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구릅/일상들 ( life )

① 강화도 나들이 ( 전등사 ) - ( 2021.09.23 )

by the road of Wind. 2021. 9. 23.

강화도 나들이

( 전등사, 초지진, 황산도  &  초지항 '대성호' )

- ( 2021.09.23 )

 

- <  정족산 전등사 >:

 

아들고 함께 강화도 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강화도는 오랜만에 다녀온 것 같습니다.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운전 신경 쓰지 않고 전철과 버스를 이용하여 한두번은 다녀왔을 텐데, 외부 나들이를 삼가하여 그동안 주욱 집에만 있으니 정말 오랜만의 강화도 나들이가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코로나 때문에 오늘도 밥을 어디에서 먹나? 하고 걱정이 되었습니다. 강화도는 횟집의 경우도 보통 운영하는 어선의 이름을 상호로 사용하여 '00호', '△△호' 로 붙여 바닷가 수산센터에 일정한 크기의 칸막이 형태로 음식점을 운영하는 곳이 많습니다. 그래서, 조금 내부가 비교적 좁고 공기 순환도 잘 되지 않을 것 같아 상당히 망설여 졌습니다. 그렇지만 아들이 운전도 해주고 하여 이것도 기회다 싶어 그대로 진행하였습니다. 

 

강화도 하면 먼저 인천 강화군 길상면에 있는 정족산 전등사가 떠오릅니다. 그래서 출근 시간대를 피하여 오전 10:20분경 집을 출발하여 먼저 전등사부터 가보려 하였습니다. 88올림픽도로의 상태도 차의 흐름이 양호하고, 날씨는 맑게 개이고 약간 서늘하여 전형적인 가을 날씨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추분입니다. 전등사 남문주차장에는 12:22분 도착하였습니다. 주차장에 나들이 나온 차들이 꽤 많습니다. 매표소에서 신분증 확인으로 경로 우대 할인으로 패스하여, 약간 가파른 길을 따라 전등사로 오릅니다. 옛 날엔 평지였던 것 같은데, 오늘 보니 약간의 경사 길을 오르게 됩니다. 맨 먼저 종해루(宗海樓) 만나 문을 통과합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조금 오르니 전등사 사찰이 보이고, 나무 가지가 많고 키가 큰 보호수들이 여기저기 보입니다. 오래된 고찰의 면목을 보는 듯합니다. 아들은 주차장에 머무르고, 집 사람은 같이 오르다 힘들다며 기념품 판매점 의자에 앉아버리고, 나만 혼자 전등사 이곳 저곳을 뛰듯이 쏘다녔습니다. 그리고, 필요한 곳의 사진을 가능한한 빠르게 찍은 후 절을 곧장 내려왔습니다. 

 

 

 정족산(鼎足山) (223m) : 인천시 강화읍 길상면 온수리 소재의 산으로 강화도에서 가장 유명한 고려시대의 사찰 전등사를 품고 있는 산이다. 산의 생김새가 마치 세 발 달린 가마솥과 같다 해서 이름이 붙여진 정족산이다. 정족산 기슭에는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삼랑성도 있다. 그 성안에 아늑하게 전등사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정족산은 마니산의 한 줄기가 서쪽으로 뻗어 길상면 온수리에 이르러 다시 세 봉우리를 형성하여 정족산(鼎足山)을 만들었다. 

 

 전등사(傳燈寺): 전등사는 서기 381년(고구려 소수림왕 11년)에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처음으로 전래된 것이 서기 372년이므로 지금은 그 소재를 알 수 없는 성문사, 이불란사(375년 창건)에 이어 전등사는 한국 불교 전래 초기에 세워진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도량임을 알 수 있다. 처음 전등사를 창건한 분은 진나라에서 건너온 아도 화상이었다. 당시 아도 화상은 강화도를 거쳐 신라 땅에 불교를 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도 화상이 강화도에 머물고 있을 때 지금의 전등사 자리에 절을 지었으니 그때의 이름은 ‘진종사(眞宗寺)’ 라 하였다. 진종사가 다시 역사의 기록에 등장한 것은 고려 고종 46년 때인 1259년이었다. 이때 고종은 삼랑성 안에 가궐(假闕)을 지었다. 이보다 앞선 1232년, 고려 왕실에서는 몽골의 침략에 대응하기 위해 강화도로 임시 도읍을 정하고 궁궐을 지은 바 있다. 고려의 강화도 도읍은 1232년부터 1270년까지 이어진다.  고려 왕실에서는 삼랑성 안에 가궐을 지은 후 진종사를 크게 중창시켰으며(1266년), 16년이 지난 1282년(충렬왕 8년)에는 왕비인 정화궁주가 진종사에 경전과 옥등을 시주한 것을 계기로 '전등사(傳燈寺) ’ 라 사찰 명칭을 바꾸었다. 이때는 고려 왕실이 개경으로 환도한 뒤였고, 39년 동안 쓰였던 강화 궁궐터는 몽골군에 의해 폐허로 변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삼랑성 안의 전등사는 꾸준하게 사세를 유지해나갔다. 전등사는 조선의 숭유억불 정책에도 불구하고 향화(香華)가 그치지 않았던 가람이다. 현종 원년(1660년)에 경내에 선원각과 장사각이 세워졌으며 숙종 4년(1678)에 왕조실록을  장사각에, 왕실족보와 관계 문적들을 선원각에 보관하게 된다. 이로 인해 전등사는 정족산 사고를 지키는 사찰이기도 하였다.

1 대웅전, 2 강설당, 3 명부전, 4 약사전, 5 삼성각, 6 향로전  극락암, 8 적묵당,종무소, 9 대조루, 10 종루, 11 남문, 12 종각, 13 양현수비, 14 동문, 15 화장실, 16 정행당, 17 죽림다원, 18 삼랑성, 19 부도전, 20 정족사고, 21 고려가궐지, 22 관해암, 23 설법전, 24 요사채, 25 취향당.

 

 삼랑성(三郞城): 삼랑성은 사적 제130호의 돌성이다. 성의 시설물로는 남문루 동문, 서문, 북문지가 있고 성 안에는 13개의 우물이 있었다고 전하며 고구려시대에 창건된 전등사가 있다. 1739년과 1764년 및 조선 말기에 여러 차례 보수공사를 하고, 1976년에는 남문 종해루를 원형 그대로 복귀했다. 성의 동문 안에는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대를 대파하는데 공헌한 양헌수 전숭비가 있다.

 

 

전등사 남문주차장, 남문식당

 

 

매표소로 향하는 전등사 입장객들

 

 

 

전등사 매표소

 

전등사 입장료:  
- 어른(19세이상): 개인 3,000, 단체(30명이상) 2,500
- 청소년(중고생): 개인 2,000, 단체 1,500
- 어린이 (초등생): 개인 1,000, 단체 800
- 노인(경로)(만 65세 이상):  무료(신분증 제시) 

 

면제사항: 아래 호에 해당하는 입장객에 한해 입장료를 면제됩니다. 
- 대한불교조계종 신도증소지자 (유효기간내)
- 미 취학아동(만 7세 미만)
- 만 65세 이상 노인 (신분증소지자)
- 국가유공자 (공자등 소지자) 단, 상이용사 1,2급 보좌하는 1인 포함.
- 장애인 (복지카드 소지자) 단, 1,2,3 급 보좌 1인 포함.
- 강화군 지역 주민 (신분증소지자)
- 위 사항은 내국인에 한함.


운영시간:
- 하절기;  오전 8시 ~ 오후 6시 30분.
- 동절기:  오전 8시 30분 ~ 오후 6시.

 

주차비(동문.남문): 주차배는 관람료 면제사항과 별도입니다. 
대형 4,000, 소형 2,000
- 결제방법: 현금, 카드결제 가능. 

 

* 애완견 동반:  가능 (단, 목줄 착용 및 동반서약서 작성시 )


 

 

 

2021 삼랑성  역사 문화 축제
2021. 10. 2 ~ 10. 10,  전등사 

 

남문과 종해루(宗海樓):


종해루는 전등사 삼랑성의 남문에 위치해 있다. 영조15년(1739)에 유수 권교가 수축하고 종해루란 현판을 걸었다. 영조 40년91764)에 중수하고 정조7년(1783)에 유수 김노진이 기문을 지었다고 한다.

 

 

 


강화 삼랑성 (남문방면):

 


강화 삼랑성 (江華 三郞城)은 일명 정족산성(鼎足山城)이라고도 한다. 성을 쌓은 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단군이 세 아들에게 성을 쌓게 하고 이름을 삼랑성이라 했다는 기록이 <고려사지>에 남아있다. 성안에는 삼국 시대에 창건된 전등사가 있다. 고려 시대에는 임시로 지은 궁궐인 가궐(假闕)이 잇었으며, 조선 시대에는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는 정족산 사고와 왕실의 족보를 보관하는 선원보각이 있었다. 이곳은 조선 고종3년(1866)에 프랑스 군대가 침공한 병인양요* 때 양현수 장군이 이끄는 군대가 동문과 남문으로 공격해 오던 160여명의 프랑스군을 무찌른 곳으로 유명하며, 동문 안에는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양현수승전비가 있다. 삼랑성은 강화산성과 더불어 고려-조선시대에 수도 개경과 한양의 외곽을 방어하는 매우 중요한 장소였다. 강화 삼랑성은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곳으로, 예로부터 신성한 곳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 병인양요(丙寅洋擾): 고종 3년인 1866년 흥선 대원군이 천주교도 학살과 탄압에 대항하여 프랑스 군대가 강화도로 침범한 사건.  

 

 

 

보호수

수종: 은행나무/ 수령: 약 700년 / 수고: 24m /  나무둘레: 6.5m / 일련번호: 강화-4-9-66 /  지정년도: 2001년 /
 소재지: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42 / 관리자: 길상면장

 

 

노승나무와 동자승 나무이야기


조선조에 오면서 배불숭유 정책으로 전국의 사찰은 조정으로 부터 여러가지로 박해를 받게 되었다. 승려는 성곽을 쌓거나 다리를 놓는 일에 사역을 나가야 했고 사찰에서는 제각기 특산물을 공물로 받쳐야만 했다. 그러던 어느해에 관야에서 전등사 입구에 서 있는 은행나무에서 수확량을 두배로 바쳐라 한다고 동자승이 노승에게 전하였다. 전등사의 노승은 걱정이 태산 같았다. 풍년이 들어야 열가마니인데 스무 가마니를 내라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고민 끝에 노승은 도술이 뛰어난 백련사의 추승스님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동자승을 추승스님에게 보냈다. 동자승과 함께 온 추승스님은 은행나무열매가 더 열리게 하는 3일 기도에 착수하였다. 마지막 날 늦은 오후 은행나무 앞에서 3일 기도가 막바지에 다다르자 추승스님이 축원을 읽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그 축원의 내용은 은행나무가 천년만년 열매를 맺지 않게 하여 해다라는 내용이었다. 뜻밖의 축원에 모인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축원이 끝나자 마자 먹구름이 몰려오면서 천둥번개와 함께 돌풍이 몰아치고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관군들과 모여있던 사람들이 놀라서 모두 땅바닥에 엎드렸다가 고개를 들었을 때 기도하던 추승스님과 동자스님이 모두 사라졌다. 사람들은 보살들이 전등사를 구하기 위해 세명의 스님으로 변해 왔다고 하였다. 이후 은행나무는 더 이상 열매를 맺지 않았으며, 긴 세월의 풍상과 역사의 상처를 안은 채 오가는 이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 있다.     

   

 

진무중군 이공 용의 휼승도 영세불망비  


어려울 때, 배고파 죽어갈 때 양식으로 구휼하는 공덕은 이세상의 어느 것과도 비교가 되지 않을 아름다운 미덕이다.  영원히 잊지 않기 위한 불망비다. 너무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2021 삼랑성 역사 문화 축제 

2021.10.2 - 10.10  전등사 

 

 

" HSBC 은행은 2008년 부터 정족산 전등사에 아름다운 숲을 가꾸어 환경 사랑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환경은 다음 세대에 물러줘야 할 소중한 자산이기 때문입니다. "

 

 

 

 

가을 코스모스

 

 

적묵당

 

 

 

대한불교조계종 전등사

 

 

전등사 느티나무

 

수령 약 400년, 지정년도 1997년, 높이 20m, 둘레 4.6m, 관리자 길상면장.

 

고구려 소수림왕11년(381년) 아도화상이 창건하고 진종사라 부르다가, 충렬황의 원비 정화공주가 승려 인기(印奇)에게 부탁해서 송나라 대장경(大藏經)을 간행하여 이 절에 보관하도록 하고, 옥등(玉燈)을 시주한 후 전등사라 부르게 되었다. 그러나 이 고찰은 조선 광해군 때 화재로 인하여 소실 되었다가 1615년 재건하였는데, 그 때 풍치목으로 심은 나무로 추정되는 이 느티나무는 대웅전 뜰 앞에서 전등사를 찾는 이들의 쉼터로 주변의 큰 나무들과 조화를 이루어 운치를 더하고 있다.   - 광화군.

 

 

 

범종각, 극락암

 

 

약사전

 

대웅보전

 

 

 

나부상(裸婦像)의 전설


네 모서리기둥 윗부분에는 사람 모습을 조각해 놓았는데 이것은 공사를 맡았던 목수의 재물을 가로챈 주모의 모습이라는 전설이 전해져 오는데, 재물을 잃은 목수가 주모의 나쁜 짓을 경고하고 죄를 씻게 하기 위해 발가벗은 모습을 조각하여 추녀를 받치게 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대조루

 

명부전, 약사전, 대웅보전

 

 

큰나무

수종: 단풍나무/ 수령 약 280년 / 소고 18M / 나무둘레 5.2M

 

전등사 대조루는 1749년(영조25) 주지스님 초윤이 재건하였다. 그 때 대조루 동편에 심은 나무로 추정되는 이 단풍나무는 수령이 약 280여년 된 청단풍으로 한 밑둥에서 여러 가지가 나와 수세가 왕성하다. 사계절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하는 단풍나무는 전등사를 찾는 이들에게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보배같은 나무이다.  

 

 

 

강설당 

 

 

 


미워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살면서
                                     아무도 미워하지말고 행복하게 살자

미워하는 사람들 가운데
                    미움에서 벗어나 살자.

Let us live happily then, 
    hating none in the midst of men who hate;
Let us dwell free from hate
    among men who hate.

我生已安_아생이안 不慍於怨_불온어원
衆人有怨_중인유원  我行無怨_아행무원


- 법구경 제15장 安樂品(안락품) / 197. 

 

 

사람사는 온기를 느끼게 하는 장독대

 

 

 

선불장

 

 

근심에 지친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근심에서 벗어나 행복하게 살자.
근심에 지친 사람들과 살면서 근심에서 벗어나 살자.

Let us live happily then, free from care in the midst of those who are careworn;
Let us dwell free from care among men who are careworn.

我生已安_아생이안 不感於憂_불감어우
衆人有憂_중인유우 我行無憂_아행무우.


- 법구경 제15장 安樂品(안락품) / 199.

 

 

 

<- 동문, 남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