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조선의 으뜸 궁궐, 경복궁
- ( 2021.11.24 )
< 경복궁 경회루, 향원정, 국립민속박물관 >:
<- 경회루, 교태전, ↑ 근정전
수정전
○ 수정전과 궐내각사: 왕실과 밀접하게 관련있는 관청을 궁궐안에 설치해 궐내각사(闕內各司)라 불렀다. 비설인 승정원, 서작 편찬을 맡앗던 홍문관, 의료기관인 내의원 등 크고작은 관청들이 근정전 서쪽에 있었다. 세종 때 한글 창제의 무대가 된 집현전은 지금의 수정전 자리에 있었다. 1867년 중건된 이곳은 왕의 출입이 빈번하여 관청으로는 드물게 정면에 월대를 두었다. 수정전은 일상 집무공간으로 사용하다가 1894년 갑오개혁 때 내각 본부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경회루(慶會樓) & 경회지(慶會池)
○ 경회루: 경회루는 왕이 신하들에게 큰 연회를 베풀거나 외국 사신을 접대하던 곳이다. 그 밖에 과거시험이라든가 기우제 등이 성행되기도 하였다. 창건 당시에는 작은 누각이었으나 태종12년(1412)에 연못을 새로 만들고 누각도 크게 지었다. 지금의 경회루는 임진왜란 때 전소된 것을 고종4년(1867)에 중건한 것이다. 경회루는 단일 평면으로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누각건물이다. 이와 같이 거대한 규모의 건물을 물 속에 인공으로 조성한 섬에 세웠으면서도 그 기초를 견고히 하여 건물이 잘 견디게 처리한 점, 거대한 건물을 이익공의 간결한 법식으로 처리하면서도 왕실의 연회장소로 합당하게 잘 치장한 점, 2층 누에서 주변 경관으로 인왕산·북악산·남산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게 처리한 점, 1층 건물 주변을 돌며 연못의 물과 섬을 바라보며 감상토록 한 점 등은 높은 평가를 받는다.
경회루
경회루
경회루 연못 안에는 조그만 섬이 3개 있다.
풍기대(風旗臺), 보물제847호
○ 풍기대(風旗臺): 풍기대는 대 위에 구멍을 뚫어 깃대를 꽂고 그 깃대에 기를 달아 바람의 방향과 속도를 가늠했던 기상 관측기구이다. 18세기 유물로 추정하며, 탁자 모양의 돌 위에 긴 팔각기둥을 세우고 넝쿨무늬를 정교하게 새겼다.
본 풍기대는 경복궁 흥복전권역 복원공사 구역에 위치하고 있어, 공사기간 동안 불가피하게 이곳으로 임시 이전하여습니다.
경회루는 48개의 돌기둥 위에 누마루를 수평으로 깔고 팔작지붕을 씌운 건축물이다. 경회루 추녀 마루에는 11개의 잡상(雜像: 궁전이나 전각의 지붕 위 네 귀에 여러 가지 상(像)을 새겨 얹는 장식 기와) 이 자리하고 있다. 경회루는 당대 최고의 노비 출신 박자청이 태종의 명을 받아 8개월만에 건축한 것이다. 경회루는 역대 임금들이 휴식과 대신 종친들과의 연회, 그리고 사신 접대 등 외교 목적에 주로 사용하였지만, 가장 많이 방문한 왕은 세종대왕이며, 기우제와 무과 시험, 무사들의 활쏘기 시범을 이곳에서 관람했다고 한다. 또한 세종의 손자 단종이 옥새를 수양대군에게 넘겨 준 곳이기도 하다. 연산군에게는 경회루는 주지육림, 방탕의 공간이었다. 전국에서 뽑아올린 기생들과 춤과 노래로 흥청망청 하면서 패덕(悖德)을 일삼았다. 국사를 그르치고, 국가재정의 허비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경회루는 북악산에서 흘러들어 온 물이 자연적으로 순환하게 설계되어 있다고 한다, 이것은 연못 바닥이 약간 경사지게 되어 있어 인공순환장치의 도움 없이 가능하다고 한다. 경회루 물은 북악산 물이 북동쪽에서 유입되어 남서 방향으로 흘러 'ㄴ'자로 물길을 틀어서 결국에는 청계천으로 흘러나간다.
경회루는 48개의 돌기둥 위에 누마루를 수평으로 깔고 팔작지붕을 씌운 건축물이다.
경회루 추녀 마루에는 11개의 잡상이 자리하고 있다. 경회루는 당대 최고의 노비 출신 박자청이 태종의 명을 받아 8개월만에 건축한 것이다. 경회루를 가장 많이 방문한 왕은 세종대왕이며, 기우제와 무과 시험, 무사들의 활쏘기 시범을 이곳에서 관람했다고 한다. 또한 세종의 손자 단종이 옥새를 수양대군에게 넘겨 준 곳이기도 하다. 연산군에게는 경회루는 쾌락의 공간이었다. 전국에서 뽑아올린 기생들과 춤과 노래로 흥청망청하였다고 한다. 물론 국가재정의 허비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경회루는 북악산에서 흘러들어 온 물이 자연적으로 순환하게 설계되어 있다고 한다, 이것은 연못 바닥이 약간 경사지게 되어있다고 한다.
전면에 보이는 태원전
태원전 ↖, 건청궁 ↗, 국립민속박물관 ↗, -> 흥복전
문경전 터 (文慶殿址)
문경전(文慶殿)은 고종 초 경복궁을 중건할 때 태원전. 회안전(會安殿) 과 함께 홍례(凶禮: 왕실의 상.장례)에 쓰기 위해 지어졌다. 1890년에는 대왕대비 신정왕후 조씨의 신주를 모신 혼전(魂殿)으로 쓰였다. 1896년에 경운궁( 덕수궁의 본이름) 을 지으면서 옮겨갔다.
태원전(泰元殿)
○ 태원전: 고종5년(1868)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종9년(1872) 태조와 원종의 어진을 봉안하였으며 고종27년(1890)에는 신정왕후의 빈전으로, 고종32년(1895)에는 명성황후의 빈전으로 사용되었다. 일제 강점기 때 철거되었고, 지금의 건물은 2005년에 복원된 것이다.
건숙문
경안문
태원전 ( 2019.8.28 사진 )
태원전 ->, 경회루 ↑, 향원정 <-. 건청궁 ↙, 국립민속박물관 <-
연지문
향원정(香遠亭) & 향원지
○ 향원정: 경복궁 북쪽 후원 영역에 조성된 정자이다. 연못인 향원지와 함께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광을 지니고 있다.
취향교
집옥재
○ 집옥재: 집옥재는 경복궁 북문인 신무문과 건청궁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고종28년(1891) 창덕궁 함녕전의 별당이었던 집옥재, 협길당 등을 이건한 것으로 서재와 외국 사신 접견소로 사용되었다. 집옥재는 양 옆을 벽돌로 쌓아 전통 양식에 중국풍을 일부 가미하여 만든 건물로 좌,우에는 팔우정과 협길당이 하나의 복도로 연결되어 있다.
필성문
추수부용루 (秋水芙蓉樓)
장안당, 임금의 처소.
함광문
곤녕합(坤寧閤) & 옥호류(玉壺樓)
함광문을 들어서면 고종의 사적인 거처인 건청궁(乾淸宮) 내 왕비의 처소인 곤녕합(坤寧閤)에 딸린 누각 옥호루가 보인다. 곤녕합(坤寧閤)은 명성황후가 1884년무터 1895년까지 침전으로 사용하던 건물이며, 그에 딸린 옥호루는 1895년(고종32) 10월 8일 일본인 자객에 의해 명성황후가 비참하게 시해된 을미사변이 일어난 곳입니다. '곤녕(坤寧)'이란 말은 도덕경의 "하늘은 하나로 맑고, 땅은 하나로 평안하다" ( 건청곤영,乾淸坤寧 )이란 말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 쓸쓸한 달빛 아래/ 내 그림자 하나 생기거든/ 그땐 말해볼까요 이 마음 들어나 주라고/ (...)
흩어진 노을처럼 내 아픈 기억도 바래지면/ 그땐 웃어질까요 이 마음 그리운 옛일로/
저기 홀로선 별 하나 나의 외로움을 아는건지/ 차마 날 두고는 떠나지 못해 밤새 그 자리에만/ (...)
나 슬퍼도 살아야 하네/ 나 슬퍼서 살아야 하네/ 이 삶이 다 하고 나야 알텐데/ (...)
부디 먼 훗날/ 나 가고 슬퍼하는 이/ 나 슬픔속에도 행복했다 믿게 "
- < 조수미, TV 드라마 '명성황후' OST, ' 나 가거든 ' 가사 중에서 >
청휘문
건청궁(乾淸宫)
○ 건청궁: 건청궁은 향원정 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고종 10년(1873)에 건립되었다. 왕의 처소인 장안당, 왕비의 처소인 곤녕합, 옥호루로 이루어져 있으며 곤녕합은 고종 32년(1895) 을미사변 때 명성황후가 살해된 비극의 장소이기도 하다. 융희 3년(1909)에 훼철된 후, 1939년에는 조선총독부미술관이 들어섰으며, 2007년에 복원하였다.
취향교
( === 2019.8.28 흥복전 사진 ==== )
흥복전(興福殿)
○ 흥복전: 흥복전은 고종 5년(1868) 경복궁을 중건할 때 처음 세워졌다. 흥복전은 경복궁의 내전 안에 있던 편전으로, 영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았던 창의궁의 함일재를 옮겨 지었다고 한다. 흥복전은 임금이 관리를 만나 나랏일을 논하거나, 미국과 일본 공사 등 각국 사절들을 만나는데 주로 사용되었다. 왕이 공부하는 것을 경연이라 하는 데,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흥복전은 효명세자의 부인이자 고종의 양모 신정왕후 조씨가 머물다 고종 27년(1890) 4월 이 곳에서 승하하였다. 일제 강점기인 1917년에는 창덕궁 내전에 큰불이 났을 때 강녕전과 교태전 등과 함께 창덕궁의 내전 건물을 다시 짓는데 자재로 사용되어 흥복전은 없어졌다. 그 후 경복궁 복원사업으로 2018년에 다시 복원되었다.
봉양문
집경당
함화당
( === photo end === )
사정전 ->, 함원정 ->, 경회루 ↑, 근정전 ↖ , 강녕전 ↖ , 국립민속박물관 -> , 경복궁관리소 <- ,
나가는 곳 <-
● 국립민속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관람료: 무료)
제주 돌하루방
오촌댁(梧村宅)
오촌댁: 1984년 남병혁 기증. 원소지: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원구1리
조선후기 이 지방의 중산층 가옥 형태를 잘 보여주는 가옥으로,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원구1리에 있던 것을 남병혁씨로 부터 기증받아 옮긴 것이다. '오촌댁(梧村宅)'이라는 명칭은 영양남씨(英陽南氏) 남용진(1887~1912)이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오촌리 출신의 재령이씨(載寧李氏) 와 혼인하면서 붙여진 택호에서 비롯되었다. 건물이전을 위한 해체 과정에서 "道光貳拾捌季戊申三月二日申時立柱上樑同日時(도광이십팔년무신삼월이일신시입주상량동일시)"라고 적힌 상량문이 발견되어, 건립 연대는 1948년임을 알 수 있다. 가옥의 중앙에 마다이 있는 口자 형태로, 지붕의 용마루가 끊어지지 않고 연결되어 안채와 사랑채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거주공간으로 네개의 방(안방,상방,사랑방,문간방)을 비롯해, 안마루(안대청), 정지(부엌), 물건을 넣어두는 도장방(방에 부속된 수장공간)과 고방(창고방)이 있다. 외부출입은 뒤쪽을 제외한 세 방향이 다 가능하며 뒷마당에는 장독대를. 오른쪽 마당에는 디딜방앗간과 우물, 화정실을 배치했다.
어린이박물관
태흥활자인쇄소
추억의 거리
창신사장
근대화 연쇄점, 선진식품
화개 이발관
국밥 고향
약속 다방
고바우 만화방
장미의상실
레코드 좋은소리사 라디오
연자방아
물레방아
문인석
효자각과 효자문
장승
국립민속박물관 안내도
1 정문, 2 안내, 3 전통문화배움터, 4 오촌댁, 5 제수합, 6 경복궁 매표소, 8 전시관입구, 9 어린이박물관, 10 추억의 거리, 11 어린이박물관 교육관(별들제) 12 야외놀이터
※ 무료관람:
- 관람시간: 3월~10월: 09:00 - 18:00 / 11월~2월: 09:00 - 17:00
- 관람료: 무료
* 휴관일: 1월 1일, 추석.
국립민속박물관 정문
건춘문
경복궁주차장
- 승용차: 기본 2시간 3,000원, 초과 10분당 899원.
- 중.대형차: 기본 2시간 5,000원, 초과 10분당 899원.
* 장애인, 국가유공자: 80%감면, 다자녀가족(3가족): 50% 감면, 다자녀가족(2가족): 30% 감면,
* 유인운영: 06:00 - 23:00
* 소형차량이 지상주차장 이용시 중대형차 금액을 적용합니다.
* 주차문의: 1688-1054/ 070-7119-2792 (야간)
협생문
다시 흥례문
※ 2021년 하반기 경복궁 야간 관람:
- 관람기간: 2021.10.21(화) ~ 2021.11.29(일)
- 개방시간: 19:00 - 21:30 (입장마감: 20:30 )
* 비 고: 야간관람 안하는 날: 매주 화요일.
인왕산 방향
광화문에서 바라보는 세종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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