곁에 두고
예쁜 마음은 늘 몸에 지니며
배려와 사랑으로
세상과 더불어 행복하게 하소서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되던 때 무렵에 건립된 유서깊은 고찰에서 인생의 진정한 지침을 읽게된다. 이렇게 살아야 되는데...이렇게, 이렇게.....하면서 자신의 깊은 굴곡을 느끼며, 때론 절망하고, 때론 웃으며 사는 나를 돌아본다.
마음을 다스리는 글
복은 검소함에서 생기고 덕은 겸양에서 생기며
지혜는 고요히 생각하는데서 생긴다.
근심은 애욕에서 생기고
재앙은 물욕에서 생기며
허물은 경망에서 생기며
죄는 참지 못하는데서 생긴다.
두눈을 조심하여 남의 그릇됨을 보지 말고
아름다움을 볼 것이며
입을 조심하여 실없는 말을 삼가고
착한 말, 바른 말, 부드러고 고운 말을
할 것이며, 몸을 조심하여
나쁜 친구를 사귀지 말고
어질고 착한 이를 가까이 하라.
어른을 공경하고 덕 있는 이를 받들며
지혜로운 이를 따르고
모르는 이를 너그럽게 용서하라.
오는 것을 거절말고, 가는 것을 잡지 말며
내 몸 대우 받기를 바라지 말고
일이 지나갔음에 원망하지 말라.
남을 해하면 마침내 그것이 자기에게 돌아오고
세력을 의지하면 도리어 재화가 따른다.
장독대...사람은 누구나 먹어야 산다...이 먹고 사는 문제가 인생의 제일 큰 문제이다.
발로 가볍게 가린 모양이 참 좋게 보인다...여성 불자들의 기거처인가?
대웅보전..
대웅보전의 지붕 코너에는 모두 이런 나부상이 조각되어 있다. 이 사찰을 건립하던 도편수와의 온수리 마을 여성의 러브 스토리가 전해진다. 이 여인이 결국 딴 남자와 정분이 나서 줄행랑 치고 도편수는 이 여인이 괘씸해서인가 아니면 연민의 정이 복받쳐서인가 이런 벌거숭이 조각을 만들어 세세토록 대웅전 처마 밑에서 불경을 듣게 하려는 것인가? 이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전등사 절 경내....
대웅보전 앞의 빨간 법등이 아름다운 꽃송이 같다...
약사전..
아름다운 가람 배치이다...
감로수...이 물이 없다면 전등사도 없을 것이다...모든 생물에겐 생수가 필요하다...오묘한 자연의 이치이다...
정족산 등산:
서문으로 향한다...
사고지(史庫址) 입구...->
소원성취 기왓장들...
고(故) 오규원 시인(詩人) 수목(나무)....
○ 오규원(吳圭原)(1941~2007); 경남 밀양 삼랑진 출생/ 부산사범학교, 동아대학교 졸업/ 1965년 《현대문학》에 <겨울 나그네>가 추천되고, 1968년 <몇 개의 현상>이 추천 완료되어 등단/ 시집: 《순례》,《사랑의 기교》,《이 땅에 씌어지는 서정시》,《사랑의 감옥》 등.
"겨울 숲을 바라보며, 벗어버린 나무들을 보며, 나는/ 이곳에서 인간이기 때문에/ 한 벌의 죄를 더 겹쳐 입고/ 겨울의 들판에 선 나는
종일 죄, 죄 하며 내리는/ 눈보라 속에 놓인다. < 오규원, '겨울 숲을 바라보며' 중 >"
오늘 눈이 조금 왔으면 좋겠다. 나는 이곳에서 수목장(樹木葬)을 처음 보는데 좋은 것 같다. 우선 생(生)을 마감하고 자연과 하나되는 모습이 좋아보인다. 인간은 누구나 이 세상과 결별하면 무(無)로 돌아가는 것이다. 자연에서 나와서 자연으로 회귀한는 것이다.
<- 삼랑성 정상, -> 남문, ↘ 선두리.
서문... <- 성돌이길, 남문까지 650m, -> 성돌이길, 북문까지 550m.
삼랑성( 정족산) 정상 가는 길...
길상면 온수리 일대...
허물어져 가는 삼랑성....
정상을 오르다 뒤돌아 본다.,.
아 황성예터같다...정족산 정상 직전이다...
삼랑성 정상...정족산 225.5m...<- 북문, -> 서문..
진강산 방향...
강화도 양도면 일대......
하산 길:
정족산 정상을 다시 보다...
북문 하산 길...
북문과 동문이 성길로 이어진다...하얀 눈 덮힌 성길이 아름답다...
길상저수지 방향의 벌판과 하늘이 너무 좋구나...
눈 길...평지같은 삼랑설 길...
북문이 있는 성곽...
<- 온수리, 북문...강화나들길...
조그만 암문같다. 이게 북문인가?
암문을 나가 밖을 바라본다. 온수리로 내려 가는 방향..
삼랑성....아주 튼튼해 보인다..
북문 앞 이정표 ......<- 달맞이고개, -> 삼랑성 정상, ↘ 온수리시장...나는 정족산 사고(史庫) 방향으로 하산한다.
북문을 다시 바라본다...<- 성돌이길 (서문까지 550m), -> 성돌이길 (달맞이고개 까지500m)
조금 내려 오니 정족사고 가 보인다...
사고 왼쪽에 취향당...
문화생태탐방로....
담 넘어 정족사고(鼎足史庫)들여다 보다.
정족사고 대문...
취향당...
하얀 눈 덮인 정족산...
-> 정족사고, 북문..
다시 전등사:
전등사를 뒤에서 남문 방향으로 바라보다...
삼성각 방향의 길..
삼성각....스님의 독경 소리가 들려온다...
멋진 소나무네...
다시 보아도 멋있는 느티나무...
대웅보전과 대조루 사이....
동문가는 길:
<- 동문, -> 남문....나는 동문으로 향한다.
적묵당, 종무소...
동문 가는 길...
큰 나무....느티나무, .수령 약 400년, 수고 20m, 둘레 4m....이런 고목만 보아도 수지 맞는다..
전등사 소나무...수령 약 300년, 수고 21m, 둘레 2.5m
강화나들길 안내판...오른쪽 아래에 남문과 종해루가 보인다...
동문이다...왼쪽에 양현수비...
양현수승전비....
동문 안의 양현수수승전비와 전등사 가는 길...
동문 밖...식당가가 있다...
이건 무슨 건물인지?
동문...
동문매표소...
동문 밖의 삼랑성곽...
남문으로 돌아가려고 성길을 계속 오른다...
서문 방향...저기 산의 오른쪽 고개 부분...
동문 방향을 다시 바라본다..안개가 낀듯 착각한다...
동문과 남문 사이 성곽 높은 곳...전망이 좋다...
남쪽 초지진 방향...
동쪽 길상면 방향...
남문 내려 가는 길...
동문 위의 삼랑성...
남문 하산하기...여기 삼랑성 위에는 돌들을 아주 작은 탑처럼 쌓아 운치가 있게 보였다.
삼랑성의 윤곽이 뚜렸하다....서문에서 남문으로 내려 오는 모습이다...
앗, 돌탑...성위의 돌탑...모두 누군가의 어떤 원(願)을 담고 있을 것이다...멋있네...
길상산(335.8m) 자락...
가파른 나무게단...
종해루...남문...
令(영) 깃발이 엄중함을 나타낸다...
종해루..
남문을 나서다..."직진 금지"....계단입니다...차는 오른쪽으로...
식당들..
마지막 남문 주차장 가는 길....
오늘은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사찰인 전등사와 함께 삼랑산성...그리고 정족산 등산을 아주 잘 하였다. 정족산 산성길에서 바라보는 강화 길상면, 양도면 일대의 경치는 너무 수려하였다...
'카테고리 구릅 > 나의 산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봉산 (은석암, 의정부 호원동) - ( 2017.12.28 ) (0) | 2017.12.29 |
---|---|
용마산 (349m) - ( 2017.12.25 ) (0) | 2017.12.26 |
③ 소요산 단풍 자재암, 공주봉 (526m) - ( 2017.11.01 ) (0) | 2017.11.02 |
② 소요산 단풍 자재암, 공주봉 (526m) - ( 2017.11.01 ) (0) | 2017.11.02 |
①소요산 단풍 자재암, 공주봉 (526m) - ( 2017.11.01 ) (0) | 2017.11.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