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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구릅/일상들 ( life )

서울역사박물관, 경희궁, 광화문광장 - ( 2019.07.19 )

by the road of Wind. 2019. 7. 19.

서울역사박물관, 경희궁, 광화문광장 - ( 2019.07.19 )


오늘 시내 볼일이 있어 나갔다가, 서울역사박물관과  경희궁을 들러보았다. 역사적인 두 곳을 두러보는 것은 많은 생각을 하게하며 재미도 있었다. 두곳을 구경하고 나서 집에 오는 길에 광화문 광장도 둘러보았다. 35℃ 정도의 폭염 속에서 힘들게 돌아다녀 보았다.


만보계: 걸음수 4,831 steps. 소비열량 173 kcal. 거리 4.28 km, 시간 01:00 hrs ( 3:24 - 4:41, pm ), 평균속도 4.4 km/h.

산책코스: 광화문역 -  서울역사박물관 - 경희궁 - 광화문광장- 세종문화회관 - 광화문역.



(1) 서울역사박물관: 


서울 종로구 경희궁 터에 지어진 시립박물관이다. 상시전시실, 기획전시실 등 다양한 전시실과 문화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오늘 '세계 속의 안데르센 ( I belong to the World !)' 과 ' 열 한 집의 오랜 기억, 북촌' 이 기획전시되고 있었다. 두 전시회가 모두 유익하였다. 학생들도 견학하면 큰 공부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관람시간:

---- (3-10월): 평일 09:00-20:00, 토,일,공휴일 09:00-19:00 / (11-2월): 평일 09:00-20:00, 토,일,공휴일 09:00-18:00.

---- 휴관일: 공휴일을 제외한 매주 월요일, 1월1일.


주차료:

---- 최초 2시간까지: 20인 미만 차량 3,000원, 20인 이상 차량 6,000원/ 초과 5분당:  20인 미만 차량 400원, 20인 이상 차량 800원.

---- 1일주차 : 20인 미만 차량 22,000원, 20인 이상 차량 44,000원.




광화문에서 점심을 먹은 후 오만 대사관을 지나고 한글회관을 거쳐 서울역사문화박물관으로 가본다.


LARVA (라바) TSland......Grand Open...." 손이 가요 손이 가 "


서울역사박물관...


경희궁 금천교...경희궁의 흥화문과 경희궁 내의 여러 전각들 사이에 흐르던 금천(禁川)에 놓인 돌다리. 난간의 돌짐승들이나 홍예사이에 새겨진 도깨비 상은 바깥의 나쁜 기운이 궐내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는 상징성을 띤 것이다.


서울역사박물관 광장 잔디밭의 문인석...


전차관람안내.....전차보호를 위하여 실내관람시간을 다음과 같이 제한하오니 양해해 주시기 바람니다.


전차관람시간: 오전 10:00 ~ 오후 5:00


* 일요일은 휴관입니다.
* 전차 381호등록문화재 제467호로 등록된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전차와 지각생 ( A Streetcar and Tardy Student ) " ....... 


전차 381호 실내....


전차 381호: (등록문화재 제467호/ 제조시기: 1930년경)


이 전차는 1930년 경부터 1968년 11월까지 약 38년간 서울 시내를 운행하였다. 서울에서 전차 운행이 처음 시작한 날은 대한제국 광무 3년인 1899년 5월 17일 이었으며, 운행구간은 서대문에서 청량리까지 였다. 이후 전차는 1960년대 초반까지 서울시민의 대표적인 교통수단이었다. 그러나 1960년대 중반이후 버스와 자동차 운행에  오히려 방해가 되자 서울시에서는 1968년 11월 전차 운행을 일제히 중단하였다. 이 전차는 서울에 마지막 남은 2대의 전차 가운데 하나다. 2007년 12월에 서울역사박물관으로 옮겨온 후 1년간의 보존처리 과정을 거쳐 전시하고 있다.



흥선대원군의 조부 은신군의 신도비 등...


가운데 비석이 은신군신도비(恩信君神道碑), 왼쪽 것이 은신군묘표(恩愼君墓表)이다. 은신군 진(桭)(1755-1771)은 정조의 동생이며 게보상 흥선대원군에게는 조부가 된다. 그는 정치적인 이유로 17세의 젊은 나이에 제주도로 귀양가 죽었다. 요절한 그를 위해 정조는 즉위 후 정성을 다해 제사를 지내주었고, 다음 임금인 순조는 인평대군의 후손 남연군으로 하여금 그의 가계를 잇도록 하였다. 은신군신도비는 1783년(정조7)에 건립되었는데, 형인 정조가 직접 글을 짓고 손수 글씨를 써서 세웠다. 본문에는 은신군의 죽음에 대하여 애통해 하는 마음이 담겨 있으며 그의 이력과 인품에 대해서도 소개하고 있다. 정조의 문장 솜씨와 글씨를 감상할 수 있다. 은신군묘표는 1871년(고종8)에 건립되었으며 이재원(李載元)이 짓고 이재면(李載冕)이 글씨를 썼다. 이 묘비는 은신군이 죽고 약 100년이 지난 다음에 건립되었는데, 1871년 2월 그의 시호가 소민(昭愍)에서 충헌(忠獻)으로 개정된 다음에 세운 것이다. 낙천군 묘표는 낙천군 온(縕) (1720-1737)의 묘비이다. 1764년에 건립되었으며 본무은 김광진(金光進)이 기록하고 글씨는 신광수(申光綏)가 썼다. 낙천군은 본래 채(埰)의 아들인데, 계보상 연령군의 아들이자 은신군의 부친이 된다.




수선전도(首善全圖)....이곳에서는 분수가 나온다...



아현고가, 홍제육교, 홍제고가, 서대문고가, 서대문육교....


소의교, 복청교 교명주(橋名柱)...


주간포(柱間包)...기둥과 기둥 사이 중간에 배치한 공포로 살미(山彌), 첨자, 소로(小櫓)를 사전에 제작하여 목조 건축과 같은 방법으로 조립하고 순각판을 거푸집으로 사용하였다.


광화문의 콘크리트 구조 부재...


귀포 (隔包_격포)...모퉁이 기둥 위에 배치한 공포로 공포부재인 살미, 첨치, 소로와 귀한대가 별도로 제작되어 조립되었다. 


주심포(柱心包)...기둥 위에 배치한 공포로 살미, 첨치, 소로 각 요소의 가구 조립 방식으로 콘크리트 구조에서도 적용되었다.


추녀와 선자연.....지붕의 모서리 방향에 놓이는 추녀와 부채살 모양으로 배치한 서까래부분으로 지붕 속 흙처리가 되는 산자 공간을 천장에 매달았다.  



'세계 속의 안데르센 ( I belong to the World !)':


안데르센,  코펜하겐 1819.......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 2019. 4. 26- 7.21


H. C. Andersen,  Copenhagen 1819.... 


도시 전체가 혼란에 휩사였다..


안데르센의 첫 번째 집,  창문 하나 없는 창고....




" 세상은 너무 넓다. 만약 되돌아 갈 수만 있다면 "...



극장에 대한 한결같은 사랑...


안데르센의 흉상....





'열 한 집의 오랜 기억, 북촌' :


'열 한 집의 오랜 기억, 북촌'.......2019.7.19 - 10.6


맹현댁 사람들...


고종황제 1897, 환구단 1897, 남대문 앞을 지나가는 일본군 1904, 을사늑약 당시 경운궁 앞에서 경계 중인 일본군 1905, 한일 강제 병합 후 일장기가 걸린 경복궁 근정전, 1910년대 ....


민영환가 사람들....1. 민영환과 아들, 딸, 민영찬의 두 아들 사진 2. 박수영 여사와 자녀들 사진, 3. 민광식, 이혜선, 민흥식의 사진


칙령....특명전권공사 민영환 ...


민영환: 대한제국 특명 전권공사...


민영찬: 대한제국 외교대사...



제동의 백송(白松)...



북촌을 지나는 전차와 바스...


오봉빈: 가회동 우경산방의 주인...오봉빈과 조선미술관...


믿고 찾는 계산한의원...


윤보선가 사람들...



윤보선과 공덕귀...


안국동 윤보선 가옥...


북촌의 사진기록가......임인식가의 북촌생활.....





경희궁 가는 길;


부용...


구절초...


오층석탑...


장명등...


향나무...




(2) 경희궁:


경희궁(慶熙宮):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45에 위치한 경희궁은 조선 후기의 이궁(離宮) 이었다. 1617년 (광해군 9) 부터 짓기 시작하여 1623년 (광해군 15)에 완성히였다. 처음엔 경덕궁이라 부르다가 원종의 시호인 경덕(敬德)과 같은 발음이라하여 1760년(영조36)에 경희궁(慶熙宮)으로 바뀌었다. 경희궁은 서궐이라고도 불리었는데 창덕궁과 창경궁을 합하여 동궐이라 불렀던 것과 대비된다.  인종 이후 철종에 이르기 까지 10대에 걸친 임금들이 경희궁에 머물렀다. 특히 영조는 치세의 절반을 이곳에서 보냈다. 경희궁에는 정전인 숭정전을 비롯하여 편전인 자정전, 침전인 융복전, 회상전 등 100여동의 크고 작은 건물들이 있었다. 그러나 일제가 대한제국을 강점하면서 경희궁은 수난의 역사를 맞이하였다. 1910년 일본인 학교였던 경성중학교가 들어서면서 대부분 궁궐 건물이 헐려 나갔고 , 그 면적의 절반 정도로 축소되어 궁궐의 모습을 잃어버렸다. 서울특별시에서는 경희궁 지대에 대한 발굴을 거쳐 숭정전등 정전 지역을 복원하여 2002년도 부터 시민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사적 제 271호이다.

 - < 경희궁 >



숭전문...



" 경희궁 해설로 복원합니다."......무료해설안내: 시간: 일요일 1시, 2시, 3시/  장소: 숭정문 앞.


숭전전...

숭전전의 품계석...


숭정전(崇政殿): 


경희궁의 정전(正殿). 경희궁 창건 공시 초기인 1618년(광해군10) 경에 건립되었다. 국왕과 신하들이 조회를 하거나 궁중연회, 사신 접대 등 공식 행사가 행해졌던 곳이다. 특히 경종,정조,헌종등 세임금의 즉위식이 거행되었다.그러나 일제가 경희궁을 훼손하면서 1926년 숭전전 건물을 일본이 사찰에 팔았는데 현재는 동국대 정각원(正覺院)으로 남아있다. 현 위치의 숭전전은 복원된 것이다.






숭전전의 옥좌...



자정문...


자정전.....


자정전(資政殿): 경희궁의 편전(便殿). 1617~1620년(공해군 9~12)사이에 건립되었다. 국왕이 신하들과 회의를 하거나 경연을 여는등 공무를 수행하던 곳이다. 선왕들의 어전이나 위폐를 모시기도 하였다. <서궐도안>에 의하여 현재의 건물을 복원하였다. 태령전(泰寧殿): 영조의 어진(御眞:초상화)을 보관하던 곳. 본래는 특별한 용도가 지정되지 않은 건물이었다. 그러니 영조의 어진이 그려지자 1744년(영조20)에 이곳을 중수하여 보관하였다. 일제에 의하여 흔적도 없이 파괴되었지만 2000년 <서권도안>에 의하여 정면5칸, 측면2칸의 건물로 복원되엇다. 현판은 석봉 한호의 글씨를 집자하여 만들었다.






서암... 태녕전 뒤에 있는 바위이다. 바위샘이라는 뜻을 갖는 ‘암천(巖泉)’으로 불리는 샘이 그 속에 있다 이 바위는 임금님 바위라는 뜻의 ‘왕암(王巖)’으로 불렸는데, 그 이름으로 인하여 광해군이 이 곳에 경희궁을 지었다는 속설도 있다. 1708년 (숙종34)에 이름을 상서로운 바위라는 뜻의 ‘서암(瑞巖)’으로 고치고, 숙종이 직접 ‘서암’ 두 글자를 크게 써서 새겨 두게 하였다. 현재는 서암을 새겨두었던 사방석은 전해지지 않고, 다만 바위에 깎아 놓은 물길이 옛 자취를 전해주고 있다.



태녕전...


태령전(泰寧殿): 영조의 어진(御眞:초상화)을 보관하던 곳. 본래는 특별한 용도가 지정되지 않은 건물이었다. 그러니 영조의 어진이 그려지자

1744년(영조20)에 이곳을 중수하여 보관하였다. 일제에 의하여 흔적도 없이 파괴되었지만 2000년 <서권도안>에 의하여 정면5칸, 측면2칸의 건물로 복원되엇다. 현판은 석봉 한호의 글씨를 집자하여 만들었다.


영조의 어진...


관람객과 해설사...


경희궁의 느티나무...



희망나무 프로젝트...


흥화문에서 바라보는 경희궁...뒷편에 인왕산...




경희궁의 정문, 흥화문....




광화문 광장:


새문안교회...신축 건물...



화목순대국전문....광화문1호점...02-723-8313....


세종문화회관...



윤동주 시인의 '서시' 읽는 소녀...



서시 (序詩)
                    운동주 (1917-1945)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시인 윤동주 (1917-1945): 중국 길림성 회룡면 명동촌 출생. 연희전문대 졸업. 일본 릿코대학 문학부 입학. 그러나 피어보지 못한 꽃 같은 젊은 시인은 해방을 불과 6개월 앞두고 후쿠오까 형무소에서 28의 젊은 나이에 옥사하였다. 안타깝다.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의 詩>.




정지용 시인의 '별'을 읽는 청년...



          정지용 (1902-1950)

 

 누워서 보는 별 하나는

진정 멀-고나.

 

아스름 다치랴는 눈초리와

금실로 이은 듯 가깝기도 하고,

 

잠 살포시 깨인 한밤엔

창유리에 붙어서 엿보노라.

 

불현듯, 솟아날 듯

불리울 듯, 맞어드릴 듯

 

문득 영혼안의 외로운 불이

바람처럼 일는 회한에 피여오른다.

 

흰 자리옷 채로 일어나

가슴 위에 손을 녀미다



정지용(1902~1950): 충북 옥천군 옥천읍 출생. 휘문고등학교와 일본 도시샤(同志社)대학 졸업. 1926년 '학조' 창간호에 <카페·프란스>를 발표하면서 등단하였다. 구인회의 창립멤버이며, 일제의 탄압이 이어지자 모더니즘에 눈을 돌리기도 하였다. 청록파 (조지훈, 박목월, 박두진)와 윤동주 등을 추천함. 그리고 일제와 미국과의 전쟁이 시작된 1942년 이후 붓을 꺾고 글을 쓰지 않았다. 1950년 6.25 전쟁시 피난길에 오르지 못한 채 서울에 남아있다 납북되었고 평양감옥에 수감되었다가 폭격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세종포레스...




세종대왕상...혼천의, 측우기, 해시계...



광화문...경복궁의 정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