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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구릅/일상들 ( life )

① 능내리 정약용유적지, 다산생태공원 - ( 2021.11.01 )

by the road of Wind. 2021. 11. 1.

 남양주 능내리 정약용적지, 다산생태공원

- ( 2021.11.01 ) 

 

- <  정약용유적지 주변 >:

 

경기 남양주 조안면 능내리 정약용유적지 다산생태공원 주변을 걸어보고 왔습니다. 능내리는 예봉산 자락의 끝 부분, 다산 정약용 선생의 생가가 있는 마을입니다. 인공호수 팔당호의 중간 쯤 지점에 위치한 곳이기도 합니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 이루는 팔당호는 광활한 바다같습니다. 팔당호는 우리나라 수도권 인구 약 2천만명을 먹이는 생명의 젖줄입니다. 수도권의 면적은 우리나라 전체 면적의 11.8% (11,851.26 km²)을 차지하는데,  2021년 3월말 기준으로 2천600만여명 ( 총인구의 약 50.2% )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팔당호는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중요한 곳입니다. 그런데, 다산유적지와 다산생태공원은 이곳의 중심부에 있으니 그 소중함이 말할 수 가 없습니다. 이곳 다산유적지에 오면 정약용 선생의 위대하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경치 좋고, 물 좋은 곳에 태어나서 우여곡절을 겪으며 유배의 길을 간 다음, 마지막 생의 말년을 보내신 곳입니다. 

다산생태공원의 산책로를 걸으면 광활한 팔당호반의 아름다운 경치에 그동안 쌓여 있던 스트레스가 휙 날아가는 듯 합니다. 모든 곳이 아름다운 곳입니다. 다만, 코로나로 인하여 다산박물관, 정약용유적지의 생가(여유당) 등을 볼 수 없어서 너무 아쉬웠습니다.  

 

 산 책: 걸음수 6,255 steps, 거리 4.2 km, 소모열량 235Kcal, 소요시간 01:01 hrs (2:34 ~4:00, pm), 속도 4.0 km/h.

 코 스 능내리 다산생태공원 일원.

 

 

정약용유적지 '문화의 거리'

 

 

다산길

<- 2.35km 시점    ||    종점 0.90km ->

 

 

 

제3길 정약용길(마제옛길)

마재마을 정약용 유적지:

정약용의 일대기, 상심낙사(賞心樂事)의 마음을 느끼다.


남양주 조안면 능내리의 마재마을은 정약용 선생이 태어나 유년기를 보냈고 오랜 벼슬과 유배생활 끝에 더시 돌아와 여생을 마친 곳입니다. 남양주시에서는 이를 기념하여 마제마을에 정약용 유적지를 조성하고 매년 10월 중순경에 사흘동안 축제도 거행하고 있습니다. 

 

정약용 유적지 다산기념관, 여유당, 문도사, 묘역, 문화의 거리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다산기념관은 정약용 선생의 실학정신을 배울 수 있는 교육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조성된 건물로 선생의 일대기와 삶의 자취를 느낄 수 있는 전시공간으로 꾸며져 있지요. 여유당은 선생의 생가로 원래는 현재 주차장이 있는 곳에 위치해 잇었는데, 1925년 을축년 대홍수로 소실되고 말았답니다. 하지만 선생의 삶을 느낄 수 있도록 옛 여유당의 모습을 재현하여 현 위치에 복원한 것입니다. 소박한 모습이기는 해도 사랑채와 안채로 구성된 중부지방의 전형적인 양반집 면모를 지니고 있지요. 문도사는 선생의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실학의 선구자였던 선생의 얼을 기리고 있습니다.

기념관 앞에 조성된 문화의 거리에는 수원 화성을 축조할 때 선생이 설계하여 사용되었던 거중기를 비롯하여 선생이 집필하신 <경세유표>와 <목민심서>에서 마음에 새길만한 글귀가 적힌 동판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또한 유적지 인근에는 실학박물관이 건립되어 다양한실학자들의 사상과 활약상을 배울 수 잇는 많은 자료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정약용 선생이 태어나 여생을 마친 이곳이 실학의 메카로 자리매김한 것이지요. 

평해길아내 경기옛길센터: 031.231.8524.    

 

 

부대찌게 & 돈까스 옛나루터 200m ->, 

장어명가 감나무집, cafe 2층 ->

 

 

 

이곳 정약용유적지 입구의 주차장 (무료),

그리고,  팔당호 방향으로 조금 더 들어가면 편의점 앞다산생태공원 주차장 (유료) 있었다.   

 

다산생태공원 주차장 (031-560-1217~8):  ( 월요일~토요일: 유료, 일요일, 공휴일: 무료 )
- 이용 시간: 동절기(11월~3월): 09:00-18:00,  하절기(4월~10월): 08:00-20:00
- 주차 요금: 1구획당 주차요금: 기본 30분: 600원.  30분 초과 10분마다: 300원, 1일 주차요금: 7,000원. 

 

 

 

 

 다산 정약용 선생의 삶:

 

1762년 (영조38년) -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출생

1789년 (정조 13년) - 문과급제

1794년 (정조18년) - 성균관 직장, 경기도 암행어사의 명을 받들고, 이어서 홍문관 부교리에 임명됨.

1795년 (정조19년) - 주문모 신부건에 형 약전의 연루로 충청도 금정찰방으로 좌천.

1801년 (순조1년) - 전라도 강진으로 유배

1818년 (순조 18년) - 다산 초당에서 저술을 시작함

1836년 (헌종 2년) - 75세로 이곳에서 세상을 떠남.

 

- 政治思想(정치사상)....임금은 백성을 위하고 (爲民思想), 군자는 자신을 바로 세운 후에 남을 다스리는 수기치인(修己治人) 정신을 실현해야 한다는 선생의 정치사상은 오늘날 지도자가 걸어야할 바른 길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 經濟思想(경제사상)....기술 발달과 상공업 진흥을 통한 부국강병을 제시하고 농업생산성 제고를 위한 정책인 여전제, 정전제를 제안, 토지 공개념을 도입하고 조세 부담의 공평성을 기하는 등 능률적인 경제운영의 지혜를 가르쳐 줍니다.

- 社會思想(사회사상)....폐단과 부폐로 어지러운 봉건시대에 핍박받는 민생의 편에서 사회제도를 백성을 위한 혁명적 개혁으로 주창하고 신분제 개혁, 서얼제도(庶孼制度) 철폐 등 근대적인 의미의 평등사회, 능력위주의 사회를 주장한 다산의 모습 속에서 모순의 벽에 끊임없이 부딪히며 고뇌했던 참 지식인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 科學思想(과학사상)....서양의 철물, 지리, 농사정책, 수리 기술, 측량법 등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학문을 연구하기도 하였습니다. 과학이 민생에 실제적인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실용론을 주장하였으며 실제로 거중기, 프리즘, 종두법을 발전시키는 등 과학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어 오늘날 과학발전에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 文學思想(문학사상)....진실은 삶의 맥락에서 권력에 저항하고 학대받는 사람들의 편에 설 때 아름답습니다. 참된 지식인은 진실을 추구하는 인물이기에 나라를 걱정하고 백성을 측은히 여기는 마음과, 사회의 폐해들을 비판하고 개혁하려는 경륜의 정신이 담긴 다산의 문학은 이 시대 문학이 나아가야할 길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 敎育思想(교육사상)....개혁은 치산(발전)을 위함인가 제산(평등)을 위함인가의 물음에 다산은 결론적으로 치산을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현실적인 것을 연구하자는 실사구시(實事求是), 경세치요(經世致用)의 실학(實學)교육을 주장, 민생과 사회, 국가에 도움이 되는 학문교육으로 교육의 정도(定道)를 일러주고 있습니다.

 

 

 

'꺼지지 않는 불',  2001,  박철우 

 

"다산 정약용 선생께서 저술한  약 500여권에 이르는 서책과 그 속에서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타오르는 실학사상의 정신을 조형물로 형상화 하였습니다. 2001년 11월."

 

 

정약용유적지 포토죤

 

 

노란 은행나무잎

 

다산문화관

 

 

 

 

치마폭에 매화를 그리다

가볍게 펄펄 새가 날아와
우리 뜰 매화나무 가지에 앉아 쉬네
매화꽃 향내 풍기자
꽃향기 사모하여 날아왔네
이제부터 여기에 머물러 지내며
가정 이루고 즐겁게 살거라.
꽃도 이미 활짝 피었으니
그 열매도 주렁주렁 많으리.

< 1813년 강진 다산에서 >

 

 

 

 

찰물(察物) 

관리는 좌우에 가까이하고 있는 사람들의 말을 그대로 믿고 들어서는 안된다.  목민심서.

 

 

밤나무집, 빠가매운탕, 추어탕, 옻닭

 

 

달빛따라 즐기는 여유당 야행 안내도

보름달포토죤/ 야광조약돌/ 한강전망대/ 강변조망/ 정자쉼터/ 포토죤

 

 

목민심서 (牧民心書)


군자의 학(學)은 수신이 그 반이요 나머지 반은 목민인 것이다. 성인의 시대가 이미 멀어졌고 그 말씀도 없어져서 그 도가 점점 어두워 졌으니, 오늘날 백성을 다스리는 자들은 오직 거두어 들이는데만 급급하고, 백성을 기를 바는 알지 못한다. 이 때문에 하민(下民)들은 여위고 시달리고, 시들고 병들어 서로 쓰러져 진구렁을 메우는데, 그들을 기른다는 자는 바야흐로 고운 옷과 맛있는 음식으로 자기만 살찌우고 있으니 어찌 슬프지아니한가. 이것은 진실로 내 덕을 쌓기 위한 것이요, 어찌 꼭 목민에만 한정한 것이겠는가. '심서(心書)'라 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목민할 마음은 있으나 몸소 싱행할 수 없기 때문에 '심서'라 이름한 것이다.  < 목민심서 서문, 1321년 > 

 

 

 

 

거중기 (擧重機)

 

1792년(정조 16) 다산 정약용(丁若鏞)이 서양의 기술과 도르래 원리를 이용하여 창의적으로 만든 기구로 높이는 4.4m, 너비는 1.7m이다. "기기도설"을 연구한 다산 정약용이 골차로 거중기를 만들어 수원성을 쌓는 사업을 지휘하면서 직접 만든 것으로, 이 기계를 써서 건설 경비를 4만냥이나 절약하였고, 거중기를 이용하여 노동자 두 사람이 약 10톤 또는 그 이상의 무거운 자재를 높은 곳으로 운반할 수 있었다.  원리는 비교적 간단하여 위에 네개의 도르래를 연결하고 아래 도르래 밑으로 물건을 달아매고, 위 도르래 양쪽으로 잡아 당길 수 있는 끈을 연결하여 이 끈을 물레에 감아 동시에 물레를 돌림에 따라 연결된 끈을 통해 물건이 위로 들어 올려 지도록 한 것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수원화성 축조에 사용하였으며 다산 선생의 과학사상과 앞선 시대정신을 엿 볼 수 있다.  

 

 

'실학연수',

정약용유적지 출입문.

 

실학연수 (實學淵數)란 실학의 모든 것이 모여있다는 뜻이다.

 

 

 

=== < 2020.04.25 사진 > ====

      정약용 선생 생가 뒷동산에 정약용 선생 묘역이 있다.

 

                                 여유당(與猶堂):

 

생가 여유당은 1925년 을축년 대홍수로 유실되었던 것을 1986년 복원한 것이로 집 앞으로 내(川)가 흐르고 집 뒤로 낮은 언덕이 있는 지형에 자리잡고 있어 선생은 수각(水閣) 이라고도 표현하였다. 당호(堂號)인 여유(與猶)는 선생이 18--년(정조24년) 봄에 모든 관직을 버리고 가족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와서 지은 것으로 여유당기(與猶堂記)를 통하여 아래와 같이 기록하였다. 나는 나의 약점을 스스로 알고있다. 용기는 있으나 일을 처리하는 지모(智謀)가 없고 착한 일을 좋아는 하나 선택하여 할 줄을 모르고, 정에 끌려서는 으심도 아니하고 두려움도 없이 곧장 행동해 버리기도 한다. 일을 그만두어야 할 것도 참으로 마음에 내키기만 하면 그만 두지를 못하고, 하고 싶지 않으면서도 마음 속에 담겨있어 개운치 않으면 기필코 그만 두지를 못한다. (중략) ...이러했기 때문에 무한히 착한 일만 좋아하다가 남의 욕만 혼자서 실컷 얻어먹게 되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 또한 운명일까. 성격 탓이겠으니 내 같히 또 운명이랴 말하랴. 노자(老子)의 밀에 "여(與) 여! 겨울의 냇물을 건너는 듯 하고, 유(猶) 여! 사방을 두려워 하는 듯 하거라"라는 말을 내가 보았다. 안타깝도다. 이 두마디 말이 내 성격의 약점을 치유해 줄 치료제가 아니겠는가. 무릇 겨울에 내를 건너는 사람은 차가움이 파고들어와 뼈를 깍는 듯 할 터이니 몹시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하지 않을 것이며, 온 사방이 두려운 사람은 자기를 감시하는 눈길이 몸에 닿을 것이니 참으로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하지 않을 것이다. (중략).... 내가 이러한 의미를 해독해 낸지가 6,7년이나 된다. 당(堂)의 이름으로 하고 싶었지만 이윽고 다시 생각해 보고 그만 두어버렸었다. 초천(苕川)으로 돌아옴에 이르러 비로소 써가지고 문미(門梶)에 붙여놓고 아울러 그 아름 붙인 이유를 기록해서 이이들에게 보도록 하였다.
 

 

=== < photo end > ===

 

 

 

 

실학박물관홍이포

 

홍이(紅夷)는 '붉은 오랑케' 라는 의미로, 머리털이 붉은 네델란드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또는 네델란드의 옛이름인 '홀랜드'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라 한다.

 

 

 

<- 감나무집,  -> 옛나루터 

 

 

한강하구로 부터 82km,  <- 576-8060 장어정식 어부의 집

 

 

정약용유적지

 

 

↗ 감나무집

 

 

오랜만에 가니 새로운 집이 생겨있다.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에는 이곳의 피해가 매우 컸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북한강, 남한강의 수계를 따라 많은 댐들이 건설되어 수위 조절이 잘되고 있다고 한다.  

 

 

가을 무우, 배추

 

 

 

어부의 집 &  감나무집

월요일엔 영업을 쉬고 있었다.

 

 

양수리, 두물머리 방향

 

 

광주시 남종면 귀여리 물안개공원 방향

귀여리 뒤편의  중간에 해협산(527.7m), 그리고 왼쪽에 정암산(406.4m). 

 

 

 

두물머리 방향 튀어나온 섬은 족지도이다. 

 

 

두강승유도(斗江勝遊圖):  조선후기 이건필(1830~ ? ) 작. 개인소장.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처져서 흐르는 두물머리를 배를 타고 유람하며 그린 풍경화이다.  

 

 

 

 

아, 아름다운 팔당호

 

감나무집 뒤 까치밥이 되려나 감이 주렁주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