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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구릅/일상들 ( life )

나의 길 ( 춘향골남원추어탕, 광주향교, 상사창동 연자방아 ) - ( 2021.09.30 )

by the road of Wind. 2021. 9. 30.

나의 길

( 춘향골남원추어탕, 광주향교, 상사창동 연자방아 )

- ( 2021.09.30 )

 

 

오늘은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날이다. 아주 오랜 옛날 가을 날 나는 울음소리와 함께 우리 어머니 품에 안겼을 것이다. 우리 어머님은 생명을 잉태하여 어머니가 된 벅찬 감동과 기쁨으로 해산의 고통을 잊으셨을 것이다. 지나간 일생을 돌아보면 인생은 천변만변(千變萬變)하며, 길고도 짧은 것이 인생이구나 생각하게 된다. 

 

오늘은 아침 일찍부터 집사람이 병원에 가는 날이어서 바쁘게 움직였다. 그리고, 오전 늦게 집에 들어오게 되었다. 내일이 생일인데 미안하다며 어제 아침 집사람이 정성껏 끓여주던 미역국이 생각난다. 미역국 먹으니 한 살 더 먹은 것이다. 나는 미역국을 볼 때마다 어릴 때 어머님이 동생 출산 후 흰쌀밥에 미역국을 받아놓고 나를 부르시던 그 때가 생각난다. 그 때 어머님 방에 들어갔을 때 비릿한 젓 냄새와 함께 너무 묘한 느낌을 받았다. 어머님은 귀한 흰쌀밥을 나 부터 먹이려 하셨던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본인의 몸보다 자식부터 생각하신 어머님을 되돌아보면 내 마음에 감동과 슬픔이 벅차오르게 된다. 

 

오늘 생각하건데, 사람의 길은 누구나 비슷하다고 생각된다. 보통 거의 비슷한 양태의 삶을 살아가다가 이 세상을 등지게 된다. 나에게 남은 여생이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기간이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누구에게나 비교적 건강하게 살 수 있는 80까지의 기간 동안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중요하다. 이 기간이 말하자면 인생의 골든 타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실감하게 된다.   

 

 

◆ 젊은이는 소망으로 살고, 노인은 추억으로 산다.   - 프랑스 격언

◆ 인생은 복잡하지 않다. 우리가 복잡한 것이다. 인생은 단순하다. 그리고 단순한 것이 바로 올바른 것이다.

Life is not complex. We are complex. Life is simple, and simple thing is the right thing.

- 오스카 와일드.

 

오전 아침부터 움직이니 집에 오니 피곤하였다. 그래서 집에서 조금 쉬다가 하남시 교산동에 있는 춘향골남원추어탕 집으로 가서 점심을 해결하였다. 그리고 바로 근처에 있는 광주향교를 둘러보고 고골 계곡 입구로 가서 하남시 상사창동 연자방아와 주변을 잠깐 구경하고 집에 돌아왔다. 맑게 개인 하늘과 푸른 주변의 산천을 바라보니 가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좋은 계절이다!  

 

 

춘향골남원추어탕 하남점

 

언젠가 하남 교산동 광주향교에 구경 갔다 점심 시간에 우연히 한번 들러본 집인데, 추어탕이 너무 좋아 오늘 다시 찾아온 집이다. 하남시에서는 알아주는 추어탕 맛집 중 하나라고 생각된다.  추어탕 하면 서울 광진구 성수사거리 건대먹자골목 입구의 남원추어탕이 유명하여 이곳으로 많이 다녔는데, 하남의 춘향골남원추어탕의 추어탕 맛도 거기에 전혀 부족하지 않다 말하고 싶다. 

춘향골남원추어탕 하남점 ( 031-794-7574 / 경기 하남시 교산동 223-1 ):

 

 

아 진하고 구수한 추어탕 국물맛과 돌솥밥이 너무 잘 어울린다. 돌솥밥이 너무 좋다. 

 

 

돌솥밥은 물을 부어 고소한 숭늉 만들어 먹는 맛이 식후에 최고의 맛이다.  

 

 

메뉴: 

 

<식사류>:

세트메뉴 (추어튀김/ 추어군만두/ 추어탕) 1인 14,000원, 추어탕 10,000, 통 추어탕 12,000, 우렁추어탕 12,000, 추어튀김 15,000, 추어돈까스 9,000, 등심돈까스 9,000, 추어 군만두/물만두 7,000,  

 

<요리> 추어 불고기: 35,000, 추어 숙회 35,000

 

 

춘향골남원추어탕  앞 마당에 있는 익어가는 감...

 

 

● 광주향교:

 

광주향교 주차장 (무료)

 

'향교의 수호목'

 

보호수 은행나무, 나무나이 약500년  


이 나무는 수나무로 향교 주위에 4그루의 암나무를 거느리고 있다.

 

 

 

 

광주향교 |  廣州鄕校


향교는 성현에게 제사를 올리고 지방민을 교육.교화하고자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현재는 교육은 하지 않고 제사만 올리고 있다. 광주향교를 처음 지은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조선 숙종 29년(1703)에  고읍(古邑) 서쪽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향교의 가장 뒤쪽에는 제사 공간인 대성전과 동무.서무가 있으며 그 앞으로 교육 공간명륜당과 동재.서재가 있어 전형적인 전학후묘(前學後廟) 구성으로 배치되어 있다.  대성전은 앞면 3칸, 옆면 4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려고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에만 공포가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안쪽에는 공자를 비롯한 중국과 우리나라 성현의 위폐를 모셨다. 명륜당은 앞면 5칸. 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명륜당은 학생들이 모여 공부하는 강당이고, 동재.서재는 학생들의 기숙사이다.

 

 

 

광주향교

 

 

공자 (BC 551~ BC 479):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정치가, 사상가, 교육자이다.  예수, 석가, 소크라테스와 함께 세계 4대 성인 중 한 사람이다. 

탄생: 노나라 시대 산동성 추읍(郰邑)에서 아버지 숙량홀이 64세에 세째 아내 안씨와의 사이에 늦둥이로 태어나다. 공자의 어머니는 아들을 얻기 위해 니구산(尼丘山)에 가서 신령님께 기도를 올리고 공자를 낳았다고 한다. 그런 까닭에 공자의 이름의 니구산의 구(丘) 자에서 따왔다고 하는 설이 있다. 
성장: 공자 3세 아버지 타계하고, 어머니 슬하에서 성장함. 공자는 성장하면서 15세 이전 학문에 열중하고, 어릴 때 부터 예(禮)에 뛰어났다고 한다. 
- 결혼생활: 공자 19세에 어머니 권유로 노나라 거주 송나라 사람 계관씨의 딸과 결혼함. 결혼후 1년만에 아들을 얻었으나 부인에 대하여는 별로 알려진 게 없다. 
교육활동: 공자 나이 24세에 어머니 돌아가심. 그 후 자기집을 서당으로 젊을 때부터 교육활동을 하여 수십년 동안 무려 3,000명이 넘는 제자를 양성함. 제자 중 특히 안연, 자공, 자로, 자장, 자하 등이 유명하다. 
관리생활: 나이 50세에 고향의 관리가 되다. 이듬해 노나라 정공의 제나라와의 화해조약 행차시 대동함. 54세에 재상의 실권을 득함. 그 후 정공이 제나라에서 보내온 여자들 때문에 정사를 돌보지 않자 관직을 사임함.
- 생의 마감: 56세에 모국인 노나라를 떠나 약 14년 동안 천하를 주유하며 인(仁)에 기초한 정치를 펼치려 했으나 실패하여 유가 경전을 정리, 편찬하는 데 전념하고, 제자 양성에 힘썼다. 공자 나이 68세에 아들을 먼저 떠나보냄. 제자 중 70세에 도(道)의 계승자로 여기던 안연이 타계하고, 71세에 재아, 72세에 가장 믿었던 자로 마저 세상을 떠남. 그후 공자는 73세에 타계함. 
- 공자의 사상:  공자는 인(仁)을 인간의 최고의 도(道)와 덕(德)임을 주창하였다. 공자는 인을 근본으로 예를 실천하는 사람이 군자라고 설파앴다. 《논어》는 그의 제자들이 스승이 죽은 후 편찬한 것으로 공자의 사상이 집대성 되어있다. 

 

공자 년표:

BC551년 (1세): 노나라 창평향 추읍에서 출생
BC549년 (3세): 아버지 숙량흘 여의다. 
BC537년 (15세): 배움에 뜻을 두다. 
BC535년 (17세): 이 무렵 어머니 안씨를 여의다.  
BC533년 (19세): 송나라 견관씨와 결혼하다.
BC532년 (20세): 아들 공리가 태어나다. 계씨의 창고지기가 되다.
BC531년 (21세): 가축사육하는 일을 맡다. 
BC525년 (27세): 노나라에 온 담자에게서 고대 관제를 배우다. 
BC522년 (30세): 자립하다. -<논어>
BC518년 (34세): 노나라 대부 맹희자가 아들 맹의자와 남궁경숙에게 공자를 스승으로 삼아 예를 배우라로 유언하여 공자에 입문함.
BC516년 (36세): 제나라 경공이 정치를 묻다. 
BC516년 (36세): 소악(韶樂)을 듣고 음악에 심취하다.
BC515년 (37세): 제나라에서 노나라로 돌아오다.  
BC512년 (40세): 의혹되지 아니하다 -<논어>  
BC509년 (43세): 노나라 정공 즉위하다.
BC502년 (50세): 천명을 알다. -<논어>  
BC501년 (51세): 정공9년 노나라 정공이 중도(中都)으; 제(帝)로 삼다. 중도의 제에서 사공(司空), 대사구(大司寇)로 승진하다.
BC500년 (52세): 정공10년. 노정공과 제경공의 협곡회담에 참여하다. 제경공으로 부터 노나라 따을 돌려받다. 
BC497년 (55세): 정공13년. 제나라로 부터 여악(女樂)받고 정사를 돌보지 않자 위나라로 떠나다. 
BC497년 (55세): 위나라에서 10개월을 머물다 진나라로 가는 도중 광(匡)에서 포위되는 재난을 당하다. 
BC492년 (60세): 귀가 순하게 되다. - <논어>
BC490년 (62세): 섭나라의 섭공과 정치를 이야기하다.
BC489년 (63세): 초나라로 가는 도중 진나라와 채나라 사이에서 식량이 떨어져 곤경에 처하다.
BC484년 (68세):  노나라의 계강자가 예를 갖추어 공자를 부르니 14년만에(BC497-484)만에 노나라에 돌아오다.  
BC483년 (69세): 악(樂)을 바로 잡다. 아들 공공리가 50세로 죽다. 
BC482년 (70세): 마음이 하는 대로 따라도 정도를 지나치지 않게 되다. - <논어>. 노나라가 공자를 정치에 쓰지 않자 제자를 가르치고 문헌을 정리하는일에 힘쓰다. 제자 안희 죽다. 
BC481년 (71세): 춘추를 짓다.
BC480년 (72세): 위나라 정변으로 제자 자로 죽다. 자로의 시체를 소금에 절였다는 말을 듣다.
BC479년 (73세): 애공 16년 하(夏) 사월에 공자 세상을 떠나다. 노나라 도성 북쪽 사수(泗水) 강 언덕에 묻히다. 

 

 

 

명륜당 & 동재, 서재 (보수 중?)

 

"문화재자료 제 13호 광주향교"

 

 

 

광주향교사적비

 

 

 

보호수 은행나무들

 

 

보호수 

 

(지정일자: 1981년 3월 11일 )
나무종류: 은행나무, 나무나이: 약 450년, 나무 높이: 32m, 나무둘레 670cm

 

 

보호수 

(지정일자: 1981년 3월 11일 )
나무종류: 은행나무, 나무나이: 약 450년, 나무 높이: 30m, 나무둘레 290cm

 

 

보호수 

(지정일자: 1981년 3월 11일 )
나무종류: 은행나무, 나무나이: 약 500년, 나무 높이: 31m, 나무둘레 810cm

 

 

보호수 

(지정일자: 1981년 3월 11일 )
나무종류: 은행나무, 나무나이: 약 450년, 나무 높이: 27m, 나무둘레 500cm

 

 

광주향교 대성전, 동무 & 서무 일부분

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한 중국과 우리나라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공자 어록 》:

 

 子曰 由아誨女知之乎인저. 知之爲知之오 不知爲不知 是知也니라. 
( 자왈 유 회여지지호 . 지지위지지 부지위부지 시지야 )
- 유야 너에게 안다는 것을 가르쳐 주마, 

아는 것을 안다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참으로 아는 것이다.

 成事라 不說하며 遂事라 不諫하며 旣往이라 不咎로다
( 성사 불설 수사 불간 기왕 불구 )
- 이미 이루어진 일은 말하지 않으며, 끝난 일은 간하지 않으며, 지난 일은 탓하지 않는다.

 子曰 不仁者는 不可以久處約이며 不可以長處樂이니 仁者는 安仁하고 知者는 利仁이니라.
( 불인자 불가이구처약 불가이장처락 인자 안인 지자 이인 )
- 어질지 못한 사람은 역경에 오래 있지 못하며 행복도 오래 누리지 못한다.
그리고 어진 사람은 仁(인)을 편안하게 여기고 지혜로운 사람은 인을 이롭게 생각한다.

子曰 德不孤라 必有隣이니라.
( 덕불고 필유린 )
- 덕이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으며 반드시 이웃이 있다.

 子曰 人之生也 直하니 罔之生也는 幸而免이니라.
( 인지생야 직 망지생야 행이면 )
- 인간의 삶은 원래 정직한 것이다, 정직하지 않으면서도 살 수 있는 것은 요행히 화를 면하고
있는 것이다.

 子 絶四러시니 毋意毋必毋固毋我러시다. 
( 자 절사 무의무필무고무아 _
- 공자께서 네 가지를 근절 하셨으니 자의대로 하는 일이 없었고, 집착하지 아니하고, 
고집을 안부리고, 자기만을 내 세우는일 (생각하는 일) 은 없으셨다.

 過猶不及이니라.
( 과유불급 )
-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과 같다.

 子曰 不患人之不己知오 患不知人也니라.
( 불환인지불기지 환부지인야 )
-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지 못함을 탓하라.

 子曰 人無遠慮 必有近憂니라.
( 인무원려 필유근우 )
- 사람이 먼 앞날을 걱정하지 않으면 반드시 가까운 시일에 근심이 생긴다.

子曰 躬自厚而薄責於人이면 則遠怨矣니라. 
( 궁자후이박책어인 즉원원의 )
- 자신을 꾸짖기는 엄하게 하고 남을 책망하길 가볍게 하면 남의 원망하는 소리를 멀리할 수 있다

 子曰 唯女子與小人이 爲難養也 近之則不孫하고 遠之則怨이니라 
( 유녀자여소인 위난양야 근지즉불손 원지즉원 )
- 여자와 소인은 다루기 어렵다. 가까이 하면 불손하게 굴고 멀리 하면 원망을 한다.


 子曰 年四十而見惡焉이면 其終也已니라.
( 연사십이견오언 기종야이 )
- 나이 사십이 되어서도 남에게 미움을 받는다면 그것은 끝장이 난 것이다.

 子貢이 問曰 有一言而可以終身行之者乎이까 子曰 其恕乎인저 己所不欲을 勿施於人이니라. 
( 자공 문왈 유일언이가이종신행지자호 기서호 기소불욕 물시어인 )
- 자공이 한마디의 말로 평생토록 행할 만한 것이 있습니까 묻자 그것은 오직 서(용서) 이니라.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말 것이니라.

子曰 君子 求諸己오 小人은 求諸人이니라. 
( 군자 구저기 소인 구저인 )
- 군자는 모든 책임의 소재를 자신에서 구하나 소인은 남에게서 구한다.

 

 

 

명륜당과 대성전 출입문

 

 

 

 

 

대성전

 

 

광주향교 주변, 경관 광장 종합안내

 

 

 

● 상사창동 연자방아:

멀리 고골계곡과 남한산성 북문(전승문) 방향

고골 입구 공용 주차장 (무료)

 

고골:

 

하남의 지형은 낮은 야산과 구릉지대가 펼쳐져 있고, 북쪽으로 흐르는 한강에는 망월천, 덕풍천,산곡천 같은 작은 샛강이 흘러 들어가며 강줄기의 옆에는 평야가 형성되어 있어서 B.C 4000여년 전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하였으며, 수로를 이용한 타 지역의 선진문화를 받아들여 문화가 융성했던 지역이다. 또한 남쪽으론 남한산, 동쪽은 검단산, 북쪽으론 한강이 흘러 군사의 요충지로서 더할 나위 없이 좋아 백제의 시조인 온조께서 이곳에 도읍을 정하고 470여 년간 한성백제의 수도로 위상을 떨치던 지역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한수의 쟁패를 놓고 삼국이 각축을 벌이던 역사의 현장 이기도 하다. 고려시대에 접어들어선 후삼국을 통일하고 태조의 개국을 도와 새로운 나라의 기틀을 조성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광주의 대호족 왕규가 세거를 이루었던 곳으로 추정하고 있다. 성종때(983년)에 이르러서는 지방통제를 위한 지방관제를 실시하여 지방행정상 요지에 12목(광주,양주,충주,청주,공주,진주,상주,전주,나주,송주,해주,황주)을 설치하였는데 광주도 12목의 하나로서 읍치가 바로 하남의 춘궁동(고골) 이었다. - ( 하남시 )


 

하남시 상사창동

풍경채 ( 031-793-0440/ 경기 하남시 고골로 347 )

 

남한산성도립공원 탐방안내도  

( * 현위치에서 북문까지의 거리는 1.5km로 약 30분 소요됩니다. )  


1코스: 산성로터리- 북문- 서문- 수어장대- 영춘정- 남문- 산성로터리 ( 3.8km, 1시간 20분 ) 
2코스: 산성로터리- 영월정- 숭렬전- 수어장대- 서문- 국청사- 산성로터리 ( 2.9km, 1시간 )
3코스: 남한산성 역사관주차장- 현절사- 벌봉- 장경사- 망월사- 지수당-  남한산성 역사관주차장 ( 5.7km, 2시간 )
4코스: 산성로터리- 남문- 남장대터- 동문- 지수당- 개원사- 산성로터리 ( 3.8km, 1시간 20분 )
5코스: 남한산성 역사관주차장- 동문- 동장대터- 북문- 서문- 수어장대- 영춘정- 남문- 동문 ( 7.7km, 3시간 20분 )

 
 

하남위례둘레길 안내도

 

고골종점가든

 

-> 북문, 벌봉 등산로

-> 성문사, 물레방아, 고골산장, 토박이, 항아리가든, 하비비, 상록수

 

 

소하천 법화천 

 

▶ 법화골: 

 

법화골이란 지명 유래는 병자호란 당시 청태종의 매부인 양고리(楊古里)가 우리나라 원두표 장군에게 패하여 전사하자 전쟁이 끝난 후 그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남한산성 북문 밖에 암자를 지어 그 이름을 양고리의 고향이름인 법화둔(法華屯)을 따서 법화암(法華巖)이라 붙여 부르게 되니 그 밑에 생긴 부락명도 자연 법화동, 법화골이라 부르게 되었다 고한다. - (  하남시 )

 

 

 

 

 

문화재자료 제82호 하남시 상사창동 연자방아

 

상사창동 연자마 경기도문화재자료 제82호: -  상사창동 연자마는 굴리는 돌인 동그란 숫돌과 받치는 돌인 암돌로 되어있다. 숫돌에는 나무로 만든 사가형 방아들이 숫돌을 감싸듯 부착되어 있어서 소나 말이 이 돌을 끌어 돌리면서 방아를 찧도록 되어있다. 방앗간은 원래 여덟개의 기둥 위로 볏집으로 짠 지붕을 올린 팔각정자 모양의 건물이었으나 현재는 새로 보수해 놓은 모습이다. 마을에서 공동으로 사용해 온 것으로 거의 원형상태로 잘 보존되어 있으며 제작연대는 1930년대로 짐작된다.

 

 

 

 

 

연자방아

 

 

아름다운 벽화, 그리고 시

 

봄을 올라타다
                     이상래

 

복숭아 밭을 지나
돼지 대불이러 간다
캄캄한 길 담뱃불을 따라간다

봄 가을에도 잘 자라는 버들가지
거름 속에서 김이 올라온다

밥상을 물린 아버지는
영화 간판 그리러 간
아들 편지를 읽는다
서울 살이는 독학으로 배우는 거지,

선지덩어리가 바위처럼 굳어있는
붉은다라 가에 돌려앉아
이쪽을 걱정하고 있다

아직 서있는 삼거리 복숭아 나무
돼지 등짝을 막대기로 톡톡치며 두런거린는
목소리를 꽉 끌어안고 있다

 

 

푸른 배추 무우

 

"지장물조사 원천봉쇄"

프래카드는 교산신도시 건설과 관련인 듯 싶은데, 고골공용주차장 상부지역도 교산신도시 건설 구역에 포함되는 지 모르겠다.  

 

경기도 하남시 천현동, 교산동, 춘궁동, 덕풍동 일원에 제3기 신도시인   '하남 교산 싣도시' 가 들어서는 지역이다. 하남교산 공공주택지구면적 6,314,121m2 (191만평) 으로 주택 3만3천호가 들어서며 인구 7만8천명이 유입된다. 사업기간: 2019년 ~2028년이다. 비야흐로 이 풍광이 청정 수려한 고골 일대 쌍전백해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이런 천혜의 그린밸트에 신도시가 들어서리라곤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이곳은 서울 강동구, 송파구와  남한산성 산 능선 줄기 너머로 바로 연결되며, 강남권에 직결되는 입지조건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지역이다. 앞으로 전철이 들어오면 대단하리라 예상된다. 

 

 

남한산성 방향

 

 

가을 코스모스만 보면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 옛 추억에 잠기게 된다.

 

이곳에서 발길을 멈추어 다시 내려간다. (반환점)

 

 

결실의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